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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0/29
    중독(2)
    풀소리
  2. 2005/10/21
    슬픈 위로
    풀소리
  3. 2005/10/19
    결국 법률원 변호사들도 사퇴(2)
    풀소리

중독

한심한 스머프...님의 [변태의 어려움..] 에 관련된 글. 

1. 「중독된 사랑」

 

'중독'이라는 단어는 내게 묘한 매력을 지닌 그 무엇이었다.
중독은 어쩌면 '열정'이라는, 내게는 많이 부족한, 그래서 늘 갈망하는 개념과 떨어져 설명할 수 없는 말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난 ‘중독’을 매력적으로 여기면서도 '중독'을 떠올릴 때면 멋진 얼굴에 남은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중독된 사랑」이 떠오르고, 그와 관련된 중첩된 기억의 덩어리가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덩어리는 악성 종양에서 일반 종양으로, 이제는 좀 보기 흉한 사마귀 정도로 그렇게 변했지만 말이다.



이미 ‘옛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벌써 10년도 더 됐으니 말이다. 프랑스 영화 「중독된 사랑」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었다.
난 '중독'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끌려 이 영화를 봤다. 그것도 혼자서. 물론 이제는 내용조차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넓은 극장 안에는 혼자 와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 남자는 나 혼자(혼자 와서 보는 여자들은 매우 많았다.)였다는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난 잠시 활동을 접고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그리고 그 얼마 전에는 2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상태였다. 그 친구와 사귀기 전에 4년 정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헤어질 당시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그 친구를 일방적으로 배신했다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을 만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난 다른 친구를 사귀고 있었고, 되돌리기엔 상황이 너무나 복잡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 사귄 친구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른 것은 사귄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만 2년 동안이나 연애(?)를 했다.

주변으로부터 내게 향한, 드러내놓고 하는 비난은 없었지만, 나는 겉으로 표현하는 건 자제했을지라도 죄의식에 늘 괴로워했고,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최대한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새 친구는 달랐다. 새 친구와 내 주변 사람들은 서로 낯설어했다. 그 낯섦이란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가 아니라 서로 너무나 다른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였다고 본다. 그런데 새 친구는 그 낯섦을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의 옛친구에 빗대 새 친구를 괴롭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그 친구가 나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오기로 작용했다.

 

난 나대로, 새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 이때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최대한 인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옛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둘의 이유야 서로 다르고, 엇갈리지만 결론이 같았다는 게 불행이도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주면서도 2년이나 연애를 지속시키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어찌됐든 예정된 이별은 현실이 되었고, 난 낯선 직장생활에도 낯선 솔로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2. 「중독」

 

내가 문득 ‘중독’이라는 낱말을 꺼낸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민주노총이 지탄을 받았고,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옆에 두고 얘기를 꺼낼 땐, 어떤 식으로든지 위로를 하든가 또는 에둘러 비난을 하든가 하였다. 어찌됐던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지금은 전문직 직업인으로 살고 있는 후배와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또 예의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었을 때 난 문득 ‘중독’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 스스로 '중독'이라는 말을 꺼냈음에도 그 말이 내게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난 말이야. 중독된 것 같아. 민주노총에도, 민주노동당에도. 때로 짜증나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벗어나면 못 살 것 같아.'


글쎄, 처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일단 '중독'이란 말이 떠오른 순간 난 체면에 걸린 듯 슬슬 내 얘기를 했다.


그렇구나. 난 중독되었구나. 한편으로 요즘 나, 지난번 ‘잘 못 사는 것 같다.’를 쓸 때 내 마음이 설명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려 노력하는 젊은 열정이 아니라, 붉은 광장에 옛날 군복에 훈장을 달고 나온, 이제는 늙어 추억밖에 붙잡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노전사의 힘없는 눈동자를 보는 것 같이 쓸쓸해지기도 하였다.

 

정희진은 '사랑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자기 부정이다. 사랑과 운동은 목적에 헌신하기 위해, 그들 몸의 일부가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역량이다.'이라고 했는데, 내겐 사랑보다도 사회운동보다도 중독이 먼저구나....

 

어쩜 김동윤 열사 앞에서 분노하지 않았던 것도, 강승규 사건 때 처음엔 무덤덤(?)하기까지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증폭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중독된 활동가(?)의 복잡한 회로를 거친 사유의 변환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정(否定)이나 변화보다는 조직적 손실 없는 유지(維持)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구나....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비수가 되기도 한다. 추억이 있는 곳은 지금은 없는, 함께 있던 사람이 유령처럼 떠나지 않고 기억의 영상 속에 여전히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곳은 아름답기보다는 가슴저림이 앞서는 곳이기 십상이고, 근처에 가기는커녕 생각조차 이어가기 힘들게 한다. 능내는 내게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앞서 얘기한, 죄의식에 시달리며, 날 오랫동안 잡아두었던 사랑의 아픈 기억이 내 글에 묻어 있는 것 중 하나인 ‘다시 능내에 가다’란 잡문의 앞부분이다.

