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잠원 나들목에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 서울 시내 구간이 이동하는 차량으로 혼잡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추석 귀경 행렬이 17일 오후부터 이어지면서 전국 고속도로에서 극심한 정체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 방향 정체는 자정을 넘긴 18일 새벽 1시께부터 차츰 풀려 새벽 3∼4시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로공사는 승용차로 이동할 경우 저녁 8시 요금소 기준으로 △부산→서울 6시간20분(버스 4시간30분) △광주→서울 4시간50분 △대구→서울 5시간40분 △대전→서울 3시간20분 △강릉→서울 3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오후 1시에 예상했던 소요 시간보다 다소 길어졌다.
자정에 출발할 경우 △부산→서울 5시간(버스 4시간30분) △광주→서울 3시간48분 △대구→서울 3시간45분 △대전→서울 2시간50분 △강릉→서울 2시간40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새벽 1시부터 승용차와 버스 소요 시간이 엇비슷해진다. △부산→서울 4시간30분(버스 4시간30분) △광주→서울 3시간30분 △대구→서울 3시간30분 △대전→서울 2시간6분 △강릉→서울 2시간40분이 걸릴 것으로 도로공사는 전망했다.
앞서 도로공사는 추석 당일인 17일 전국에서 669만대의 차량이 이동(수도권에서 지역으로 49만대,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51만대), 양방향 모두 극심한 혼잡을 빚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18일까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65세 이상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이 임기 내 실현 불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팩트는 16일 「尹 공약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 물건너 가나...예산 미반영」이라는 기사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미반영된 데다가 질병관리청은 내년에야 ‘신규 백신 사업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는 입장이어서 내후년에도 시행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앞서 질병관리청은 기획재정부에 ▲12세 남성 청소년의 H포인트V 백신 무료 접종 ▲70세 이상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 ▲19~64세 만성질환자 대상 인플루엔자 4가 백신 무료 접종 등을 위한 예산을 신청했다.
하지만 박희승 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도 질병관리청 예산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상포진 환자 수는 2022년 71만 2,035명에서 2023년 75만 7,539명으로 6.4% 증가했다. 올해도 7월 말 기준 44만 1,815명에 달하면서 지난해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대상포진은 심한 통증과 지각 이상이 동반될 수 있고, 병변이 사라진 후에도 신경통이 흔하게 발생(약 5~30%)한다. 급성기에는 뇌수막염, 척수염, 망막염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상포진 환자에서 뇌졸중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어 예방이 중요하다.
백신 접종 시 예방 효과가 높다.
박 의원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백신 접종 시 ‘조스터박스’는 전 연령에서 대상포진이 51% 감소하며, 60세 이상에서는 41~64%의 예방 효과를 보이고 있다. ‘싱그릭스’는 50세 이상에서 89.8~97.2%의 예방 효과를 보이며, 7년 후에도 약 85% 정도의 예방 효과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국가예방접종 도입 우선순위 설정 및 중장기 계획 연구’에 착수했다. 그리고 올해 1월 고령층 대상포진 백신 도입은 우선순위가 높고 질병 부담, 비용 효과 측면에서 도입 타당성이 입증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결과를 밝힌 바 있다.
다만 대상포진 예방 접종은 비급여 진료 항목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의료기관별로 예방 접종 가격을 결정해 예방 접종 가격의 편차가 크다.
2024년 ‘스카이조스터’ 예방 접종 평균 가격은 14만 6,206원이었다. 최소 4만 원, 최대 30만 원으로 최저 가격과 최대 가격의 차이가 7.5배로 나타났다.
‘조스터박스’의 최대 가격은 40만 원, ‘싱그릭스’는 50만 원에 달해 접종 부담이 큰 상황이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해 “대상포진 환자는 매년 전국적으로 70만 명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 무료로 접종을 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부담이 크다”라며 “고가의 접종 비용으로 인해 고령층이나 취약계층의 경우 접종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고통이 크고 후유증이나 합병증 등도 심각한 만큼 대상포진 국가 예방 접종 도입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9월 9~13일 전국 18세 이상 2,503명을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27%로 집계됐다. 일주일 전 조사보다 2.9%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국정 수행 부정 평가도 일주일 전보다 2.6%포인트 오르면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고치인 68.7%를 기록했다. ‘매우 잘 못함’ 응답만 58.8%에 달했다.
