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남한강을 따라 걷는 길, 단양 매포 평동에서 가곡 향산까지(2006년 11월 5일)
 
아침 날씨가 공기부터 다르다. 요 며칠 사이 쌀쌀해졌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 와서야 실감한다. 나름 옷가지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내일과 모래 사이에 비가 한차례 오고 나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일기예보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9월, 10월 좋은 날씨 다 보내고 뒤늦게 길을 걷자니 당연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단양팔경의 제1경이라는 도담삼봉에 당도하니 햇살이 많이 퍼져서인지, 바람이 잦아들어서인지 다행히 춥지는 않다. 삼봉을 배경으로 멋쩍은 우편엽서 사진 한 장 박고, 된장국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니 한결 몸이 녹는다.
 
<어찌나 물이 맑던지.....사진으로 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단양읍을 지나 고수대교를 건너니 고수동굴이 지척이다. 당초 오늘 말고 내일 인근에 있는 고씨동굴을 구경할까 했지만 그래도 이름난 곳을 둘러보는 게 제대로 된 동굴구경이 아닌가 싶어 잠시 관광안내소에서 쉬었다 동굴 구경에 나서는데.
 
이런, 동굴 입구 주차장에 가득한 관광버스부터 매표소 앞에 죽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에 꽤나 복작복작할 거라 예상은 했어도, 이리 많은 줄이야. 난생 처음 보는 굴 구경인지라 잔뜩 기대하고 들어섰는데 이거야 원, 뭘 구경하러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들에 밀려 대충대충 눈도장 찍듯 석주며, 석순 등을 구경하는데 그래도 볼만한 곳 여러 군데를 지나고 나니 조금은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사람 숫자가 준다. 다행이다. 빙글빙글 한없을 것만 같이 돌아서는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다시 거꾸로 한없을 것만 같이 아래로 돌아서는 계단을 내려오기도 하며 구경을 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이다. 초장에 설렁설렁 구경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두 시간도 모자랐을 거다.
 
동굴구경을 마치고 길을 나서니 아침과는 달리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게 입동을 앞두고 매서운 겨울 날씨를 맛보게 하려는 듯하다. 게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고갯길이 나타나 길을 걷기가 무척 힘이 부친다. 동굴이 근처여서인지 고개 이름도 고수령이다. 영월까지 44km라는 간판이 보이기는 한데 긴 내리막길이 발밑이어서 걷기엔 수월하다.
 
<첫날 머물렀던 향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만났던 강변 갈대 숲>
 
단양에서부터 이어지는 59번 국도는 며칠 전 모 일간지에 ‘멀미 날 낙엽 길’로 선정되었던 길인데, 그 기사가 아니어도 울렁울렁 멀미가 일 정도로 길 양옆 낙엽 색깔이 울긋불긋하다. 또 푸른 옥빛의 남한강이 줄곧 길을 따라 흐르고, 그 강을 따라 황금색의 갈대숲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기사가 놓치고 지나간 아름 풍경이다.
 
당초 구인사며 온달산성 구경을 위해, 그리고 좀 전의 신문 글을 따라서, 우리가 오늘 머물게 된 향산 조금 못 미쳐 595번 지방도로로 갈아타야 하나 시간적으로나 몸 상태로나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아쉽지만 이름만큼이나 흐르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른 때와는 달리 일찍 자리를 잡는다.
 
둘째 날, 여전히 남한강을 따라, 단양 가곡 향산에서 영월까지(2006년 11월 6일)
 
5분만 가면 아침 먹을 만한 곳이 있다고 하던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맛난 된장국에 밥 한술 말아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밥 대신 라면과 과자부스러기로 저녁을 때워서인지 뱃속이 무척 허해 아침은 제대로 먹어야지 하며 조금은 걱정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맛난 밥에 커피까지 한 잔 얻어 먹도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빗줄기가 군간교 삼거리를 지나면서는 많이 굵어진다. 또 지난 여름 수해로 여기저기 상처 난 길들을 메우기 위해 질주하는 덤프트럭들로 길을 걷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이야 비옷으로 어찌 해보겠는데 질주하는 차들이 뿌리고 가는 흙탕물을 피하느라 그렇다.
 
