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 조사관들이 화교 탈북민 유우성씨의 여동생 유가려씨를 신문하며 욕설하고 폭행한 것으로 검찰 공소장에 드러났다. 이들은 유가려씨에게 전기고문을 하겠다며 위협하고, 탈북민 숙소 앞에 데려가 망신을 주기도 했다. 검찰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국정원의 가혹행위를 인정해 기소한 것은 처음이다.
검찰 기소 과정에서 ‘늑장 수사’ 논란도 불거졌다. 해당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가 늦어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법정에서 주장하고 있다. 유우성씨 측은 “시효가 다 되는 줄 알면서 검찰이 왜 그렇게 사건을 오래 묵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욕하고 때리고 전기고문한다고 위협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는 지난 3월 합동신문센터 조사관 유모씨와 박모씨를 국정원법상 직권남용과 형법상 위증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공소장을 보면 유가려씨는 2012년 10월 한국에 입국해 11월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수용됐다. 유씨와 박씨는 유가려씨가 자신이 화교가 아니라고 하자 욕설하며 주먹과 발로 폭행했다. 박씨는 유가려씨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가 “전기고문을 해야 정신이 번쩍 들겠느냐”며 위협했다. ‘회령 화교 유가리’(유가려씨의 중국 이름)라고 쓴 종이를 유가려씨의 배와 등에 붙인 뒤 탈북민 숙소 앞에서 “탈북자로 가장해 들어온 나쁜 X이다. 얼굴 봐라. 구경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유가려씨에게 “오빠가 간첩 아니냐”며 폭행해 “유우성이 북한에 몰래 들어가 국가보위부 부부장에게 임무를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 간첩이 아니라고 하면 “제대로 말 안 하냐”며 때렸다. 허위 진술을 취소하자 “진술번복죄가 간첩죄보다 더 크다”며 때렸다. 유가려씨에게 “조사에 혼란을 초래한 것을 반성하고 다시 거짓말할 경우 한국법에 따라 어떠한 처벌도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반성문도 쓰게 했다. 그해 12월 유가려씨는 다른 수사관에게 넘겨졌다. 이들은 2013년 6월 유우성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유가려를 폭행한 적 없다”고 위증한 혐의도 받는다.
앞서 2013년 2월 검찰은 당시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우성씨가 탈북민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며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재판에서 국정원의 가혹행위와 핵심증거 조작이 드러났다. 유우성씨는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2월 국정원 직원들을 고소했다. 검찰은 1년 넘게 수사를 끌다 지난 3월 유씨와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 5명의 다른 혐의, 사건을 수사한 검사 2명의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연루 검사들은 불기소…공소시효 논란 자초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된 수사 검사들을 불기소한 검찰의 결정은 고소인 첫 조사 한 달여만에 나왔다. 유씨 측은 검찰이 1년 동안 수사를 끌다가 불기소 결정을 했다고 본다.
유우성씨 측에 따르면 유씨 남매에 대한 첫 고소인 조사는 고소장 접수 1년 만인 지난 2월 진행됐다. 유우성씨는 단 한 차례 3시간 가량 조사받았다. 검찰은 한 달여 뒤 이 전 검사는 불기소, 국정원 직원 두 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공소시효를 문제삼았다. 유가려씨 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은 지난달 첫 재판에서 “유가려에 대한 신문이 마지막으로 진행된 2012년 12월부터 가산하면 이미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 공소시효(7년)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폭행·협박에 따른 유가려씨 진술이 2013년 4월까지 이어져 공소시효는 올해 4월”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국정원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공소기각 결정이 나올 수 있다.
유우성씨 측 양승봉 변호사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올해 늑장 기소해 공소시효 논란의 빌미를 줬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할 여유도 없이 급하게 기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불기소 결정서를 보면 수사 과정에서 이 전 검사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있었는지도 의문이 든다. 이 전 검사의 유가려씨 변호인 접견 불허 연루 의혹은 당사자인 이 전 검사와 참고인 신분인 국정원 직원 김모씨 진술을 교차 검증하는 식으로만 이뤄졌다. 이 전 검사는 검찰 조사에서 ‘유가려가 변호인 접견 의사를 밝힌 2013년 3월4일 이후 국정원과 협의한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인 접견 불허는 국정원이 최종 결정했고 검찰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과거사위는 ‘검찰이 유가려씨의 참고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불입건 결정을 내린 결정 또한 변호인 접견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판단했지만, 이 전 검사 불기소 결정서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2013년 3월6일자 국정원 보고서 ‘화교간첩 유우성 사건 관련 검찰 협의 결과’에 대해서도 구체적 판단이 없다. 이 보고서는 ‘이 전 검사를 접촉해 공소유지 방안을 협의했다’는 내용과 함께 ‘(유가려가) 참고인 신분임을 이용해 (변호인 접견) 법적 허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 고수 필요’라는 내용이 적혔다. 불기소 결정서에는 참고인인 국정원 직원 김씨가 “내가 작성한 게 아니다”라는 취지로 부인했다는 내용만 담겨있다. 유우성씨 가짜 출입경기록을 법원에 제출한 것에 대해서도 국정원 직원 김씨 진술을 들어 “(이 전 검사가) 허위로 작성된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이 전 검사의 ‘날조’ 혐의에 대한 불기소 판단에는 공동정범 가능성이 있는 공동 피고소인 국정원 직원의 진술도 사용됐다. 이 전 검사는 유우성씨가 당시 북한이 아닌 중국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 사진파일 GPS 정보, 통화 내역 등을 고의로 법정에 제출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누락된 사실을 몰랐다’는 취지의 이 전 검사 진술에 대해 “(국정원 직원) 김모씨, 유모씨 등의 진술이 이 전 검사의 주장에 부합”한다고 했다. 이 전 검사의 진술을 뒷받침한 유씨는 전 국정원 직원으로 이 전 검사와 같은 GPS 정보 은폐 혐의로 유우성씨로부터 지난해 고소됐다. 국정원 직원 유씨는 검찰 조사에서 “유우성 노트북에서 발견된 자료가 수사에 활용되고 증거로 제출되는 과정에 전혀 관여된 바 없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2014년 증거조작 사건 형사기록 및 과거사위 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새롭게 피의자 및 참고인 조사를 실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며 이 전 검사에 대해선 “형사처벌에 이를 만한 증거나 고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불기소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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