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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1/03
    설악산(3)
    풀소리
  2. 2005/11/02
    시향(時享)
    풀소리
  3. 2005/10/30
    민둥산에 가다.(2)
    풀소리

설악산

산오리님의 [대청봉과 통일전망대...1] 에 관련된 글.

다녀온지 꼭 한달 만이다.

처음에 틈나는대로 여행기를 조금씩 쓰다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두었다.

이제 다시 여행기를 쓰려니 쑥스럽고,

더 큰 문제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에라 모르겠다.

예전에 쓰다 만, 거기까지만 올리자.

다시 보고 수정하기도 힘들다.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설악산에는 단풍이

 

설마 벌써 단풍이 들었을까?

단풍이 들지 않으면 또 어떠리. 떠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걸~

들판의 누렇게 익어 꽃밭처럼 변해버린 논들과 익어가는 가을 곡식 외에 산들은 여전히 짙푸른 여름빛이 넘쳐나고 있다. 설악산이 높다고는 하나 단풍이 들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한계령 들머리 용대 3거리를 지나면서 풍경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벚나무, 가래나무 등부터 잎 색깔이 바껴가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주관적인 바람이 조금 변한 단풍도 마음 속 인상을 더욱 짙은 가을빛으로 바꿔놓은 것은 사실이리라.

 

굽이를 돌고 돌면서 이윽고 산꼭대기가 빼꼼 보였는데, ! 그곳에는 거짓말처럼 벌써 단풍이 들어 있었다.

 

1.

10 1일은 민주노동당 고양시위원회에서 곰배령을 다녀오기로 한 날이었다.

8월에 천상의 화원곰배령을 다녀와서 올린 후기를 보고 당원들이 가을에는 꼭 가자고 해서 8월달에 아예 날짜까지 잡았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일이 뜻대로만 되는가. 처음 날짜를 잡을 때 미쳐 고려하지 않은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고양시지역 정당,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매년 추도식을 갖는 금정굴 피학살자 추도식이고, 그 날짜가 10 1일이다.

 

우리는 곰배령을 접고 금정굴 행사에 참가했다. (금정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행사가 끝나갈쯤 현철이 다가와 내일 설악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한다.

 

누구랑?’

산오리 선배랑.’

 

제안만 들어도 마음은 벌써 설악산에 가 있었지만, 요즘 집안 분위기가 분위기라 선뜻 확답을 못하고 마누라한테 허락 받고 전화할게.’ 라고 대답하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전화했더니 마누라는 의외로 선선히 다녀오란다. 산오리가 새벽 5 30에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알람이 울렸다. 새벽 5. ‘산오리가 배현철을 태우고 전화하기로 했으니까 전화 올 때까지 조금 더 눈을 붙일까.’ 하며 자리에 누웠다. 새벽 3까지 잠을 설쳐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어보려고 해서이다.

 

깜빡 잠든 사이 전화가 울렸다. 배현철이다. 벌써 집 근처라고 한다.

부랴부랴 세수하고 챙기고 나가니 산오리와 배현철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5시 40 넘었다. 에고 미안해라~~

 

다음 행선지는 마포다. 함께 가기로 한 산오리의 절친한 멤버 역사와 산의 두 여성 분이 기다리고 있단다.

 

두 여성 분(이번이 두번 째 만남이지만 끝내 이름을 묻지 않아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은 김밥가게에 들려 김밥을 말아왔다.

이제 출발이다. 시각은 6시 40.

 

 

 

  마지막 쉼터를 지나 능선에서 바라본 중청

 

2.

여행은 늘 설레인다.

늘 보던 강가 풍경도 새롭고 더 아름답게 보이고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엷은 안개 피어나는 강가나, 듬성듬성 안개를 품은 산들과 간간이 밝은 빛이 감도는 구름들을 볼 때 비는 곧 그칠 것 같다.

