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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한테 이런 이메일을 받고 울었다.

즐겨마셨던 커피의 병바닥까지 탈탈 털어 간신히 한잔을 만들어

마지막을 음미한다.

설마설마 하면서...

언젠가는 하면서...

너를 바라봤던 것 같다.

선배로써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도 못했지만

그저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했었던것 같다.

 

머리속에 든 지식도

가슴에 품은 열정도

사람관계를 맺는 품성도

지혜로운 삶의 방식도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네가

그래도 변화를 꿈꾸며 들어온 여기에서 네가 겪었을 여러 겪었을 일들...

한숨과 회한, 고통과 상처들이

희망의 시작이 아니라

삶의 질곡으로

너를 지금까지 끌고 왔을 생각을 하면

가슴 한편이 아리다.

 

애당초 운동이란 것을 저버린지 오래됐지만

조직에 별 저항없이 수긍하고 살아가는 나도

스스로 안타깝기도 하다.

 

운동 정리하고

나를 찾는답시고 떠났던 몇개월간의 중국여행이

어쩌면 나에겐 오히려 더 삶을 운동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론

거대한 담론보다는 일상에서 내 몫만큼만 하고 싸우며 살아서.

 

난 너의 예민한 감수성이

운동이라는 이유로 등안시 되거나 소홀히 네 스스로에 취급당하지 않았음 좋겠다.

운동이 스스로의 변화라는 구태의연한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네가 바라는 것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하고 싶은 말들

그렇게 너의 감정들을 원색적으로 표현하면서

감정들을 안으로 삭히는 그런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잘못 이해한 것이면 좋겠다만...

난 너의 그 인간애가 참으로 부럽다. 말을 예쁘고 재치있게 하는 것도.

모두 운동의 대중성을 염두에 두며 스스로를 훈련시킨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네가 아프다니까...

한번쯤은, 아니 이제 그런 것들 모두 버리고

정말 네가 원하는 것, 네 감정이 시키는 것들을 하며 살라고 말하고 싶다.

한고비 한고비 넘는다는게

퇴보가 아니라 성장이기를 바라면서...

 

못난 선배가

잠이 안와 몇 자 적어본다.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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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꼬수술에 대하여

 

 

 

제주도 해녀가 따올린 소라의 몸통은 어찌이리 아름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는지

그 색감과 기하하적 무늬에 놀란 후 어그적어그적 씹어먹었다.

삶아지지 않았으면 훨씬 아름다웠을텐데.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이

컴에 있는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사진을 찾고 보니

내시경을 보았던 나의 에스결장과 직장이 떠오른다.

그 똥꼬수술이 아니었으면 나는 장이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술과 담배를 그 연약한 대장 벽에 계속 쏟아붓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인간의 똥꼬도 장의 자태도 저거만큼은 아니지만 촉촉하고 부드럽다.

직립보행 이후 똥꼬가 많은 압력을 감당할 수밖에 만들고

술과 매운음식으로 자극시키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취급해왔지만

묵묵히 감당하던 그것이

결국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수술까지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복귀 이후 오로지 똥꼬를 수술했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놀렸다.

그리고 조용히 찾아와 자기 상태를 밝히며 수술비용과 과정과 고통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비밀보장 성실답변에 충실했다.

 

그리고는 어떤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

내가 병원에 가기까지 무려 8년 정도 걸린 거 같다.

쪽팔림..이루 말할 수 없다. 불편함..걍 참구 살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꼬는 나의 소중한 구멍이며 평생 잘 관리해줘야 할 대상이다.

핵심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병원에 가라는 것.

난 동네에서 수술한 바람에

나의 똥꼬로 내 속을 다 훏어보았던 의사와 간호사를

가끔 출근길에 만나기도 한다. 무지 쪽팔리다.

그러나 나에게 이 광명을 찾아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야메로 상담을 하면서 보니 정말 똥꼬 아픈 사람들 많다.

제발 참지 마시라.

똥꼬는 더럽지도 않고 연약하고 신축성있는 신비로운 구멍이다.

