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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노동] 돌봄예산 몇 십 조 예산 쏟아붓는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11/29 07:55
  • 수정일
    2021/11/29 07: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중의소리-국민입법센터 공동기획 코로나 시대의 노동

돌봄정책 어디로 가야하나⑥ - 돌돌봄 국가책임, 기초부터 재설계하자

2021년 정부는 저출산 분야에 46조7천억원, 고령사회 분야에 26조원 등 저출산고령사회 예산으로 72조7천억원을 투입했다. 2020년 62조7천억원에 비해 10조원(16%) 가량 증가했다. 이 중 돌봄관련 예산도 적지 않다. 노인돌봄, 장애인돌봄 등 주요 분야 예산의 증가폭이 꽤 높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사업비가 1조7천1백억원으로 2020년에 비해 20.6% 증가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예산도 4천183억원으로 12.2% 증가했다. 보육관련 예산도 증가했다. 영유아보육료가 3조3천677억원, 보육교직원 인건비 및 운영지원이 1조6천억원, 가정양육수당 지원에 7천608억원, 어린이집 확충에 609억원 등이 들어간다.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1조4천991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4.8% 늘어났다.

예산은 증가하고 있는데, 정부의 재원이 돌봄노동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보장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자신의 처지가 불안한데 어떻게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돌봄을 받는 사람도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도 행복하지 못하다. (관련기사:필수노동이라 소중해? 돌봄노동자 월급이나 빼앗지 마세요)

정책 목적은 공공성 실현인데 담당 기관의 절대다수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에 맡긴 결과다. 지자체 개발사업에 업자들이 들어와 천문학적 이익을 남겼던 대장동과 같다는 한 돌봄노동자의 탄식은 돌봄정책의 현주소를 제대로 지적해준다. (관련기사:장기요양시설 3년 운영하면 건물이 뚝딱 생긴다?)

대선을 앞두고 여러 후보들이 ‘돌봄은 국가책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연 후보들은 ‘국가책임’의 뜻을 알고 있는 것일까? ‘어떤 서비스에 얼마의 돈을 더 쓰겠다’고 한다. 이윤추구로 정부 재원이 줄줄 새는 시스템이 바뀌지 못하면 돌봄 예산의 증가는 민간사업자 배불리기의 다른 말이 된다.

ⓒ일러스트 신지현

현행법에서 돌봄은 정의돼 있지 않다

노동정책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개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다. 가장 근본이 되는 ‘근로기준법’이 존재하고, 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규정한다. 그 규정에 따라 권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제시된다. 사회정책으로 돌봄을 다룬다면 돌봄을 정의할 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돌봄은 현행법에서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사회보장기본법에 사회서비스의 한 종류로 언급될 뿐이다. 그때 그때 개발된 돌봄정책들은 파편적으로 여러 법에 흩어져 존재한다. 비슷한데 관리 부처나 기관이 다른 돌봄서비스들도 많다. 이용자들이 알아서 찾지 않으면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저출생 고령화 시대가 가속화 되면서 돌봄의 요구는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국민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정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법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돌봄정책기본법’을 제시한 국민입법센터는 최근 발간한 ‘좋은 돌봄’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돌봄을 사회정책의 한 범주로 인정하고 돌봄의 정의와 대상, 정책추진의 원칙 등을 명시하여, 누구나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누구든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돌보면서 일-돌봄-휴식을 함께 영위하도록 하며, 유급 돌봄제공자 뿐만 아니라 무급 돌봄제공자의 권리도 보장하고 돌봄 책임을 분담하여, 돌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별도의 법제가 필요하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 />‘좋은돌봄’ 49p

