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마주 앉는다. 의제는 단순하지만 무겁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전으로 끝낼 것인지, 휴전 상태로 둘 것인지, 아니면 장기 대치로 끌고 갈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이 회담 구도에서 우크라이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2년 반 넘는 전쟁 동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가, 전쟁의 결말을 논하는 자리에 부재한 것이다. 이 장면은 이미 70여 년 전 판문점에서 대한민국이 겪었던 일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그러나 이 부재는 단순한 구조의 산물만은 아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초기부터 '영토 완전 수복'과 '군사적 승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국내 결속과 사기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휴전이나 중재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와의 직접 대화를 추진하려는 시점에도, 그는 강경한 전쟁 지속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서방 각국에서는 전쟁 피로감과 지원 축소론이 고개를 들었다.
2024년 하반기부터, 러시아는 점령지 방어를 강화하며 전선 안정화를 꾀했고, 서방 내부에서는 '현실적 종전안' 논의가 시작됐다. 이 흐름 속에서 젤렌스키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쟁 초기의 강경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며 외교적 입지를 좁히는 족쇄가 되었고, 결국 미·러가 단독으로 종전 구조를 설계하는 구도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식적인 초대 거부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비공식 배제'가 굳어지고 있다.
젤렌스키의 경우, 이승만처럼 동맹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돌출 행동으로 배제를 자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맞춘 전략 수정과 메시지 전환을 미룬 결과, 구조적 불리함이 고착화됐다. 이는 '자초한 배제'라기보다 '적응 실패로 굳어진 배제'에 가깝다. 결국 두 사례는 같은 형식 속에서 다른 본질을 보여준다. 한쪽은 스스로 문을 닫았고, 다른 한쪽은 문이 닫히는 동안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다는 차이다.
1945년 얄타와 포츠담, 1953년 판문점, 그리고 2025년 알래스카. 시공간은 달라도, 강대국이 설계하고 약소국이 밖에서 지켜보는 장면은 변함이 없다. 결정문 속 문장은 길고 세밀하지만, 그 문장을 쓰는 손은 언제나 힘 있는 쪽에 있다. 당사국이 없는 회담장은 종종 전쟁터보다 냉혹하다.
이 장면은 단순히 국제정치의 구조 탓만은 아니다. 구조는 강대국에 유리하게 짜여 있지만, 그 틈새에서 발언권을 확보할 전략과 외교력은 결국 지도자의 몫이다. 이승만이 자리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나, 젤렌스키가 문이 닫히는 동안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 모두, 각자의 시대에서 배제를 굳히는 선택이었다.
강대국이 마련한 테이블에 초대받기를 기다리는 전략은 언제나 위험하다. 초대장은 필요할 때만 발부되고, 필요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폐기된다. 발언권을 잃은 자리에서의 침묵은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결정이 내려지는 동안 바꿀 수 없는 운명을 지켜보는 무력감이다.
역사는 종종 같은 장면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달라지는 것은 대사의 언어와,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뿐이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안에서 줄을 긋고, 누군가는 밖에서 그 줄을 바라본다. 펜을 쥔 적 없는 나라는, 결국 남이 그어놓은 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외교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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