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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18
    세계노동운동사[6장]사회주의대파시즘(1917~1945) 4
    최선을 다하는 자유
  2. 2005/01/15
    <공산당선언>과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 김수행1998
    최선을 다하는 자유
  3. 2005/01/15
    임금노동과 자본, 칼 맑스
    최선을 다하는 자유

세계노동운동사[6장]사회주의대파시즘(1917~1945) 4

세계노동운동사 [6장] 사회주의 대 파시즘 (1917~1945) 4

중국 노동자 혁명의 패배와 농민 혁명으로의 전환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제2 정부’를 구성하고 제국주의 반대 투쟁으로 나아간다.

청나라는 1909년부터 입헌군주정으로의 개혁을 시작한다. 그러나 1911년 5월 철도 건설을 외국 차관단에 위임하자 이에 반대하는 봉기가 10월에 여러 성에서 일어난다. 쑨원은 삼민주의―민족주의·민권주의·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국민당을 조직한다. 북양군을 이끄는 위안스카이는 부의 황제를 퇴임시키고 1912년 1월 각 성의 대표들을 난징에 모아 중화민국(공화정)을 수립하고 쑨원을 임시 대총통에 앉힌다. 쑨원의 국민당은 1913년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러자 위안스카이는 국민당을 해산시키고 자신이 대통총의 자리에 앉는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은 1915년 1월 중국의 칭다오를 점령하고 중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하는 ‘21개조의 요구’를 위안스카이에게 강요한다. 위안스카이가 1916년에 죽자 지방의 군벌들이 각 열강들의 지원을 받으며 할거하는 시대가 된다.

중국 경제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쟁 특수’로 급속히 발전한다. 수출은 1913~19년 사이에 40%나 증가하고 공업 기계류의 수입은 1915~21년 사이에 13배나 증가한다. 이에 비례해서 산업 노동자도 증가한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주요 도시들에 총 150만 명의 산업 노동자가 존재하게 된다.

중국 대표단은 전쟁이 끝나고 열린 1919년 베르사유 회의에 참석하여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베르사유 회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토 재분할로 끝난다. 그러자 3천 명의 학생들이 5월 4일 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천안문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중국 역사상 최초로 민족주의 시위를 벌인다. 이 5·4운동은 전국 규모의 항의 운동으로 발전한다. 베이징 정부가 무력 진압에 나서 수백 명의 학생들을 체포하자 주요 공업 중심지인 상하이에서는 6~9만 명의 노동자들이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1일 파업’에 들어가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천두슈·리다자오·취추바이·마오쩌뚱 등 12인의 대표가 1921년 7월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으며 중국공산당을 결성한다. 그리고 1921년부터 시작된 불황의 영향으로 1922년에는 100회 이상의 파업이 일어나고 연인원 30만 명이 파업에 참가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고 공산당은 1922년 5월 광저우에서 제1회 전 중국 노동자 대회를 개최한다. 여기에는 12개 도시에 있는 200개 노조의 3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162명의 대의원이 참석한다. 나아가 공산당은 농민 협회들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1924년 중국 최초로 전국 노조를 설립한다.

국민당은 1924년 1월 소련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공산주의 운동과 연대한다는 ‘연소용공(連蘇容共)’의 원칙을 명확히 한다. 이에 따라 공산당이 개별로 국민당에 입당함으로써 1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진다. 국민당은 9월에 반동적인 봉건 군벌을 타파하고 전국을 통일하여 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해 ‘북벌’을 시작한다. 그런데 자유주의자 쑨원이 1925년 3월 베이징에서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고 숨진다. 그 뒤를 이어 쑨원의 동서―쑨원의 부인 쑹칭링의 동생인 쑹메이링의 남편―인 장제스가 국민당을 장악한다.

상하이에 있는 일본 자본의 직물 공장들에서 노동자들이 5월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파업 노동자들과 공안 부대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 젊은 노동자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노동자·학생 수천 명이 5월 30일 항의 행진을 벌인다. 조계 당국은 영국·미국·일본·이탈리아의 육군 전투 부대를 상륙시켜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에 발포하여 12명이 숨진다. 그러자 이틀 후인 6월 1일 공산당이 이끄는 상하이 노조총연맹이 외국인 소유 공장과 부두를 시작으로 총파업을 단행한다. 6월 13일에는 16만 명의 노동자가 가두 투쟁을 벌인다.

파업과 가두시위가 다른 도시로 급속히 확산된다. 6월 23일 광저우에서는 영국·프랑스 군대의 발포로 시위대 52명이 사망한다. 영국 식민지인 홍콩에서도 총파업이 벌어져 6월 말에 이르러 5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홍콩을 떠난다. 13명으로 구성된 파업위원회와 800여 명의 파업노동자대표자회의가 투쟁 전체를 총괄한다. 이 파업위원회는 이후 벗과 적 모두로부터 ‘제2 정부’로 불리게 된다. 총파업은 1926년 10월까지 16개월 동안이나 계속된다.

국민당은 1925년 7월 전국으로 확산된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를 기반으로 광저우에서 국민 정부 수립을 선언하고 장개석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국민혁명군을 조직한다. 국민당 군대는 1926년 7월 북벌을 재개하여 11월에는 근거지를 광저우에서 우한으로 옮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선발 정찰대 역할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농민 반란을 고무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한다. 그리하여 1926년 초에 1천 명도 안 되던 당원이 불과 1년 만에 3만 명 이상으로 증가한다.

상하이의 섬유·금속·철도 노동자들은 1927년 2월 다시 총파업을 일으킨다. 경제적 요구로 시작된 총파업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전국으로 확대되어 수개월 동안 계속된다.

공산당의 좌우편향으로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이 붕괴된다.

대지주·고리대금업자·제국주의세력을 대표하는 장제스는 국민당 북벌군을 상하이로 집결시킨다. 위기를 직감한 파업 노동자 70만 명은 파업을 계속하면서도 잘 훈련된 노동자 민병대로 도시 전 지역의 전략 요충지를 장악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상황이 이러 하자 국민당 군대는 상하이 외곽에 이미 도착하고서도 5일 후인 3월 26일에야 상하이로 들어온다. 공산당은 장제스를 환영하는 시위를 조직한다.

장제스는 상하이의 자본가들 및 지하 갱단의 두목들과 일련의 회합을 갖고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파괴할 세력을 규합해나간다. 드디어 4월 12일 새벽 암흑가의 암살단이 도시 전 지역에서 노조 사무실을 습격하여 하루 동안 400~700명을 살해한다. 장제스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산당의 훈령에 따라 거의 모든 무기를 땅에 파묻거나 장제스 군대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궤멸 당한다.

이 잔혹한 습격이 있기 바로 일주일 전인 4월 5일에 스탈린은 중국에서의 국공합작에 대해 “우익들은 군대를 지휘할 능력 있는 사람을 보유하고 있고 부유한 상인들에게서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레몬처럼 다 쥐어짜고 나서 내던져 버리면 된다”라고 연설했다. 그러나 쥐어 짜인 것은 오히려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국민당 정부를 돕는 것이 공산당의 임무라며 운동의 ‘과도함’을 자제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는 혁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농민 소비에트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권력자는 스탈린이었다.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두 명의 공산당원이 국민당 정부의 노동부 장관과 농업부 장관으로 입각한다. 그런데 다음날 창사를 지배하던 군벌이 노조와 농민 조직들을 파괴하면서 대규모 처형을 자행하기 시작한다. 분노한 지방의 지도자들이 창사를 공격하기 위해 수천 명의 농민 군대를 동원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이번에도 (5월 27일) “더 이상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정부 관리들을 기다려주기 바란다”는 전보를 타전하며 농민들의 투쟁 의지를 눌러버린다. 그렇지만 학살은 다른 성으로까지 계속 퍼져나가고 7월에는 국민당 정부까지 이 학살에 가담한다. 그리하여 총 2만 명 이상의 노동자·농민이 목숨을 잃는다. 7월 말에는 모든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이 불법화된다. 이로써 국공합작이 끝장나고 반혁명이 도시와 농촌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역량을 상당히 손실한다.

그러자 스탈린은 이번에는 “새로운 혁명적 고조!”를 선언한다. 코민테른은 전국 공세에 착수하기 위해 농민 군대가 전략 도시들을 공격한다는 계획 아래 ‘추수 봉기’로 알려진 일련의 무장 봉기를 명령한다. 이에 따라 공산당은 8월 1일 허룽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3개 군단을 편성하고 주더로 하여금 2만 명을 이끌고 난창에서 봉기를 일으키게 한다. 공산당은 이후에 이날을 인민해방군 건군 기념일로 삼는다. 마오쩌뚱은 2천 명의 부대를 이끌고 창사를 공격하다가 한 차례의 전투에서 부대의 절반을 잃고 바로 후퇴한다. 일부 다른 부대들도 겨우 탈출하지만 대부분의 부대가 금새 몰살당하고 봉기는 7일 만에 실패로 끝난다. 마오쩌뚱은 9월에 자기 부대를 이끌고 후난성과 장시성 접경의 황량한 후진 지역인 징강산으로 퇴각한다.

이후로도 계속된 11월 하이루펑 소비에트 건설, 12월 ‘광둥 코뮌’ 건설, 1928년 8월 후난성 남부 대도시들에서의 봉기는 모조리 실패로 돌아간다. 이 ‘도시 봉기’들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진행됨으로써 무자비한 학살만 초래하고 끝난다. 공산당은 1928년 8월 7일 장시성 회의에서 무모한 봉기를 일으킨 좌편향 노선을 스스로 비판한다. 이에 따라 천두슈가 당 서기장에서 물러나고 취추바이가 주요 책임자가 된다.

그러나 1930년 5월 장제스·풍옥산·옌시산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자 리리산으로 대표되는 좌익 모험주의가 다시 당의 지도기관을 지배하게 된다. 이들은 6월에 전국의 홍군을 동원하여 난창을 공격하다가 패배하고 7월에는 장시에서 소비에트를 건설하지만 불과 9일 만에 무너진다. 9월 당 전체회의는 리리산의 노선을 (노선상의 오류가 아닌) 전술상의 오류라고 비판한다.

마오쩌뚱은 농촌을 근거지로 삼고 국공합작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한다.