경상도 지역과 70대 이상 연령대에서도 부정 평가가 더 늘어나며 전 지역, 전 연령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부산·울산·경남에서는 긍정 평가가 5.1%포인트 떨어져 29.8%를 기록했고 부정 평가는 6.4%포인트 올라 65.9%를 기록했다.
70대 이상에서 긍정 평가가 5.7%포인트 떨어져 43.0%를, 부정 평가가 6.2%포인트 올라 50.8%를 기록했다, 60대는 긍정 평가 33.4%(4.7%포인트 하락), 부정 평가 62.4%(3.8%포인트 상승)였다.
이번 조사는 무선(97%)·유선(3%)으로 가상번호를 활용한 자동응답(ARS) 조사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2.8%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추석을 하루 앞둔 16일 오후 서울경찰청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의정갈등과 관련해 “누가 옳으냐를 따질 때가 아니고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다 같이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17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일일 디제이(DJ)로 나와 세계적인 밴드 비틀스의 곡 ‘컴 투게더’(Come Together)를 마지막 곡으로 선곡하며, 추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대표는 “많은 국민들께서 (의료대란에) 불안감을 느끼고 계시고, 불안감을 많은 분들이 느끼고 계신 것 자체가 이미 상황은 벌어진 것”이라며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붕괴 같은 상황은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지금은 해결을 해야 되는 시점이고 노력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과 관련해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해) ‘민주당이 낄 자리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도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이건 누구나 껴야 되는 자리”라며 “지금 이런 상황 앞에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서로 간에 누구든지 따질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 대표는 또 비틀스의 멤버 존 레논이 폴 매카트니에게 ‘넌 왜 절벽 앞에 와서 뛰어내리지 않는가’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세상이 좀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나라가 잘 됐으면 좋겠고 국민들이 잘 되면 좋겠다”며 “절벽에 뛰어내려야 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려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 대표는 약 1시간 동안 톰 웨이츠의 ‘웨이 다운 인 더 홀’(Way Down In The Hole)과 크라잉넛의 ‘명동콜링’ 등 본인이 즐겨듣는 음악을 라디오를 통해 소개했다. 한 대표는 “음악에는 네 편 내 편이 없으니까 혹시 저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음악 얘기하다보면 마음이 열리고 그러지 않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도 넘은 개입이 구설수를 낳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은행 대출금리가 널을 뛰었다. 무턱대고 비난할 일은 아니었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금융당국 개입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검사 출신 아마추어 금감원장은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실패하면서 부작용과 불확실성만 키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8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기업과 주주행동주의의 상생발전을 위한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04.18. ⓒ제공 : 뉴시스
엇박자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안정화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7월 2일 금융감독원 임원회의
틀린 말은 없었다. 주택가격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가계부채 규모가 덩달아 빠르게 불어난 시점이었다. 문제는 그의 경고와 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금리가 최저 연 1.6%에 불과한 ‘신생아특례대출’을 27조원 규모로 공급하고 있었다. 정책대출이 가계부채 급증에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복현 금감원장 TV 출연 불과 7일 전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를 별다른 설명도 없이 연기했다. 유동성 공급과 “무리한 대출 확대” 경고 시그널이 동시에 나왔다.
금감원은 다음날 은행연합회와 17개 국내 은행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을 소집했다. 은행권에 대출 관리를 주문했다. “지적 사항이 나오면 엄중 조치하겠다”는 방침이 부행장들에게 전해졌다. 경고를 받은 은행권은 앞다퉈 대출 금리 올리기에 나섰다. 4대 은행은 7,8월 두 달 동안에만 4~5차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렸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두 달간 다섯 차례 금리를 올렸고, 국민은행은 네번, NH농협은행은 두번, 하나은행은 한 번 금리를 올렸다. 한때 주담대 금리 하단은 2%를 찍었지만, 연이은 가산금리 인상으로 대부분 3% 이상으로 올라섰다. 평균 주담대 금리는 4%로 치솟았다.
과유불급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
-8월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 출연
더 강한 메시지가 나왔다. 은행권은 ‘대출 조이기 2라운드’에 돌입했다. 주담대 금리 인상에 더해 생활안전자금 목적의 주택담보 대출 한도를 줄였다.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주담대는 대출 기간을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했다. 다른은행의 주담대 갈아타기 대출도 일부 중단됐고, 원금 상환 거치 기간은 아예 폐지됐다. 1주택자의 전세대출은 금지됐다. 전세대출과 신용대출도 조였다. 복잡한 조건을 걸어 전세대출을 어렵게 만들었고, 1억~1억5천만원 수준이던 마이너스 통장 한도는 5천만원으로 제한했다.
