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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의 기도 [무명용사로 살다]

서른 다섯의 기도

                           무명용사

 




알고 싶은게 한도 끝도 없었다.


그래도 잠깐 쉴 수 있었던 건

무더운 여름날 대청마루에서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워

다 쭈그러져 쭉정이가 되었지만

아버지 팔남매를 키우셔서인가, 그리도 컸던 당신 젖가슴을 찾다가

잠이 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국민학교 오학년 땐가

'넌 커서 무엇이 될꺼니'하는, 그때만 해도 앳되셨던 여선생님의 질문에

친구들이 '과학자요' '의사요' '장군이요' '선생님이요'하는 말들에 눌려

쭈뼛대다가 대답했던 말

--- 전 좋은 아버지가 될 거예요



불알친구들 중에는 참 어렵게 살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이 학교에서 왜 선생님들께 늘 구박만 받는지,

하교길에 들른 판자촌 쪽방에서 그 친구들의 가족들과 다들 모여

머리 맞대고 밥먹으며 생각해 보았다

가난해도 정결한 작은 집들과

그 집에서 가끔은 들을 수 있었던 웃음들도 참 신기했다



국민학교 3학년때 우리동네 개척교회 시멘트 바닥에 스폰지 방석깔고 했던

백일장에서 떨어진 내 동시 한편을 가져간 같은 반 옆자리에 앉던

내 여자친구는 그 교회 그 백일장에서 그 시로 대상을 받았다

그때 나는 어리석게도 꽤 잘살던 그 여자친구네 집에서 낸

헌금 액수의 동그라미만 세다가 그만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로 대략 십년 가까이,

내 마음 속에서 나쁜 생각할 때나 착한 결심을 할 때나

절망으로 두려워 떨 때면

내 이름을 가만히 부르며 등 뒤에서 언제나 나를 지커보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채 그 소리를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던 내 삶에 신호탄으로 높이 쏘아올려진 시원한 빛 한줄기는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친구들과 축제때 했던

연극 <순교자 김대건>이었다

조선후기 천주교의 박해받던 전래과정에서의 순교를 그린 이 연극에서 난

몰락하는 양반들과 그 과정에서 신음하는 백성들,

그들에게 빛과 믿음을 주고자했던 선교자들의 희생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않는 아름다운 인간정신을 보았다

어릴적 TV에서 보았던

만화영화 <프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루벤스의 그림만큼이나 아름다운_

친구들이 대사할때 울먹거리지 좀 말라는 소리에

울면서도 기뻤다

--- 살고 싶었다, 뜨겁게.



대학에 입학해서 놀랐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한가지는 지금은 시집가서 애가 둘인 둘째가

고등학생으로 전교조를 만드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고 또 한가지는

당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 생각에

서점에서 무심코 산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였다



그 후로 몇년 동안 여행 한번 다니지도 못하고

대학생활은 아무 쓸모없는 가을 낙엽처럼 한장 한장 쌓여갔다

그때에도 일요일에는 가끔 수원역 세류 놀이터 근처에 있던

용역 사무실에 새벽같이 나가 노가다 흉내를 내다가

받은 종이돈 몇장으로 후배들과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날도 있었다



소리소문없이 머리깍고 들어간 훈련소에서 6주간 교육 끝나고 배치되는날

연병장에서 면회온 훈련병 군번을 부를때 내 번호를 부르지않고 건너뛰어서

뒤돌아 바보같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데

저 멀리 흰머리를 하고 나를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에

정작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가슴이 미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로부터 그런 소리를 내 마음속에서 듣는 것은

아마 그것이 두번째였을 것이다



복학하고 써클룸에서 몇번인가 보고 술자리도 몇번 같이 한

'씩씩한 여자 후밴걸, 한번 사귀어 봐야겠어'하던 그 아가씨가

죽은 건 그 다음해였다

그 후배를 추모하는 그림을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인연은 그런 건가 보다

누구처럼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더 이상 이땅에 발딛기 싫어서였을까(당시에는 그렇게 무거운 생각은 할 줄도 몰랐다), 그 다음해

북태평양으로 떠나는 어선을 알아보던 부산 제 5부두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접했다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한분을 떠나 보냈다는 것은

요즈음의 생각이다. 아직도 내 주변에서

사랑을 뜨거운 포옹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영화속에 나오는 배우들과

내 아버지 뿐이다.



서른 다섯해

돌아보면 난


너무 쉽게 이해하고 너무 쉽게 오해하며

너무 쉽게 변하고 너무 쉽게 고집하며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침묵하며

너무 쉽게 휩쓸리고 너무 쉽게 외로워하며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며며

너무 쉽게 우쭐하고 너무 쉽게 괴로워하며

너무 쉽게 사랑하고 너무 쉽게 미워하며

너무 쉽게 기뻐하고 너무 쉽게 슬퍼하며

너무 쉽게 들뜨고 너무 쉽게 분노하며

너무 쉽게 절망하고 너무 쉽게 희망을 품고, 딛고 일어서는 삶이었다



이런 내게 오랫동안 너무 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누구이며

도대체 누구시길래 서른다섯해

더운 국 한사발 없는 이 초라한 밥상을 받으려고

새벽부터 나를 깨우십니까,


하는 물음이다.



--- 오늘, 착하고 바른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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