마오쩌뚱은 무리한 공격을 피하면서 징강산에서 역량을 보존하여 1만 명으로 노농홍군 4군단을 편성한다. 그리고 ‘농촌에서 혁명 근거지를 확대하여 도시를 포위한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3대 규율’과 ‘6항주의’라는 생활 규율을 세운다. 3대 규율이란 일체의 행동은 반드시 지휘를 따른다, 인민에게서 바늘 한 개나 실 한 오라기도 뺐지 않는다, 지방 유지로부터 거두어들인 물건은 반드시 전체의 소유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6항주의란 매매는 공정하게, 대화는 부드럽게, 잠잘 때 사용하던 문짝은 원래 제자리에 갖다놓고 바닥에 깔았던 짚은 묶어놓는다, 빌린 것은 반드시 돌려주고 부서진 것은 반드시 보상한다, 아무 데나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 포로의 지갑에 손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오쩌뚱은 1928년 12월 근거지 주변의 농촌에서 모든 토지를 몰수하여 가족 수에 따라 분배하는 토지 개혁을 실시한다. 홍군 4군단은 규율 엄수와 토지 개혁을 기반으로 농민들과 공고한 관계를 형성한다.

장제스는 1930년 말부터 1931년 6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장시성 남부를 중심으로 공산당 토벌 작전을 실시한다. 그러나 홍군은 적이 진격해오면 우리는 후퇴한다, 적이 멈추면 우리가 그들을 교란시킨다, 적이 전투를 피하면 우리가 공격한다, 적이 후퇴하면 우리는 진격한다는 네 가지 게릴라 전술로 유격전을 펼쳐 장제스 군대를 괴롭힌다.

1931년 9월 일본군이 만주를 침략한다. 그러자 10월에 상하이에서 80만 노동자가 항일구국연합회와 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에 나선다. 민중들은 일본 상품 불매 운동과 경제 절교 운동을 전개한다. 1932년 상하이 항전 때는 상하이의 상공회의소와 은행협회가 자발적으로 영업을 중단하는 등 민족 부르주아까지 투쟁에 참가한다.

장제스는 1933년 10월 일본과의 전투는 접어둔 채 100만 대군을 동원하여 홍군을 포위 공격한다. 1934년 10월이 되자 ‘해방구’의 중심부까지 심각한 위협에 놓이게 된다. 홍군은 포위를 뚫고 국민당 군대의 공격을 피해 점점 더 중국 서부의 오지로 깊숙이 들어간다. 결국엔 산시성에 있는 ‘소비에트 구(區)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으로 남는다. 마오쩌뚱은 이 방안을 집요하게 주장함으로써 공산당의 확고부동한 지도자로 자리를 굳힌다.

출발할 때 8~9만 명이었던 부대는 중국횡단 2만 5천 리(1만㎞)의 대장정을 마치고 1년 후에 구이저우성 준이에 도착했을 때는 겨우 4천 명만 남는다. 새로운 게릴라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이 거쳐 가는 지역들에 남았지만 이틀에 한번 꼴로 전투를 치르는 도중에 5만 명이 넘게 죽었으니 대장정은 그야말로 인간 인내심의 대서사시다.

공산당은 1935년 1월 준이에서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저우언라이의 중앙군사위 주석 직을 마오쩌뚱에 넘기고 장원텐을 당 총서기로 선출하면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한다. 중앙위원회는 8월에 항일 구국 통일 전선을 전술로 채택한다. 일본과 싸우기 위해 힘을 뭉치자는 주장은 전국 인민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동북군의 장쉐량과 서북군의 양후청은 공산당과 연대하여 일본에 대항하자는 ‘연공항일(聯共抗日)’을 장제스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장제스는 여전히 공산당을 박살내야 한다는 ‘초공(剿共)’의 입장을 취하면서 장쉐량과 양후청을 해직시키려 한다. 이에 장쉐량은 1936년 12월 12일 전투를 격려하러 시안에 온 장제스를 억류하여 망국적인 반공 내전을 중지하고 연공항일의 조건을 수락하게 한다.

일본 군대는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를 습격하면서부터 한 달여 동안 11세 소녀에서부터 60세 노파까지도 마구잡이로 폭행·유린하면서 무자비하게 30만 명이 넘는 중국 인민을 학살―난징 학살이 대표적이다―한다. 이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일제히 대일 항전에 합류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발전하자 국민당 중앙위원회가 9월 23일 (공산당이 7월에 제안한) 국공합작을 정식으로 공포한다. 장제스도 할 수 없이 공산당의 합법적 지위를 승인하는 취지의 담화를 발표한다. 이로써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이 정식으로 성립된다.

공산당은 통일 전선을 펼치면서도 독자적인 유격전과 항일 근거지 건설에 주력한다. 그런데 항일 투쟁이 진척되면서 왕징웨이 집단의 패배주의적 망국론과 근거 없이 낙관적인 속승론(速勝論)이 대두한다. 이에 마오쩌뚱은 1938년 5월 항일 전쟁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 ‘지구전에 대하여’를 발표한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일본군에게 점령된 지역과 산업에서 비밀 노조를 조직하면서 끈기 있게 활동한다.

그러나 장제스 일파는 1938년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 노동자협회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강제로 가입시키고 파업 반대와 공산주의 반대를 표방하면서 엄중히 통제한다. 그리고 국민당 대부르주아 친일파 왕징웨이 집단은 1939년 적에게 투항한다. 이 때문에 국공합작으로 고조되던 인민의 항전 분위기가 다시 침체된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마오쩌뚱은 1940년 1월 신민주주의 강령을 발표한다. 신민주주의 강령은 중국 혁명의 임무를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반제 반봉건이라고 규정하고 1단계에서는 반(半)식민지·반(半)봉건사회를 독립된 민주주의 사회로 바꾸고 2단계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에 따라 공산당은 근거지에 항일 민주 정권을 세우고 정부 기관과 민간 기관에서 공산당원·진보분자(소부르주아계급)·중간분자(중산계급·노동자·농민)가 각각 1/3을 차지하게 한다.

마오쩌뚱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긴박한 시기에도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학풍에서의 주관주의, 당풍에서의 분파주의, 문풍에서의 공론을 배격하자는 정풍 운동을 전개한다.

공산당은 항일 전쟁에서 가장 선두에 섬으로써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여 권력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1937년에 3만 명이던 당원과 4만 명이던 홍군은 1940년에 이르러서는 각각 80만 명과 50만 명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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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과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 김수행1998

<공산당선언>과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 『뉴스플러스』, 1998년 6월 18일호, 동아일보사

김 수 행 (서울대 교수. 경제학)

 『공산당선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자 동맹'의 이론적 실천적 강령으로서 1847 년 12월에서 1848년 1월 사이에 쓴 글이다. 마르크스가 30살이고 엥겔스가 28살 때의 일이다. 비록 길이는 짧지만 (우리말 번역서는 35쪽 안팎), 이 책만큼 마르크스 사상을 널리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한 책은 없다.

 

 『선언』은 다음과 같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3.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문헌, 4. 각종 반정부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

 

 『선언』은 자본주의가 사적 소유, 경쟁, 이윤 추구에 힘입어 끊임없이 기술을 혁신하고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생산력을 놀랄만큼 발달시키고 있다는 점을 올바르게 인정한다.

 

  "부르주아지는 100년도 채 못되는 그들의 계급 지배 동안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했다. 인간을 위해 자연력들을 정복한 것, 기계류, 화학을 공업과 농업에 응용한 것, 기선 항해, 철도, 전신, 농업경작을 위해 대륙 전체를 개간한 것, 하천의 운하화, 거대한 주민들".

 

  그러나 『선언』은 자본주의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투쟁은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서로 마주섰으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투쟁을 끊임없이 계속했는데, 이 투쟁으로 말미암아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재편되었든지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했다".

 

  둘째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 점점더 숫적으로 증가할 뿐 아니라 단결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곤 임금노예라는

'쇠사슬'뿐이지만 얻을 것은 새로운 세계 전체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자본주의에서는 주기적

으로 반복하여 경제위기 또는 공황이 발생하며, 이 경제위기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함

으로써 공장과 기계는 일을 멈추고 쉬지 않을 수 없고 노동자는 대규모로 실직하여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경쟁 및 이윤 추구가 더 이상 생산력을

발달시키거나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

지배계급은 공장이나 기계나 토지 등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키

고, 생산의 목적을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로부터 주민들의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변경시키며, 무정부적인 경쟁 대신에 계획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언』은 비밀결사인 '공산주의자 동맹'의 이론적 실천적 강령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타도라는 궁극목표를 천명할 뿐 아니라 매일매일의 당면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토지 소유의 철폐. 2. 고율의 누진세. 3. 상속권의 폐지. 4. 국가자본과 배타

적인 독점권을 가진 국립은행을 통해 신용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킬 것. 5. 통신수단과 수

송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킬 것. 6. 국가가 소유하는 공장과 생산수단을 증가시킬 것.

7. 모든 사람에게 노동할 의무를 부여할 것. 8. 농업과 공업의 결합. 농촌과 도시의 차이를

점차로 철폐할 것. 9. 모든 어린이에게 공공의 무상교육을 제공할 것. 등등.

이상이 『선언』의 내용이다. 비록 30살에 쓴 글이지만, 그 내용은 49살에 쓴 『자본론』

제1권이나 67살에 쓴 『고타강령 비판』에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선언』의 내용은 마

르크스의 생애 전체를 대표하는 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선언』이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가이다. 70여년 동안 유지되던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함으로써, 자본주의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든가 역사는 자본주의와 함께 종말을 고

한다는 사상이 널리 퍼지고 있는 지금,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의 타도를 외친

『선언』은 아무런 가치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먼저 소련과 동구 등 현실 사회주의가 『선언』에서 이야기하는 공산주의였는가라는 질문

을 던질 수 있다. 마르크스가 생산수단의 국유와 계획경제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나 억압을 철폐하고 주민들의 욕망이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는 지상 목표에 종속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경제를 계획적으

로 운영했지만, 정부 관료나 기업 경영자가 모든 주민이나 일반 근로자를 억압하고 지배했

던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생각한 공산주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선언』의

공산주의(또는 '새로운 사회')는 여전히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우리에게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서 『선언』의 현재적 의의를 살펴 보자.

첫째로 선진자본주의국에서는 1980년대 이래 복지국가의 제도들이 점점더 해체되고 있다.

학교와 병원이 모든 주민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제는 무료 서비스가 크게

줄어 들면서 사설 학교와 사설 병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주민들의 욕망

이나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원리가 퇴보하고 자본가의 이윤 추구가 더욱 확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새로운 사회'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둘째로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는 주기적으로 반복하여 경제위기나 공황에 부닥치고 있다.

