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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야기

# 대니얼 서스킨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대니얼 서스킨드
와이즈베리, 2020

 

 

번역서 제목이 안티 아닌가... ㅡ.ㅡ
저자 자신도 "일은 한까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씩 줄어들 뿐"이라고 쓴 마당에

 

  • 기술적 실업 (technological unemployment) - 아마도 구조적 실업 중에서도 특별히 기술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상황을 지칭한 것일텐데, 이미 1930년 영국의 케인즈가 이 용어를 널리 퍼뜨리기 시작함. 근데 무려 이보다 100년 전 리카도가 1821년에 '기계장치에 대하여'라는 챕터에서 이 문제를 언급
  • 저자는 기술적 실업의 시대 특징으로, 기술 진보를 통해 모든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는 크게 해결할 것이지만 세 가지 문제, 1) 불평등, 2) 기술 대기업의 정치적 힘, 3) 삶의 목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것

 

  • 기술 진보를 통해 서로 다른 두 방향의 힘이 작동. 첫째 노동자를 대체하는 해로운 힘, 둘째 노동자를 보완하는 유익한 힘 (1 생산성 효과, 2 파이확대 효과, 3 파이 탈바꿈 효과) - 지금까지는 이 두 가지 힘의 싸움에서 후자가 대개 승리했고 언제나 인간 노동을 찾는 수요가 충분히 컸기에 이를 '노동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었음
  • 21세기 들어 숙련도별 고용율 변화를 보면 대개 고숙련과 저숙련이 늘어나고 중간 숙련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 관찰 . 이를 양국화 혹은 공동화라고 부르고 ALM 가설 (Autor-Levy-Murname)로 설명가능. 그동안 사람들이 흔히 '일자리'에 집중했지만, 상향식으로 일자리보다 '업무' 단위로 쪼개 보면 기술에 의한 대체 '업무'가 보다 명확해짐. 대개는 교육이나 숙련 수준보다는  "틀에 박힌" 업무, 암묵적 지식보다는 '명시적' 지식에 의해 의존하는 업무들이 자동화되기 쉬움. 어떤 일자리든 단일 업무만 하는 직종은 없으며, 따라서 어떤 직종이나 일자리가 통째로 자동화된다기보다 이러한 '업무'들이 자동될 가능성
  • 그런데.... 인공지능에서 나타난 실용주의 혁명이 이러한 ALM 가설마저 무너뜨림.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는 자동화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 예가 트럭 운전과 의료진단이었는데 지금 보면 가장 앞서나가는 분야 중 하나. 절차를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인간지능을 굳이 모방하지 않아도 기계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업무 수행 가능. 따라서 현재 필요한 것은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운 인간 능력이나 처리하기 힘든 업무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추세를 확인하는 것! 시간이 지날 수록 기계는 서서히, 끈질기게 발전에 인간 업무 영역으로 발을 넓힌 것이 분명. 이것이 '업무 잠식'인데 인간이 일에서 사용하는 세 가지 능력, 신체/인지/정서 능력 모두 기계의 압박

 

  • 하지만 이는 전세계에서 지역적으로 시차를 두고 발생. 그 이유는 1) 과제의 차이 (특정 산업 비중), 2) 비용 차이 (영국에서 지난 10년간 오히려 기계세차가 감소하고 손세차가 늘어난 것은 값싼 이민자 노동력 때문 ㅜㅜ. 상대비용), 3) 교제 및 문화의 차이
  • 마찰적 frictional 기술실업 -  일자리가 몽땅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맡은 일거리는 있는데 모든 노동자가 일감을 차지할 수 없는 상황. 그 이유는 1) 숙련 기술의 불일치, 2) 정체성의 불일치 (기술진보가 반드시 매력적인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 신기술 때문에 제조업에서 밀려난 남성노동자들이 핑크칼라 일자리로 들어가지 않는 현상), 3) 장소의 불일치 (기술이 지역적 거리를 무위로 만들것 같지만, 예컨대 '거리의 종말, 평평한 세상'이라고 해도 현실은 다름. 러스트벨트 vs. 실리콘밸리)

 

