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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날적이:활동 자체의 기록을 제외한 하루의 반성과 내일의 계획,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곳

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19
    연재소설<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3.조지연
    최선을 다하는 자유
  2. 2005/05/23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다녀와서
    최선을 다하는 자유
  3. 2005/05/05
    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 - 2.김 혁
    최선을 다하는 자유
  4. 2005/05/05
    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 - 1.오영수
    최선을 다하는 자유
  5. 2005/03/05
    김지하 달마展 - 가을에서 봄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유
  6. 2005/03/05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서양미술 400년 한눈에
    최선을 다하는 자유
  7. 2005/03/05
    서른 다섯의 기도 [무명용사로 살다]
    최선을 다하는 자유
  8. 2005/03/04
    이미 오래전에 서른을 넘었는데 아직 안죽고 살아있다
    최선을 다하는 자유
  9. 2005/03/01
    단상
    최선을 다하는 자유
  10. 2005/03/01
    3.12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기금 마련 연대의 밤
    최선을 다하는 자유

연재소설<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3.조지연

3. 조지연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아침부터 시어머니는 콩을 볶는다. 이제 지치실만도 하신데. 일어나 아랫배가 싸해서 화장실에 갔다가 하혈이 있었다. 작년 수술 이후 벌써 세번째이다. 코끝이 찡하다. 시어머니 앞에선 눈물은 보이지 않을테야. 엄마... 세계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생활이 나에게 가르쳐준 교시이다.

엊저녁 금양분회 모임이 늦어져 뒷풀이가 끝났을때 새벽 2시였다. 강현종위원장은 분회 모임에 까지 와서 6.15 남북정상회담 5주년 맞이 행사의 의미를 애써 축소시키려 했다. 좌파, PD라고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제 진저리가 친다. 대중적인 사업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이빨로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서로 불필요한 설전은 피하고 각자 자기자신의 일만 하고있다. 지난 전국연합의 민주노동당 참여 결정 이후 우리 조직은 당내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다. 새삼스레 잘도 버텨왔구나 싶다. 박종화동지의 노래 '바쳐야 한다'가 생각난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 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 보거라
전선에서 맺어진 동지가 있다면
바쳐야 한다 죽는 날까지 아낌없이 바쳐라
번쩍이는 칼창 움켜쥐고 나서라 전사여
그날을 위해
이 한 목숨 걸고 나서라

구차한 목숨으로 사랑을 못해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아라
두려움에 떨면은 술도 못마셔
그렇게 마신 술에 내가 죽는다
붉은 맹세 붉은 피로 맺어진 동지여
죽어도 온다 그날은 온다 민족의 해방이여
번쩍이는 칼창 움켜쥐고 지켜라 전사여
우리의 깃발
이 한 목숨 걸고 나서라


요사이 우리조직 내에서 '노동계급성'이란 말을 쓰면 아직도 잘난체하고 이빨까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노동자의 영도성'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대해서 오로지 '생활력', '힘찬 투쟁'이란 말로 대응하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까?(힘찬 투쟁이 핵심이 아니다라는 말은 아니다)

예를들어 "조국통일투쟁이 노동자적 입장에 서지 못하고 몰계급적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주력군으로 뛰어야할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할 수 없었고 따라서 소수지식인, 학생 등 '양심적 운동세력'에 국한되었다"라는 문제제기를 한다면, 조국통일투쟁은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오류와 성과들을 남겼고 이러이러한 식으로 노동계급성을 견지 하였으며 이러이러한 전망과 발전방향성으로 갖는다는 식의 답변이 올바른 것이다. 아니면 "통일문제의 관점에서 남한 변혁을 논하는 것이라면 노동계급성의 견지는 이러이러한 식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식일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생활력'의 문제가 거론되면서 '짱구를 굴린다'든지, '어디서 듣고 온 소리냐'라든지 하는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런 자세는 일말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선배의 경우 후배가 가려워하는 곳을 정확히 긁어주지 못한다면 그 후배의 가려움증은 악화될 것이다.

