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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로 논문 감상(^^) 이어쓰기...

* 이 글은 홍실이님의 [미국내 건강 불평등 연구의 정치학 - 나바로]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에 인터넷 서핑하고 있는 주변의 모모 인사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못했다. 이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사해야 할지 원....

 

우선 나바로의 Health of Nations (우리말 제목 "부유한 국가, 불행한 국민") 비판을 잠시 옮겨보면....

 

미국에서 건강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Lancet 논설로 실릴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미국 내 좌파 -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등등 - 연구자들이 미국 공중보건학회 내에 독립적인 그룹을 만들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 기득권의 반응은? 앞서 이야기했듯, radical tradition 에 대안이 될만한 보다 건전한, 소위 "respectful left"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다. 계급이 아닌 소득, 사회적 지위, 사회적 자본 등등.. (사회적 자본은 미국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따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새로운 용어일 뿐더러 그 영향으로 유럽과 남미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고 지적).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연구자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이들은 기득권 세력에 별 위협이 되지 못하며, 매우 학구적이고 방법론적 이슈를 중요하게 여기고 광범위한 통계도구들을 활용하며, 어떤 형태의 이데올로기적 오염(^^)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정점에 바로 The health  of Nations 가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회과학 연구 재단인 MacArthur Foundation 의 지원으로 쓰여졌고, 아마티야 센의 추천사에 보면 "아마도 우파들이 싫어할 left proposal"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참고문헌들에는 그동안 계급 관점에서 불평등을 분석한 연구자료들은 거의 실려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불평등의 내용은 소득, 그리고 소비 (개인간, 국가간) 문제이다. 

나바로가 지적한 문제점이라면... 우선 이 책에서는 개인들의 "소비"를 생활수준의 중요한 잣대로 파악했는데, 사회의 집합적 소비 (공공재나 사회적 이전지출)와 하부구조가 삶의 질과 안녕에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국가 간의 차이를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데, 이를테면 북반구에서 애완동물을 돌보는데 수백만 달러를 쓰는 사람들과  굶주림에 괴로워하는 남반구 어린이를 대조하는 형식은 독자들의 양심과 죄의식(-_-)을 부추기는 것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오히려 대립의 양상은 북반구의 경제적 지배 계급과 남반구의 일부 지배계층, 그리고 북반구의 노동계급과 대다수 개도국의 민중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실제 우리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착취"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에는 미국의  공공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예가 나오는데, 이것이 자가용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선호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에너지 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의 발달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인들이 세금 감면을 선호하고 사회적 연대의식이 약하다고 지적했는데,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대다수의 노동계급은 매우 취약한 복지체계를 확대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고,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현재의 취약한 계급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 이 외에도 세부적인 여러 가지 지적 사항 등등등... 

하여간 요약하자면, 이 책은 파워, 착취보다는 선택과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정치색을 벗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득이 물론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이는 다른 변수들에 비해 비교적 다루기가 쉽고 그보다 중요한 다른 변수(계급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쓰이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들은 그동안 계급 관점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건강불평등 연구를 애써 무시한 채 소득 요인에만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잠시 딴 소리... 이 책 Health of Nations 에 대한 비판은 John Lynch & George Davey Smith 의 Rates and states: reflections on the health of nations (int J Epi 2003;32)에도 실려있다. 이 글도 조만간 소개할 생각... 하여간 뭐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책이 나오자마자 집중포화(^^)를 맞는 것을 보니 저자들이 좀 안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더구나 공저자인 케네디는 심한 병세 때문에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학계를 떠났다니 관점을 떠나서 ....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나저나  이치로가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책(Globalization & health)이 출간되면 또 어떤 논쟁이 벌어질까나.. 뭐 대략 짐작이야 가지만...

 

일단 두 가지 개인적 의견...

우선, 미국 내에서 건강 불평등과 관련한 연구, 연구네트워크의 정치적 지형에 관한 나바로의 지적은 사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세부적인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낯익은 설정 아닌가?(보건학 연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님)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분석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딱히 건강 불평등이라는 이슈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예방의학/보건학 연구들이 한국사회의 고유한 정치경제적 문제들을 어떻게 접근해왔는지, 그러한 접근을 (불)가능하게 했던 제도적 기반(이를테면 여러 정치권력과의 관계, 연구비 제도, 학풍 혹은 학연), 연구자들의 개인적 성향(^^)은 어떠한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에 건강 불평등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이 많아지고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고유한 시대적 배경(ㅎㅎ)이 있지 않은가. 이러한 분석이 다소 이론적 작업에 치우치고 당장의 실천적 의미가 적다고 해도, 보건 분야 내에서 쟁점의 숨겨진(!!!) 성격을 드러내고 논쟁을 활성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두번째, health of nations에 대한 비판.... 사실 번역 전에는 나도 책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었다. 번역을 하면서 들었던 첫번째 생각은.... 참으로 대중적으로 썼구나.. 물론 "대중적"이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일단은 쉽고, 상당히 구체적인 실생활의 사례들이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이 바로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불평등의 문제를 성찰해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물론 그 불평등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나바로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저자의 의도와 성향을 잘 모르겠다.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만 둔 것인지, 아님 정말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개인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소위 근본적인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뭐 학자는 논문으로 말하는 것이라니까 ....  이번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조심스럽게 물어봐야겠다. 과연 영어 땜시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이 책이 특히 우리 사회의 "중산층" (정체도 없는 이 단어 정말 싫지만) 들, 그리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여전히 좋은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연구나 대중적 담론이 극도로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한편으로는 입문서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논쟁거리로서..... 그리고 바램은...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결정요인에 대한 학술적/대중적 저작들을 빨리 만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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