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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이 그렇게 말한 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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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6. 10 헌책방에서 몇 개월 전에 샀는데, 이번에 읽었다. 책상에 앉아 있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이런 소설을 읽는 것은 괜찮겠지.
 
성석제 소설집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창작과비평사 | 2002.
 
1. 저자의 말에 대하여
 
내가 짠 그물이 성글다.
이 그물로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겠네.
 
그때가 올까.
이 마음속 고래 한 마리,
펄쩍 뛰어 밖으로 뛰쳐나오는 그날,
바다가 먼저 넘치지는 않을까.
넘쳐 넘실 스르르 북해를 만나러 가지 않을까.
 
내가 친 그물이 성글어 보인다.
성긴 그물이여, 나라도 엮어볼 테냐, 잡으려느냐.

이 책을 당신, 천지의 붉은 물고기처럼 유유한 존재께 바치노니, 나는 당신들과 다르고도 상관없어 보이는 모든 것, 나무와 돌, 하늘, 바람, 아카시아꽃에서 언제나 당신들을 느낀답니다. (성석제/저자)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저자의 말’이 앞의 소설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매개고리를 잘 찾지 못하겠는데, 내가 둔한 건가.
 
2. 제일 인상적인 작품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표제작답게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 많은 사람들이 꽂힐 것 같다. 좀 모자라는 농부인 황만근은 어렸을 때부터 온갖 비웃음과 조소, 모멸을 당하지만, (모자라기 때문에)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을 다하였고, 그가 죽는 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묘비명의 형식을 따른 이 작품에서는 글의 맨 마지막에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서술을 한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세운 사람이 아니랴. (40쪽)
 
강풀의 만화 ‘바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을 보고 허세욱 열사를 떠올렸는데, 이게 그에게 실례일까. 나에게 허세욱 열사는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3. 전형적인 인간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현대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러한 인물들이 아니라 상당히 기이한 인물들인데, 나에게는 고전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간형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도 있었다고 해야 하나. 작품해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성석제의 ‘리얼리즘의 탈피’의 측면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황만근, 직접 ‘나’에게 연락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허락을 얻은 다음에야 연락을 취하며, 결혼식을 해서 부조금 들어오면 그거 모아서 장사밑천이나 하자고 했고, 화자인 ‘나’를 부른 이유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천애윤락'의 동환,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의 평범하면서도 별난 친목계원들, 서음(書淫)이라 불릴 만큼 책을 좋아하면서도 책 밖에서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책’의 동갑내기 당숙, 냄새 자체로 괴물 취급을 받았으나 자라면서 숨이 막히게 하는 수준의 꽃미남 외모로 세 명의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천하제일 남가이’, 평범한 듯 하면서도 온갖 다양한 여인들에게서 사랑받는 ‘욕탕의 여인들’의 나, 그리고 처음 시작하는 도박에서는 언제나 이기는, 그래서 언제나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도박에 나서는 ‘꽃의 피, 피의 꽃’의 도선생, 이들은 일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괴이한 사고나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런 인물들에게서 현대 한국사회의 전형성을 본다면 내가 이상한 건가. 그 만큼 이 한국사회가 정상에서 벗어난, 기우뚱한 사회인지도 모른다.
 
4. 서음(書淫), 책벌레,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
나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에 나오는 당숙은 많이 심하다. 그마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책벌레들을 조롱하기 위해 쓴 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당숙에 대한 묘사는 흥미롭다.
 
당숙은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어떤 자리에서나 뒷전과 그늘을 택했다. 그래도 조금 알 만해지는가 싶은 어느 순간 당숙은 책을 가지고 간단하고 손쉽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다. 수업시간에 보는 교과서를 제외하고 어떤 책이든 당숙과 함께 있으면 당숙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당숙이 책을 들고 있었는지, 읽고 있었는지, 걸어갔는지, 소리를 냈는지, 책을 베고 잠을 잤는지, 책으로 파리를 잡았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책은 당숙을 희미하게 만들고 당숙은 책과 사물의 경계선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둘은 섞여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116쪽)
 내가 보기에 당숙은 어떤 책을 읽어서 내용을 안다기보다는 다자인, 촉감, 냄새, 분량과 무게,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 거기에 더하여 책에 관한 독특한 육감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 책을 읽기보다는 느끼려고 한다. 글자 하나하나의 생김과 책에 있는 낙서며 흠, 색깔을 기억한다. … 책과 당숙, 두 존재의 혼재를 1+1이라고 하면 그 결과는 2가 아니고 0이거나 -2가 되기 십상이다. (118-119쪽)
도서관 직원의 소개로 처음 당숙을 만난 자리에서 당숙모는 자신이 번역한 책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자신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당숙에게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 소름이 끼치게 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여자의 속마음은 뭘까. 나는 모르지만 당숙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에 나와 있기만 하다면 그가 모르는 건 없었으니까. (119-120쪽)

 
책을 보는 것과 모으는 것, 사는 것은 다르다. 법정 스님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집착이 책에 대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분명 소유욕이긴 하겠지만, 지식욕으로 수렴되는 류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만큼 버리기 힘든 책에 대한 집착은 맘껏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이사할 때마다 책이 걸리적거린다. 책을 옮기는 게 가장 힘든 이삿일이라고 하는데, 역시나 여기서도 책 이사 장면의 에피소드는 압권이다. 실제 책을 보관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책들, 더 이상 보지 않을 책들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무엇인가를 잘 버릴 줄 아는 사람(이는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보관해야 하는지를 분별할 줄 안다는 것을 전제한다)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평생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5. 미남이란
미남에 대한 천하제일 남가이의 정의.
“세상에는 수많은 미남이 있어.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어디에나 미남은 존재하거든.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미남은 뭔가. 진정한 미남은 그걸 아는 법이지. 가짜들은 몰라. 가짜 미남은 진실을 모르지.”
“아무리 멀리서 봐도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 명백히 사람일 수밖에 없는 얼굴, 이런 얼굴이 미남의 얼굴이야. 잘생겼다는 건 사람답다는 걸 말하는 거지. 천하제일 미남은 천하에 짝이 없이 사람답다는 거야. 그런 사람이 흔할 것 같지.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다네.” (172쪽) 

 
잘생겼다는 게 사람답다는 거라고 하자. 그렇다면 사람다우면 잘생긴 걸까. 그게 성립하지 않는 게 문제다. 아쉬운 건 아니고...
 
6. 연애는 어떠해야 하는가
‘욕탕의 여인들’은 주인공이 만나는 다양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남녀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주고...
 
사귀기에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같은 것보다 낫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뜨거운 부위에서 차가운 부위로 열이 옮아가듯 움직임이 있다. 서로 비슷해져서 고여 있는 물 같은 상태보다, 알 것 다 알아서 미지근한 관계보다는 낫다. (228쪽)
 
그런가. 서로 다르다와 서로 같다의 스펙트럼 안에는 다양한 정도의 다르고 같음이 존재하지 않을까. 극단이 아닌 어정쩡한, 그냥 그저 그런 관계. 물론 중심축은 다른 쪽에 있어야겠지. 하지만 서로 다 알고 많이 일치하는 관계가 어디 얼마나 있을까. 상대적일 터이다.
 
7. 도박의 정의
노름은 믿음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의 운에 대한 믿음, 노름의 일회성에 대한 믿음, 인생의 일회생,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노름을 하게 한다. 누구의 믿음이 큰가, 철저한가에 따라 이기고 진다. (289쪽)
 
지금의 진보정당운동은 도박일까, 아닐까.
 
8. 재치, 유쾌, 경쾌, 그러나 씁쓸함
성석제의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이 소설집은 재치 있고, 유쾌하지만, 다 읽고 나면 그것이 씁쓸한 웃음임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경쾌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비틀림 때문일 텐데, 반전은 없어도 이런 맛을 주는 작품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책의 여기저기 보이는 말장난도 재미있는데, 상투적인 듯해도 이런 걸 적재적소에 써먹는 것도 큰 재주다.
 
속인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리가 부러지고 손이 작두로 잘려나가면서 깨달아야 했다. 그는 진정한 도박꾼은 속이지 않고도 언제나 이긴다는 철리(哲理)를 깨치기 위해 절로 들어가 뼈를 깎는 고행을 했다. 그러는 동안 … 인생의 허무를 알았고 모든 욕심을 버렸다. 그는 별볼일 없는 화투장을 통해 천하를 내다본다. 천하가 그를 몰라주어도 성내지 아니한다. 그에 의하면 ‘어차피 인생은 거는 것(賭)이며 도(睹)로써 도(蹈)하고 도(渡)하여 도(道)에 도(到)한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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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1 12:38 2010/06/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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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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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하나로(준)'이 발족했다. 아직은 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지는 않지만, 레디앙과 경향신문에서 이에 대한 관련기사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과연 의료 민영화를 저지하고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조선일보 말대로 요구하는 바를 하나의 슬로건으로 집약하여 나타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글쎄, 과연 의료 민영화 저지의 대안으로까지 격상시킬 수 있을까. 추진주체들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그렇게 싸워왔으면서 저들이 어떠한 양태를 보일지 모른단 말인가.
 