드높은 생활력의 고양은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눈에 띄게 전진하는 근로대중의 계급의식의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과학적 이론학습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치열한 사상투쟁이 쉽게 감정적 대립을 야기하거나 아니면 그 자체를 '탁상공론'으로 매도하는 식의 풍조는 과학적 사상이론으로 무장하고 가열차게 투쟁하고자하는 많은 동지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조지연 분회장님, 뭔 사진이예요? 숨겨논 애인? ㅋㅋ"
김 혁씨도 참. 한번더 그런 농담하면 붙잡아 놓고 비판하겠어요,ㅎㅎ.
긂주림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북조선아이들의 송아지같은 큰 눈망울을 들여다 보노라면 목까지 뜨거운 그무언가가 밀쳐온다. 아이들아 이 엄마가 너희들을 지켜주마..

문자왔네. 누구지?

<서울역 철도매점 농성장 공안
침탈, 현재 공안분실 내 점거농
성 중. 지역위원회 연락바람★
평당원운동자 한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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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다녀와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다녀와서  



이주노조 탄압분쇄와 위원장 구출을 위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 일시 : 5월 22일 (일) 오후 3시
- 장소 : 명동성당 들머리

비가 오는 가운데 2시 30분부터 5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일대 선전전으로 시작된 이날 집회는 몸짓패의 투쟁 열기를 담은 공연으로 총 250여명의 참여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집회는 5월 14일 새벽1시 뚝섬역에서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아노아르 위원장이, 법무부 출입국 단속반 직원 30명에 의해 폭력적으로 강제 연행되었던 것을 규탄하는 집회였습니다.

이주노조탄압 중단!
아노아르 위원장 즉각 석방!
법무부 규탄!
노동비자 쟁취! 노동3권 쟁취!의 구호가 울려퍼진 집회에는 민주노동당 용산위원회 5명과 종로위원회의 당원들이 참여하여 연대투쟁하였습니다.
  
이주노동자 동지들과 연대한 주체는
민주노동당 용산위원회 및 종로위원회, 서부건설노조, 비정규직 연대회의, 이주인권연대,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금속연맹 그리고 노동해방 학생동지들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의 연대발언은, 적은 당원들의 참석으로 아쉬웠습니다.

굵어진 비에 주최측은 우비를 제공해 주었고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참석한 동지들의 투쟁열기는 식을줄 몰랐습니다. 마슴 동지의 카랑카랑한 투쟁결의문 낭독으로 5시경 집회는 끝났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명동성당 근처의 송탄 부대찌게 집에서 용산위원회 당원동지들과 중앙당 장애인위원회 동지와 함께 저녁식사와 간단한 뒤풀이를 하였습니다.

뒤풀이에선 나온 이 날 집회에 대한 평가반성에는,
용산위원회 깃발을 꼭 챙길것과 우리 민주노동당 중앙당과 전 지역지원회 차원의 적극적 연대가 부족하였다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 신승철 부위원장의 연대발언 중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시혜적 태도와 소극적 연대의 관점이 비판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동지는 향후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생산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할 것이고 중앙당 부문위원회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고민되어야 함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따라 예견되어지는 다민족적인 사회 구성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민권 즉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아노아르 위원장이 이주노동자들과 투쟁하는 모든 동지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 많은 탄압을 받더라도 많은 고통을 받더라도 결코 머리를 숙이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합니다......  
동지들, 이것을 기억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정부의 탄압과 고통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가 쉽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의 태양은 반드시 떠오를 것입니다. 피 땀 흘리는 모든 노동자 승리가 이주노동자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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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 - 2.김 혁

<연재소설 - 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

2. 김 혁
감상적이선 안된다. 우리 노동자 민중은
이 깊은 시대의 우울을 딛고 일어서야한다.




눈앞이 캄캄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눈이 갑자기 어떻게 된거지? 속이 답답하다. 무엇인가 목에 걸린 것 같아. 게워낼 것 같아. 못참겠어...
우웩.......
이게 뭐지?
"하하하 김혁도 심장을 토해냈다. 이제 우리의 동지가 되었다아" "환영한다 김동지"
마분지처럼 딱딱한 이게 심장인가. 그렇다면 다들 심장이 없다는 건가...

