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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된 공포 그리고 우리의 삶

<칼의 노래 2>(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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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꿂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실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으리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48~49쪽)

 

 

- 우리의 삶 1 : 죽음을 가로지르기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함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55~56쪽)

 

- 우리의 삶 2 : 이동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 함대가 이동할 때, 적을 겨누는 나의 조준선은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58~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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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守)와 공(攻),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죽음

<칼의 노래 2>(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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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은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守)와 공(攻)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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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誠實), 물(水), 게릴라 전의 한계

<칼의 노래 1> (김훈, 생각의 나무, 2003)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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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誠實)

"김수철은 곡성의 문관이었는데 임진년에는 의병장 김성일의 막하에 들어가 금오산에서 이겼다. 예민하고 담대한 청년이었다. 문장이 반듯하고 행동이 민첩했다. 입이 무겁고 눈썰미가 매서웠으며, 움직임에 소리가 나지 않았다." (122쪽)

 

- 물(水) = 물(物) 자체 = 저항, 투쟁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함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힘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은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써 역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 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143쪽)

 

- 게릴라 전의 한계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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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램, 위로 그리고 결정론..

뭔가 다짐 같은 것을 하기 위해 다시 <칼의 노래>(김훈)를 집어들었는데,

이젠 약발이 다했나보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칼의 노래 1>, 속 표지에서 발췌)

 

-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칼의 노래 1> 18~19쪽에서 발췌)

--> 예전에는 죽음이 나를 위로하였지만, 이제는 그 죽음이 나를 위로하지 못하는구나.

 

-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무(武)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는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 바다에서 나는 늘 머물 곳 없었고, 내가 몸 둘 곳 없어 뒤채이는 밤에도 내 고단한 함대는 곤히 잠들었다."

(<칼의 노래 1> 36~37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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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工夫)

<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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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은 우가 비우고 간 자리를 지우려고 좁쌀로 담가서 내린 소주를 서너 구기나 떠다가 한종발에 비운 터라 베개를 돋우고 누워서 얼근한 기분으로 들었다.

- 오늘 내려간 유도령(우)은 어떻다고 하십니까요?

도의는 우에게서 들은 말이 있는 기미로 그렇게 운을 떼었다.

매월당은 우의 말을 들어보려고 묻는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대답했다.

- 그놈이 여기 와서 있은 것은 그놈이 있을 만해서 있은 것이요, 그놈이 오늘을 기하여 내려간 것은 그놈이 내려갈 만해서 내려간 것이라. 그로 보면 알 것은 약간 아는 속인 듯하니, 그놈이 나이가 아이라서(15살) 아이지 실상은 나이보다 여러 해 일찍 팬 놈일러라.

- 제가 치러보니 깊기가 녹록찮아서 제 얇은 소견에도 터럭이 세기 전에 학문을 이룰 성싶사온데, 다행히벼슬을 하게 되면 학문을 중동무이하기 십상이라 과공(科工)은 아예 아랑곳없다더군입쇼.

- 그놈이 그리 여긴다면 작히나 좋겠느냐.

- 그래서 제가 묻기를, 공부만을 팔작시면 가업을 놓치기 쉬운데, 그렇다면 장차 우리 신사(神師, 매월당)를 닮겠느냐 했더니 도리어 고개를 절레절레 하더군입쇼.

- 네 그건 또 무슨 소리더냐?

- 그래서 제가 또 묻기를, 남들은 밥과 옷과 집이 모두 공부에서 나오는데 유도령의 공부는 우리 신사의 학문이니 장차 밥과 옷과 집이 어디서 나오느냐 했습지요. 그랬더니 유도령의 답인즉 밥과 옷과 집은 괭잇자루나 가랫자루같이 한길짜리 자루 쥔 사람들의 것을 한뼘짜리 붓자루 하나 쥔 사람들이 훔친 장물인지라 쳐다볼 것이 아니라고 하굽쇼. 또 자신의 공부는 다만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채비에 불과한 것이며, 마음이란 몸을 부리는 장본인 까닭에 되우 다잡아서 다스리지 않으면 절도를 강도로 키우는 버릇이 있는 바, 이를 깨친 것이 여기 와서 신사를 모신 보람이라고 하더이다.

