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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쇠퇴 규정 폐기의 의미>
1. 자본주의 쇠퇴 규정과 이행요구
우리가 자본주의 쇠퇴를 규정하는 문제는 단순히 좌익공산주의 혹은 트로츠키주의의 특정 경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에게 더 이상 발전적. 진보적 생산양식이기를 멈춘 쇠퇴하는 자본주의, 인류에게 재앙과 파멸을 안겨다줄 썩어가는 자본주의, 즉 노동자계급에게 전쟁이냐 파멸이냐 혁명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역사적 시대 규정으로서의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쇠퇴 규정의 실천적 의미는 사회주의 혁명의 물질적 토대와 불가피성을 나타내줄 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직접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이행요구'를 강령으로 내거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쇠퇴 규정만이 혁명의 단계론적 사고와 최대강령/최소강령의 분리를 허용치 않는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쇠퇴 규정은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과 시급성, 그리고 강령에서 혁명적 실천 강령인 ‘이행요구’로 표현되어진다.
그런데 현재 사노위에 제출된 강령초안 중에는 자본주의 쇠퇴 규정을 아예 부정하거나 누락시킨 강령들(3인안, 제4인터안)과, 비록 단일한 근거로 쇠퇴기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있지는 않지만 강령의 기초를 자본주의 쇠퇴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이행요구를 내거는 강령(5인안)으로 제출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위적으로 통일될 수 없는 근본적인 사상적인 차이를 포함한다.
아직 5인안 강령은 완성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앞으로도 꾸준히 검증받으며 건설되어야 할 진행형이기 때문에, 비록 ‘자본주의 쇠퇴의 근거’가 아래 제시한 4가지 경향이 혼재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을 이유로 혁명 강령의 기초가 되는 원칙마저 훼손될 수 는 없다. 그 근거야말로 당 추진위 단계에서 심화된 강령토론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고 엄밀해져야할 과제일 뿐이지, 폐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쇠퇴 규정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무기로서의 강령의 근본체계를 흔들어 결과적으로 '혁명이론 없는 혁명전략'을 가공하여 '원칙 없는 실천‘을 강제하는 개량주의적 발상이다. 또한 쇠퇴규정의 폐기를 주장하는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강령적 무기인 이행요구의 물질적 토대마저 제거하게 되어, 이행요구를 최소강령 수준으로 추락시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2. 자본주의 쇠퇴 규정의 근거
1) 맑스, 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적 쇠퇴규정 : 사멸해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상승기와 쇠퇴기 규정
2) 레닌, 트로츠키(볼셰비끼, 스파르타쿠스 그룹 등)의 쇠퇴기 규정 : 제국주의 시대, 전쟁과 혁명의 시대인 자본주의 쇠퇴 규정
3) 로자 룩셈부르크의 쇠퇴기 진입 규정 :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할 수 있는 외부시장 소진 문제(잉여가치 실현문제)에 착목한 쇠퇴기 진입규정
4) 폴 매틱 등의 이윤율저하 경향에 따른 자본주의 쇠퇴 규정과, 이윤율 하락 경향과 시장 포화론의 상호작용과 종합적 판단에 근거한 쇠퇴 규정
3. 3인안과 정원현 동지의 왜곡
1) 3인안에서 제기하는 ‘외부시장 소멸론의 비과학성’ 문제는 자본주의 쇠퇴 규정의 악의적 왜곡이다. 우리는 외부시장 소진(시장포화)만이 자본주의 위기의 근본원인이라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과잉생산, 공황, 이윤율 저하경향” 등의 자본주의 근본적 위기가 외부시장이 소진됨으로써 더욱 촉진되고 전면화 되었다는 입장이다. 5인안은 위(2번 항목)에 언급한 4가지 근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자본주의 쇠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 시장포화라는 한 가지 근거만을 절대화시키지 않았다. 다만 근거들의 연관성은 추후의 과제로 미루어 놓았을 뿐이다.
자본주의 쇠퇴 경향을 ‘외부시장 소진’으로만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래 1914년 이후 자본주의(5인안 해설서)를 주목해보라.
“1914년 이후 ("쇠퇴시기" "제국주의의 쇠퇴 시기" "자본의 실질적 통치" 라 불리기도 하는)의 특징은,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자본이 팽창하고 사회적 재생산이 수축한다는 점이다. 전후 붐(1945-1970)과 같은 회복은 그러한 재구성을 수반했는데, 이 재구성을 가능케 한 것은 초기 대량 파괴(두 번의 세계대전, 불황의 10년, 파시즘 그리고 스탈린주의), 세계체계의 재편성(영구 프랑스 제국의 종말, 마샬 플랜 하에 이루어진 세계경제 - 구소련 블럭과 중국을 뺀- 의 "달러 블럭"으로의 변환, IMF 와 세계은행, 그리고 이전에 대체된 국가시장에 의해 억제되어왔던 20-30대의 신기술(주로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에 근거한 새로운 "가치 기준"의 강제 등이다. 이러한 재구성은 1966년 경기후퇴 (일본, 독일, 미국), 1968년 달러 위기와 브레튼 우즈 체계의 재정적 붕괴(1971-73)와 함께 동력을 다 소모해버렸다. 문제들이 풀려나가던 전후로 수십 년간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3인안의 ‘생산력 정체의 비과학성’ 이라는 규정도 5인안 해설에서 다룬 쇠퇴의 근거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 뿐 어떠한 반박의 근거도 없다.