돌봄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은 아이를 돌보는 일도, 노인을 돌보는 일도, 장애인을 돌보는 일도 다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한다. 지금껏 가족이 책임져야 했던 일이 국가가 책임질 일이 됐다. 그렇다면, 돌봄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김정엽 국민입법센터 연구기획팀장은 돌봄이 국민의 기본적 권리에 속한다고 선언하는 데서 출발해 국가가 좋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의무와 돌봄제공자인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할 의무, 돌볼 권리를 보장하는 의무를 책임진다는 개념이 돌봄국가책임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삶에 필수적이지만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전면에 드러내고, 이를 위한 사회적 변화를 이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좋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면, 그저 예산을 많이 투입하면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그랬다. 돌봄정책은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비용’을 제공해 돌봄서비스를 ‘구입’하도록 했다. 각종 바우처들이 그 정책의 실체다. 이용자들이 구입하는 돌봄서비스는 민간기관이 담당했다. 정부가 제공한 바우처, 즉 서비스의 가격은 정해져 있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관들은 가능한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극대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사회서비스원 돌봄종사자 영상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10.8ⓒ뉴스1

김 연구기획팀장은 “민간의존은 한국 사회서비스 공급의 대표적 특성”이라면서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의 속성상 민간 의존도가 높으면 돌봄의 공공성이 저하되고 돌봄의 질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돌봄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용자들의 수요는 사람마다 다르고 다양하다. 민간기관이 이용자의 구체적인 수요를 파악해 서비스를 믹스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 자체가 비용인데 말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돌봄서비스들을 우후죽순처럼 개발하다 보니 지역간 격차도 크고, 언제 폐지될 지 모르는 불안정한 서비스도 많다. 정부가 직접 돌봄서비스를 관리하면 이용자들의 요구와 비효율적으로 중복되는 서비스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여러과제가 있지만 공공시설 확충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공성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데다 노동집약적인 돌봄분야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공공이 직접 운영해 ‘이익추구’를 걷어내야 투입되는 재원이 제대로 이용자와 돌봄노동자에게 전달되고 서비스의 질이 올라간다. 어린이집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공공 돌봄기관은 전체 돌봄기관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민간위탁은 ‘국가책임제’가 아니다

국공립돌봄시설이 늘어난다고 마냥 반길 일이 아니다.

OO시노인보건센터, OO시립전문요양원 등 겉으로 보면 국공립 돌봄시설이지만 실질에서는 민간위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9년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조사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사회복지시설 중 공공이 직접 설치해 운영하는 경우는 1.2%에 불과하다. 이를 제외한 국공립 돌봄기관의 대부분이 민간위탁으로 운영된다는 뜻이다.

민간위탁은 보통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하기 어렵거나 비효율적인 경우에 진행된다. 민간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필요한 경우에 공공성을 양보해서라도 민간의 능력을 활용하자는 취지다.

위탁을 받은 민간기관의 역할은 대부분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를 연결하는 수준에 그친다. 업무내용은 정부기관의 매뉴얼을 따르고, 돌봄노동자 교육도 정부기관이 마련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민간에 위탁하면 오히려 운영이 불투명해지고, 관리인원이 중복되는 등의 비효율이 발생한다. 때문에 돌봄시설을 공공에서 직접 운영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게다가 돌봄시설을 공공이 직접 운영할 경우 돌봄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될 여지가 많다. 극도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이윤 극대화’ 때문에 나타난다. 돌봄노동자가 공공기관에 직접 고용되면 초단시간 근로 계약이나 다중 계약 등을 통한 인건비 착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돌봄노동자가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 무기계약직 등으로 고용안정을 이루면 서비스의 질은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국민입법센터 신의철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이후 상당부분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며 “공공이 직접 운영하면 돌봄노동자의 정규직화도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돌봄시설을 공공이 운영하면 경직성이 높아지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지적한다. 신의철 변호사는 “경직성이 강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해고가 어렵고 돌봄노동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는 의미”라면서 “서비스제공자와 서비스이용자 간 신뢰관계가 중요한 돌봄의 경우 이는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전국방문요양·목욕기관협회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사회서비스원 폐지와 장기요양악법개정안 저지를 위한 민간장기요양기관 총궐기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1.25.ⓒ뉴시스

사회서비스원, 누가 좌초시키고 싶어하나

이런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기관이 ‘사회서비스원’이다. 지방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통합적 돌봄서비스기관이다. 올해 8월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부터 각 지자체에 사회서비스원이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문제는 올해 통과된 법과 사회서비스원 운영이 당초 취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점이다.

