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에는 통 밭에 갈 시간이 나질 않더군요. 엊그제였던 아버님 기일이라고 해봐야 특별히 제사 음식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침 일찍 성당에 나가 연미사를 하는 게 전부였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의정부에서 김해에서 식구들이 오니,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그 덕에 이틀을 집에서 푹 쉬었답니다.

 

그리고 또 병이란 게 으레 느닷없이 닥치기는 해도 한 번은 119 구급차에 실려. 또 한 번은, 예전 같았으면 집에서 그냥 쉬었을 텐데. 다섯 살배기 조카 놈이 걱정돼 병원 문을 두드렸답니다. 결국 이래저래 병원에 들락날락, 또 사흘을 보냈으니. 지난주에 심어 놓은 김장 무며, 배추가 잘 자라는지 어디 들여다볼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2. 

식구들이 다들 돌아간 어제 저녁, 월요일부턴 밭엘 나가봐야겠단 생각으로 일기예보를 보러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이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신문 기사 하나가 있더군요. 하기사 요새 하도 여기저기서 플루, 신종플루 하고 있으니,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다들 이 기사를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강남구의 신종인플루엔자 확진 환자 수가 강북구에 비해 10배가 많다고 하네요. 강남구의 인구가 56만 명이고, 강북구의 인구가 34만 명인데. 아무리 인구 차를 감안하다고 해도 121명 대 12명은 좀 심한 거 아닙니까. 강남구와 인접한 서초구와 송파구, 강북지역의 은평구와 도봉구도 사정은 비슷하답니다.

 

기사에 따르면, 아니 ‘신종플루도 양극화…확진 환자, 강남이 강북의 '10배' - 해외여행․어학연수 많은 강남, 초기감염률 높아’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기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강남 지역의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하거나 해외체류를 하다 감염된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얘기를 전하는 투로 신종플루를 일종의 '부자병'이라고 진단하고 있구요. 또 보건소 관계자와 병원장의 입을 빌려 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돈’ 많은 이들이 신종인플루엔자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만큼 환자도 늘 수밖에 없다는 애기인 거지요.     

                                                                                                                
3. 

원체 감기에 잘 걸리는데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자 열도 나고 목도 칼칼한 게. 여지없이 또 걸렸구나, 싶었습니다. 헌데 워낙 주변에서 호들갑들을 떨어야지요. 그리고 학교에도 확진 환자가 생겨 이틀을 휴교하니 살짝 의심을 했답니다. 그래도 건강한 성인일 경우 독감과 같이 지나간다기에 그냥 푹 쉬려고 했습니다. 아버님 제사에 맞춰 멀리서 올라 온 조카만 아니었다면 말이죠. 그리고 어머님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그래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며칠 전 119 구급차에 실려와 진료를 받기도 했던 모 대학 종합병원으로 갔습니다. 집 근처 모 종합병원에서 1시간 가까이 컨테이너 진료소에서 기다리다 신종플루 때문에 발열이 있는 건지, 얼마 전 진료 받은 것 때문에 발열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으니 그 병원으로 가보라는 황당한 말에 씩씩 화를 내면서 말이죠. (발열과 호흡기 증세가 있어 확진 검사를 받으러 갔으니 일단 검사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쩝. 아무튼)

 

입구부터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이 꽤나 많더군요. 하지만 모두가 신종플루 검사를 받으러 온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예방 차원에서 쓴 이도 있겠고, 또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감염된 이와 접촉할 기회가 많을 테니 당연 그리하겠지요. 또 아무튼.

 

접수를 하고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간호사가 체온을 재며 안내문을 보여주며. 신종플루 감염 여부를 확진하는 검사가 두 종류. 2만원이 조금 넘는 검사는 15분 이내에 결과를 알 수 있으나 정확도는 50% 내외. 12만원이 넘는 건 정확도는 90% 이상으로 시간은 조금 더 걸린다. 어찌하겠냐, 는 겁니다. 나 원.

 

뭘 어쩌겠습니까. 검사도 하기 전에 진찰료 명목으로 만 몇 천원을 선불로 낸 상황에서 뭔 돈이 또 있다고. 당연 2만 원 짜리를 해야죠. 

 

4.

신종인플루엔자 확진 환자 수가 6천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망자는, 엊그제 죽은 70대 노인의 경우 신종플루가 원인이 아니라고 판정됐으니 모두 3명이네요. 이미 세계보건기구가 최고 경보단계인 ‘대유행(pandemic)’으로 규정짓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 보건당국의 경우 9월 말 혹은 10월께 확산 상황을 보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발족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신종플루 경보 수준을 ‘심각’ 단계로 격상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하니 아무래도 심각하긴 심각한 상황인가 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돌아온 후에 안 거지만, 50% 내외의 정확도를 보인다고 하는 그 2만 원짜리 검사 말입니다. 그거 병원에서 했던 말과는 달리 신종인플루엔자 검사가 아니라 인플루엔자 항원 검사일 가능성이 크네요. 해서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고 해도 신종 플루인지, 일반 계절 독감인지 구분할 수 없었을 테고. 이런, ‘돈’ 아끼려다 결국 헛돈만 쓴 거 아닐까요. 

 

사실 신종플루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병원에 따라서 차이가 조금 있긴 하지만 최소 12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내야했던, 확진판정을 받아야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한마디로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확진 검사를 받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는데요. 한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신종플루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 가운데 30% 가량은 비용 문제로 확진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남지역에 신종플루 확진 환자가 강북에 비해 많다는 것. 그래요. 그 기사에 나온 것처럼 해외에 체류하거나 해외여행을 많이 한 탓에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많다는 건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말이죠. 최하 10만원이 드는 확진 검사 비용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 아이들 과외 시킬 돈이 없어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 또 부모가 모두 돈을 벌어야 하기에 유치원에,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외떨어진 곳에 홀로 집을 지키는 독거노인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겠습니까. 그리도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염 됐다는 사실도 모른 체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래요. 결국 문제는 이래저래 또 ‘돈’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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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10:29 2009/09/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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