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걸러 쏟아진 장대비에 고추가 쓰러졌다> 

 

첫째 날(7월 13일/흐리고 비 19-27도)

 

9일 날은 200mm, 어제는 130mm의 비가 내렸다. 다행히 밭 한쪽만 빼곤 물 고인 곳이 없다. 하지만 며칠 간격으로 많은 비가 쏟아지니 밭에 물기가 잔뜩 이다. 또 물 고인 것 빼곤 괜찮은 듯싶었던 고추도 몇 주가 쓰러졌다. 급한 마음에 콩 밭에서 흙을 퍼다 고추를 바로 세우고 지주끈도 다시 묶어주지만 어째 엉성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비 그치면 대대적으로 손을 봐줘야겠다.

 

고추 밭에 발을 들이민 김에 제멋대로 자라게 내버려두었던 잡초 제거를 하니 금세 온 몸이 땀으로 젖는다. 그래도 낫질을 하면 할수록 고추 밭이 깨끗해지니 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 한 시간 남짓 열심히 낫질을 하는데 이런. 낫자루가 힘없이 ‘툭’ 부러지고 만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했던가. 낫이 없다고 하다만 제초를 그만둘 수 없어 괭이를 이리저리 휘둘러보는데. 오호 그럭저럭 낫 역할을 꽤 한다. 하지만 어찌 낫을 따라갈 수 있을까. 결국 고추 밭 제초는 다 하지도 못하고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와 오이 몇 개를 따고는 자전거에 오른다.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을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다행히 집이 코앞이다. 쓰러진 고추가 걱정돼 서둘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는데. 쓰러진 고추는 억지로 세우면 뿌리에 바람이 들어가 섞을 수 있다며 그냥 나둬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쓰러진 고추 옆에 지주대를 대주고 세워줬더니 다시 잘 자랐다는 사람도 있다. 답답한 마음에 계속 노트북 앞에 앉아 있지만 뭐가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쓰러진 고추는 세웠으니 이젠 오면서 가면서 잘 살펴줘야 하는 수밖에.

 

둘째 날(7월 15일/맑음 22-27도)

 

어제 또 200미리가 넘게 비가 내렸다. 연일 쏟아지는 비에 여기저기 비 피해가 심하다. 여기 춘천도 곳곳에 농경지가 침수되고 하천이 넘치고 산이 무너졌다. 또 밭과 인접한 하천 제방 일부가 침수되면서 다리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제 비가 잠시 그쳤을 때 쓰러진 고추를 일으켜 세워 놓긴 했지만 어제 비로 몽땅 다 도로 쓰러지고 말았다. 임시방편으로 콩 밭 흙을 떠다 쓰러진 고추를 일으켜 세워보지만 아무래도 지지하는 데 힘이 부친다. 연일 계속된 비로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탓이다. 주말에 또 비가 온다는 데 지금으로선 비의 양이 많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일으켜 세워도 다시 내린 비로 또 쓰러졌다. 이제 엔간히 왔으면 좋겠는데.....>

 

셋째 날(7월 16일/무더움 21-32도)

 

모처럼 해가 보인다. 밭 상태로 봐선 이쯤해서 비가 그치고 오늘처럼 맑은 날씨가 계속돼야 할 텐데 내일 또 비소식이다. 쬐끄만 밭 하면서도 이리 마음이 편치 않은데 빚까지 내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어쩔까. 이제 엔간히 왔으면 좋겠다.

 

일으켜 세운 고추들 가운데 몇몇이 시들시들하다. 물이 덜 빠진 곳에 있는 것들이다. 아무래도 내일과 모래 비가 더 오면 살아남기 어려울 듯하다. 아직까지도 배수로에 물이 쫄쫄 흐르고 있으니.

 

한 낮 따가움을 피해 나왔더니 얼마 일도 못한다. 비오는 데 온 신경을 다 쓰느라 돌보지 못했던 채소와 과일 심은 곳에 김매기도 해주고 여전히 물이 빠지지 않고 있는 고추 밭에 배수로도 다시 파주고 하니 금세 어둑어둑해지니 말이다. 부쩍 빨갛게 잘 익어가는 방울토마토와 비오면 맛이 떨어진다는 참외 한 봉지를 따니 사위가 어둡다.

 

넷째 날(7월 18일/무더움 23-30도)

 

어제 또 비가 내렸다. 그래도 다행히 양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간 내린 비로 이미 땅이 흠뻑 젖은 상태라 일으켜 세운 고추가 잘 버티고 있는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일까. 급한 마음에 30도에 이르는 무더위가 올 거라는 것도 잊고 한 낮에 집을 나선다. 꼭 고추 밭만 살펴보고 오자 다짐하며.

 

우려했던 것과 달리 쓰러진 고추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쓰러졌던 것들은 여전히 시들시들하고 자꾸만 옆으로 기우뚱 기우뚱 쓰러지려 해서 다시 지주끈을 동여매준다. 또 틈나는 대로 고랑사이 김매기도 하고 아직도 물이 빠지고 있는 배수로도 다시 파준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일이 많다.

 

고추 밭만 살펴보고 오자, 했는데 어찌 일 하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도 조금만 더, 조금 만 더, 하다 보니 점심때가 훌쩍 지났으니. 그래도 혼자 일하다 둘이 일하니 진도도 빨리 나가고, 언제 손봐줘야지 하면서 바라보고만 있던 채소밭 김매기까지 하니 힘들긴 해도 일할 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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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9 19:30 2009/07/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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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영빌딩 2009/07/24 16:38

    집 좀 보여줘.. 놀러가게~~ 

  2. 게으른 농부 2009/07/25 22:59

    다들 8층에서 잘 살고 있나?
    집 보면 놀러오고 싶지 않을텐데...
    걍 밭으로 놀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