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선소마을에서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까지(2006년 2월 12일)

 

 <방조제로 사라진 갯벌에 예당평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마당으로 나오니 어제는 밤이라서 보이지 않았던 바다 풍경이 민박 집 담 너머로 가득 들어온다. 언젠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풍경이다. 디카를 꺼내 이리저리 렌즈에 담아보려 하지만 아무리해도 다 담기지 않는다. 그저 우리들 눈으로 담아두는 수밖에. 집 밖에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뒤로 두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은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까지 가야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은 거리다.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때문에 선소마을을 유명하게 해준 공룡알 화석지는 구경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줄곧 바다와 나란히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길을 땅만 보고 걷을 수는 없어 군데군데 바다풍경을 보라고 놓여져 있는 의자에 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보느라, 사진기를 꺼내느라, 걸음걸이는 자꾸 늦어진다.

 

강진에서 마량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가 이름난 해안도로라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845번 지방도로는 이름나지 않은 해안도로다. 하지만 23번 국도가 세심정과 양이정을 오르는 길을 빼면 바다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지 않아 해안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한데 비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야말로 해안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줄곧 바다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으므로.

 

한참을 그렇게 바다와 나란히 걷다 해평리를 끝으로 바다와는 이제 당분간은 작별이다. 지금은 넓은 간척지로 바뀌었지만 전에는 그곳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던 해평리의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시작으로 이제 땅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해평리는 마을 입구에 나란히 서있는 돌장승이 유명한데 바삐 걷느라 구경하지 못한다. 또 당초 득량을 거쳐 예당, 벌교로 가는 길을 잡았는데, 시간 절약을 해볼 요량으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넓은 간척지를 가로지르는 길로 접어든다.

 

쉬지 않고 30분을 걸었는데 아직도 들판의 중간이다. 참 넓기도 하다. 재작년 들렀던 부안의 해창갯벌도 이만큼이나 할까? 아니 더 넓겠지. 가뜩이나 세찬 바람에 난감지사인데, 갯벌과 함께 숨쉬고 있었던 엽낭게며, 콩게며, 백합이며, 조개들이 자꾸만 떠올라 싱숭생숭하다.

 

예당역 인근 골목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식당에서 간만에 제대로 된 밥상을 마주한다. 내친김에 조성까지 가서 점심을 먹을까도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쉬지 않고 걷느라 발도 아픈데다 바람 마저 더 거세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제 저녁 맘씨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 덕에 오곡밥을 먹기는 했어도 오늘 아침도 또 빵으로 때웠으니 속이 허한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는 무조건 2시까지 쉬기로 했는데 오늘은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신발 끈을 조여 묶는다. 당초 일정에서 많이 늦어져서 그렇다. 그래도 영화 속 간이역 같은 예쁜 모양의 예당역에서는 잠시 기찻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바뿐 가운데 느끼는 여유다.

 

예당에서 벌교로 이어진 2번 국도는 걷기여행을 하면서 처음 걷게 되는 4차선 도로다. 헌데 이런 길은 겉보기에야 시원하고 넓게 뚫려있다 뿐이지 걷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좋지 않다. 질주하는 차량들을 위해 길을 냈기에 차도만 넓을 뿐이고 갓길은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정표 하나는 잘 정비되어 있어, 얼마나 걸어왔는지 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를 쉽게 알 수는 있다. 하니 걸어서 여행을 할 요량이라면 4차선 이상으로 넓게 뚫린 국도보다는 지방도로를, 그리고 군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물론 걸을 수만 있다면야 산길이나 흙 길이 더 좋다는 것은 잔소리다.

 

한참을 4차선 도로의 인색하기 만한 갓길에 바짝 붙어 걷다가, 아예 경운기가 다니는 옆길로 새기도 한다. 그래도 지루하고 힘들기는 매한가지인데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길가에 꼬막을 판다는 간판을 내걸은 상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제야 벌교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산머리에 걸려 있는 걸 보니 벌교에 도착하더라도 「태백산맥」의 무대로 잘 알려진 현부자네 집, 소화다리, 철다리, 김범우의 집, 남도여관 등은 구경하지 못할 듯 하다. 아쉽지만 다음 여행으로 미뤄두는 수밖에.