  • 기술적 실업의 문제는 직접 실업률을 높이는 문제만이 아니라 일의 성격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음 1) 사람이 몰리면 임금 하락, 2) 일부 일자리에 질의 하락, 3) 일자리의 지위 하락
  • 구조적 기술 실업은 기술진보의 '보완하는 힘'의 약화 때문인데, 그 이유는 1) 생산성 효과가 사라져가고 있음 (노동자 생산성이 올라가면 가격 인하나 고품질로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다른 분야에서 노동 수요가 높아지는데... 이제는 노동자 생산성이 올라가도 노동 수요 증가 일어나지 않음) 2) 파이는 분명히 커지겠지만, 그러한 상품 생산에 필요한 업무 수행에 인간이 유리하지 않음 (업무 잠식 효과), 3) 파이탈바꿈 효과가 소비와 고용 두 가지 측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 ==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이 어떤 기계보다 나을 것이라는 '우월성 추정 superiority asusmption'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즉.. '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판단. 이제는 열등성 추정을 시작점으로 삼아야 할 상황.
  • 구조적 기술 실업 시대 불평등은 두 가지 자본, 전통자본과 인적 자본 모두에서 나타남. 인적자본과 전통자본 둘 다 없는 경우에 세상 암울해지는데 ㅜ.ㅜ  두 가지 모두 갈수록 불공평하게 분배됨 1) 권력을 이용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 (상위 1%, 0.1%의 독식) 2) 노동소득 분배율의 감소 == 결국 분배 문제가 핵심

 

  •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큰 정부 big state. 큰 정부가 맡은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 현재의 사회보장 제도나 소득 부양 정책들은 모두 고용이 일상이고 실업은 어쩌다 나타나는 예외라는 전제에 따라 설계되었지만, 이제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고용이 일상이지도, 실업이 예외인 것도 아님 ㅜ.ㅜ  큰 정부는 1) 가치있는 자산과 소득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세금을 크게 매기고 (노동자, 전통자본, 대기업), 2) 그렇게 모은 돈을 자산과 소득이 없는 사람과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함. 필자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는 조건부 기본 소득 주장
  • 1796년 토머스 페인이 기본소득 처음 주장하고 그동안 각기 다른 이름으로 이 개념이 회자됨. 지역 배당금, 보편수당, 시민소득, 시민급여, 정부상여금, 국민보조금 등등.. 그런데 기본소득의 '기본'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 (즉, 기본소득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간다운 삶이냐, 최저 보장이냐)과 더불어 보편성에 해당하는 구성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함 == 글쎄올시다??? 생산 영역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같이 가야 할 것 같은디??? 그래서 저자는 정부가 '전통 자본의 분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 자본은 그대로 둔 채 소득만 분배하고 인적 자본만 폭넓게 분배한다면 경제불균형은 해결될 수 없음.
  • 또한 정부는 노동을 지원해야 함. 왜냐하면 일에는 경제와 상관없는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 기술 대기업 문제도 심각하게 여겨야 함. 그들의 문제는 과거처럼 독과점 같은 '경제'이슈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대개 경제적 측면과 관련 없는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함. 구글의 알고리즘이나 페이스북의 데이터 거래 등등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 그런데 현재는 신기술을 어떻게 어디에 이용할지를 이런 기술 대기업들에게 맡겨놓고 있음 ㅜ.ㅜ 이들의 정치적 힘을 감독할 수 있는 기관, 소비자가 아닌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함. 물론 정부라고 다 선은 아님. 중국의 기술 국유화가 가져온 끔찍한 감시사회를 떠올려보면...

 

  • 인간은 왜 일에 의미를 부여할까...  싫의 의미와 일의 관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님. 고대에는 일을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으로 보기도 했고, 구약성서에서 일은 인간에 내려진 징벌. 반면 프로이트와 베버는 삶의 의미와 연관성을 찬양했지만 산업혁명 시대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참함을 안겨주었음 "가끔은 이런 의심이 든다. 일이 줄어든 세상을 두려워하는 글을 쓰는 학자들과 평론가들이 사실은 자기가 일에서 얻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의 경험에 잘못 투사하는 것은 아닐까?" ㅋㅋㅋ 나도 항상 이런 우려를 하기는 하지만, 일 자체를 잘 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음.
  • 일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편'. 마약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목적의식이 솟구치게 하지만, 동시에 일에 취해 갈피를 못잡게 함으로써 주의를 흩뜨려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만들기도 함. 일이 마음속에 워낙 깊숙이 뿌리내린 탓에, 일에 몹시 의존하는 탓에 일이 줄어든 세상이 다가오리라는 생각을 흔히들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실제로 생각하더라도 중요한 내용을 전혀 표현하지 못함. 일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분명한 것은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더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나 아렌트 말처럼 우리는 "노동이라는 족쇄에서 이제 막 벗어나려는 노동자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이 사회는 이런 자유를 얻어낼만큼 값진 더 고귀하고 의미있는 활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케인즈 걱정대로 "어떤 나라도, 어떤 사람도 여가의 시대와 풍요의 시대를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대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즐기기보다 죽어라 애쓰도록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 여가가 끔찍한 선물이 되지 않으려면 1) 교육 재검토하기, 2) 여가 형식 결정하기, 3) 다시 '일'에 대해 생각해보기 - 유급 노동이 줄어든 세상이라 해도 일이 아예 없는 세상은 아니기에
  • 그동안 경제적 목표에 집중했기에 파이가 얼마나 커질지를 알고자 현대의 기술자인 경제학자들에게 의지해왔지만,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근본적 목표를 다시 검토해야 함.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사느냐'이며, 의미 있는 삶은 사는 것이 어떤 뜻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함