'건강보험 하나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최근 프레시안과 레디앙에 실린 글을 보고나서이다. 하지만 이미 이에 대해서는 한달 여 전부터 공공운수연맹 쪽에서 공론화가 되었고, 관련 토론회까지 열렸다고 한다. 물론 그 토론회가 계기가 되어 '건강보험 하나로' 추진에 발동이 걸린 것은 아닌 듯하다. 당시 토론회에서 '건강보험 하나로'가 나이브한 사고에 발상을 두고 있으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소위 '비판의 십자포화'를 맞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노동조합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이 개인자격으로 나서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 운동이 초라해지는 것보다 나름의 의제설정을 하면서 건강보험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는 쪽이 낫다고 본다. 하지만 추진주체들이 말하는 대로 과연 건강보험료 인상이 보장성 확대 강화로 이루어질 것인가. 이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이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정희 동지가 말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은 건강보험과 관련된 공급구조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건강보험 하나로'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라도 공급구조에 대한 노동자들의 개입 방식을 밝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바로 현장에서의 압박이 필요하며, 결국 현장동력의 복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은 채 건강보험료 인상을 얘기하는 것은 (건강보험 하나로라는 게 결국은 건강보험료 11,000원 인상이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노동자 민중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면서 비판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제2의 사회연대전략'처럼 노동자 先양보론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최근 진보개혁정당론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것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전문가'들과 사민련, 그리고 진보신당 내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의 주장을 실물화하는 정책으로 보이고, 그 추진주체들의 면면 또한 이를 예견케 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사회서비스 정책과 함께 좌파가 제기할 수 있는 건설적인 대안이라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게 하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이를 돌파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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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린 '의료 민영화', 막을 방법은?" (프레시안, 이성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변호사, 2010-06-08 오전 9:30:54)
[복지국가SOCIETY]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7년 7월부터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에서 먼저 실시되었다. 당시의 법정의료보험은 전체 인구의 8.6퍼센트에게만 의료보장 혜택을 제공하였는데, 이로 인해 의료보험이 없는 대다수 국민들은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이용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이는 의료보험제도가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사회권 확보 투쟁에서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일반 국민의 필요가 아니라 당시 군사정권의 경제성장정책 등 다양한 필요에 의해 부담능력이 있는 집단(대기업)에 한하여 조합주의 방식으로, 국가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역동성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1980년대 들어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정권 하에서 단계적 확충을 이어오던 의료보험제도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87년의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제도 발전의 결정적 추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법정의료보험 도입 12년 만인 1989년에는 '전 국민 의료보험'이 달성되었다. 이는 세계사에 전례가 없는 것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에서 전체 국민을 법정의료보험제도로 포괄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전무하였다. 우리사회의 역동성은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의 이러한 세계사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발전을 향한 운동의 관성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수백 개의 독립적 의료보험조합들로 구성된 '조합주의 의료보험제도'를 국가 주도의 '통합의료보험'으로 의료보장제도를 전환하려는 운동이 그것이다. 이 과제를 향해 시민사회는 10년에 걸친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었다. 조합주의 의료보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동, 농민, 시민사회의 통합의료보험 쟁취 투쟁은 통합의료보험 법안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를 통과하였음에도 노태우 정권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후에도 통합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문민정부 내내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였다. 1997년 대선에서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노동 및 시민사회의 사회권 쟁취 투쟁으로 간단없이 전개되었던 통합의료보험을 향한 10년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 2000년 7월 출범한 국민건강보험이 그것이다.
 
우리는 1980년대 10년 동안은 전국민의료보험의 달성을 위해 역동적 발전을 진전시켜 왔으며, 1990년대 10년 동안은 통합의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획득을 위해 투쟁하였고, 2000년대 10년 동안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과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해 투쟁해왔다. 국민건강보험 출범 이후 2007년까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꾸준히 높아졌는데, 이 기간에 40퍼센트 후반에서 60퍼센트 초반까지 약 15퍼센트 포인트에 달하는 보장성의 증가가 있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사회권 확보를 위한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였으나 복지의 제도적 확충에 온정적이었던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노력도 한 몫을 한 것이었다.
 
참여정부에서 국민건강보험을 둘러싸고 기이한 분열적 양상이 전개되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보장성 강화를 허용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였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여 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였는데,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주식회사 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생명보험회사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생명보험업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서민을 위한 희망과 눈물을 아이콘으로 해서 당선되고 출범한 참여정부가 서민과 지지자를 배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료민영화의 추진은 참여정부 후반기 들어 의료민영화 법안의 국회 제출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이는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추진한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본격적 신자유주의 노선 하에서 주식회사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소위 '의료민영화' 추진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참여정부 시기에 추진되던 의료민영화 시도와 성격 상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 근본은 보건의료에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줄이고, '자본과 시장'의 역할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이미 미국에서 실패한 것이고, 오바마 행정부가 맹렬하게 의료개혁을 추진하였으나 미미한 성과만 얻는 데 그친 문제투성이 의료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의 제1야당인 민주당이 의료민영화를 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민주당은 정부여당과 대척점을 형성하면서 진보 성향의 야당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를 맺는 데 걸림돌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다.
 
올해는 국민건강보험이 창설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64퍼센트대에서 62퍼센트대로 축소되었다. 서민가계의 의료불안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간의료보험 가입자 수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이중 부담이다. 우리네 서민가계는 국민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동시에 의료불안 해소책으로 값비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장차 노인인구의 폭발적 증가, 고가 의료기술의 발달, 국민소득 증가 등에 따른 국민의료비의 급증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닥친 심각한 위협이자 도전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서 의료재정의 공공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에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칭)에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번에 출범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과거 20년 간 추진되어온 시민사회 운동과는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기존의 운동단체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 일반시민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란다. 필자도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한 사람의 국민이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수만,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에 참가하게 될 때, 마침내 진짜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는 그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쟁점이 되었던 보편적 복지의 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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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하나로' 모임 발족…논쟁 시작? (레디앙, 2010년 06월 08일 (화) 09:28:20 손기영 기자)
“보험료 인상, 무상의료 접근” vs “보장성 제자리, 서민 부담 증가”
 
오는 9일 출범할 예정인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를 두고, 노동계, 보건·의료계 인사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향후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민회의(준) 발족에 참여한 이들은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의 한계를 지적하며 보험료 인상을 통한 보장성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동안 보험료가 증가했지만, 보장성은 크게 확대되지 않은 점을 들며 노동자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시민회의(준)는 국민건강보험료를 소폭 올려 병원비의 대부분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보험료를 현재보다 1인당 월 평균 11,000원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시민회의(준)는 이럴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OECD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고, 선택 진료비, 상급 병실료, MRI, 초음파, 노인 틀니, 각종 의약품과 검사 등 환자 부담을 늘리는 비보험 진료를 모두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리 중병이 걸려도 연간 병원비가 100만원이 넘지 않게 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떨어진 추세다. 지난 2004년 61.3%였던 보장률은 지난 2007년 64.6%로 높아졌지만, 지난 2008년에는 다시 62.2%로 낮아졌다. 2008년 한 해 동안 민간의료보험료가 12조원에 달했을 만큼,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불만은 민간의료보험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7일 현재 시민회의(준)의 준비위원으로는 이상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최병모 전 민변 회장,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 김종명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손낙구 전 보좌관, 우석훈 2.1 연구소장,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 30여명이 참여했다. 
 
