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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운동,새로운 연대를 위하여:김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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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연대를 위하여 - 김세균 (출처:미디어 참세상 토론마당)

<노동자 정치운동, 새로운 연대를 위하여 : 발제 글>

"승리를 향한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사적 전진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역사상 최초로 대중이 스스로 모든 지배계급에 대항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야만 하며, 이 의지를 현 사회의 저편으로, 즉 현 사회를 넘어 밀고 나가야한다는 데 이 운동의 모든 특수성이 있다. ... 대다수 민중을 기존질서를 초월하는 목표와 결합시키는 것, 일상적인 투쟁을 위대한 세계 변혁과 결합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큰 문제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분명 그 발전의 전체 과정에서 두개의 난관 사이를, 즉 대중적 성격을 포기하는 것과 최종 목표를 포기하는 것, 다시 말해 이단적 분파로 떨어지는 것과 부르주아 개혁 운동으로 변하는 것, 또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의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 의 '사회개량이냐 사회혁명이냐'에서>


지난 5월 22일(토) 오후 2시 연세대 상경대학 본관 B121호실에게 개최된 오세철교수 명예퇴임 기념토론회 <좌파운동의 반성과 모색>에서 발표한 "좌파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글에서 나는 좌파운동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좌파운동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좌파연대를 위한 노력이 좌파운동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내부적 과제로서 인식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그리고 좌파연대를 위한 진지한 노력이 지금 당장 시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그러한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한 중복을 피하는 가운데 좌파연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더 발전시켜 보려고 한다.


1. 연대의 다차원성과 좌파연대의 의의


위에서 언급한 "좌파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글에서 나는 (일반적으로 '노동자-민중세력' 등으로 불리는) 범진보세력을 범우파세력과 구분시키고, 좌파라는 개념을 오늘날 우리 한국의 현실에서 넓은 의미에서는 반제민족주의세력과 계급적 진보세력을 포괄하는 '범진보세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중범위 수준에서는 계급적 우파세력과 계급적 좌파세력을 포괄하는 '계급적 진보세력' 전체를, 좁게는 ('좌파의 좌파'로 불릴 수 있는) 계급적 좌파세력 내지 '변혁적 좌파세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구분은 단순한 개념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을 위한 연대의 문제와 관련하여 관적적인 중요성을 지닌 구분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연대란 차이를 지닌, 그러므로 상호 비판적 관계를 지닌 세력들 간의 연대이다. 그리고 유리에게 문제되는 연대란 진보와 사회변혁을 위한 여러 형태의 투쟁을 조직하는 데에 요구되는 연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연대의 다차원'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민주개혁의 진척 등을 위해 민주개혁에 지지하는 시민운동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운동세력은 대체로 노동자-민중의 근본적인 이해관계에 직결되는 신자유주의문제와 관련해서는 노동자-민중진영세력과 입장을 달리한다. 그러므로 민주개혁 등을 위한 시민운동세력과의 연대는 노동자-민중세력들 간의 연대에 비한다면 당연히 부차적인 중요성만을 지닐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운동세력과의 연대를 위해 범진보세력들 간의 연대가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범진보세력들 간의 연대가 상시적인 것이어야 한다면 시민운동과의 연대는 필요한 경우에 행하는 한시적인 제휴 이상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차원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연대를 임함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연대이며, 무엇이 부차적인 연대인가에 대해 ! 깊이 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문제에 개입하는 계급적 좌파세력(이하 좌파세력)의 '기본적인' 전략은 그 시기에 조성된 '주요'모순의 해결을 노자 간에 조성된 기본모순의 해결, 즉 자본주의 극복의 과제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군부독재 하에서 지배층과 노동자-민중 간에 조성된 주요모순은 민주주의 문제를 둘러싼 지배층과 노동자-민중과의 대립관계였다. 때문에 당시 좌파세력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란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즉 군부독재체제의 타도를 위한 투쟁을 가리킨다 - 을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키고, 또 이를 위해 '민주연합전선'에 참여함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킬 과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좌파세력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대내외적으로 명실상부한 헤게모니 세력으로 상승할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형성된 '민주연합전선'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한 세력은 자유주의세력이었다.


