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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06
    아산시 옛집답사(1)...맹씨행단
    우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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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사람을 보다....[한국유학사상사]를 읽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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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3/06
    시대는 변했을까 - 손곡(蓀谷) 이달 [李達] 시집을 읽고
    우중산책

아산시 옛집답사(1)...맹씨행단

  • 등록일
    2005/03/06 15:09
  • 수정일
    2005/03/06 15:09

청주에서 천천히 가면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가늘 길이야 많지만

난 청주에서 조치원을 거쳐 1번국도를따라서 천안방면으로 가다가

행정리에서 광덕사 이정표를 보고 가다가 아산시로 넘어가는 길을 택한다.

 

가기전에 광덕사에 들러 절구경을 하고 난 후

쉬엄쉬엄 고개하나를 넘으면 나타나는 곳이 맹씨행단이다.

 

원래는 고려말

황금보기를 돌같이하라고 했다고 어린 시절 누누이 들었던

그 이상한 사람 최영장군이 살던 곳이다.

뭐 황금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면 모를까

이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런 명언을 남긴 사람의 집이니

검소하리라 생각하지만

널찍한 집터에 작은 성이 연상될 정도로 돌담이 인상적인 집이다.

 

 

 

위대한 사람들 특히, 오랫동안 사람들 입과 귀에 오르내리는 사람치고

이런 저런 야담스러운 전설이 없겠냐만은

최영장군의 이런 말은 약간 거스리는 경향이 아직도 있다.

실제 최영장군은 그 평가가 극과극을 달리는 사람이다.

 

누구는 이성계에 맞서 끝까지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절을 높이산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이런 야담 즉, 세상의 명리(이해관계)에 초탈하고 오직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절만이

드높았다는 식으로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을까 ?

 

최영장군은 고려를 위해 끝가지 충절을 다한 것은 맞을 수 있지만

다른 부분 즉, 청렴결백하다는 식의 평가들은 충분히 문제가 있다.

 

최영장군은 고려에 충성을 다하기는 했지만

결국 자신의 딸을 왕비 자리에 앉혔고

다라서 어떻게 보면 자신의 딸 혹은 사위를 위해 목숨을 다 바쳤다는 의혹을 사기도 하고

이성계가 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을 세우게 되는데

실은 가장 일조한 인물중에 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군사력을 가졌고 그런 군사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 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딸을 왕비에 앉히고

그리고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려한 것 또한 의혹을 받는 한가지 사실이다.

(아 ! 물론 그런것가지를 포함에서 고려에 대한 충성을 위해

어쩔수 없었다면 뭐...뭐라 할 이야기는 없지만 말이다....?...헤헤헤)

 

 

뭐 여하튼 그런 최영장군이 터를 잡았던 곳이 이곳 맹씨 행단이다.

최영장군이 옆집에 살던 어린 맹사성을 보고 그 영특함이 탐이나 자신의 손녀를 시집보내고

나중에는 이집가지 물려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원래 맹사성은 고려 수도인 개성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온양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마도 개성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온 것은 맹사성의 아버지가 당시 개성의 혼란스러움을 피해 이사왔다.

이사 당시 맹사성은 5-10세 사이의 소년이었다.

 

원래 맹사성의 집안은 대대로 고려에서 관직을 지낸 귀족가문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조선개국후 두문동 72현에 속했을 정도로 고려에 대한 충절이 있는 집안이었다.

두문동 72현 지금의 개성시 인근의 개풍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는 계곡으로

나중에 이성계에 의해 몰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라 맹사성의 아버지 또한 함께 두문동 72현에 속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하튼 살아남아서 이곳 맹씨행단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여하튼 최영장군이 집을 주었다기 보다

최영장군이 이성게일파에게 집안이 풍지박산 난후 이웃에 살던 맹사성 즉,

손녀사위에게  재산이 이어졌을 것이다.

맹사성이 고려파였던 최영장군 집안과 혼인을 맺은 것도 이러한 집안의 가풍탓일것이다.

 

우선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맹사성 유물전시관이다.