- 그놈이 내게 대들던 소위로 보면 정녕 제 오장에서 우러난 소리렷다.

도의는 문득 마른침을 삼켰다. 보아하니 입에 고인 말을 자칫 흘릴세라 단속하는 태도였다.

- 남은 말이 있거드면 마저 이르고 어서 건너가 쉬어라. 겨우내 옹송그리고 있다가 두나절에 다 폈으니 삭신인들 오죽 되겠느냐.

도의는 매월당의 다그침에 마지못한 듯이 입을 열었다.

- 실인즉 사뢰옵기 미안하여 덮어 둘까 했사온데, 분부 또한 중한지라 사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도령더러 우리 신사를 닮겠느냐고 떠봤더가 도령이 마치 무슨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양으로 고개를 젓던 것이 못내 삭지 않고 걸렸댔습지요. 그래서 작별할 임시에 한번 더 묻기를, 우리 신사는 대현(大賢)이시냐 했더니......

도의는 저야말로 무슨 못 들을 말이라도 듣고 온 듯이 쭈뼛거리면서 말씨까지 어눌하였다.

매월당은 도의가 그러는 것이 더 재미져서 넘겨짚어 말했다.

- 그야 익히 듣던 소리 아니더냐. 그놈 역시 양광(佯狂, 거짓 미친 체함)이라고 했으리라.

- 아니올시다. 도령의 말을 들은 대로 전주하오면, 현인이란 누항(陋巷)에서 밥 한 그룻에 물 한 바가지로 즐기는 법인데, 신사께서는 호매(豪邁)하시고 쾌활은 하시되, 다만 주어진 대로 즐기시기보다는 문득 어디랄 것 없이 으르대시고 부르대시는 터이시라 대현에는 미급하시다 운운했사옵니다.

- 허허헛......

매월당은 오래간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매월당이 우의 일을 기억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것도 그날 그렇게 크게 한번 웃어 봤던 여운이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321~323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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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

<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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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시는 것이 벼승이온데, 벼슬이란 대체 어떻다고 하십니까?

- 제놈들끼리 서로 못 먹어하며 부리로 찍고 발톱으로 찢고 하여 피가 마를 새가 없는 게 벼슬 아니더냐.

- 제가 묻잡기는 닭이의 볏이 아니라 사람 위에 있는 벼슬이올시다.

- 허어, 네 이놈, 닭이는 대가리에 얹힌 것이나 사람의 대가리에 얹힌 것이나, 각각 제고기에다 제값을 놓는 명색이기는 일반이거늘, 항차 두 발 가진 것들끼리 구태여 분간할 까닭이 뭣이더란 말이냐.

우는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마주 농을 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문 거였다.

- 네 물었으니 말하리라. 대저 벼슬이란 남 못하는 일을 맡아서 남 못할 짓을 잘하는 자일수록 얻기를 더하고, 높기를 더하고, 길기를 더하고자 주둥이와 손모가지를 잠시도 쉬지 않으며, 그런 까닭에 얻은즉 얻을수록 탐하고, 높은즉 높을수록 탐하고, 길은즉 길고 오래기를 탐하는 흉물인가 보더라.

- 하오면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서 한번 해볼 만한 일이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 배울 만큼 배운 연후에 그 배운 것을 남 주는 일이니라.

- 반드시 그렇다고 하십니까?

- 반드시 그러리라.

- 제가 감히 선생님의 꾸중을 무릅쓰고 여짜오면, 선생님께서는 대개 남 주시기에는 꼭 인색하시고 그냥 내버리시는데는 썩 후한 바가 있으시온데, 이는 어떻다고 하십니까?

- 그게 무엇이더란 말이냐. 에둘러서 비치지 말고 바로 대어라.

- 여짭기 미안하오나 이를테면 사장(詞章)을 처리하심이 대개 그러신 듯합니다. 시를 지으실 때와 버리실 때는 심기가 몹시 엇갈리시는 현상이옵니까?

- 이놈이 보자보자하니 이젠 삼가는 말이란 없구나. 이놈아, 남들은 내 노래와 똑같을 필요가 없기로써 같지 않은 것인데, 그남들의 노래에다 또 다른 남의 노래를 섞는다면, 대체 그 노래는 어떤 노래가 된단 말이냐. 하물며 내 노래는 웃음도 울음인 것을.......

