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오래된 반복...!!
- 우중산책
- 2015
-
- 10월 17일 오후 2시.
- 우중산책
- 2012
-
- 2012년 10월 17일새벽2..
- 우중산책
- 2012
-
- 2012년 10월 16일 밤.
- 우중산책
- 2012
-
- 2012년 새로운 일상....
- 우중산책
- 2012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탑을 뒤로하고 선산읍내를 들어가 다시 나오면
좀 뜨악해 보이는 성문이 하나 나오고
그 성문앞을 지나 조금만 가면 금오서원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논들 사이 일직선으로 난 포장된 농로를 따라 달리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 끝에 갑자기 나타나는 동네에 금오서원이 있다.
금오서원은
선산지역을 갈때마다
아니면
선산은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을 답사갈때
시간남은며 꼭 들러보는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그러나 고스란히 세월의 흐름을 집 전체가 안고 있는
그야말로 퇴락한 서원이다.
여기저기 무너지고 깨지고 나무들이 들뜨고 구멍나고.....
같이간 형님이 성질낼 정도로 보존이나 보호와는 담쌌다는 듯이
그야말로 퇴락한 채 쓸쓸히 서 있다.

하지만 비록 건물이 퇴락했다고 해도
그 건물이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사연마저 없어지지는 않는다.
금오서원도
비록 건물은 누추하지만 그 사연은 깊은 곳이다.
조선의 성리학의 도통설에 의한 계보에서
무려 네명이나 관련된 곳이다.

도통설에 의하면
목은 이색 - 포은 정도전 - 야은 길재 - 김숙자 - 김종직 - 김굉필 - 조광조로 이어지는데
이중에서 야은 길재에서 김굉필까지가 이곳과 연관되어 있는것이다.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를 모시는 서원이고 야은 길재가 선산지역 젊은이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야은은 원래 이곳 선산지역 출신이다.
고려말에 이방원(나중의 태종)과 함께 권근의 제자였다.
하지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하자
불사이군을 내세우며 선산지역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한때 친구였던 태종 이방원의 부름도 있었으나 간곡히 마다함으로
태종이 허락하여 이곳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김숙자 등을 가르쳤다.
그런 야은 길재를 모신 이 서원은
나중에 그의 제자인 김숙자가 자신의 아들 김종직과 지역의 젊은이들을 가르쳤고
김종직도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일두 정여창과 한훤당 김굉필 같은 재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서원은
좀 가파른 언덕에 급하게 서 있는데
지금은 정문이 많은 잡초만 무성하고 잠겨 있어서 옆의 쪽문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들어서면 강학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강학당 앞에 동재, 서재가 뒤로 사당이 있다.
강학당에 올라서면
바로 앞에 드 넓게 펼쳐진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강줄기를 앞에두고
거대한 사상의 흐름이 서원에 펼쳐진 것이다.
유구한 자연의 흐름속에
유구한 조선 성리학의 흐름이 이곳 금오서원에 넘쳐나는 것이다.
다들 알지만 결국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동방오현 중
김굉필, 정여창이 이 선산출신 김종직의 제자이고 김굉필의 제자가 조광조이니
오현 중 3명이 이곳과 관련이 있는 것이요
도통설의 길재, 김종직까지 치면
그야말로 조선 전기 성리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들이 이지역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서원은
지금의 사립 중고교과정과 흡사한데
지금으로보면 선산의 금오서원은 일종의 명문 사립학교인 셈이다.
이 금오서원에는 지금도 칠조라는 학칙 혹은 교칙이 있는데
요즘의 학칙으로 사용해도 전혀 무리없는 내용이다.

