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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에 대한 <전진>의 입장


□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방침’에 대한 <전진>의 입장 □


현 시기 ‘사회적 교섭방침'(노사정위 복귀)은
첨단무기로 중무장한 적진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격이다.
사회적 교섭방침 폐기하고 투쟁방침의 실현을 위해 집중하자!


1. 자본주의라는 조건에서 모든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원천적으로 사회적 교섭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만으로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혁명적 조합주의자(아나코 생디칼리스트)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노동대중의 관심과 투쟁동력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에서 교섭이란 전술적으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요소이며, 때로는 한 시기의 투쟁이 교섭으로 시작하여 교섭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
교섭은 상황에 따라 노-사, 노-정, 노-사-정 교섭, 그리고 사회적 교섭 등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다. 특히 사회적 교섭은 노-사-정 교섭으로 곧바로 등치될 수도 있고, 그보다 훨씬 다양한 교섭주체들이 참여하는 틀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사회적 교섭은 일상적 교섭형태가 아니며, 각각의 교섭 주체들이 노사간 일상적 교섭의 경우보다는 훨씬 고도의 전략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으로서는 자신의 주체역량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과 상대 교섭 주체들, 그 가운데 특히 자본과 정권의 전략을 면밀히 분석한 연후에 판단해야 한다. 더욱이 노동조합이 반드시 성사시키거나 응해야만 하는 교섭이 아니라, 전략전술적 효용성과 가치가 참가여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면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유․불리함을 세심하게 살펴본 연후에 판단해야 한다.


2. 그러나 지금은 사회적 교섭의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다.

1) 신자유주의 하 한국경제는 노동자에게 양보할 그 어떤 것도 없다.

2004년 4월 기준으로 상장기업의 주식 43%가 초국적 자본의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한국경제가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입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대부분의 자본은 노동자에게 양보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나마도 의문이 가지만 제한적 경영참여 정도가 그들이 양보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 수준이다.
IMF 이후 급속하게 미국주도의 경제 질서에 편입되고, 다양한 다자간․양자간 국제적 무역협정으로 인해 중심을 잡지 못한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이며, 대기업 역시 시장개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그들은 노동비용의 축소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뿐이다. 전 산업에 걸친 해고의 완전한 자유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2) 정부와 자본, 언론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전체 노사관계의 변화를 노리고 있다.

노무현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동맹은 강력하다. 성장제일주의, 경쟁과 효율 중심의 경제정책, 그리고 이를 강요하는 국제압력 아래 정부와 자본은 한 몸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상징되는 각종 조치는 현 정부가 힘의 균형을 어디에 맞추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입만 열면 귀족노조와 대공장 노조의 횡포를 언급하는 노무현대통령과 언론의 입장은 교섭을 임함에 있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공세적으로(?) 교섭을 요구한다 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경제포럼에 참가한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민주노총이 조건없이 노사정위에 복귀하라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라며 “민주노총이 조건부 복귀를 고집하면 사회적 대타협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김대환이 1월 13일 전경련 강연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조 전임자는 노조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므로 노조가 해결하는 것이 맞다. 산별로 가든지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2007년이면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 등이 진행되는데 올해부터 준비해야 제대로 된 법적 제도적 틀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상당한 갈등을 발생시킬 소지가 크며 정부의 기본 입장은 노사간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공동의 합의안을 마련하길 바라되 그렇지 못할 경우 기존에 마련된 안대로 갈 수박에 없지 않은가? 비정규법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사용자에게 고용의 유연성은 허용하되 차별은 시정하자는 것이다. 노사 모두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른 내용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균형을 취한 법안으로 보고 기존 골격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곧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일단이다.
한편 정부와 자본은 한국노총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4기 집행부 기간 동안 노사관계 전반의 변화를 노리고 있다. 한국노총은 80년대 이전에는 군사정권의 정치적 지원체제, 80년 이후에는 정부의 경제적 지원체제 역할을 해 왔으나 민주노총 성장과 함께 그 역할의 상당부분이 축소되었다. 따라서 이제 민주노총만 정리하면 정부와 자본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착시킬 수 있다. 결국 민주노총의 참여는 현 정부의 소위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로드맵 관철에 들러리를 서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현 시기 사회적 교섭방침은 타협주의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현재의 조건에서는 설령 합의가 성사되어도 이행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반대로 가정해서 설사 정부와 자본이 한통속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로선 정부의 자본에 대한 통제력이 미약하다. 이미 국제화된 자본은 정권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자본이 아니다. 경총과 상의 등의 완강한 태도가 그것을 잘 입증한다. 설령 합의한다 해도 자본의 입장에서 불리한 부분은 결코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2004년 초 정부와 경총, 한국노총이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체결했지만 이행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공무원노조, 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등 굵직한 합의에 대한 일방통행 또는 불이행은 차치하고, 국민-주택은행 합병투쟁 등 단위노조의 투쟁에 대한 합의조차 올바로 이행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회보험노조에서 보듯 사측이 합의사항을 불이행함으로써 야기된 갈등의 불씨를 의도적으로 악화시켜 대대적인 탄압의 기회로 삼고 있다. 참여와 협력이라는 구호 뒤에서 손배소 청구, 공권력 투입, 구속 수배의 남발 등이 이루어져 왔다. “무엇으로 우리가 조합원에게 타협을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한국노총 금융노조 한 간부의 말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만일 불가피하게 교섭에 참가하려 한다면 최소한 이런 불신을 씻을 수 있는 선결과제를 정부와 자본이 해결해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4) 준비 없는 사회적 교섭, 국민여론으로부터 고립된 노동운동의 비상구가 될 수 없다.