- 예.

- 세상에 같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같은 마음으로 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문지라, 짐짓 주고 싶기 전에 버리고, 버리고 싶기 전에 잊고 마느니라.

우는 말없이 일어나서 절을 하고 나갔다.

 

(320~321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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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衛生)

•<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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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은 유자한이 고을살이를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갈 적마다 번번이 뒤따라나오는 아이 하나로 하여 으레 한번은 무르춤하기 마련이었다. 세상을 일찍 놓은 유자빈의 넷째이자 회의 아우인 우(藕)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었다.

우가 찾아온 것은 회가 가을걷이를 하다가 지쳐서 달아나듯이 귀가한 지 며칠 안 되어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우가 저 먹을 것을 지고 온 것이 갸륵하여 쉽게 받아준 것은 아니었다. 우는 열다섯 살에 불과한 소년이었으나 유자한의 푸네기 중에서는 기중 속이 차서 보매에도 형과 아우가 바뀌어 된 것이 아닌가 싶게 듬쑥하고 의젓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는 공부를 맡기러 왔다고 인사를 하였다.

- 네 어디까지 했더냐?

육경(六經)의 진도를 물은 거였다.

- 보이지 않는 열매를 따려는데 장대의 길고 짦음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네 이놈, 그게 어디 글 읽는 놈의 말버릇이더란 말이냐.

매월당은 가볍게 꾸중을 하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나이가 있고 없고 간에 벌써 목침이 날아갔거나, 저 먼저 얼겁이 들어서 달아나는 바람에 문짝이 부서졌거나 했으련만, 우는 첫눈에 괴었던 터라 말만 듣고 말게 된 거였다.

우는 일어났다가 꿇으면서 발명을 하였다.

- 저는 젖니 때부터 늦되기로 일러온 둔물인 고로 경서는 어차피 읽는 것이 한정이오나, 다만 의술만큼은 급하기가 촉각장중(燭刻場中, 불을 켠 초에 금을 그어 시간을 정하고 글을 짓게 하는 과거장)에 진배 없는지라 선후를 정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경학보다 먼저 익힐 것이 의술이라는 말이었다.

- 어인 까닭이더냐?

- 예, 제 어머님께서 천생일 약질이신고로 이날토록 불초의 근심이 늘 거미줄 같사온데, 아버님을 여의시고부터 종래 출면 못하시는 지가 오랜 터라, 이것이 공부가 뒷전이 된 이유입니다. 게다가 내력을 모을 줄을 모르는 집이라 약시시마저 잇고 끊기를 남의 집 인심에 의지하는 형세이고 보니, 이 노릇이 어찌 남의 자식이 되어서 사는 도리이겠습니까. 이런 불효는 전고에 없을 터입니다.

우는 눈물을 훔쳤다.

매월당은 싹이 보여서 흐뭇하면서도 전해 줄 의술이 없음에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네 말인즉 네가 잘못 찾아온 실상을 이르는구나. 필경 네 손은 쥠이 없고 내 손은 줌이 없을지니, 이른바 도로(徒勞)라 함이 이 아니겠느냐.

- 선생님께서는 저를 가련히 여기사 내치지 마옵소서. 듣잡건대 말씀은 가까워도 실상은 머시니 분부가 아닌 듯합니다.

- 아님이 아니니라. 네 아다시피 내 이날토록 약사여래(藥師如來)와 한집살이를 해오지 않았겠느냐. 그러나 고황(膏肓)이 삭아내리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주럽을 보태는 형국이니, 네 과연 무슨 얻음이 있겠느냐.

- 제 비록 어린 소견이오나 의견(이의)이 있사옵니다.

- 들어 보마.

-선생님께서는 수십 년 소금밥에도 위생(衛生, 삶의 보호)을 지탱하심은 도리어 육식자들을 눌러계시옵니다. 산곡과 산채는 악식(惡食)이라 고량진미의 종류와 다르건만 보건(保健)은 남의 모범이시니, 새는 기낭(氣囊)으로 뜨고, 물고기는 부레로 뜨듯이, 어찌 두어계신(지니신) 것이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그 동안 선생님께서 해오신 위생 가운데 항상 위주(爲主)해 오신 것을 약간 베푸신다면 더한 다행이 없겠사옵니다.