 

민주노총이 나보다 훨씬 빠르게, 또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고, 민주노동당이 변질되고, 그리고 내가 떠난다면, 난 어떻게 할까. 역시 죽음만큼이나 막막하다.

 

어찌됐든 나 자신의 아픔보다는 기꺼이 ‘부정’하고 자기를 ‘변화’시켜야 하겠지. 그러나 관성의 각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 나는 안다. 쉽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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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위로

최경순 운영위원님은 이번 민주노총 사태에 영향받지 않아요?
예.
학교에서 주임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운영위원님을 많이 걱정했어요.
저야 괜찮아요.

 

어제 아이 학교 바자회가 있었고, 운영위원회에서 주최를 했기에 나도 아침부터 참가했다. 교장 선생님은 운영위원들이 너무 고생했다고 저녁을 사시겠다고 했고, 먼저 자리를 잡고 다른 운영위원들을 기다리면서 교장선생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민주노총. 우리의 자랑!
무수한 투쟁과 열사의 목숨을 바쳐 만든 우리의 무기!

 

진부한 표현이 되었지만, 사실이 아닌가.
제대로 된 상근비 한 번 받지 못하고 10여년 이상 청춘을 바치고, 감옥에 가고, 병들고 하면서도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들이 어디 하나 둘이랴. 그런 사람들의 정신이 묻어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과 희망이었던 조직이었는데, 나이 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익적 사고를 갖고 있는 교장 선생님에게 위로를 받는 처지가 되었을까.

 

ps :

결국 이수호 집행부가 사퇴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너무나 아쉽다. 강승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사퇴했다면, 민주노총이 다른 어떤 조직보다 도덕적 건강성과 정치적 책임성을 가진 집단으로 보였을 터인데...

 

언론들은 신났다.

모든 게 정파간의 알력관계로 설명한다.

 

이수호 지도부의 사퇴도

민주노총의 자정능력 -> 정파간의 알력관계

 

이렇게 변질되어 버렸다.

 

그러나 책임은 언론이 아니라 이수호 지도부와 민주노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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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법률원 변호사들도 사퇴

진보네님의 [트랙 팩 17 : 민주노조운동 어디로가나] 에 관련된 글.

권두섭 변호사를 비롯해 민주노총 법률원 관계자 11명은 18일 성명을 내 “사무총국 15명 활동가들의 사직 성명을 지지하면서 법률원의 성원들도 곧 그뒤를 따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도부 사퇴의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며 “그 결단으로 다시 불씨를 살리는 출발점이 되어주시기를, 그리고 현장에서 투쟁을 독려하는 백의종군으로 다시 평가받으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 10월 19일자 매일노동뉴스



지난 15일에 있었던 민주노총 시국토론회에 150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른바 전노투로 분류되는 강성(?)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여러 단위에서 참석했다. 다만, 민주노총과 주요 연맹이 함께 사용하는 대영빌딩에 상근하는 사람들이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니까 얼굴 붉히기 실었을까? 아니면 정파문제로 불거지는 게 싫었을까. 아무튼 대영빌딩 상근자 중 극소수의 참석자들 중에 권두섭 변호사와 안태윤 변호사가 있었다. 이들은 시종 침울한 표정으로 끝까지 토론회에 참석했고, 결의문에 서명을 했다.

 

변호사가 결의문에 서명하고, 사퇴하는 것이 뭐이 대수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또는 민주노총에 변호사가 모인다는 것이 상징하는 것이 있듯이 모였던 변호사들이 이곳을 등진다는 것 또한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난 어제 민주노총 중집회의가 궁금했지만, 약속이 있는 관계로 잠깐 참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잠깐 참관으로도 회의 결과를 예측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미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9일(오늘) - 20일 예정되어 있던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회가 무산되었다. 일부 중집위원들이 밝혔듯이 지도력이 무너지고 있는 증거이다. 일부 중집위원들은 지도부의 결단을 간곡히 호소했다. 그러나 위원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토론해보자는 제안으로 이러한 호소를 거부했다.

 

사실 지도부의 결단은 토론으로 결정될 일도 아니다. 더더욱이 표결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토론은 이미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토론에 들어가는 순간 결단은 멀어지고, 서로의 차이만 분명히 확인할 뿐이기 때문이다. 표결은 가능하겠지만 그 결과의 승복과 관계없이 이후 총파업 등 고통스러운 지도력 복구 과정에 흔쾌히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지도부의 결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결단' 이후의 '대책'을 이유로 지도부는 결단을 미루고, 책임을 결단을 촉구하는 쪽으로 돌리려 한다. 강승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이수호 집행부가 총파업을 힘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 중집위원 말대로 결단을 한다고 총파업 투쟁을 힘있게 진행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 지도체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의견이다.