맹사성이 사용하던 옥피리와 기타 맹사성의 글씨들 뭐 그런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평소에는 거의 잠겨있어서 보려면 맹사성 고택안에 있는 집에서 사시는  

21대 후손 할아버지에게 부탁하면된다.

 

 

주차장 옆길로 바로 나타나는 것이 높게 솟은 대문이고 이 대문을 들어서면

처음 나타나는 것이 바로 21대 후손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이다.

 

 

종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할아버지는 꽤 친절하시다.

다만 할아버지께 이런 저런 설명 듣고나면

할아버지의 은행 좀 사가라는 말을 뿌리칠 수 없어서

5000원 정도라도 투자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뭐 그 정도는 이 집을 감상하는 비용정도로 생각하면 생각보다 많이

듬뿍듬뿍 퍼주시는 그 손길이 더욱더 정겨워 집구경하는 기분이 더 좋아지니

그럭저럭 사가지고 오는 재미도 있다.

(솔직히  집에와서 맥주 안주로 한 움큼 먹으면 그 맛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지만...헤헤)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오른쪽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은행나무 행단과 고택이 나온다

와 ! 하는 탄성이 나올정도로 큰 은행나무가 두그루 있는데

두 그루 모두 몇개의 나무가 함게 자란 형국이라 딱히 두그루라 이야기하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따지지 않고 보면 와 ! 하는 감탄이 나온다.

다만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때 가면 더욱더 입이 벌어지는 나무다.

이번에 갔을땐 잎도 자라지 않아 좀 그 위용이 실감나지 않지만

언젠가 보았던 가을날의 풍경은 아직도 찐한 여운을 준다.

 


이 은행나무 정면 앞쪽으로 고택이 있다.

 

이 고택은 한문으로 공(  )자 형태인데

고려시대 민가양식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식이다.

오늘날 흔히 보는 ㄷ자형집의 시조격으로 보이는 구조인데

양쪽 날개채와 가운데 대청마루 부분의 처마선이 거의 일직선을 이루어서

그냥 지붕만 보면 정사각형의 ㅁ자형 집처럼 보이지만 평면도 상으로 보면 완벽한

공(  )자형 집이다.

 

 

 

그리고 양 날개채는 구들방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는 대청마루가 배치되어 있다.

양날개채는 맞배지붕이고 뒤쪽으로 높게 굴뚝이 있다.

 

 

나는 이상하게 한옥집을 구경다니면

이런 굴뚝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특히 어느 집이나 거의 대동소이한 집의 구조에 반해

굴뚝은 그 집주인의 취향과 그 집의 집터에 영향을 받아 제각각인 경우가 많고

특히 그 높이나 장식은 마치 절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탑처럼

예술적 감흥을 나에게 준다.

 

                               < 굴뚝의 지붕 >

 

또한 이렇게 날개채가 앞뒤로 약간씩 튀어 나옴으로서 옆에서 본 칸살이는

거의 정사면체의 면처럼 느껴지며 정확히 삼등분된 칸살이를 보여준다.

 

 

보통 ㄷ자형 한옥집에서는 옆면의 칸살이가 이렇게 정확한 3칸살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자형의 중심의 칸살이는 대들보의 길이에 좌우되고 날개채는 도리의 칸살이에

맞추다 보니 생기는 약간씩의 변형인데

이집은 중앙부분의 대들보에 의한 칸살이 길이를 양 날개채로 튀어나감으로써

묘한 안정감을 갖게 된 것 같다.

  

 

고택 뒤로 세덕사라는 사당채가 있고 이런 고택과 사당채를 둘러싸고 돌담이 한 겹 두르고

그 한겹 두른 돌담 밖에 오래된 나무들이 있으며

그 밖으로 또 한 겹의 돌담이 두르고 있다.

 

21대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안쪽 돌담은 싸은지 오래되지 않았고

바깥쪽 돌담은 옛날부터 있었던 돌담이란다.

 

 

바깥 돌담으로 짐작해 보는 집의 규모는 상당해서

청백리의 표상이자 지붕이 세어도 고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고불 맹사성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이 부분에서도

실제 잘못 알려져 있는 부분이 있다.