<김동지, 저예요. 우선 여기를 빠져나가죠 어서요>
갑자기 오랫동안 익숙했던 목소리가 들리더니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 김혁과 ×××가 도망간다아-"

얼마쯤 흐른걸까, ×××는 지쳤는지 잠시 멈춰섰다. 갑자기 ×××는 내입에 자신의 입을 포개었다. 뭔가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목구멍을 통해 빈가슴에 불룩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김동지, 제 심장이예요. 잊지 마세요. 자신의 심장을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단 한번 뿐이예요>

그때였다.
"와아- 김혁과 ×××가 여기있다아-"
"×××! 심장을 나누는 것은 금지되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어서 ×××를 끌고갓!"

×××는 몇 번인가 내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체념한듯 내 손등을 한번 쓸어내리곤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소리는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한채 말려들어갔다. 안...되...에...가...지...마...




<김선배, 꿈꿨어요? 안좋은 꿈인가 봐요?>
꿈이라고? 이렇게 생생한데...<어제 너무 과음했나봅니다, 분회장 동지^^;;> 말이 밖으로 튀어 나오는 걸 보니 꿈이긴 꿈이군.
오랫동안 익숙했던 목소리는 누구였을까? ×××??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골이 좀 아프군...

어제는 4.30 메이데이 전야제가 끝나고 사평지구당 당원들끼리 따로 여의도광장 한구석에서 뒷풀이가 있었다. 부위원장 김인식 동지와 좀 격론을 하는 바람에 과음을 한 것이다.

<선배, 배고프죠? 이거요>
금양분회장이 불쑥 내민 건 딸기 우유...ㅎㅎ 그래 예전에 꼭 그랬었지...쓰디쓴 기억은 왜 이다지도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는 것인가. 혜인은 분신 하기 몇주전에 그렇게 목이 긴 사슴처럼 달려왔었다. 그때의 대화는 아직도 너무나 선명하다.

- 선배님, 배고프죠? 이거 딸기우유^^
= 네것 안 샀으면 형이랑 같이 나눠 마시자
- 아녜요^^ 전 되었어요. 그 보다 선배...
= 뭔데?
- 그런데 정말 노동자들도 우릴 사랑할까요? 그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까요?
= 갑자기 왜...
- 열사들이 계속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있는데도 노동자들은 말이 없어요. 침묵... 침묵....
= 혜인아... 댓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을 노동자 민중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게 사랑이라고 형은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굳은 믿음같은 거야
- 그럼 선배님...
선배님은 제게 그런 굳은 믿음을 갖고 계신가요? 탄압받는 노동자 보다 저를 더 사랑한다고
아니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해줄수있나요?
= 혜인아!

그래 너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어이없게 들리던 말을 남기고 동아리방을 빠져나간 뒤 책상에는알베르 까뮈의 <정의의 사람들>이란 책이 놓여 있었지. 몇주뒤 꽃뫼마을 철거연대사업 때문에 나갔다가 학교에 돌아왔을때 너는 "노태우정권 타도하고 노동해방 쟁취하자"는 쪽지를 남기고 새까맣게 그을린 시신이 되어있었다.


감상적이선 안된다. 우리 노동자 민중은 이 깊은 시대의 우울을 딛고 일어서야한다. 내가 그동안 일선에서 활동하는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 아무것도 하지못한채 미안했던 것은 내가 슬픔에 쓰러져 있었기 떄문이야..

처절하게 반성해야 해. 우린 혜인이 말고도 얼마나 많은 열사의 주검을 노동해방의 제단에 바쳐왔던가. 이 죽음의 행렬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더욱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해. 슬픔에 마냥 젖어 있을순 없어. 영수형과 함꼐 고민했던 그 시간들을 헛것으로 되돌릴순없어.

