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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책에 손이 가게 된 이유는 소설가 박태원 때문이었다. 월북 작가라는 왠지 모를 호기심도 호기심이었지만 17여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것도 급작스런 병으로 실명에, 전신불수까지 온 상태에 이르렀어도 끝내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써내고 말았다는 얘기에 언제고 그가 쓴 글을 읽어야겠다, 마음먹었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박태원의 글들이 1988년 7월 해금된 이후에나 장편 <천변풍경>, <임진조국전쟁>을 비롯해 완역한 <삼국지> 등이 소개됐고, 지금은 절판돼 구하기가 어렵지만 <갑오농민전쟁>이 출판사 깊은샘을 통해 출판됐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소설과는 꽤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이담이 쓴 ‘경성 만보객-新 박태원 전’과 함께 한 권으로 엮인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에도 박태원의 글 ‘소설가 구보(九甫)씨의 일일’(이하 ‘일일’)이 있다.

 

‘일일’은 박태원이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글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도시소설이라는 장르로 쓰였다. 또 주인공의 하루 산책을 따라가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이라는 독특한 방식에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몽타주 기법을 가미한 매우 독창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 월북 작가의 글들 중 많은 것들이 내용면에서뿐만 아니라 형식이나 소재면에서도 다분히 실험적이고 독창적인데 ‘일일’ 역시 그런 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2.

현대적 도시의 대로(大路) 중심성은 서울의 거리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로를 축으로 동대문 방향으로 곧게 뻗은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 남대문과 서울역 방향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잠시 꺾인 태평로의 모습. 이런 풍경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던 수많은 골목길들이 사라진 것을 연상케 하는데, 민중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자들의 의지를 극명하게 투영한다.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 조선 봉건 왕조는 쭉 뻗은 이 길 양편에 궁궐과 관청들을 늘어 세워 비천한 백성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했고, 뒤이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세종로 광화문을 경복궁 오른편으로 옮기면서까지 조선총독부를 세워 식민지 민중들을 위압적으로 굴복시키려 했다. 이후 박정희로부터 MB에 이르기까지 이 거리는 정권의 부도덕성을 지우고 근엄한 위엄을 억지 세우기 위해 동상을 세우기도 하고, 애꿎은 천(川)을 콘크리트로 덮었다 들어내기도 하고, 급기야 차벽으로 길의 숨통마저 틀어막고 있다.

 

그렇게 서울의 길은 민중들에게 있어 낯선 거리일 뿐이다.

 

3.

스물여섯의 구보씨는 늙은 어머니의 ‘일즉어니 들어오너라.’는 말을 뒤로하고 천변 길을 광교로 향하여 걷는다. 그러나 딱히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지 못한 구보씨는 종로통으로 걸음을 옮기다 종로네거리에서 동대문방향 전차에 오른다. 전차가 동대문에서 방향판을 ‘한강교’로 갈고 훈련원을 지나 조선은행 앞을 지날 때까지도 별 볼일 없던 구보씨는 잠시 다방에 들러 홍차를 마시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태평로2정목 고물상 거리를 따라 태평통을 걷던 구보씨는 경성역에서 중학 시대 열등생을 우연히 만난다. 마음에도 없는 만남을 시큰둥해하던 구보씨는 그와 해어진 후 다시 다방으로 돌아가 시인과 마주 앉는다. 그러나 집, 아니 여사(旅舍)로 돌아가는 벗과 달리 구보씨는 여전히 거리를 방황한다. 어느 틈엔가 종로네거리에 선 구보씨는 하얗고 납작한 조그만 다료(茶寮)엘 들러 벗을 데리고 나온다. 벗과 설렁탕으로 저녁을 때운 구보씨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열점, 늦어도 열점 반’에 다시 다방에서 만나자는 벗과 헤어진 후 이번엔 광화문통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멋없이 넓고 또 쓸쓸한 길을 아무렇게나 걷던 구보씨는 열점에 다시 보기로 한 벗을 만난다. 벗과 다시 만난 구보씨는 벗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카페의 여급을 찾아 낙원정으로 향한다. 가는 비 내리는 오전 두시, 드디어 구보씨는 내일 밤에 또 만나자는 벗의 인사에 ‘내일, 내일부터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라는 말을 끝으로 이 낯선 거리에서의 배회를 끝낸다.

 

4.

‘일일’은 형식면에서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별 싱겁기 그지없는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싱겁기 그지없는 일들이 구보씨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물 흐르듯 그려지면서 알 수 없는 현실감이 생겨나는 건 아무래도 필자의 의식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필치 때문일 것이다. 또 주인공 혹은 주인공과 벗이 함께 만 하루 동안 배회한 거리에 대한 치밀하고도 세밀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들과 함께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이쯤되면 아무래도 글쓴이의 힘이 느껴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덥지도 않게 동대문 방향 전차 안에서, 경성역에서, 종로네거리에서, 광화문통에서 끊임없이 욕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근대 도시의 상징이랄 수 있는 우뚝우뚝 솟은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고물상들을 어떻게 거리에서 쫓아낼 것인가를 생각하기도 하는 구보씨를 보자면 다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의 만보객 구보씨의 뒤를 차분히 쫓아가노라면 19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대개 새로운 책을 손에 잡으면 일주일 혹은 열흘 정도면 다 읽게 되는데 어찌된 게 이번 것은 이주가 넘도록 마지막 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봄 농사 준비로 바쁜 시기라 해도 이주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과는 다소 다른 어법이나 문법체계가 글을 읽어나가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구보씨와 태평로며 광화문, 종로, 을지로의 거리를 걷고 있는 느낌을 갖도록 그의 행적을 꼼꼼히 되짚어 준 상당히 많은 분량의 주해도 한 몫 했으리라. 게다가 덤이라기에는 매우 완성도가 높은, ‘일일’이 등장하기 직전인 1934년까지의 경성을 배경으로 ‘박태원’이 주인공인 또 한편의 소설이 있었기에 더 그랬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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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5:49 2009/06/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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