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황망한 그녀의 죽음, 이런 비극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등록 :2016-05-21 20:38수정 :2016-05-21 20:50
 
21일 오후 400여명의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21일 오후 400여명의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시민 400여명 ‘강남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집회
“여성을 향한 범죄, 여성을 향한 혐오 사라져야”
“이 분노를 힘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당장 끝내야 합니다.”

 

지난 17일 새벽에 벌어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움직임은 21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는 오후 5시부터 ‘여성대상 혐오범죄 피해자 추모행진’이 진행됐다. 다음 카페 ‘여성혐오범죄반대추모집회’와 페이스북 ‘강남역 10번출구’ 등 등 인터넷과 SNS를 통해 모인 이들이 함께 추모 집회를 준비하고 행진에 나섰다. 행사를 주도하는 조직이나 단체 없는 자발적인 움직임이다. 행사 진행요원으로 참가한 한 참가자는 “150명 정도 모일 것으로 보고 국화와 상복을 뜻하는 흰 우비 등을 준비했으나 예상보다 많은 400명에 가까운 이들이 모여 물품이 모두 동이 났다”고 말했다.

 

 

행진에 앞서 진행을 맡은 카페 참여자 김아영(26)씨는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오늘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느꼈을 공포를 그려보며 또한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생각해 봅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희생자가 살해당하며 느꼈을 커다란 공포를 여성들이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미 여성들이 그 공포와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면서 “여성을 향한 범죄, 여성을 향한 혐오가 사라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 스타벅스 공터에서 시작된 행진은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노래방 앞을 지나 다시 10번 출구 앞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두번 돌며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침묵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10번 출구 앞 나무에 흰 리본을 걸고 추모나 분노의 문구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21일 오후 400여명의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21일 오후 400여명의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오후 7시부터는 정해진 무대도 없이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시민발언대가 이어졌다. 한 중년여성은 “여러분, 저 시민발언대 하고 싶습니다”라며 먼저 손을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이 여성은 “‘강남역 10번 출구 자유발언대’ 페이스북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적은 끔찍한 폭력사례를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여성이란 이유로 폭력을 당하는데 어떻게 성차별 문제가 아닐 수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여성은 “여성들이 운전하면 욕하면서 집이나 들어가가라고 하는데 집에서도 남편에 의해 강간당하고 폭행 당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집이라고 안전하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추모 집회나 시민발언대는 “왜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느냐”고 항의하는 일부 남성들에 의해 수차례 중단됐다. 한 남성은 “성차별 당한 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발언을 해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범죄자는 혐오를 했지만 사회는 여성혐오를 유발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를 적고 마스크를 쓴 남성들이 나타났을 때에도 추모를 위해 모인 여성들은 이번 사건이 왜 여성혐오 범죄인지에 대해 이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남성들과 언쟁을 벌이는 동안 여성들은 마스크를 쓴 일부 남성들을 향해 “사진을 찍지 말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보수사이트인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채증을 통해 여성들을 인신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자 여성들은 서로에게 마스크를 권하며 ‘일베’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21일 오후 400여명의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21일 오후 400여명의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인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회사가 인근이라 강남역 추모장소에 벌써 네번째 왔다는 회사원 손진영(31)씨는 “여성들이 이렇게 모여서 공분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말해주는 게 아니겠냐”면서 “오늘도 피해자에게 빚진 마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름과 나이를 밝히길 꺼린 한 중년 여성은 “내가 젊은 시절 겪었던 폭력적인 일들이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