어제 부위원장 김인식 동지와 오고간 말은 우리 사평지구당의 현실 아니 어쩌면 민주노동당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원내 제3정당 그리고 사평지구당 진성당원 450명이라는 숫자와는 다르게 당비만 내고 참여하지 않는 많은 당원들, 당원간의 대화채널은 술자리에서 근근히 이루어지고, 다수파라고 하는 동지들은 존재하는 분파를 인정하지 않은 채 그 힘의 우위로 자기세력 관리에 급급하고, 좌파라고 하는 동지들은 모든게 다수파의 책임인 것인양 적개심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지않은가.

우리 민주노동당은 지금 <평당원에 의한, 평당원을 위한, 평당원의 제2창당운동>을 요구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민주노동당을 참된 노동해방 진보정당으로 튼튼하게 건설시키기 위해선 지금 어느 누구보다도 평당원 스스로의 자주적인 주체성이 요구 되고 있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다. 메이데이 본대회가 진행되는가 보다.
김인식 동지에 말에 따르면 금양분회장 조지연 동지는 작년에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당원 동지들이 아기를 업고올때 눈가에 물기가 촉촉하다. 강한 여자다. 속이 쓰리다. 이그 술좀 작작 먹어야겠다. 오늘은 영수형이랑 일찍 자리에서 일어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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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 - 1.오영수

살아남은 자를 위한 변명

1.오영수

반성? 왜 역사라는 짐을 내가 반성해야 하는 거지,
너는 아직도 우리가 동지라도 되는 줄 안단 말이냐



날이 흐리다. 어제는 유쾌, 오늘은 흐림. 일진 일퇴. 자연의 변화는 인간의 삶과 별반 다름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존재', 인간처럼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분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연처럼 인간은 서로 순응하고 조화하기 보다는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타인으로 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지구당 당원들과 함꼐 도봉산에 올랐다. 당원에 가입하고 처음으로 당의 공식적인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새삼 어색하기도 했지만 사실 되풀이 되던 일상을 벗어나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다는 점이 왠지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나이를 먹어서도 이렇게 아이처럼 신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칠성 사이다하고 맛동산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냐? ㅋㅋ

어제 후배인 김 혁과 과음한 탓인지 산행 초반부터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참느라고 죽을맛이었다. 그래도 처음보는 다른 당원들에게 술꾼처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4월의 도봉산은 옅은 회색 구름이 해를 가렸지만 상쾌한 물소리와 산내음 만으로도 등산객들의 커진 목소리를 가볍게 감싸주고 있었다.


<형, 형이 정말 제대로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해?>
벌겋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혁이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반성? 왜 역사라는 짐을 내가 반성해야 하는 거지, 너는 아직도 우리가 동지라도 되는 줄 안단 말이냐. 우린 패배했어, 그래 인정한다. 근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 얘긴 임마 벌써 10년이 다 되가는 소리야. 넌 지금 도대체 현실에 발딛고 있긴 한 거니. 반성은 항상 패배자의 몫이었고 변명이었고 스스로의 위안이지 않았던가.

혁이가 민주노동당 사평지구당에 가입하자는 말을 꺼낸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혁은 습관처럼 되풀이 되던 술자리에서 불쑥 그런 말을 꺼냈었다.
<형, 형은 왜 활동하지 않는거죠? 당장 민주노동당 당원부터 가입하고 무엇인가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녜요?> 녀석은 대들 것처럼 달겨들었다, 짜아식.
당원? 그래 당원을 해서 무엇을 할 건데? 왜 너도 국회의원 한자리 하고싶냐 아니면 아직 공장에 남은 니 동기들 보기 쪽팔려서? 에라 임마 정신차려라. 국으로 지금 일하는 곳에서 자리잡고 장가갈 생각이나 해 임마..

그날 혁은 과음끝에 술자리에서 먹은 걸 모두 게워내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엉엉소리내 울고있었다. 영수형, 죽은 혜인이를 난 잊을수가 없어...근데 내가 어떻게 아무렇게나 살 수 있겠어...
씨팔, 아직도 넌 남의 정신에 살려고 하는거냐...남을 위해? 민중과 노동자를 위해? 애들도 웃지않을 순진한 소리하구 자빠졌네...니미럴 새꺄 야리지마...넌 몰라 개새끼야...좆같이 왜 아직도 눈물이 나는거야...