우는 일어나서 절을 하고 다시 곡좌하였다.

매월당은 위생의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는 데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 곡진한 태도에 흔들려서 전에 기록해 뒀던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네 여겨들어라. 내 진작부터 내몸에 더부살이하는 고질에대 비춰보건데, 무릇 병이라 이름한 것들은 본래가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마음이 생기면 병도 생기는 이치가 있느니라. 네 생각해 보아라. 긴 것을 기라고 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분별이 어디 무심(無心)의 짓이겠느냐. 그런 까닭에 병은 미리 병을 걱정스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죽음은 조섭을 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르고 늦고가 갈리는 것을 이제 알았으리라. 내게 이런 얘기가 있으니 한번 들어 보거라.

매월당은 알아듣게 하느라고 예를 들어 말했다.

-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어떤 절에 찾아가 하룻밤 얻어자는 데 늙숙한 선승 하나가 있더구나. 이 중이 밤에 뒷간에 가는데 퇴를 내려서다가 어떤 생물 하나를 밟아죽였구나. 그런데 그놈이 밟힐 적에 짹 하고 비명을 질렀것다. 중은 낮에 웬 두꺼비 한 마리가 댓돌 옆에 움츠리고 있던 걸 봤던지라. 아뿔싸 필경 낮에 본 그 두꺼비를 밟아죽였구나 했느니라. 자, 비록 부지불식간의 실수일망정 딴데도 아닌 절간에서 감히 살생을 했으니 잠인들 오겠느냐. 그래 이리뒤척 저리뒤척 고뿔 없는 몸살을 하다가 어슴 새벽에야 어리마리하게 잠이 들었는데 시작이 바로 꿈이었구나. 꿈에 그 두꺼비가 나타나 염라국의 법에 발고(發告)를 하니, 사람 형상에 소대가리를 한 옥졸이 두말없이 자기를 잡아다가 시왕(十王) 전에 매놓고 바야흐로 단근질을 해서 아비지옥에다 던질 참이라, 이에 깜짝 놀라는 바람에 눈을 뜨니 꿈이었것다. 중은 깨고 나서도 긴가민가하여 마음을 볶고 줄이다가 날이 새기가 무섭게 나가서 댓돌께를 살펴보니, 두꺼비는커녕 저녁 반찬으로 따라오다가 흘렸던지 오이 하나가 밟혀서 으깨져 있더란다.

매월당은 접어놓았던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 이것이 마음을 붙들어 다스리기에 스스로 늦춤이 있을 수 없는 이유의 첫째인 것이니, 다시 이르거니와 인류도 상고(上古) 적에는 새•짐승의 한무리로 둥지나 굴에서 살았던 까닭에 집과 구들이 없던 병을 만든 것이요, 상고 적에는 가죽을 걸치고 풀로 보금자리 하여 노루나 고라니와 한무리로 살았던 까닭에 베것•목것•깁것을 입으면서 옷이 병을 부른 것이요, 상고 적에는 범이나 승냥이의 무리로 짐승을 뜯고 피를 마시다가 곡식을 심어 고량의 맛, 태번(胎膰, 최상의 진미라는 곰의 발바닥과 표범의 태)의 맛을 알게 되면서 병으로 하여금 범과 승냥이의 기세로 덤비게 해놓은 이치를 깨달아야 할지니라.

매월당은 도가(道家)의 말로 말허리를 삼았다.  

- 어떤 위생서에 사람의 목숨을 늘이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왈 말을 삼가고, 왈 먹성을 삼가고, 왈 욕심을 덜고, 왈 잠을 덜 자고, 왈 기쁨과 노여움을 삼가라 운운했으니 한번 새겨볼 만한 것이니라. 대개 말에 정도를 잃으면 허물과 근심이 생기고, 음식에 때를 잃으면 탈과 피로가 생기고, 욕심이 많으면 위험과 변고가 생기고, 잠이 많으면 게으름이 생기고, 기쁨과 노여움에 절도를 잃으면 성명(性命)을 보전할 수가 없느니, 네 어떠냐? 이 다섯 가지가 진원(眞元, 사람의 원기)일진대, 진원을 잃고 나면 그 다음에 비록 얻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얻는다는 것이 죽음 말고 뭣이 있겠느냐?