1974-75년에는 제1차 석유가격 폭등으로 세계 전체가 위기에 빠졌고, 1981-82년에는 제2차

석유가격 폭등으로 위기에 빠졌으며, 1987년 10월에는 세계 전체의 증권시장이 1929년의 주

가폭락보다 더 큰 폭락에 직면했다. 그리고 1997년에는 타이, 인도네시아, 한국이 경제위기

에 빠졌고, 일본은 장기적인 불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나라들

이 모두 경제위기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반복하여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언』의 관점

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위기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도 경제위기가 재벌 때문에 발생했다든지,

노동운동 때문에 발생했다든지, 정경유착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

해 한국의 경제위기는 한국적인 특수사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일반적 속성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한국적인 특수사정이 경제위기의 발생시

기나 발생형태나 계속기간이나 탈출형태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셋째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

이라는 『선언』의 관점은 현재 더욱 분명히 증명되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

에 노동자계급의 세력이 매우 강력하여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를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고용을 보장하며, 실업자의 생존과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할 수 있다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로 변

혁될 것이다. 사실상 1950-80년의 스웨덴이 그러한 유형이었다. 그러나 지금 노동운동이 패

배하고 IMF와 정부 및 재벌이 일방적으로 승리한다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실업자의 격증,

빈부격차의 심화, 마약과 범죄의 격증,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폭동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넷째로 현재 자본은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이동하기 때문에, 1848년의 『선언』은 자본의

세계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마르크스

는 자본의 가치증식욕이 무한하기 때문에 자본은 모든 나라들에 침투할 뿐 아니라 모든 나

라들의 법률이나 조세제도를 동일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블루라운드나 그린라운드 등도 예측한 것이다. 또한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하면 노동운동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도,『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각국의 노동자계급

은 당연히 맨 먼저 자기 나라의 지배계급을 끝장내야 한다", 그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

하라".

『공산당선언』은 150년전의 유물이 아니라, 공황이 빈발하고 대량실업이 발생하며 소수

의 초국적 금융자본이 거대한 투기이득을 얻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를 이해하고 비판

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최갑수, "[공산당선언]의 현재적 의의" 내용요약

{공산당선언}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지침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당장에 기대한 것은 독일에서의 부르주아혁명이었다. 그러나 1848년의 '유럽혁명'은 {선언}이 예상했던 부르주아혁명은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망각하고 끝내 혁명을 배신했다. {선언}과 1848년의 경험과의 괴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선 그것은 {선언}의 역사적 분석의 배경이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전자본주의적인 사회구성인 데서 비롯하였다. {선언}은 세 가지 내지 네 가지 각기 다른 차원의 시간성을 가지며, 따라서 '먼 미래'(프롤레타리아혁명)와 '근접 미래'(독일의 자본주의적 미래) 그리고 '근접 과거'(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자본주의로의 이행)가 {선언}의 '현재'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 괴리는 저자들의 거시적인 역사관의 핵심인 이중혁명관 자체로부터 말미암았다. 영국은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분석의 본보기였고 그들은 영국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부르주아지의 상(像)을 그들이 얻어낸 곳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그들은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성과를 겹쳐놓음으로써 부르주아지와 자본가계급을 동일시하고 혁명적 부르주아지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바로 이러한 측면이 {선언}의 현재적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제대로 부르주아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 {선언}은 부르주아지를 위한 '송가(頌歌)'로,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사회주의의 미래를 위해 포기해서는 안될 역사적 담보물로 보인다. {선언}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있으며, 그것이 오직 계급투쟁을 통해 이룩될 것임을 웅변하고 있다. 세기말의 혼돈을 넘어 {선언}은 21세기가, 외적 팽창의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가 내부로부터 '지양(止揚)의 해체력'을 발견하게 될 것임을 새롭게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선언> 150주년 : '잊기 위하여'!

이해영(연구위원)




인간은 단순히 말만을 할 수 있는 동물은 아니다. 그들은 쓰고 읽을 수 있는 존재이다. 문자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먹고 사는 일이 아무리 엄혹하다 하더라도 다른 동물과 구분되고 나아가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일도 가능해 진다. 문자는 물론 밥이 아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아니 좀 더 인간답게 잘 살기 위해서는 밥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런 의미에서 문자는 존재 필수품이다.

이 고마운 문자로 쓰여진 지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인간답게 잘 살기'에 보탬이 되는 것들이 있다. 단연 여러 경전(經典)이 첫손에 꼽힌다. 그러나 성인의 경서에서 오늘날의 노동자가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지를 읽어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좀 더 노동자의 처지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또 세상 어디에 문제가 있으며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지를 좀 쉽게 알려 주는 문자들이 필요하다. 더불어 '노동자 세상'에 대한 소중한 꿈도 담겨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게다. 말하자면 노동자용 모험소설이라고 할 까?

청년기의 열정과 도전의식으로 가득찬 맑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세상에 나온 것은 지금부터 150년 전이다. 사실 이런 류의 구조 개혁을 촉구하는 선언서는 역사적으로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당시 그 어떤 요즘 식의 공산당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좀 '쫀쫀하게' 평하자면 급진적인 국제 지식인 써클 내지 정파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선언>은 새 세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이긴 하지만 한 때 세상을 바꾸어 보기도 하였다. 어쩌면 근대 이후 역사에서 이 짧은 팜플렛만큼 세상을 뿌리채 흔든 글도 드물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선언>의 중심사상에 그 이유가 있다.

첫째, <선언>은 사회의 경제적 토대가 역사발전의 기초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후 오늘날까지도 - 부당하게도 - 무슨 결정론이니 하는 욕을 먹고 있지만, 이 명제는 세상살이에 먹고 사는 문제의 엄중함과 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말만의 또는 머리속의 좋은 세상이 허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구조' 개혁의 사상이 확립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유관계의 재편을 포함한 사회의 발본적인 혁신 또는 구조 - 요즘말로 '시스템' - 의 개혁 과 교체 없이 노동자 생활의 근본적 변화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둘째, <선언>은 지금까지의 역사란 것이 그 어떤 달콤한 상부상조의 목가적 꿈의 세계가 아니라, 먹고 먹히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것도 먹는 계급과 먹히는 계급사이의 갈등과 투쟁의 세계였음을 보여준다. 이 서늘한 현실주의는 '노동자의 세상'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고 <선언>은 주장하는 것이다.

셋째, <선언>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 지를 제시한다. 요즘의 우리 말로 하면 한마디로 '정치세력화'이다. 그것도 단순히 군중이나 몇 몇 집단이 아니라, 전체 계급으로 조직된 정당의 불가피성을 주창한다. 그리고 모든 억압받는 계급과 사회 전체가 해방되지 않은 채, 노동자 자신만의 해방이 가능하지 않음을 <선언>은 강조한다. 이는 노동자운동이 계급이기주의나 혹은 계급 로비주의와 무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선언>이 오늘날 다시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적이거나 기념행사적인 데에 있지 않다. <선언>은 최근의 자본의 '세계화' 또는 이른바 '지구화'의 불가피성과 그 효과를 법칙적인 것으로 본다. 그 동안 체제경쟁으로 가리워 졌던 상황이 그 장막이 걷히면서 - 비교될 수 없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 150년전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선언>의 대안은 바로 국제적인 노동자 연대투쟁, 곧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것이었다. 지구적인 자본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국적인 노동운동의 현실에 비추어 다시금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듯이 <선언>과 '우리'사이에는 단지 15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뿐만 아니라, 좌절한 현존사회주의의 실험과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노동자 정당의 경험이라는 역사적 거리가 가로 놓여 있다. 하지만 그 거리는 이승과 저승처럼 결코 넘지 못할 그 무엇은 아닐게다.

<선언>이 발표된지 150년, 이제 잊혀 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잊기 위하여', 먼저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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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노동과 자본, 칼 맑스

임금 노동과 자본

 

사람들은 우리가 요즘의 계급 투쟁과 민족 투쟁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는 경제 관계들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해 왔다. 우리는 경제 관계가 정치적 충돌 속에서 직접 떠오를 때에만 의도적으로 언급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계급 투쟁을 추적하는 일, 또 날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역사적 자료를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일이 중요했다. 2월 혁명과 3월 혁명을 일으킨 노동자 계급이 진압됨과 동시에, 그들의 적들, 즉 프랑스의 부르주아 공화파, 유럽 대륙 어디서나 봉건적 절대주의에 맞서 투쟁했던 부르주아와 농민 계급도 패배했다는 사실, 프랑스에서 '점잖은 공화제'가 승리한 것은 동시에 영웅적인 독립 전쟁으로 2월 혁명에 응답한 여러 민족이 몰락한 것이기도 했다는 사실, 끝으로 혁명적 노동자들의 패배와 함께 유럽은 다시 그 옛날의 이중 노예제, 즉 영국--러시아의 노예제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사실 등을 입증해야 했던 것이다. 파리에서의 6월 투쟁, 빈 함락, 1848년 11월에 벌어진 베를린의 희비극, 폴란드와 이탈리아와 헝가리에서의 필사적인 노력, 아일랜드의 대기근, 이 모두가 유럽에서 벌어진 부르주아지와 노동자 계급 사이의 투쟁을 집약해 놓은 주요 계기들이었으며, 우리는 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입증했다. 모든 혁명적 봉기는 비록 그 목표가 계급 투쟁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승리하지 않는 한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모든 사회 개혁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봉건적 반(反)혁명이 무기를 들고 세계 대전을 치르지 않는 한에는 하나의 공상에 그친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우리들의 서술에서는 벨기에스위스가 역사의 거대한 화폭에 담긴 희비극적이고 희화적인 풍속화였는데, 전자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군주국이고 후자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으로 이 두 국가는 자신들이 계급 투쟁과도 관계없고 유럽의 혁명과도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1848년의 계급 투쟁이 대규모 정치 투쟁의 형태로 벌어진 것을 우리 독자들도 지켜 보았으므로, 이제 부르주아지의 존립과 그 계급 지배의 토대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 노예 제도의 토대이기도 한 경제 관계 그 자체를 좀더 상세히 파고들 때가 되었다.

  우리는 크게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하려고 한다. 1) 임금 노동과 자본의 관계, 노동자들의 노예 상태, 자본가들의 지배, 2) 현체제 밑에서는 피할 수 없는 중간 부르주아 계급들과 이른바 시민층의 파멸, 3) 세계 시장의 전제 군주인 영국에 의해 유럽 여러 민족의 부르주아 계급들이 겪는 상업적 예속착취.