결국 영춘면에 들어서서는 얼굴에 철판 깔고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간다. 출발할 때보다 더 거세진 빗줄기도 빗줄기이지만 비옷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한 옷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번듯한 면사무소지만 한적하기 이를 데 없어 눈치 볼 필요 없다.
 
생각지도 않았던 비 때문에 두 시간을 허비했다. 해서 발걸음을 빨리 해야 할 텐데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맑은 가을하늘과 어제부터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강줄기와, 낙엽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거추장스러웠던 비옷까지 잠시 벗어들고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며 풍경을 담아내느라 정신없다.
 
 
<잠깐 비가 그친 후 정신없이 걷던 중>
 
열 여섯 번 째 여행 만에 강원도에 들어선다. 이제는 걸어야할 길보다 걸어온 길이 훨씬 많다. 뭔가 자축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친 듯 했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비옷을 다시 꺼내 입고 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다.
 
고씨동굴은 어제의 고수동굴과는 달리 관광버스 하나 서 있지 않고 사람들도 보이지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여유를 부리며 또 동굴구경에 나서고 싶지만 오전에 두 시간 그리고 좀 전에 또 30분 넘게 걷지 못해 아쉽지만 그냥 지날 수밖에 없다.
 
<바로 왼편이 굴인데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간도. 결국 지나치고 말았지만 대신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고씨굴을 지나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빗줄기도 빗줄기인데 해가 빨리 지는 걸 생각지 못했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어둑어둑한 게 후레쉬를 꺼내들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다. 지도상으로는 영월읍내에서 발전소가 그리 멀지 않은데, 이젠 한밤중이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 해보지만 질주하는 차량들로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그렇게 조심조심 더디게 걸어 영월읍내에 당도하니 몸은 파김치에 옷은 다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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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21:19 2010/01/10 21:19
넷째 날, 아름다운 길, 597번 지방도로와 36번 국도, 그리고 82번 지방도로를 따라 물태리까지(2006년 10월 3일)
 
<전날부터 함께 하고 있는 월악산 자락>
 
덕주사 입구를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못 미쳐 송계에 도착했다. 어제 점심 반주로 마신 동동주만 아니었어도 송계까지는 무난히 왔을 텐데. 하지만 맛난 된장찌개에 아침을 먹고 월악산 영봉을 뒤로 두고 길을 나서니 아쉬움은 금방 잊혀 진다.
 
지난 번 여행 때는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 손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며 한참을 놀았던 송계계곡은 가을 가뭄에 물이 마른 데다, 군데군데 여름 호우 피해 복구공사로 물길이 심히 탁해 이번엔 눈 구경이다. 그래도 계곡 주위로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있어 나름 운치가 있다. 쉬엄쉬엄 걸으며 때 아닌 단풍놀이를 즐긴다.
 
송계계곡을 다 빠져나오니 길은 어느새 충주호를 끼고 돈다. 길 양옆으로는 코스모스가 한 창 제 멋을 뽐내고 있고 가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색이다. 게다가 지금은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가을 가뭄 덕분에 물 아래 가라앉아 있던 옛 길과 다리를 보게 되는 뜻밖의 수확을 월악나루터에서 거둘 수 있었으니 걷는 즐거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1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인지 배고픈 줄 모른다. 또 오티고개를 넘는 산길을 넘는데도 힘이 드는 줄 모른다. 다만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만 아니면 어제 맛보지 못했던 새재 길만큼이나 고즈넉한 맛을 맛볼 수 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다.
 
<오티고개를 넘어가는 길>
 
동쪽으로는 한티재와 구실재, 서쪽으로는 봉화재, 남쪽과 북쪽으로는 각각 말구리재와 하너물재 다섯 고개와 한길가, 배갈말, 안말, 매차골, 청풍나드리의 다섯 마을을 일컫는 오티마을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넘어도 훨씬 넘어섰다. 마땅히 요기를 할 만한 곳이 없다는 걸 지난 번 여행 때 경험했으면서도 무작정 길을 나선 우둔함에 뱃속이 고생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티상회에서 간단히 과자와 빵 등으로 요기를 하고는 무작정 또 길을 나선다. 기억으로는 여기서부터 물태리까지는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다 길마저 한없이 꾸불꾸불 이어지는 지루한 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상으로도 별로 여유가 없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고개를 고개를 넘어 간다’
 
