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일상화하는 외환위기 불안 - 경향 09.12.08

  • 내년 경제 전망이 대체로 장밋빛이다. 대부분 경제연구기관이 4~5% 성장률을 점친다. 사업이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 같다는 사람은 없지만 여러 경기지표가 빠른 회복세를 진단한다. 지난주 발표된 3·4분기 성장률도 3.2%로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

    일주일 전 기업인 몇 명과 자리를 같이 했는데 이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데는 별 이의를 달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불안하다”고 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저승 문턱’까지 갔다왔는데 문제는 앞으로도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 것 같아 걱정이라는 얘기였다. 어떤 이는 “2~3년에 한 번씩 (크고 작은 외환위기가) 온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선 지난해 금융위기 때 우리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상황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했다. 리먼 사태 이후 환율 폭등, 주가 폭락은 각오했지만 97년과 마찬가지로 은행이 외화차입 만기 연장을 못해 쩔쩔매고 종국에는 국가적인 외화유동성 부족에 직면하게 된 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제2의 외환위기는 없다”고 큰소리 쳤는데 막상 쓰나미가 몰려오니 방파제는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97년에 거의 바닥이던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가을 2400억달러까지 확충됐고, 은행 건전성도 1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외화유동성 부족 사태에 이른 점에서는 97년 외환위기나 지난해 금융위기나 마찬가지였다. 위기 탈출의 구세주가 9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었고, 지난해는 미국 중앙은행(300억달러 통화스와프 협정)이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장밋빛 전망뒤 불안한 그림자

    실제로 외화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커졌다. 금융위기 이후 짧은 시간에 국내 금융시장에 달러가 급속히 밀려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 509억달러 적자(유출 초과)였던 자본수지가 올 1~10월 249억달러 흑자(유입 초과)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달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바람에 바닥으로 추락했던 롤러코스터가 눈깜짝할 사이에 꼭대기로 치솟은 상태다. 올들어 코스피시장 순매수가 30조원, 채권 순매수가 50조원에 육박하는 등 외국인 주식 투자와 채권 투자가 급증한 것이 주요인이다. 세계 금융시장에 다시 위기가 발생하면 갑작스러운 달러 유출로 롤러코스터가 다시 하향질주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더구나 이들 달러는 환차익과 국내외 금리차를 겨냥한 투기성 단기자금일 확률이 크다.

    세계 어느 구석에서 언제 위기의 폭탄이 터질지는 알 수 없는데, 일단 터졌다 하면 우리와 무관한 폭탄일지라도 파편은 반드시 튀게 돼 있다. 자본시장이 활짝 열려 있는 탓이다. 지난달 두바이의 채무지불유예 선언 이후 며칠간 바짝 긴장했던 이유도 두바이 사태가 ‘세계 금융시장 경색-급격한 외화 유출’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채무지불유예 선언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20.2원 폭등했다. 원·달러 환율이 10원만 움직여도 100대 기업은 연매출이 371억원(대한상의 조사), 30대 그룹은 분기 매출이 8000억원(전경련 조사) 왔다갔다 하는 게 우리 기업의 구조다. 그런데 환율이 지난해 초 달러당 900원대 초에서 올 3월 초에는 1600원에 육박했다가 요즘엔 115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으니 기업은 현기증이 난다.

    “정부 없는 셈 치고 기업 한다”

    다시 올 위기가 환율 폭등이나 주가 폭락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외화유동성 위기로 급진전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최근 대부분 신흥국이 급격한 외화유출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고민 중이다. 브라질이 과세 카드까지 빼든 것에 비하면 이 문제에 대한 우리 금융당국의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 섣불리 규제했다 외화유출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시장만능주의·개방주의에 엇나가는 것이 될까 총대 메기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어 보인다.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뭔가 해결책이 나와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은 무책임한 인상마저 준다. 그러니 기업인들이 “정부 없는 셈치고 기업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