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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적인 US: 우리들? USA? [Crazy like US]

읽은지 꽤나 오래되었는데, 되돌아볼 시간이 없어서 책상위에 한참이나 굴러다녔다.

원제는 [Crazy Like Us: Globalization of American Psyche]

여기에서 US 는 우리들일수도 있고 United States (of America)일수도 있다.

한국어 부제처럼 그들이 맥도날드 뿐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는, 즉 미국적 심리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 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 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에단 와터스
아카이브, 2011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생물학적이지만 사회적이고,

심지어 생물학적인 부분조차도 역시 '수용가능한 ' 혹은 '치료가 필요한'  심지어 '사회가 부담가능한' 이라는 잣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볼 때, 섭식장애,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전 지구적 유행 앞에서 사실은 심각한 의심을 했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생물학적 환원론을, 다른 한편으로 의료화 (medicalization) 을 경계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이런 문제들을 그동안 숙고하지 못했던 것은  여전히 서양의학/과학기술 트레이닝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어서인것같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정신병 개념과 다양한 치료법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생물학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현상을 대할때처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 는 말에 심하게 공감한다.

 

#.1.

 

홍콩의 거식증 인식과 사회적 유행의 진화과정에 대한 고찰은 self-fulfilling prophecy로 작동하는 정신적, 심리적 고통의 사회화 과정을 잘 드러낸다.

 

"... 그래서 문화적 틀이 없을 때는 소수의 환자들이 진기한 행동을 보였지만, 거식증이나 하지마비 같은 새로운 히스테리성 증상이 널리 채택되면 '그로 인해' 그 장상이나 장애가 공식적으로 '발견'되고 문화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 서양식 진단을 수입함으로써 환자들과 의사들이 그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한 경험자체를 변화시켰다...."

".. 우리의 서양식 성인 개념은 개인의 정체성과 자급자족에 높은 가치를 두고, 그에 따라 서양 청소년의 질풍노도는 대부분 독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실랑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많은 전통문화에서, 특히 아시아에서 개인의 독립은 성년의 목표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홍콩의 거식증은 발견되었다기보다 차라리 인위적으로 퍼뜨려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다... 한국은 어떨까?

 

 

#2.

 

스리랑카의 쓰나미 재해 이후, PTSD 라는 2차 쓰나미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고자 달려간 미국의 수많은 심리전문가와 상담사들의 활동에 대한 묘사는 resilience 혹은 회복력이라는 현지인들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무지, 문화인류학적으로 깊이있는 상호소통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통역요원조차 갖추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지역에 '짐을 풀은' 공급자 마인드 혹은 계몽주의적 (어쩌면 폭력적인) 시각을 전형적으로 잘 드러낸다. "... 이렇게 볼 때 누구보다도 취약한 사람은 폭력과 빈곤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별로 없는 사회와 문화권에서 온 서양상담사들이었다"라는 표현은 이 상황이 갖는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암암리에 현지의 견해들과 관습들이 열등하다는 파괴적인 메시지가 전달된다. 저자들의 현장 경험으로 볼 때 이 메시지는 식민주의를 통해 이식된 열등감을 강화시키고, 그들 자신의 긍정적인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현지 주민들의 믿음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다른 의료인류학자의 이야기도 경청할만하다. "세계적으로 재난의 대부분은 서양 바깥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재난지역으로 가서 그들의 반응을 병으로 취급한다. 우리는 '당신들은 이 상황에서 생존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그들의 문화적 서사들을 제거하고 우리의 것을 부과한다. 이는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끔찍한 예다."

 

#3.

 

정신의학자/심리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타파해고자 노력했던 이들은 정신질환이 다른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특정한 유전적 기질, 화학적 불균형, 뇌질환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인슐린이 작동 안하면 당뇨병이 생기는 것처럼, 뇌의 특정화학물질이 제대로 작동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길 뿐이다. 그러니 색안경을 쓰고 이들을 쳐다보지 말아라....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설명이 오히려 일반인들로 하여금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를 멀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그럼 어째야 하나'는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나도 그래왔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면서, 편견과 심리적 장벽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꺼려하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의료서비스 받기를 독려했던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랑에 빠지거나, 질투에 사로잡히거나, 아이와 놀면서 기쁨을 느끼거나, 종교적 희열을 경험할 때 우리는 친구들에게 그경험을 뇌 화학물질들의 행복한 또는 불행한 합류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에게 부과되는 사회적 낙인을 줄이려 할 때마다 뇌 화학작용 이야기는 계속 이용될 것이다. 환자 개인의 지각을 축소하고, 그 지각이 '그저 화학작용'이라는 관념을 강조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치욕스러울 수 있을까?"

 

#4.

 

"일본의 높은 자살률은 우울증 치료가 부족함을 가리키는 증거라는 것, 서양의 SSRI들은 과학적으로 진보했다고 입증된 치료제라는 것, 1차진료의사들은 정신질환 진단을 도와주는 간단한 3분 검사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우울증의 기준틀에 맞지 않는 환자라도 아픈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 일본인들은 업무 및 산업화와 관련된 사회적 스트레스를 SSRI로 치료해야 할 우울증의 조짐으로 재고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는 GSK가 일본에 SSRI를 출시하기에 앞서 진행한 전문가 워크샵에서 논의된 주제들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제약회사의 메가마케팅을 통해 적극적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은 (짐작은 했지만)  정말 마음 편치 않은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효과적이라고 확신하는 것같았고, 어느 누구라도 그것들의 가치를 의심하면 당황했다.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의약산업은 자신의 마케팅 활동과 윤리적인 목표를 잘 연결시킨다. 그 결과 질병을 '기회'로 여기는 이윤추구 계획과, 인류의 건강이 그 (화학물질들의) 균형에 달려있다는 윤리적 관점이 신랑과 신부처럼 결합한다. 이 때문에 대단히 공격적인 마케팅 담당자들이라도 자신이 공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게 된다."

 

#5.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에이즈라는 실체는 존재하지않는다. 서구 강대국의 음모일 뿐이다"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강조하는 것은 성찰과 회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에 근거해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섭식장애 전문가로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한 교수는 그의 연구가 "그가 뿌리뽑기를 원하는 바로 그 질병을 잠재적으로 전파해왔다고 걱정한 적은 없냐"는 질문에 침울한 긍정의 답변을 보낸다.

 

어떤 정신질환, 혹은 '질환'이라 명명되지 않은 어떤 심리적 고통을 인식하고 도움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양의학 - 근대 서구사회라는 매우 구체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생물학이자 사회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틀에 맞추어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려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특히 편견을 줄이기 위해 정신질환은 온전히 생물학적인 것으로 만들고, 누구나 앓을 수 있는 가벼운 질환으로 '만연'시키는 것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최근에 SERI에서 스트레스 산업의 시장규모가 수 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인지 낙관인지 모를 보고서를 내놓았고, 언론들은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GDP 올라가서 누구는 참 좋겠다...

날로 스트레스가 커지는게 우리사회라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 만일 인구집단 내에 심적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비현실적인 사회적 요구라면 왜 개인이 알약을 복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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