돌아서면 나타나고 또 돌아서면 나타나는 고갯길에 지지 않으려고 노래를 불러본다. 누가 이기나, 다. 결국 저 고개를 넘으면 곧 보일 것도 같은 고개를 몇 고개를 더 돌아서서야 겨우 물태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5시다. 어제, 그제에 비하면 시간상으로는 꽤 일찍 도착했지만 대신 몸이 말이 아니다. 꼬부랑길을 기를 쓰고 걸은 데다 꼬박 사흘하고도 반나절을 더 걸었더니 그렇다. 알게 모르게 체력이 좋아졌다 싶었는데 아직은 아닌가보다.
 
 
 
 
 
 
 
 
 
                                                                                                             
다섯째 날, 작고 예쁜 마을 물태리를 뒤로 두고 단양으로(2006년 10월 3일)
 
아직 해 뜰 기미는 없고 별만 초롱초롱하다. 새벽 4시. 대충 씻고 컵라면 하나씩을 먹으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지만 금방 해가 고개를 내밀 것 같진 않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도담역에서 9시 39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쳐서는 안 되기에. 5시 15분. 출발이다.
 
어둠을 헤치며 조심조심 청풍대교 앞에 서니 새벽안개가 짙게 끼어 있는 게 다리를 건너기가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제법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들에 커다란 공사차량들까지 함께 오가서 그렇다. 그래도 다리를 지나 학현마을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접어드니 그제서야 어둠도 조금씩 거치고 서늘한 바람마저 불어 걷기는 편하다. 잘하면 기차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마을 입구에서 만난 고갯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마을을 지나 단양으로 향하는 이 길의 오르막은 상학현에 이르러 급기야 전혀 맛보지 못한 급경사를 보여준다. 지리산을, 덕유산을 넘었고, 엊그제는 새재에서 마폐봉까지 넘었던 발걸음이, 더디다 못해 나아가지 못한다. 조금 쉬다 또 걷고 조금 쉬다 또 걷기를 반복한다.
 
갑오고개 정상에 오르니 여기서부터는 단양군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 발아래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는데. 허걱. 산악마라톤? 걸어서 오르기도 힘든 이 길보다 더 한 산길들을 뛰어 다닌다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델 뛰어 다닐까?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마라톤 코스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들여다보다 언뜻 시계를 보니 아차, 벌써 8시다.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두 시간은 걸릴 듯한데, 큰일이다. 서둘러야 한다. 맘이 급한 만큼 발걸음도 빠르다. 쉼 없이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결국 도담역 못 미쳐 평동이라는 마을 입구에서 차를 얻어 타고서야 겨우 기차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30분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애초 예정했던 도담역까지 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어쩌랴. 맘씨 좋은 청년을 만나 역 바로 앞까지 쉽게 왔다는 걸로 위안을 삼으며 기차에 오를 수밖에. 밀려오는 피곤함 때문인지 자리를 잡자마자 머리가 떨궈지는데 눈을 뜨니 어느새 아파트 숲 한가운데다.
 
* 열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괴산의 화양동계곡에서 문경의 용추계곡 입구까지 약 23km.
- 둘째 날 : 용추계곡에서 새재 바로 아래 읍내까지 약 24km.
- 셋째 날 : 마폐봉을 넘어 월악산 자락 덕주사 입구까지 약 20km.
- 넷째 날 : 덕주사에서 물태리까지 아름다운 길 약 20km.
- 다섯째 날 : 새벽녘 물태리를 출발해 단양 평동마을 입구까지 약 20km.
 
