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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의 폭로에 미국 시민들이 응답하다

[주간 프레시안 뷰] "NSA 정보활동, 美 패권 유지용"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22 오전 10:40:50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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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정보수집행위에 대한 미국 국내의 반발과 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6일 미 연방지방법원이 NSA의 정보수집 행위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데 이어, 17일에는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대표적 정보산업(IT) 기업체 대표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NSA의 무차별 정보수집행위가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시정조치를 요구했습니다. 지난 6월 에드워드 스노든의 첫 폭로 이후, 지금까지 브라질·프랑스 등 외국 정부에 국한됐던 NSA 무차별 도감청에 대한 반대가 미국 내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미국 워싱턴 연방지법은 지난 16일 국가안보국의 전화통화 기록 수집과 축적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시민단체 '프리덤 워치'가 제소한 이번 소송과 관련해 담당 리처드 리언 판사는 국가안보국의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은 '근거 없는 압수 수색을 금지'한 미 수정헌법 4조에 위배된다며 이 같은 행위는 국민의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는 만큼, 이를 중단시키는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리언 판사는 국가안보국 행위에 대해 미국 헌법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 전(4대) 대통령도 '경악할 만한' '전체주의적(Orwellian)' 행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다만 국가안보국의 정보 수집 활동이 미 국가안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이번 판결의 이행을 상급법원 최종심 이후로 미루면서 미국 정부가 항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은 6개월 안에 열려야 합니다.

물론 미국 정부는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앤드루 에임스 법무부 대변인은 "국가안보국 프로그램이 합헌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는데, 그동안 국가안보국 도·감청 프로그램을 허가한 해외정보감시법원(FISA)의 판사 15명이 통화기록 수집의 적법성을 다투는 30건의 재판에서 적법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비밀법원인 해외정보감시법원의 판결은 반대쪽, 즉 미국 시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내린 판결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 '미국 정부는 감시를 멈춰라'는 내용의 피켓을 든 시위대가 NSA에 대한 의회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스노든은 이날 성명을 내 "비밀법원이 허가한 비밀 프로그램이 한낮의 햇빛에 노출되자 미국인들의 권리를 침해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국가안보국의 감청 활동은 이제 법정이라는 뜨거운 햇빛 아래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겁니다.

결국 국가안보국 정보 활동의 위헌 여부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가려질 전망입니다.

연방지법의 위헌 판결이 나온 다음 날(12월 17일), 백악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바이든 부통령과 미국의 15개 정보통신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문제에 관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 애플의 팀 쿡 회장을 비롯해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트위터, AT&T 등 미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기업의 대표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겁니다.

2시간 45분 동안 계속된 간담회에서 미국의 정보통신 최고경영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였습니다.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도·감청 관행을 개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국가안보국 도·감청 활동으로 미국 정보통신 기업에 대한 외국의 불신이 높아지면서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예컨대, 브라질은 미국 정보통신 기업들에게 자국 사용자 정보를 저장하는 데이터센터를 브라질에 두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미 정보통신 기업에 대한 외국 정부의 통제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었죠. 한마디로 말해 국가안보국의 정보활동이 미국의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백악관 측은 이번 간담회에서 '오바마케어' 웹사이트 오류 문제 등 광범위한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하면서 국가안보국 문제를 비켜가려 했지만, 영국 신문 <가디언>의 취재에 따르면 실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회의 시작 45분간은 오바마 대통령이 없는 가운데 백악관 관리들과 '오바마케어' 등을 논의했고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참석한 이후 2시간 동안 오로지 국가안보국 문제만 논의했다는 겁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정보통신 업체 대표들은 전화 및 이메일 기록을 무차별 수집하는 프리즘(Prism)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비밀리에 정보수집 허가를 내주는 해외정보감시법원(FISA)의 판결 관행을 바꿀 것, 나아가 6개월이 지난 전화통화 및 이메일 기록은 영장 없이 수집할 수 있도록 한 '전자통신 프라이버시 법'의 개정도 요구했다고 합니다.

(☞ Tech companies call for 'aggressive' NSA reforms at White House meeting)

회의가 끝난 후 참석 기업들은 성명을 통해 "지난 주 우리가 발표한 정부사찰에 대한 원칙을 대통령과 직접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점을 평가한다"며 "우리는 대통령이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인터넷 기업 8개 사는 지난 12월 9일 미국 정부에 감시활동 체계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공동 서한을 보내고, 이를 광고로 게재한 바 있습니다. 즉 미국 법원에 이어 미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정보통신 기업들도 국가안보국 개혁 요구에 동참한 셈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정보통신 기업 간담회 바로 다음 날인 12월 18일, 백악관은 국가안보국 개혁에 관한 자문위원회의 300쪽짜리 보고서를 당초 예정보다 수 주일 앞당겨 공개한 겁니다. 연방법원의 위헌 판결과 정보통신 업체들의 개혁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죠. 보고서는 전화통화 기록을 무차별 수집하는 현재의 관행을 폐지하고 외국 국가원수에 대한 감청은 현재보다 고위 수준에서 허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46가지 개혁 조치를 건의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통화기록은 해당 통신회사가 보관하되 국가안보국이 특정한 필요가 있을 때만 수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이 개혁조치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만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제안된 개혁 조치들은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는 한참 못 미치는 반면 국가안보국 등 정보기관들의 반발이 예상돼 얼마나 실효성 있는 개혁 조치가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합니다. 국가안보와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딜레마적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가 어떤 개혁 조치를 들고 나올지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Obama review panel: strip NSA of power to collect phone data records)

한편, 스노든은 지난 12월 17일 브라질 <아 폴라(A Folha)> 신문에 보낸 기고문에서 국가안보국의 정보 활동은 지구촌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 시대 최대의 인권 침해라고 일갈했습니다. 스노든은 이 글에서 국가안보국은 단 하루 동안 전 세계 50억 건의 통신 도·감청을 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미국은 이 같은 정보수집 활동이 테러 위협으로부터 세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실제로는 테러와는 전혀 무관하며 경제 첩보 수집·사회 통제·외교적 조작 등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3주 전 브라질의 주도 아래 유엔 인권위원회가 디지털시대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보호되어야 하며, 선량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정보 수집은 인권 침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을 치하하면서 "더 이상 미국의 관리가 브라질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자신은 비록 이번 폭로로 미국 국적을 박탈당하고 무국적자로 전락하는 신세가 됐지만, "나의 목소리를 잃기보다는 차라리 나라 없는 시민"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스노든은 브라질 국민들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 중 다음 한 가지만을 꼭 들어주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불의에 대항하고 우리들의 기본적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우리 모두 함께하기만 한다면 지구상 가장 강력한 시스템으로부터도 우리를 지켜낼 수 있다."

(☞ NSA Surveillance Is about Power, Not "Safety" : An open letter to the people of Brazil)

자신의 안위를 무릎 쓴 스노든의 용기 있는 폭로에 지구촌의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쳐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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