- 선생님 말씀은 추상의 설(說)이옵고, 제가 묻잡는 것은 술(術)이올시다.

- 더 들어라. 또 이르기를 '그 마음을 다 하면 성(性)을 알고,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안다'고 했느니라. 네 어떠냐, 선도(仙道)를 그리워하는 자가 술(術)을 배워서 납이랑 수은을 단련하고, 솔씨와 잣을 먹고, 사람의 태를 처방하여, 부적을 차고 다니고 한다면, 곧 천지의 운행에 대들고 신비(神秘)를 훔치자는 것인데 그 구차스러움인즉 어떻다고 하겠느냐?

- 하오면 선생님께서는 선도를 멀리 하시고자 산인으로 머물어 계신 것이옵니까. 산인(山人)은 곧 선(仙)이온데 그것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는 서슴거리지 않고 바르집어 물었다.

매월당은 당돌함을 나무라지 않고 가볍게 응수하였다.

- 몸이란 것이 본래 마음의 부림을 받는 것이라 산인이 됐을 뿐이니라.

- 그렇다면 그 마음은 또 누구의 부림을 받는 것입니까?

- 마음은 부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림을 물리침으로써 제 있음을 스스로 다지는 몸의 주인인 것이니, 누구의 부림을 받는다면 그건 이미 마음이 아니니라. 오히려 제 아닌 것을 부리고 싶어하는 것이 마음의 본바탕인즉, 그런 까닭에 마음곳 부릴 것이 아니라 다스려야 할 것이니라.

- 그 마음이 난 곳은 어디라고 하십니까?

- 성기자연(性起自然)인 것을.

- 하오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자연이며, 그 역시 무위이화(無爲而化)라는 것입니까?

- 마음은 저마다 제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저마다 제 마음이 유지되는 것이니, 태상노군(太上老君,노자)의 무위이화보다는 인위이화(人爲而化)에 가깝겠구나.

- 하오면 선생님께서는 대개 인위로써 작위(作爲)하시고, 작위로써 무위하시고, 무위로써 유위하시는 셈이온데, 그렇다면 선생님, 선생님의 실상은 대체 뉘시오니까?

- 네 이놈, 그런 말버릇이 어디 있더냐. 이놈.

- 선생님께서 이놈을 파격(破格)하여 가르치시는고로 이놈이 한번 파격하여 묻잡고자 했을 뿐이올시다.

- 네 이놈, 너는 대체 숫기가 좋은 놈이더냐, 비위가 좋은 놈이더냐?

- 깊은 산을 만나면 소매를 걷고 싶고, 맑은 물을 만나면 바지를 걷고 싶은 것이 아이들 마음입니다.

- 네가 장차 당나라 사람 이하(李賀)를 만나거드면 그 사람러 물어 보거라.

- 이하란 사람도 병에는 무위였습니까?

- 그것도 그 사람더러 물어 보거라.

- 제가 구하는 의술은 자연이 아니올시다.

- 의생이 묻고 의술이 답하는 것도 다 자연에 의지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 하오면 저의 친환은 장차 어떡하며 제 거미줄 같은 근심은 장차 어떡하리까?

- 네가 이르지 않았더냐. 새는 기낭으로 뜨고 물고기는 부레로 뜨는 것을 알았다면, 또한 네 속에 지닌 것으로써 처방할밖에 달리 무슨 신통이 있겠느냐?

- 저는 설보다 술이 먼저입니다. 술인즉 실(實)이 아니올지요.

- 그러게 너는 쥘 것도 없고 나는 줄 것이 없노라고 이르지 않았더냐. 괴이타, 나는 약사 여래 밑에서 약을 옫지 못하고, 너는 설을 듣고도 실을 얻지 못하니 실이야말로 여항의 부뚜막이니 굴뚝 같은 곳에서 사는 놈인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너는 모름지기 저상하지 말아라. 이것이 책공부의 단서요, 글공부의 종장이란 것을 네 또한 알 날이 있으리라.

 

(310~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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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여 돌아가자!

<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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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가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은 오는 것이었다. 병이 깊어지고, 꿈이 얕아지고, 몸이 무거워지고, 생각이 가벼워진 것으로써, 그 동안 세월을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월에 매달려서 온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렇다. 매월당 자신이 오고 와서 이만큼 늙어 버린 것이었고, 세월이 스스로 오고 와서 이만큼 낡아 버린 것이었다.