 

양평을 지나는 강가 풍경은 언제나 보아도 아름답다.

특히 양수리에서 능내로 이어지는 호안 풍경은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추억도 많지만, 추억이 오히려 아픔이 되어 오래도록 보는 것도, 들르는 것도 모두 불편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인가, 아니면 40대 중반의 나이로 기억이 이미 희어버린 머리결처럼 희미해졌기 때문인가, 호수 위로 높다랗게 자리한 다리 위를 지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연휴 안 가운데이지만 길은 막히지 않는다.

아름다운 호수와 벼가 누렇게 익어 꽃밭처럼 예쁜 논들과 부드러운 산들이 섞여 있는 덕소-양수리-양평-홍천 길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인제를 지나고, 원통을 지나자 멀리 설악산 바위능선이 드러난다.

미시령길과 갈리는 용대리를 지나면서 오로지 산길이다. 구비를 돌면 돌수록 계곡과 바위절벽 등 설악의 속살이 드러난다.

 

, 저기 봐. 벌써 단풍이 들었어.’

 

어쩌다 섞인 벚나무, 가래나무를 가리키면서 외치는 일행들의 목소리에는 가을 설악을 고대하는 들뜬 마음이 선연하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나무들은 작아지고 단풍은 짙어진다.

  높은 산에서 굽어자란 자작나무는 벌써 낙엽이 졌다.

 

이윽고 언듯 내비친 능선 정상에는 단풍빛이 완연하다. 한계령을 앞두고 한쪽 차도 갓길에는 승용차들이 가득이다. 한계령 휴게소에 주차하지 못한 차량들일 것이라고 한다. 정말 차들의 줄은 한계령을 넘어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산오리와 두 여성 분들은 흘림골로 갈 것인지,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갈 것인지 행선지를 놓고 고민한다. 흘림골이 한적하고 경치가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내심 오색으로 가고 싶다. 이왕 설악산에 왔으니 최고봉인 대청봉을 가보고 싶어서다. 예전에는 남들이 가는 곳이 피해갔는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 오색코스로 가는 맘을 보며 내심 웃었다.

 

 

 정상에서 본 외설악 -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결정은 오색이다. 주차문제 등으로 시간을 보내니 출발시간이 10시 40이다. 대청봉까지는 산행에 숙달된 사람이 쉬지않고 걸어서 4시간 코스라고 한다. 우리는 3 도착을 목표로 걷기 시작했다.

 

3.

단풍과 절벽, 기암괴석으로 눈부신 한계령과 달리 산밑인 오색에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다.

산행을 시작하자 철제 사다리가 나타나고, 사다리가 끝나면서 가파른 돌계단이다. 돌계단이야 조금 가면 끝나겠지 했지만 웬걸 약간의 굽이만 있을 뿐 비슷한 경사의 돌계단은 1km나 이어져 있다.

 

 

  대청봉 정상 - 촌스럽게 기념으로 한장

 

산을 오르면서 단풍은 늘어가지만 가파른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느라 정신이 없다.

대청봉까지는 매표소에서 5km이다. 이 구간에 1.2 – 1.3km 단위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1쉼터(이름은 까먹었다. 편의상 제1, 2, 3이라고 이름 붙인다.)에서 제2쉼터인 설악폭포까지는 경사가 적어 걷기 제일 쉬운 구간이다. 설악폭포는 등산길의 정 중간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배현철이 가져온 홍어를 보니 술 생각이 난다. 배현철과 난 소주 딱 한잔씩 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950m. 해발고도 460m인 오색에서 490m 올라왔다. 정상인 대청봉은 1708m이니 758m 남았다. 죽었다. -_-

 

오르는 길은 또다시 경사가 급하다. 한잔 마신 소주 탓인가, 아님 운동조차 하지 않는 나이 탓인가 오르는 게 너무나 힘들다. 그래도 언젠가 끝이 있을 거라는 산오리 말에 힘을 얻지만, 그 힘도 잠깐 거친 숨결에 풍경을 감상할 힘도 없다.