  우리는 독자들이 정치 경제학의 가장 초보적인 개념조차 모르는 것으로 전제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고 쉽게 서술하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기존 상태를 옹호하는 특허 변호사들을 비롯하여 자칭 사회주의적 사기꾼들과, 사람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정치적 천재들---분열된 독일에는 이런 자들이 나랏님들보다도 더 많은데---에 이르기까지, 가장 간단한 경제 관계에 대해서도 그냥 보아넘길 수 없는 극심한 무지와 개념적 혼란이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첫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임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노동자들에게 "당신의 임금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나는 나의 부르주아로부터 일당 1마르크를 받는다."고 대답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2마르크를 받는다."등등의 대답을 할 것이다. 그들이 속해 있는 다양한 노동 부문에서 노동을 한 대가로, 예를 들면 아마포 한 자를 짜거나 전지(全紙) 한 장 분량을 조판하는 데 대한 보수로 그때그때마다 부르주아에게서 받는 다양한 금액을 제시할 것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금액이 다양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한 점에 귀착한다. 즉 임금이란 자본가가 정해진 노동 시간 또는 정해진 노동을 제공하는 데 대해 지불하는 금액인 것이다.

  따라서 마치 자본가는 돈으로 노동자의 노동을 사고, 또 노동자들은 돈을 받고 그에게 자신의 노동을 파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이다. 그들이 돈을 받고 자본가에게 파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노동력이다(승수의 도움말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는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한다. 노동은 시간이라는 단위로 잴수 있는 양을 뜻하며 노동력은 어떤 대상에 노동이라는 행위를 가할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둘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고용된 노동자가 잉여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잉여 노동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보자. 한국의 노동자들의 평균적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자신들이 하루에 일해야 할 평균 노동 시간이 4시간이라고 가정하자. 이것을 필요 노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들이 하루에 평균 8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4시간은 자신들의 생활과는 무관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노동을 잉여 노동이라고 하고, 이 노동에 의해 창출되는 가치를 잉여 가치라고 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노동자들은 4시간의 잉여 노동에 대해서는 그 대가를 지불 받지 못한 셈인 것이다. 그래서 잉여 노동을 불불(不拂) 노동이라고도 한다.). 자본가는 이 노동력을 하루, 한 주일, 한 달 등의 단위로 산다. 그리고 노동력을 산 뒤에 그는 계약 기간에 노동자를 부림으로써 그것을 쓴다. 자본가는 자신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산 바로 그 금액, 예를 들면 2마르크로 2파운드의 설탕이나 정해진 분량의 다른 어떤 상품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가 2파운드의 설탕을 사는 데 쓴 2마르크는 설탕 2파운드의 가격이다. 그가 12시간 동안 쓸 노동력을 사는 데 쓴 2마르크는 12시간 노동의 가격이다. 따라서 노동력은 설탕보다 나을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는 하나의 상품이다. 전자는 시계로, 후자는 저울로 측정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숭품인 노동력을 자본가의 상품인 화폐와 교환하며, 이 교환은 정해진 비율에 따라 이루어진다. 즉 정해진 시간 동안 사용될 노동력이 정해진 양의 화폐와 교환되는 것이다. 12시간 동안 베를 짜는 작업은 2마르크와 교환된다. 그런데 이 2마르크는 내가 2마르크로 살 수 있는 다른 모든 상품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사실상 노동자는 자신의 상품인 노동력을 모든 종류의 상품과, 그것도 정해진 비율로 교환해 왔던 것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2마르크를 줌으로써 그에게 그만큼의 고기, 그만큼의 옷, 그만큼의 땔감, 그만큼의 등잔불 등등을 그의 노동일(勞動日)과 교환해 준 셈이다. 따라서 이 2마르크는 노동력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 즉 그의 노동력의 교환 가치를 나타낸다. 화폐로 표현된 상품의 교환 가치가 바로 상품의 가격인 것이다. 따라서 임금이란 사람들이 보통 노동의 가격이라고 부르는 노동력의 가격을 가리키는, 즉 인간의 피와 살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 독특한 상품의 가격을 가리키는 특별한 이름일 뿐이다.

  한 노동자, 예를 들어 직조공을 생각해 보자. 자본가는 그에게 직조기와 실을 제공한다. 직조공은 일에 착수하며, 실은 아마포가 된다. 자본가는 그 아마포를 차지하고 그것을 예컨대 20마르크에 판다. 그러면 직조공의 임금은 아마포 가운데 한 부분, 20마르크 가운데 한 부분, 그의 노동 새산물 가운데 한 부분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아마포가 팔리기 훨씬 전에, 어쩌면 그것이 완성되기 훨씬 전에 직조공은 자신의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가는 아마포를 팔아서 생기는 돈으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돈으로 지불한다. 부르주아가 제공한 직조기와 실이 족조공의 생산물이 아니듯이, 그가 자신의 상품인 노동력과 교환하여 받은 삼품들도 그의 생산물이 아니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아마포를 살 사람을 전혀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그가 그것을 판다고 하더라도 임금조차 뽑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 그는 그것을 직조공의 임금에 비해 아주 많은 이윤을 남기고 팔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직조공과 아무 상관도 없다. 자본가는 자신이 이미 지니고 있던 재산, 즉 자기 자본의 일부분으로 직조공의 노동력을 사며, 이것은 그가 자기 재산의 다른 부분으로 원료---실---와 노동 도구---직조기---를 사는 것과 꼭 마찬가지다. 아마포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포함해 이것들을 다 산 뒤에 자본가는 생산을 하게 되며, 이때 원자재와 노동 도구는 단지 그의 것일 뿐이다. 물론 우리의 착한 직조공도 후자(노동도구--역자)에 속하는데, 그는 직조기와 마찬가지로 생산물이나 생산물의 가격 가운데에 자기 몫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 속에 들어 있는 노동자의 몫이 아니다. 임금은 자본가가 얼마만큼의 생산적 노동력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기존 상품의 일부다.

  따라서 노동력은 그 소유자인 임금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파는 하나의 상품이다. 그는 왜 그것을 파는가? 살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동력의 활용, 즉 노동은 노동자 자신의 생명 활동이며 자기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필요한 생활 수단을 확보하려고 이 생명 활동을 제3자에게 파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생명 활동이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살려고 일하는 것이다. 그는 노동이 자기 삶의 일부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그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제3자에게 내맡긴 하나의 상품이다. 따라서 그가 활동해 낳는 산물도 그가 활동하는 목적이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생산하는 것은 그가 짜는 비단도 아니고, 그가 광산에서 캐 내는 금도 아니며, 그가 짓는 궁전도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 생산하는 것은 임금이며, 비단·금·궁전이 그에게 오면 정해진 양의 생활 수단으로, 아마 면재킷이나 동전이나 지하실 주택으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12시간 동안 천을 짜고, 실을 뽑고, 구멍을 뚫고, 선반을 돌리고, 집을 짓고, 땅을 파고, 돌을 깨고, 짐을 나르는 등등의 일을 하는 노동자가 이 12시간 동안의 옷감짜기, 실뽑기, 구멍뚫기, 선반 작업, 집짓기, 삽질, 돌깨기를 자기 삶을 드러내는 것으로, 즉 삶으로 여기겠는가? 정반대다. 그의 삶은 이러한 활동이 멈출 때, 이를테면 식탁에서, 선술집 의자에서, 잠자리에서 시작된다. 반면에 12시간의 노동이 그에게 뜻 있는 이유는 그것이 옷감짜기, 실뽑기, 구멍뚫기 등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식탁으로, 선술집 의자로, 잠자리로 데려다 주는 벌이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에가 애벌레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실을 뽑는다면, 그 누에는 틀림없는 임금 노동자일 것이다. 노동력이 늘 상품이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은 늘 임금 노동, 다시 말해서 자유로운 노동이었던 것이 아니다.황소가 자신의 능력을 농부에게 팔지 않듯이, 노예도 자신의 노동력을 노예 소유주에게 팔지 않았다. 노예는 자신의 노동력과 함께 통째로 그 소유자에게 영원히 팔리기 때문이다. 그는 한 소유자의 손에서 다른 소유자의 손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품이다. 그 자신이 상품이며, 노동력이 그의 상품인 것은 아니다. 농노는 자기 노동력의 일부만을 판다. 그가 지주에게서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지주가 그에게서 공납을 받아 낸다.

  농노는 토지에 딸려 있으며 토지의 주인에게 수확물을 바친다. 반면에 자유로운 노동자는 자기 자신을 팔며, 그것도 토막으로 나누어서 판다. 그는 날마다 자기 삶에서 8·10·12·15시간은 그것을 산 사람의 것이다. 노동자는 그가 바라면 언제라도 자신을 고용한 자본가에게서 떠나며, 또 자본가도 그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곧바로 노동자를 해고한다. 즉 그가 노동자에게서 이득을 보지 못하거나 기대했던 것만큼 이득을 보지 못하면 곧 해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력 판매가 유일한 소득원인 노동자는 굶어 죽지 않으려면 구매자 계급 전체, 즉 자본가 계급을 떠날 수가 없다. 그는 이 자본가 또는 저 자본가의 소유물은 아니지만 자본가 계급의 소유물인 셈이다. 따라서 그가 할 일은 주인을 찾는 것, 즉 이 자본가 계급 속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살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를 좀더 상세히 다루기 전에, 임금 결정에 영향을 주는 가장 일반적인 사정들을 간단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미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임금이란 상품, 즉 노동력의 가격이다. 따라서 임금은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법칙과 똑같은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면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물음이 나온다.
 
 
 

 

상품의 가격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의 경쟁에 의해, 공급에 대한 수요의 관계, 수요에 대한 공급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경쟁은 세 측면을 갖는다.

  똑같은 상품을 서로 다른 판매자들이 공급한다. 똑같은 품질의 상품을 가장 싸게 파는 사람이 나머지 판매자들을 누르고 최대의 판로를 확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판매자들은 판로, 즉 시장을 찾아서 앞다투어 투쟁한다. 그들은 모두 팔기를 바라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팔기를 바라며, 될 수만 있다면 나머지 판매자들을 밀어내고 혼자서 팔기를 바란다. 따라서 제각기 다른 사람보다 싸게 판다. 그래서 판매자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은 공급하는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구매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일어나며, 이것은 다시 공급되는 상품의 가격을 올린다.

  끝으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경쟁이 일어난다. 전자는 될 수 있는대로 싸게 사려고 하고, 후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비싸게 팔려고 한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경쟁의 결과는 앞에서 제시된 경쟁의 두 측면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즉 경쟁이 구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 아니면 판매자 진영에서 더 심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산업은 두 진영의 군대를 싸움터에 끌어들여 서로 싸우게 하며, 그들 각자는 또 자기 군대의 대열 안에서도 전투를 치른다. 자기 대열 안에서 난투극을 가장 적게 벌이는 군대가 상대를 누르고 승리한다.