(.....무엇이 변한 걸까...혁과 나는 지난해 파고드는 겨울 칼바람에 숱한 소줏잔이 깨어지고 욕지거리도 지겨워질때쯤 민주노동당 사평지구당에 가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도봉산 산행을 마치고 산아래턱에 있는 코다리집에서 뒤풀이가 열렸다. 앞선 이의 발뒤꿈치만 보고 오르내리느라 재대로 보지못했던 당원들의 얼굴들이 형광등 불빛아래로 모여들었다. 아따 고랑내^^

<자 인사드리겠습니다 민주노동당 사평지구당 위원장 강현종이라고 합니다. 오늘 4.19기념 당원 등반에 참여 해주신 당원여러분께 같이 건배할 것을 제안합니다>
위원장은 살짝 벗겨진 머리만큼이나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 혁이는 오래만에 다시 느끼는 분위기 탓일까 토마토같이 벌건 얼굴을 하곤 연방 벙싯벙싯 웃고 있었다. 짜아식 그렇게 좋을까.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정말 옳은 길일까......에잇 좀 오늘은 혁이처럼 나도 잘한 일이라 아무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싶다.아줌니 여기 막걸리 한 통 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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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달마展 - 가을에서 봄까지

  누굴까
  김지하 달마展-가을에서 봄까지 <29ㆍ끝>
ⓒ프레시안

  아주 멀다.
  그러나 가까워온다.
  눈보라 속인 듯 안개 속인 듯 희미하다.
  누굴까?
  달마가 서쪽에서 오는 것인가!
  (達磨西來意)
  아니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니 곧 무궁무궁의 길인가!
  (環中無窮)
  검은 점은 그친다.
  흰 여백만 남는다.
  문득 유달산(儒達山) 기슭의 한 정원이 떠오른다.
  그 정원의 돌연못 속에 눈동자가 하나 열린 채 떠있었다. 옛 주검이다.
  누굴까?
  
  <김지하 시인의 지상 달마展 ‘가을에서 봄까지’의 마지막 회입니다. 연재해주신 김지하 시인과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김지하 시인의 화랑 달마展 ‘지는 꽃 피는 마음’이 3월 2일(수요일)부터 13일(일요일)까지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김지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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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생에서 마티스까지, 서양미술 400년 한눈에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서양미술 400년 한눈에
17세기 바로크시대부터 20세기 추상화까지 서양미술의 정수 한자리에
 
이명옥
 
유럽여행, 특히 프랑스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루브르 박물관을 염두에 둘 것이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들었던 거장들의 작품을 대하고 싶다는 것은 미술학도가 아니어도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이 아닐까?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서양 예술 400년을 한 자리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명옥

 색채의 마술사라는 ‘샤갈전’에 이어 ‘푸생에서 마티스까지’라는 제목의 서양미술 40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2004년 12월 21일부터 2005년 4월 3일까지 열리고 있다.
 

▲샤를 알퐁스 뒤프레누아의 '스키로스의 아킬레우스'     © 뒤프레누아
 
금번 전시회는 프랑스 국공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7세기 바로크 시대 작품부터 20세기 추상화가 라울뒤피와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 수 있는 르 부룅, 푸생, 쿠르베, 들라크루아, 앵그르, 다비드,  시슬리, 고갱, 르누아르, 마티스, 모네, 라울뒤피,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거장들의 작품을 시대별로 엄선하여 ‘선’ 과 ‘색’이라는 접근법을 통해  서양의 미술사적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앵그로의 작품 '샘'     © 앵그로

‘선’과 ‘색’의 대립은 17세기  푸생과 루벤스로부터  19세기에 사진처럼 명확하고 균형 잡힌 조형미를 추구한 신고전주의 장 오귀스트 도미니끄 앵그르와 강렬한 색채의 동적인 그림을 그린 위젠느 들라크르와의 낭만주의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로크 시대부터 20세기 추상파의 대가 파블로 피카소까지 커다란 물줄기를 따라 여행을 떠나 보기로 하자.
 
