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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촛불] 공부하던 공책을 선전물로···촛불문화제 ‘교따’ 청년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5/03/13 [10:21]

   

© 김영란 기자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그날부터 촛불집회에는 청년 세대가 대거 참여했다.

 

청년들은 자신만의 주장을 담은 선전물을 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나와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런 청년 중 촛불국민들이 “교따”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 “교따”는 “교도소는 따뜻하니”의 준말이다.

 

공책에 “교도소는 따뜻하니” 등 재치 있는 문구를 적어와 촛불문화제를 밝혔던 청년이다. 촛불문화제 피켓 자랑 순서에 자주 소개됐다.

 

‘교따’ 청년과 대담을 나눴다.

 

1.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지난해 12월 3일부터 국회 앞에서, 관저 앞에서, 안국동에서 계속 “교도소는 따뜻하니”라는 선전물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유윤재입니다. 제대했고 올해 복학을 한 27살 청년입니다.

 

2. 윤석열이 계엄 선포했을 때 어떤 마음으로 국회로 왔나요?

 

그날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가 갑자기 ‘계엄’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뭔 소리야, 거짓말하지 마”라고 했는데···진짜로 계엄을 선포했더라고요. 21세기에 계엄이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뉴스 보고 바로 그냥 옷 대충 챙겨 입고 택시를 타서 “빨리 국회로 가 주세요. 지금 당장요. 최대한 빨리요”라고 말했어요. 국회에 도착하니까 군인들이 어느 정도 와 있더라고요. 진짜 ‘국회가 뚫리면 안 된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국회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죠. 계엄이 해제되고 아침에 집으로 갔어요.

 

3. 뉴스를 보자마자 국회로 바로 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친가 쪽의 고향이 전라남도이고 친척 중에서 5.18 당시 전남대에 다니거나 졸업한 분들이 있어요. 주변에서 5.18을 몸으로 겪으셨던 분들이 있어서 이야기를 자주 들었죠. 그래서 5.18과 같은 상황이 더 생기면 진짜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나왔던 것 같아요.

 

4. 계엄이 선포되기 전에 윤석열 탄핵 촛불대행진을 알고 있었나요?

 

(계엄 이후) 집회에 나오면서 알게 됐어요. 계엄이 선포되기 전까지는 그냥 평범하게 살았죠. 그런데 이것(계엄)은 한국 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나온 청년들이 되게 많았어요.

 

5. 계엄이 해제됐으니 촛불문화제에 더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계속 나온 이유는요?

 

계엄이라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계엄이 해제돼도 또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거니까.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탄핵과 파면을 하는 게 먼저다 싶어서 공부도 뒤로 하고 계속 나왔죠.

 

6. 공책에 구호를 적어 나오는 이유와 가장 먼저 만든 문구는 뭐예요?

 

많은 분이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응원봉을 들고나왔잖아요. 응원봉이 없으니까 나한테 가장 소중한 게 뭘까 생각해 봤어요. 대학생이니까, 공부하고 있으니까 갖고 있던 공책에 뭐라도 써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 쓴 문구는 “교도소는 띠뜻하대”였어요. 빨리 탄핵되고 파면되고 감옥에 가라는 의미였죠.

 

7. “교도소는 따뜻하대”에서 “교도소는 따뜻하니”로 바꾸고 다양한 문구를 썼어요. 대표적인 것을 소개해 주세요. (어느덧 공책은 4권이다.)

 

윤석열이 탄핵되거나 체포됐을 때는 “수고하셨습니다”를 썼고요. 1차 탄핵소추안이 무효로 됐을 때 “국민의짐 곧 무너짐”이라고 써서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갔어요. 여의도에서 집회 중 구호가 “사형하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이 워낙 많으니 “사형하라”가 “사요나라”로 들려서 “사형하라. 사요나라”라고 쓰기도 했고요. 윤석열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하는 날은 “교도소는 따뜻하잖아. 나오지 마. 들어가”라고 썼지요. 그 외에도 미국의 내정간섭에 대한 문구도 썼고요.

 

© 김영란 기자

 

8. 촛불문화제 피켓 자랑에서 많이 소개되는데 기분이 어때요. 그리고 문구는 어떻게 준비해요?

 

솔직히 좋아요. 다들 좋아해 주니까요. 집에 가서 촛불문화제 영상 올라오면 한두 번 돌려보기도 해요. (웃음)

 

뉴스를 보고서 (윤석열 측이) 하도 어이가 없는 말을 하면 영감이 떠올라요. 버스나 지하철에서 문구를 적어요. 때로는 집회 현장에서 문구를 적기도 하고요.

 

*대담을 마치고 열린송현녹지광장에 갔을 때 촛불시민이 팬이라며 유 씨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9. 극우세력이 대학교에서 ‘탄핵 찬성’ 집회나 기자회견을 했잖아요. 윤재 씨 학교에서도 있었고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각자가 탄핵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외부인들이 대학교로 몰려와서 소란을 피우는 건 너무 보기 좋지 않죠. 그래서 외부인들이 우리 대학교에 들어오는 것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했어요.

 

© 이호 작가

 

10. 젊은 세대도 가짜뉴스에 많이 현혹되는데 왜 그럴까요?

 

주변에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친구들도 있죠. 원인이 복잡할 것 같아요. ‘일간베스트’와 ‘디시 인사이드’라는 사이트가 있잖아요. 이명박 때 국정원 댓글 알바가 있었죠. 그때 그 사이트를 자주 보던 사람들이 당시에 10대였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쪽(극우세력)을 지지하게 된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청소년기 때부터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들만 듣다 보니까 반대쪽 의견은 다 거짓말, 헛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아요. 여기에 알고리즘이라는 게 있잖아요. 알고리즘이 한쪽으로 잡혀버리면 반대 내용이 아예 안 잡혀요. 그래서 생각이 한쪽으로 더 치우친 것 같기도 하고요.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은 애써 찾아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청년들의 삶이 빡빡하니까, 요즘은 취업도 어려우니까 굳이 정치에까지 신경을 안 쓰는 사람들도 꽤 있고요.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11. 윤석열이 파면되면 어떤 문구를 적을 건가요?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요. (웃음) 조금 더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12.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면서 느낀 점과 시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많은 분이 국회 앞에도 오셨고 관저 앞에서는 밤샘하면서 자리를 지킨 분들이 있잖아요. 저도 몇 번 밤샘했는데 시민분들을 보면서 “아, 그래도 민주주의가 죽으란 법은 없구나”라고 느꼈어요. 처음엔 그분들을 보면서 하루라도 더 나가야겠다 싶어서 나갔어요. 개강하면 집회에 자주 못 나올 텐데 ‘내가 없어도 다른 민주시민분들이 자리를 지켜주시겠구나, 든든하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매일 광장에 나오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되면 안국동, 광화문광장에 한 분, 한 분이라도 나오셨으면 해요.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 나오는 분들은 촛불시민들을 믿고 일상을 살았으면 합니다.

 

****

개강 이후 촛불집회에 자주 못 올 것 같다고 말한 유 씨는 지난 8일 윤석열의 구속이 취소되자 다시 선전물을 만들어 촛불집회에 나왔다. 그리고 윤석열 파면이 확정되는 날, 선전물을 만들어서 기자와 만나기로 했다. 유 씨가 적을 문구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 지난 11일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유윤재 씨. © 이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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