 

디지털시대 일자리의 퇴조와 관련하여 매우 차분하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함. [노동의 종말]에 비해 훨씬 최근에 쓰인 책이라 현재의 상황에 훨씬 더 부합하기도 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림...  (사실 내가 이거 읽고 있을때가 아니었는데 말야.. ㅜ.ㅜ)

그런데, 뭔가 대안 쪽으로 오면 갑분싸.... 법인세 높이고 전통자본에 세금 높이는 것 다 동의하는데, 이걸 대안이라고 제시하면... 여기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건 이미 디지털경제로의 전환 이전에도 이야기해왔으나 노-자간 역관계 때문에 안 되고 있던 건데.. 다시 공자님 말씀 들먹이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어쨌든 생산의 재배열과 국가의 적극적 분배 개입, 기업 통제를 종합해보자면  '공공성'이라는 언어로 개념화하지 않았지만 결국 '민주적 공공성'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 같음.

참, 눈에 띄는 잡상식 ㅋ '틈새의 신  god of the gaps'이라는 표현 너무 적절 ㅋㅋ 종교지도자들이 현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신으로 정의한다는 의미 ㅋㅋ

 

#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조정진
후마니타스, 2020

 

아빠가 건물 경비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순수한 독자의 마음만으로 읽을 수는 없었지.. ㅡ.ㅡ

일단 사회 구조고 뭐고.... 사람들이 참 못됐다는 생각!!!
스스로 응분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비대한 자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 대한 멸시를 통해서 나의 상대적 지위를 구축하려는 이들의 생생한 사연에 진정 환멸.....
마침 부산에서 노숙인, 이주민 단체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하고 온 다음날이라, 인류에 대한 환멸이 한층 더 심했던 듯..  아오 정말 미친 새끼들... 욕도 아까움..

  •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 그들은 걸핏하면 나에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주는 것은 그들이 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버렸다.
  • 사실 경비원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중 반가운 것은 빗방울 뿐이다. 눈이며 꽃잎이며 낙엽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들은 모두 다 쓰레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입사 첫날, 나는 별 생각없이 미세먼지 마스크를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섰다. 등 뒤로 혼잣말이 들렸다. "염병..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  추위를 견디다 못한 경비원들이 파카를 지급해달라고 좀 더 높은 사람에게 건의해봤다.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
  • 주치의는 나의 노동이 과로를 넘어 자해 행위였다며 나무랐다. 몸이 힘들면 자각 증상이 있게 마련이고 바로 대처를 해야 하는데 나는 그 반대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한 것 뿐이었다. 자해가 아니라 살기 위한 자구노력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 젊은이들이 견뎌 내지 못하는 일과 기피하는 일은 고령자의 차지가 된다.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대내기 때문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 나도 젊을 때 같으면 이런 일을 견디지 못했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지금은 견뎌낸다.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나이를 먹으니 견딜 수 있게 됐다. 나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이가 들면 견뎌야 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고령자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더 주신 걸까. 그러나 견뎌야 할 것들은 참 많았다.
  • 그때는 나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노동을 하는 줄알았고 그래서 삶이 더욱 고단했다. 그러나 이 책의 편집자를 만난 후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그 책에서 생명이 위협받는 엄혹한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만났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나의 노동은 한낱 응석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부끄러웠다. 나보다 훨씬 힘들고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일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내 도동의 강도화 환경은 그대로지만 이런 깨달음 덕분에 이제는 덜 힘들다. 이 점이 더욱 감사하다.
  •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땅의 늙은 어머니 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이제는 내가 빠져나온 (최소한 학력자본과 사회자본 측면에서) 그곳을 다시금 돌아보며,
겨우 빠져나왔다는 안도감과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나의 부모, 이웃들에 대한 연민, 사명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멸, 인생은 고해라는 현타 때문에 세상 하직하고 싶은 마음까지....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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