오건호 위원은 “현재 국민들이 보건의료 영역에서 느끼는 문제가 과중한 병원비인데, 실질적인 대안을 진보진영에서 제시해야 한다”라며 “기존의 국고 지원으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거의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상황은 결국 민간의료보험의 평창만 불러오고 있어, 서민들의 병원비 부담에 일조하고 있다”라며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현재보다 높이게 되면, 사실상 무상의료에 가까운 보장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황민호 사회보험노조 지도위원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약화되면 서민들에게 가정 먼저 타격이 간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되어야 한다”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가 되어야 한다. 보험료 인상뿐만 아니라, 민간의료보험 규제,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현정희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장은 “국민건강보험 보험료를 올린다고 해도, 보장성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건강보험료는 30% 이상 올랐지만, 보장성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라며 “지금 경제 상황은 노동자들에게 어렵다. 보험료를 올리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경제적 부담이 있을 것이다. 정부 지원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 우리나라는 ‘공급 구조’를 통제할 규제가 없다. 즉 국민건강보험료를 가져가는 병원의 의료서비스, 제약회사들의 의약품 가격을 통제할 규제가 없다”라며 “보험료를 현재보다 올리더라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은 “그동안 정부가 약속된 국가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적자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런 부담을 시민들에게 전가하겠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계속 국민건강보험료가 인상되어왔지만, 보장성은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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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1천원의 기적” (레디앙, 2010년 06월 09일 (수) 14:02:39 손기영 기자)
‘건강보험 하나로(준)’ 발족…"발기인 1천명, 내달 14일 출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가 9일 발족했다. 이들은 국민건강보험료를 현재보다 1인당 월 평균 11,000원(가구당 28,000원)을 더 올려, 보장성을 OECD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9일 현재 시민회의(준)에는 이상이 제주의대 교수,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김동중 전국사회보험지부장, 김종명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 우석훈 2.1연구소장, 손낙구 전 심상정 의원 보좌관 등 33명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상태다.
 
시민회의(준)는 이날 '발족의 글'을 통해 “모든 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 이는 꿈이 아니고 유럽 복지국가들에서는 현실”이라며 “경제대국인 우리나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큰 사회연대 의식”이라고 밝혔다. 시민회의(준)는 “지금보다 우리 국민들이 능력에 비례해서 조금만 더 부담하면 된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므로 가계 부담은 줄어든다”라며 “그러면 선진국들처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사실상의 무상의료에 도달할 수 있다. 연간 100만원 이상의 진료비를 개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없어지므로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발족식에 참석한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치료 방법은 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이 상당수 있다”라며 “백혈병 등 중증 환자들에게 국민건강보험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의 건강보험으로는 환자들이 안심하고 치료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김동중 전국사회보험지부장은 “솔직히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리겠다고 하니까 걱정이 앞선다. 현장에서 보험료를 징수하면서 ‘혜택은 별로 없는데, 보험료만 걷어간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라며 “이 운동이 성공해 보장성이 강화되면, 국민들에게 좀 더 떳떳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단순한 지지를 넘어서 이 운동의 중심에 서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는 “의료 서비스를 시장에 맡기면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돈이 되는 쪽으로 자본, 인력이 몰려 보통 사람들을 위한 필수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운동에 참여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평생 반대만 해왔는데, 의료민영화 저지 운동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는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를 보면 병원비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하지만 건강보험제도가 있고, 10대 경제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프로가 있는 것은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OECD 국가들은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가 없다. 방송 프로가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개인이 아닌 국가가 나서서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라며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제정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렇다면 이제 시민들이 나서 이를 부담하고,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풀뿌리 에너지’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동안 대부분의 운동은 상대방에게 요구를 했지만, 이 운동의 첫 단추는 국민들이 스스로 끼운다. 누구한테 부탁하는 게 이니라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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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걱정없는 ‘1만1000원의 기적’ 만든다 (경향, 정유미 기자, 2010-06-09 18:23:32)
ㆍ‘건강보험 하나로’ 풀뿌리 운동 막올라
ㆍ“백혈병 등 2천만원 부담, 100만원으로 가능한 세상”
ㆍ민간보험 내몰리지 않게 누구나 동참 ‘범국민 운동’
 
최병모 준비위원장(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이날 발족사에서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이 의료비 불안에 떨며 민간보험으로 내몰리는데 우리사회는 4대강을 위시한 각종 토목사업 지출로 복지지출 비중감소, 부자감세로 인한 복지축소, 의료 민영화 등 기존 것마저 파괴하고 있다”면서 “능력만큼 보험료를 내고, 필요한 만큼 혜택을 보는 사회연대적 건강보험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병원비 걱정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보장성 떨어지는 건강보험에 대한 대안 모색 =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03년 61.3%에서 2007년 64.6%로 높아지다 2008년 62.2%로 떨어졌다. 노인인구 증가와 만성 중증질환자 급증으로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이 커지고 있지만 ‘비급여’ 항목이 증가해 보장성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간보험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2003년 보험료 수입기준으로 6조3000억원이었던 민간보험시장이 2008년에는 12조원으로 불과 5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국민 1인당 월 평균 민간보험료는 12만원으로 국민건강보험 3만원대의 4배에 이른다. 하지만 보험료 구조상 건강보험은 1000원을 내면 970원을 돌려받지만 민간보험은 250~450원의 혜택밖에 못받는다. 정태인 준비위원(경제평론가)은 “웬만한 중산층이라도 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겁나 민간보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면서 “모든 진료비를 공적 의료보장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더 이상 정부에 국민건강권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의지이자 대안”이라고 말했다.
 
준비위는 이를 위해 국민 1인당 월 평균 1만1000원의 건강보험료를 더 내 선택진료비,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등 주요 질환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받자고 제안한다. 이 경우 연간 6조2000억원이 조성되고 여기에 기업주가 내는 3조6000억원, 국고지원금 2조7000억원이 추가되면 모두 12조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민간보험료(2008년)로 총지출한 12조원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대신하면 현재 62.1%인 보장성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수준인 90%대까지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연간 100만원이 넘는 환자 본인 부담금 역시 건강보험이 대신 내준다.
 
‘1만1000원의 기적’ 향후 계획 = 보건·의료계와 여성계, 학계, 시민단체 등 33명으로 구성된 준비위는 오는 7월14일 정식으로 시민회의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회의 회원은 인터넷 블로그(http://blog.daum.net/healthhanaro) 등을 통해 모집한다. 회원들은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질병치료가 가능하도록 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정부와 사용자(기업)에게 각자 부과된 법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온라인 약속서명을 하게 된다.
 
준비위는 또 ‘풀뿌리’ 시민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대중강연과 문화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안기종 준비위원(백혈병 환우회 대표)은 “암에 걸리면 연간 치료비가 1억원인데 정부가 70%가량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당장 현금 3000만원을 쉽게 부담할 수 있는 환자는 없다”면서 “건강보험 하나로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는 그날이 오면 치료방법이 있어도 돈이 없어 죽어가는 환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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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 부담 증가? “민간보험료 안내도 돼 훨씬 절약” (경향, 정유미 기자, 2010-06-09 18:21:37)
ㆍ준비위원 이진석 교수 문답
ㆍ저소득층 더 고충? “소득별 소폭 인상… 혜택 엄청나”

 
“건강보험 보장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국민들의 민간의료보험 등 병원비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재정확충이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면 이젠 국민들이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국민이 1만1000원을 더 내면 기업도 1만1000원을 내야 하고, 정부 역시 지원금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인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9일 “1만1000원의 기적은 결코 꿈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럽 복지국가나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처럼 모든 진료비를 공적 의료보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교수는 국민에게 건강보험료를 더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능력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건강보험은 인간존엄과 사회연대성의 정신에 정확히 부합한다”면서 “겉으로는 소폭 인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월 12만원 내던 민간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만큼 훨씬 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만 몰릴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형병원에 대한 환자 집중은 의료서비스 공급과 소비를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이명박 정부와 현 의료체계의 문제에 기인한다”며 “지방 중소병원의 질적수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지역별 차등수가, 본인부담 경감 등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보험료 소폭 인상이 부담될 수 있다고 하는데 가장 큰 수혜자가 비정규직과 저소득층”이라며 “번 만큼 내는 것이 건강보험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인당 월 평균 1만1000원을 모으기 위해 저소득층은 3000~4000원을 추가 부담하지만 부유층은 2만~3만원을 더 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빈곤층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면제하거나 대출을 지원하는 계획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직장보험의 경우 경영진이 반대할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종업원 규모가 300명 미만인 중소기업은 사용자 부담액의 50%를 지원할 계획”이라면서 “대기업이 국가를 위해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기업의 사회보장 기여도는 국내총생산(GDP)의 2%로 OECD 평균 5.5%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만큼 국제기준에 근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건보 재정을 확충해도 결국은 의료 공급자의 수입만 올리고 국민혜택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며 “풀뿌리 국민들이 직접 요구하고 나선 만큼 정부나 의료기관도 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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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보험 확대 ‘양극화 심화’, 저소득층에겐 ‘그림의 떡’ (경향, 정유미 기자. 2010-06-09 18:20:15)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8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득수준에 따라 민간 의료보험 가입 비율과 가입한 보험상품이 큰 차이를 보였다. 조사 결과 월소득이 400만~499만원인 계층의 민간 의료보험 가입률은 82.3%에 달한 반면 100만원 이하 계층은 37.1%에 불과했다. 또 월소득 500만원 이상 계층은 월보험료 21만원 이상의 고가상품에 가입한 비율이 31.4%, 300만~399만원 계층은 29.2%에 달했으나 소득 100만원 이하 계층은 6.8%만 고가상품에 가입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는 “민간보험은 고가일수록 보장항목이 많고, 보장수준도 높다”며 “서민들이 주로 드는 한달에 3만~4만원 내는 민간 의료보험은 혜택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민간 의료보험시장이 팽창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이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 중병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국민은 250만여명에 이른다. 전체 국민의 5.3%로 4인가족을 기준으로 보면 국민 4명 중 1명은 중병으로 인한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중병에 걸려 치료를 받으려면 연간 수천만원의 병원비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 흔하다. 선택진료비(특진비), 병실 차액, 초음파, 각종 의약품과 검사비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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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강보험 하나로’에 발빠른 공세 (레디앙, 2010년 06월 10일 (목) 15:43:34 손기영 기자)
발족 전부터 “포퓰리즘” 맹비난…‘제2무상급식’ 의제 차단 의도
 