 

땅거미가 조금씩 내려앉기는 해도 햇살의 따가움은 여전하다. 길에서 잠시 옆으로 비껴서 어제, 오늘 무지무지 고생한 다리를 서로 주물러 주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걷는다. 해가 지기 전에 벌교에 도착해야 하는데.

 

 

 

* 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수문해수욕장에서 율포를 지나 해안도로인 845번 지방도로를 따라 선소마을까지 약 21km. 걸은 시간 약 5시간.

- 둘째 날 : 선소마을에서 예당까지는 845번 지방도로를, 여기서부터 4차선 2번 국도를 따라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까지 약 28km. 걸은 시간 약 7시간.

 

* 가고, 오고

세 번째 여행 때까지와는 달리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아침 5시 30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이용했다. 시간상으로는 밤에 이동하는 것 보다 세 시간 정도 차이가 났으나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무리하게 이동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 벌교에서 서울은 열차편이 있기는 하나 아침 9시 26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 딱 한 대뿐이라서 가까운 순천으로 나가는 것이 편하다. 순천에서는 고속버스와 열차가 자주 있다.

 

* 잠잘 곳

수문과 율포에는 숙박할 만한 곳이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율포에서 득량까지는 우리가 묵었던 선소마을 이외에는 숙박 할 만한 곳도, 식사를 할 만한 곳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득량과 예당에는 모텔과 펜션이 몇 있다. 예당에서 벌교에 이르는 길은 4차선 국도로 오가는 차도 많을 뿐더러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를 하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식사를 할 만한 곳은 곳곳에 많은 편이며, 벌교는 숙박과 식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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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12:48 2009/05/03 12:48

첫째 날, 수문해수욕장에서 넉넉한 득량만을 품고 있는 비봉리 선소마을까지(2006년 2월 11일)

 

어제 밤늦게까지 가니 못 가니 다투다 첫차를 타고서야 장흥에 올 수 있었다. 쉼 없이 오기도 했지만 아침에 움직였는데도 11시가 채 안 돼 도착했으니 생각보다 빠르다.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다니는 것보다 첫차를 타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컴퓨터까지 쓸 수 있게 해주는 맘씨 좋은 장흥 우체국 직원 분들 덕에 밤새 우리를 실랑이하게 만들었던 일을 너무나 쉽게 처리했다. 마음이 한결 놓인다. 하지만 당초 계획은 율포해수욕장을 지나 득량까지 걷는 것인데 어쨌거나 오전을 다 내버린 지라 일정조정이 필요하다. 허나 맘이 급해서일까? 어디까지 걷자 말도 없이, 점심까지 대충 때울 요량으로 빵 한 봉지씩을 사들고는 세 번째 여행의 종착지이자 네 번째 여행의 출발지인 수문해수욕장 행 군내버스에 오른다.

 

수문에서 율포까지는 7km가 넘는 거리인데도 쉬지 않고 걸었다. 걷는 거야 이번이 벌써 네 번째이니 조금은 이력이 났으나 뱃속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가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무래도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듯 한데, 오늘 걸어야 할 길이 아직 반도 넘게 남았다. 밥이고 뭐고 과자 부스러기 몇 개 사들고는 또 출발이다. 다만 수문에서도 그랬고 율포에서도 그랬고 명색이 해수욕장에 왔는데 모래사장에 발도 디뎌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수문과 율포에 자리하고 있는 모래사장>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바닷바람이 무척 차다. 하지만 지나는 차도 많지 않은데다 오른쪽으로 넉넉한 보성만이 얼굴을 보였다가 감췄다가 하며 따라오는 것이 마음만은 가볍게 한다. 헌데 율포를 지나 두 시간쯤 걸었을까? 오른쪽 어깨가 자꾸만 결린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배낭을 잘 못 꾸려서 그런가?