* 가고, 오고
화양구곡 입구까지는 청주를 거쳐 다시 화양동 입구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괴산, 청천을 거쳐 화양동 계곡으로 가는 괴산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 괴산, 청천을 거치는 동안 배차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을 듯해서 우리는 청주를 거쳐 화양동으로 갔다. 강남터미널에서 청주행 고속버스는 거의 10여 분 간격으로 있으며, 청주에서 화양동계곡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간격으로 있으니 미리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도담에서 출발하는 청량리행 열차는 아침 9시 39분, 오후 3시 16분 단 두 차례뿐이니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 잠잘 곳
문경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 인근에는 음식점을 겸해 민박을 하는 곳이 몇 되나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거나 조립식 주택이어서 편히 쉴 요량이라면 문경읍이나 점촌으로 나가야 한다. 문경읍과 문경새재 입구에는 저렴한 가격의 깨끗하고 다양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월악산 자락 미륵사지터, 덕주사, 송계계곡 등지에도 역시 음식점과 민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송계를 지나 제천 물태리까지는 변변한 음식점 하나 찾아보기 힘들며, 구명가게도 그리 많지 않다. 물태리에는 청풍문화재단지가 바로 코앞에 있어 그런지 숙박시설이 꽤 많은 편이며, 인근 학현아름마을에도 민박과 펜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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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20:37 2009/12/08 20:37
첫째 날, 괴산의 화양구곡, 선유구곡을 지나 문경의 선유동계곡까지(2006년 9월 30일)
 
근 10여 일에 가까운 연휴다. 다행히 연휴의 뒤쪽에 추석이 있어 앞쪽의 5일을 온전히 걷기여행을 위해 쓸 수 있게 됐다. 물론 아껴둔 여름휴가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쓴 덕이긴 하지만. 해서 여지껏 여행보다도 긴 일정의 여행이 될 듯하다. 하지만 그만큼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챙겨가야 할 것도 많다. 덩달아 가방 무게도 제법이다.
 
<먼저 만나는 화양구곡>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은 계곡의 크기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제 각각이라는 데서 상반된다. 예컨대 화양구곡이 그 크기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이라면 선유구곡은 반대로 그 크기만큼이나 발길이 잦지 않은 곳이다. 그래도 처음엔 화양구곡의 크고 깊은 아름다움에 반해 걸음이 늦어지는가 싶더니 후에는 선유구곡의 아기자기한 맛에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을 수 없어 재미가 쏠쏠하다.
 
<뒤이어 선유구곡이.....>
그렇게 세 시간이 넘도록 18구곡의 풍경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리니 이번엔 하, 중, 상관평을 거쳐 경상도 땅으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의 517번 지방도로가 우리를 기다린다. 예전에는 이곳까지 길이 나지 않아 물길을 건너 청천 읍내에 장을 보러 다니셨다는, 관평슈퍼 앞에서 만난 할머니와 두런두런 지나온 길을 이야기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데 해가 산머리에 걸린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텐데, 할머니께서 ‘용추계곡까지는 갈 수 있겄네. 저기 저 보이는 산만 넘으면 되니께’ 하신다. 안심이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숯가마골을 넘어 용추계곡에 도착하니 말씀대로 아직은 해가 남아있다. 헌데 이런. 마땅히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날은 조금씩 어두워 오고, 동네 개 짖는 소리는 점점 요란해지고. 어쩌나. 아무래도 오늘은 문경이나 점촌으로 나가야 할 듯한데, 때마침 읍내로 나가는 맘씨 좋은 부부를 만나 무사히 나올 수 있다. 또 점촌 사람들의 친절한 길 안내에 쉬이 잠 잘 곳을 찾을 수 있다.
 
 
둘째 날, 용추계곡에서 문경읍내까지 쉼 없이 걷다(2006년 10월 1일)
 
점촌에서 첫차를 타고 부지런히 움직여 어제 저녁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용추계곡 입구에 당도했는데도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어도 훌쩍 넘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발걸음을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 그래도 이강년 생가 구경이며, 비록 볼일이 급해 발을 들여놨지만 작고 예쁜 희양분교 구경이며, 250년 된 느티나무 아래 멀리 노랗게 익어 가는 벼 구경이며, 이제는 찾는 이 없어 고즈넉이 서 있는 가은역 구경에 점심때마저 놓친다.
 
 
 
가은 인근은 예전 탄을 캐던 곳이 곳곳에 있었던 만큼 석탄박물관이 널리 이름이 알려졌으나 구경하지 못하고 늦은 점심만 간단히 해결하고 곧 출발이다. 그래도 진남역 주변에는 전에는 탄을 실어 날랐던 철로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눈길을 잡아끈다.
 