하늘에는 북녘으로 돌아가는 새들이 며칠째나 무리를 지어서 날아가고 있었다.

덧없이 그새 이월로 접어들어 벌써 초엿새라나 초이레라고 하니, 그러고 보면 새들이 가고 싶어할 때가 되기도 한 것이었다.

매월당은 하늘의 새소리가 아녀자들이 먼 데서 앙살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거나, 새들의 그림자가 눈앞을 한꺼풀 걷어가듯이 후딱 가로질러 갈 때마다 얼른 고개를 들어 새 떼를 쫓아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고니인지, 물오리인지, 기러기인지, 두루미인지는 번번이 넋을 놓고 바라보면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새들이 줄을 지어서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약간 비슷하기는 해도 매월당이 언뜻 떠올렸었던 것처럼 겅그레나, 쳇다리나, 가새나, 곱자 따위와 같이 굽거나 가지를 친 어떤 물건의 모양이 아니었다. 새들은 사람들이 살림살이에 만들어서 쓰는 그런 도구의 형상을 시늉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새들은 산의 능선을 그리거나, 굽어도는 들길을 그리거나, 휘어나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것이었다.

매월당은 오늘도 가벼운 생각에 잠기어 있었다.

들앉으나 나앉으나 그렇게 묵은 일들을 되새기고 곰새기고 하는 것이 요즈음의 소일이었다.

생각하면 그 동안 걸어온 길은 아득하도록 길었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내일 모레가 이순(耳順)인 것을.

매월당은 이제 몇 달만 더하면 나이가 육순이라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는 것이 이 봄에 들면서 새로 붙은 습관이었다.

오늘은 느닷없이 울릉도를 생각하였다. 그러자 자연히 삼십여 년 전에 떠나간 천석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에 곁들여서 시도 한 수 떠올랐다.

 

삼신산 이야기 들을 만큼 들은 터라                            玄洲篷島飽曾耳

신선놀음이나 하면서 한세상 잊자 하니                        思欲仙遊謝世氛

마침 울릉도가 알맞다는 말 있어                                人說羽陵?避隱

높이 올라 바라보니 아득하기 구름일레.                       登高試望渺如雲

 

금오산에 살면서 한동안 동해로 나와 노닐 적에, 선사의 성류굴(聖留窟)을 거쳐서 평해의 월송정(越松亭)과 망양정(望洋亭)을 노래하던 끝에 <우릉도를 바라보며(望羽陵島)>로 제하여 천석이의 일을 잠깐 생각해 봤던 시였다. 천석이는 그 후로 아무 소리가 없었다. 뜻을 이루었기에 다른 말이 없으려니 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그러나 심기가 마냥 흐뭇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천석이의 일만 보더라도 신선이 정녕 따로 없지 않은가 싶을 때마다, 유문(儒門)을 열지 않았으니 유가(儒家)도 아닌 듯하고, 불문을 열지 않았으니 불가도 아닌 듯하고, 도문을 열지 않았으니 도가도 아닌 듯하고, 그 셋이 뒤범벅이 되어 두루뭉실한 무엇인가 하면 그도 아닌 듯하고, 아닌 듯하면서도 아닌 것이 아닌 듯하고, 그렇게 듯하고 듯해서 듯하고 듯한 몰골로 그럭저럭 나이 육십의 턱밑에 다다른 현실을 느낄 때마다 허망하고, 허무하고, 허전하기 이를 데 없는 심사가 되는 것이었다.

무릇 육십줄에 바짝 다가선 나이란 대자로 재거나, 줄자로 재거나, 곱자로 재거나 간에 앞날은 더이상 재기가 어려울 뿐더러, 마땅히 계한(界限)은 있을지언정 기약이란 없는 나이인 것이었다. 그 아무 무엇도 아닌 몰골로 그렇게 이르렀다고 한다면, 앞으로 그 무엇이 기어이 되리라거나, 그 무엇에 영 못 미치리라거나, 그 무엇에서 오히려 지나치리라거나 하는 따위의 앞날에 대한 어떤 기약도 막연해지는 나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것은 대체 무엇이더란 말인가.