 

3쉼터부터는 능선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다. 급히 오르니 중청봉 쪽으로 단풍이 한창이다. 특히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많이 섞여있다.

 

4.

3쉼터를 지나면서 바람이 세어지고, 나무들 키는 점점 작아진다. 사방에는 단풍이 완연하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힘겨운 와중에도 사진 몇 장을 찍고, 신경통 등에 좋다는 마가목 열매에 눈독을 들이면서 올랐다. 이윽고 등산로 가까이에 탐스런 마가목 열매가 있다. 배현철과 난 잠시 샛길로 새 열매를 땄다.

 

난 힘이 들어 뒤쳐졌고, 배현철은 지친 나와 동행이 되어 올랐다. 이윽고 정상이다. 산오리와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너무나 세, 맞바람을 맞으면 숨이 막히고, 휘청거릴 정도다.

 

이윽고 일행을 만나 옛날 대피소 터 옆에서 정상주를 마셨다. 난 안주로 싸온 문어를 내놨고, 배현철은 홍어와 신김치를 그리고 다른 일행은 과일을 풀었다. 풍성하다.

 

3 40이다. 내려갈 길이 멀다.

 

 

 내려오는 길에서 석양 - 날은 이미 저물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난 배현철과 마가목 열매를 땄다.

관절염에 굉장히 좋다는 말을 듣고 모처럼 엄마와 처갓집에 점수 좀 딸 기회다.

1000M 이상 고지에서만 자란다는 마가목은 등산로를 조금 벗어나자 지천이다.

문제는 나무가 커서 따기가 힘들다는 것

 

---------

 

다음 날도 재미있었는데, 오래 돼 글을 쓰기 힘들다.

 

양양 위 어떤 해수욕장에서 잤다. 문 열면 동해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따뜻하고, 맛있고, 재미있는 밤이었다.

 

다음날은 화진포로 해서 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화진포로 와서 라면 끓여먹고 돌아왔다.

 

사진으로 대신한다.

 

 

  숙소 바로 앞 동해바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어떻게 올릴지 몰라 못 올리겠네.

혹시 보는 사람 약올리려 했는데, 내가 약이 오르네...

 

 

 

 김일성 별장에서 본 화진포 

  

 

  김일성 별장 오르는 길에 핀 들꽃

 

 

  통일전망대에서 본 북녘땅 - 중간에 보이는 작은 섬처럼 보이는 곳이 남쪽 마지막 초소가 있는 지점이고, 멀리 보이는 돌산이 북한 금강산 자락이다.


  초소 옆 철조망에 핀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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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향(時享)

우리 집 옆에는 밀양(密陽) 박(朴)씨 선산이 있다.

그리고 궁궐의 집채처럼 커다란 추원재(追遠齋)라는 제각(祭閣)이 있다.

 


  밀양박씨 제각 추원재



밀양박씨가 약 280만명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인구의 약 6%에 해당한다.

더욱이 이곳은 그들의 최대 파라고 하는 규정(糾正)공파의 도선산(都先山)에 해당한다.


이래저래 무지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난 출근을 잠시 미루고 그들을 살펴봤다.

표정에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뭐 그게 대수’랴 할 수도 있다.

사실 대수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한 사람이, 아니 몇몇 사람이 그 많은 사람들, 특히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또한 특이하지 않은가.


우리는 진보정당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진보정당도 언젠가 역사가 될 것이다.

난 박씨 선산 넓은 잔디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보정당 기념일을 저렇게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참여하는 날을 그려보았다.


....


가능하게 하자.


  밀양박씨 선산 - 시향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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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에 가다.

지난 토요일, 난 갑자기 정선엘 갔다.