원래는 정부나 지자체가 사회서비스 제공 시설을 국공립으로 만들면 사회서비스원에게 ‘우선 위탁’ 하도록 법안이 만들어졌다. 민간에 맡겨 왔던 돌봄 서비스를 점차 사회서비스원으로 포괄해 가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이 ‘우선 위탁’ 조항이 바뀌었다. 민간이 기피하거나 부족한 시설의 경우에만 우선 위탁하게 했다. 공공이 만든 시설을 공공이 운영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들과 경쟁입찰을 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법안이 국회에서 심의를 거치면서 민간기관들이 반발하고, 이에 호응한 일부 정당과 국회의원들에 의해 퇴색됐다. 지금까지 잘못 설계돼 있던 ‘시장에 맡긴다’는 정책 방향을 바꾸기 위해 등장했던 사회서비스원이 ‘시장의 실력자’들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하고 출발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김정엽 연구팀장은 “이대로라면 사회서비스원의 존립 근거나 입지 자체가 불투명하다”며 “국민의 돌봄받을 권리,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돌봄의 공공성보다 기존 민간 기관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나 정치권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라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돌봄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돌봄을 사회정책의 한 분야로 재정립한다면, 돌봄을 받을 권리와 함께 돌볼권리도 제대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돌볼 권리는 대부분 돌봄을 위한 휴가나 근로시간 조정 등으로 제도화 된다. 대표적으로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가족돌봄휴직이나 가족돌봄휴가 등의 제도가 있다. 문제는 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가 사회를 덮치자 돌봄을 위한 휴직이나 휴가를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처지가 극명하게 갈렸다. 제도는 있는데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고용이 안정된 사람일 수록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다. 고용 불안정이 돌봄 불안정으로, 돌봄 차별로 나타나고 있다.

이 영상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를 만난 부산지역의 한 여성이 토로하는 장면이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아니면 육아휴직을 쓰기 힘들고, 제왕절개로 병원에 있을 때 남편이 출산휴가도 못썼다고 말한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다. 더 나아가 기간제나 임시직 노동자들은 육아휴직을 쓸 상황이 되기 전에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아예 대상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는 있어도 육아휴직급여 지급대상이 되지 못한다.

육아휴직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이나 가족돌봄휴직, 가족돌봄 근로시간 단축 등은 사업주의 사업운영 필요에 따라 불허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아닌 이상 마음씨 좋은 사장님을 만나지 못하면 돌봄 관련 휴직을 쓰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돌볼권리보다 사업운영 필요를 앞세우고 있는 법체계를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입법센터에서 활동하는 김진형 변호사는 “노동자를 기계처럼 생각하고 휴식권이 낯설었던 19세기의 사고방식을 혁파하면서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휴식할 수 있는 권리, 휴가 권리가 등장했다”면서 “이제는 노동자가 구성하는 가정이나 사회적 역할을 보장해 줘야 할 단계”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휴가권을 보장하고 임금을 보전했던 것처럼 돌볼권리도 같은 방식으로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돌봄 휴직이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소득보전대책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멈추고 사회가 멈춰있을 때도 돌봄교실은 돌아갔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휴가를 낼 수 없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다.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부모들에게 돌볼 권리를 보장해 줄 수는 없을까. 사진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교육부가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을 2주간 추가 연장한 당시 대전 유성구 노은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2020.3.17ⓒ뉴스1

돌봄노동자를 위한 법이 필요하다

지금껏 돌봄정책은 돌봄 ’이용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돌봄을 받을 권리는 원천적이고 중요하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돌봄서비스 ’제공자’인 돌봄노동자다. 국민입법센터 이주희 변호사는 “돌봄이용자들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은 돌봄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일 하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정책에서 돌봄노동자에 지급되는 인건비는 ‘비용’으로 인식돼 왔다.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향상은 ‘비용증가’로 가능한 억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결국 돌봄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고용이 불안정하다못해 생계조차 불안정했다. 돌봄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에 각종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면서 돌봄서비스의 질은 높아지지 못했다.

이주희 변호사는 “돌봄노동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높아졌으나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모순적 상황에 있다”면서 “사회적이고 공식적인 돌봄노동을 무급의 비공식 돌봄노동의 연장선에서 평가절하한 결과는 저임금 일자리 양산이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노동관계법은 노동자를 여러 측면에서 보호한다. 하지만 중요한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요양보호사나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오랜기간 동안 소송을 통해 법원 판결을 받고 나서야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아이돌보미는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을 잡았다.

