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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종합부동산세는 '변형된 부유세'인가


[ 심상정 생각 ] 심상정 의원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입니다

종합부동산세는 ‘변형된 부유세’인가
- 땅부자만 보유세? … ‘진짜부자’ 금융부자는 왜 모른 척 하나
- 부채 뺀 순자산총액 대상 …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실현해야

1. 종합부동산세의 도입을 둘러싸고 변형된 부유세가 아니냐는 비판 아닌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부유세에 대한 모독이다.
구구단은 산수이고, 미적분은 수학이다. 숫자를 다룬다고 하여 이 둘을 같이 취급하지 않는다. 종합부동산세를 변형된 부유세라 주장하는 것은 구구단이 변형된 미적분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2. 부동산만 과세대상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와는 달리, 부유세는 과세대상에 부동산, 주식, 채권, 예적금 등 모든 자산을 다 포괄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진짜 부자’들인 재벌총수 일가의 재산은 주로 주식 등 금융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별장 등과 같은 부동산의 상당부분은 공익재단이나 회사의 명의로 되어 있다. 따라서, 종합부동산세는 진짜 부자들에게는 거의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특정지역에 사는 ‘적당한 부자’들에게만 힘을 발휘하는 골목대장 수준의 세금이라 할 수 있다.

3. 또 특정 자산에 대하여만 과세를 할 경우 자원배분 면에서 왜곡을 초래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부유세는 자원배분의 중립성을 유지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제도가 매우 부실한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에 대한 과세만 강화할 경우 금융시장이 필요이상으로 과열 또는 왜곡될 우려가 있으므로 모든 자산에 대하여 통합하여 과세하는 부유세가 자원배분에 더 긍정적이다.

3. 부유세는 자산총액에서 부채총액을 뺀 순자산을 그 과세표준으로 하는 반면,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가액을 그 과세표준으로 하여 개념상으로도 전혀 다른 세금이다. 예를 들어, 부유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과세기준이 모두 10억원 초과인 경우, ‘갑’은 11억원의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취득자금 중 5억원은 부채로 조달한 반면, ‘을’은 순수하게 자기 돈으로 부동산을 취득한 경우를 보자. ‘갑’의 부동산 보유가액은 11억원이지만 순자산은 11억원 - 5억원 = 6억원이 되어 부유세의 과세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을의 순자산은 11억원이 되어 부유세 과세대상이 된다. 한편, 종합부동산세는 보유한 부동산가액만을 고려하므로 ‘갑’과 ‘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과된다.

4. 경제학에서는 소득을 소비지출과 순자산증가분의 합으로 본다. 따라서, 순자산에 대하여 과세하는 부유세를 소득세의 보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소득세는 소득의 원천을 포착해야 과세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소득의 원천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탈세가 횡행한다. 이에 따라, 소득의 결과물로 누적된 순자산에 대하여 과세함으로써 소득세를 보완하고자 부유세가 최초로 도입된 것이다.

5. 부유세는 모든 자산을 과세대상으로 하며, 보유한 자산총액뿐 아니라 부채총액까지 고려하여 과세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종합부동산세 보다 훨씬 섬세하고 치밀함을 요구한다. 종합부동산세가 1층짜리 판잣집이라면 부유세는 3층짜리 대리석 건물이다. 부유세 준비 1단계로서 상장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부동산 실거래가 기준 과세, 차명거래 금지, 자영업자 세원파악을 위한 간이과세폐지, 조세특위 구성 등을 목표로 하여 10개의 조세개혁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6. 흔히, 이름 때문에 부유세를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는 제도’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유세가 정착되면 부자에게 그 소득에 걸맞게 세금을 거두는 것 외에 각 개인 및 법인이 보유한 자산 및 부채현황이 투명하게 파악되어 경제가 전반적으로 투명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경제의 투명화에 미치는 부유세의 긍정적인 역할과 이로 인한 탈세 예방적 효과 때문에 부유세 자체의 세수 크기로만 부유세의 실효성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현재 부유세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 전체 세수에서 부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유세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7. 과반수 의석을 지닌 여당이 1층 판잣집 정도의 종합부동산세 하나 갖고 쩔쩔 매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안쓰럽다. 이번 종합부동산세 도입으로 늘어나는 부동산 보유세수는 고작 3천억원 정도이다(종합부동산세 세수는 6-7천억원이지만 기존의 재산세 등이 편입되어 실제 순증가하는 세수는 3천억원 정도에 불과함). 그나마, 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당정합의 조차 진통을 거듭했다. 얼마 전 정부여당이 주도하여 고가사치품에 대한 특소세를 폐지한 덕분에 4천억원의 세수가 감소하였다. 부자에게 4천억원의 세금을 깎아 주고 그 보다 적은 3천억원을 더 걷는데도 이렇게 우왕좌왕 하니 이들에게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8. 또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차원이 다른 종합부동산세와 부유세를 동일시함으로써 부유세를 의도적으로 깎아 내리고 있다. 추후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된 경우를 대비하여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되었으니 이제 부유세는 필요 없다’는 식의 여론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감지된다. 그러나 이것은 1층짜리 판잣집을 지어 놓고, 3층짜리 대리석 건물이라고 강변하는 것과 같다.

9. 지난 5월 20일, KBS와 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69.1%가 부유세 도입에 찬성하였다. 한 세목에 대하여 이렇게 찬성율이 높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 들여 진다. 이에 앞서 한겨레신문이 창간 16돌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44.8%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선택하였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39.2% 만이 선택하였다. 두 여론조사를 연결해 보면, 부유세에 대한 70%의 찬성율이 한국인이 바라는 미래의 사회상과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바라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부유세는 단순한 하나의 세목 이상의 의미, 즉 보다 공평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평환 사회에 대한 열망의 상징이며 70%의 지지를 받고 있는 부유세를 이미 누더기가 된 종합부동산세와 동일시하는 것은 국민의 열망을 짓밟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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