급변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볼 때 사회적 교섭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는 하다. 내부적인 조건으로 볼 때도 노동운동이 바뀌어야 할 지점이 상당하다. 광범한 비정규직의 문제, 기업별 노조활동의 한계, 개방화와 자유화에 대한 대응 미흡, 산별노조 교섭의 어려움, 요구관철에 미흡한 투쟁력, 대공장 중심의 노조운동의 한계 극복 등을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부에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 외부와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는 없다. 교섭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단위노조 차원의 일상 활동을 넘어서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동의와 투쟁체계를 갖추는 것이 선결과제다. 교섭을 한다면 사회적 교섭이 ‘투쟁을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점’, ‘굳은 투쟁결의만 있다면 교섭이 두려울 게 없다는 점’ 등을 말하기 전에,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가 분명해져야 하고, 그에 대한 동의가 뒤따라야 하며,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깊은 골짜기 곳곳에서 흘러내린 물이 큰 강을 향해 모여들듯 투쟁의 물결이 모아지는 가운데 교섭을 요청해도 늦지 않는다.
한편 국민여론, 이는 다름 아닌 자본과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언론일 것이다. 민주노총이 2005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를 결정하는 순간 그 언론은 대대적으로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언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서로 한 발씩 양보하여 좋은 결실이 맺어지길 기대 한다.’고.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노동자는 반발짝도 양보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럼에도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에게 주는 척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법 제도적으로 형편없는 수준으로 개악하기 위해 깔아놓은 자락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그 가운데 일부를 철회하거나 거둬들여도 언론은 정부와 자본이 엄청난 것을 양보했다며 대서특필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언론조차 위협을 느끼는 투쟁으로 돌파해야 하는데 정권과 자본이 바보가 아닌 이상 96~97 노개투 총파업 직전과 같은 상황을 조성하며 무리수를 둘 리 만무하다.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다시피 노동계급 내부를 철저히 분열시키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킬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로 얻은 여론의 효과는 순간이요, 운동발전은커녕 실리적으로도 득볼 게 없는 오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준비 없는 사회적 교섭은 결코 국민여론으로부터 고립된 노동운동의 비상구가 될 수 없다.


3. 사회적 교섭방침 폐기하고, 투쟁방침의 실현을 위해 총력 집중하자!

1) 민주노총의 정세인식과 사회적 교섭방침은 서로 충돌한다.

민주노총의 정세인식(민주노총 1차 중앙위 자료)에 의하면, 올 해 노동자계급은 매우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 비정규 개악안과 노사관계 로드맵 등 신자유주의 노사관계 완성 강행, 시장개방 압력의 가속화, 제국주의세력과 반세계화세력 간 일대격돌 예상, 수출저하와 경제성장 둔화로 고용불안 심화, 사회 양극화와 자본의 공세 격화, 대외개방정책 전면화, 한반도 위기와 중․미 간 긴장고조 등 어느 것 하나 우리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유리한 조건이 없다.
이는 우리가 집중해야 할 지점이 그 무엇보다 강력한 투쟁의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정세에서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방침을 채택한다면 투쟁전선은 교란될 것이다. 교섭에 핑계를 대면서 투쟁을 힘 있게 조직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게 될 것이다. 결국 중심의 위치에 서야 할 투쟁의 조직화가 부차적 위치로 떨어지고, 오히려 교섭이 중심의 위치에 서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민주노총 4기 집행부의 정세인식과 사회적 교섭방침은 명백히 엇박자가 아닐 수 없다.

2) 사회적 교섭방침 폐기하고 최선을 다해 투쟁을 조직하자.

결론적으로 많은 도전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정치․사회․경제적 측면 등을 종합해서 볼 때 현재는 사회적 교섭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대한 희망마저 잃어버리면 노동운동은 끝이라는 심정으로 사회적 교섭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민주노총의 투쟁과 민주노동당의 투쟁을 결합하고, 사회적 의제를 만드는 방향 속에서 각종 전술과 전략을 입안해야 한다.
이제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더 이상의 논의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혼란일 뿐이다. 이 시기 핵심적 과제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과 고용안정이며, 또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을 구하는 일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교섭의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노무현 정부가 이미 사회적 교섭의 틀 밖에서 비정규직 확대를 강행하고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 사회적 교섭을 활용하겠다는 것인가. 더 이상의 혼란을 종식하고 투쟁전열을 정비하자.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투쟁을 조직하는 사업에 집중하자.


2005년 1월 19일.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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