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2006년 4월 7일)

 

순천 터미널에 도착하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내일부터니 지천에 벚꽃일터인데 이 먼 곳까지 와서야 볼 수 있다니. 도시 생활이란 게 얼마나 숨가쁜 것인지.

 

강남터미널에서 6시 40분 순천행 고속버스 첫차, 11시 순천 도착해 송광사행 버스, 잠깐 터미널 앞에서 벚꽃 구경한 것 말고는 지체한 것도 없는데도 송광사에 도착하니 그새 12시다. 오늘은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까지 산행 아닌 산행을 해야 하므로 아쉽지만 선암사 구경은 지난번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산길로 접어든다.

 

선암사 굴목재를 넘고 다시 송광사 굴목재를 넘어 송광사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완연한 봄기운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흐르는 계곡 물이 그렇고,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순이 그렇고, 진달래가 활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그렇다. 또 몸에 찰랑찰랑 부딪쳐 떨어지는 풀잎 하나 하나에서도 봄 향기가 묻어난다. 다만 만만치 않은 오르막 산길로 조금은 숨이 가빴고, 어중간한 시간 때문에 그 유명한 보리밥 맛도 못보고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쉽다. 봄 계곡의 맑은 물에 손도 담가보지 못한 건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핑계로 돌리지만 못내 아쉽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굴목재>

 

다행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당도했는데 송광사는 선암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왕대 숲을 지나 만나게 되는 이 절은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3보(三寶) 사찰의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인 만큼 규모 면에서는 꽤 크지만 큰 가운데 아기자기하고 적당한 법당들이 여기저기 제 자리를 잡고 있어 선암사에서와 같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또 이곳의 지형이 바람이 불면 함께 흔들거리는 형상이라 ‘불일보조국사감로탑’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돌로 된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데 이 또한 색다른 맛이다.

 

둘째 날, 벚꽃 70리 길을 걷다(2006년 4월 8일)

 

송광사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벚꽃나무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순천터미널 앞 벚꽃은 맛보기였던 모양이다. 주암호를 끼고 도는 18번 국도 변은 그야말로 벚꽃행렬이고 지나는 차마저 없어 우리들만의 벚꽃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조금 걷다 꽃구경하고, 조금 걷다 주암호 구경하고,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30분 걷고는 아예 아침도 먹을 겸 벚꽃과 주암호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본다.

 

 

<송광사 입구에서 시작된 벚꽃이 구례까지 이어진다>

 

창촌마을에서 죽곡면까지의 길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남도의 푸근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한데, 어째 특색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고만고만한 마을들과 들과 산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죽곡에서부터는 대황강이라고도 불리는 보성강을 오른편으로 두고 걷는, 곡성 군 길 벚나무들이 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즐겁기만 하다. 게다가 넓은 갓길에 쉬어가기 좋은 원두막들이 있어 벚꽃 70리 길이 힘든 줄 모른다.

 

압록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번잡스럽지는 않았으나 특별히 볼만한 것도, 마땅히 쉴만한 곳도 없어 오히려 썰렁한 느낌마저 준다. 여름철 피서지로는 적격일지 모르겠지만 보성강과 섬진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식당이며, 민박집에서의 푸근한 동네 인심에 편안히 쉬어간다.

 

셋째 날,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 관문 구례로(2006년 4월 9일)

 

오늘은 섬진강을 왼편으로 두고 지리산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구례까지 걸어야 한다. 다만 일요일 오후 늦게 출발했다가는 봄맞이 구경나온 사람들과 뒤엉켜 늦을 수 있다. 해서 아침도 거른 채 일찍부터 길을 나선다.

 

구례로 가는 길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17번 국도와 10번 군도가 있는데 10번 군도를 따라 걷는 것이 나을 듯하다. 어제 70리 길에 이어 벚나무가 또 있는 것도 그렇고 오가는 차가 없는 것도 그렇고 쉬엄쉬엄 쉬어갈 만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걷고 있는 17번 국도변에도 심심지 않게 벚나무를 만날 수 있으며, 식물도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름 모를 들풀들과 철 이른 야생화들이 반기고 있으니 어떤 길이 더 나은지는 알 수 없다.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가에서 만난 들꽃>

 

어제오늘 섬진강과 함께 했으니 재첩국 맛은 봐야겠는데 구례구역 앞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섬진강 물빛을 닮은 재첩국을 시켜놓고 지도를 펼쳐보니 ‘이제야 땅 안쪽으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다음은 지리산을 넘어야 한다. 둘 다 지리산을 다녀온 지 몇 년씩은 지났으니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해야 할 듯하다. 잘 포장된 일주도로라 등산하는 맛은 없겠지만.

 

* 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산길 7km를 약 5시간 동안 걷다.

- 둘째 날 : 송광사에서 압록까지 18번 국도 벚꽃 70리 길을 걷다. 걸은 시간 약 8시간.

- 셋째 날 : 여전히 18번 국도. 압록에서 지리산 아래 구례까지 섬진강을 왼편으로 두고 약 4시간 동안 15km를 걷다.

 

* 가고, 오고

선암사까지 내려가는 것은 다섯 번째 여행 때와 반대방향으로, 즉 순천을 경유해서 쉽게 갈 수 있었는데, 구례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구례에서 서울로 직접 가는 시외버스 시간을 놓쳐 시간을 절약해보고자 남원을 경유해서 올라왔는데 실제 시간상으로는 구례에서 다음 차편을 기다리는 것이 남원을 거쳐 서울로 오는 것보다 나은 듯하다. 구례에서 남원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그렇고 남원에 도착해서 다시 고속버스터미널로 움직여 서울행 버스시간표를 맞추는 것도 그렇고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용도 엇비슷하게 든다.

 

* 잠잘 곳

송광사 인근은 관광지라 그런지 숙박시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음식점도 여느 관광지와 같이 매우 요란스럽다. 둘째 날 머물렀던 압록은 이름만 요란했지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숙박시설이나 음식점이 별로 없다. 가까운 구례나 곡성은 음식점도 많고 숙박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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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0:50 2009/05/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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