부지런히 걸어서인지 어둠이 내리기 전 문경읍까지는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오늘은 새재 아래까지가 목표였는데 아침에 늦게 출발한 탓인지라 아무래도 오늘은 문경읍내에서 머물러야겠다. 들판 너머 읍내 불빛들은 꽤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걸음으로는 한참이다. 대신 늦은 저녁 생각에 발걸음만은 빠르다.
 
셋째 날, 문경새재를 지나 마폐봉을 넘어 월악산 덕주사까지(2006년 10월 2일)
 
오늘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문경새재 옛길을 걷다가 지금은 마역봉으로 불리나 예전에는 마폐봉으로 일컬어졌던 산자락을 넘어야 한다. 새재 길이야 잘 정비된 길이고 사람들도 많이 왕래하는 길이라 걱정이 없지만 마폐봉을 넘어 가는 산행 길이 아무래도 걱정이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길목이라 지도상으로는 쉬이 찾아볼 수 있지만 조령 3관문인 조령관에서부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반대편 월악산 국립공원 사문리 매표소로 내려가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은 듯해서다. 해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읍내에서 새재 입구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인데다 10월 햇살 같지 않은 따가운 햇빛에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새재 입구에 당도하니 제법 가을을 맛볼 수 있는 낙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마음은 한결 가볍다.
 
새재 1관문인 주흘관서부터는 흙 길이다. 마음 같아서는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 걷고 싶으나 발걸음을 빨리 해야 하는 탓에 흙 길의 느낌을 맛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더구나 이른 아침이어서 인지 오가는 이들이 없어 오랜만에 한가로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새재길은 1관문인 주흘관을 시작으로 2관문 조곡관, 3관문 조령관까지 이어진다>
 
2관문 조곡관까지는 그리 길지 않은 길인데다 가파르지도 않아 금방이다. 그래도 아침부터 움직인 탓에 몸이 뻐근하다. 잠시 숨도 고르고 몸도 풀고는 길을 나서는데. 이런. 가을 소풍이라도 온 것일까?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무더기로 내려오는데 이건 끝도 없다. 아니 급기야는 유치원 아이들까지 가세한다. 결국 그렇게 사람 구경만 하다 제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부터는 산행을 해야 하는데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인지 아직은 배도 고프지 않고 그동안 길러진 체력 탓에 거뜬하다.
                                                                                                   
마폐봉 오르는 길은 생각만큼이나 그다지 어려운 길은 아닌 듯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시간 조금 넘게 오르며 간간이 미끄러운 곳을 만나기는 했어도 쉬이 올라왔으니 말이다. 정상에 서니 내려가는 길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이고, 올라온 길 멀리 꾸불꾸불 새재길이 보인다. 잠시 숨도 고르면서 좋은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싶지만 허기진 배만 채우고는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것과 달리 거리도 길고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들었기에.
 
산을 내려오기 시작한지 한 시간 반 만에 사문리 매표소에 당도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걷기여행을 하도록 마음먹게 해 준 아름다운 길이다. 미륵사지 입구에서 시원한 동동주까지 얻어 마셨던 식당이며, 덕주사 입구에서 하루 머물렀던 민박집이며, 계곡 물에 손을 담그며 물장난을 쳤던 송계계곡이며, 오티마을로 넘어가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오티고개며, 꼬부랑길을 한참을 걸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예쁜 마을 물태리까지. 그때 걸었던 길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감회가 새롭다.
 
미륵사지터는 지난번에 둘러보았기에 구경하지 않는 대신 동동주에 파전까지 시켜놓고는 느긋한 점심을 즐긴다. 헌데 입이 즐거운 만큼 몸은 고생이라고, 점심 후 발걸음이 자꾸만 늦어진다. 좋은 길을 걸으며 좋은 경치를 감상하는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술기운이 발걸음을 잡는 것 같다. 잠시 쉬어가야겠는데 닷돈재 너머 멀리 덕주사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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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4 23:22 2009/11/14 23:22
사담계곡에서 화양동계곡까지, 아직 괴산(2006년 9월 23일)
 
속리산엘 다녀오고 나니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여기저기서 벌초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다른 때와 달리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유난히 막혔는데 그 때문이었나 보다. 여하간, 어째 벌초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다들 남정네들인데 하나같이 자기네 조상들 벌초 다녀왔다는 이야기들뿐이다. ‘혹시 처갓집 벌초는 다녀들 오셨나요?’ 한마디하고 싶은데 그냥 꾹 참는다.
 