이른바 ‘실세 금감원장’ 파워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부작용이 속출했다. 40년 상환을 예상하고 자금 계획을 짰던 사람들은 날벼락을 맞았고, 마통 영끌로 잔금을 치르려던 주택 매수자는 멘붕이 왔다. 은행권 대출을 피해 지방은행이나 보험사 등 2금융권 대출로 풍선효과가 번졌다. 과유불급이었다.
책임전가 그리고 고집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은 지양해야 한다…은행권 대출 축소 대책이 이미 쏟아진 이상 이젠 효과라도 제대로 내야 하지 않겠냐”
-9월 4일 현장간담회
불만이 쏟아지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 제목이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였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비난의 화살을 금융권에 돌렸다. 그는 “투기성 대출은 제한하되 실수요 대출을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금융권 대출 정책이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대출 가능 여부나 한도에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대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은행권을 압박하다, 성에 차지않자 멱살 잡고 쥐어짠 장본인이 이제 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은행권에선 “당국 메시지에 따라 취급 방침을 결정한 것인데, 이제 와 공감대가 없었다고 하니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11.09. ⓒ제공 : 뉴시스
이복현 금감원장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실수요 보호와 가계대출 관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권 대출 축소 대책이 이미 쏟아진 이상 이젠 효과라도 제대로 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현실은 초보 금감원장의 생각과 달랐다. 주택가격은 멈추지 않고 상승했다. 주택거래량은 과거 급등기 시절까지 늘어났다. 8월 한달에만 주택담보대출이 8조2천억원 늘었다. 역대 최대폭 증가다.
애초 될 일이 아니었다. 금융감독원장의 말 한마디, 은행권의 대출 취급 정책 잔꾀로 부동산 심리가 가라앉을 리 만무했다. 정공법은 무시한 채 꼼수만 부리다 주택급등은 막지 못했다. 아파트 가격 조절 제도는 이미 많다. 규제지역으로 지정하고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높이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현행 LTV는 서울도 수도권도 70%에 달한다. 10억짜리 주택에 7억까지 대출이 나온다. 규제지역으로 묶으면 대출금액은 집값의 40%, 4억까지 주저앉힐 수 있다. 지금 불고 있는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상당부분 꺼뜨릴 것으로 기대되는 정책수단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정확히 국토교통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반대다. 저금리 정책 대출 규모를 계속 키워나가고 있다. 투기 세력 입장에서 ‘수익률’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는 세금이다. 양도세와 취득세, 보유세 세가지 모두를 낮췄다. 양도세 중과는 사실상 사라졌고, 취득세는 최대 200만원까지 깎아준다. 보유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은 3년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했고, 분양아파트 전매 제한, 실거주의무 제한도 모두 풀었다. 부동산 규제 정책 수단을 모두 내팽개치고, 금감원장의 말 한마디로 가계부채를 잡는다? 애초에 될 일이 아니었다.
후퇴일까
결국, 실세 금감원장은 한 발 물러섰다. 지난 10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그는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관리해 왔는데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 국민과 은행, 은행창구 직원분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9.10. ⓒ제공 : 뉴시스 “ 홍민철 기자 ” 응원하기
정부는 매달 고용동향을 발표한다. 한 달쯤 전에 기획재정부는 "7월 고용률이 역대 최고, 실업률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취업자 수 증가 폭도 두 자릿수를 회복"했다고 자평했다. 이번 달에는 "8월 고용률·경제활동참가율이 역대 최고, 실업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등 주요 고용 지표가 양호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8월과 9월에 발표된 고용동향에 관해 마치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취업자 수, 고용률, 실업률 등의 주요 지표가 좋게 나왔다는 것이다.
요즘은 명절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대화도 줄어들고 있지만, 올 추석에 역대 최고 고용률에 대한 칭찬은 안 나올 것 같다. 지금 고용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지적한 언론 보도의 일부를 소개한다.