 

민주노총의 현 사태에 대한 비상시국 토론회 참가자 결의문

 

우리는 오늘 참담한 현실에 분노하고, 고뇌하고 반성하며 이 자리에 섰다. 열사들의 피와 조합원 대중들의 땀과 눈물로 쌓아 올린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송두리째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 문제에 이어서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은 현장조합원과 전체 민중에게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개인비리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상층부, 일부 현장 깊숙이 자리잡은 노사협조주의와 그 안에서 자라난 부패, 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사용자단체에 돈을 요구한 것은 비리 이전에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계급성이 훼손된 문제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민주노총의 모습이다. 수석부위원장은 현 지도부의 핵심이다. 이 사건을 지도부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현 사태와 처리과정을 접하는 조합원 대중들의 실망과 분노는 폭발직전이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지도부를 믿고 어떻게 현장운동을 혁신할 것인가? 최소한의 신뢰를 보여주지 못하는 지도부를 믿고 어떻게 하반기 총파업 전선에 나설 것인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려면 조합원 대중의 신뢰를 다시 조직해야 한다. 그 시작은 이번 사태를 냉철히 바라보고 지도부가 환골탈태 자세로 총사퇴 하는 길뿐임을 알아야 한다. 총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는 것이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하반기 투쟁에 대한 책임이며 또한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투쟁,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다. 총사퇴 후 비상대책위원회 건설은 현장 대중들의 계급적 요구다.

 

이와 함께 정권과 자본의 노동운동 죽이기 공세가 거세어 진다고 해도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가 혁신해야 하는 이유는 민주노조 사수, 비정규직 철폐라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위해서다. 앞서간 열사들에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다.
하반기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비롯한 총력투쟁은 방기할 수도, 멈출 수 없는 투쟁이다. 따라서 지도부 총사퇴, 하반기 투쟁 사수라는 우리의 주장이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모든 연맹과 지역본부 단위조합 및 비정규직 투쟁주체들이 모두 참여하여 책임지는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현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전체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하반기 투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도부 사퇴가 끝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자본과 결탁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현장에서 몰아내야 한다. 자본에게 돈을 받거나 타협하여 자주성과 계급성, 전투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몰아내자. 노동조합의 권력을 개인과 정파의 권력으로 생각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행위들을 몰아내자. 조직이기주의에 눈 멀어 다른 노동자의 요구를 외면하는 행위들을 몰아내자. 치열한 토론과 실천, 연대에 기반을 둔 현장운동, 대중운동으로 혁신의 기틀을 마련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과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우리들의 투쟁을 선도하자.
동시에 노동운동을 죽이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우리의 투쟁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민주노조 사수,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 비정규직 철폐 투쟁 대오에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한다. 여기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전통을 개척하자. 하반기 투쟁에서 앞서간 열사들에 부끄럽지 않는 우리의 투쟁을 준비하자. 뼈를 깎는 혁신의 노력과 총력투쟁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정신과 노동해방정신을 복원해 나가자.

 

하나, 우리는 민주노조의 자주성·민주성을 복원하기 위해 민주노총 집행부의 총사퇴와 혁신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적극 전개할 것을 결의한다.

 

하나, 비정규개악안 저지, 로드맵 분쇄를 위한 하반기 투쟁에 우리 모두 주체가 되어 총력을 다해 조직할 것을 결의한다.

 

2005년 10월 15일

민주노총의 현 사태에 대한 비상시국토론회 참가자 일동

 

강동일 강성신 강해현 고미숙 고민택 공성식 곽동석 권두섭 권미정 권수정 권오현 권용수 김기연 김남식 김다운 김문주 김부영 김석 김성봉 김성재 김성태 김세균 김수목 김영재 김영준 김유진 김은천 김이배 김인식 김재천 김정은 김지애 김지현 김진 김진규 김진택 김창곤 김태연 김태윤 김태현 김현미 김형계 김혜진 김호정 김호진 김훈희 김희준 남문수 라은영 류미경 박경수 박덕재 박명수 박성열 박성이 박세연 박순남 박승희 박재순 박종성 박준도 박준형 박지영 박천석 박최정기 박충범 박훈영 백승수 변은영 선지현 손미아 손진우 손형우 송유나 신상기 신태호 신현광 심형호 안동길 안재원 안재훈 안창영 안태윤 양도연 양희수 오하나 유나경 유종범 윤경수 윤영균 이건 이경수 이꽃맘 이동식 이말숙 이상언 이상훈 이선희 이양수 이영섭 이영수 이은영 이재섭 이정원 이종명 이창석 이현 이호동 임필수 전소희 전재오 전주희 전지윤 정근원 정기진 정영섭 정윤광 정지현 조송자 조원기 조장우 조정미 조준성 진재연 최경순 최덕현 최미선 최민혁 최백순 최예륜 최은예 최일붕 하강두 하동현 한대식 한석호 한태호 함소희 함평기 허성관 허성호 허영구 현광훈 홍석만 홍성준 홍승훈 황대섭 황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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