 

사실 우리의 걷기여행이라는 것이 한 번에 길어야 4일 걷는 거고 보통은 이틀 내지 삼일을 걷는 것이기에 짐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짐을 싸다보면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 금새 배낭이 묵직해지곤 한다. 이럴 땐 망설이고 자시고 없이 과감히 짐을 빼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 충전기 같은 것들을 넣었다면 말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여벌의 속옷, 양말만 있으면 처음 출발할 때 입은 옷으로 대충 삼, 사일은 버틸 수 있으니 그 외의 옷들은 과감히 빼야한다. 대신 구급약과 지도는 ‘뭔 일이야 나겠냐’하고 빼 놓는다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니 반드시 챙겨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짐을 싸면서 이것저것 불필요 한 것들을 뺐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배낭을 잘 못 꾸렸나보다. 간만에 한참을 쉬면서 스트레칭도 한다. 한결 낫다. 배낭도 뒤집어엎고 다시 꾸린다. 아래서부터 가벼운 것으로, 위로 무거운 것들로. 그리고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화죽에서 갈림길이다. 밤길을 걷는 일이 있어도 845번 지방도로를 타고 득량까지 갈 것인가, 아님 해안도로인 2번 군도를 따라 가다 어디선가에서 하루 밤을 보낼 것인가? 수문에서 출발하기 전에 일정조정을 했어야 했는데.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아무래도 득량까지는 힘들 것 같다. 해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데 아무래도 숙박이 문제다. 민박촌은 없는 것 같고 큰 마을도 없다. 난감하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다 다행히도 선소마을 어촌계장님과 통화가 되면서 어렵사리 숙박이 해결된다. 한숨이 놓인다. 하지만 어림잡아 봐도 선소마을까지도 만만찮은 거리다. 게다가 해는 이미 산꼭대기에 걸려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전에는 배를 만들던 곳이라 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으나 공룡알과 공룡뼈가 발견되고 나서는 그걸로 더 유명해진 비봉리 선소마을*에 도착하니 가로등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가 수평선을 넘어가기 전에 도착해 다행이다. 마을회관 앞에서 어촌계장님을 기다리고 있자니 동네 어르신들이 오며가며 한마디씩 하시는데 정겨움이 가득 묻어있다.

 

 “여서 잘라꼬? 이장을 찾아야 쓰겄는디”

 “안 그래도 어촌계장님 기다리고 있는 중이예요”

 “그려. 근디 여그는 어떻게 알고 왔는꼬. 뭐 볼게 있다꼬. 지금은 버스도 안댕길덴디?

 “장흥에서부터 걸어왔고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벌교까지 갈꺼에요”

 “어허 거그를 걸어서 왔다꼬?”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차로 다니는 거보다는 걷는 게 더 좋아요”

 “암튼 울 마을에 왔응께롱. 잘 쉬었다들 가게”

 

기다리던 어촌계장님은 나오시지 않고 대신 계장님 부인께서 나오셨다. 헌데 민박은 어찌 있겠지만 식사까지는 안 된단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빵과 과자로 대충 때우고, 아무래도 오늘은 밥 구경하기 틀린 것 같다. 지난 설 이후 물건을 실은 차가 오지 않아 날짜 지난 물건들이 많은 마을회관 옆 가게에서 요기할만한 것들을 집어들고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민박집으로 향한다.

 

저녁거리라고 해봐야 컵 라면과 과자부스러기가 전부다. 그래도 슈퍼에서 얻어온 김치에 라면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물을 끓이는데, 언제 나오셨는지 할머니께서 내일이 보름인데 맛이나 보라며 오곡밥을 퍼 주신다. 그것도 고봉으로 두 공기나. 결국 오늘이 가기 전에 이곳에서 밥 구경을 하게 된다. 맛나게 오곡밥을 먹고 나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새벽 추위에 일어나 보니 텔레비전마저 켜 놓은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여행 후에야 오봉리와 비봉리 등 득량의 여러 마을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http://dr.invil.org/village/)가 있다는 걸 알았다. 화죽 갈림길에서 우리는 2번 군도를 따라 비봉리 선소마을에서 하루 쉬었는데 84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이금재, 이용욱, 이식래 가옥 등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 오봉리에 닿는다. 홈페이지에서는 우리가 하루 밤 묵었던 곳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이름이 그곳의 위치나 경치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쉴만한 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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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12:36 2009/05/03 12:36

첫째 날, 마량항에서 천관산 입구까지(2005년 10월 22일)

 

강진에서 마량항에 이르는 23번 국도. 누군가는 이 길을 ‘횡재한 길’이라 했지만 실은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이름난 길로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났다. 물론 차를 타고 지나기보다는 천천히 걸으면서 느끼기에 더 좋은 길이기는 하다. 헌데 이 좋은 길이 마량항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다시 천관산으로 향하는 길. 지번은 77번으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길.