매월당은 그에 대한 답도 생각하고 있었다.

다된 미완성.

아직까지는 그것이 답이었다.

그러나 매월당은 또 물었다. 그리고 또 답을 하였다.

그러면 다된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고 해서, 이냥 이대로 있기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이냥 이대로 있기만 한다고 한들 이냥 이대로 있기만 할 수 있는 날은 또 얼마나 된다는 것인가.

이날토록 걷는다고 걸어왔지만, 그 걷다가 미끄러졌던 길이 바로 이 길이 아니었던가.

걷는 사람들이 이른바 산행야숙(山行野宿)을 꺼렸던 것은, 산길을 가던 이가 날이 저물었다고 하여 산에서 가까운 곳에다 잠자리를 정할 경우, 네 발가지 짐승들에게 사냥감이 되어 주기가 십상인 까닭이었다.

매월당 자신도 그것을 경계해 왔다. 가다가 때로 자리를 잡고 쉬더라도 반드시 도회에서 쉴자리를 찾지 않았으니, 머리 검은 짐승들의 사냥감이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머리 검은 짐승들이 먹이감이 되는 꼴 그 한 가지만은 마침내 면한 셈이 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다음은 또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이 있으며, 앞으로는 무엇이 더 있을 것이란 말인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냥 이대로 있기만 할 수 있는 날마저 얼마 안 되리라는 것이, 그것도 짐작만으로 겨우 하나 있다면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일찍이 웃으면서 지하로 돌아갔던 사람들과, 울면서도 굳이 늦도록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과의 차이였더란 말인가.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 데 없으랴(魂?歸來無四方)'.

매월당은 그 귓글을 자주 되뇌었다. 소쩍새는 으레 돌아감만 못하다고 이르고, 그 자신은 으레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읊었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언제나 옛임금의 혼이었지 매월당 자신의 혼은 아니었다.

어이하여 돌아갈 곳이 없겠는가. 산이 있지 않은가. 강이 있지 않은가. 구렁텅이가 있지 않은가. 바다 밖이 있지 않은가. 어이하여 이 내 한몸 버려 둘 곳이 없을 것인가. 소쩍새는 또 으레 서쪽을 부르면서 울부짖었지만, 옛임금의 혼이 아닌 바에야 구태여 서쪽만을 찾을 것도 없는 일인 것 같았다.

혼이여 돌아가자.

매월당은 어느덧 설악산에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을 혼자서 키우고 있었다. 겨우내 몸져 누워 자리보전을 하는 동안에 슬며시 움텄던 생각이었다.

다시는 못일어나게 할 줄 알았던 병이 설을 쇠면서부터 누꿈해지더니, 이제는 뜰에 나와서 볕을 쪼이며 돌아가는 새 떼를 여겨볼 만한 여유까지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매월당은 그 여유를 전에 없이 귀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틈만 나면 설악산에서 떠나보고 싶은 마음을 더욱 도스르게 된 거였고, 들앉으나 나앉으나 묵은 일들을 되새기며 가벼운 생각으로 소일을 하는 것도, 그렇게 마음으로 하고 있는 떠날 채비 가운데의 하나인 것이었다.

 

(298~301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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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도-물 자체

<매월당 김시습>(이문구 지음, 문이당, 1993)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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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부처의 도는 굳건한 마음을 펴고 결단성 있고 열렬한 뜻을 일으켜서, 뜨거운 자비심으로 몸을 닦고 실상(實相)으로써 물(物)을 맞이하여, 삶과 죽음을 영영 끊어버리고도 항상 살고 죽는 마당에 처해 있으며, 이미 번뇌를 버리고도 항상 번뇌의 울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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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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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 <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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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객이었다. 손, 길에서 살아온 길손이었다. 길에서 살면서도 길에서조차 주인일 수가 없었던 덧없는 나그네. 자리가 없어서 떠돈 나그네였고, 그것도 여느 나그네와 달리 갓쓰고 헤매는 중이었다.

길, 길도 가까운 데서부터 쳐서 먼 편이 되거나 먼 데서부터 쳐서 가까운 편이 되는 길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길이 저절로 붇는 아득한 후미길이었다.

그 길을 걷고 걸었다. 그리하여 속절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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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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