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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신, 민주노동당 우경화?

[기획연재] 민주노동당, 우경화의 길로 가는가?

최성진
사진출처: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최근 들어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창당초기부터 개량주의노선이 지배적이었던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지금 와서 민노당의 우경화를 얘기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당 안팎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자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의회진출 이후 탄탄대로를 갈 것 같던 진보정당은 때늦은 정체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일각에서는 당이 우경화를 넘어 독립성마저 위태롭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이를 반영하듯 당 내외부를 막론하고 당의 역할성에 대한 비판들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

물론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하의 문제들은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 류의 친노무현 언론들이 당장 분당사태라도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과장 보도와 악선동'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계급운동의 일보전진이라는 관점에서 진지한 평가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에 따라 당의 내외부의 대립, 정체성의 혼란, 급기야 독립성의 위기로까지 운위되는 현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나아가 어떤 극복방안이 모색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들리는 당의 정체성


당의 정체성을 우려하는 입장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지난 해 국보법 철폐 과정 속에서 현 지도부가 열우당 내 개혁분파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계속 견지하면서 당의 정치적 독립성이 크게 흔들렸다는 지적이다. 열우당과의 개혁공조 과정에서 형성된 이러한 문제의식은 ‘열우당 2중대’ 문건파동이 터지면서 극점으로 치달았다.

두 번째는 여성 당직자 폭행사건에 대한 당기위의 미온적 판결과 <이론과 실천> 편집장 교체과정에서 나타난 지도부의 인사행정상의 전횡문제이다. 이러한 당내 민주주의 문제는 최근 지도부의 출근부 도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당내의 새로운 쟁점사항으로 부각되고 있다.

세 번째는 부유세 관련 법안을 최고위원회가 부결시켰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후 당의 핵심 프로젝트인 부유세의 정책 브레인, 윤종훈 정책위원의 사표로 이어지면서 당의 정체성에 대한 파장으로 논란이 확산되었다.

그런데 당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한때 ‘민생이냐 국보법 철폐냐’ 또는 ‘반한나라당 전선이냐 반노무현 전선이냐’는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지난 당직자 선거에서 과거 민족민주 노선을 견지했던 세력이 당 지도부가 되고 그들의 친여권적인 투쟁노선이 민노당의 우경화를 부추긴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를 단순히 특정성향의 지도부의 문제 또는 낡은 정파 대립구도로만 한정하는 것은 일면적인 시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민노당의 야심작 “부유세”에 대한 처리과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현재 민노당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들을 제공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로 윤종훈 정책위원과 심상정 의원실에서 호흡을 맞춰 진행되었던 부유세 프로젝트는 (전체 3단계 중) 1단계인 10대 조세관련법 개정안이 최고위원회에서 부결됨으로써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조세 개정안 중 문제가 된 부분은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위한 간이과세 폐지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에 관한 법안이었다. 윤종훈 정책위원과 심상정 의원실이 중간층의 저항을 감안하고서라도 중장기적으로 특권층의 소득 재분배를 추구하고자 중소영세업자에 부담을 안겨 줄 조세개혁을 밀어붙인 반면 최고위원회는 당장 육안으로 확인될 중간층의 이탈과 당지지율 하락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3%의 지지율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소신있게 개혁정책을 밀어붙일 것인가? 그러나 지도부를 포함한 상당수의 당내 현실론자들은 이미 지지율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간층에 단기적 타격을 가할 법안을 던져놓고 당장 코앞에 닥친 2006년 지자체를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지도부의 정치성향 문제를 넘어서 기본적으로 의회정당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민노당의 태생적인 딜레마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민노당의 의회중심적 지향은 지금에 와서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창당 때부터 노골화되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 일각에서는 부유세 문제에 있어서의 당 지도부의 후퇴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의회정치 내로 깊숙이 빠져들수록 당내 모순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으며 집권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당의 개혁정책들은 계속해서 우익적으로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회주의의 덫


이런 측면에서 지난 16일 진보정치연구소 주최의 ‘쓴소리 X 간담회’에서 손호철 교수의 호된 쓴소리가 눈에 띤다. 손호철 교수는 이 자리에서 “민노당의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프로젝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문을 연 후 민노당 집권의 조건에 대해 “만약 민노당이 서구 진보정당의 1백년 걸친 우경화 과정을 초고속으로 압축해 제2의 열린우리당이 된다면 가능하다”며 결국 민노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탈계급화, 국민정당화 해야 하나, 그렇게 노동자를 국민으로 호명하며 집권한 유럽 좌파정당의 역사는 뒤집어 보면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자기 붕괴의 역사였다. 앞문으로 승리하고 뒷문으로 패배한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민노당의 의회주의적 노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손호철 교수의 위와 같은 지적은 민노당이 안고 있는 ‘정체성 위기’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집권을 위해서 그것도 향후 10년 이내의 초고속 집권을 위한 민노당의 행보는 정책의 초고속 우경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우경화의 결과로 집권이 현실적 일정에 오를지라도 “국제투기자본의 유출을 막기 위해 우파 정당보다 더 강력한 긴축정책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던 브라질의 pt당의 아이러니로부터 민노당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의회선거를 통한) “좌파정부란 없”으며 “집권자체가 우파”라고 한 손교수의 지적은 정확하게 민노당의 멀지않은 미래를 예견한 것이다.