원래 아내가 지역 여성 당원들과 오붓하게 다녀오기로 했는데, 한 분이 갈 수 없어 아이가 있는 사무국장이 혼자 내내 운전을 할 수 없어 급히 날 끼워준 것이다.

어쨌든 난 고마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교통방송은 이천 - 여주 구간이 정체라고 한다. 난 일죽에서 장호원 - 목계 - 제천 - 영월 - 증산 코스를 택했다.

 


 민둥산 입구에 찍은 가족사진 - 성연이 숙제에 쓰도록 가족사진을 많이 찍자고 했지만, 실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장호원을 지나고, 목계가 가까워지면서 멀리 강 건너 내가 태어난 고향동네가 보이기도 한다. 장호원부터는 새로 난 4차선 도로가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천둥산 밑 산척까지는 신호등조차 없다. 남한강 위로 높다란 다리가 생겼고, 그 밑은 깊은 강물인 두무소이고 야트막한 동산 너머가 엄마가 태어난 마을이다. 성연이와 아내와 난 이 길로 여러 번 와봤었기에


‘저기가 아빠 고향이야.’

‘맞네, 인다락.’

‘언니, 인다락이라는 이름 예쁘지? 사람 人, 많을 多, 즐거울 樂.’

‘그런데 정말 사람들 많아?’


좋다.


내내 푸른 산빛이 천둥산에서 비로소 단풍빛으로 변한다.

천둥산에도 터널이 뚫려 제천 봉양까지는 금새다. 예전에 터널이 생기기 전 산 위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충주분지가 시원하기도 했고, 백운면 골짜기를 돌아가는 길이 정겹기도 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빠르게 지난다.


제천에서 영월을 지나다는 길도 4차선으로 새로 났고, 고속도로 못잖은 시설이다. 서강을 지나고 동강을 지난다. 4차선 자동차전용도로로 휙 지난다는 게 이럴 땐 안타깝기도 하다.


신동읍 못 미쳐 전용도로는 끝난다. 아직 이곳은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에는 온통 단풍으로 한창 타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고개인 마차재를 지나면서 증산으로 가는 길은 협곡을 따라간다. 물은 탁하지만 계급은 더없이 아름답다.

 


  민둥산 입구에 있는 들국화 꽃다지

 

증산의 민둥산 입구에는 대형 주차장이 있고, 차들이 참 많이 와 있다. 유명한 억새밭을 보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게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올라가겠다고 차를 몰고 산 쪽으로 올라갔다. 밭 옆에 주차하고 오르는 길은 아무래도 정상적인 등산로 같지 않다.


곧바로 험한 절벽이 나타나고, 사무국장은 어린 상유 때문에 밑에서 있겠다고 한다. 올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난 산에 오르기 힘들다. 팻말대로라면 정상까지는 5KM라고 한다.


‘성연아. 조금만 올라갔다 올까?’

‘안 돼. 끝까지 가야 돼!’

 


 장난에 정신이 없는 성연이

 

짜식. 답지 않게 단호하다. 그러나 200M도 채 가기 전에 성연이는 ‘조금만 올라갔다 오자’고 말을 바꾼다.


‘너 끝까지 가자고 했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역시 정치인 소질이 보이는 성연이다. 말을 바꾸는 것도, 시침이 떼는 것도, 그러면서 하나도 거리낌 없이 당당한 것도 하나같이 자질이 보인다.

 

  아내와 성연이

 

그래도 민둥산에 왔으니 억새밭은 구경하고 가야겠지. 처음에 힘들어하던 아내는 갈수록 힘이 난다고 한다.


절반을 지나면서 시야가 트인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에는 쌓인 눈이 보이고, 단풍이 한창인 산들이 보인다. 눈을 밑으로 돌리면 민둥산 중턱에 넓은 밭들이 있는데, 이는 석회암지대 특유의 지형인 돌리네(침식으로 움푹 꺼진 땅)이다.

