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던 사람들의 이름을 되찾는 일
전시의 마지막, 유리문을 열면 테라스로 이어지는 추모 공간이 펼쳐진다. 회색 벽돌 틈마다 박힌 사진과 이름. 김복동, 이용수, 박필연, 김학순… 그들 모두가 여전히 이 공간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 누군가는 뜨개질한 나비를 꽂아두었고, 누군가는 꽃 한 송이를 놓고 갔다. 천장 위로는 나비들이 조용히 매달려 날고 있다. 그들이 남긴 말들이 이 공간을 떠받치고 있다.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하루라도 떳떳이 살아보고 싶었어."
"전쟁의 피해자는 잊히는 이름이 아닙니다."
2층 전시실 안쪽, 조용히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의 추모 공간은 그 말을 온전히 되새기게 한다. 생전에 입었던 원피스, 마이크를 들고 연단에 선 모습, 그리고 평화를 향한 그림 한 장. 한쪽 거울 옆에는 관람자들이 직접 남길 수 있는 메시지 공간도 놓여 있었다. 이곳은 죽음을 기리는 공간이 아니다. 여전히 싸우고 있는 이들의 공간이다.
전시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 다시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전태일. 평화시장 거리에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분신했던 청년. 누구도 기억하지 않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가 먼저 쓰러졌던 순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역시 그 연장선에 서 있다. 말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외면 당했던 기억이 증언으로 살아나는 공간. 피해자들이 증인이 되었고, 이제는 우리 각자가 행동하는 기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전태일이 꿈꿨던 '변화의 출발점'과 닮아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수요일마다 이어지는 외침, 끝나지 않은 싸움, 살아 있는 증언. 우리는 여전히, 그 가장 긴 수요일 위를 걷고 있다.
생존자 단 6명, 사라지는 기억을 우리가 말해야 하는 이유
오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이 날은, 침묵을 깨고 용기로 맞선 모든 피해자들의 삶과 증언을 기리는 날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났다.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며 연대의 외침을 이어왔으며 지난 6일 기준 현재 수요시위는 1712회째를 맞았다. "끝나지 않은 전쟁", "가장 긴 수요일"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단 6명뿐이다. 모두 90세를 넘긴 고령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목소리는 사라질 수 있지만, 우리가 그 기억을 듣고 말하고, 기록한다면 역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기억은 우리의 의무이며, 실천은 연대이다. 이 가장 긴 수요일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의 기억과 행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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