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로 미국경제에서 특수한 안정적 고용국면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은 미국 경기침체에 들어가는가 아닌가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인데, 계속 고용에 대한 수요가 높아 경기침체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KB금융지주연구소 리포트는 2023년도 미국 고용율이 60.4%로 2019년 말 61.1%보다 낮은 상태로 노동력 부족상태를 보여준다고 지적하였다. 실업율도 3.5% 수준이라는 것은 그만큼 구직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침체를 예상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용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은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상 미스매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펜데믹 이후 고용시장에 복귀하지 않거나 베이붐 세대의 조기 퇴직, 이민자에 대한 제한정책과 펜데믹 이후 유입축소 등 다양한 이유로 서비스 분야에서 노동력 부족현상이 길어지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노동력 부족현상과 맞물려 2021년과 2022년 시간당 임금이 전년동월대비 5~6% 정도 상승하고, 2023년 7월에도 작년 동월대비 4.4% 상승하다 보니, 초과가계저축이 조기에 소진되지 않고 소비여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셋째는 에너지 수출이 증가한 덕분이다.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유가상승과 유럽 가스 부족으로 미국의 에너지 수출이 늘어나 미국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 수출은 2021년 총수출 15.2% 중 3.0%, 2022년 12.0% 중 4.3%나 차지했다. 이중 미국의 대유럽연합 에너지 수출비중은 2021년 15.4%에서 2022년 16.9%, 2023년 1~5월 18.6%로 크게 증가하였다. 2022년 미국의 대유렵연합 수출은 작년대비 29.1%나 늘어났다. 미국은 러·우전쟁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넷째 미국이 정부지출을 늘린 덕분이다.
미국은 ‘인프라 투자법, 반도체 및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시행하면서 재정지출을 늘려 실질GDP 성장을 뒷받침하였다. 2022년 3분기부터 2023년 2분기까지 실질GDP 성장률은 1.5%를 기록했는데, 이중 정부지출은 0.65%를 차지했다.
미 연착륙의 본질은 돈풀기와 동맹수탈
결국 현재 미국경제가 경기침체 없이 좋은 이유는 돈을 많이 풀었기 때문이다. 미국경제 시스템상 무슨 혁신이 발생해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전적으로 달러의 기축통화효과에 따른 돈풀기가 주요인이다. 2008년 금융공황 이후 6년간 진행된 3차례의 양적완화와 이번 펜데믹 이후의 양적완화의 차이점은 2조 달러 이상을 가계에 직접 지원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가계소비의 원천이다.
결국 미국이 부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저금리 시절 돈을 많이 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고, 강달러 현상을 만들면서 인플레이션을 외국에 수출하였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들은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라는 3중고를 겪어야 했다.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으로 미국경제가 연착륙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고금리 상태를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나라는 그만큼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는 나라들은 외환위기나 경기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다시 말해 미국의 연착륙이 다른 나라의 경착륙의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정부지출을 늘리고 있는 것 역시 보조금을 준다는 미명아래 해외자본을 미국으로 집중시키는 동맹수탈전략의 일환이다. 사실 미국의 정부지출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외국 경제가 져야 한다. 러·우전쟁을 빌미로 유럽연합 등에 에너지 수출을 늘려온 것 역시 미국의 동맹수탈 정책의 연장이다.
미국이 골디락스 운운하며 나홀로 연착륙하고, 경기침체는 없다고 자랑하는 것은 그만큼 달러를 많이 풀고, 다른 나라에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을 유발함과 동시에 해외자본을 미국으로 빨아들이면서 에너지 수출까지 늘려나가며 세계경제를 약탈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은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나
그렇다면 미국은 경착륙을 피할 수 있을까. 이 점과 관련해서는 미국 내에서조차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미국경제는 연착륙 궤도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경기침체가 지연되고 있는 것뿐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나오고 있다. 그 증거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이 바닥나고 있다.
지난 9월 6일 발표된 국제금융센터 보고서는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이 소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 직원들은 6월에 미국의 초과저축이 올 1분기 이미 고갈된 것으로 추정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올 3분기 전면 고갈 가능성을 제기했다. 잔여 초과저축액이 1900억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연준과 달리 아직 상당한 초과저축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으나 길어야 내년 초까지다.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은 내년 1분기 정도에 초과저축이 소진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어찌되었든 현재 미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동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음으로 물가는 쉽게 잡히지 않는 가운데 고금리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2024년에도 미국 소비자 물가는 2%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에서 유지될 전망이다. 근원소비자 물가는 여전히 4%를 유지하며 높은 편이고, 석유가격나 농산물 가격 등은 언제든지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최근 UAW(전미자동차노조)파업에서 보여지듯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도 강력하고 미국 정부 지출에 의한 투자정책은 전체적으로 비용상승 압력을 높여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는 현상이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경제가 연착륙한다는 것은 물가가 잡히고 금리가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히려 금리는 한 두 차례 더 올릴 가능성이 높고, 동결하더라도 5%대의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즉 금리하락 국면이 당장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로금리, 저물가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고금리, 고물가 스트레스가 상당기간 유지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연착륙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또한 미국 국채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8월 연착륙 환호성 속에서도 피치 등 신용평가 기관들은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하였다. 미 정부 부채한도가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미국 부채상한선이 31조4천억 달러(약 4경1천699조원)를 넘어선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부채상한선 협상의 결과로 바이든 정부는 미 국채를 1조 달러 이상을 추가발행할 계획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 국채를 사주는 데가 없다. 이로 인해 미국채가격이 폭락하고 달러위기가 심화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하락세가 심화되어 관련 은행 부실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4.5달러 규모로 이중 1.1조 달러가 2024년까지 만기가 도래한다. 상업용 부동산대출은 은행대출자산이 24%를 차지하고 있는데, 중소형은행이 70%가 넘는다. 상반기 실리콘밸리은행이나 퍼브릭 리퍼브릭 은행발 미국 금융위기는 간신히 넘겼으나 그 바탕에는 미 국채가격 하락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래저래 미 국채위기가 내적 암초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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