9일 발족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에 대해 <조선일보> 등 우파 신문들이 발 빠른 공세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발족식 전인 지난 8일 시민회의(준)에 대한 내용을 사회면 주요기사로 다루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를 두고, 그동안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 ‘전면 무상급식’ 의제의 폭발성을 간과하며 기민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우파진영이 이번에는 시민회의(준)가 주장하는 ‘무상의료’ 의제가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 ‘꿈꾸는 복지 내미는 진보 진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와 기업주의 추가 부담 △의료서비스 비용은 저렴하지만 병원 예약이 힘든 유럽의 사례 △대형종합병원 환자 집중 현상 및 ‘과잉 진료’에 따른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을 지적하며, 단순한 이념공세 대신 다양한 사례를 들며 시민회의(준)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개인이 1만1000원씩 매달 추가 부담을 해도 정부는 2조7000억원, 기업은 3조6000억원의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라고 지적한 뒤 “지금도 건보 재정 적자를 메우느라 매년 담뱃값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의 3조원 이상을 빼내 보태고 있는데, 여기에 연간 2조원 이상을 추가로 보태라는 것은 무리”라는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비용은 싸지만 병원 가기가 훨씬 힘든 유럽식 모델로 가려면 환자들의 불편 감수가 전제돼야 한다”라고 밝힌 뒤 “유럽에서 생활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듯 병원 비용은 공짜에 가깝지만 병원 예약하기는 불편한 곳이다. 우리 현실은 외면한 채 유럽의 의료비용만 강조해 왜곡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도 실었다. 조선일보는 “무한 의료서비스가 가져올 도덕적 해이도 문제로 지적된다”라며 “모든 의료 서비스가 건강보험으로 커버될 수 있다면 환자의 종합병원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한 번 입원한 환자들은 퇴원하려 하지 않으며 온갖 검사를 다 받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의료 적체'가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에는 ‘여론·독자’면에서 “진보진영에서 무한의료를 주장하며 12조원의 추가재정이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현행 낮은 수가를 유지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낮은 수가는 의료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고 그 시스템이 붕괴될 경우 추가로 필요한 재정은 12조원이 아니라 120조원일 것”이라는 이동훈 의사의 기고를 싣기도 했다.
 
시민회의(준) 발족과 관련해, <문화일보> 역시 지난 8일 사설을 통해 “‘무상급식’에 이어 각종 포퓰리즘이 봇물 터지듯 하고 있다. 의료복지의 무한 제공 주장은 단적인 사례”라며 “9일 준비위원회가 발족하는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신흥 사이비종교의 신도 유인 문구를 연상케 할 정도”라며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맹비난했다. 문화일보는 “정부나 기업 등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천문학적 소요 경비에 대해서는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유럽권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과도한 의료복지가 주요인임을 알아야 한다”라며 “국민 모두가 의료복지 포퓰리즘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시민회의 준비위원인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보수신문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위험한 운동이 될 수 있다”라며 “전면 무상급식 의제를 통해 보편적 복지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었는데, 사실상 무상의료인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무상급식 의제보다 보편적 복지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 더욱 폭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정책위원은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는 ‘풀뿌리 운동’을 지향하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대중적인 사회운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보수신문들이 발족식이 열리기도 전부터  이 의제가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 같다”라며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전면 무상급식에 이어, 보편적 복지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진보진영의 ‘제2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회의 준비위원인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도 “전면 무상급식이 정치·사회적 논쟁거리로 등장했을 때 보수진영에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별적 복지'가 보편적 복지로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보수신문들이 시민회의(준) 발족 전부터 공세를 펴는 것은, ‘이제는 어설프게 당하지 않겠다’라는 보수진영의 의사 표현”이라며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보편적 복지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에는 이념공세 대신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나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2010. 6. 12

'건강보험 하나로' 관련기사를 보면서 이를 무조건 문제가 있다고 볼 것이 아니라 추진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성취하려는 목표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따져봤을 때 다른 방식의 문제제기나 대안 운동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조선, 문화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고 있다지만, 의협신문, 데일리메디 등 의료 관련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음도 간과해선 안된다. 건정심(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커다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의료계를 대변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보수언론과는 또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할까. 이 운동을 건정심에서 가입자로서 사용자 쪽과 연대해왔던 것에서 벗어난다면, 앞으로는 공급자인 의료계 쪽과 연대하겠다는 것으로 봐도 될까. 그리고 민영의료보험사에 타격을 주지 않고서는 '건강보험 하나로'운동이 성공할 수는 없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민영의료보험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고용문제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고...

  

건강보험료 11,000원을 더 낸다는 '건강보험 하나로'운동보다는 민중의 돈에 기생하여 수익을 챙기는 민영의료보험사들의 수익이 어떠한지를 폭로하고 그것은 모두 민중들의 피땀으로 쌓여진 것이기에 이들을 사회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좀더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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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복지' 내미는 진보 진영 (조선, 이인열 김경화 기자, 2010.06.08 03:07)
"전면 무상급식" 이어 이번엔 "의료 무한 서비스"
진보측 주장… "1인당 건강보험료 月 1만1000원 더 내면 병원비 걱정 사라져"
정부측 반론… "정부·기업 추가부담 전제 유럽식만 강조한 포퓰리즘 환자 몰려 진료받기 힘들어"
 
의료 무한 서비스가 가능해지려면 개인의 추가 부담과 별도로 6조3000억원에 이르는 정부와 기업(사업장)의 추가 부담이 전제로 돼야 하며, 의료계가 반대하는 총액계약제 도입이나 현행 의료전달체계의 전면 개편 등이 해결돼야 가능한 문제다. 특히 비용은 싸지만 병원 가기가 훨씬 힘든 유럽식 모델로 가려면 환자들의 불편 감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과 무한 서비스 제공에 따른 일부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책도 없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듯 병원 비용은 공짜에 가깝지만 병원 예약하기는 엄청나게 불편한 곳"이라며 "1시간 이내에 어떤 병원이든 예약 없이 찾아갈 정도로 편리한 우리 현실은 외면한 채 유럽의 의료비용만 강조해 왜곡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추가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재정 부담은 세금으로 바로 이어지는 문제인데, 현재 2만7000원대인 1인당 건보부담금을 40% 이상 높이는 데 국민들의 동의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도 건보 재정의 적자를 메우느라 매년 담뱃값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의 3조원 이상을 빼내 보태고 있는데, 여기에 연간 2조원 이상을 추가로 보태라는 것은 무리"라며 "장기적인 아젠다를 정치적 구호처럼 만들어 주장하고 나선 셈"이라고 주장했다.
 