민주화의 진전과 신자유주의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지배층과 노동자-민중 간에 조성된 우리 시대의 주요모순은 민주주의의 문제에서 신자유주의문제로 변했다. 이와 관련해 좌파세력의 가장 중심적인 과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키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좌파세력은 '신자유주의 반대세력'에 속하는 범진보진영의 다른 분파인 반제민족주의세력과 계급적 우파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관계를 맺는 가운데에서도 '반전-반제 신자유주의반대 투쟁'이라는 우리 시대의 주요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대'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때문에 반제민족주의세력이나 계급적 우파세력에 대한 비판은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세력인 열린 우리당에 대한 비판과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좌파세력은 '반전-반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진전을 위해 다른 진보세력들과 연대하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신자유주의 반대의 가장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그 투쟁을 지도하는 명실상부한 대내외적인 헤게모니세력으로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 塚岾?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좌파세력은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진보세력의 특정 부분을 좌파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내부적으로 차이를 지니고 있지만 무엇보다 계급문제의 해결을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극복의 추구' 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통점이야말로 좌파세력을 다른 세력들과 그들을 구분시키는 가장 중요성을 지닌 규정이다. 때문에 좌파세력 내부에 아무리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 차이는 자신들이 지닌 공통성에 비한다면 부차적인 의의를 지닐 따름이다. 그러므로 좌파세력은 자신들 내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세력들 보다 정치적으로 가까운 연대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특정의 좌파세력이 타 좌파세력들과의 연대를 무시하거나 타 좌파세력들과의 연대 보다 다른 진보세력과의 연대를 우선시한다면, 이는 그것을 어떤 명분으로 합리화하든 자기조직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좌파 전체가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방기하고, 좌파세력 전체의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의 성장-발전을 방해하며 대중운동의 변혁운?! 오막括? 발전 등을 지연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2. 좌파연대를 위한 그간의 경험 평가


좌파세력은 그간 연대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해 왔고, 그 활동들이 왜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는가? 1997년 이후의 경험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1) 16대 대선을 앞두고 97년 좌파세력의 여러 단위들이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진전을 위한 정치연대(준)'(정치연대)를 건설한다. 그런데 참여한 많은 좌파단위들이 대통령후보전술을 전술적 차원에서 - 전국노련, 민의련, 진보민청 내 일부 부민노청, 서청포, 구로 노동자정치연대(노정련)의 경우 - 또는 이후 국민승리21 중심의 당에 합류할 목적으로 - 노동자중심의 진보정당 추진위(노진추), 노정연 인천지부, 서울진보청년회(서진청)의 경우 - 국민승리21운동에 결합한 반면, 사회당의 전신인 '청년진보당'은 '국민후보 운동'에의 결합 자체를 비판하고 정치연대에서 탈퇴한다. 이후 이들은 '반자본, 반북한노동당'을 내걸고, 합법적 사회주의대중정당을 표방하는 '사회당'을 건설한다. (한편, 16대 대선 기간 중 전북현장연대(이윤보다 인간을)는 정치연대에 가입함이 없이 전북지역에서 '좋은 친구들'을 구성, 국민승리21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쟁점된 것은 대통령후보 및 의회진출을 위한 노력이 좌파세력의 '전술'인가, 아니면 '양보할 수 없는 전략'인가이다. 그러나 동시에 물밑논쟁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는 국민승리21 중심의 당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과는 구분되는 다른 정치조직을 건설할 것인가 였다. 사회당 건설 이후에는 '반북한노동당'이라는 구호가 '반자본'과 동격인 전략적 구호가 될 수 있는 지 등도 문제된다.


(2) 이후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으며 민노당이 결성되자 노진추, 노정연 인천지부, 서진청은 정치연대에서 탈퇴, 민노당에 합류하게 되며, 현재 민노당 내부에서 '평등연대'(노진추), '민노당 인천'(노정련 인천), '화요모임'(서진청)으로 활동 중이다. 당시 민노당으로 소속을 옮기지 않은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이후 '노동자의 힘'이 건설된다. 당시 쟁점이 된 것은 당이 합법적 대중정당이어야 하는가와 대중조직의 지지를 받는 당에서의 활동이어야 하는가 등이었다.


(3) 17대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의 차원에서 연대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은 범진보진영후보전술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좌파 독자후보를 낼 것인가였다. 이 문제는 크게 보면 국민후보운동에 결합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였다.


