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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되기의 필요조건.

개강을 한 지도 열흘이 지났다.

가을하늘처럼 아이들의 모습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아이들 없는 학교는 앙코 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고,

실 없는 바늘이다.

아이들의 싱그러움은 학교를 싱그럽게 만들고 선생을 싱그럽게 만든다.

또한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이 푸르고 싱그러워야 

선생도 한 학기 동안 싱그러워질 수 있다.

교육이란 아이들과 선생 모두 서로에게 싱그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이들과 선생 모두 서로에게 싱그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누가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권력을 쥔 선생이 먼저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이지 싶다.

말을 건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선생은 끊임없이 수신(修身)해야 한다.

수신이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다.

즉 자신을 잘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수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점쟁이보다도 더 잘 선생의 상태를 잘 안다.

그리고 개코보다도 더 정확하게 선생의 냄새를 잘 맡는다.

아이들은 선생의 눈빛이나 옷 입은 상태를 보고서

선생의 몸 상태나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만일 선생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고조가 아닐 경우

아이들은 선생 말이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날 수업은 그걸로 끝이다.

이런 상태가 두서너 번 되풀이되면 한 학기 수업은 말 그대로 망한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이 자신들에게 집중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선생이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선생의 몸과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콩밭에 가기 마련이다.

 

선생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서 자신들에게 집중해 나갈 때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면서 선생과 아이들 사이에는 믿음이 쌓여가게 된다.

믿음이 쌓여갈 때 아이들은 공부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집중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푸르고 싱그러워지면서 아주 활발해진다.

그러면 이러한 아이들의 상태가 선생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더욱더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맑스가 말한 대로 교육자가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이 민주주의를 아이들과 선생 모두 일상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선생의 현장 활동이란 다름 아닌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러한 민주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학기에는 나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의 마음도

콩밭으로 갔고, 그래서 수업은 거의 엉망의 상태가 되었다.

이는 아이들의 강의 평가에 고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거의 꼴찌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고통이었고 슬픔이었으며 나의 삶에 많은 생채기를 남기는 것이었다.

 

이제 이번 학기에는 내 삶에 상처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삶에 상처를 남기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아이들과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된다.

자신의 고통을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떠넘기는 어리석고 사악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가을햇살처럼 청명한 2학기를 만들어야지.

 

 

예전에 끄적였던 것이 생각나네요.

그래서 그냥 올려 봅니다,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나를 장작으로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서^^...

 

# 박남준 시인의 <흰 부추꽃> 노래를 듣고 #  - 2001. 3. 13. 화 -

 

그래도 그때
푸르던 때 있었습니다

 

해와 달 별 서슬 푸르게 차갑던 시절
서툴던 우리 삶 어쩔 줄 몰라
상처 주고 상처 받고 고통 받고 고통 주며
슬픔으로 얼룩지던 밤

 

그렇지만
그 상처 고통 슬픔 옹글옹글 모아
소주 막걸리로 빚어
서로에게 힘과 양식되어
삼십촉 희미한 백열등 희망과 사랑으로
서로 어깨 맞대고 보듬으며
서러운 노래
시리도록 푸르게 불렀던 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서투른 삶 더 서툴어지고
옹글옹글 모여 희망과 사랑을 빚었던
그 상처와 고통과 슬픔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밤거리에서
쓰레기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무심한 발길에 걷어 채이고
행여 묻을세라 청소부가 쓰레기통에 처박고

 

이 상처 고통 슬픔 모아
도끼 만들어
세상을 도끼질하고
나를 베어내어
아궁이 장작불에 던져져
세상 상처 고통 슬픔 빚어
화롯불 따스함 전해 줄 수 있을지
희디흰 재로 뿌려져
푸른 숲이 될 수 있을지

 

그래도
이 세상 도끼질하여
나를 베어 장작 만드는 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때
푸르던 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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