한편 민노당 -- 지도부를 포함하여 -- 일각에서는 의회주의로의 매몰을 우려하며 대중투쟁의 증요성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대중투쟁의 강화는 “의회중심에서 거리투쟁으로, 선거구 활동 중심에서 현장(공장)활동 강화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의회주의가 중심이 되는 개량주의자들의 대중투쟁관은 필연적으로 변질의 운명을 타고날 수밖에 없다.


의회주의는 대중투쟁을 어떻게 변질시키고 있는가?


2004년 민주노총 사업평가는 하반기 투쟁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많은 요구사항을 채택하였으나, 실제로 입법안이 마련되지 못하거나 추진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였다”고 지적하며 “예상되는 정부 비정규 법안에 대응하기 위해 앞질러 법안 제출이 필요했지만, 광범위한 전선 구축과 의원서명 확보에 실패하여, 정부 법안에 대한 문제제기 중심의 투쟁으로 한계가 그어지고 말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에는 “유리한 입법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인 대정치권 사업과 전략이 정립되어야 한다”(2004년 민주노총 사업평가)라고 정리하고 있다.

지난 비정규직 투쟁의 한계에 대해 ‘법안이 제출되지 못하고 의원서명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는 평가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중투쟁의 성격을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가는 분명하게도 대중투쟁을 연대투쟁의 확대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청원식 압박투쟁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노개투 국면을 상기해 보면 이러한 경향은 보다 분명해진다. 총파업을 포함한 민주노총의 모든 투쟁 일정은 국회일정에 종속된 형태로 나타났다. 즉 국회 일정이 유보되면 총파업도 유보된다. 의회주의적 관점에서 대중투쟁 -- 특히 총파업 -- 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지 그 이상은 아닌 것이다.

물론 대중투쟁의 성격이 대국회 압력시위로 변질되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민노당의 의회진출 이후 민주노총의 대중투쟁은 2012년 집권 프로젝트를 측면에서 보족하는 사회개혁투쟁으로 급격하게 변질되고 있다. 이수호 집행부가 얘기하는 “준비된 총파업”과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민노당 의원단의 입법행위와 대국회 로비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투쟁으로, 향후 제도권 선거를 겨냥한 여론몰이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한편 이러한 대중투쟁의 급격한 변질은 곧바로 현장투쟁력의 약화라는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국회라는 제도정치권을 경유할 수 있는 입법투쟁만이 현실가능한 투쟁의 모든 것인 것처럼 인식되고 국회일정과 무관한 투쟁, 법안상정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투쟁들은 실천적으로 방기되고 있다.

일례로 국회 내부에서 여야간의 쟁점이 되었던 ‘파병반대투쟁’, ‘국보법철폐 투쟁’, ‘법개악저지투쟁’은 국회일정에 맞춰 집중 배치되는 반면 개별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불파투쟁’과 지난 한해 무수하게 발생한 ‘장투사업장 노동자와 해고자 투쟁’은 사실상 방치되었다. 민노당 의원들이 제출하고 있는 법안들 또한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간층을 타겟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나마 그러한 법안들이 의회 밖의 대중투쟁과 어떤 연관고리를 형성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자들이 민노당의 의회진출과 당의 외형적 확대발전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도정치권 내로 전파한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과연 노동계급운동의 전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은 민노당이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노동계급운동의 현실은 오히려 암울해지는 역설적인 현실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결론을 대신하며
-- 당의 우경화를 어떻게 막아 낼 것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 내외부에서 당의 역할성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주로 당 안에서 활동하며 당의 우경화를 비판하고 당의 혁신을 외치는 입장들이다. 당내에서 사회주의 의견그룹을 건설하고자 하는 ‘전진’(준)과 (가칭)‘해방연대’, 그리고 의견그룹의 형태는 아니지만 당 노선의 좌익화를 꾸준히 주장해온 ‘다함께’. 이들은 당의 의회주의 노선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지속적인 의견개진을 통해 당의 사회주의적 혁신을 실천하고자 한다.

특히 의견그룹을 지향하는 전진과 해방연대는 자신들의 조직적 목표가 민노당의 사회주의 정당으로의 개조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다양한 입장들을 통해 민노당의 우경화는 인정하지만 아직까지 당의 경향이 하나로 -- 주로 우익사민주의 -- 고정되지 않았다며 여전히 혁명정당으로의 변화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당 외각에서 당과 계급운동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것 못지않게 주로 당 안에서 당의 혁신을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의 문제의식을 들어보는 것이 현시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판단한다. 당의 역할성과 변화가능성에 대한 섣부른 재단보다는 당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하고 민노당 혁신을 넘어 혁명정당 건설의 전망들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에 따라 사노신은 앞으로 (가칭)해방연대 정책선전팀장 성두현 동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당 내 다양한 좌파그룹과 개인들과의 만남을 계획하고자 한다. 혁명정당 건설의 가능성과 현실성에 대해 당 내에서 고민하는 동지들의 문제의식을 들어보는 기회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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