(4) 이후 좌파 정치단체들을 포괄하는 활동가정치조직의 건설 문제가 제기된다. 이 움직임은 그러나 17대 대선의 공동대응을 둘러싼 대립과 상호신뢰의 저하가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당좌파 운동과 구분되는 사회운동적 좌파운동과 평의회운동 등을 중시하는 흐름들이 부상되면서 무산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은 공동투쟁의 조직화에서 신뢰성 문제, 기본노선 상의 차이에 따른 분화의 문제 등이다.


(5) 반전반제를 위한 최근의 좌파연대의 사례는 사안별 연대투쟁을 조직함에 있어서도 공동 대응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음을 입증한 사례에 속한다.


(6) 탄핵국면 및 17대 대선국면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난 '민중행동'의 경우 연대투쟁의 조직화가 그 어떤 때보다 높은 국면이었으나 연대투쟁체의 결여 등으로 '뒤늦은 대응과 때 이른 해소'로 귀결되었다. 이 경우는 최소수준의 대응으로 그쳤고, 참가단체들이 이 조직을 계속 발전시킬 의지가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 준 가장 최근의 사례에 속한다.


돌이켜 본다면, 제도정치로의 참여가 전술이냐 전략이냐의 차이 - 그러나 내가 알기로 의회진출 등을 아무리 중시할지라도 적어도 이념 상으로는 그것을 전략으로 격상시키고 있는 좌파조직은 없다고 생각된다 -, 민주노동당으로의 통합이냐 아니냐의 차이, 당 운동이냐 아니면 사회운동적 운동이냐의 차이, 직접민주주의적 운동체냐 대의제적 요소를 인정하는 운동체냐를 둘러싼 차이 등이 좌파연대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차이들은 연대의 추구 보다 우선권을 지닌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그런 차이는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정치연대' 등에서 동지적으로 토론하고 다수의견에 승복하는 것으로 해결되었어야 마땅했다고 보지만, 우리는 그간 다른 역사를 경험하는 우를 범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좋은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고 상호불신이 증대해온 것, 또 이로 인해 '상호 경쟁'이나 '상호견제'를 '상호 연대' 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증대하고, 좌파연대에 기초한 공동투쟁의 조직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좌파운동 전체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좌파조직들이 자기노선을 절대화하고 자기조직 중심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등이 좌파연대의 진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주체적 요인들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극복함이 없이 개별약진만을 추구할 경우 좌파전체의 상호보완과 상호 발전 및 좌파 전체의 대중운동과의 결합은 더욱 어려워지고, 어쩌면 좌파운동의 전면적인 게토화 등이 초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전의 글에서 나는 계급적 우파세력과 구분하는 개념인 계급적 좌파, 변혁적 좌파 등을 '좌파의 좌파'라고 지칭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조정환은 '좌파의 좌파'가 아니라 '좌파를 넘어선 좌파'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좌파들 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어떻게 좌파의 연대를 추구할 것인가 인 반면, 조정환의 경우는! '좌파혁신'을 내걸고 어떻게 자신(들)을 다른 좌파들과 구별 정립해 낼 것인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 좌파운동의 토대가 되어야 할 현장활동가들의 운동이 크게 보아 성장-강화되기 보다는 힘을 잃어온 것 역시 좌파세력의 연대와 통합 등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현장조직 운동이 약화된 것은 역으로 좌파세력의 분열 등에 기본적으로 기인한다는 점을 좌파세력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3. 어떻게 좌파연대를 구축해 나갈 것인가?


좌파연대는 ① 좌파연대가 다른 형태의 연대 보다 우선권을 지닌 주요 과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기초 위에서, 그리고 ② 자기조직이 운동의 구심이 아니라 좌파운동의 일환을 이룬다는 것을 상호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추구되어야한다. 나아가 좌파연대는 단순한 산술적 통합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좌파 전체의 능력을 제고시키는 것을 목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좌파연대는 한편으로는 전국적인 좌파연대 전선체의 구축을 위한 노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좌파운동의 조직적 구심체 건설을 위한 노력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