시민회의 이진석 교수(서울대 의대)는 "부작용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문제이고 지금 당장 논의하기엔 지나치게 세부적인 사안"이라고 한발 비켜나갔다. 이 교수는 "건보 재정 건전화를 요구하면서도 재정 부담은 정부나 기업 탓으로만 돌리던 상황에서 이번엔 국민 개인 부담부터 촉구하고 나선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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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만1000원의 기적, 꼭 믿고 싶은 이유 (오마이뉴스, 10.06.09 14:10  김혜원 (happy4))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은 지난 1년간 국민건강보험료를 훨씬 웃도는 비용의 민영의료보험료를 납부했다. 이미 불입하고 있던 다른 보험을 포함하면 전체 생활비의 20%를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대부분 재무전문가들이 생활비 대비 보험료 비율의 적정선을 10%~ 12%정도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에 비해도 과다하게 많은 보험료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생활에 무리가 되면서까지 꼭 해야 하나?'하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보험을 포기 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만에 하나라도, 아니 천만분의 일이라도 우려했던 일이 생겼을 때 국민건강보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살펴보아도 민영의료보험 한 두 개 가입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건강보험이 국민의 기대의료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민영의료보험 가입을 통해 안전장치를 해놓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6월 7일 이런 고민을 한방에 시원하게 날려 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민건강보험료를 소폭 올려 '모든'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으로 시민들이 결성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범국민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민회의측은 범국민운동을 '1만1000원의 기적'으로 명명하고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1인당 월 평균 1만1000원 올린다면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과 기업들을 통해 재정이 확충되고 나면 선택 진료비·자기공명영상(MRI) 등 본인 부담의 60%를 차지하는 각종 검사료는 물론 간병비와 의약품·노인 틀니까지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연간 100만 원이 넘는 본인 부담금은 건강보험이 대신 내주도록 해서 의료비로 인한 가계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억지 춘향격으로 민영의료보험에 들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는 상상만으로도 복음과 같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이런 파격적인 대안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어 제도로 정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낸 보험료가 민영의료보험회사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되는지, 국민들에게 의료혜택을 골고루 나누어주는데 사용되는지를 따져본다면 기왕에 추가로 지출되던 의료보험료를 국민의료보험에 추가한다고 해도 특별히 불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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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민건강보험만으로 병원비 걱정을 없애자” (경향, 2010-06-07 22:51:18)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이 공적 의료보장제도로서 어느 정도 평가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크게 처진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8년 기준으로 62% 수준인 데 비해 OECD 회원국은 평균 90%를 웃돈다.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으로 질병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건강보험의 혜택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병원비 부담으로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같은 국민의 불안은 보험료가 비싼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급팽창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작년의 경우 국민 1인당 월평균 국민건강보험료는 3만원 남짓했으나 민간의료보험 가입자가 부담하는 민간보험료는 12만원, 연간 민간보험료는 총 12조원이나 됐다고 한다.
 
정부는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은 국민의 병원비 부담과 의료 불안을 키우는 한편, 민간보험사의 배만 부르게 할 뿐이다. 게다가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민간의료보험은 들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먼저 1인당 보험료를 월평균 1만1000원(가구당 2만8000원) 더 내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이번 시민운동은 발상이 새로울 뿐 아니라 설득력도 있다고 하겠다.
 
국민건강보험은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지만 혜택은 똑같이 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어제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다는 자료도 나왔다. 국민건강보험이 그만큼 사회연대적이라는 얘기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동의 성공은 건강보험 제도의 사회연대성 강화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확산에 달려 있다. 기존 단체 중심의 연대기구가 아니라 풀뿌리 시민회원들이 중심이 되는 운동으로 벌여나간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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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무상의료'를 두려워하는 까닭 (프레시안,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0-06-11 오후 3:31:02)
[오건호 칼럼] "10년 전 잘못을 반성합니다"
 
건강보험료는, 국회에서 국민연금법에 의해 정해지는 연금보험료와 달리, 최저임금처럼 사회적 교섭기구에 의해 결정된다. 매년 11월 가입자, 공급자, 공익위원 등 3자 대표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모여 다음해 보험료, 보장급여 범위, 의료수가 등 건강보험에 관한 모든 것을 투표로 정한다.
 
당시 민주노총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고 있었던 나는 직장가입자 몫으로 민주노총에게 부여된 교섭위원 역할을 수행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경총, 음식업중앙회 등 가입자대표 8명, 의사협회, 병원협회, 제약협회, 약사회 등 공급자 대표 8명, 정부가 임명한 공익대표 8명, 그리고 위원장(보건복지부차관), 이렇게 25명이 테이블에 앉아 공방을 벌인다. 노사가 교섭을 벌이듯이, 가끔 고성도 오가고 정회도 한다.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입자 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은 보험료 인상 반대였다. 서민가계 부담을 지우는 보험료 인상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월급명세서에서 건강보험료 공제액을 볼 때 마다 화가 치밀어 온다는 조합원들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자본의 들러리기구라 판단해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참여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노사가 한 몸이었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에게 경총 교섭위원이 다가와 따뜻한 연대의 말을 전한다. "어찌 그리 말씀을 잘 하십니까. 우리 꼭 보험료 인상 막읍시다…." 나는 서민과 조합원을 위해 열심히 교섭을 벌였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사용자대표로부터 칭찬을 듣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민주노총 교섭위원으로서 당시 내 판단의 가장 큰 근거는 조합원의 보험료 부담이었다. 가능한 월급명세서에서 건강보험료 공제액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건강보험의 재정은 가입자의 보험료와 정부의 지원금(보험료 총액의 20퍼센트)으로 구성된다. 가입자 보험료, 사용자 책임 분, 국고지원액 모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해지는 보험료 결정과 직결되어 있다. 그 곳에서 난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 노력의 성과(?)로 보험료는 고령화, 중증질환 확대 등에 따른 증가분을 쫓아갈 만큼씩만 올랐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계속 60퍼센트 수준에 머물러야 했고, 서민들은 무거운 본인부담금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건강보험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연대제도이다. 건강보험에서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정율로 부과되지만('능력에 따라'), 급여는 가입자에게 아픈 만큼 동일하게 지급된다('필요에 따라'). 최근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최하위계층 5퍼센트의 보험료 대비 급여 혜택은 7배에 이르지만, 최상위계층 5퍼센트의 경우는 0.7배이다. 현재 우리들은 아프기 전에는 보험료로, 아픈 후에는 본인부담금으로 두 차례 병원비를 지출한다. 어차피 우리가 내야 할 돈이라면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보험료는 늘리고 지급능력을 무시하고 부과되는 본인부담금은 최소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는 7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정식으로 출범한다. 우리가 먼저 보험료 인상을 주도해 기업 책임 몫과 정부 지원금을 끌어내자는 운동이다. 1인당 1만 1000원만 더 내면 병원비 보장성을 90퍼센트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 진료 성격을 지닌 비급여를 모두 급여로 전환하고 어떠한 경우도 환자 1인당 본인부담금이 연 1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이미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상당한 지면과 사설을 통해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예상했던 대응이다. 이 운동이 지향하듯이 풀뿌리운동으로 확산될 경우 정부, 기업, 민간보험회사들은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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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라 (한겨레21 2010.06.11 제814호, 조혜정 기자)
[초점] 1인당 한 달 1만원 더 내면 기업·정부 부담금 합쳐 12조원 추가 확보…
MRI·틀니 등 적용 대상 확대, 민간 보험 필요 없어져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3.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를 끌어올리려면 당연히 돈이 든다. 올해 건보공단 재정 36조2천억원을 기준으로 할 때, 건강보험 적용률을 OECD 회원국 평균치까지 확대하려면 12조4천억원이 더 필요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건보료를 올리면 된다. 건보 재정은 △직장 가입자 △기업 △지역 가입자 등이 내는 건보료와 정부 지원금으로 구성된다. 직장·지역 가입자는 소득의 5.33%를 건보료로 내고, 기업은 임직원이 내는 건보료 총액만큼을 부담한다. 정부는 이 세 건보료 총액의 20%를 지원금으로 건보공단에 준다. 직장·지역 가입자의 건보료를 올리면, 기업과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건보 재정도 덩달아 올라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건보료 인상 주장의 ‘비밀’이 숨어 있다.
 
건보료를 소득의 7.13%로 올리면 가입자가 내는 돈은 6조2천억원 더 늘어난다. 이 가운데 직장 가입자가 약 58%(3조6천억원)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기업도 3조6천억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국고지원금은 2조7천억원 더 늘어난다. 전체 건보 재정 12조5천억원이 추가로 확보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적용률을 80%대 중반까지 대폭 확대할 수 있다. △MRI·초음파·선택진료비 등 주요 비급여 항목 △간병인 서비스 △노인 틀니·치석 제거 등까지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고, 기존 급여 항목에서도 본인 부담률을 대폭 낮출 수 있다. 또한 연간 의료비 본인 부담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100만원을 초과하는 비용은 모두 건강보험이 부담할 수 있게 된다. ‘꿈’처럼 들리지만 실은 OECD 국가의 평균적인 의료보장 수준을 우리 국민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누리기 위해 개인이 매달 더 내야 하는 건보료는 평균 1만1천원에 불과하다.
 
물론 그 돈도 벅찰 수 있다. 시민회의 준비위원회는 최하위 소득 5%의 건보료를 전액 면제하고, 하위 소득 구간 5~15%에 해당하는 사람에겐 정부가 건보료를 대출해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15%는 상대 빈곤층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빈곤층 비율과 같다. 현재 최하위 3%에 그치는 건보료 지원 대상을 빈곤층 전체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준비위원회는 건보료 면제에 필요한 3500억원, 대출에 드는 1조7100억원은 추가로 확보한 건보 재정 12조5천억원으로 충당하면 된다고 본다.
 
