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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운동의 반성과 전망> 토론회 참석소감-조정환

<좌파운동의 반성과 전망> 토론회 참석소감 - 조정환

2004년 5월 22일 오세철 교수 정념퇴임 기념 학술대회 <좌파운동의 반성과 전망> 토론회 참석소감

1. 평의회에 대한 논의가 심도있게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논의는 오히려 좌파연합(대)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2. 중요한 쟁점은 ‘좌파의 좌파인가’(김세균) ‘좌파해체인가’(김승호) 사이에서 발생했으나 논의가 크게 발전되지는 않았다. 나는 여기에 ‘좌파를 넘어선 좌파’라는 입장을 추가하고 싶다.

3. 이 쟁점은 ‘좌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김세균 교수는 “좌파세력이란 대중투쟁의 활성화와 대중투쟁의 변혁투쟁으로서의 성장-발전 및 이를 통한 사회변혁의 달성을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하는 인자”(자료집, 213쪽)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는 이 정의에서 대상으로 설정되고 있는 ‘대중투쟁’(더 정확하게는 현재의 삶이 직면해 있는 적대와 문제를 타개해 나가는 다중들의 삶의 투쟁) 자체가 오늘날의 탈근대 사회에서 좌파가 존재하는 유일한 형태이며 스스로를 목적의식적 활동가라고 사고하는 활동가들 역시 이 다중투쟁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4. 김세균 교수는 목적의식의 요구가 좌파연대보다 좌파분열의 쐐기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스스로 목적의식을 거부하는 사람, 심지어 질문자조차도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는가?’고 반문함으로써 응답했지만 이것은 실천목적(Telos)과 이념목적(Ideology)의 구분을 흐리는 것이며 위의 정의에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는 ‘사회주의적 정치의식’이라는 레닌주의적 함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5. 대중이라는 용어가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 용어는 지금까지 전위와의 관계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계적으로 구분짓는 용어, 프롤레타리아트를 분할하는 용어임은 지각되고 있지 않았다. 역시 위계적인 선진노동자라는 용어도 무비판적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6. 주어진 질문 기회에 나는 한국의 평의회 운동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질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막연한 방식으로 질문을 제기하는 데 머물렀는데 다시 정식화하자면 “평의회 운동이 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낡은 계급구성의 관점을 받아들일 때, 그리하여 그것이 ‘사회주의’라는 근대적 대안을 받아들일 때, 평의회 운동이 당과 노조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탈근대의 평의회는 공장을 넘어 사회 속에서 움직이는 노동의 수평적 네트워크로 발전되어야 하며 그것은 외관상 비노동으로 보이는 실업자, 주부 등을 포함하는 삶의 평의회 운동이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7. 나는 좌파 운동이 갖고 있는 남성중심적이고 권위적인 문화, 담론체계, 심성 한 마디로 다수자적이고 주류적인 경향성이 극복될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이것은 나 자신까지도 늘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 비판이다. 성찰되지 않은 낡은 언어들이 우리들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8. 전체적으로 보아 참가한 ‘좌파’의 대부분은 사회민주주의로부터 사회주의를 어떻게 구별정립할 것인가라는 제2인터내셔널 좌파의 문제의식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회주의로부터 어떻게 코뮤니즘을 구별정립할 것인가를 사고했던 레닌 당시의 제3인터내셔널의 고민으로부터도 후퇴해 있는 것이다. 나는 코뮤니즘을 레닌주의에서와는 다르게 정의하면서 사회주의로부터 코뮨적 운동을 구별정립해 내고 그것을 전진시키는 것이 좌파연대 이전에 거쳐야할 좌파혁신(좌파를 넘어선 좌파)의 핵심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계급해방은 인간해방의 종속적 일부여야 한다고 말한 김승호 님의 주장과 어떤 면에서는 상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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