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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에세이]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진다는 것

 김현진 | 에세이스트 neopsyche@gmail.com

 

 
스물 아홉번째 생일이 지난 후 아이고 이제 장사 접을 때도 됐네, 하고 중얼거렸다. 열몇 살부터 글 팔아먹으면서 어느새 십년이 훌쩍 넘었으니, 강산은 변했는데 별로 나아진 게 없어 초조했다. 칼럼니스트, 에세이스트랍시고 글 팔아먹던 제일 큰 자본이 이십대, 삐딱, 발랄, 뭐 그런 거였던 것 같은데 밑천 다 떨어졌으니 이제 장사 끊길 수밖에. 그도 그렇고 이것저것 못살겠다 갈아보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할 수만 있다면 링거를 꽂아 맞고 싶을 만큼 사랑했던 술을 끊고 어느새 반 년이 넘었다. 그렇게 맨정신으로 서른을 몇 달 남겨두니 철 든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은 건 있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철 같은 것 평생 못들 줄 알았더니 1g 정도는 들었구나 싶은 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죄다 없어졌다. 예전에 화도 나고 울기도 하고 성질도 내고 남 욕하고 했을 때 그 이유는 팔할이 도대체 저 사람 왜 저러나, 하는 의문이었는데 그게 녹아 없어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아 저 사람은 저러고 싶나보다, 하는 체념이랄까 너그러움이랄까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뭐 그런거였다. 저러고 싶나보다. 그래, 쟤는 저러고 싶으면 저럴 권리가 있지. 그런가보다. 생전 해 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무감해진 건 아니고 그냥 다 안쓰러워졌다. 사람들이 다 애절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무도 없으니까.

생활을 온전히 꾸려나갈 수 있을 만한 잘난 글을 쓰지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지만 그래도 생계는 꾸려야겠고, 하루에 열두 시간씩 비정규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육체노동 더하기 감정노동이었다. 별 기술 없는 여자가, 어디에서나 그렇겠지만, 감정노동을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사실 술 장사가 제일 구하기 쉬운 일이었지만 알코올 중독 주제에 술집에서 일하는 건 기름 옆에 불 두는 격이니 제외, 그러니 더욱 할 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일하고 해 지면 집에 돌아와서 지쳐 잠드는 건전한 삶을 찾고 싶은 마음이 열렬한 나머지 결국 집 앞 전봇대에 붙어 있던 구인광고를 보고 녹즙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다.

배달하는 일이라기에 술 끊은 다음 기운은 차고 넘쳤으므로 신나서 시작했더니 웬걸, 이 일의 팔할은 영업이었다. 보통 주부사원들이 하는 일이라 아가씨가 오래 일을 할까, 반신반의하던 지사장님은 오래 하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 밝은 얼굴로 “그래, 남들은 하찮게 여기지만 열심히만 하면 이 일에도 어떤 어드벤처는 분명히 있어!”라고 말했다. 분명히 어드밴티지를 잘못 말씀하신 거겠지, 그럴 거야 하고 생각하면서도 진짜 어드벤처가 있을까봐 덜덜 떨었는데 책상머리에 앉아서 자판만 두드리던 주제에 영업의 세계란 정말로 어드벤처였다.

안 먹어요, 됐어요 됐다니까요, 유독 모질게 쏘아붙이는 사람이 있으면 비상계단에 숨어 질질 짠 적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청승맞게 흘러간 노래를 부르며 녹즙 카트를 끌었다. 괜찮아요, 나도 한때는 누구의 마음 아프게 한 적 많았죠…. 마트 직원이나 보험 영업사원이나 뭐 사람 상대하는 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아팠다.

23층이나 되는 건물을 매일 아침 돌면서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는 사람들이 전부 정말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 두번째는 글자 같은 것 사실 아무도 안 본다는 것. 한국 독서율이 낮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밤늦도록 일하고 휴일에도 출근하고 다들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야 누가 글자 나부랭이 읽고 있을 시간이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책을 안 봐, 하고 지껄이던 입이 부끄러웠다. 다 너처럼 시간이 많은 줄 아냐,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누가 읽어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절절하게 느꼈다.

입에서 나오는 게 다 말이 아니니 자판 함부로 두드리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면서 점심때 일이 끝나면 바로 다방에 가서 일한다. 물론 쌍화차에 계란을 띄워야 한다거나 착석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주간 커피 야간 맥주, 오후 여섯 시부터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끄고 생맥주를 개시하는 데다 주간 손님 팔할은 보험이나 부동산 계약서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주앉아 있고, 나머지 이할은 마포구 어르신들이니 여기가 다방이 아닐 것도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찡그린 얼굴이었을 것 같은 건물 관리인 아저씨가 첫날부터 트집잡아 잔소리에 신경질을 냈다. 옛날 같으면 오냐 잘 걸렸다, 하고 아저씨 남은 수명을 반으로 줄여 버렸겠지만 맨정신으로 살기로 했으니 그러지 못하고 눈치만 슬슬 봤다. 그러다가 녹즙을 하나 들고 경비실에 찾아갔다.

같이 일하는 아가씨는 ‘그 아저씨, 이거 언니 얼굴에 던지는 거 아니에요’ 하고 염려했다. 큰 용기를 내서 경비실 문 열고 마침 안 계신 틈에 책상 위에 살짝 올려놨더니 좀 있다 빈 잔을 가져온 아저씨는 어제 야 이거 치워, 하고 소리치던 아저씨가 아니라 아가씨 이거 잘 마셨어요, 하고 활짝 웃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다 배울 일이 천지에 있고 주위에 눈만 돌리면 애절한 일투성이라는 것, 일상의 짠함을 요만큼씩 알아가는 게 철드는 일인가 하여, 또 하루 멀어져간다고 세면서도 그게 멀어져가는 게 전처럼 아쉽지 않다. 둘러보면 죄다 짠하게 고마운 일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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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서. 지하철에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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