평소 병원에 잘 가지 않기 때문에 건보료를 더 내더라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되면 별도의 민간 의료보험에 굳이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가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보험소비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개인별로는 성인의 69.8%, 가구별로는 전체 가구의 81.4%가 민간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온다. 2008년 1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국민건강보험과 개인의료보험의 역할에 관한 연구’는 민간 보험 가입자가 내는 월평균 보험료가 10만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당시 기준으로 1인당 월평균 건보료 3만2천원의 세 배가 넘는 액수다. 건보료보다 많은 돈을 내지만, 민간 보험에서 전체 가입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혜택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총 보험료의 70%대 중반 수준이다. 쉽게 말해 국민건강보험에 100원을 내면 기업과 정부 부담을 포함해 240원이 되지만, 민간 보험에 같은 돈을 내면 75원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다수 국민이 언제 큰 병에 걸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민간 보험에 들고 있지만, 실은 자신이 낸 보험료도 다 되돌려받지 못한 채 보험사의 영리 추구 활동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시민회의는 6월9일 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뒤 시민 발기인 1천여 명을 모집해 7월14일 본격적으로 시민회의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후엔 온·오프라인 광고, 언론 홍보, 시민설명회, 제주 올레 걷기 등을 통해 시민회의를 알리는 한편, 회원을 모집해 서명을 받는다. 시민이 주도하는 풀뿌리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내년도 건강보험료율 등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전달한다. 올해 당장 이런 요구가 수용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시민회의는 이 운동을 ‘될 때까지’ 계속한다는 각오다. 경우에 따라선 2012년 대선에 나서는 이들에게 공약으로 요구해 더 큰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시민회의 준비위원회 공동 집행위원장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능력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혜택을 누리는 것”이라며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의료 분야에서 이 보편적 복지를 완성해보자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시민이 주체가 돼 ‘돈 낼 테니 복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이 운동이 성공하면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다. 보육, 교육, 노후소득, 주거 등 서민·중산층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양극화 시대의 ‘불안’을 보편적 복지로 해소하자는 시민정치운동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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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0 22:07 2010/06/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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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0돌, 김 수영 - 어느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4월 그 가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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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몇 십주기를 이루는 해인 만큼 기억하고 되새길 것들이 많다. 예전에는 달력투쟁이라 불리는 행사들을 꼬박꼬박 진행했는데, 그냥 평범한 사회인이 되다 보니 무슨 계기가 있지 않으면 챙기기 어렵다.

 

4.19 혁명 50돌도 그러했다. 스크랩해 놓은 기사들을 살펴보니 4.19 혁명을 다룬 기사들도 보였는데, 이에 대해 별다른 말도 하지 않은 채 50여일이 지났다. 4.19는 이제 더이상 우리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생각난 김에 관련기사를 발췌해서 담아오고, 생각나는 시 하나와 노래 하나를 옮겨온다. 시는 김수영의 '어느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이다. 5년 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옮겨놓았었는데, 기억이 새롭다. 노래는 학부 때, 그러니까 벌써 20여년 전에 4.19 때면 불렀던 '4월 그 가슴위로'이다.

 
김 수영 - 어느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교과서 상식
이 시는 김수영이 1965년 11월 어느 날 고궁 나들이를 다녀오고 나서 쓴 작품이다. 1연 첫행의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시적 진술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역사와 현실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는 저항하거나 비판하지 못하고 일상의 사소한 일에만 화를 내는 자신의 소시민적인 태도에 대해 자기 비판하고 있다. 4.19 혁명으로 한층 부풀었던 자유와 사랑과 양심에의 희망이 5.16 군사 구테타로 일순간에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김수영은 소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일만이 가능한 자신의 처지를 조롱함으로써 한 때 그가 소리 높여 외쳤던 자유, 사랑, 혁명이 좌절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과거 우리의 뼈아픈 역사와 당대 현실을 시의 대상으로 삼아 발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 '폭포', '풀' 등과 함께 김수영 시의 시사적 의미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2005년 4월의 개인적 소회
나는 왜 일상에서의 모순을 사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태도가 부족한 것은 단지 존재 자체의 문제만은 아닐텐데... 소심하고 민감하다는 것은 말뿐이었는가.
 
나에게는 왜 거시적인 것, 커다란 것만 보였던 것일까. 김수영이 스스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한다고 자아비판할 때, 나는 나에게 그런 조그만 것이 어떤 이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처절한 것인지를 간과하였다. 하긴 내 자신도 이해를 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설득을 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지금까지는 내내 부정해와서 인식하지 못했는데, 내가 잘 삐치는 줄 미쳐 몰랐다.  
  

4월 그 가슴 위로
 
이젠 우리 폭정에 견딜 수 없어
자유의 그리움으로 분노를 뱉는다.
아 총탄에 뚫린 사월 그 가슴위로
넋 되어 허공에 흐르는 아 자유여 만세

이젠 하나 될 마음 견딜 수 없어
두 쪽 난 조국의 운명 입술을 깨문다.
아 총탄에 뚫린 사월 그 가슴위로
뜨거운 가슴으로 일렁이는 통일의 염원이여

이젠 우리 독재의 사슬을 끊고
민주의 행진으로 발 내딛는다
아 총탄에 뚫린 사월 그 가슴위로
피맺혀 강물로 흐르는 아 민주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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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연중기획]4·19는 왜 ‘미완의 혁명’이 되었나 (2010 04/13ㅣ위클리경향 870호, 박태균 서울대 교수)
ㆍ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ㆍ한국 현대사 헤게모니는 보수적 부르주아지 세력이 차지

 
4·19는 혁명세력 또는 진보세력과 부르주아지에 기반한 보수세력이 함께한 혁명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부르주아지에 기반한 보수세력이 혁명 과정에서 한 역할은 거의 없었다. 부통령 장면은 4·19 혁명의 와중에 부통령직을 사퇴하고 책임을 회피했다. 진보세력과 대중의 결합에 보수세력을 업었을 뿐이다. 그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 보수세력은 ‘반혁명세력’으로서의 본래 본질을 드러내면서 혁명·진보와 결별하고 오히려 파시스트 세력과 손을 잡았다.
 
4·19 혁명 이후 부르주아지적 보수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주류적 역할을 내준 적은 없었다. 유신체제가 이들에게 시련을 주었을 때 이들은 재야와 손을 잡았고, 심지어 노동운동까지도 도와 주었다. 그러나 민주화 혁명 이후 혁명·진보의 가치가 수면 위로 등장하자 이들은 다시 자본주의 지키기에 나섰다. 그리고 이들에게 강력한 힘을 준 것은 급격한 변화를 꺼려하는 대중의 보수성과 민주주의·자본주의 제도의 탁월함, 이를 지원하는 미국이었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한국 사회의 주류인 부르주아지적 보수들이 건강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건강했던 것은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극우(파시스트)와 극좌(공산주의)의 힘이 너무 강하게 작동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진보·혁명 세력과 건강한 부르주아지 보수세력의 결합은 한국 사회 민주화에 가장 큰 동력이 됐다. 진보·혁명 세력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단 한 번도 이 사회의 헤게모니로서 작동하지 못했다. 일부 진보세력이 정권의 중심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반혁명 보수세력의 헤게모니 안으로 흡수됐다. 우리는 구조조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또 이를 50년 전에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 미국이 장면 정부에 요구한 공공요금 인상, 환율 현실화, 외화유치법 등 사회 개혁 과정에서 경험했다.
 
분명 4·19가 진보와 혁명의 정신 아래 이뤄졌음에도 헤게모니는 보수적 부르주아지 세력이 장악했다. 만약에 조봉암·진보당 같은 강력한 진보·혁명 세력이 있는 상황이었다면 미국이 이승만으로 하여금 하야하도록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이러한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통해 1979년 10·26 이후의 과정,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과정,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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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0주년](上) 지방과 민주주의 (경향, 손제민 기자, 2010-04-14 18:27:22)
ㆍ대구·마산 ‘저항의 도시’에서 ‘보수의 아성’으로
 
“선생님, 질문 있습니데이. 하필 야당 강연회가 있는 일요일에 등교시킨 이유가 뭡니꺼. 거짓말은 하지 마이소. 우리한테는 정의를 말하라고 가르치시면서,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 이율배반 아닙니까. 선생님, 비겁합니더.”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극에 달했던 1960년 2월28일 일요일에 교장 지시로 등교한 대구 경북여고 학생들이 교사에게 던진 질문이다(이창희 안동대 교수). 이어 경북고, 대구고 등 대구의 8개 고교 학생들이 독재정권을 비판하며 거리로 나왔다. 관제데모에 동원되던 고등학생들이 최초로 일으킨 자발적 시위였다.
 