 

당시 조선의 관리들은 서울에서 관직을 갖게되면

서울 도성안 혹은 남산 근처에 자신이 거주할 집들을 구입하였다.

물론 경제적인 차이로 그 크기나 장소가 정해지기는 하지만

한번 이렇게 도성안에다 집을 마련하면 아예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할때까지는 수십년동안 기거를 해야 했기에 요즘같이 전세집을 얻는 방식이아니라

아예 집을 샀다는 것이다.

 

특히 맹사성같이 48년이나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했던 정승들은

당연히 집을 구입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맹사성은 가족 대부분을 자신의 세거지인 이곳 아산시에 남겨두고

끝가지 서울에다가 주거지를 마련하지 않은 모양이다.

따라서 서울의 거쳐는 언제나 요즘 전세살이 처럼 허름한 집을

그때그때 옮겨다니며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맹사성이 이렇게 당시의 관료들과 다르게 자신의 주거지를 서울로 옮기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집안의 내력때문이리라

 

맹사성의 할아버지가 두문동 72현의 한분이고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끝까지 따르지 못한 죄책감과

여전히 조선을 인정할 수 없었던 마음이 남아 있었고

누구보다도 이런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맹사성은

어쩔 수 없이 조선의 관직에 나아갔지만 언제라도 미련을 버리고

자신의 세거지로 내려갈 생각으로 서울에서의 그런 궁핍한 삶을 살았으리라.

 

실제 이곳 맹씨행단이 있는 곳은 광덕산의 서쪽 줄기에 해당한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조선을 반대하며 죽어갔던 곳이

개성의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문동이고 보면

같은 지명의 서쪽 기슭에 세거지를 정하면서까지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려한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세거지를 서울로 옮길 수 는 없었지 않았겠나 ?

 

이런 맹사성네 3부자의 관계는 당시 매우 유명하여

조선전기에 제작 배포된 효에 관련된 삼강행실도에 삽화와 일화로 소개되었을 정도이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집이 누추했던 것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 잠시 머무르던 곳이니 애써 고칠 이유가 없어 그냥 살은 탓일게다.

다만 청백리였던 것은 사실로 보이는데

이는 그 스스로 할아버지, 아버지의 뜻을 져버리고 조선의 관직에 나간 이상

성리학자로서의 실천에 입각한 활동이외에

스스로 부귀공명을 꾀하기엔 스스로의 모순된 행동이며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을 의식해서라도 감히 부정을 탐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여하튼

고려에 대한 충절과 조선에 대한 충절 사이에서 언제나 고민했던

한 지식인의 삶을 엿보게 해주는 곳이 이곳 맹씨 행단이다.

 

이 돌담 넘어로 쪽문을 지나면 구괴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원래는 황희정승과 독수 권진이라는 정승, 그리고 맹사성이

이곳에서 서로의 생각과 국정운영방안등을 논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무 3 그루씩 9그루를 심었었는데 지금은 2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이 2그루에다가 소마누가 대여섯개 높게 자라있어서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는 정자이다.

 

정자는 마치 맹씨 고택의 부속된 정원처럼 바로 인근에 있어서

고려시기의 원림 즉, 정원의 조경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 듯 보이나

실제 이에 대한 연구나 조사된 바가 없으니 나같은 초짜가 뭐라 말할 순 없겠다 싶다.

 

다만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돌담과 그 인근의 산책로를 겸한 정가가 있는 곳이

언젠가 답사했던 의성군 산운마을의 한 민가의 잘 조성된 원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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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기억속에서 길을 잃다.(2)

  • 등록일
    2005/03/06 14:22
  • 수정일
    2005/03/06 14:22

사람들이 어쩌면

자신의 존재 혹은 삶의 의미를 기억 혹은 추억속에서 찾는 경향이 두드러 질수록

허리우드의 영화속 한장면처럼

인간은 자신들의 기억 혹은 추억들을 조작 혹은 재구성하는 등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노력처럼 기억들도 그런 상황들이 가능할까 ?