아무튼 남정네들이 그렇게 자기네 조상들 무덤 찾아다녔던 그 좋은 날씨 속에서 정말 걷기 좋은 길을 걸었다.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을 걷기도 했고, 걷는 내내 맑은 가을하늘과 가을바람, 맑은 계곡이 함께 했다. 많은 이들이 남도지역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지만 우리 생각엔 충청도가 훨씬 나은 듯하다. 무주를 지나면서 만났던 민주지산을 품고 있는 황간, 드넓은 포도밭의 영동, 속리산 자락을 따라 걸었던 보은, 그리고 여기 아기자기한 골짜기를 연이어 펼쳐 보이고 있는 괴산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길들이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을 떠나 괴산까지 온 덕에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고, 덕분에 하루짜리 여행이었으면서도 20km가 넘게 걸었다. 이제는 한 시간에 4km 걷는 속도는 완전히 몸에 배었고, 두 시간은 걸어야 ‘힘들다’ 생각이 들 정도로 체력이 생겼으니 이는 생각지 못한 성과다.
 
여행 때면 늘 그렇듯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이 넘게 버스를 타고 사담에 도착하니 9시가 코앞이다. 괴산 읍내에서 아침을 해결하지 못해 혹시나 하고 빵 한쪽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준비했는데, 역시나. 민박 간판은 여기저기 보이나 음식점은 몇 보이지 않고, 보이는 음식점들은 이른 시간인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하는 수 없다. 준비해간 빵 한 입 베어 물고 길을 나선다.
 
헌데 이런. 이렇게 높은 하늘과 맑은 계곡을 봤던 게 언제지? 게다가 시원한 가을바람까지 옷깃을 파고드는데 뱃속에서 나는 ‘꾸르륵’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좋다’라는 표현 외에 또 어떤 말이 있을까? 아직 길가에 코스모스는 보이지 않아도 가을을 느끼기에는 한없이 좋은 날씨와 한없이 좋은 길이다.
 
 
 
 
 
 
 
 
 
 
 
 
 
 
 
  
 
 
 
 
사담리를 출발해 그렇게 가을을 한껏 즐기며 두 시간을 넘게 걸으니 아무리 좋아도 잠시 쉬어가야 하나보다. 몸에서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는 걸 보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등 뒤로는 땀도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맺힌다. 배도 채우고 다리도 주무르며 쉬어가야겠는데 다행이 마을 입구에 정자 하나가 마중 나와 있다. 에라, 모르겠다. 땀이 배지는 않았어도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 던져 놓고는 아침에 한 입 먹고 남은 빵이며 과자까지 꺼내들고 안방에 누운 것 마냥 대(大)자로 눕는다.
 
 
괴산군 관광안내도에 따르면 멧돼지와 토종돼지로 유명하다던데, 이름도 거기서 따온 듯 보이는 멧돼지휴게소를 조금 지나면서부터는 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는 샛길로 빠진다. 후평숲이 있다고 나와 있기는 해도, 그리고 왕복 2차선의 잘 닦여진 도로라고 해도,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나는 마을이 무슨 마을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수려한 풍경에, 오가는 차도 없고, 때로는 차선도 없는 시골길을 걸으니 기분 하나는 계속 죽여준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풍경을 담아내느라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렇게 지도에도 없는 길을 따라 두 시간을 넘게 걸어 화양동계곡 입구에 당도하니 2시가 가깝다. 배고픈 거야 출발할 때부터였으니 뭐 그렇다 쳐도 벌써 시간이 이리됐을까? 계획했던 시간보다 2시간이나 지체됐다. 아무래도 방금 지나온 이름 모를 길을 걸어서일 테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던 시골풍경에, 시골길을 걸어와 아쉬움은 없다. 다만 당초 목표로 했던 송면까지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멀리 속리산국립공원 매표소가 보이는 게 화양동계곡을 지나려면 아무래도 입장료까지 내야 할듯하다. 물론 계곡을 저만치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면 돈은 아낄 수 있겠지만. 계곡 입구 다리 옆에 붙어 있는 안내도를 보면서 대충 거리를 가늠해보니 송면까지만 해도 5km는 넘는 듯하다. 그럼 두 시간은 잡아야하는데. 바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해도 네 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듯.
 