  

지난번과는 달리 이제는 철이 지난 코스모스들과 제철을 맞은 억새풀들이 길 양옆에 줄지어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남해바다가 머리를 내밀었다가 숨었다 하며 약을 올리고,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은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거기에 알맞게 부는 가을바람이 걸음을 가볍게 하니, 이건 분명 또 다른 ‘횡재'다.

 

<마량에서 관산으로 가는 77번 국도 변> 

 

마량항에서 출발한 시간이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12km가 조금 넘는 거리인 대덕읍에 11시가 안 되어 도착했으니 이 속도에 몸이 익숙해졌나보다. 다만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그 흔한 주유소 하나, 음식점 하나 보이지가 않아 급한 볼일을 참아가면서 오는 바람에 길을 걷는 여유를 느끼지도, 지나치는 마을들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또 폐교를 개조해 천연염색을 하는 곳도 지났는데 이 역시 지나쳐왔다.

 

대덕읍은 제법 큰 마을임에도 마땅한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 대충 빵으로 때울 까도 했는데 아침을 일찍 먹어서 그런지 배속의 요란함이 그리 하지 못하게 한다. 다행인지 어쩐지 모양새만큼이나 맛도 그다지 좋지 않은 허름한 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운다.

 

오늘은 천관산 아래에 머무른다. 대덕읍에서 천관산 아래 방촌문화마을까지는 10km밖에 되지 않아 3시밖에 안 되어서 도착했지만 이곳에는 이것저것 ‘보물찾기’ 놀이를 할 만한 것들이 꽤나 있어서 부러 일정을 그리 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숨어있는 고인돌 군이며, 길 양옆에 마주보고 나란히 서있는 남, 여 장승, 집성촌인 장흥 위씨 마을에 흩어져 있는 고택(古宅)들과 천관산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천재()는 훌륭한 숨은 ‘보물’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참에 하루 더 머무르며 30만평에 달한다는 천관산 가을 억새 물결도 구경하고, 산 이쪽저쪽에 흩어져 있는 문학공원, 돌탑, 문학비 등도 찾아보고, 동학농민전쟁의 최후 혈전이 치러졌던 석대들과 이 전투 이후 살아남은 농민군이 마지막 항전을 벌인 옥당리도 들러 묵도라도 올려야 할 것이나 시간이 허락지 않음이 아쉬울 뿐이다.

 

둘째 날, 천관산 입구에서 수문해수욕장까지(2005년 10월 23일)

 

어제와는 달리 읍내를 지나자마자 길게 이어진 고갯마루에 이어 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이들을 싫은 차들이 연이어 질주하는 바람에 걸음걸이가 더디다. 그래도 길가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구경에, 빨갛게 익어 가는 감나무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헌데 이 좋은 풍경 뒤로 ‘쌀 협상 무효’, ‘WTO 반대' 구호가 쓰인 대나무 깃발이 자주 보인다. 또 오가는 트럭과 트랙터에도 ‘殺農반대’ 깃발이 꽂혀 있고, 읍, 면소재지에는 어김없이 농민회에서 야적해 놓은 쌀가마들로 가득하다. 쌀 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항의 표시다.

 

<한 시간 가량 낮잠을 즐겼던 관흥삼거리 쉼터에 걸려 있는 ‘WTO반대’ 깃발. 이번 여행에는 이런 깃발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용산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수문과 율포를 거쳐 벌교로 가는 길을 걷기 위해 또 옆길로 샌다. 마량에서부터 쭉 함께 한 길을 따라 곧장 간다면 장흥읍으로 나갈 수 있지만.

 

안량우체국 앞 사거리까지는 식당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뱃속은 요란하기만 한데 뾰족한 수가 없다. 별 수 없어 사거리 슈퍼에서 늦은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우고는 18번 국도를 따라 수문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곳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종려나무가 열 맞추어 사열하고 있는데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 빼고는 그다지 볼거리는 아닌 것 같다. 허나 우리를 돌아가게 한 이유 중에 하나이니 소개할 수밖에.