 

어쩌면이 아니라 우린 영화속에서 이런 것들을 자주 보곤한다.

가령 과거의 어떤 시점의 기억들속에서

맺어진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혹은 사건들이

자신의 무의적이든 아니면 의식적이든

그러한 노력들에 의해 재구성되곤 한다.

 

가령

일본영화 [라쇼몽]에서처럼

아내와 사무라이 남편과, 지나가는 산적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

각자의 삶에 나름대로의 영향들을 끼치듯이

결국 각자의 사적인 이해에 기반하여 인식되어지고

이러한 것들이 결국 자신의 기억들을 자신의 사적이해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재구성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

 

 

홍상수 감독의 [오 ! 수정]에서처럼

과거의 어느 한시점에서의 연애라는 것은

어떤 오해라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억 혹은 추억을

오로지 자신의 입맛대로 재구성하는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

 

아니면 [생활의 발견]에서 처럼, 혹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처럼

어떤 형태로든 결국 자신의 기억들은 스스로의 자기이해들에 의해

조작되고 재구성되어지는 것 같다.

 

     

 

실제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과 존재의의미를 찾게되는 그런 기억들을

수동적인 무의식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로써의 몸에 밴 무의식으로

재구성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스스로 그런 기억들이 남과 상관없다라고 생각되어지는

연애니, 생활속에서의 자잘한 기억들, 학창시절, 여행담 속에서는

더욱더 진하게 조작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기억들이 보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에서는 어떨까 ?

 

혹시 사회적이고 공적인 부분에서마저도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이나 조작은 가능하지 않을까 ?

 

가령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에서 보여지는 기억의 부재에 따른 단편적인 메모에 의한 재구성은

어쩌면 왜 사람들이 이러한 기억의 재구성 혹은 조작이라는 것에 적극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주인공이 눈뜨는 순간부터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기위한 자신의 기억에 대한 재구성은

진실에 대하여 접근할수록 점점더 광적으로 혹은 자신 스스로의 조작에 의해서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메모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실을 감추고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어서라도

재구성하려는 이러한 기억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자신의 단순한 사적 이해차원보다도 확대되어진

공적인 영역에서의 기억 조작들이 가능함과 그것이 어던식으로든

광폭함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롤랑 죠페 감독의 [미션]에서 보여지는

남미의 선교과정에서의 개인적 욕망과 그 초월에 의한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이라는 기억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종교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끔직한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재구성한다.

즉,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온갖 범죄들을

개인들의 희생 그리고 성숙이라는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당시의 범죄가 마치 종교적 차원이 아닌 그저 단순한 사람 즉, 개인의 미성숙에의한

철저한 개인의 잘못으로 재구성되어지면서

사람들 기억에 여전히 종교는 선한 것,

그리고 신은 여전히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식으로

영화가 끝나고 남는 기억을

사람은 없어지고 신과 종교만이 남도록 재구성한다.

 

 

이와 유사한 영화가 난 플래툰으로 본다.

언제나 이러한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대중적 인기도 그리고 작가(?)로써의 명망도 얻으려 시도하는

전형적인 허리우드 영화의 선봉장인 올리버 스톤 감독은

미국사회 혹은 월남전과 관계된 모든 세계인들에게

철저히 사회의 집단적 기억들을 조작하여

참여한 몇몇 군인들의 잘못으로 월남전의 그 수많은 인명살상의 기억들을 몰아감으로써

독보적인 감독으로

그리고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플래툰에서

전쟁은 당시 미국도 그리고 전쟁터에서 살아가야 했던 베트남사람들에게도

아무상관없는 그야말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문제로

그리고 그들의 미성숙과 광기로 인한 문제로 취부되는 듯하다.

 

즉, 사람들은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자신이 참여했던 그 광기어린 시대의 아픈 기억들

스스로의 자괴감에 빠져들게하는 범죄 방조자로서의 자각들을 버리고

갑자기 성숙한 정신적 문제에 골몰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사회집단적 기억의 재구성으로 한발 나아간다.