17세기- 바로크와 고전주의
 
자끄 블랑샤르, 피에타 반 몰, 야곱 요르단스, 샤를르 뒤프레누아, 니꼴라 푸생, 르 냉, 시몽 부에, 장 엘라르, 삐에르 미나르, 샤를르 르 브룅은 17세기 대표적 화가다.
 
당시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모사하거나 성서나 신화를 주제로 색감을 살려 강렬한 색의 사용으로 단조로움을 피하는 ‘색’을 중시하는 루벤스 화풍과 명암, 원근법, 섬세한 채색 기법, 15세기 전통적인 풍경화법을 사용한  ‘선’을 중시하는 고전적인 푸생의 양대 화풍을 볼 수 있다.
 
18세기- 로코코 양식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앙뜨완느 쿠아펠, 프랑스와  부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조셉 비앵, 조셉 베르네, 루이 부알리, 장 시몽 베르텔레미, 애마블 파네스트 등을 들 수 있다.
 
▲모네의 작품, '벨일의 바위'     © 모네
 
로코코 양식의 특징인 세부 묘사, 원근법, 소묘법 중시 등 고전적인 기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고  누드를 이상화하는 다비드로 이어지는  기법의 작품도 볼 수 있다.
 
19세기-신고전주의에서 상징주의
 
19세기 대표적 화가로는 장 오귀스트 앵그르, 위젠느 들라크루와, 테오도르 샤세리오, 까미유 코로, 나르시즈 드 라 페나, 귀스타브 쿠르베, 위젠느 부댕, 클로드 모네, 까미유 피사로,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리, 삐에르 퓌비 드 사반, 폴 고갱, 아리스티드 마이욜을 들 수 있다.  
▲라울 뒤피 작 '마리 크리스틴 카지노'     © 라울 뒤피

▲다비드 작, 마라의 죽음     ©다비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기법을 충실하게 이어 신고전주의 기법인 엄격하고 균형 잡힌 구도와 명확한 윤곽선을 사용하며 ‘선’의 우위를 중시한 앵그르는 감성과 색채를 중요하게 여긴 들라크루와 같은 낭만주의자들을 반전통적이라고 무시하였으며 그림의 목적은 ‘美의 表現’이라 생각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앵그르가 주장한 ‘선’의 중요성은 드가, 마티스, 피카소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들라크루와는 밑그림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세부 묘사보다는 단순한 덩어리를 구성하는 유연한 붓터치가 작품의 가치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금번 전시에 특이한 사실은 전통적인 화두였던 ‘선’ 과 ‘색’ 등 전통적인 법이 아닌 새로운 미학적 실험을 시도한  폴 고갱의 상징주의적 대담성이 가미된 목판화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순수추상미술
 
에두아르 뷔야르, 모리스 드니, 파블로 피카소, 장 퓌, 라울 뒤피, 에밀 베르나르, 앙리 마티스, 소니아 들로네 등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순수추상미술은 구성의 단순화, 평면화, 인상주의 화법의 강렬한 색과 빛의 사용, 모든 전통적 기법들을 변형, 파괴, 해체하여 재창조하는 피카소의 다양성에 이르기까지 한줄기 맥을 이어온 ‘선’과 ‘색’의 대비와 변형이라는 현대적 기법까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마티스 작, '어항에서 수영하는 여자'     ©마티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선’과 ‘색’의 대립은 혁명과 예술 혼으로 대변되는 프랑스의 자유와 진보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어떤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굳세게 지켜내고자 했던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의 반증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랭스 미술관에 소장된 것이며, 일부 작품들은 루브르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등 프랑스 국립 미술관서 가져 왔다고 한다.
 
금번 전시회는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고자 하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더없이 값진 관람의 기회가 될 것이다.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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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의 기도 [무명용사로 살다]

서른 다섯의 기도

                           무명용사

 




알고 싶은게 한도 끝도 없었다.


