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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보다 더 중요한 가치도 있다 - 경향 091208

<고요한 돈강>이란 작품으로 196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의 유명한 중편소설에 <인간의 운명>(1957)이 있다. 영화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곧바로 주연까지 맡아 1959년에 영화로도 발표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작이다. 줄거리만 보자면 한 사내의 쓰라린 운명을 들려주는 작품이다.

1900년생인 주인공 안드레이 소콜로프는 러시아혁명과 내전을 겪었지만 나름대로 평범한 삶을 살던 중년의 가장이었다. 부모와 누이가 1922년의 대기근 때 굶어죽는 바람에 외톨이 신세가 됐어도 고아원에서 자란 아내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숙취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 아침에는 잔소리 대신 절인 오이 안주에 보드카 한 잔 따라주는 아내였다. 그러던 차에 2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눈물로 밤을 지새운 아내와 자녀들을 남겨두고 소콜로프는 전선으로 향한다.

기차역에서 아내는 반쯤 실성한 상태로 그들이 다신 만나지 못할 거라고 말하고 소콜로프는 부아를 내지만, 사실 일은 아내의 불길한 예감대로 진행된다. 트럭 운전사로 배치된 소콜로프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아들을 제외한 아내와 두 딸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폭사한다. 그들의 오두막집이 비행기 공장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영문도 모른 채 가족들과의 재회만을 꿈꾸며 소콜로프는 불굴의 의지로 혹독한 포로생활을 버텨낸다. 어떤 생활인가? 호송 중 교회에서 머물게 됐을 때 용변을 밖에서 보게 해달라고 애원한 포로가 경고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즉각 난사당하는 생활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성전을 더럽힐 수 없다는 한 신실한 정교도의 믿음이 ‘문화’라면, 그를 둘러싼 ‘세상’은 최소한의 문화도, 인간적 품위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그런 세상에서도 문화적 삶은 가능할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인간 이하의 포로 생활을 전전하던 소콜로프도 포로들의 과중한 노동량에 불평을 터뜨렸다가 결국은 수용소 소장에게 불려간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만 두려움을 내비치진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권총을 만지작거리던 소장은 그를 직접 사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독한 술 한 잔과 비계를 얹은 빵 한 조각을 안주로 건넨다. 하지만 ‘독일군의 승리를 위해’ 건배하라는 제안에 소콜로프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거절한다. 소장은 ‘너 자신의 죽음을 위해’ 마시라고 다시 제안하고 소콜로프는 단숨에 술을 들이켠다. 하지만 안주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첫 잔을 비운 후엔 안주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장은 둘째 잔도 따라주지만, 소콜로프는 둘째 잔을 비운 후에도 안주에는 손대지 않았다. 둘째 잔 후에도 안주를 먹지 않는 것이 그의 규칙이었다. 그는 셋째 잔을 비우고 나서야 빵 한 조각을 조금 베어 물 뿐이었다. 굶어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러시아인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켰다. 처음엔 씨근덕거리던 독일군 소장도 그런 소콜로프를 보고서는 용감한 군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목숨을 살려준 건 물론이고 빵 한 조각과 비계 덩어리까지 손에 쥐어주었다.

문화란 무엇인가? 소콜로프의 경우에 기대어 말한다면, 아무리 비참한 조건 하에서라도 처음 두 잔까지는 안주를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런 고집으로써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생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잔혹한 인간의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기구하고도 슬픈 소콜로프의 뒷얘기가 궁금하신가? 안주로 남겨 놓는다.

 

<이현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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