함종호 ‘4·9 인혁재단’ 상임이사는 대구가 보수화된 계기를 1964년과 71년 대구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인혁그룹’ 활동가들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조작사건에서 찾는다. 특히 71년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 23명 중 13명이 대구 출신이며, 사형자 8명 중 5명, 무기수 7명 중 3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대구 사람들에게 권력에 저항하면 성히 살 수 없다는 인상을 깊이 남겼다는 말이다. 박 정권은 또한 4월혁명의 중심인 대구대·청구대를 통합해 영남대를 만들고 그 자신이 주인이 됐으며, 2·28 운동 발원지인 경북고 출신자들을 이른바 TK세력의 중요한 인적 자원으로 삼음으로써 대구의 4월혁명의 중심 근거지들을 무너뜨렸다.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무상급식 논쟁 과정에서 가장 소극적인 곳이 ‘교육도시’ 대구이며, 2010년도 예산에서 학력평가 관련 항목은 대폭 늘린 반면 급식예산은 42%나 삭감된 곳도 이 지역이라는 점(이창희 교수)은 50년 세월이 무엇을 남겼는지 말해준다.
 
지역 민심이 보수냐, 진보냐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에서의 민주주의 자체가 후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인천·경기 지역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70~80% 수준으로 지방정부의 분권은 비교적 이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자치는 잘 되지 않는다는 평가다(정영태 인하대 교수). 당선자가 독단 행정을 하는 ‘위임 민주주의’가 심각하고, 주민들이 재개발 등 중요 사업에 의견을 반영할 길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중요 결정을 앞두고 공청회가 열리지만 ‘이의 없죠?’라고 묻고 통과시키는 형식적 절차에 그친다.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으니 지방의회나 시·도청 앞에 집회·시위가 그칠 날이 없다. 집회·시위가 가능하다는 것이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현 정부 들어선 그런 불만 표출마저 막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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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0년]“유공자이면서 사찰 대상”… 한 맺힌 유족들 (경향, 손제민 기자, 2010-04-14 18:24:45)
ㆍ김주열 열사 모친 집요한 회유·감시
ㆍ유공자 인정 못받은 부상자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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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0주년](中) 50년을 거슬러 만난 4·19와 젊은이 (경향, 손제민 기자, 2010-04-15 17:42:57)
ㆍ“과거엔 젊은이들이 외면할 수 없는 ‘큰 질문’이 있었지”
ㆍ“학벌·승자 독식 시대… 대의보다 ‘먹고사는 문제’ 절실”
 
금메달리스트나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이 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20대는 G세대에 속하지 못해요. 지금 한국사회의 학벌 중심주의, 병적인 경쟁, 승자독식 체제 같은 것들의 모든 책임이 기성세대에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기성세대는 요즘 세대들이 열정 없이 기계적으로 산다고 말하기 전에 왜 취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 입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 한번쯤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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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0주년](下)기억과 유산은 어떻게 전승되나 (경향, 손제민·백승찬·이영경 기자, 2010-04-16 18:00:54)
ㆍ예술작품 속에 잊힌 듯 살아있는 ‘금기를 깨는 정신’
 
역설적으로 예술 작품 속에 부재한 4월혁명에 대한 ‘기억’을 가장 많이 메우는 것은 기념관이다. 서울 수유리 국립 4·19 민주묘지에는 4월혁명 사망자 295위의 위패와 묘가 안장돼 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93년 묘지를 성역화한 뒤 이곳은 대망을 꾸는 이들이 다녀가는 코스가 됐다. 묘지 기념관 다른 층에는 4월혁명 희생자 유서내용도 전시돼 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옵소서.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알고 있습니다.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하세요.”(4월혁명 때 남은 유일한 이 유서는 당시 한성여중 2학년이던 진영숙 열사가 쓴 것이다. 진 열사는 60년 4월19일 밤 서울에서 버스 차창 밖으로 시위 구호를 외치다 경찰 총탄에 맞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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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0주년]“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경향, 글 박주연·사진 김문석 기자, 2010-04-16 18:00:06)
ㆍMBC 특집극 ‘누나의 3월’ 집필 김운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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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4월에 부르는 노래 (한겨레,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0-04-18 오후 08:42:40)
 
암흑천지에서 어린 학생들이 일어나 김수영 시인이 노래했듯이, “전국의 초등학교란 모든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유치원에서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던” 대통령의 사진을 떼어낸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4월혁명은 송건호가 말했듯이 기성세대, 즉 ‘이’(利)의 세대를 부끄럽게 만든 의(義)의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이었다. 4월혁명으로 우리 국민이 얻은 것은 이승만 하야가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독재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으며,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그리고 직접 행동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얻을 수 없다는 엄청난 교훈이었다. 그것은 국가를 진정한 민주국가, 국민의 국가, 인권국가로 만들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이었다. 그래서 4월혁명은 폭력국가, 불법 국가, 친일파 국가, 경찰국가, 속임수 국가를 자유와 민주의 정신이 살아있는 국민의 국가로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4월혁명이 미완의 혁명이라는 말은 ‘창자가 메마른’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나서지 못했다는 말일 것이다. 배고픈 국민들이 매수되기를 거부하고 진압에도 저항하면서 자유의 노래를 합창할 때 4월혁명은 완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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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주주의의 퇴행 속에 맞는 4·19혁명 50돌 (한겨레, 2010-04-18 오후 08:46:34)
 
4·19혁명은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누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음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 민주주의의 본질인 사상·언론·집회의 자유는 물론 삼권분립 등 정치적 민주주의가 철저히 파괴됐다. 이렇게 유린된 민주주의는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외세나 위정자들이 나서서 되찾아주지도 않는다. 젊은 학생과 시민들은 목숨까지 바쳐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럼으로써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향유할 자격이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4·19혁명 50돌을 맞는 오늘, 우리는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에 직면해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된 기득권층과 그 주변 세력이 우리 사회 모든 분야를 장악해가고 있다. 정치영역뿐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민주적 절차는 무시되고 ‘촛불집회’ 등 반대 목소리는 공권력에 의해 철저히 억압받는다. 6월항쟁 이후 자리를 잡아가던 민주주의적 규범과 절차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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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8 12:31 2010/06/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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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베르나르 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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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돈만 숭배하다 자멸할 것인가 (경향, 김재중 기자, 2010-01-08-17:29:08)
ㆍ자본주의 사악한 작동원리 해체…예술·우정 등 삶의 질을 높여라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베르나르 마리스|창비|조홍식 옮김. 1만7000원
 
케인스(1883∼1946)가 프로이트(1856~1939)를 숭배했다니?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사상가이지만 한 사람은 경제학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인데 둘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 있었던가? 혹시 케인스에게 동성애적 취향이 있었기 때문에 성적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접근했던 프로이트와 연관됐던 것은 아닐까? 프랑스 파리8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서문에서 ‘자본주의라는 모험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자멸을 택한 것일까?’라고 묻고 ‘케인스와 슘페터처럼 프로이트에 심취했던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답함으로써 야릇한 날개를 펼치려던 상상을 접게 만든다.
 
그렇다고 독자의 궁금증을 바로 해결해 주진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인간을 노예로 만든 자본주의의 사악한 작동원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뻔뻔함, 인간의 합리성과 완전자율경쟁시장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사기성을 철학적 해학으로 가득찬 현란한 문제로 헤집으며 뜸을 들인다. 프랑스어 원서가 ‘거꾸로 보는 경제 설명서(Antimanuel d’Economie)’ 정도의 평범한 제목을 달고 있으므로 저자를 탓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케인스는 프로이트의 어떤 점을 숭배했던 것일까. 책에 따르면 케인스는 버지니아 울프 등이 참여한 ‘블룸스버리(Bloomsbury)’라는 예술가·지식인 그룹에 몸담았다. 이 그룹은 프로이트가 내놓은 파격적인 이론에 심취해 있었고 그의 저작을 영어권 국가에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케인스의 저작에서는 ‘콤플렉스’ ‘리비도’ ‘우울’과 같은 프로이트식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
 
프로이트에 대해 “풍부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놀랍고도 확고부동한 가설을 제시했다”고 극찬한 케인스. 우리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케인스가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얘기를 자주 접한다. 케인스주의자를 자처하는 폴 크루그먼이 노벨 경제학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만능주의’와 ‘합리적 인간’이라는 주술을 반복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여전히 경제학계를 주름잡고 있다. 인간 행동은 ‘야성적 충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 케인스는 그들에게 적이다.
 
