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4월 초 발표 후 추가 관세가 4개월 유예됐고, 많은 수입업자들이 (관세협상 전)물건을 미리 물건을 사놓았기 때문에 아직은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6개월에서 1년 지나면 달라질 거예요. (물가가 오르면) 미국 시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리고 반도체나 조선 등 몇 개 산업 찍어서 다시 키우겠다는 건데, 이걸 재건하는 데 적어도 20년이 걸릴 겁니다. 그나마 지금 미국에게는 그런 장기 계획도 없어요.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 상법 개정하고도 연결되는데요.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해서 기업들을 살려주면 그 기업들이 재투자를 해서 생산성을 높여야 관세비용의 대가가 나오는 건데, 지금 미국 기업들은 보호해줘봤자 추가 이윤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보호의 결과로 이윤이 올라가면 그것의 90~95%를 배당하거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들한테 갖다 바치는 메커니즘입니다.
80~90년대 이후의 (미국 경제)모델은 주주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이 결합한 체제입니다. 미국 내의 많은 산업을 임금이 싼 나라로 이전하고 사람들을 잘랐어요. 이렇게 하다 보니 임금이 억제돼 오랜 기간 이윤을 많이 냈어요.그러나 그걸 재투자하지 않아요. 이윤을 최대화해 주주들한테 최대한 돌려주는 체제입니다. 지금 미국 회사들의 재무구조를 보면 순이익에서 배당을 45% 정도 하고, 또 순이익의 40~50%는 자사주 매입으로 씁니다. 그러니까 기업은 재투자할 돈이 없어요. 그러다 기업은 망하고....
보통 사람들이 그나마 버텨온 게, 첫째로 싼 소비재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이런 데서 들어오니까 임금은 안 올라도 생활 수준이 좀 오르고 그다음에 무엇보다도 주택담보대출, 소비자 대출 등을 통해 가계부채가 엄청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2008년 금융위기 원인 중 하나인데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버텼는데 이제 그것도 끝났고 더 많은 기업이 망하고 더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잃고 소위 긱 경제(gig economy)로 생존하고 있어요. 이런 가운데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지니까 트럼프가 "내가 노동자들의 편이다. 미국의 옛 영광을 되돌리겠다"고 나온 겁니다. 미국 민주당도 일부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지만 주류는 신자유주의 체제와 결탁한 사람들이에요. 금융 자본하고 밀착돼 있는 게 미국 민주당 주류입니다."
이창곤: "교수님 말씀은 관세협상으로 미국 제조업이 부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로 들리네요."
장하준: "저는 0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창곤: "이번 관세 협상을 놓고 국내 일부 언론이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는데, 성급한 것 같고요. 여전히 국제 경제의 불안정성 혹은 불확실성이 사라진 걸로 볼 수는 없는 상황인 듯합니다."
장하준: "사라진 게 아니죠. 예를 들어 한미 FTA같이 법적인 비준을 받고 또 상대방도 지킬 의향이 있는 경우라면 그에 사인을 했으니까 불확실성이 없어졌다는 게 말이 되지만, 트럼프는 무슨 말을 해도 그걸 지킬 생각이 없어요. 불확실성이 해소된 게 아니죠."
트럼프, 기울어가는 제국의 마지막 발악
이창곤: "지금의 국제 경제 질서를 뭐라고 규정해야 할지요, 향후 전망은?"
장하준: "다자화(다극화)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트럼프가 하고 있는 행동은 기울어가는 제국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봅니다. 1950년에 미국은 세계 제조업의 60%를 생산했습니다. 지금은 16%입니다. 4분의 1로 줄었어요. 반면 중국은 지금 30%에 이릅니다. 이런 식이라면 중국이 향후 50%에 이를 것으로 보여요. 이제 (미국은) 세계 경제를 중국, 유럽연합 등과 나누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번 관세협상을 계기로 많은 나라가 '미국 없는 세계 경제'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겁나서 생각도 못 하던 것을 많은 나라들이 생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실제로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생각만큼 중요치 않습니다.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25%를 생산할지 모르지만 워낙 닫힌 경제라서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1% 정도밖에 안 돼요. 그래서 세계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좀 다른데 10~12%거든요. 컴퓨터나 비행기, 반도체 등을 미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어요. 그때는 미국이 트럼프식으로 행동하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다른 나라한테 사라고 요구하는 게 천연가스나 쌀 같은 1차 산업 제품이에요.
지금 미국이 버틸 수 있는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옛날에 쌓아놓은 경제력으로 금융 패권을 잡고 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군사력이죠. 그런데 군사력은 경제력이 뒷받침 안 되면 유지하기가 힘들죠.
보세요. 중국한테 145% 관세 매기겠다 하다가 중국이 '그럼 우리 희토류 안 팔아' 하니까 바로 쑥 들어갔잖아요. 희토류 없으면 첨단 무기 만들기 힘듭니다. 조선산업의 경우, 제가 찾아보니까 미국이 1년에 군함을 다섯 내지 10척 만들고 민간 부분에서 5~10척 만드니 최대 20척 만들어요. 중국은 1년에 1800척을 만듭니다. 엄청난 차이죠.
배도 못 만드는 나라에서 어떻게 해군을 장기간 유지를 할 수 있겠어요. 미국 군사력의 중심은 해군이잖아요.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몰고 다니면서 전 세계를 순찰하는 게 미국 군사력의 핵심인데 그것도 제대로 안 되게 생겼다고요. 이렇게 군사 패권이 기울게 돼 있고, 금융 패권은 다른 분야보다는 오래 가겠지만 결국 달러 패권도 언젠가 넘어가게 되어 있다고요. 특히 지금 트럼프 정부에서 하는 것처럼 달러 가치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면 금융패권이 점점 약화되겠죠.
이제 미국은 점점 약화되는 길에 들어선 거고 중국이 부상 중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아직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르지만 많은 나라들이 이제 다른 길들을 모색하고 있는 겁니다. 개발 도상국들에서도 신경제질서 라면서 반서구 동맹이 나오고 있어요. (국제통상질서가)1~ 2년 안에 바뀐다는 건 아니지만 트럼프로 인해 촉매가 돼 빨리 진행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승일: "유럽연합(EU)이 지난 4월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 대해서 똑같이 관세를 때리며 보복하겠다고 하다가 그냥 꼬리를 내렸죠. 왜 그랬나요?"
장하준: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저마다 이익이 다르다 보니 유럽연합의 관세협상은 우리나라, 일본과 좀 달라요. 한국이나 일본 같이 미국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겠다, 이런 얘기 한 것은 아니에요. 천연가스는 어차피 어디서라도 사야 되니 미국에서 사자 이런 거죠. 천연가스의 경우 미국의 생산 시설 용량 자체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략 어느 정도 늘리겠다는 것이지 정확히 몇 년 동안 얼마를 사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정상회담, 돈은 낼 수 있지만 주권은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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