계곡 입구에서 한참을 어찌할까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청주까지 나가는 시외버스 시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자꾸 거슬린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드는지 발길은 계곡 쪽으로만 향하는데. 해서 계곡이 내려 보이는 식당 앞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늦은 점심에 시원한 동동주 한잔 걸치니, 음,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 열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괴산 사담리 계곡에서 화양동계곡까지 약 20km. 걸은 시간 5시간.
 
* 가고, 오고
괴산까지는 전날 동서울터미널에서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며, 괴산에서 사담까지는 다행히도 아침 7시 1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어 쉽게 갈 수 있었다. 화양동계곡에서는 일단 청주로 나간 후에 강남, 남부, 동서울 혹은 광명 등지로 가는 시외버스,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 잠잘 곳
사담계곡과 화양동계곡에는 민박과 음식점이 다수 있으니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우리가 걸었던 길에는 화양동계곡까지 음식점은커녕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보기 힘드니 멧돼지휴게소에서 미리미리 먹을 것을 챙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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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13:50 2009/10/05 13:50
첫째 날, 서원계곡에서 505번 지방도로를 따라 속리산 법주사로(2006년 9월 2일)

불과 일주일 사이인데 한결 가을 날씨다. 지난주만 해도 목덜미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아스팔트 위에 열기가 후끈후끈했는데 시원한 가을바람 한 줄기에 금새 땀이 마르는 걸 보니. 여름 내 많이 걷는다고 걸었는데도 그리 많이 걷지 못했고, 이제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들이니 부지런히, 많이 걸어야겠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는데도 장내에 도착하니 어느새 버스에 오른지 세 시간이 훌쩍 넘었다. 중간중간 쓸 때 없이 시간을 많이 낭비한 탓이다. 충주에서 20분, 보은에서 15분을 하릴없이 쉬었다 가는데, 처음부터 그러하다 이야기도 없었고, 쉬면서도 아무 이야기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고 속았다는 느낌이다.
 
<속리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법주사를 찾아 에둘러 가는 길>
 
선병국가옥이니 선명무가옥은 이미 한 번씩 둘러보았기에 때늦은 점심으로 자장면 한 그릇씩을 비우고는 바로 출발인데, 황해동 쉼터까지는 걸었던 길이라 그런지 걸음이 빠르다. 그래도 쉼터에서는 잠시 쉬어가며 새로 장만한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꺼내들고 계곡 풍경이며,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본다.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의 부인이라며 ‘정부인송’이라고도 불리는 서원리 소나무는 속리산 남쪽의 삼가저수지에서부터 내려오는 삼가천을 옆에 두고 나란히 이어지는 505번 지방도로 가에 있는데, 계곡 이곳저곳에서 고기를 굽는 둥 물놀이를 하는 둥 해서 썩 쉴만한 장소는 안 된다. 사람도 고기 냄새에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데 소나무라고 별 수 있을까?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말이다.
 
‘정부인송’을 지나니 곧 오르막이고 지도상으로는 삼가저수지 쪽으로 이어지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데, 저수지 쪽 길은 댐 공사관계로 폐쇄돼 있고 대신 지도에도 없는 잘 닦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는데 웬걸 오르막도 오르막인데 저 멀리 터널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낭패다.
 
                                                                                     <갈목재에 이르는 길에서 본 삼가저수지>
다행이 터널은 방금 지나온 길처럼 최근에 지어져서인지 잘 닦여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도 환하고, 갓길도 찻길과는 다른 높이로 넓게 확보돼 있어 걱정이 없다. 다른 터널들도 이만큼만 환하고 갓길이 넓었으면. 도로뿐만 아니라 터널, 다리 모두가 차에게는 좋은 길이겠지만 걷는 이들에게는 좋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질주하는 차들의 굉음에 발걸음은 빨라진다.
 
터널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올라가서야 이 고개가 갈목(葛目)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꼬부랑꼬부랑 발아래 저만치 저수지가 보이는데 390m라고 하니 믿기지는 않지만 지금부터 내리막길이겠거니 생각에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다.
 