독자성을 지닌 세력으로 당면정세에 개입하기 위해 계급적 좌파세력 전체 - 당좌파와 사회운동적 좌파, 합법운동과 비합운동 내지 비공개그룹 운동 및 제 부분운동들에 참여하는 좌파들 전체 -의 전국적 수준의 '좌파연대 전선체'의 구축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점들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1) 좌파연대 전선체의 구축은 사상-기본노선 상의 통일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정세 속에서 제기되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한 실천적 연대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연대활동이 상호불신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호신뢰의 증대에 기여하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실천적인 연대에 임하는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좌파연대전선체는 '독자적' 활동을 전개함과 더불어 반전반제 신자유주의반대 운동의 활성화와 급진화를 목표로 독자성을 견지하는 가운데 범진보연대전선 및 사안별 연대전선 등에 적극 개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 좌파 결집 후 범진보연대운동 참여론'은 범진보연대투쟁의 긴급성과 필요성 등에 비춰 운동에 대한 단계론적 접근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이와는 달리 '선 범진보연대전선운동 참여 후 좌파 결집론' 역시 또 다른 종류의 단계론적 접근으로 좌파연대의 긴급성과 필요성 등을 무시하는 문제점을 지닌다) 그런데 무엇이 주요당면투쟁과제이며, 타 세력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해 차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연대전선체 내부에서의 토론을 통한 차이의 해소 및 활동의 상호 보완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다른 한편 좌파연대 전선체 운동은 노조운동수준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노선, 실리주의노선에 반대하는 흐름의 형성을, 정치운동의 수준에서는 의회주의-사민주의 노선 등에 반대하는 흐름의 형성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좌파연대 전선체의 구축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좌파운동의 조직적 구심체를 형성하기 위한 운동 역시 병행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좌파운동의 조직적 구심체란 좌파세력의 구심적인 정치조직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조직과 당과의 관계가 문제되는데, 당이란 좌파세력의 정치적 조직체의 한 형태이지만 합법정당인가 아닌가의 문제와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 일관성을 지닌 강령을 지닌 정치조직'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이 그 이름에 합당한 명실상부한 좌파정당이 되려면 무엇보다 전국적 수준에서 좌파세력들을 결집시키는 정치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의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1) 내가 보기에 좌파운동의 조직적 구심체가 정치조직 내지 당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운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좌파운동의 조직적 구심을 사회운동체로 규정할지라도 그 운동체란 불가피하게 정치조직의 성격을, 그리고 그 운동체가 그 나름의 일관성을 지닌 강령을 지니고 있다면 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회진출 등을 중시하는 대중정당인가, 아니면 사회운동적 정당 내지 비제도적 투쟁정당인가가 문제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정치조직에 참여하는 이들의 내부토론과 합의에 기초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적 정당 내지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전략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전술적 수준에서 의회진출의 중요성 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부언될 필요가 있다.


2) 단일의 정치조직으로의 통합 및 사상-노선 상의 통일은 기본적으로는 당면과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연대를 확보하는 가운데에서 행해지는 내부적 토론과 상호융합 과정을 거쳐 달성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실천적 연대과정에서 연대의 폭과 깊이 및 상호신뢰가 증대한다면 서로 차이를 지닐지라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이며 - 이 점에서 제 단위들 간에 공동투쟁의 경험이 축적되고 상호신뢰성이 증대한다면 차이가 해소되지 않을지라도 조직적 통합이 가능할 것이며, 거기서 더 나아가 상호합의에 기초하여 일관성을 지닌 강령을 마련하는 데에 성공하다면 그 정치조직은 보다 결속력을 지닌 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천적 연대의 확보와 더불어 조직적 통합을 위한 논의 역시 꾸준히 조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총선 이후 여러 좌파조직들이 행하고 있는 조직발전을 위한 내부토론이 자신의 독자성과 타 조직들과의 차별성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좌파연대를 위한 것이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그럼에도 좌파들이 아직 실천적 연대를 위한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고 조직적 통합을 위한 노력이 아직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조건 속에서 좌파연대 전선체의 구축과 좌파운동의 조직적 구심체 건설을 촉진시키는 매개체로서 나는 지난번 발표에서 "조직소속 등을 넘어 좌파연대의 절박성을 인정하고 좌파연대를 위해 적극 활동할 결의를 지닌 개인들"이 참여하는 연대체의 결성을 제안했다. 물론 이런 형태의 연대체에는 좌파연대의 긴급성-중요성을 인정치 않는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대체가 결성되고 이 연대체의 활동이 활성화된다면, 이 연대체는 여러 수준에서의 좌파연대를 촉진시키고, 좌파연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좌파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발전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연대체의 결성에도 많은 동지들이 관심을 갖기를, 그리고 그 연대체의 필요성 등에 대한 토론이 앞으로 활발하게 행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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