 

일제시대에 한센병 환자들이 소록도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다 더위에 지쳐 목욕을 했더니 몸이 가뿐해지고 병도 완치되어 이후에 해수욕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수문에 도착하니 어느새 득량도(得粮島) 넘어 해가 수평선에 목을 걸치고 넘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색다른 색과 맛을 내는 해물수제비를 국물까지 깨끗이 비워내니 짙은 어둠이다.

 

장흥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시간이라도 때울 요랑으로 모래사장에 내려서니 까짓 하루 더 있을까, 유혹이 생기는데,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아쉬움만 남기고 차에 오른다.

 

 

* 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마량항에서 대덕읍을 지나 천관산 아래 방촌문화마을까지 억새와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77번 국도를 따라 약 21km. 걸은 시간 7시간.

- 둘째 날 : 77번과 18번 국도로 바꿔가며, 방촌문화마을에서 용산삼거리, 안량사거리를 거쳐 수문해수욕장까지 약 25km. 걸은 시간 8시간.

 

* 가고, 오고

첫 번째, 두 번째 여행과는 달리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새벽 2시에 출발하는 심야고속 마지막 편을 이용했다. 요금이 열차보다는 3,000원 정도는 더 비싸지만(무궁화 기준) 조금이라도 잠을 편하게 자면서 이동하고자 한다면 버스가 훨씬 낫다. 게다가 마량항까지 운행하는 4시 50분 직행버스 첫차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수문에서는 일단 장흥으로 나와야만 광주가 됐던 서울이 됐던 움직일 수 있는데, 서울행 고속버스는 하루 세 번밖에 운행하지 않는데다가 오후 4시가 막차다. 결국 광주로 한 번 더 나와야 쉬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데 다행히 장흥에서 광주로 나가는 차편은 꽤 늦게까지, 꽤 자주 있는 것 같다.

 

* 잠잘 곳

마량항에서 방촌문화마을까지는 대덕 읍내를 제외하고는 식사할 만한 곳이 전혀 없다. 대신 숙박은 인근 관산 읍내에 모텔과 여관이 몇, 그리고 장천재로 가는 길목에 천관산관광농원과 우리가 하루 밤 묵었던 담소원이 있다. 방촌문화마을에서 수문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음식점은 다수 있으나 비수기에는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다. 또 숙박을 할 만한 곳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신 수문해수욕장에는 음식점과 숙박할 만한 곳이 다양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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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23:55 2009/04/30 23:55

강진만이 오른편으로 보이는, 잠시 돌아가는 길(2005년 10월 2일)

  

<전날 머물렀던 월출산 자락>

 

갈림길이다. 영암과 나주를 거쳐 광주로 가는 길과 장흥과 보성, 그리고 벌교를 거쳐 구례로 가는 길. 앞의 길은 우리보다 앞서서 혼자 고성까지 걸었던 한비야씨가 택했고, 뒤의 길은 나중에 알게 된, 역시 혼자 길을 떠났던 까탈이씨가 또 먼저 걸었다. 어느 길을 가더라도 걷기에 좋은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번갈아 가며 기다리고 있을 뿐일 터이고, 아쉬운 것은 둘 모두를 걸을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까탈이씨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기로 한다. 다만 누구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또 뭐 그리 바쁘게 위로만 올라가야 할 이유가 딱히 없기에 강진만을 오른편을 두고 잠시 돌아가기로 한다. 누군가는 마랑향으로 이어지는 이 23번 국도를 두고 ‘횡재한 길’이라고 부를 정도로 꼭 놓치지 말기를 당부했으므로.

  

오전 9시, 강진 읍내를 벗어나자마자 해남 땅에서 한 번 맛을 봤던 <경치 좋은 길 시작>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안내판 너머에는 어떤 길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을까? 잔뜩 기대된다.