돈 얼마 안든다.

그리고 수술 후 알게 된 좌욕의 즐거움...따뜻한 물이 퐁퐁퐁 올라와

닿을 때는 머리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까지 든다.

 

그래 참을 만하다....

그래 참을 만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정신적으로도 충격이었던 수술을 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나의 소중한 똥꼬, 하지만 참을 성없는 그 구멍을 데리고

출근길에 인사하던 그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야 할 거 같다.

 

재수술 끝나고 다시 써야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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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소중함

공사에서 파견나온 동지가 3개월이 지나

수습 뗀다고 수료증 달라고 땡깡이다.

 

군기반장으로서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파견직과 채용직 사이에 간극이 생길까봐 더 까탈스럽게 굴기도해서

미안하기도 해서 한번 써봤다.

 

써보고 보니 동지의 소중함을 다시 알겠다.

 

 

 

김진만 동지!

 

동지는 조직에 와 3개월 동안 스스로를 낮추면서 몸에 익은 겸손과 훌륭한 매너로 다른 동지들로 하여금 팍팍한 생활을 견디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동지들에게 밥사기, 술사기에 솔선수범함으로써 따뜻한 인간미와 매력을 발산해 뜨거운 동지애를 듬뿍 발휘하셨습니다. 또한 항상 일찍 출근해 동지들을 맞아주었고 귀여운 웃음으로 남성 동지들의 전반적인 호감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특히 직책에 개의치 않고 여러 가지 잡일도 함박웃음으로 나서서 처리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진정한 노동조합 간부로서 자질을 한껏 드러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는 음주의 결과로 나타난 독창적인 진상행동으로 동지들을 당혹스럽게도 하였으나 단순 그 자체인 천진난만함으로 동지들에게 큰 기쁨을 주어 왔습니다.

동지와 함께 한 3개월이 매우 소중했음을 인식하면서 동지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전달합니다. 3개월간 애 쓰셨습니다. 앞으로 더 잘하세요.

 

2009년 3월 5일

김반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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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다 또 짤린 글

이 영화는 많은 상징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곱씹어 보면 볼수록 다양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40년 영국사회이지만 누구는 이 영화에서 파시즘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혹은 대처리즘이나 조지 부시 세계관의 문제점을 파악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이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를 들여다 본다.

영화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우리의 현실을 파고든다. 지하벙커를 연상시키는 권력자의 소통불가한 오더와 권력에 의해 장악된 언론이 보여주는 거짓과 왜곡, TV 앞에서 통제당하는 대중, 죽음을 맞이하는 고든과 끌려가는 미네르바, 대중에게 가해지는 공권력이라는 폭력, 쓰고 있는 가면과 손에 들려진 촛불, 그리고 영화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남대문에서 화양산에서 용산에서 일어났던 불길까지 온 몸을 두들겨 맞은 느낌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등장인물인 V(가면을 쓰고 등장해 영화 끝까지 그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와 이비의 분노와 고통, 두려움과 저항에 ‘공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싸이코패스를 이해하는 핵심은 싸이코패스가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싸이코패스는 울고 있는 사람과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표정에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싸이코패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얘기되기도 한다. 인간의 희노애락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잔인하게 강간하고 죽이면서도 그게 왜 잘못된 일인지 느끼지 못하고 죄책감을 가지지 못한다. 냉정하고 침착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거짓과 위선도 서슴없이 행한다.

영화 얘기 중에 뜬금없는 것 같지만 최근의 싸이코패스 논란은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해준다. 소통은커녕 공감도 하지 않으려는 권력자는 영상으로만 얼굴을 드러내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V가 일으킨 소동을 무마시키라고 윽박지른다. 대중의 공포감을 자극하고 왜곡된 보도를 격려하고 대중을 통제하려 든다.