그래도 잠깐 쉴 수 있었던 건

무더운 여름날 대청마루에서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워

다 쭈그러져 쭉정이가 되었지만

아버지 팔남매를 키우셔서인가, 그리도 컸던 당신 젖가슴을 찾다가

잠이 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국민학교 오학년 땐가

'넌 커서 무엇이 될꺼니'하는, 그때만 해도 앳되셨던 여선생님의 질문에

친구들이 '과학자요' '의사요' '장군이요' '선생님이요'하는 말들에 눌려

쭈뼛대다가 대답했던 말

--- 전 좋은 아버지가 될 거예요



불알친구들 중에는 참 어렵게 살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이 학교에서 왜 선생님들께 늘 구박만 받는지,

하교길에 들른 판자촌 쪽방에서 그 친구들의 가족들과 다들 모여

머리 맞대고 밥먹으며 생각해 보았다

가난해도 정결한 작은 집들과

그 집에서 가끔은 들을 수 있었던 웃음들도 참 신기했다



국민학교 3학년때 우리동네 개척교회 시멘트 바닥에 스폰지 방석깔고 했던

백일장에서 떨어진 내 동시 한편을 가져간 같은 반 옆자리에 앉던

내 여자친구는 그 교회 그 백일장에서 그 시로 대상을 받았다

그때 나는 어리석게도 꽤 잘살던 그 여자친구네 집에서 낸

헌금 액수의 동그라미만 세다가 그만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로 대략 십년 가까이,

내 마음 속에서 나쁜 생각할 때나 착한 결심을 할 때나

절망으로 두려워 떨 때면

내 이름을 가만히 부르며 등 뒤에서 언제나 나를 지커보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채 그 소리를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던 내 삶에 신호탄으로 높이 쏘아올려진 시원한 빛 한줄기는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친구들과 축제때 했던

연극 <순교자 김대건>이었다

조선후기 천주교의 박해받던 전래과정에서의 순교를 그린 이 연극에서 난

몰락하는 양반들과 그 과정에서 신음하는 백성들,

그들에게 빛과 믿음을 주고자했던 선교자들의 희생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않는 아름다운 인간정신을 보았다

어릴적 TV에서 보았던

만화영화 <프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루벤스의 그림만큼이나 아름다운_

친구들이 대사할때 울먹거리지 좀 말라는 소리에

울면서도 기뻤다

--- 살고 싶었다, 뜨겁게.



대학에 입학해서 놀랐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한가지는 지금은 시집가서 애가 둘인 둘째가

고등학생으로 전교조를 만드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고 또 한가지는

당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 생각에

서점에서 무심코 산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였다



그 후로 몇년 동안 여행 한번 다니지도 못하고

대학생활은 아무 쓸모없는 가을 낙엽처럼 한장 한장 쌓여갔다

그때에도 일요일에는 가끔 수원역 세류 놀이터 근처에 있던

용역 사무실에 새벽같이 나가 노가다 흉내를 내다가

받은 종이돈 몇장으로 후배들과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날도 있었다



소리소문없이 머리깍고 들어간 훈련소에서 6주간 교육 끝나고 배치되는날

연병장에서 면회온 훈련병 군번을 부를때 내 번호를 부르지않고 건너뛰어서

뒤돌아 바보같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데

저 멀리 흰머리를 하고 나를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에

정작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가슴이 미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로부터 그런 소리를 내 마음속에서 듣는 것은

아마 그것이 두번째였을 것이다



복학하고 써클룸에서 몇번인가 보고 술자리도 몇번 같이 한

'씩씩한 여자 후밴걸, 한번 사귀어 봐야겠어'하던 그 아가씨가

죽은 건 그 다음해였다

그 후배를 추모하는 그림을 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인연은 그런 건가 보다

누구처럼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더 이상 이땅에 발딛기 싫어서였을까(당시에는 그렇게 무거운 생각은 할 줄도 몰랐다), 그 다음해

북태평양으로 떠나는 어선을 알아보던 부산 제 5부두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접했다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한분을 떠나 보냈다는 것은

요즈음의 생각이다. 아직도 내 주변에서

사랑을 뜨거운 포옹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영화속에 나오는 배우들과

내 아버지 뿐이다.