 

  

<강진에서 마량항까지 이어진 23번 국도>

 

오른편으로는 구강포 넘어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좌우로 자리잡고 있는 만덕산이 저 만치서 손을 내밀고 왼편으로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머리를 내밀며 우리 앞을 나선다. 길 양옆으로는 제 철 맞은 코스모스가 줄지어 서있고, 가을바람은 등줄기의 땀을 날릴 만큼 충분하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쬐고 추수를 앞둔 벼들은 황금색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런 이건 횡재가 정도가 아니라 꼭 걸어야 할 길 목록에 넣어야 할 것이다.

  

오늘 길잡이 노릇은 <강진군관광안내도>가 톡톡히 한다. 첫 번째 여행 때에는 이런 관광안내도가 있는 지 몰라 걸어야 할 길, 잠잘 곳 등등을 인터넷과 여행관련 책 등을 통해 준비를 했었다. 헌데 이렇게 준비 하다보니 숙박지는 숙박지대로 따로 메모를 해야했고, 지도는 지도대로 프린트를 하던가 지도책을 가져가야 했다. 그러다 강진터미널 매표소에서 이 놈을 발견했는데 이 놈은 숙박지면 숙박지, 음식점이면 음식점, 게다가 지도까지 한 장에 모두 담고 있는 거 아닌가. 게다가 나중에 알기는 했지만 군 홈페이지에 신청을 하면 집까지 보내주니, 우리처럼 걷기여행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씩은 준비해야겠다.

  

칠량 면소재지를 조금 지나 길 오른편에 자리잡고 있는 「모범음식점」 금강휴게소가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만나게 된 유일한 식당이다. 낮 12시가 조금 넘었으니 요기를 채워야겠는데 역시나 5천 원에 15가지나 되는 백반이 있어 주문하기가 쉽다.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밥그릇을 비워내고는 식당 한 구석에 발을 쭉 펴고 누워 또 2시까지 무조건 쉰다.

 

세심정으로 가는 오르막길, 숨은 조금씩 가빠지는데 차에 받쳐 죽은 뱀의 시체가 눈에 들어와 갓길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 걷느라 힘이 든다. 그래도 고갯마루에서는 강진만의 넉넉함을 한껏 볼 수 있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좋아진다. 헌데 양이정으로 오르는 길에 죽어 있는 생명이 또 보인다. 바짝 말라붙어 있어 뚜렷한 형체는 알아볼 수 없지만 이번엔 다람쥐인 것 같다.

 

월 평균 71마리, 하루 평균 2.4마리의 야생동물이 차에 받쳐 죽는다는 ‘로드킬(road-kill)’이 벌써 두 번째다. 언젠가 신문에서 2004년 말 현재 전국 도로연장이 총 10만 278km인데 반해 동물들의 이동통로는 고작 2,760m라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자기 편하자고 산, 땅, 강은 다 파헤쳐 길을 내면서도 이리도 생명체들의 길을 내는데는 인색한 것인지.

 

양이정을 뒤로 두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멀리 해안가 도로를 따라 많은 허수아비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어느 것들은 창을 쥐고 있기도 하고, 화살을 쏘는 자세로 있기도 하고, 화포로 무장하기도 했다. 또 딴 것들은 장수복을 입기도 했고, 수군복을 입기도 했고, 승복을 입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들도 있고, 남자들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 장면을 재연한 것이라는 안내판이 있기는 한데, 어째 만들어진 모양새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그 허수아비들과 함께 어린애들처럼 장난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논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길을 걷고 있는데 이런, 지도에도 없는 해안도로를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바람에 실려오는 갯내음에 이끌려 바다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길도 확인하지 않고 걸은 것일테다. 그 바람에 구경하고자 마음먹었던 고려청자박물관이며 도요지, 청자촌, 그리고 당전부락 입구에 있다는 500여 년 된 푸조나무 등을 지나치고 말았다.

  

<가우도(駕牛導) 너머 멀리 초당과 백련사가 자리잡고 있는 만덕산이 보인다>

 

멀리 만호성(萬戶城)이 보이니 저 고개만 넘으면 마량항(馬良港)이다.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었다. 마지막 힘을 낸다. 당초 이번 걷기 여행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강진에서 관산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어제 하루 월출산의 이쪽 저쪽에 자리잡고 있는 무위사며, 월남사지터며, 금릉경포대며, 강진다원 등을 둘러보느라 마량항이 마침점인 된 것이다.

