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에 쓰러지길 두 어번, 잎이 누렇게 되고 아래쪽 고추부터 썩어가기 시작했다(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했으나 결국 10여주를 뽑아낼 수밖에 없었다(아래).>

 

장마 소강상태(7월 21일/무더움 23-30도)

 

거의 일주일 넘게 이틀 간격으로 쏟아 붓던 장맛비가 그쳤다. 예보로는 당분간 비가 오지 않겠다고 하는데 밭 상태를 봐선 정말 다행이지 싶다. 어제 하루를 쉬고 나왔는데도 아직까지 고추 밭 배수로에 물이 쫄쫄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이대로 며칠 더 비가 왔다면 고추 농사 끝났을 거다.

 

모처럼 아침 일찍 나왔더니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심어놓고 통 들여다보지 못했던 옥수수 밭 김매기도 하고, 한 번 풀을 뽑아줬던 고구마 밭도 조금 손을 댔으니. 하지만 신발은 이슬에 다 젖고 옷은 땀으로 범벅이니 꼭 아침이라고 해서 일하기 쉬운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일 끝내고 돌아갈 때쯤이면 해가 중천에 떠서 되려 더 덥기만 하다.

 

장맛비가 그렇게 내렸는데도 빨간 토마토와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이다. 참외도 서너 개 노랗게 됐고. 요즘만 같으면 과일 주전부리가 부족함이 없겠다. 매일매일 따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또 열리니 말이다.

 

아침안개(7월 22일/무더움 19-30도)

 

장맛비가 그치니 춘천 본래의 날씨로 되돌아 왔다. 큰 일교차, 그리고 그로 인한 안개.

 

저녁나절에 일하는 것과 아침녘에 일하는 것,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우선 저녁에 일을 할 경우, 우선 일하는 데 덥지가 않아 좋다. 밭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 줄만한 거라고는 거의 다 지어가고 있는 아파트뿐인데 밭에서 보면 서쪽 방향에 있어 해질녘에 그 덕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늘을 만들어 주는 시간에 맞춰 나가다 보면 금세 어둑어둑해져 일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다음 아침에 일하는 경우는, 그 반대라고나 할까. 일단 밭에 도착할 때까진 선선한 게 좋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가 뜨는 속도와 비례해 기온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벌써 한 낮 더위와 맞먹게 된다. 그리고 곧 땀으로 범벅이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멀게만 느껴질까. 하지만 저녁때 두어 시간 일하는 거에 비하면 근 서, 너 시간은 너끈히 있을 수 있으니 딱 언제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장맛비 때문이기도 하고 무더위 때문이기도 하고 저녁나절에 일하다 오늘부터는 다시 아침에 나오기로 했다. 앞에서 말했듯 더운 게 문제이긴 하지만 워낙 일이 밀려 있기 때문이다. 엉성해진 지주대도 다시 묶어줘야 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김매기도 해야 하고, 곧 감자도 캐야 하기 때문이다.

 

토마토케첩(7월 23일/무더움 20-29도)

 

연일 토마토가 빨갛게 열린다. 둘이 먹기엔 만만치 않은 양이다. 사실 토마토만 그런 게 아니다. 참외도 그렇고, 방울토마토도 그렇고, 채소는 모종을 10개, 20개만 심어도 한참 열매를 만들어 낼 땐 주체하기 힘들다.

 

작년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채 익지도 않은 토마토를 두 바구니가 넘게 따서 식초에 담구기도 했다. 설탕 조절을 잘못해서인지 그다지 맛이 나지 않아 아직까지 세 병이나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오래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셈이다.

 

오전에 세 시간 가량 옥수수 심은 곳과 채소 심은 곳 김매기를 해주고, 지난 장맛비에 엉망이 된 지주대도 다시 튼튼히 세워도 주고, 역시나 빨간 토마토 한 바구니를 따서 집으로 오니 냉장고 과일 칸이 가득 찬다. 대체 이 많은 걸 어쩌나.

 

결국 토마토를 다 끄집어내고는 무르거나 따온 지 오래된 것들을 골라내 작년에 담갔던 매실액을 섞어 케첩을 만든다. 토마토가 워낙에 단맛이 많아 매실액을 조금만 넣었는데도 다 만들고 나니 어찌된 게 파는 것 마냥 달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할 땐 많아 보였는데 만들면서 맛보고, 다 만들고 밥에 조금 비벼먹고, 또 감자에 묻혀먹으니 한 병도 채 안 된다. 이런.

 

고추를 뽑아내다(7월 25일/흐림 18-25도)

 

결국 고추 10여주를 뽑아내고 말았다. 지난주까지 퍼붓던 장맛비에 쓰러졌다, 일으켜 세웠다, 다시 쓰러졌다, 를 반복했던 고추들이 시들시들하더니 몇 주는 살아나고 몇 주는 잎이 몽땅 시들해지며 아래쪽 고추부터 말라가 하는 수 없이 뽑아 버린 것이다. 그래도 짱아찌나 부각이라도 만들 요량으로 말라비틀어진 것들을 빼고 나머지 고추를 다 거두니 비닐봉지로 세 봉지다.

 

죽어가는 고추를 다 뽑아내고는 어제 내린 비로 또 물이 쫄쫄 빠지고 있는 배수로를 다시 파내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서둘러 호박 지주대도 다시 튼튼히 묶어주고 고추와 콩 심은 곳에 제초 작업을 두 이랑 하고 곧 자전거에 오른다. 모래 있을 조카 백일 선물 때문에 저녁에는 시내로 나가야하기에.

 

<참외, 토마토, 호박, 오이, 방울토마토, 가지... 우와 하루에 이만큼씩이나? 감자는 좀 있다 한 번에 캐야겠다>

 

풍성한 여름(7월 26일/맑음 18-25도)

 

내일은 모처럼 서울 나들이다. 겸사겸사, 올라가는 김에 맛 뵈기로 한참 많은 열매를 만들어주는 호박이며, 참외, 토마토 등을 한 바구니씩 따가야겠다. 해서 일요일이라 쉬려했지만 잠시 밭에 들르는데, 조금씩만 담는다고 했는데도 이것저것 담으니 자전거가 다 무거울 지경이다. 정말 풍성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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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20:33 2009/07/2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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