 

이런 사회전체의 집단적 기억의 재조작은

결국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알량한 사적 이익에 기반한

그 수많은 인류애적 범죄들을 오히려 앞서서 실천하게 만드는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는 최근 일본에서의 전쟁범죄가 희석화되고 재구성되고

결국 똑같은 일들의 반복가능성까지 내비치는 일본 사회를 보면

이런 기억의 조작들이 왜 사회전체에 집단적으로 진행되었을때의

광폭함이 두려운지 알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할까 ?

 

영화속에서 보면

로베르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처럼

전쟁이라는 그리고 전쟁상황속에서의 수용소라는 막다른 골목에서조차도

자식에게는 전혀 다른 인생의 아름다운 기억들만을 물려주려 노력하는

눈물겨운(?) 노력들을 볼 수 있다.

 

그 아들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과연 어떠한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갈까 ?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간 그 수용소를 떠올릴때마다

과연 무슨 생각들 무슨 의미들을 찾을 수 있을까 ?

 

아마도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전쟁의 고아기속에서도 보여지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까 ?

 

이러한 기억의 조작 혹은 재구성 아니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지는

그러한 어른들에 의한 기억의 간섭적 조작들은

실은 어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사실들 혹은 기억들을 방해하고

자신들의 가치관 즉, 기성사회의 가치관에 맞는 그러한 사실들로 재 조직된 기억들은

실은 사실을 은폐하고 훨씬더 작은 단위의 개인 기억들로 파편화시키는 경향은 아닐까 ?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아임 낫 스퀘어드]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홍보문구처럼

악이 넘치는 어른세계와는 다르게 순수한 동심의 우정을 그렸다고 보기엔

왠지 찜찜한 영화이다.

차라리

어린 아이들마저

자신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몸부림이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

 

누구나 보아도 알수있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

심지어는 모든 마을사람들이

인신매매범인 상황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동심의 순수한 눈으로 보이던

마을사람들과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지키기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안타가운 아이의 몸부림이 아닐까 ?

 

 

이런 몸부림에 솔직히 우리들

소위 진보적이고 운동권적인(?) 사람들마저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

 

모든 운동권 선배들이 어저면 그렇게 똑같이

추억속의 기억속의 운동들은 그렇게 열정적이고

심신을 다해 활동했다고 이야기 할까 ?

 

최근에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체 게바라의 영화를 보면서

왠지 어줍잖이 향수에 젖어드는

아 ! 나도 한때는 저런 열정과 저런 사회에 대한 인식들

민중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의 생각들을 조작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아닐지 ......!!

 

나 스스로도

이러한 자기만족적이고

자기 정당화의 한 방편적인 자기 기억 조작의 길에

접어든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내가 스스로 그런 자기 합리화 자기 미화의 길에 젖어들었다면

차라리 씨네마 천국의 주인공처럼

그저 세월에 짤린

무수한 조각난 필름들을 감상하며 눈물 흘리기 보단

오늘부터 쌓이게 되는 나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나의 미래, 지향하는 바대로 재구성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과거에 대한 편리이라면

이제부터의 기억은 차라리 내 삶에 대한 능동적인 개입이 되기를 바란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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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기억속에서 길을 잃다.(1)

  • 등록일
    2005/03/06 07:31
  • 수정일
    2005/03/06 07:31

영화를 좋아한다.

왠만한 영화는 닥치는대로 보는 편이다.

물론 돈없고 시간없고 뭐 이런 저런 영향으로

남이 보여주는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다 비디오로 보는 편이지만 말이다.

 

이런 나에게도

몇몇 영화는

바보 짓같지만 충동적으로 소장용 DVD를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 가타카, 뭐 이런 것들이고

매트릭스는 아직도 돈이 생기길 바라고 바라는 형편에 있다.

 

아 ! 물론 DVD를 우리 집에서는 볼 수가 없지만 말이다.....헤헤

 

그래서 주로 가지고 있다고

과감히 눈물을 머금고 친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지만 말이다.....헤헤

 

그중에서도

언제나 영화를 추천하면 꼭 들어가는 것이 [블레이드 러너]다

 

 


 

리들리 스콧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의 1982년 작품으로

뭐 내용은 다 아시다 시피 지구로 몰래 숨어들어 온 인조인간을 처단하는

인조인간 사냥꾼 이야기다.