벙커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권력자 또한 국민들에게 그리 녹녹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우선 그는 매우 드라마틱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밥도 굶어봤고 달동네에서도 살아봤고 사회 밑바닥에서 안해본 일이 없으며 데모도 해봤고 대기업 최고경영자도 역임했고 전 세계 안 가본 나라가 없다. 또한 그는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실패해본 적이 없다. 어떤 시안에 접근하거나 비판을 받을 때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그거 내가 경험해봐서 다안다’라고 한다. 지나친 자신감은 그를 매우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는 소통과 공감이 의미없어 보인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가 삶의 버거운 무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시장 아주머니를 안아주고 자신이 아낀다는 목도리를 걸어주지만, 그가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은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이며 이를 극복한 ‘자신’의 굴하지 않은 강철같은 의지에 대한 추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무리없이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은 아마 자신과 강부자 정도일 것이다. 의지가 약해 아직도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철거민, 서민, 민중,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삶에 대해 ‘공감’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방송국을 장악하고 공중파를 통해 대중들에게 영국의회를 폭파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V는 권력뿐 아니라 부정한 권력이 침묵한 TV 앞 대중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오늘날 잘못된 현실, 억압의 정부는 당신들이 방관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TV 앞 대중은 거짓말만 늘어놓는 언론에 대해 욕하면서도 TV 앞에서 무력화되며 세뇌당한다. 그러나 V가 썼던 가면을 쓴 아이가 권력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대중은 TV 앞을 벗어나 'V'가 되어 거리로 나간다. 수많은 'V'가 거리를 점유하고, 거대한 도미노를 완성시키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자유를 획득한다. 그리고 가면을 벗고 자신의 얼굴을 찾게 된다. 권력자가 맞는 것은 당연히 죽음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결말이 오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할 일이다. 우리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며 당연히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 구체적인 홍보방법까지 알려주며 용산참사를 통해 촛불시위가 확산될까 두려워 연쇄살인범 강호순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 덕분에 강호순을 통해 이 정부의 소통불가와 위선을 더욱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과의사인 정혜신은 <사람 VS 사람>이란 책에서 소통불가의 불도저에게 필요한 것은 ‘백미러’라고 충고한다. 뒤를 돌아보고 속도를 조절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말 가슴 아파해야 할 것은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바로 그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든 국민의 마음과 공감하고 소통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어야 한다. 그 심혈을 기울인 청계광장에 기괴한 마스크를 쓰고 촛불을 든 거대한 검은 망토 무리를 접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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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쿨하지 못하다

오랜기간 별거를 정리하고 이혼을 결심했다. 더 이상 신뢰도 애정도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무의이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을 깊은 상심에 빠뜨렸으며 형제들과 동기동창을 혼란스럽게 했으며 무엇보다 내가 큰 상실감에 빠졌다.

부부라는 관계는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관계 중 참으로 복잡미묘한 거 같다. 과도하게 밀착되어 있고 미래라는 시간을 담보하고 있고 육체적 친밀감까지 겹쳐진 참으로 총체적인 관계이다. 게다 한국사회의 봉건성과 가부장제까지 버무려 놓으면 참 복잡스럽기도 하다. 이 관계를 불신과 실망으로 마무리할 때 왜 상실감이 안 느껴지겠는가.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건데 좋기도 했다. 딱 내가 감수해야 할 만큼의 더티한 가부장제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므로. 이 해방을 배우자가 함께 꿈꾸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나는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했다.

싱글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험난했다. 어휴..썅...정말 신경쓸 게 많았다. 그리고 난 지금 안정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씩씩한 척하면서 나만의 애도기간을 거쳤다.

그런데 ...한통의 전화가 나를 hot하게 만든다.

2년만엔가 전화한 동기...너 남편 동문회지(우리는 같은 학교 출신이었다)에 일을 어디서 하고 둥지를 어디로 옮겼다고 써있던데 어디로 이사간거야?

쿨할 수가 없다. 겨우 전화를 끊고 부글부글 또 끓어오른다.

썅넘이 같이 있을 때도 그리 고생시키더니, 좀 유예기간을 가지면 어떻다고 동문회(동창회가 아니라 민주동문회임)까지 출현해 지랄이냔 말이다. 아예 갈라섰다고 전제를 하고 소식을 싣던가. 난 보구 싶은 선후배도 연락끊고 사는데...하여간 기득권 가진 것들이 항상 이긴다.