  시장에 100꾸러미의 면화가 나와 있는데, 살 사람은 1000꾸러미를 바란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수요가 공급의 10배나 된다. 따라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치열할 것이며, 그들은 각각 한 꾸러미라도, 될 수만 있다면 100꾸러미 모두를 혼자서 차지하려 할 것이다. 이 예는 멋대로 꾸며 낸 것이 아니다. 상업의 역사를 보면 면화가 흉작일 때 서로 동맹을 맺은 몇몇 자본가들이 100꾸러미가 아니라 지구상의 면화 재고량 모두를 다 사들이려고 한 시기가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어떤 한 구매자가 면화 꾸러미를 비교적 더 비싼 값에 사들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려고 할 것이다. 적군의 대열 속에서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100꾸러미가 모두 팔릴 것을 확신한 판매자들은 상대편에서 앞다투어 가격을 올리고 있는 순간에 내분을 일으켜 상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이다. 따라서 판매자 진영 안에는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다. 그들은 냉철하게 팔짱을 끼고 마치 사람처럼 단결하여 구매자들과 대립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야겠다는 사람들조차 그 이상은 더 못 내겠다는 명확한 한도를 제시하지 않는 한, 그들의 요구에는 한도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한 상품의 공급이 이 상품에 대한 수요보다 적을 때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아주 미약하거나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이 줄어드는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은 심해진다. 그 결과 상품 가격은 많든 적든 뚜렷하게 올라간다.

  잘 알려진 대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정반대의 경우가 더 자주 일어난다. 공급이 수요를 훨씬 더 넘어서는 경우에는 판매자들 사이의 필사적인 경쟁, 구매자의 부족, 상품을 헐값으로 팔아 치우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가격의 오름과 내림이란 무엇을 뜻하며, 높은 가격과 낮은 가격은 무엇을 뜻하는가? 모래알도 현미경으로 보면 커 보이고 탑도 산과 비교하면 낮은 것이다. 그리고 가격이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써 결정된다면, 수요와 공급의 관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길 가는 부르주아 가운데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 보자. 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또 하나의 알렉산더 대왕처럼 이 형이상학적 매듭을 구구단으로 끊어 버릴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일 내가 파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100 마르크가 들었고 내가 이 상품을 팔아서 110 마르크를 받는다면, ---물론 1년이 지난 뒤에---그것은 얼마 안 되는 공정하고 적절한 이득이다. 만일 내가 교환을 통해서 120, 130 마르크를 받는다면, 그것은 높은 이득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200 마르크씩이나 받는다면, 그것은 엄청나고도 굉장한 이득이다. 그러면 부르주아에게 이윤의 척도 노릇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상품의 생산비다. 그가 이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손해를 본 셈이다. 또 자기 상품을 정해진 양의 다른 상품들, 생산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상품들과 교환했다면, 그는 이득을 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상품의 교환 가치가 영(零)---생산비---보다 낮은가 높은가 하는 정도에 따라 이득의 오르내림을 계산한다.

  우리는 이미 수요와 공급 사이의 변동 관계가 때로는 가격을 올리고 때로는 내리며, 때로는 낮은 가격, 때로는 높은 가격을 형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보았다. 만일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지나치게 늘어나서 어떤 상품의 가격이 올라간다면, 어떤 다른 상품의 가격이 반드시 그만큼 떨어진다. 왜냐하면 상품의 가격이란 그것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을 화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단 한 자의 가격이 5마르크에서 6마르크로 올랐다면 은의 가격은 비단에 비해 떨어진 것이며, 또 그와 마찬가지로 예전 가격에 묶여 있는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격도 비단에 비해 떨어질 것이다. 이제 똑같은 양의 비단을 얻으려면 교환할 때 더 많은 양의 다른 상품을 주어야 한다. 한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많은 양의 자본이 번창하는 산업 부문에 몰릴 것이며, 자본이 이처럼 더 유리한 산업 영역으로 몰려드는 사태는 그 부문에서 얻는 이득이 보통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아니 오히려 그 생산물의 가격이 과잉 생산 때문에 생산비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반대로 한 상품의 가격이 그 생산비 밑으로 떨어지면, 자본은 이 상품을 생산하는 데서 손을 뗄 것이다. 한 산업 부문이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아서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빼면, 자본의 이 같은 도피는 그 상품의 생산, 즉 공급을 줄일 것이며, 이것은 그 공급이 수요와 맞아떨어질 때까지, 따라서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 수준으로 오를 때까지, 아니 오히려 공급이 수요보다 더 적어질 때까지, 즉 그 가격이 다시 생산비보다 더 오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 상품의 시가(時價)는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이 한 산업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거나 흘러 들어오는 것을 본다. 높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입을 낳고, 낮은 가격은 지나치게 심한 유출을 낳는다.

  우리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경우,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도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서 너무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방금 본 바와 같이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한 상품의 가격을 늘 다시 생산비로 되돌려 보낸다. 상품의 실제 가격은 늘 생산비보다 높거나 낮다. 그러나 오르내림은 서로 상쇄되므로, 얼마 동안 산업에서 나타난 썰물과 밀물을 합산해 보면 상품은 그 생산비에 따라 교환되며, 따라서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

  이처럼 생산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경제학자들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된다.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평균 가격이 생산비와 같다고 말하며, 이것은 법칙이라는 것이다. 가격의 오름은 내림으로 또 내림은 오름으로 서로 상쇄되는 이 무정부적인 운동을 그들은 우연으로 여긴다.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똑같은 권리로 가격의 변동을 법칙으로 여기고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을 우연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동, 즉 자세히 살펴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황폐화를 수반하며 마치 지진처럼 부르주아 사회를 기초에서부터 뒤흔드는 이 변동 과정 속에서만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무질서 운동 전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질서다. 이 같은 산업의 무정부 상태의 과정 속에서, 즉 이 같은 순환 운동 속에서 경쟁은 말하자면 한 극단을 다른 극단으로써 상쇄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은 그 상품의 가격이 생산비 이상으로 오르는 시기가 그것이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에 의해 상쇄되는 방식으로, 또는 그 반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은 공산품 하나하나마다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 부문 전체에만 해당한다. 따라서 이것은 개별 산업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가 계급 전체에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산비에 의한 가격 결정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한 가격 결정과 똑같다. 왜냐하면 생산비는 첫째, 원자재와 도구의 마모분으로, 즉 그 생산에 얼마만큼의 노동일이 들었고 따라서 얼마만큼의 노동 시간을 나타내는 공산품으로 이루어지며, 둘째, 바로 시간이 그 척도가 되는 직접적 노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상품의 가격을 일반적으로 규제하는 바로 그 일반 법칙이 당연히 임금, 즉 노동의 가격도 규제한다.

  노동의 임금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따라, 즉 노동력의 구매자인 자본가와 노동력의 판매자인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어떠냐에 따라 때로는 오르고 때로는 내릴 것이다. 임금의 변동은 대체로 상품 가격의 변동에 상응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동 속에서 노동의 가격은 생산비에 의해,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면 노동력의 생산비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를 노동자로 유지시키고 또 그를 노동자로 길러 내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을 길러 내는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 노동의 가격, 즉 임금도 낮아진다. 숙련 기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단지 노동자의 육체적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산업 부문에서는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생산비가 거의 생명과 노동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상품에만 국한된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의 가격은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격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공장주는 자기 생산비와 이에 따른 생산물 가격을 계산할 때, 노동 도구의 소모분을 계산에 넣는다. 예를 들어 그가 어떤 기계를 사는 데 1000마르크를 들였고 또 이 기계는 10년 동안 쓰고 나면 닳아 없어진다면, 그는 10년 뒤에 이 기계를 새 것으로 바꾸려고 해마다 100마르크를 상품 가격에 포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 속에는 노동자 종족이 번식하고 또 닳아 없어진 노동자들을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할 수 있기 위한 비용, 즉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이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기계의 마모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마모 또한 계산에 포함된다.

  따라서 단순한 노동력의 생산비는 노동자의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으로 귀착한다. 이러한 생존비와 대를 이어 가는 비용의 가격이 임금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되는 임금을 최저 임금이라고 한다. 생산비에 의한 상품 가격의 결정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이 최저 임금은 개별적인 개인이 아니라 유(類) 전체에 대해서 타당한 것이다. 노동자 개개인,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생존하고 대를 이어 갈 수 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전체의 임금은 변동 속에서도 이 최저치에 일치하게 된다.

  임금과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규제하는 가장 일반적인 법칙을 알아 보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주제를 좀더 자세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은 새로운 원자재와 새로운 노동 도구와 새로운 생활 수단을 생산하려고 사용되는 원자재와 노동 도구와 각종 생활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구성 부분은 노동의 창조물이고, 노동의 산물이며, 축적된 노동이다. 축적된 노동, 즉 새로운 생산에 도구로 쓰이는 노동이 곧 자본이다.

  경제학자들은 위와 같이 말하고 있다.

  흑인 노예란 무엇인가? 흑인종에 속하는 한 인간이다. 위의 설명은 이런 식의 설명이나 마찬가지다.

  흑인은 흑인이다. 어떤 관계를 맺을 때에만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 면방적기는 면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다. 어떤 관계 속에서만 그것은 자본이 된다. 이 관계에서 떼어 냈을 때 그것은 자본이 아니다. 이는 마치 금이 그 자체로는 화폐가 아니며, 설탕이 설탕 가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생산 속에서 인간은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서로서로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친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서로 교환함으로써만 생산을 하게 된다. 생산하려고 인간은 어떤 관계와 관련을 맺으며, 또 그들은 이러한 사회 관계와 관련 속에서만 자연에 대해 작용을 가하고 생산을 하게 된다.

  생산자들 서로간에 맺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 즉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활동을 교환하고 생산이라는 공동 행위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조건은 생산 수단의 성격에 따라서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총포라는 새로운 전쟁 도구가 발명되면서 군대의 내부 조직 전체가 반드시 바뀔 수밖에 없었고, 각 개인을 군대의 일원으로 만들고 군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 바뀌었으며, 다양한 병과(兵科)들 사이의 관계도 바뀌었다.

  개인들로 하여금 생산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 관계, 즉 사회적 생산 관계는 따라서 물질적 생산 수단과 생산력의 변화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며 변모한다. 총체로서의 생산 관계는 사람들이 사회라고 부르는 사회 관계를 형성하며, 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역사적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사회를 형성한다. 고대 사회, 봉건 사회, 부르주아 사회는 그러한 생산 관계의 총체이며, 각 생산 관계는 동시에 인류 역사 발전의 특수한 한 단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도 사회적인 생산 관계다. 그것은 부르주아적인 생산 관계, 즉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 관계다. 자본을 이루는 생활 수단·노동 도구·원자재 등 모든 것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즉 어떤 사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축적된 것이 아닌가? 그것들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어떤 사회 관계 속에서 새로운 생산에 쓰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바로 이 사회적 성격이 새로운 생산을 위해 쓰이는 생산물들을 자본으로 바꾸지 않는가?