 

세기말의 우울한 영상속에서

흐느적거리 듯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끌려 간다.

자신의 어렸을때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해 술로 괴로워하는 사냥꾼과

가지지 못한 기억이라는 것을 찾아 영생하고픈 인조인간들........!

 

나 이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아 ! 과연 인간이 살아가고 본재하는 것에서 우리가 간직한 기억이라는 것이주는

힘이랄까 아니면 존재 방식이랄까  뭐 이런 것들에 항상 전율하는 편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인간인지 혹은 인간이 아닌지를 판별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한 추억이 있는지 없는 지로 판별한다는 것......!

 

이;런 기억의 방식에 의한 현실의 저당잡힘이 어쩌면

집단적인 히스테리들 가령 민족분쟁들이나 인종청소...이런 것들의 태동의

기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 인간의 존재 내지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는 의미에서

꼭 보아야 할 영화중에 몇몇은 온전히 이런 인간의 존재의 이유를

기억 혹은 추억에서 찾는 영화가 많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영화인 공각기동대를 보아도

영화내내 여전히 인간의 실존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결국 추억 혹은 갖지 못한 기억들에 대하여

그런 기억의 상실과 그로 인한 실존의 문제처럼 보이는 다양한 장치들

그 속에서 헤어나려 몸부림치는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떨림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이제가지의 삶에 대한 것들

어쩌면 기억이라는 추억이라는

자신의 삶의 공간들을 시공간적으로 매꾸어주는 이런 부산물들이

자신의 삶의 주요 존재방식으로 전이될때

사람은 상실감 혹은 극단적인 히스테리, 혹은 집착에 얽매이는 것이 아닐런지....!!

 

솔직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어쩌면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에 혹은 추억들에 대한 향수와

그런 것들을 자신의 삶의 기반으로 삼는 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이미 공허함이나 슬픔 심지어는 아품들을

그 기반으로 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옛날 주말의 영화에서 참 재미없게 보았다가

한참 지나서 다시 보고서 아 ! 하던 영화가 있다.

누구나 다 아시는 그 영화 !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다.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기차타고 고생하며 남편을 찾아가지만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와 행복하게 살아가고

이에 쓸쓸히 혼자 돌아온다는 애절한(?) 영화다.

이 영화가 더욱더 애절한 것은

여주인공이 지난 과거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 비극성이 증대되고

확연히 그 추억들과 이별할때 폭발하게 된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거를 자양분으로 버티는 듯 살아가는 여인과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 대다수는 이렇게 스스로 집착하는 경향으로 인한

극단적인 상실감의 공유로 인해 영화가 끝날때쯤 우리 어머니 처럼

눈에서 눈물 몇방울 뚝뚝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기억 혹은 과거의 추억과 이별하는 경험을 하게되고

이런 이별의 감정들을 삶의 기반에 깔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그걸 극복하든 거기에 연연하든지 말이다.

 

최근엔

영화 자체가 허리우드식 아니면

보기 힘든 것처럼

미국의 힘에의한 기억들이 많아진다.

 

과거 영화들처럼

기억 혹은 추억이 사람에게 어떤 것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요즘 말로하면 좀 머리아픈 것들을 주제로 했다면

보편화된 허리우드 방식에서는

철저히 게임이나 놀이처럼 이런 기억 혹은 추억들을 가지고 노는 경향이다.

 

아 ! 그럼에도 이런 인간에게 있어서의 기억과 추억의 중요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매트릭스에서 보면

사람들의 신체에너지를 이용하여 살아남는 기계들이

이런 자신들의 일종의 에너지 원인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기억 혹은 추억에 대한 조작이다.

 

매트릭스라는 가상공간 혹은 가상현실에서

다양한 삶들을 추억으로 제공함으로써 인간들은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것이고

몇몇 선각자(?) 이외에는 실제 그런 가상이지만

기억이나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허리우드 식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끔직함은

그들의 자신감처럼

언제든지 이런 기억과 추억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자신감들을 언제나 그들의 힘의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끔직함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기억이니 추억과 같이

과거의 기억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

 

이제 술먹을때 군대이야기하고 옛날 학교 이야기하는

이런 쓸데없는 짓을 관둬야 겠다.