첫째, 창과 벽에 낙서하는 행위
둘째, 책을 망가뜨리는 행위
셋째, 놀면서 공부 안하는 행위
넷째, 함께 지내며 예의가 없는 행위
다섯째, 술이나 음식을 탐하는 행위
여섯째, 난잡한 음담패설을 즐기는 행위
일곱째,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은 행위
를 한자는 왔으면 돌아가고
오지 않았으면 오지 말라......!!....헤헤헤
완전 요즘 학교에서 교칙으로 사용해도 무방한 내용이면서
지금이나 그 옛날이나 학생이라는 신분은
항상 같은 일들을 벌이곤 한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다.
참고로
금오서원에 배향된 사람은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 신당 정붕, 송당 박영, 여헌 장현광을 모시고 있다.
참고로
이곳 금오서원은
한가지 특이한 것이 있는데
무엇이냐면 술이다.
선산지역의 민속주인 선산약주는
원래 점필재 김종직이 이곳에서 담가
서원을 찾아오는 손님이나 아니면 제사때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제자들을 위해 손수 담가 먹은 것에서 유래한단다.
즉, 스승이 먼저 모범을 보이며 음주문화를 가르치던 노력이
이렇게 몇백년 후에도 서원을 중심으로 남자들이 담가 먹었던 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야말로 모든 것이 자본주의 !!
재미나지 않나 ?
술먹으면 퇴학인 학교에서
스승이 먼저 술 가지고와 세상을 논하고 세월을 논하고
앞에 펼쳐진 강물과 그 흐름을 논하며 술한잔 한다는 것이 ....?...헤헤헤
다들 갑자기 성리학자가 된 기분인 저를 용서하시길....?
헤헤헤헤
상주에서 내쳐 달려서 간 곳이 구미시 선산읍.....!!
원래는 구미는 작은 동네고
선산은 옛부터 이름난 동네였는데
우리의 위대한 (?) 독재자 박정희의 고향이 구미라서
구미가 갑자기 개발붐에 휩싸이고......
그래서 이젠 작은 동네였던 구미가 선산을 통합하여 구미시가 되었다.
여하튼 그런 사연때문인지
선산읍은 거의 발전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옛 풍물 그대로 남아 있는 동네다.
다만 선산을 휘감아도는 낙동강일대가 온통 모래채취로 몸살을 앓는 것만 빼면......!!
선산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나오는 것이 죽장리 5층석탑이다.

내가 알기로는 5층 석탑중 가장 크지 않나 싶을 정도로 크고 웅장하게
야트막한 산등성이 중간에
따스한 햇살받는 위치에 딱하니 서 있다.
새로 지은 법당이 몇 보이기는 해도 워낙 석탑이 웅장하여
절집에 들어서며 석탑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감실에 최근에 다시 안치한 작은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그 앞에 재미있게도 말법집이 부처님보다 더 크게 매달려 있다.

아침 햇살이 탑위에 서성일때
아찔한 현기증 나듯 하늘향해 서있는 석탑을 쳐다보며
멍하니 몇백년을 버텨온 세월의 칸칸을 그려 보았다.

항상 석탑에서 느껴지는
그 처연덕 스러운 무뚝뚝함이란...............!!...나 같은 가벼운 인생은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항상 고개돌리게 만드는 신비함이 있다.
딱히 석탑에 대한 감상을 할 줄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탑을 마주하며 하늘한번 쳐다보면
항상 가벼운 나의 삶에 흠칫 놀라곤 한다.
아니 쉼없이 나의 곁을 뺘져 나가는 시간들에 화들짝 놀란다고나 할까 ?
원래 불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전래될때만 해도
탑이라는 것이 부처님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탑이 절의 중앙에
가장 중요한 곳에 모셔지고
그 탑주위를 돌면서 많은 불자들이 자신들의 욕망들을 구했다고 한다.
이런 탑이 몇백년 혹은 몇천년동안
많은 사람들의 그 숨기지 못하는 욕망들을 받아들이면서
굳건히 버티다보면
아마도 탑 스스로도 함부로 몰락하거나
함부로 웃음을 보여줄 수가 없었으리라........!!

그렇게 덕지덕지 붙은 사람들의 욕망의 때를 혼자서 묵묵히 버티며
그렇게 사람들이 사라져간 공간을 자신홀로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이 탑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누구도 가보지 못한 초월의 궁극을 경험하며 서있을 수 있지 않을까 ?
지금 내 눈앞에서도 이렇게 턱하니 서서
나의 욕망들을 받아줄 듯이 서 있는 저탑은
내가 나의 집으로 돌아가
이 탑을 돌며 나의 욕망을 표출했는지도 잊어버리고 아웅다웅 살아갈지라도
그 혼자서 나 떠난 빈자리를 휑한 바람들로 채우며
그렇게 서있으리라.
아 ! 아마도 탑은
사람없는 공간에서
자연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문지기가 아닐지.........................!!
선산의 관문에
그런
자연과 동화되어버린 외로운 탑하나가
그렇게 사람들에 무관심한채 사람들의 욕망의 때를 묻힌채 서있다.
멀리서도 보이는 그 따스한 언덕위에..................!!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포은 정몽주 인것같은데 ........ 요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