  자본은 생활 수단·노동 도구·원자재로만, 즉 물질적 생산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환 가치로도 이루어진다.

  그것을 이루는 모든 생산물은 상품이다. 따라서 자본은 일정한 양의 물질적 생산물일 뿐만 아니라, 일정한 양의 상품, 교환 가치, 즉 사회적 크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양털 대신에 면화를, 밀 대신에 쌀을, 철도 대신에 기선을 갖다 놓는다고 하더라도, 면화·쌀·기선---자본의 육체---이 예전에 그것의 육체 노릇을 했던 양털·밀·철도와 똑같은 교환 가치, 즉 똑같은 가격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그 자본은 여전히 그대로다. 자본은 조금도 바뀌지 않으면서도 자본의 육체는 끊임없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본이 일정한 양의 상품, 즉 교환 가치라 하더라도, 일정한 양의 상품, 즉 교환 가치가 다 자본은 아니다.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는 모두 하나의 교환 가치다. 개별적인 교환 가치는 모두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다. 예를 들어 1000마르크짜리 집은 1000마르크의 교환 가치다. 1페니히짜리 종이 한 장은 100/100페니히라는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다. 다른 생산물과 교환할 수 있는 생산물은 상품이다. 생산물이 교환되는 정해진 비율이 그것의 교환 가치를 이루며, 또 이를 화폐로 표현하면 그 가격이다. 이 생산물의 양은 그것의 본분, 즉 상품이 되거나 교환 가치를 나타내거나 어떤 가격을 갖거나 하는 본분을 결코 바꿀 수 없다. 크든 작든간에 나무는 여전히 나무인 것이다. 철을 다른 생산물들과 교환할 때 근(斤)으로 하든 관(貫)으로 하든, 그것 때문에 철의 성격, 즉 교환 가치인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바뀌겠는가? 양에 따라서 철은 더 많거나 더 적은 가치를 지닌 상품, 더 높거나 더 낮은 가격의 상품이 될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일정한 양의 상품, 일정한 양의 교환 가치가 자본이 되는가?

  그것이 자립적인 사회적 으로서, 즉 사회의 일부분이 갖는 힘으로서, 직접적인 산 노동력과의 교환을 통해 보존되고 늘어나는 것에 의해서다. 노동 능력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계곱의 존재가 자본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직접적인 산 노동을 축적된 과거의 대상화한 노동이 지배함으로써 비로소 축적된 노동이 자본으로 바뀐다.

  자본의 본질은 축적된 노동이 새로운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서 산 노동에 봉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본질은 산 노동이 축적된 노동의 교환 가치를 유지하고 늘리는 수단으로서 축적된 노동에 봉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 사이에서 교환이 이루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과 교환하여 생활 수단을 얻는다. 그러나 자본가는 자신의 생활 수단과 교환하여 노동, 노동자의 생산 활동, 창조적인 힘을 얻는데, 이 힘을 통해 노동자는 자신이 소비하는 것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축적된 노동에 그것이 원래 갖고 있던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본가로부터 당장 쓸 생활 수단의 일부를 받는다. 그는 이 생활 수단을 어디에 쓰는가? 직접적인 소비에 쓴다. 그러나 내가 생활 수단을 써 버리자마자, 나는 그것을 잃어버리며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된다. 즉 이 수단이 나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시간을 이용해 내가 새로운 생활 수단을 생산하지 않는 한, 소비하는 동안에 써서 없애 버리는 가치 대신에 새로운 가치를 나의 노동으로 창조하지 않는 한에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바로 이 귀중한 재생산의 힘을 자신이 받은 생활 수단과 교환하여 자본가에게 넘겨준다. 따라서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이 힘을 잃어버린 셈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차지(借地) 농업가가 자신의 날품팔이 노동자에게 일당으로 은화 5그로쉔을 준다고 하자. 은화 5그로쉔을 받고 이 노동자는 차지 농업가의 밭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여 결국 그에게 10그로쉔만큼의 수입을 확보해 준다. 차지 농업가는 자신이 날품팔이 노동자에게 건네주어야 하는 가치만을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2배로 늘리게 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날품팔이 노동자에게 준 은화 5그로쉔을 실속 있게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소비한 셈이다. 이 은화 5그로쉔을 가지고 그는, 2배의 가치를 갖는 농산물을 생산하여 5그로쉔을 10그로쉔으로 만드는 날품팔이 노동자의 바로 그 노동과 힘을 샀던 것이다. 반면에 날품팔이 노동자는 그가 바로 차지 농업가에게 그 작용의 결과를 넘겨주어 버린 자신의 노동력 대신에 은화 5그로쉔을 얻는다. 그는 이 돈을 생활 수단과 교환하며, 얼마 안 있어 그것을 다 써 버린다. 따라서 이 5그로쉔은 이중으로 소비된 셈이다. 그 자본을 위해서는 재생산에 쓰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비생산적으로 쓰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한번 쓰면--역자)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생활 수단과 교환되었고, 노동자는 차지 농업가와 똑같은 교환을 되풀이함으로써만 그 가치를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은 임금 노동을 전제로 하며 임금 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한다. 둘은 서로서로 제약하며, 서로를 산출해 낸다.

  면방직 공장의 노동자가 면직물만을 생산하는가? 아니다. 그는 자본을 생산한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지휘하고 이를 매개로 다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쓰이는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력과 교환됨으로써만, 즉 임금 노동을 가동함으로써만 늘어날 수 있다. 임금 노동자의 노동력은 자본을 늘림으로써만, 즉 자신을 노예로 삼고 있는 힘을 강화함으로써만 자본과 교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을 늘리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즉 노동자 계급을 늘리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의 이해 관계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는 똑같다고 부르주아들과 그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사실 그렇다! 노동자는 자본이 고용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된다. 자본은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되며, 착취하려면 그것을 사야만 한다. 생산을 위해 쓰이는 자본인 생산 자본이 급속히 늘어날수록, 따라서 산업이 번창할수록,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가 부유해질수록, 사업이 잘되면 잘될수록 자본가에게는 더욱더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며, 노동자는 더욱더 비싼 값에 팔리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의 상태를 그럭저럭 살 만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조건은 생산 자본이 될 수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 자본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산 노동에 대한 축적된 노동의 힘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지배가 성장하는 것이다. 만일 임금 노동이 자신을 지배하는 다른 사람의 부(富)이자 자신의 적대 세력인 자본을 생산한다면, 임금 노동이 다시 자본의 일부가 된다는 조건, 즉 자본을 가속화하는 성장 운동 속에 다시 투입하는 지렛대가 된다는 조건에서 일거리, 즉 생활 수단이 자본으로부터 다시 흘러 나오게 된다.

  자본의 이해 관계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가 똑같다는 말은 자본과 임금 노동이 한 관계의 두 측면이라는 뜻일 뿐이다. 한 쪽이 다른 쪽을 제약하는 것은 마치 고리 대음업자와 방탕한 인간이 서로서로 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임금 노동자가 임금 노동자인 한, 그의 운명은 자본에 달려 있다. 이것이 그토록 칭송받고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의 공통성이다.

 

자본이 커지면 임금 노동의 양도 그만큼 늘어나며, 노동자의 수도 그만큼 많아진다. 한마디로 말해, 자본이 더 많은 수의 개인들까지 지배하게 된다. 가장 좋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생산 자본이 성장하면, 노동에 대한 수요도 커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가격인 임금도 올라간다.

  어떤 집이 아무리 작더라도 이 집을 둘러싸고 있는 집들이 한결같이 작다면, 그 집은 주택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채워 준다. 그러나 작은 집 옆에 궁전이 하나 있다면, 그 작은 집은 오두막집처럼 오그라들고 말 것이다. 이제 이 작은 집은 그 소유자가 요구하는 바가 전혀 없거나 아주 작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또 문염ㅇ이 진보함에 따라 집이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옆에 있는 궁전이 똑같은 정도로 또는 더 높이 치솟는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울 안에서 더욱더 불쾌하고 물만스러복 짓눌린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임금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게 오르려면 생산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생산 자본의 급속한 성장은 부, 사치, 사회적 욕구와 쾌락의 급속한 성장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노동자의 쾌락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는 사회적 만족은 노동자가 넘볼 수 없는 자본가의 늘어난 쾌락에 비하면, 사회의 발전 상태 일반에 비하면 줄어드는 셈이다. 우리의 욕구와 쾌락은 사회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를 기준으로 그것을 재는 것이지 그것을 채워 주는 대상을 기준으로 재는 것은 아니다. 욕구는 사회적 본성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본성이다.

  임금은 일반적을오 그것과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의 양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관계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받는 것은 정해진 양의 화폐다. 임금은 단지 화폐 가격에 의해서만 결정되는가?

  16세기에 아메리카에서 더 풍부하고 더 쉽게 가공할 수 있는 광산들이 발견된 결과, 유럽에서 유통되는 금과 은이 늘어났다. 그러므로 금과 은의 가치가 나머지 상품들에 비해 떨어졌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예전과 똑같은 양의 은화를 받았다. 그들의 노동의 화폐 가격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들의 임금은 떨어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똑같은 양의 은과 교환하여 더 적은 양의 다른 상품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6세기에 자본의 성장, 즉 부르주아지의 대두를 촉진한 사정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또 다른 경우를 들어 보자. 1847년 겨울에 흉작으로 말미암아 없어서는 안 될 생활 수단들, 이를테면 곡물·고기·버터·치즈 등의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력의 대가로 예전과 같은 양의 화폐를 받았다고 해 보자. 그들의 임금은 떨어지지 않았는가? 물론 떨어졌다. 교환을 할 때 그들은 똑같은 돈을 주고도 더 적은 빵과 고기 등등을 얻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임금이 떨어진 것은 은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 수단의 가치가 커졌기 대문이다.

  끝으로, 노동의 화폐 가격은 그대로인 반면에 모든 농산물과 공산품의 가격은 새로운 기계의 사용, 좋은 날씨 등으로 말미암아 떨어졌다고 해 보자. 이제 노동자들은 똑같은 돈을 주고 모든 종류의 상품을 더 많이 살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임금은 화폐 가치가 변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오른 셈이다.

  따라서 노동의 화폐 가격인 명목 임금은 실질 임금, 즉 임금과 교환하여 실제로 받는 상품의 양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임금의 오르내림에 대해 논할 때 노동의 화폐 가격인 명목 임금만을 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명목 임금, 즉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자본가에게 파는 대가인 화폐 액수도, 또 실질 임금, 즉 이 화폐로 그가 살 수 있는 상품의 양도 임금 속에 포함된 관계들을 남김없이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임금은 무엇보다도 자본가의 이득인 이윤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도 한데, 이것이 비교·상대적 임금이다.