 

  민둥산에서 바라본 주변 산들

 

  발구덕 마을 돌리네 - 고랭지 채소 단지로 쓰이는 것 같다.

 

  돌리네를 배경으로 한 아내와 성연이

 

성연이는 여기서부터 시야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앞서갔다. 산이 낮아지고,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면서 반대로 억새가 늘어갔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윽고 억새만 펼쳐진 초지가 나타나고, 조그마한 봉우리에 오르니 민둥산 정상까지 이어진 넓은 억새밭이 나타난다.

 

철이 조금 지나 이미 져버린 억새도 있었고, 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윤기를 잃어 기대한 ‘흰색’ 천지는 회색빛으로 바래 있었다. 그래도 넓은 억새밭은 시원한 눈맛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억새도 빛을 바라보고 역광으로 보면 신기하게 흰빛 천지가 되기도 했다.

 


  성연이가 찍어준 사진 - 아내와 나, 성연이는 장난기 때문인지 실력 때문인지 내 머리를 잘라놨다.

 

성연이는 지금도 민둥산을 떠올리며 「밀과 보리」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왜 그 노래가 생각나?’ 하고 물어보니 ‘밀과 보리하고 많이 닮았잖아.’ 하고 답한다. 그러고 보니 닮은 것도 같다. 난 성연이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는 건 누구든지 알지요.

...

 

  민둥산 능선에서 찍은 아내

 

  나도 모처럼 아내 덕에 사진 한장을 찍었다.


 

정상에 다가서니 억새밭은 멀리 지억산까지 이어져 있었다. 밑으로 골짜기마다 밭이 있고, 집이 있다. 지금은 예쁘고, 고랭지 채소 등으로 소득이 높겠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살기 막막했을까.


억새밭으로 난 길은 부드러운 고무처럼 탄력있고, 부드러웠다. 오랫동안 퇴적된 억새풀이 거름이 되어 섞여서인 것 같았다. 내려오면서 성연이는 장난기가 또 나타난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되요.’

‘응, 고맙다.’

‘그렇다고 아주 조금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하하하...’

 

  정상에 벌러덩 널부러진 성연이

 

우리는 구절리에 가서 민박을 하기로 했다.

증산에서 정선읍으로 가는 길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읍내에서 저녁을 먹고나지 늦가을 짧은 해는 이미 지고 난 다음이었다. 구절리엔 사람이 넘쳐났고, 간신히 자리 잡은 민박은 수리 중으로 허름했지만 넓고, 더구나 주인 내외가 너무나 여유로워보였고, 실제로도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했다. 민박집 이름은 「언덕 위의 하얀집」으로 구절리 우체국 뒤편, 교회당 옆에 있다.


아침에 민박집 창문을 여니 알맞게 단풍든 뒷산이 옅은 가을안개에 쌓여있다. 멋있다.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주인장은 맞은 편 골짜기에 있는 오장폭포에 가보란다. 달리 뚜렷한 계획도 없는 우리는 그곳으로 갔다. 폭포는 높이가 100M도 더 돼 보인다.

  오장폭포 새김돌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옆에 사무국장의 아들 상유도 보인다.


우리는 진부 쪽으로 길을 잡았다. 사무국장이 언젠가 사고 싶다는 땅을 보자고 했는데, 진부로 향하는 오대천 계곡은 또한 절경이었다. 우리는 숙암마을에서 잠깐 물가에서 쉬다가 ‘이왕 땅을 볼 거면 골짜기로 더 들어가 보자.’며 옆에 있는 담임계곡으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들어선 계곡이었지만 입구부터 너무나 아름다워 일행의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비포장도로라 길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맑은 계곡과 윤기 가득한 단풍잎들이 황홀경을 이루고 있었다. -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쉽다.


계곡을 들어가다 보니 예전에 TV에도 소개된 부부가 나무를 끌고 있다. 우리는 혹시 좋은 땅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깨졌지만 뜻하지 않은 경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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