청년 고용률 4개월째 뒷걸음… "그냥 쉬었다"도 46만명(24.09.12 동아일보)
고용률 최고라지만 골병들어 가는 일자리 시장(24.09.12 중앙일보)
8월 고용률 역대 최고라는데… 청년층 줄고 60대 이상만 활황(24.09.12 국민일보)
취업자 수 두달 연속 10만명대 늘었지만··'쉬었음'도 역대 최대(24.09.11 경향신문)
<동아일보>는 청년층 고용률과 단시간 노동자 증가를 지적했다. 특히 "청년층 고용률은 올 5월부터 4개월 연속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중앙일보>는 "골병 들어가는 일자리 시장의 모습이 보인다"면서 더 신랄하게 표현했다. 건설업과 도소매업 취업자 감소세가 이어지고, 자영업자 수도 7개월째 줄어들고, 청년층과 40대 취업자 수가 각각 22개월과 26개월째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일보>는 연령별, 산업별 '고용 온도 차'와 함께 '쉬었음' 인구가 8월 기준 최대치라는 사실을 전했다. <경향신문>도 세대별 고용 격차, 건설업과 제조업 취업자 수의 감소, '쉬었음' 인구의 증가를 지적했다.
▲고용동향 조사 결과에 포함된 인포그래픽. 이 그림만 보고 고용 상황 전반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통계청
전체적으로 보면 8월 고용동향에 대한 언론 보도는 연령별‧업종별 격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언론이 잘 짚어낸 부분도 있고, 지면의 한계로 다 짚어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고용동향 조사 결과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을 덧붙이려 한다.
1. 지난달 단시간 취업자가 폭발했다
지난달 전체 취업자 수가 12만3000명 증가했는데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 수는 203만7000명이나 늘었다(전년 동월 대비 14.9% 증가). 반대로 주당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210만 명 줄었다. 또 주당 36시간 미만 신규 취업자 중 24만9000명은 주당 17시간 미만 일했다(전년 동월 대비 9.5% 증가). 물론 해마다 8월이면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증가한다. 올해는 역대급 폭염에다 조사대상주간에 공휴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단시간 취업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은 우려를 자아낸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모두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대폭 늘었다. 17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취업자도 10개월째 증가하고 있다. 불안정성이 큰 일자리의 비중이 높아지거나, 취업자 1인당 일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프랜차이즈 매장 등에서 일자리 쪼개기가 많아서일 수도 있다. 1명을 주 28시간으로 고용하는 대신 2명을 주 14시간으로 고용하는 식으로 일자리가 쪼개질 경우, 고용 통계상으로는 취업자가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난다.
2. 고용지표, 60세 이상 취업자에 의존
지난해 2 월부터 60세 이상 신규 취업자 수가 전체 신규 취업자 수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도 60세 이상 취업자 수 증가가 23만1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 증가(12만3000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60세 이상 고령층이 없었다면 고용지표는 마이너스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60세 이상 고용은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크게 의존한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고용 충격을 이유로 직접 일자리 104만8000개를 제공한 적이 있는데, 그중 76만4000개가 노인 일자리였다. 그리고 총선이 있었던 올해, 윤석열 정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의 수혜자를 2023년 88만3000명에서 2024년 103만 명으로 늘렸다. 1년은 12개월이니, 103만 명을 기계적으로 12로 나눠보면 매달 약 8만6000명의 신규 취업자가 생겨난다. 당연히 고용률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내년에 노인 일자리를 역대 최대 규모인 110만 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입장도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다. 노인 일자리를 줄이는 순간 취업자 수는 바로 감소할 것이고 고용률도 떨어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에 노인 일자리를 14.7만 개 늘렸다. ⓒ보건복지부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다. 현재 정부 예산을 투입해서 만드는 노인 일자리는 공익활동형(노노케어, 안전지킴이 등), 사회서비스형(보육, 요양, 간병 등), 민간형(실버택배 등)으로 나뉘는데 공익활동형과 민간형은 대부분 월 30시간(주 30시간이 아니다) 이하로 일하고 월 29만 원 정도를 받아 간다. 취업이라기보다 단기 아르바이트에 가깝다. 그래도 ‘수입을 목적으로 일주일 사이에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라는 기준에 따라 통계상 취업자로 분류된다. 그래서 노인 일자리가 고용 통계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종종 나온다.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추경호는 2019년 문재인 정부 시기에 고용지표가 양호하게 나오자 "재정 투입을 통해 만들어 낸 가짜 일자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에 오른 추경호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고용 성적표는 일단 좋게 받아야 하니까!
이해가 안 가는 점은 또 있다. 정부가 만든 노인 일자리는 업종으로는 주로 '보건업 및 사회복지업'과 '공공행정'으로 분류되며 종사상 지위로는 상당수가 임시직에 해당한다. 즉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서 일하는 노인은 고용 통계에서 버젓한 '근로자'로 취급된다. 그러나 임금을 산정할 때는 '고용'이 아닌 '복지' 사업이라는 이유를 들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책정한다. 비논리적일 뿐 아니라 일자리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통계청이 '8월 고용동향'을 발표한 11일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는 2천880만1천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2만3천명 증가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7월에 이어 두 달째 10만명대를 유지한 셈이다. 다만, 30만명을 웃돌던 연초 흐름과 비교하면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3. 20대 고용률이 높게 나온 이유는?