어찌나 유명하신지 엠비악법 국회저지할 때 그 육중한 몸으로 텔레비전에 출현하셔서 나한테 폭력을 휘두르려 할 때처럼 날쌔게 굴어서 인구에 회자됨으로 인해 나를 괴롭히더니...

 

휴...난 왜 헤어졌다고 오랜만에 연락온 오래된 친구에게 말하지 못했을까.

이 블로그를 신성하고 성숙한 성찰과 날카롭고 현명한 인식으로 채우고 싶었는데.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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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월 후반

드디어 단독세대주라는 게 되었다.

동사무소 가서 독립한 집주소를 얘기해주었다.

자꾸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거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

연말정산이란 걸 했더니 세금을 더내라고 한다.

시스템 안에서 세대주가 되고 성실납세자가 되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뿌듯하지 않다.

 

 

제주를 걷는 길에 만났던 개 한마리는

나를 보자 자기 집 구석에서 붙어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에게 길을 비켜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집이 고무로 만들어져 있어 충격에 의한 상해가 생기지 않을 수 있고

판자로 생긴 그늘이 있어 쉬기도 좋을 듯...

 

 

성실납세자라니 정말 가당치 않다.

다시 길을 떠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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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속에 밤송이가 꽉차 있는듯하다.

학생운동부터 20년

명박의 지랄도

용산의 뜨거운 눈물도

성희롱 파문도

 

답답함으로만 다가온다.

 

맑고 속이 보이는 구멍....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씩씩하게 사는 척한 건 결국 나를 죽이는 일이었다.

이 구멍을 닮고 싶다. 강원도 이름없는 강에 자연이 만든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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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길떠날 채비를 해야 겠다.

 

뻔뻔한 친척들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의 한숨

너무나 형식적인 그 모임.

 

누구에겐 지옥같을 명절.

 

도망갈 수 있다면 제발 도망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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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했다 짤린 글_최저임금 유감

최저임금 유감.

 

최저임금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사용자와 노동자는 서로 무시하고 딴소리를 하거나 서로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라치면 핏대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논의가 매너 있게 이루어진다싶으면 노동자와 사용자는 서로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마치 사슴과 돼지들처럼 다른 얘기를 한다. 알아먹기도 힘든 여러 가지 통계와 수치를 얘기하고 외국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결국 논점은 이것이다. 누구는 비용으로 사람을 보고 누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는 점이다.

 

최저임금법이란 게 있다. 법 얘기만 나와도 머리에 쥐가 난다. 그런데 이 법을 들여볼 만하다. 이 법 1조 최저임금법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떤가.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즉,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것을 법률로써 강제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런 글로벌한 시대에 외국자본이 건강한 기업을 통째로 삼키고 종이회사가 단시간에 막대한 부도덕한 이윤을 챙기는 걸 보고 사는 이 시대에, 국가가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임금수준을 법률로 강제한다. 왜? 라는 질문은 너무 뻔하므로 통과~

 

2008년 최저임금 시급 3,370원이다. 주44시간, 월급으로 환산시 3,770원 * 226시간 = 852,020 원이다. 이 돈이 한 달 생활에 ‘근로자의 생활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 돈으로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얼마나 꾀할 수 있는지 이런 건 논외로 하자. 우리끼리 얘기해봐야 속만 쓰릴 뿐이고 비용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집단은 이런 얘기 아무리 해도 못 알아듣는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용자는 어차피 얼마 차이도 안 나는 거 그 돈으로 계속 살아왔으면서 왜 자꾸 올려달라고 하느냐고 속내를 너무 솔직히 드러낸 바도 있다.

