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가 21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604/216311_115469_036.jpg)
1986년 4월 28일 오전 9시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반전! 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산화해 간 김세진·이재호 열사의 투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울대 83학번으로 23살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전방입소교육 대상자이자 이를 거부하는 대열에 나섰다가 온몸이 불덩이가 된 선배들을 지켜보며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던 수백명의 85학번들이 있었다.
40년이 지나 그때의 85학번들은 환갑이 되었고, 김세진·이재호 열사는 23살의 영원한 청년, 사월의 불꽃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하고, 또 변하지 않았다.
'김세진·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가 21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영원한 청년 김세진, 이재호가 시대에 묻다!'라는 학술토론회 주제는 40년 전 그날 '급진적'이고 '예각적'으로 폭발시킨 '반미·자주'의 지향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곰곰히 되새기게 하는 화두였다.
학술토론회에 앞서 '김세진, 이재호를 기억하는 서울대 85학번'들은 이날 △이스라엘의 침략행위와 미국의 폭주를 규탄한다 △우리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한국군 파병에 반대한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는 학살에 눈감지 않고 전쟁반대, 평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반전반핵 전방입소 거부투쟁 40주년 서울대 85학번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앞으로 서명자를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그날의 투쟁은 파쇼정권의 군사훈련 강요를 거부하고, 80년 5월 광주 민주시민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맞선 외침이었다. 또한 그 진압을 묵인한 미군의 존재와 한국 주둔에 대한 공개적 문제제기였다"라고 짚고는 "민족대결, 전쟁연습, 군사훈련을 반대하며 온몸을 던졌던 그들이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들은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침묵하고 있는가?"라고 김세진·이재호 열사와 함께 한 '반미 자주'를 소환했다.
발표자들과 토론자 모두 뜨겁고 진지하게, 정성을 다해 자리에 임했다.
학술토론회는 변학문 평화너머 정책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반미·자주 투쟁 40년의 회고와 평가)와 △장창준 한신대학교 한반도평화학술원 특임교수(향후 자주 평화운동의 방향과 과제), △박아름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자주평화운동의 저변 확대와 다각화 : 기후위기, 청년운동 등)가 주제 발표를 하고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김세진, 이재호 열사 40주년과 사회경제 분야 실천), △최은아 자주통일평화연대 사무처장(김세진, 이재호 열사 40주년, 자주평화운동의 과제), △전지예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공동대표(청년들은 새 질서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정단우 서울대학교 사회대 학생회장이 지정토론자로 나섰다.(이하 직함, 호칭 생략)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주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604/216311_115470_19.jpg)
이남주는 명확하게 반미 자주 지향을 드러낸 4.28투쟁 다음 날(4.29) 함석헌·이민우·문익환·계훈제·백기완·이돈명·김대중이 연명한 한국민주화를 위한 연락위원회 명의의 성명에서 '반미'라는 표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는 "이 투쟁이 추구한 자주권의 확보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였으나 투쟁주체들의 의도와는 달리 당시 사회적 수용성과의 격차는 컸고, 이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인들이나 전체 민주화투쟁에서 중심적으로 역할을 했던 분들은 정면으로 다루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미국이 하나의 이데올로기 혹은 신화로 작용해 왔고 권위주의와 민주화 세력의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던 1987년 시점에서 이에 대한 이성적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을 돌파하지 못하고서는 한국의 자주권 문제에 대한 논의도 진전될 수 없었다"고 짚었다.
4.28투쟁을 거치면서 미국 문제에 대한 논의 공간이 넓어지고 한미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반미자주'의 의제화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세계화 기획과 함께 진행된 미국의 패권이 강화되고 한국이 이의 주요 수혜자가 되면서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한국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고 △민주화 과정에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경향이 강화되면서 국가단위 기획이 될 수 밖에 없는 자주권 의제를 낡은 의제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주권을 의제화하기 위한 동력은 약화되었다"고 하면서 "이와 관련한 활동은 주로 개별적 사안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최근까지도 한국사회의 대전환 기획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흐름은 이른바 '진보정부'시기에도 큰 차이가 없었는데, 작전지휘권 반환 등의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사적으로는 진보정부도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이남주는 이를 '반미자주 의제의 주변화'라고 표현했다.