 
 
 
 
 
 
 
 
 
터널에서 갈목재, 다시 법주사로 이어지는 길은 올 해 들어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가을 날씨, 가을풍경이다. 맑은 날씨, 높은 하늘, 낮은 뭉게구름, 적당한 바람, 이처럼 걷기 좋을 때가 또 있을까 싶다. 해서 걸음은 자꾸만 늦어지고 결국 법주사 근처에 당도하니 벌써 빨간 노을이 하늘에 가득이다.
                                                                                        
둘째 날, 산길을 넘어 괴산군 사담계곡까지(2006년 9월 3일)
 
술이 과했다. 적당한 음주는 그 날의 노독을 풀어주는데 아주 그만이지만, 어제는 과한 술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덕분에 8시가 넘어서야 겨우 겨우 일어났다. 헌데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속이 편치 않아 대충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는 길을 나서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카메라를 달라더니 여기도 서보라고 저기도 서보라고 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신다. 시간은 없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파 기분은 과히 좋지 않지만 뷰파인더로 이리저리 우리 모습을 보고 있을 아주머니를 생각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어째 영 아니다.
 
“이게 다 지나고 나믄 추억잉께 이짝 우리 집 문 앞에도 서 보소”
 
결국 민박집을 배경으로 두어 컷이 넘는 사진을 찍히고 나서야 길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아스팔트 길 대신 흙 길을 걷겠다며 접어든 산길을 때문에 이건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조금 걷다 조금 쉬고, 또 조금 걷다 또 조금 쉬고, 아예 길바닥에 눕기도 하니 아무래도 이러다 일정에 차질이 생길지 싶다.
 
아스팔트로 덮이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산길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내려오니 국도다. 게다가 오가는 차도 많은데다 속리산 인근이어서 인지 관광버스가 유난히 많이 지난다. 덕분에 길을 걷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길옆으로 줄곧 계곡물이 흐르고 가을바람은 목덜미를 시원하게 하니 기분 하나는 좋다.
 
백현리라는 마을에서는 상회라는 간판을 달기는 했어도 겉보기에도 그렇고 실제도로 그냥 평범한 농가에서 냉장고 하나 갖다놓고 이것저것 음료수만 파는 그런 곳에서 목을 축일 음료수도 사서 마시기도 하고, 경상북도 상주로 넘어와서는 손두부마을에서 두부정식에 점심을 먹기도 하며 부지런히 걷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아침 내내 괴롭혔던 술독도 많이 빠져 기운이 난다. 또 충북 괴산으로 넘어와 만나게 되는 사담리 유원지에서는 계곡 물이 발을 담그며 어린아이들처럼 물장난에 한참을 재미나게 놀기도 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당초 괴산 청천까지 걸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침 시간을 허비해서인지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무리해서 청천까지 걷는다면 해가 지기 전에는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울로 올라가는 차편이 걱정이다. 해서 사담유원지 앞을 지나는 군내버스를 일단 세우고 본다. 다행이 청천으로 나가는 버스다. 차창으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든다.
 
<시원한 가을하늘이 돌아오는 길을 가볍게 한다>
 
 
* 열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서원계곡에서 법주사까지 약 11km. 걸은 시간 3시간 30분.
- 둘째 날 : 법주사에서 산길을 넘어 37번 국도를 따라 괴산 사담리 계곡까지 약 18km. 걸은 시간 7시간 30분.
 
* 가고, 오고
다행이 보은군 장내리까지는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청주, 보은 경유 시외버스가 있어 버스를 갈아타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주에서 20분, 보은에서 15분씩 정차를 하는 바람에 아침 10시 20분에 출발한 버스가 장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되어서였다. 올라오는 길은 괴산 사담계곡에서 청천, 청천에서 다시 괴산으로 버스를 갈아타야만 동서울터미널로 오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청천에서 괴산으로 나오는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다니나 사담계곡에서 청천으로 가는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으니 미리 버스시간을 알아두어야 한다.
 
* 잠잘 곳
법주사 인근에는 호텔에서부터, 유스호스텔, 여관, 모텔, 민박 등이 많아 성수기가 아니라면 잠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법주사에서 괴산 사담계곡까지는 드문드문 식당과 민박(펜션)이 있으나 사전에 머물 곳을 잘 알아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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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22:17 2009/09/15 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