“한 사회의 쇠퇴의 시기는 생산력 성장의 총체적이고 영원한 정지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성장의 명백한 약화”에 의해 설명된다. 따라서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의 출현”이 낡은 사회의 쇠퇴의 시대를 여는 것이지, 생산력 발전의 정지가 그것을 여는 것이 아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이러한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의 출현”을 나타내준다“
2) 쇠퇴라는 용어 자체와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이른바 ‘파국론’, ‘자동붕괴론’의 혐의를 두는 것 또한 자본주의 쇠퇴를 부정하기 위한 논리비약에 불과하다. 쇠퇴라는 용어는 ‘노쇠의 시기’, ‘퇴행하는 사회체제’, ‘생산력 발전의 족쇄’등으로 표현되듯이, 천천히 진화되는 ‘경제적 토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지, 짧은 기간 사회적 급변을 나타내는 ‘혁명적 정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자본주의 쇠퇴를 부정하는 동지들은 쇠퇴의 규정이 ‘파국론’ 이나 ‘자동붕괴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상상을 할 것이 아니라, 야만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며, 노동자계급 스스로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쇠퇴론의 핵심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파괴하는 임무를 아직 수행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생명을 유지하면서 인류를 점점 더 지독한 모순들 속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말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살아있는 한, 인류는 그 생존을 위협당하면서 이 죽어가는 체제가 부과하는 파국의 증대를 감수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이것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파국 속에서 전쟁이냐? 파멸이냐? 혁명이냐? 의 선택이 오로지 노동자계급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3) 마지막으로 3인안과 정원현동지 등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쇠퇴 규정이 노조개입, 의회전술 거부로 이어진다.” 는 비약이야 말로 중상모략에 가깝다. 오히려 개량이 불가능해지고 상설적 대중조직의 유지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혁명정당의 절대적 필요성과 대중기관에서의 혁명적 실천(현장분회 건설, 강화)이 즉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자본주의 쇠퇴를 규정한 강령이야말로 주체들의 역할을 극대화하여 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적 실천을 이행요구에 담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5인안 강령초안의 문구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계급투쟁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 첫째,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의해 쟁취 되는 지속적인 개선이 더는 불가능하여, 그것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근거한 특별하고 영구적인 조직들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것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통해 생존권을 방어하고 자본가계급과 투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산업별 혹은 대규모의, 대공장 노동조합들은 그것을 설립했던 당시의 그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
즉, 자본주의 쇠퇴기에 총자본의 쇠퇴는 노동자계급에게도 투쟁을 통해 쟁취되는 개량의 한계를 분명히 하여, 투쟁을 중심에 둔 전투적인 계급조직은 상시적이고 항구적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통적인 노동조합들이 전투성을 잃고 자본에 포섭되던가, 투쟁이 아닌 협상을 통해 그 조직형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노동자계급의 자기방어와 자본과의 투쟁이 가능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산업별 혹은 대공장 노조 조직들이 출범당시의 본래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노조주의, 계급협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명당의 강령과 계급투쟁 전술이 필요하다. 이것은 때때로 노동조합 자체를 넘어서야 하기도 하며, 혁명시기에는 그것의 완전한 극복만이 계급의 조직을 혁명기관으로 전환시켜낼 수 있다. (위의 강령문구는 이정도로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에 근거한 일반적 서술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에 안주하고 있는 사회주의 활동가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문구 하나를 두고 “노동조합 포기주의”, “노조활동 무용론”이라고 공격을 해온다. 정작 자신들이 전투적 조합주의를 지지하는지 전면적으로 거부하는지, 노동조합 특히 대공장 노조가 아직도 건강하기 때문에 혁신만 하면 된다는 건지, 노조개입 전술이 있기는 한지, 강령적 내용을 갖고 실천을 해온 건지 밝히지도 않은 채...
분명히 말한다. 노동조합의 성격이 혁명성을 잃고 자본의 도구가 되어 가고 있으며, 노동자평의회로 향하는 유일한 경로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전투적 노동자계급이 여전히 노동조합에 속해있고 그곳을 기반으로 투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노동조합이라는 공간에 개입하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것과는 충돌되지 않는다. 노조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개입을 기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다만 전체 노동자계급을 향해야 하는 혁명당에서는 90%이상의 노조밖에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계획과 전망을 강령으로 반드시 제출해야 하며,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 하는 것조차 전체 노동자계급을 향한 활동이어야 하며, 평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 혁명적으로 나아가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강령적 실천'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5인안의 강령체계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향하는 수미일관한 체계이며, 가장 실천적인 강령임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혁명정당 건설을 위해 노동자계급에게 혁명 강령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운동의 확장과 조직 확대를 위해 자신의 무기마저 내려놓고 오로지 다수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척박하고 일천한 당 건설 운동의 환경과 그것조차 넘어서지 못하는 이탈파들의 가련함에 애도를 표한다.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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