지난달 20대 취업자 수는 12만4000명 감소했다. 그런데 20대 고용률은 61.7%로 0.2%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20대라도 20~24세는 고용률이 0.8%p 하락했지만 25~29세는 고용률은 0.5%p 증가해서 73%에 이르렀다. 지난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바로 이 수치를 거론했다. "우리가 2%로 인플레가 내려가고 올해 2.5% 성장을 하고 770억 불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고용률은 역사상 가장 높은 고용률이다. 특히 25세부터 29세까지 72~3%의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대정부질문 자리에 오기 전에 가장 유리한 통계 수치를 미리 준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대 고용률 지표가 좋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 인구가 감소하는 속도가 청년 고용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15~29세 청년 인구는 24만1000명 감소했다. 같은 시기 취업자는 13만7000명 감소했지만, 고용률은 0.3%p밖에 안 줄었고 실업률은 0.4%p만 상승했다.
4. 50대 고용률이 0.6% 감소했다
언론은 20대와 40대 취업자 수 감소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50대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달 50대 고용률은 0.6%p 감소했다. 50대 고용률은 지난 4월부터 5개월째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하고 있다. 이 경우는 청년층과 반대로 50대 인구 증가가 50대 취업자 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2024년 8월 고용동향에 포함된 '활동상태별 비경제활동인구.' ⓒ통계청
5. 육아와 취준 대신 '그냥 쉰다'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쉬었음' 인구가 24만5000명 증가해 8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반면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육아' 사유는 73만3000명으로 15.1%p 감소했다. 취업준비자도 62만4000명으로 7.7%나 줄어들었다. 취업 준비를 하는 대신 '그냥 쉬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 모든 연령 계층에서 '쉬었음' 인구가 증가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육아'가 '취준'으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한다면 30대의 높은 고용률도 좋게만 해석할 수는 없다. 특히 30대의 경우 여성은 고용률이 증가하고 남성은 고용률이 조금씩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30대가 출산을 포기하고 경제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7. 자영업자 감소, 해석에 유의해야
지난달 자영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0%p 감소했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증가하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6만4000명 감소했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이를 음식점의 폐업 증가 등 생활업종 소상공인의 어려움으로 해석하고 지난 7월 전기료 지원, 키오스크 보급, 온누리상품권 사용처 확대 등의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감소하고 있다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정확히 누구일까?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1인이 운영하는 미용실, 키오스크 놓고 1인이 운영하는 카페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통계상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에는 수많은 가짜 3.3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업종으로 본다면 배달 라이더, 퀵서비스 기사, 택배 기사, 화물차 기사, 학습지 강사, 학원 강사, 보험설계사, 헬스 트레이너 등이다. 참고로 지난해 군포의 어느 빌라 4층에서 쿠팡 물품을 배송하다 숨진 택배 노동자는 쿠팡CLS와 위탁계약한 업체에서 일하는 '개인사업자'였다. 이런 경우 통계상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로 잡힌다.
가짜 3.3인 경우 업종은 더 다양해진다. 예컨대 식당에서 조리원으로 근무하는데 3.3% 사업소득세 납부에 동의한다는 계약서를 쓰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들은 실질이 노동자인데도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따라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증감 수치만 가지고 과연 누구의 어떤 일자리가 변화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갖가지 착시를 일으키는 노동자 '오분류'를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결론. 일자리의 양적 증가에만 몰두하는 고용정책에는 문제가 있다. 공공이 책임지고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면 질적인 면에도 신경을 써서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간 부문에서는 노동권 보장을 첫 단추로 인식해야 한다. 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현실에서 보장할 때 일자리가 늘어나고 고용의 질도 높아진다. 윤석열 정부는 이것을 몰라서 정반대 길로 가고 있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는 더불어삶 회원들과 함께 해고노동자 지원, 인터뷰, 강연 기획 등 노동 현장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모순을 파악하고 공론화하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어서 경제 뉴스와 각종 문헌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더불어삶 뉴스레터 구독 링크 https://livetogether.substack.com/
윤석열 대통령이 4월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 브리핑에서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거는 정진석 실장의 눈물겨운 대통령 실드고요. (…) 왜냐하면 본인이 국회 부의장을 지내신 분이고 당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하신 분인데 의회의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만일 국회 부의장의 위치에서 봤을 때 얼마나 모욕적이고 협치의 의지가 안 보이는 일일까(…) 대통령 욕 조금이라도 덜 먹게 본인이 총대 메신 거다. 정진석 실장님이 어떤 분인데 그걸 그렇게 (대통령께) 조언했겠습니까?”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지난 4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실 직원 조회에서 한 말에 대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평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정 실장은 직원들에게 “대통령을 향한 조롱과 야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국회에 가서 대통령이 곤욕을 치르고 오시라고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느냐”며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참석을 만류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5선의 국회 부의장 출신인 비서실장의 발언으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죠.
