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 추모의 밤이 16일 오후 전국택배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1_4421.jpg)
“입만 열면 미제국주의, 미국 타도였다.”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 추모의 밤이 한국진보연대와 자주연합(준) 주최로 16일 오후 6시 서울 서대문 소재 전국택배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이 생전에 “입만 열면 미제국주의, 미국 타도였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2_4450.jpg)
이날 첫 번째 추도사에 나선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에 대해 “어느 누구든지 간에 분단 시대를 살아오면서 고통과 시련이 없었던 사람은 사실 없다. 물론 그 색깔과 강도가 다소 조금 차이는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이 시대에 90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 일제 치하, 분단 시대,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감옥도 다 갔다 오고 그랬다”면서 고인의 평소의 언변에 대해 이같이 상기했다.
식민지 시대와 분단 시대를 겪은 고인이 필연적으로 미국 반대에 앞장섰다는 의미이다.
권 대표는 “저는 이천재 선생님을 가까이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내 나름대로 참 많이 잘 모셨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까 말이 통하는 게 상당히 많았다”면서 “말이 통한다는 건 뭘 말하느냐, 자기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여기 후배가 말해도 옳은 것은 맞다고 하는 거다. 이게 바로 소통되어진다는 것이고 그게 바로 진정한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다”면서, 고인이 긍정적 의미에서 자존심이 강했음을 상기시켰다
![한충목 상임공동대표는 “날카롭지만 올곧게 살았던 그 삶을 후배로서 따라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3_4511.jpg)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두 번째 추도사에서 “제가 집행위원장 하면서 이천재 선생님을 의장님으로 모시고 활동했을 때 이천재 의장님이 저를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불러 짧게는 한 3시간 길게는 한 6시간 동안 말씀을 하셨다”면서 “전국연합과 범민련이 갈등했을 때, 또 8.15통일대회가 두 개 대회 세 개 대회로 예상되고 있을 때, 미군철수민족공동위원회를 만들자 말자 하며 저희들 내부에서 논쟁이 있을 때, 그리고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완전 폐지하는 게 좋을지 7조라도 개정해야 할지 등 그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저를 불렀다”고 상기했다.
그러면서 한 상임공동대표는 “내가 과연 지금 40대 50대 활동가들을 불러서 4시간, 5시간씩 그 후배들과 그렇게 깊은 의논을 하고 논쟁도 하고 그렇게 앞으로 할 수 있을까, 내가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불러서 진보당의 사무총장을 부르고 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을 불러서 역사의 중요한 계기마다 그렇게 진지한 논의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저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고 낮추면서 “그건 아마 이천재 의장님이 갖고 있었던 내공일 것 같다”고 기렸다.
한 상임공동대표는 “이천재 의장님은 말씀하시기를 참 좋아했다”면서 “날카롭지만 올곧게 살았던 그 삶을 후배로서 따라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표했다.
![서정길 자주연합(준) 준비위원장은 고인이 생전에 “우리는 미국놈을 몰아내야 해요. 또 그다음에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인 통일을 좀 해야 돼요”라고 말했음을 상기시켰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4_4532.jpg)
세 번째 추도사에 나선 서정길 자주연합(준) 준비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제가 이천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을 맨 먼저 알려주게 된 장본인이다. 제가 그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이 9일 날 저녁 늦은 시간인데, 상주로부터 전화가 와서 알게 됐다”고는 “저는 이천재 선생님과 1980년대부터 가까이 생활을 했다. 저는 농민운동을 하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이천재 선생님과 그 주위 분들과 같이 애썼다”며 고인과 특수관계임을 밝혔다.
서 준비위원장은 “이천재 선생님은 저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미국놈을 몰아내야 해요. 또 그다음에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인 통일을 좀 해야 돼요. 이대로 가면 안 돼요”하고는 “그런데 그것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멀리하셨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명희 전 민중민주당 대표는 “코리아연대에서 민중민주당으로 창당할 때 이천재 선생님은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고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5_4558.jpg)
고인은 생전에 많은 단체에 몸을 담았는데 94세에 이르기까지 마지막으로 가입한 조직이 민중민주당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추도사에 나선 한명희 전 민중민주당 대표는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당시 유일하게 방북 투쟁을 벌였던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가 이명박 권력에게 탄압받았을 때 기꺼이 고문을 맡아 투쟁에 나섰던 이천재 선생님을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기억한다”고 상기하면서 “코리아연대에서 민중민주당으로 창당할 때 이천재 선생님은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 각종 국제포럼과 비상시국강연, 노숙농성투쟁에 함께하시며 언제나 청년이셨던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기렸다.