 

마량항 방파제를 따라 바다로 고개를 돌리니 까막섬이 코앞이다. 하루 종일 번갈아 가며 따라오던 죽도, 가우도, 비래도, 내호도, 외호도에 이어 우리와 함께 이곳에 멈춰선 까막섬이.

 

* 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강진만을 오른편으로 두고 강진 읍내에서 칠량면, 대구면을 거쳐 마량항까지 이어지는 23번 국도를 따라 약 25km. 걸은 시간 7시간.

  

* 가고, 오고/잠잘 곳

서울에서 강진까지 교통편은 첫 번째 여행 때와 같다. 첫날 머물렀던 월출산 경포대 근처에는 민박에서부터 최근 지어진 펜션까지 다양하게 있으며, 둘째 날 걸었던 강진에서 마량항까지 23번 국도변에는 음식점은 몇 있으나 숙박할 만한 곳은 없다. 다만 마량항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이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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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23:16 2009/04/30 23:16

둘째 날, 걷기 힘든 길 그러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여유로운 길(2005년 6월 5일)

  

오늘은 다산초당까지다. 욕심을 부린다면야 강진까지도 갈 수 있겠지만 만덕산 이쪽저쪽에 자리잡고 있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한꺼번에 구경하고자, 또 둘을 이어주는 오솔길도 걸어보고자 부러 그렇게 잡았다.

  

남창사거리서부터는 55번 지방도로다. 헌데 이 길은 어제 묵었던 여관을 나서자마자 나타나는 쇄노재 고개에 이어 좌일과 신월을 지나 도암에 이르기까지 대형트럭과 연휴를 맞아 때지어 몰려오는 관광버스가 질주하는 바람에, 게다가 갓길마저 여유가 없어 걷기에는 무척 좋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쉼 없이 걷는다. 다행히 도암을 지나 만나게 되는 3번 군도는 모치재를 넘어 초당까지 지나는 차도, 사람도 없어 하루의 피곤이 가신다.

  

당초 유물박물관은 구경할 생각도 없었기에 민박을 정하자마자 초당 구경에 나섰는데도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헌데 이 늦은 시간에 무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지. 에휴 정신 없어라. 그리고, 어라? 웬 기와집? 어둑어둑한 산길에, 내려오는 사람들까지 피해가며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숨도 가쁜데 초당 앞에 도착하고 보니, 초가집은 간데 없고 떡 하니 기와집이, 그것도 세 채나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역시 사대부 집안의 자식이었으나 당대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을 대신해 백성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사고와 사회비판적인 의식을 만들어갔던 다산이 머물던 그 초당이 사대부 집안의 사랑채와 같은 자태로 서 있으니, 현세의 사람들이 다산을 되려 사대부 사람으로 돌려놓은 듯 해 씁쓸하다.

 

그래도 초당 양옆으로 다산이 해배(解配)를 앞두고 직접 쓰고 새겼다는 ‘정석(定石)’이란 글씨와 역시 다산이 직접 파서 만들었다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천(藥泉), 그리고 이 약천 한쪽에 서있는, 바닷가의 돌을 주워 만들었다는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또 초당 앞에 반듯이 놓여 있는,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였다던 ‘다조(茶竈)’라는 널찍한 반석 등이 있어 다산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셋째 날, 만복산 오솔길을 따라 백련사로, 다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종착지인 강진으로(6월 6일)

 

아침 6시. 서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시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누가 볼새라 마당 평상에 앉아 사진 한 장 찍고 있는데, 언제 보셨는지 집 뒤 텃밭에서 고추를 따고 계시던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번갈아 가며 한마디씩 하신다. 헌데 우리가 도보여행 중이라는 건 어찌 아셨을까?

 

“잠들은 잘 잤는가? 걸어서들 여행 하는가보네. 오늘은 어디까지 가는고?”