아무튼 한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자주의 문제는 주요 의제로 제기해야 하는 당위도 있고, 40년전 반미 자주투쟁이 직면했던 곤경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필요성과 절박성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폭넓은 논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제는 충격요법에 의존하기보다 이러한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절대적 자주는 실현할 수도 없고 목표가 될 수도 없으니, 한미관계를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전환시키고 평화·안보·외교 영역에서 자주적 힘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자고 제안했다.
'작전지휘권 반환'이 그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작전지휘권 반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외교나 내정 전반에서 한국의 자주적 역할을 높일 수 있고 한미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촉진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궁극적으로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한 미국과의 관계 조정이나 한국의 국방·외교 자주권 강화와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격차는 계속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관계와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북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쉽게 철회되지도 않겠지만, "한국이 남북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약화시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한다면 국가관계로서의 안정성을 확보해 가면서 남북관계를 더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했다.
자주와 남북관계 전환이 진짜 문제로 등장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 시점이니 추상적이고 원칙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국방·외교에서 자주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에 앞서는 전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자주와 평화'의 선순환을 만들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욱식은 토론문에서 "핵심은 '분단체제 극복의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친미 한국'과 '반미 조선' 구도의 분단체제가 적대적 관계의 중심축이라는 관점에서는 '조선 대 미국'에서 '조선 대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이 지점에 역설적인 기회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분단체제는 네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최악은 냉전시대 존재했던 '통일지향적인 적대 관계' △최선은 매우 짧았고 당분간 복원 불가능한 '통일지향적인 우호관계' △북이 주장하고 한국이 거부하는 '적대적 두 국가'는 차악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관계지만 '평화적 두 국가'는 차선이다.
"이제는 차선을 도모할 때"라는 것이 요지이다.
정욱식은 세계적 범위에서 미국 패권이 약해지고 다극화 추구가 일어나고 있지만,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패권의 변질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라고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한 나라들"을 향한 미국의 난폭함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 지를 자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평화공존을 목표로 제시하는 정책방향이 북(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막혀 있는 가운데 군사력 강화를 동반하는 자주국방론을 표방하는 것은 "남북(한조)관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주적 역량을 저해할 소지마저 있다"고 우려했다.
평화공존은 상호 군비경쟁을 완화하고 군비통제의 토대를 닦을 때 접근할 수 있는데, 이와 긴밀하게 연계되지 않는 자주국방론은 북의 '핵무력·재래식무력 병진'과 맞물려 군비경쟁 가속화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최은아는 이남주의 4.28투쟁에 대한 평가에 대해 "당시 재야운동의 대표적 인사들조차 '급진적인 구호'로 치부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986년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에서 본격화된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불과 2년만인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 선언'에서 공개 언급될 정도로 종교, 사회운동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는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넓어진 민주화운동의 공간에서 그동안 금기시됐던 미국과 미군 문제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 그리고 평화적 통일문제가 사회운동의 의제로 본격화된 것이며, 이후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대미 예속성과 불평등한 한미관계, 전쟁정책과 전쟁체제에 대한 투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40년 전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문제제기는 현 시점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자주와 평화를 실현하는 과제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상존한다"고 말했다.
특히 패권의 약화를 동맹에 대한 '약탈'적 양태로 전가하는 미국의 패권정책에 맞서 저항을 확장하는 한편, 근본적인 사회대전환의 담론을 함께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자주평화운동의 과제를 제시했다.
최은아는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매우 높고 주권에 대한 의지도 강한만큼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이겠지만 미국의 패권정책에 자발적으로 포섭, 협력하는 정책이 확인된다며 '자주로 포장한 대미종속'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패권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를 극복해야 할 한국 정부의 자주 정책에 대한 요구도 계속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주권에 대한 지향이 미국의 패권정책에 대한 자발적 협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주와 평화, 역사정의가 결합된 일관된 담론 형성과 실천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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