앞으로 새로운 돌봄 직종이 생겨날 경우, 또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비슷한 과정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 때문에 돌봄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분명히 하고 특수성을 반영해 보호할 수 있는 돌봄노동자와 관련된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주희 변호사는 “사업주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작업장을 통제하던 시대에 제정된 기존 노동법은 돌봄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영역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돌봄노동자를 보호할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돌봄노동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돌봄정책기본법,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 10만 국민동의청원'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1.11.25ⓒ뉴스1

그렇다면, 돌봄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담아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

우선 적정임금을 정할 필요가 있다. 여태껏 돌봄노동은 ‘가정에서 여성이 하던 일’로 치부되면서 ‘돈을 줘야 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돌봄노동에 대해 가치를 매겨본 적이 없다. 돌봄노동이 사회로 나온 이상, 전문성이 없고 숙련도가 필요 없는 저임금이 맞는지, 그게 아니면 적절한 임금이 얼마인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직무가치 평가를 통해 임금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돌봄노동자들은 고용계약에 최소기준이 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요구한다. 앞선 기사에서 볼 수 있듯 방문 돌봄노동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최소노동시간 보장’이다. 4대보험에 가입하고 주휴수당을 받고 연차를 쓸 수 있도록 적어도 주당 15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업종별로 고용계약의 기준을 제시해 ‘인건비 착복’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돌봄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돌봄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문제는 교섭상대가 되는 ‘사용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돌봄관련 노동조합들은 재원도 정부에서 나오고, 업무 가이드라인도 정부에서 제시되는 만큼 정부가 ‘진짜 고용주’라면서 사용자로 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노정교섭’을 법제화 하자고 주장한다.

신의철 변호사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돌봄시설을 공공이 운영하고 돌봄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형식적 사용자와 실질적 사용자를 일치시키는 것이겠지만, 그 전에는 민간위탁 상태에 있는 노동자들도 실질적 사용자인 국가와 단체교섭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기도본부장이었던 시절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시작한 노정교섭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입법센터는 여러 업종의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합들과 함께 돌봄정책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안을 만들었다. 아직 이 법안은 국회에 올라가있지 못하다.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발의를 자처한 의원도 없다. 노조들은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이 법안을 국회에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김기완 진보당 노동자당 대표는 “올해 초부터 이 노조들과 함께 정례협의회를 열고 제도개선 방향을 논의해 왔다”면서 “이제 입법안을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돌봄노동자들이 직접 돌봄정책의 방향과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을 만든 만큼, 직접 입법활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공공연대노조와 진보당 등은 11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12월부터 국민청원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돌봄정책기본법 제정안 바로가기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안 바로가기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아프면 쉬세요’ 캠페인이 진행됐지만 현행 법에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보장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급병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자리를 그만 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 가정의 수입이 줄자, 물류센터로 투잡을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심야노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물류센터는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펜데믹은 또 돌봄과 돌봄노동자를 둘러싼 불평등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①병가제도와 상병수당: 아프면 쉬어라? 아프면 쉬어라? 한국인만 아파도 출근한다
②정리해고자 재고용권:  ‘정리해고자’ 성기훈은 456억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었다
③야간노동 제한: 새벽배송 경쟁시대, 야간노동 ‘헬게이트’ 열고 있다
④돌봄국가책임제와 돌봄노동
  ④-1 이용자도 돌봄노동자도 우울한 돌봄 현장
  ④-2 요양시설 3년 운영하면 건물이 뚝딱 생긴다?
  ④-3 돌봄노동자의 현실 1:최저임금마저도 빼앗기는 돌봄노동자
  ④-4 돌봄노동자의 현실 2:휴게시간 보장으로 임금을 빼앗았다
  ④-5 돌봄노동자의 현실 3:폭력에 노출돼 있는 위험한 현장
  ④-6 돌봄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이 필요하다
⑤노동자성과 사용자의 확대, 새로운 교섭의 시대로

※ 이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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