혹시 아나

 

나 스스로도 이미 과거에 사는 사람일지................!!

 

아니면 과거와 미래 사이 어느 지점에서 헤매고 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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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을 보다....[한국유학사상사]를 읽고

  • 등록일
    2005/03/06 06:29
  • 수정일
    2005/03/06 06:29

 

한때

심심할때마다

이 책 저 책 마구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남이 뭐라든

맑스도 읽고 푸코도 읽고 데리다, 네그리, 그람시....

퇴계, 율곡, 남명, 기대승도 읽고.......

추리소설, 무협지, 만화도 읽고.......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임꺽정, 장길산도 읽고...... 

 

이렇게 읽고도

뭐하나 아는 것 없어

묵묵히 술만 마실때도 있었다.

 

뭐 그렇다고 지금 많이 아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이런식의 책읽기에 질려갈 때쯤

손에 잡힌 것이 이 책이었다.

그땐 이것보다도 약간 두깨가 앒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증보판이라 좀 더 내용이 채워진 것 같다.

 

윤사순 교수가 쓴 [한국유학사상론].........!!

 

실제로

우리가 주리론이니 주기론이니 심성론이니

뭐 이런 것들을 주변에서 쉽게 접하지도 못할뿐만 아니라

한창 영어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시기에

뒤늦게 한자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해하기 힘든 이런 책을 붙들고

며칠을 끙끙 앓다보면

잡생각 사라지게 하고 잠 많이 자게 만들어 주는데는 딱이다....헤헤헤

 

뭐 읽다보면

무슨 수가 생긴다고

며칠동안 읽고 또 읽다보니

그럭저럭

뭔 말인지는 아는 정도가 되었고

그런 초보적인 지식으로 그 후에

여러 지역의 한옥이니 문화재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많은 도움도 되었던 것 같다.

그러기를 몇년...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다.

 

순전히 심심해서

책장에 꽂혀 있은지 몇년되는 책을 끄집어 내어

술먹은 정신에 쳐다보고 있자니

술기운인듯 예전보다는 읽는 것이 한결 편해지고

읽는 속도도 그럭 저럭 소설책 읽는 정도는 되는 듯하니

그 사이 나도 모르게 옛 것에 대한 이해가

제법 도통한 듯하여 히죽거리며 웃었다.

 

뭐 !! 어떠랴

지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아는 만큼의 이해정도에서

나 정도면 도통했다 말한들.....남이 알리도 없고 말이다.

 

솔직히

여전히 한문에는 잼병인 수준이고

현실에 대한 이해도 그냥 그런 정도인데

이렇게 제법 알아듣고 이해하는 정도가 나아진 것은

아마도 역사, 혹은 세상에 대해서 바라보는 몇가지 원칙들이

바뀌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맑스가 준 절대적인 영향때문인지

혹은 내 주변의 친한 사람들이 워낙 강성(?)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몇 년째 특별한 변화등을 겪지 못해 답답한 상황들에

억눌려서 그런지

역사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 것같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떨치려했던

어떤 조건이나 과정에 대한 집착과 법칙화 혹은 결정론적 시각을

최근들어 거의 하지 않게 된 탓이 많은 듯 하다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이 이야기한 것중에

역사를 역사적 사실들의 재발견으로 보지 않고

역사적 사건의 발생과 진행 과정 즉 역사법칙에 의한 과정으로만 인식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현실에서 괴리된

그야말로 역사적 법칙과 과정을 위한 역사만이 남은 것

이런 결정론적 시각이 확대되어 폭력과 전체주의와 같은 극한의 상황이 나타난 다는 지적.

이런 무정치적 상황의 연속이 현대사회라는 것......!!

 

뭐 솔직히 전적으로 한나 아렌트에게 동의하진 않지만

이런 사실에 대한 접근 시각과 방식은

어느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다만 적절히 표현하지 못했을 뿐.........!

