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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이야기 3

Day3/4


시외버스 타고 멕시코 시티 부자들의 주말 휴양지 중 하나라는 바예 데 브라보(Valle de Bravo)에 갔음. 버스 터미널 또 엄청 크대... 

가는 길에 지하철 환승 거리가 또 엄청났는데, M은 이게 혹시 라틴 아메리카 최장거리 환승역이 아닐까 의심 ㅎㅎㅎ 하지만 내 확신컨데, 종로 3가의 5호선 환승거리보다는 분명히 짧은 듯...

이 곳은 호수를 끼고 있는 계곡으로, 무진장 아름다움....

마을 언덕에 위치한 수도원에 찾아갔었는데, 정말 조용하고 좋더라.....




우리가 묵었던 Myriam 집의 사랑채.... 

이 집 주인 아줌마의 남편 (돌아가심)이 생전에 바이얼린 연주자이자 지휘자였단다. 보니까 엄청 부잣집이야.. M도 이 정도로 부자인 줄은 몰랐다고 하더군.

근데 분위기가... “나는 일반 멕시코 사람과는 달라” 이런 묘한.... 

멕시코 속담 중에 태초에 창조주가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고 나니 주변에서 너무 과한거 아니냐고 했는데, 하느님 왈,

여기에 멕시코인들도 만들었으니 괜찮다는 ㅜ.ㅜ

한국을 풍미하던 엽전론과  아주 유사하지 않은가....

 

 

저녁 나절에 이집 꼬마들하고 노는데 조카들 생각이 나더라.

열 살짜리 꼬마가 서양 오목을 두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규칙이 좀 달라서 첫 판은 패배. 하지만 페이스 회복하고 나서 연전연승...ㅎㅎㅎ (한 번 시작하면 호승심에 불타올라 완전 집중하는 성격 그대로 나타남...)

한참 하다보니 꼬마가 너무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하길래 좀 져주려고 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 ㅜ.ㅜ

저녁 식사 때에는 그 지방 특산이라는 각종 채소와 일곱 살짜리 막내가 마당에서 따온 (ㅡ.ㅡ) 자몽으로 만든 쥬스도 먹고...엄청 좋은 데킬라에 멕시코산 와인에...

밥 먹구 나서는 술기운에 jenga 라는 놀이 (블럭으로 탑  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 탑이 쓰러지지 않게 블럭을 하나씩 제거하는 놀이- 완전 집중과 미세한 손놀림 필요!! )와  또 오목을 두었는데 (온 식구들이 겨루자고 하는 바람에 아주 괴로왔음),

M이 신나서 막내랑 피아노 치고 노래부르고 그러지 않아도 술기운에 정신 없어 죽겠는데 아주 그 인간 때문에.... ㅡ.ㅡ 

 

이날 초저녁에는 천둥번개치고 꽤 많은 비가 왔었다.

그 와중에 마당 반딧불은 반짝이고, 한참동안 처마 밑에 앉아 비내리는 숲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하고 M과 인생의 심오한(?) 대화도 많이 나누었음.

 

미국에 있는 동안 세 명의 영어 선생을 만났는데 (마치 영어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한 것 같은 착각이 ㅎㅎㅎ) 그 중 두 명이 퀘이커라니 참 나 원.... 

어쨌든 M은 내가 여태껏 만나본 (한국인이고 미국인이고) 가장 성찰적인 사람들 중 하나...국가와 계급의 철폐, 물질적 욕망의 덧없음, 고독과 사색 즐기기...

혹시 본인을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하냐니까, 무슨 "~주의자" 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나 있는지 모르겠단다.... 음....

주유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말로는 "역마살"에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서양에서는 그걸 "wandering spirit"이라고 표현하더군. 서로 wandering spirit 의 소유자임을 확인 ㅡ.ㅡ 뭐 하여간, 둘 다 (돈도 별루 없으면서) 돈 문제에 초월해서, 여행 내내 진짜 허술한 분위기 연출됨. 아무나 지갑 먼저 꺼내는 사람이 숙박비, 밥 값, 차비, 입장료 같은 거 그냥 알아서 내버리고, 심지어 기념품 사는데 현찰 없다고 나 얼마만 줘 하면서 서로 돈 뺏어가기도 하고 ㅎㅎㅎ 미국인답지 않게 내가 남긴 밥도 엄청 잘 먹더라...  여행 하면서 맘에 맞는 동반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멕시코 여행은 이렇게 잘 맞는 친구랑 같이 보낼 수 있었던게 정말 다행이야....

 

다음 날 아침도 맛나게 먹고 읍내 장터 구경하고, 한국에서 구경하기도 힘든 망고스틴 (여기서는 람푸차 라고 부르더군) 사먹고.... 시티로 귀환.

돌아오는 버스에서 비디오 틀어주는데 스티븐 시걸 출연작...

내가 “저 사람 봐라. 아무리 힘들게 싸워도 절대 안 다치는 건 물론 얼굴 표정 하나도 안 바뀐다” 했더니만, M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더군. “그 뿐인 줄 알아? 꼭 넓은 장소 놔두고 부엌이나 식당 같은 장소에서만 싸워”- ㅎㅎㅎ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위대하다....

시티에 돌아와서는 새로운 호스텔 구함. 사실 이전에 묵던 곳도 그냥저냥 지낼만 했는데 (1인실 하룻밤 7불) 구도심 중심가에 있다보니 주변이 어찌나 지저분한지 그냥 새로 구하게 된 것.

우리는 인터넷을 보고 그냥 찾아간 건데, 막상 도착하니까 주인장이 우리를 보고 어찌나 깜짝 놀라는지 우리도 덩달아 당황했음. 

나도 긴가민가 하고 있었는데, 저녁 먹으러 나오면서 M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너 좀 이상한 분위기 못 느꼈냐? 아무래도 저기 게이 전용 호스텔 같애” 

“어... 너도 그렇게 생각했구나...아저씨 넘 재밌더라ㅎㅎㅎ”

“우리가 못 갈 데 간 것도 아닌데 저 아저씨 너무 심하게 놀라는 거 아냐?”

“맞어 맞어....” ㅎㅎㅎ


저녁 먹구 나서, 역시 또 라틴 아메리카 몇 번째라는 전망대에 올라 시내 구경하고 Orozco의 벽화가 있는 까페테리아에서 저녁 먹고 맥주 마시고.... 어쨌든 주말 아주 푹 쉬고, 모처럼 에너지 충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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