그러면서 한 전 대표는 “대상이 분명하고 목적이 뚜렷한 철학, 분명한 투쟁을 통해서만이 소수의 양심이 다수의 정의가 될 수 있고, 분단 조국이 통일로 완성될 수 있다”, “개량주의의 그 어떤 합리도 그것이 독립된 인격으로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식인의 그럴싸한 낭만에 불과하다”, “진보주의자라면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뿐 아니라 변혁에 대한 준비도 함께해야 한다” 등 고인이 평소에 남긴 금언들을 차례로 환기시켰다.
![‘통일 도깨비’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는 김태철 시인.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6_4627.jpg)
이어, 김태철 시인의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 추모시’라는 부제가 붙은 ‘통일 도깨비’ 추모시가 낭독됐다.
김 시인은 “빚을 지셨습니까 /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 다시 못 볼 사람아 / 갚아도 갚아도 갚은 것을 잊어버린 도깨비처럼 / 통일 산천에 무슨 큰 빚 지셨다고 / 한 평생 그토록 모질게 / 사셨습니까”로 시작하는 장시를 낭독하며 고인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유족인사에 나선 고인의 친동생인 이규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7_4652.jpg)
고인의 친동생인 이규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이 유족인사에 나섰다.
이규재 전 명예의장은 “저는 오늘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히려 하지 못하겠다”고 운을 떼고는 “분명한 건 여섯 살 차이나는 형님인데, 큰 차이는 아닌데, 어려서부터 형님은 내게 큰 스승이었다. 이렇게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지도를 받았다. 이제 그 길이 막혔다. 형님이 제게 너무 많은 영향을 주었다”며 큰 아쉬움과 함께 고마움을 전했다.
이 전 명예의장은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처음에는 먹먹했는데 오늘 추모식을 하니 정말 돌아가셨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고는 “두고두고 우리 형님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며 끈끈한 형제애를 밝혔다.
![고인의 약력 보고를 하고 있는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8_4725.jpg)
![추모영상. 고인과 함께 지난 4월 작고한 마이크를 든 권오헌 전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보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69_4745.jpg)
![추모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열창하고 있는 노래극단 희망새.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70_483.jpg)
추모의 밤 사이사이에는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이 약력 보고를 해 고인의 삶을 되새겼으며, 추모영상을 통해서는 고인의 투철한 활동에 장내가 숙연해졌으며, 또한 노래극단 희망새가 추모노래로 ‘심장에 남는 사람’을 열창해 추모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기도 했다. 행사 마지막에는 참가자들의 합동 헌화가 진행되었다.
![추모의 밤을 사회한 원진욱 자주연합(준) 사무처장은 “선생님은 늘 입에 달고 다니셨던 말씀이 통일단결이고 일심단결이고 단결이었던 것 같다”며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71_4836.jpg)
추모의 밤을 사회한 원진욱 자주연합(준) 사무처장은 고인의 삶과 활동을 회고하면서 생전에 고인에게 “선생님, 왜 이렇게 열심히 현장에 다니시고 또 많은 단체에 가입을 하시느냐고 여쭤봤는데 자주통일운동, 진보운동이 이렇게 분열되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하고 고민하다가 직위는 고문이지만 내가 단체에 속해 현장에 나가서 책상 하나라도 옮기고 머릿수라도 하나 채워주면 그게 통일단결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지 않겠냐며 이렇게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난다”면서 “선생님은 늘 입에 달고 다니셨던 말씀이 통일단결이고 일심단결이고 단결이었던 것 같다”며 기렸다.
이날 추모의 밤 행사에는 발언자들 외에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의 원로 격인 임방규, 김영승, 노수희, 진관 스님, 김승호 선생 등이 7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평생을 민족자주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은 지난 9일 94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추모의 밤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의 합동 헌화가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6/213756_109372_49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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