 

노동자들의 책무니

원시공산제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까지를

그리고 다양한 반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들속에서

최근 나 스스로도

그런 결정적인 어떤 조건과 과정의 국면, 책무등

이런 것들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제대로된 고민들의 정리가 없어서

어떤 식으로의 결정을 유보한 채 이런 저런 고민들많이 진행하고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런 생각에서 읽게된 한국유학사상론이라는 책은

오랫만에 다시 만난 잼나는 친구였다.

 

그덕에 연달아서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다.

 

조광조와 사도세자와 영정조 시대 사상들, 율곡학파 등......!!

 

아 무엇 보다도 격몽요결을 다시 읽은 것은 진짜로 행복했는데....?

헤헤헤

 

다음에 시간되면 이런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것들을 적어볼 생각이다....아 ! 물론 기대하진 마시길.....!!

 

강건하시길....다들.......밖이 좀 추워졌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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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변했을까 - 손곡(蓀谷) 이달 [李達] 시집을 읽고

  • 등록일
    2005/03/06 05:56
  • 수정일
    2005/03/06 05:56

손곡(蓀谷) 이달 [李達] 시집을 샀다.

그리고 읽었다.

좋았다.

 

아니......?.....실은 좀 어려웠지만 좋았다.

 

한시를 읽는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워낙 한자에 강점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누군가의 번역본으로 그 시인의 정취를 느껴야만 하고

특히 손곡(蓀谷) 이달 [李達]처럼 슬프고 감성적인 애달픈 시들을 주로 쓴 사람의 시는

한자를 보고 나 스스로  번역해 읽지 않는 한은

전적으로 번역한 사람의 감흥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아 ! 물론 영시나 뭐 이런 것들도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영어로 된 시의 번역본에 비해

한시의 번역본이 그 시적 감흥에서 훨씬 그 격이 떨어지는 듯 하다.

아마도 한학자들의 시적 감흥이 여전히

시인으로서의 감흥보다는 학자로서의 감흥이 강해서가 아닐런지......!!

 

뭐 여하튼

그런 저런 사정들을 감안하고 나서도 이 시집은 좋았다.

 

 습수요 []

 

田間拾穗村童語(전간습수촌동어)

盡日東西不滿筐(진일동서불만광)

今歲刈禾人亦巧(금세예화인역교)

盡收遺穗上官倉(진수유수상관창)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이

하루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좋지 않나 ?....헤헤헤

 

실은 이 시를 읽으면서 거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쩌면 이리 적절한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워지면

어쩌면 사람의 인정 또한 줄어 들듯이

그나마 추수가 끝난 논에서

이삭주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세상이 힘들어지면 그 논의 일꾼들은 더더욱 깨끗이 추수하여

이삭한톨 남기지 않는 다는 것....

그 남김없는 이삭 한 톨은 가난한 사람의 수중에서 빼앗아

가진 사람들 혹은 그런 권력들에게 돌아간다는 것..................

 

그리고 어차피 그런 일들은 누구보다도 사정을 잘아는 일꾼들에 자행된다는 것.

 

..................!!........

 

최근 비정규직일들

그리고 민주노총 일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그 수없이 외쳐대는 민주노조, 노동해방...뭐 이런 구호들이

과연 그들 실제의 삶속에서 얼마나 구현될까 하는 생각들.........

 

최근들어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오히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적어도 이삭 한톨 흘려주는 사람의 인정마저 없어진

그야말로 황폐해진 세상을 볼수가 있다.

 

뭐 나도 이달처럼 시대에 화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들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다만 이달은

이런 세상을 떠돌며 시를 썼지만

난 이런 세상 신나게 욕이나 하면 술을 마신다는 것

 

아마도 이달에 비하여 한참이나 격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세상의 부유물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손곡 이달만큼의 시나 시대적 아품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이런 것들에 대한

초월적 감성들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세상에 빌어먹고

세상에 널린 술을 좋아해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은  닮아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헤헤헤

 

혼자 술이라도 한잔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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