서른 다섯해

돌아보면 난


너무 쉽게 이해하고 너무 쉽게 오해하며

너무 쉽게 변하고 너무 쉽게 고집하며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침묵하며

너무 쉽게 휩쓸리고 너무 쉽게 외로워하며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며며

너무 쉽게 우쭐하고 너무 쉽게 괴로워하며

너무 쉽게 사랑하고 너무 쉽게 미워하며

너무 쉽게 기뻐하고 너무 쉽게 슬퍼하며

너무 쉽게 들뜨고 너무 쉽게 분노하며

너무 쉽게 절망하고 너무 쉽게 희망을 품고, 딛고 일어서는 삶이었다



이런 내게 오랫동안 너무 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누구이며

도대체 누구시길래 서른다섯해

더운 국 한사발 없는 이 초라한 밥상을 받으려고

새벽부터 나를 깨우십니까,


하는 물음이다.



--- 오늘, 착하고 바른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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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에 서른을 넘었는데 아직 안죽고 살아있다

 



 

18세 질풍노도의 시기.

질풍같이 달리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출.

서울은 화려했다.

그 화려한 도시 언저리를 떠돌며 들개처럼 살았다.

아무 희망도 없었고

꼭 살아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오기로 서른까지 살기로 했다.

그때도 지금과 같다면 그냥 죽자 생각했다.

왜 서른에 방점을 찍었었을까.

좀더 앞당겼으면 좋았을 것을...

서른이 되었을 때 고민했었다

죽을까/ 말까,

그때도 지금도 별로 달라진 건 없고

딱히 살아야 할 이유도 생기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속에 막연한 분노가 조금씩 구체화 된다는 것뿐.

더이상 도시의 화려함에 속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는 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들이 보이지만

나의 나침반 바늘은 항상 그 흔적들과 어긋나 있으니

나는 또 들개처럼 혼자 떠돌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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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요즈음 들어 느끼는 것은 운동의 스펙트럼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다양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신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현단계 운동의 곤란한 지형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주의>란 용어자체는 분명 이미 대중을 전취하였다, 그러나 상당히 왜곡된 채로. 어쩌면 그 왜곡된 만큼이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적 평가이리라.

 

또한 자본주의의 천년왕국을 꿈꾸는 점진적 개량주의 세력이 실질적인 사회계층을 사로잡게 되었다. 노동조합관료...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 내 이런저런 세력들....

 

자본의 폭력적 재편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힘들 -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정권의 '참여 민주주의' 선전으로 더욱 더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는 '자율적'소집단과 개인-'다중'

 

전략의 부재 속에서 점진적 개량주의는 교묘하게 자신의 전략을 은폐하고, 아직도 많은 전위지향적 집단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反정립 속에서 찾고 있다.

 

고통스럽게 지속되는 터널....

 

절망적 투쟁은 간헐적으로 진행되고...적막감은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을 부른다.

 

아직도 우리 자신은 권력을 꿈꾸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내가 처음 느꼈던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 아니 자기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은 진실한 헌신이리라...

 

좋은 동지 한명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 거울에 나를 비춰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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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기금 마련 연대의 밤

 3.12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기금 마련 연대의 밤 개최합니다.


 

“3.12 서울경인지역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기금 마련 연대의 밤” (3.12 One day Hof & solidarity program for fundraising of building Seoul-Gyeonggi-Inchon Migrant Workers' Trade Union )

0. 취지:
서울경인지역 이주노동자 독자 노동조합 건설준비 및 건설기금 마련과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연대강화

1. 주최
-이주지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2. .후원 민주노총 서울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서울본부/경기본부/인천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경기도당/인천시당/ 전국금속산업연맹/ 전국금속노조/ 대구성서공단 노동조합/ 고려대 이주학생네트워크/ 아시아의 친구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시흥작은자리/ 고양파주평화바람/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 안양전진상복지관/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3. 장소 -고려대학교 학생식당

4. 일시 -2005년 3월 12일(토) 오후 4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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