  실질 임금이 노동의 가격을 나머지 상품들의 가격과의 관계로 표현하는 반면에, 상대적 임금은 노동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가치 가운데서 직접적인 노동이 받는 몫을 축적된 노동, 즉 자본이 차지하는 몫과의 관계로 표현한다.

  우리는 위 14쪽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 속에 들어 있는 노동자의 몫이 아니다. 임금은 자본가가 얼마 만큼의 생산적 노동력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기존 상품의 일부다." 그러나 자본가는 노동자가 만든 생산물을 파는 가격에서 다시 이 임금을 보상해 주어야 한다. 그는 이것을 보상할 때 보통 자신이 지출한 생산비를 초과하는 잉여분, 즉 이윤이 남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노동자가 만든 상품의 판매 가격은 자본가 쪽에서 보면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로 그가 미리 지불한 원자재 가격에 대한 보상, 이어서 또한 그가 미리 지불한 도구·기계와 다른 노동 수단들의 마모분에 대한 보상, 둘째로 그가 미리 지불한 임금에 대한 보상, 셋째로 이것을 초과하는 잉여분, 즉 자본가의 이윤이 그것이다. 첫째 부분이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가치만을 보상하는 반면에, 임금에 대한 보상이나 자본가의 잉여분, 즉 이윤은 대체로 노동자의 노동으로 창조된 가치, 원자재에 덧붙은 새로운 가치에서 나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임금과 이윤을 서로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둘 모두를 노동자가 만든 생산물의 몫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실질 임금은 그대로인 채, 심지어 오르기까지 하면서도,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생활 수단의 가격이 2/3씩 내렸는데, 하루치 임금은 1/3만, 예를 들어 3마르크에서 2마르크로 내렸다고 하자. 비록 노동자가 2마르크를 가지고, 예전에 3마르크를 주고 살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그의 임금은 자본가의 이윤에 비해 줄어든 셈이다. 자본가(예를 들어 공장주)의 이윤은 1마르크 늘어났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는 이제 자본가에게서 적은 액수의 교환 가치를 받고 전보다 더 많은 액수의 교환 가치를 생산해야만 한다. 자본의 몫은 노동의 몫에 비해 늘어났다. 사회적 부가 자본과 노동 사이에 분배되는 비율이 더욱 불평등해졌다. 자본가는 똑같은 자몬으로 더 많은 양의 노동을 지배한다.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는 자본가 계급의 힘은 더 커진 반면에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나빠졌으며 자본가의 지위 아래로 한 단계 더 떨어진 것이다.

  그러면 임금과 이윤의 관계에서 그 오르내림을 결정하는 일반 법칙은 무엇인가?

  둘은 서로 반비례한다. 자본의 몫인 이윤은 임금의 몫인 하루치 임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올라가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윤은 임금이 떨어지는 만큼 올라가며, 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떨어진다.

  아마 다음과 같이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자본가는 그의 생산물을 유리한 조건으로 다른 자본가들과 교환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예전 시장에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한 결과, 그의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이득을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가의 이윤은 임금, 즉 노동력의 교환 가치의 오르내림과는 상관없이 다른 자본가들을 속임으로써 늘어날 수도 있다. 또는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 도구의 개선, 자연력의 새로운 이용 등등을 통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먼저 우리는 비록 정반대의 과정을 거쳐 생겨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윤이 늘어난 것은 임금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니지만, 임금이 떨어진 것은 이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똑같은 양의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의 교환 가치를 사들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에게 더 높은 액수를 지불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노동이 자본가에게 가져다 준 순이익에 비해 노동은 더 낮은 액수를 지불받은 것이다.

  게다가 상품의 가격은 변동하는데도 각 상품의 평균 가격, 즉 그것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은 그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자본가 계급 안에서 저희들끼리 속이고 속는 것은 반드시 상쇄될 수밖에 없다. 기계를 개량하거나 생산을 위해 자연력을 새롭게 이용하는 것은 같은 노동 시간에 같은 양의 노동과 자본을 가지고 더 많은 양의 생산물을 창조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많은 양의 교환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내가 방적기를 사용해 그 기계를 발명하기 전보다 시간당 2배의 실, 예를 들어 50파운드 대신에 100파운드의 실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길게 보면 나는 이 100파운드와 교환해 예전에 50파운드를 주고 얻었던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비가 절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며, 다시 말하면 같은 비용으로 2배의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나라 또는 전세계 시장의 자본가 계급, 즉 부르주아지가 생산의 순이익을 저희들끼리 어떤 비율로 나누든간에 이 순이익의 총액은 언제나 대체로 직접 노동에 의해 늘어난 축적된 노동의 총량일 뿐이다. 따라서 이 총액은 노동이 자본을 늘리는 것과 같은 비율로, 즉 이윤이 임금에 비해 높아지는 것과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 안에서만 보더라도 자본의 이해 관계와 임금 노동의 이해 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은 이윤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과 똑같다. 이윤은 노동의 가격, 즉 상대적 임금이 그만큼 급속히 줄어들 때에만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 명목 임금, 즉 노동의 화폐 가치와 더불어 실질 임금까지 오르는 경우에도, 실질 임금이 이윤과 같은 비율로 오르지 않는 한에는 상대적 임금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호경기 때에 임금이 5% 오르고 이윤은 30% 오른다면, 비교·상대적 임금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다.

  이처럼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노동자의 수입도 늘어나지만, 동시에 노동자와 자본가를 가르는 사회적 간격도 커지며, 또 노동에 대한 자본의 힘,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도 커지는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의 급속한 성장과 이해 관계를 같이 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다음과 같은 뜻일 뿐이다. 즉 노동자가 다른 사람의 부를 급속히 늘려 줄수록 그만큼 더 큰 빵 덩어리가 그에게 떨어진다는 것, 그만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고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본에 예속된 노예들의 수가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에게 가장 좋은 상황, 즉 자본이 될 수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조차도, 그것이 아무리 노동자의 물질적 삶을 개선해 준다하더라도 노동자의 이해 관계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 즉 부르주아지의 이해 관계 사이의 대립을 없애지는 못한다. 이윤과 임금은 예나 지금이나 반비례하는 것이다.

  만일 자본이 급속히 성장한다면 임금이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윤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빨리 올라간다. 노동자의 물질적 상태는 좋아졌지만, 그것은 그의 사회적 처지를 희생한 대가일 뿐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를 떼어 놓는 사회적 간격은 더 넓어졌다.

  결국 임금 노동에 가장 좋은 조건은 생산 자본이 될 수 있는 대로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뜻일 뿐이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적대 세력, 자기 위에 군림하는 다른 사람의 부를 급속히 늘리고 키워 줄수록, 그만큼 더 좋아진 조건에서 그들은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을 묶어서 끌고 가는 황금 사슬을 자기 손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면서, 또다시 부르주아의 부를 늘려 주고 자본의 힘을 키워 주러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산 자본의 성장과 임금의 상승, 이 두 가지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뗄 수 없도록 결합되어 있는가? 우리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또 자본이 살찔수록 그 노예도 살찌게 된다는 말도 믿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지는 너무 계몽되어 있고 계산에 밝기 때문에, 봉건 영주처럼 자기 하인들이 화려하다고 뽐내는 따위의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부르주아지의 존재 조건이 그들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문제를 좀더 자세히 탐구해야 할 것이다. 생산 자본의 성장은 임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 자본이 전체적으로 성장하면, 노동의 축적은 한층 더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자본의 수와 규모가 늘어난다.

  자본의 증가로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진다. 자본 규모가 커짐으로써 좀더 거대한 무기를 지닌 좀더 강력한 노동자 군대를 산업의 싸움터로 끌어내는 수단이 주어진다.

  한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를 물리치고 그의 자본을 빼앗으려면 더 싸게 파는 도리밖에 없다. 파산하지 않고 더 싸게 팔려면 더 싸게 생산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노동 생산력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 생산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분업을 진전시키고 기계를 더 전면적으로 들여오고 계속 개선함으로써 높아진다. 분업에 편입되는 노동자 군대가 커질수록, 기계를 들여오는 규모가 거대해질수록 생산비는 비례해서 줄어들며, 노동은 더욱 실속있게 된다. 따라서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더 전면적인 경쟁, 즉 분업과 기계를 늘리고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대규모로 이용하려는 경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자본가가 분업을 진전시키고 새로운 기계를 사용하고 개선하여 자연력을 더 값싸게 더 대규모로 이용함으로써, 같은 양의 노동이나 축적된 노동으로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양의 생산물, 즉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예컨대 그가 다른 경쟁자들이 아마포 반 자를 짜는 데 걸리는 시간과 똑같은 노동 시간에 아마포 한 자를 생산할 수 있다면, 이 자본가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는 아마포 반 자를 지금까지의 시장 가격대로 계속 팔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자신의 적들을 물리치고 자기만의 판로를 넓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산이 늘어나는 만큼 판로에 대한 그의 요구도 커진다. 그가 활용하게 된 더 강력하고 더 값비싼 생산 수단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상품을 더 싸게 팔 수 있도록 해 주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로 하여금 더 많은 상품을 팔고 또 자신의 상품을 위해 훨씬 더 큰 시장을 정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의 자본가는 반 자의 아마포를 그의 경쟁자들보다 싸게 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본가가 한 자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다른 자본가들이 반 자를 생산하는 데 드는 것보다 많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경쟁자들이 반 자를 파는 것만큼 싼값에 한 자를 팔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판다면 그는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한 채, 단지 교환을 통해 생산비를 되찾을 뿐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그의 수입이 조금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더 많은 자본을 가동했기 때문이지 그의 자본이 다른 자본보다 더 많은 가치 증식을 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기 상품의 가격을 자신이ㅡ 경쟁자들보다 몇 퍼센트 낮게 정하기만 해도 이루려는 목적을 이루게 된다. 가격을 내려 판매함으로써, 그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거나 적어도 그들의 판로의 일부를 빼앗는다. 그리고 끝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한 상품을 팔 때 산업이 호황이냐 불황이냐에 따라 시가는 늘 생산비 이상이거나 이하라는 사실이다. 아마포 한 자의 시장 가격이 지금까지의 평균 생산비보다 낮으냐 높으냐에 따라서, 더 능률적인 새 생산 수단을 사용한 자본가가 실제 생산비 이상으로 파는 비율, 즉 퍼센트도 변동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자본가의 특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자본가들도 똑같은 기계와 똑같은 분업을 같은 규모나 더 큰 규모로 도입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입은 아마포 가격이 예전의 생산비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산비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일반화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서로서로 새로운 생산 수단이 도입되기 과 똑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생산 수단을 이용해 똑같은 가격으로 2배의 생산물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새로운 생산비를 기초로 똑같은 과정이 다시 시작된다. 분업이 더욱 진전되고 기계가 늘어나며, 분업과 기계의 이용 규모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경쟁은 이 결과에 대해 다시 똑같은 반작용을 가하게 된다.