 “예. 오늘은 강진까지만 가려구요. 내일 출근도 해야하고 해서 오늘은 서울에 올라가야 하거든요"

 “그려..... 젊은이들이 참 보기 좋네. 고생들하고 다음에 또 놀러오면 울 집으로 와"

 “예. 꼭 그렇게 할게요. 잘 쉬었다 갑니다"

 

민박집 간판을 달기는 했으나 실은 자식들이 쓰고 있는 방을 그냥 손님들에게 내주는 것이라 오히려 더 정겹고 시골집 같은 만복슈퍼. 다시 이곳에 오게된다면 꼭 들릴게요.

 

어제의 그 정신 없던 초당 가는 길이 오늘 아침에는 제법 운치가 있다. 오가는 사람들도 없는데다가 때마침 낀 아침 안개 때문이다. 백련사로 넘어가는 오솔길은 양옆으로 대나무와 고송들이 드리워져 있어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숲 내음을 한껏 맡을 수 있어 마음까지 상쾌하다. 그리고 촉촉이 젖은 산길이라. 휴양림과는 또 다른 맛이다.

 

강진에서 10시 40분에 출발하는 서울 행 일반고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쉽지만 백련사는 둘러보지 못하고 먼발치서 대웅전 처마만 바라본다. 다행히 내려가는 산길에는 300년에서 최대는 600년 정도 됐다는 동백나무들이며, 이 동백림 속에 숨어 있는 고만고만한 부도들을 찾아가는 맛이 있어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때아닌 날파리 때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길가의 원두막에서 올라 잠시 쉬기도 하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으니 어느새 강진이다. 늦은 아침을 먼저 해결할까하다 오늘이 연휴 마지막 날임을 상기하고는 매표소로 향한다. 지방의 버스터미널들이라 그런지 카드결재가 안 된다. 게다가 돈을 찾아 표를 끊고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무신 소린가?’ 하듯 쳐다본다. 음. 괜히 손해보는 느낌이다.

 

어제그제 맛보았던 백반하고는 달리 반찬 가지 수로나 맛으로나 한참 떨어지는,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때우고 나니 어느새 버스 출발 시간이다. 언제일런지는 몰라도 우리의 무작정 걷기 두 번째 여행은 다시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강진관광안내도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버스에 오른다.

 

* 첫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땅끝마을에서 남창사거리 지나 남창관광여관까지 77번 국도를 타고 약 23km. 왼쪽으로는 산이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번갈아 가며 뒤따라오는 아름다운 길. 걸은 시간 6시간.

- 둘째 날 : 남창관광여관에서 다산초당 앞까지 약 25km. 55번 지방도로는 남창사거리에서 도암을 지나 동일레미콘 앞 삼거리까지. 여기서 오른쪽 다산초당 가는 3번 군도로 빠져듦. 초당 가는 3번 군도를 빼고는 차량통행도 무지 많고 지루한 길. 걸은 시간 7시간.

- 셋째 날 : 다산초당에서 강진 읍내까지 약 10km. 다산초당 뒤 편 오솔길을 따라 만덕산을 넘어 백련사로, 백련사에서 다시 3번 군도로 빠져 양옆으로 논이 펼쳐진 길. 걸은 시간 3시간.

 

* 가고, 오고

- 가는 길 :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마지막 기차는 영등포역을 기준으로 밤 11시 17분이다. 요금은 19,600원. 3시 30분 경이면 광주역에 도착하게 되는데 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 택시로 이동하면 대략 10분도 안돼서 도착할 수 있으나 도보로는 넉넉잡아 40분 정도 걸린다. 땅끝으로 가는 첫 버스는 4시 40분이며, 요금은 10,000원이다.

- 오는 길 : 강진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편은 하루에 여섯 번 정도 인 것으로 기억하나 정확한 것은 일반고속이 오전 11시와 오후 3시 30분 두 차례뿐이라는 것이다. 일반고속 요금은 17,300원이다.

 

* 잠잘 곳

땅끝마을은 콘도에서 민박까지 다양하게 있으며, 남창리까지는 해수욕장 등 군데군데 민박, 여관 등이 있으나 남창리에는 남영여관과 남창관광여관 두 곳이 있을 뿐이다. 초당 근처에는 농촌체험민박 등 숙박할 만한 곳이 꽤 있으나 그 외 지역은 없다고 보아야한다. 물론 강진 읍내에는 숙박할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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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23:10 2009/04/30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