케인스는 ‘좋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쌓아두기 위한 대상으로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구역질 나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혐오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먹고 사는 사람 가운데 이 병에 걸려 있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숭배하는가? 다시 말해 먹고 살 만큼 돈이 있는 사람조차도 돈에 대한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가?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라는 책에서 동식물이나 물건에 대한 숭배는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을 부정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바로 죽음이다. 케인스는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멸의 환상을 심어준 것이 바로 돈이라는 통찰을 프로이트로부터 건져 올렸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사악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스스로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불안의 정신(경제)분석학’은 이자율에 대한 설명으로도 이어진다. 이자율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일 뿐더러 일반인들의 경제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이자율의 변동은 저축·투자·투기심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자율이 미래의 소비나 쾌락을 포기하는 대가라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공포나 집단적 불확실성에 대한 가격에 다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심대한 견해차를 내포한다. ‘인간의 이성 바로 아래에 두려움과 광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케인스의 설명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자유주의 경제학 최고의 가정을 송두리째 깨부수기 때문이다.
 
저자가 케인스와 프로이트를 중심축으로 펼쳐보이려 한 것은 자본주의와 인류의 음울한 미래다.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면 자본주의는 죽음과 파괴에 대한 본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체감하고 있는 환경 대재앙과 인간성 파괴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현금을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는 인류의 모습은 이러한 염세적 전망을 귓등으로 흘려버릴 수 없게 만든다.
 
탈출구는 없는가. 케인스는 무의미하고 침울한 축적에 대한 해결책은 미적인 것, 즉 예술·아름다움·우정·포도주와 같은 삶의 질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역시 경제학이 풀어야 하는 것은 복잡한 수학공식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초래한 인간의 불행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기술적 진보가 인류의 영생을 보장할 것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성장이 아닌 절약,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경제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탈출구 치고는 순진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재앙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구나 현대의 최첨단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금융위기와 함께 악마적 심연을 드러내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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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똥덩어리 (한겨레21 2010.01.15 제794호, 구둘래 기자)
[출판] 죽음과 항문기가 등장하는 반자본주의 에세이,
베르나르 마리스의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인간은 사실 서른 살이 넘으면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최선은 적당한 시기에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괴테) “삶의 유용함은 그 길이가 아니라 용도에 있다. 즉 요절한 사람이 외려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몽테뉴)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창비 펴냄)를 지은 베르나르 마리스는 프랑스 파리8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다. 그가 지은 이 책은 경제서다. 그런데 ‘시간과 죽음’이 책의 맨 처음에 등장한다. 어떻게 경제는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인간이 평균적으로 지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명은 자본주의의 승리의 지표처럼 보인다. 기대수명의 상승은 1살 미만 영아사망률의 급격한 감소 덕분이다. 어린아이들이 더 이상 죽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된 사람들은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이상한 제안 속으로 녹아들어간 결과다. 그렇게 하여 얻어걸린 것이 긴 수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이는 파우스트적인 계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위 죽음에 대한 승리와 자신의 노동 및 공포를 맞바꾼 것이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삶이 피곤하고 즐거움은 적고 고통이 가득하여 죽음이 오히려 구원으로 여겨진다면 긴 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음은 ‘질병’으로 치환되었고, 연장된 7.5년의 시간은 질병에 시달리며 죽음과 결전을 치르는 오만한 시간이 되었다.
 
저자가 경제라는 2차원 평면에 시간이라는 3차원 축을 하나 더해 얻어낸 것은 입체적 인간의 삶이다. 저자는 입체적으로 또박또박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반박을 해나간다. 예를 들면 특허권이라는 문제가 있다. 의약품의 특허권을 거대 자본이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그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죽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저작권도 비슷하다. 특허권과 저작권은 ‘지적재산권’으로 묶인다. “아이디어는 특허를 받을 수 없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만이 특허가 가능하다”라는 논리에 따라 특허권에서 밀려난 아이디어를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저작권이다. 버터 자르는 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수준에서는 특허가 되지 않는데, 이 아이디어를 글로 적어놓고는 자본의 힘을 빌려 보호하는 것이 저작권이다.
 
저작권이 자본주의 시스템 내로 들어가자, 저작자마저도 권리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생겨난다. 노벨의학상 수상자 해럴드 바머스가 논문 출판 6개월 뒤 온라인에 자료를 공개하라고 출판사에 요구하자 출판사는 거절했다. ‘도서관 죽돌이’로 지내는 학자들은 학술지에 거의 무상으로 논문을 제공하고, 이 논문은 학술지로 묶여 도서관만 살 수 있는 비싼 가격에 팔린다. 2000년 프랑스에서 출판사들은 도서관이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책 대여세를 물리려 했다. 공공재에 ‘소유권’을 부여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로서는 더 눈이 벌게서 새로운 ‘권리’를 찾아헤맬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운명이다.
 
경제학에서 출발해 인간의 삶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책 제목의 ‘케인즈와 프로이트’ 결합에서 분명해진다. 1920년대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준비하던 시기, 프로이트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그의 책에는 콤플렉스, 리비도, 우울 같은 프로이트 용어가 가득하다. 프로이트의 돈에 대한 성찰은 케인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면, 금과 화폐는 모두 ‘항문적’(발음대로 쓴 것 아님)이다. 비약하자면 자본주의 경제학은 학문이 아니라 항문이다. 여기 다시 죽음도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물신이란 삶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인 죽음까지도 부정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죽는 것도 모르고 똥물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가련한 자본주의 시민에게는 어떤 구제가 있는 것일까.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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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8 01:30 2010/06/08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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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대한건아 / 좌경학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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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앞두고 범국민적인 축구 분위기 띄우기가 장난 아니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으니 대략 이해는 간다만, 많이 심하다. 붉은 악마가 봉은사에서 거리응원을 한다고 하자 이에 대한 관련기사가 쏟아지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나마 SBS만 중계를 한다니 채널선택권이 보장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오 필승 코리아'나 'Go West' 개사곡이 흘러나온다. 월드컵을 맞아 신곡을 발표하는 이들도 있고, 이런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가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가버렸다. 귀에 익숙한 걸 어쩌랴.

 

그럼 2002년 월드컵 이전에는 어떠했을까. 그 때는 딱히 틀어줄 만한 노래가 없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누군가 메달을 따는 장면이 나올 때나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이기자 대한건아'라는 노래가 나왔다. 특히 70년대 아시아/아프리카의 축구약체국 국가대표팀들을 불러다가 매년 치루었던 박스컵(박통이 죽기 이전에 그의 이름으로 개최되던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를 그렇게 불렀다) 이 열려서 축구경기를 중계해줄 때는 정말 주구장창 흘러나왔다. 30대 이상이라면 이 노래의 가사를 잘 모를지라도 그 리듬만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래 노래는 박현빈이 부른 것이다. 후반부에 빠라빠빠라는 노래가 이어서 나오기 때문에 좀 그렇긴 하지만, 분위기 전달은 훌륭하다.

 

이기자 대한건아

 
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
기른 힘과 닦은 기술 최후까지 떨쳐보세
조국의 영광안고 온 세계 내닺는다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빛내자 빛을 내자 대한의 형제들
 
몸과 맘을 한데 뭉쳐 정정당당 싸워보세
돌진하는 우리용사 당할자가 그 누구냐
개선의 태극기가 하늘 높이 휘날린다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빛내자 빛을 내자 대한의 형제들

 

물론 이 노래를 얘기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이기자 대한건아'를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80년대 운동권들, 당연히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를 하여 '좌경학생가'를 만들어 냈다. 특히 88서울올림픽 전후로 선배들이 자주 불러서 지금도 이 노가바한 가사가 떠오르곤 한다. 가사가 맞나 모르겠다. 트위터에서 봄날의 곰님이 이 노래를 언급하시기에 생각나서 그냥 적어봤다.

 

좌경학생가
 
우리들은 좌경학생 / 좌장면 먹고 좌전거 타고
남가좌동 북가좌동 / 좌석버스 타고 달려보세
길을 갈 땐 왼쪽으로 / 화장실 노크도 왼손으로
나가좌(좌좌!!) 싸우좌(좌좌!!) 싸워야 한다
세우좌(좌좌) 건설하좌 민족자주민주정부

 

가사 말미에도 나오지만 잘 나가다가 진지해지는... 물론 아예 고려*******으로 바꿔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80년대의 낭만적 운동의 한 모습이다. 물론 이런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데, 지금 그런 공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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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8 01:10 2010/06/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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