  우리는 생산 양식, 생산 수단이 어떻게 계속 변혁되고 혁신되는가, 즉 어떻게 해서 분업이 더 큰 분업을 가져오고, 기계 사용이 기계 사용을 확대하며, 대규모 노동이 더욱더 큰 규모의 노동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가를 보고 있다.

  이것이 부르주아적 생산을 낡은 궤도에서 계속 벗어나게 하며, 자본으로 하여금 자신이 긴장시켜 놓은 노동 생산력을 계속 긴장시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자본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으며, '앞으로! 앞으로!'라고 계속 속삭인다.

  이것은 상업 경기의 변동 내에서 한 상품의 가격을 반드시 그 생산비와 일치시키는 바로 그 법칙이다.

  자본가가 아무리 강력한 생산 수단을 싸움터에 들여온다 하더라도 경쟁은 이 생산 수단을 일반화할 것이며, 또 그것이 일반화하는 순간부터 그의 자본의 더 큰 효율성이 낳는 유일한 결과는 그가 이제 똑같은 가격으로 예전보다 10·20·100배나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그가 판매품의 양을 늘림으로써 낮아진 판매 가격을 보충하려면 아마 1000배 정도를 더 팔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즉 더 많은 이득을 올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생산비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도---우리가 보았듯이 생산 도구 자체가 점점 비싸진다.---이제 대량 판매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대량 판매는 그에게뿐만 아니라 경쟁자들에게도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예전의 투쟁은 이미 발명된 생산 수단이 좀더 능률적일수록 점점 더 격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분업과 기계의 사용은 훨씬 더 큰 규모로 또다시 진행될 것이다.

  사용되는 생산 수단의 힘이 어떻든간에 경쟁은 상품 가격을 생산비 수준으로 떨어뜨려 얼마나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느냐, 같은 양의 노동으로 얼마나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값싼 생산, 즉 똑같은 가격으로 더욱더 많은 양의 생산물을 공급하는 것을 일종의 강제 법칙이 되게 함으로써, 이 힘이 낳은 황금의 열매를 자본에게서 빼앗으려고 한다. 그리하여 자본가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는 똑같은 노동 시간에 더 많이 생산해야 할 의무, 한마디로 그의 자본의 증식 조건이 나빠지는 것 외에는 전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쟁이 생산비 법칙으로 그를 계속 뒤쫓고 또 그가 경쟁자들을 겨누어 만든 무기가 자신에게로 되돌려진다. 반면에 자본가는 경쟁 때문에 새것이 낡은 것으로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낡은 기계와 낡은 분업 대신에 값은 더 비싸지만 좀더 싸게 생산해 내는 새로운 기계와 분업을 계속 도입함으로써 경쟁을 계속 속여 보려 한다.

  이제 이 열병 같은 동요가 전세계 시장을 동시에 휩쓸었다고 가정한다면, 자본의 성장, 축적과 집중의 결과로 어떻게 하여 끊임없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또 더욱 거대한 규모로 분업, 새 기계의 사용과 낡은 기계의 개량이 이루어지는가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면 생산 자본의 성장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이러한 사정들은 임금을 결정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

  분업이 진전되면 노동자가 5·10·20명분의 노동을 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도 5·10·20배만큼 늘어난다. 노동자들은 한 노동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싸게 자신을 판매함으로써 서로 경쟁할 뿐만 아니라 한 노동자가 5·10·20명분의 노동을 함으로써 서로 경쟁한다. 그리고 자본이 도입하여 점점 더 확대되는 분업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이런 종류의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분업이 늘어나는 만큼, 노동은 단순화한다. 노동자의 특수한 숙련은 가치 없는 것이 된다. 그는 육체적 능력도 정신적 능력도 활용할 필요가 없는 간단하고 단조로운 생산력으로 변질된다. 그의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이 된다. 따라서 사방에서 경쟁자들이 그에게 육박해 오며, 게다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노동이 단순할수록, 즉 그것을 배우기가 쉬울수록 습득하는 데 필요한 생산비는 더욱 적어지며, 임금은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임금도 생산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이 불만스럽고 지긋지긋해지는 정도에 따라, 그만큼 경쟁은 늘어나고 임금은 내려간다. 노동자는 더 많이 일함으로써, 즉 더 많은 시간을 일하거나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자기 임금의 양을 지켜 내려고 한다. 이처럼 그는 가난에 못 이겨 분업의 해로운 효과를 더욱 키워 간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가 많이 일하면 할수록 그는 더 적은 임금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만큼 자신의 동료들에게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그만큼 자신의 동료들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나쁜 조건에 놓이는 경쟁자로 만들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이 노동자 계급의 일원이면서도 자신에 대해 경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기계는 이와 똑같은 효과를 훨씬 더 큰 규모로 불러일어킨다. 기계는 숙련 노동자를 미숙련 노동자로, 남자를 여자로, 성인을 아이들로 대체하기 때문에 기계가 새로 도입되는 경우에는 수공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당하며, 또 기계가 완성되고 개량되고 더 효율적인 것으로 대체되는 경우에는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자본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산업 전쟁의 윤곽을 대략 묘사한 셈이다. 이 전쟁의 독특한 특징을 살펴보면, 여기서는 노동자 군대를 징집하는 것이 아니라 줄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 사령관인 자본가들은 누가 가장 많은 산업 전사를 내쫓을 수 있는가를 놓고 서로 경쟁한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기계 때문에 남아돌아가게 된 노동자들이 새로운 부문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들도 감히 쫓겨난 바로 그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 부문에 취직한다고 직접 주장하지는 못한다. 사실들이 외치는 소리는 이러한 거짓말을 너무나도 우렁차게 반박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본뜻은 노동자 계급의 다른 구성 부분, 예를 들면 쇠퇴한 그 산업 부문에 들어가려고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젊은 세대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취업의 길이 열린다는 뜻일 뿐이다. 이것은 물론 몰락한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큰 보상이 된다. 자본가 나으리들은 착취하기 좋은 싱싱한 살과 피에 부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시체를 파묻게 할 것이다. 이것은 부르주아가 노동자들에게 주는 위안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위안이다. 만일 기계가 임금 노동자 계급 전체를 없앤다면, 그것은 임금 노동 없이는 자본일 수 없는 자본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할 것인가?

  그러나 기계 때문에 직접 쫓겨난 노동자들과 전부터 이 자리에서 일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세대 전체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고 가정해 보자. 새 일자리에서 잃어버린 자리에서만큼 높은 보수를 받으리라고 볼 수 있는가? 이것은 경제의 모든 법칙에 어긋날 것이다. 우리는 현대 산업이 어떻게 더 복잡하고 더 차원 높은 일을 더 간단하고 더 차원 낮은 일로 계속 바꿔 놓는가를 살펴본 바 있다.

  따라서 기계 때문에 한 산업 부문에서 쫓겨난 노동자 대중이 더 낮고 더 나쁜 보수를 받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른 산업 부문에서 안식처를 찾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기계 자체를 제작하는 데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예외로 거론해 왔다. 산업에서 기계가 더 많이 요구되고 소비되자마자 기계는 반드시 늘어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계 제작, 동시에 기계 제작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이 산업 부문에 쓰이는 노동자들은 숙련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교양 있는 노동자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절반만 옳았던 이 주장은 1840년 이래 그 반 조각 진실마저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기계 제작에서도 면사 제조에서와 마찬가지로 기계가 점점 더 전면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리하여 기계 제작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아주 정교한 기계에 비하면 아주 타박한 기계 노릇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 때문에 해고된 남자 대신에 아마 세 명의 아이와 한 명의 여자가 공장에 취직할 것이다! 그런데 한 남자의 임금은 세 명의 아이와 한 명의 여자를 먹여 살릴 만큼 충분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부르주아들이 늘 즐겨 사용하는 이 상투적인 이야기는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제는 노동자 가족의 생활비를 벌려고 전보다 4배나 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소비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요약해 보자. 생산 자본이 성장할수록 분업과 기계 사용은 더욱더 확대된다. 분업과 기계 사용이 확대될수록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더 심해지며, 그들의 임금은 더욱더 줄어든다.

  게다가 또 노동자 계급은 더 높은 사회 계층으로부터도 메워진다. 많은 소산업가와 소금리 생활자가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하는데, 그들에게는 노동자들의 팔과 나란히 자신들의 팔을 쳐드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없다. 이리하여 일거리를 ㄹ요구하며 높이 치켜 올린 팔들의 수풀은 점점 더 울창해지지만, 팔 그 자체는 점점 더 야위어 간다.

  더욱더 대규모로 생산하는 것, 바로 대산업가가 되고 소산업가가 되지 않은 것이 투쟁의 일차적 조건 가운데 하나이며 이러한 투쟁에서 소산업가가 견뎌 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자본이 성장하고 자본의 양과 수가 늘어나는 만큼 자본의 이자는 줄어든다는 사실, 따라서 소금리 생활자는 더 이상 자신의 금리로 살 수 없게 되므로 산업에 투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즉 소산업가의 대열을 키우고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후보를 늘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은 정말이지 더 이상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끝으로, 위에서 묘사한 운동 때문에 자본가들은 어쩔 수 없이 거대한 생산 수단을 더욱더 대규모로 이용하고 또 이런 목적으로 신용의 모든 용수철을 작동하게 되는데, 이럴수록 그만큼 산업 지진이 늘어나며, 그때 상업계는 부의 일부, 생산물의 일부, 심지어는 생산력의 일부까지도 저승의 염라 대왕에게 제물로 바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 한마디로 공황이 늘어나는 것이다. 공황이 좀더 자주 일어나고 격렬해지는 것은 생산물의 양, 즉 시장을 넓히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그만큼 세계 시장은 점점 더 줄어들어 이용할 수 있는 새 시장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시 앞서 지나간 모든 공황이, 정복되지 않았던 새 시장이나 지금까지 상업이 표면적으로만 착취했던 시장을 이미 세계 시장에 예속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으로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상하면서도 야만적인 주인인 자본은 자기 노예들의 시체를, 즉 공황으로 몰락하는 희생된 노동자 전체를 무덤으로 함께 끌고 간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훨씬 더 급속히 심해진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계급의 일자리인 생활 수단은 이에 비례해서 줄어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 임금 노동에 가장 유리한 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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