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농지에 편법으로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는 현실을 정부에서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현장 상황은 심각하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재생에너지 클라우드플랫폼' 자료를 보면 지난달 말 현재 전국에는 11만120개의 태양광발전소가 있다. 전북과 전남이 각각 2만5222개와 1만 6548개로 가장 많고, 충남에는 1만5054개가 있다. 태양광 시설의 약 52%가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인 전남·전북과 충남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 사업의 수익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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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태양광발전소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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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발전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직접 파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태양광 발전 사업자로부터 이른바 '계통한계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을 기준으로 전력을 구매한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SMP의 평균가격은 킬로와트(kw) 당 142.81원이다. 두 번째는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했다는 인증서, 즉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 Renewable Energy Certificate)를 파는 방법이 있다.
이처럼 태양광 사업자는 SMP에 따라 전기를 팔거나 REC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약 215제곱미터(㎡, 65평)의 건축물 지붕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면 일조량이 연중 가장 적은 12월에도 수익이 월 150만원 이상이다.
정부는 건물 위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하는 경우 REC 가중치를 1.5배 더 준다. 건물 태양광의 REC에 가중치를 주는 이유는 축사나 공장 등 기존 건축물의 지붕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별도의 토지에 태양광 시설을 짓지 않고 기존 건축물 지붕을 이용함으로써 국토 훼손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는 시장에서 왜곡되고 있다. 건물 위 태양광 발전사업자는 곳곳의 농지와 산지에 태양광을 목적으로 한 건축물을 새로 지어 수익을 얻고 있다. 14개 시군에서 건물 태양광 발전을 하는 곳이 4537개인 전북의 경우를 보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해에 준공된 태양광발전소의 현황을 검토한 결과, 태양광 사업 개시일과 건축물 사용승인일의 간격이 3개월 이내인 경우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을 신축한 뒤에 곧바로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다는 말이다. 기존 건축물 지붕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게 하려는 정부 의도와 다르게 사실상 태양광 발전을 목적으로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업진흥구역인 논을 뒤덮은 검정색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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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으로 촬영한 충남 아산시 선장면의 드넓은 들판. 곳곳에 이른바 ‘건물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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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찾은 충남 아산시 선장면은 1970년대 삽교호 완공 후 대규모 경지정리 작업이 이뤄졌다. 선장면과 도고면의 드넓은 들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간척지이자 우량농지였다. 가을이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곳이다. 하지만 드론을 이용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곳곳에 검은색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 나화만(77)씨는 태어나서 평생 농사만 지어온 농사꾼이다. 그는 "나이 들고 농사도 힘들어지는데 객지에서 사람이 와서 평당 7만~8만원인 논을 10만원씩 준다고 하니까 농사꾼들이 땅을 팔아버려"라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논에 태양광 하는 걸 우리도 반대했는데 아산시 공무원들이 문제가 없으니 허가를 내주는 거 아니겠어"라고 반문했다.
이 지역에 땅을 산 업자는 굼벵이를 키운다며 조립식 가건물을 짓고 동시에 태양광 발전 시설도 설치했다. 업자들이 굼벵이를 키우거나 양봉을 한다며 건물을 신축하지만 실제로는 태양광 발전만 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주민 이강학(83)씨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가리키며 "저기 멀리 보이는 건물은 주민들이 현수막도 붙이고 반대를 심하게 했는데 법적으로 어쩔 수 없더라고. 기자 양반이 농민들 좀 살게 해줘봐"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민들은 곳곳에 이런 시설이 들어서면 농업용 드론으로 병해충 항공방제를 하는 것도 방해받고, 농번기에는 밤낮없이 농지를 돌봐야 하는데 어두울 때 가로등도 없는 음산한 태양광 발전시설을 지나가기가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태양광 발전 최적의 부지가 된 바둑판 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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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이 얘기하는 실제 굼벵이를 키우던 비닐하우스. 주민 이강학씨는 "저기 보이는 검정색 하우스가 진짜 굼벵이 농사를 짓던 곳인데 예전에 굼벵이 시세가 좋을 때 했다가 지금은 안 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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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아산시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목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의심되는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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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경지정리로 바둑판처럼 반듯한 들판에는 햇볕이 잘 들고, 농기계의 진입이 수월하도록 농로가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업자들이 태양광 발전시설을 만들기에는 최상의 조건이다. 농사를 짓던 주민들 대부분 나이가 많아, 팔 걷고 반대에 나서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다 보니 황금들판 곳곳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위한 편법적인 건축물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들판에 지어진 이런 건축물 주변에는 공통적으로 연두색 철제 담장이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고 주인이 언제 다녀갔는지 확인하지 않은 우편물이 꽂혀 있다.
아산시 선장면 일대에서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된 건축물들의 용도는 대부분 곤충사육사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니 주민들이 말하는 것처럼 곤충을 사육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업자들은 국민 세금으로 경지정리를 해서 도로개설 등 기반시설이 갖춰진 농지에 편법으로 건물을 신축해, 정부 장려금 취득 등 이득을 취하고 있다.
이들 업자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선장면 일대의 건물 위 태양광발전소의 토지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살펴보니, 아산시에서 굼벵이사육사로 건축물 허가를 받아서 실제로는 태양광 발전시설만을 운영하는 한 사업주는 충북 옥천군에서도 대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하고 있었다. 옥천군에서는 최초 곤충사육사로 허가를 받고 건축물을 지은 뒤에 지난해 6월에는 버섯재배사로 용도를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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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충북 농지에 곤충사육사 용도로 건축 허가를 받은 건물 지붕에 태양광발전소를 운영 중인 법인의 등기부등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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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충북 농지에 곤충사육사 용도로 건축 허가를 받은 건물 지붕에 태양광발전소를 운영 중인 법인의 건축물대장. 건축물 신축 6개월 후 법인을 설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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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교묘히 움직이는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을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충남 아산시 관계자는 "농업진흥구역 내 곤충사육시설은 농지전용허가를 받지 않고 건축물 신축이 가능하다"라며 "정부에서 태양광 발전시설을 적극 권장하고 있어 당분간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설물 점검을 위해 현장을 방문하면 곤충사육사에 곤충은 없지만 시설물은 있기 때문에 단속하기가 어렵다는 게 관계 당국의 이야기다.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은 이러한 허점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중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유가 폭등 사태 등 에너지 수급 불안을 감안하면 그 중요성은 더 커진다. 하지만 태양광이 친환경 에너지원이라고 해서 농지를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발전시설의 확장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게 지역 농민들의 생각이다.
특히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 식량 자급률은 각각 20.2%, 45.8%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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