 

그런데 사용자도 아닌 노동부가 최저임금개선방안이란 걸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 정말 해괴하다. 우선 고령구직자 스스로가 명시적으로 희망하는 경우 최저임금을 감액하겠다고 한다. 세상에 어떤 구직자가 최소한의 생계선이라고 법으로 정해놓은 임금수준을 감액해도 좋다고 ‘스스로’ 희망하겠는가? 상당수 고령자들이 임금을 덜 받더라도 일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는 통계는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 이제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더 이상 존경과 우러름의 대상이 아니라 더 값싼 노동력일 뿐이다. 더 값싸게 팔리더라도 생계를 이어가야 할 절박함에 있는 노인들의 이 비정한 사회에 대한 한숨과 고통이 통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수습기간을 연장해 비용을 절약해보겠다는 심보 역시 그렇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수습근로자의 정의를 ‘사용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의 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가 2005년 최저임금법 개정 당시 ‘연소자, 양성훈련생, 수습노동자 적용제외’를 ‘수습노동자(3개월 미만)로 단일화시켰다. 그런데 수습기간을 6개월로 늘이겠단다. 최저임금 적용 사업장에서 수습이 6개월이나 필요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보려 해도 3개월 더 최저임금을 덜 주어서 벼룩의 간이라도 삼켜버리겠다는 의도다. 하긴 그 벼룩의 숫자가 늘어나면 아무리 작은 간이라도 많이질테니 그 의도는 이해된다만 정말 치졸해서 대응하고 싶지도 않다. (간접고용 도급계약의 경우 몇 년을 동일 사업장에서 일해도 신규업체가 들어올 때마다 수습기간을 적용시키려고 하는데 청소용역직 아주머니들, 매년 1년에 6개월을 수습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의 숙식비 공제한도 신설 논리는 더 이상하다. 한국노동자들은 월세를 살아도 자기 돈으로 월세를 내는데 외국인노동자는 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하니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노동자에게도 숙식을 제공해 형평성을 맞추는 것은 어떠한가. 외국인노동자는 그들이 일자리와 임금을 필요로 하고, 사용자들이 더 위험하고 더러운 일자리에서 더 싼 임금과 더 강도 높은 노동을 감수하는 그들을 필요로 해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다. 인격적으로 모욕당하고 쫓기고 때로는 쫓기다 죽기도 하는 그 노동자들이 없으면 더 어려워질 중소기업이 많단 말이다. 솔직히 외국인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할까봐 걱정하는 사용자도 있다. 숙식비는 임금이 아닌 복리후생비용으로 보는 것이 우리 노동부의 행정해석이며 최저임금와 통상임금의 산정범위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상식임을 꼭 얘기할 필요가 있나.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다. 가진 자들에게 각종 세제혜택과 규제완화 등으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때, 법으로 정해진 최저수준의 임금에서 뭘 더 빼먹을 수 있는지 잔머리 굴리는 일을 정부가 나서서 해서야 되겠는가.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밀어버리려고 하면 몇몇은 좌절하고 또 삶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단결의 힘을 알게 되면 가진 자들 너희가 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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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기차를 탔다.

정겨운 무궁화호...햇살은 너무 좋고 알아먹지도 못하는 재즈를 실컷 들었다.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추전역과 오지역이라는 승부역을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고 넘쳐나는 사람들 때문에 추위만 실컷 느껴졌다.

기차를 탔다는 사실만 좋았다.

 

혼자서 너무 감수성이 예민해져서 '사람이 나이들어 가장 허망해질 때는

하나도 이룬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하던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이다.'라는 글을 읽었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기도 했다.

씨비.. 난 내가 원했건 안 원했건 이룬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내가 뭘 이루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단 말이다.

나이들어 허망해지고 있기만 하다.

 

역마살낀듯 이렇게 시간만 나면 돌아다니려하는 것도 이 허망함 때문이지만..

정신분석도 한반도 남한에 여성으로 태어나 배우자도 아이도 없이 중년을 맞이하는  

운동권출신의 노조활동가의 정신상태를

분석해주지는 못한다. 하긴 그 서양것들이 뭘 알겄냐마는..

 

한비야의 책<지도밖으로 행군하라>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울다 웃다 했다.

책보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드문드문 집이 보인다.

춥고 외롭고 쓸쓸해서 어찌 사는지...

기차 안에서 카메라로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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