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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리·월성 16개 원전 설계 때 ‘지진 우려 단층’ 고려 안했다

등록 :2023-03-02 05:00

수정 :2023-03-02 09:42

김정수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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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단층조사서 ‘설계고려단층’ 5개 확인

행안부, 발표 미루다 산하기관 누리집에 공개

야 “원전확대정책 파장 우려 어물쩍 공개 의심”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단층(설계고려단층) 5개가 부산·울산의 고리원전과 경북 경주의 월성원전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정부 용역 단층조사를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이들 활성단층은 과거 원전 건설을 위한 지질 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원전 설계 때 고려되지 않았다. 월성과 고리에는 원전 14기가 건설돼 있고, 현재 2기가 건설 중이어서 내진 안전성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6년 9월 경주 지역에서 잇따른 지진으로 안전점검을 받은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력발전소. 최근 발표된 2017~2021년 행안부의 단층조사 결과 월성원전과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전 원전 설계에 고려되지 않은 5개의 ‘설계고려단층’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고리·월성원전 인근에 ‘설계 때 고려해야 하는 설계고려단층이 5개가 있다’는 설명자료를 제출했다. 원자력 이용에 따른 안전관리에 필요한 대책 등을 마련하는 조직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시를 통해 50만년 이내에 2차례 이상 또는 3만5천년 이내에 1차례 이상 움직인 단층을 ‘활동성 단층’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원전 반경 32㎞ 안에 위치하면서 길이가 1.6㎞를 넘거나 반경 80㎞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8㎞ 이상인 경우 ‘설계고려단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설계고려단층을 따로 분류한 것은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으니, 특히 이를 고려해서 원전 내진 설계 등을 하라는 취지다.

고리·월성원전 주변에 설계고려단층이 있다는 사실은 애초 행정안전부 연구용역을 통해서 밝혀졌다. 행안부는 지난 1월 소속 기관인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누리집에 ‘한반도 단층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최종 보고서를 올렸다. 2017년부터 5년 동안 이뤄진 연구용역의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동남권(경남·북, 부산, 울산)에서 14개의 ‘활성단층 분절’이 확인됐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활성단층은 지질학적으로 최근인 신생대 제4기(258만년 전 이후)에 지진으로 지표가 파열돼 가까운 미래에 다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다. 분절은 활성단층의 일부 구간을 말한다. 이들 14개 활성단층 분절 가운데 5개가 원전 반경 32㎞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1.6㎞ 넘는 설계고려단층인 것이다.

이 5개는 울산 삼남읍 상천·방기·신화리의 삼남분절(2.0~10.5㎞), 경주 암곡동 왕산분절(2.1~5.9㎞), 울산 북구 창평동 차일분절(2.8~4.2㎞), 경주 외동읍 말방·활성리 말방분절(3.5~4.3㎞), 경주 천군동 천군분절(2.0~4.0㎞)이다.

고민정 의원실과 <한겨레>가 이들 5개 활성단층 분절의 좌표를 구글 지도에 입력해보니, 이 가운데 원전과 가장 가까운 단층은 차일분절로 월성원전까지 불과 12㎞ 거리에 있었다. 천군·왕산·말방분절은 월성원전 반경 13~21㎞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남분절은 고리원전 반경 26㎞ 안에 위치했다.

문제는 강진이 발생할 수 있는 단층이 원전 근처에 있지만, 지난 40여년간 고리와 월성에 들어선 원전 14기는 물론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설계에도 설계고려단층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수원이 고민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원전 설계에 고려된 단층은 5개 단층과 별개인 경주시 양남면의 읍천단층 하나 뿐이다. 읍천 단층은 행안부 단층조사 결과 길이가 1.5㎞에 불과해 원안위 기준에 따른 설계고려단층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은 안전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행안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안전성 평가를 수행 중”이라면서도 “국내 원전은 밝혀지지 않은 단층으로 인한 최대 잠재지진까지 고려해 충분한 내진 여유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리·월성의 원전 16기 가운데 활성단층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규모 6.5 이상 지진의 내진 설계가 적용된 것은 신고리 3~6호기 4기뿐이다. 행안부 단층조사에 부산대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손문 교수(지질환경과학과)는 활성단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에 대해 “평가할 때 여러가지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마다 조금 달라도 최대 7 정도까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홍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고리·월성원전 대부분이 노후 원전으로 접어들고 있어 활성단층 발견이 더욱 우려스럽다”며 “각계 전문가들이 붙어서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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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은 과거 원전 부지 조사에서 설계고려단층을 찾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단층조사 기술과 경험 부족으로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과거 한수원의 원전부지 조사와 최근의 행안부 단층조사에 모두 참여한 전문가는 조사기술 부족보다 조사 의지 부족을 근본적 이유로 꼽았다. 이 전문가는 “과거 조사는 우리가 열심히 찾으려고 해도 한수원 쪽에서 진짜 위험한 게 안 나오기를 바라며 했고, 이번 행안부 조사는 목적이 찾는 거여서 꼭 찾아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한수원 원전 부지조사 때 투입된 인원이 20명 수준이라면 이번 단층조사에 투입된 인원은 100여명 수준”이라며 “지금 인원만큼 투입했으면 (설계고려단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해바라기 대표변호사는 “원전은 지을 때마다 새로 지진지질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조사했다면 과거엔 몰랐더라도 최소한 신고리 3~6호기 지을 때는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찾아내 위험을 평가하면 원전을 짓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원전 설계고려단층을 포함한 14개 활성단층이 확인된 것을 계기로 원전뿐만 아니라, 학교, 아파트 등 모든 건축물과 교량, 터널, 송유관 등의 구조물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각 관계기관에 통보해 기존 시설물에 대해 내진 보강 여부를 확인하고 장기적으로는 내진 설계 보완 검토를 하도록 했다”며 “올해 수립할 제3차 지진방재종합계획에도 보완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진은 원전에 가장 위협적인 자연재해라는 점에서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정부 태도를 두고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행안부는 지난해 1월 단층조사 결과 최종보고서를 제출받고도 발표를 미루다 올해 1월 소속 기관 누리집에 올리는 형식으로 공개했다. 고민정 의원은 “정부가 150억원에 달하는 혈세를 투입해 활성단층을 대거 찾아내고도 흔한 보도자료 한 장 내지 않은 것은 원전확대정책에 끼칠 영향을 우려한 조처였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활성단층이 원전 뿐 아니라 원전 부지의 고준위 방폐물 저장에 끼칠 영향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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