윤 대통령이 4·10 총선 여당 참패 뒤 국정 쇄신 차원에서 4월22일 임명한 정 실장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소통해가려는 절박한 의지”(국민의힘)와 “친윤 핵심인사로 국정 전환과 여야 협치는 어불성설”(더불어민주당)로 엇갈렸습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 뒤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뒤 발탁한 인사라 관료 출신 김대기·이관섭 전 비서실장과 다른 ‘정무형 비서실장’이 될 것이라는 대체적인 평가가 나왔습니다.
정 실장의 약 5개월 동안의 행보는 ‘소통 의지’에서 ‘어불성설’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합니다. 이는 총선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고스란히 대변합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8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 ‘군기’ 잡고, 윤 대통령 이재명·한동훈 만나게 했지만
“저는 대통령께 정치에 투신하시라고 권유를 드렸던 사람이고, 윤석열 정부 출범에 나름대로 기여했던 사람”, “(윤 대통령이) 더 소통하시고, 통섭하시고, 또 통합의 정치를 이끄시는데 제가 미력이나마 잘 보좌해 드리도록 그렇게 노력하겠다.”
정 실장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4월22일 밝힌 소감에서 추출할 수 있는 열쇳말은 서로 상반된 ‘친윤’과 ‘소통’입니다. 일단 정 실장의 초반 행보는 ‘소통’에 방점을 찍긴 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회담(4월29일)을 성사시키고, 여당 전당대회 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신임지도부 만찬(7월24일),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90분 회동(7월30일) 등의 ‘밥상’을 차렸습니다. 특히 전당대회 기간 전후로 폭발할 가능성이 컸던 윤-한 갈등을 적정선에서 관리했다는 평가가 따라옵니다.
또 비서실장 업무를 시작하며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부정확한 얘기가 산발적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서들은 정치하지 마라” 등 군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총선 전후 대통령실에서 끊이지 않던 ‘비선 논란’, ‘메시지 관리 실패’ 등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고, 이후 대통령실의 메시지 혼선은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야당 공세 속 ‘거부권 정치’ 총대 멘 ‘호위 무사’
그러나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처리, 방송통신위원장·검사 탄핵, 윤 대통령을 겨냥한 각종 청문회 공세 속에서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의 ‘호위 무사’로서 총대를 멨습니다. 5월21일 정 실장은 야권 주도로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해 직접 브리핑을 열어 “특검법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이 법안에 재의 요구를 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직무유기”, “헌법 수호자로서 대통령의 의무이자 책무” 등을 강조하며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이후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대야 강경 기조는 계속됩니다. 정 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서도 윤 대통령의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 뉴라이트 편향 인사 등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를 ‘철벽 방어’하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 대통령실은 민주당이 제기하는 윤석열 정부의 계엄 준비 의혹, 야권 일부에서 언급하는 ‘대통령 탄핵’, 김건희 여사를 향한 전현희 민주당 의원의 ‘살인자 발언’ 등에 “도를 넘었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사실상 ‘협치는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또 윤 대통령은 최근 광복절 경축사 등 주요행사에서 정부 비판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반국가세력’ ‘반대한민국세력’ 등 거칠고, 격한 표현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최근 이러한 강경 기조에 제동을 거는 이들은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야당 협조 없이는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야관계에 손을 놓고 있다면 문제입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여러 개혁과제 추진을 위해서라도 ‘협치’의 끈을 놓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 실장을 비롯해 누구도 윤 대통령의 ‘마이웨이’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정 실장과 여당의 거리도 멀어지고 있습니다. 정 실장은 “당정은 하나”라고 거듭 강조하며 극단적인 여소야대 구조를 대통령실과 여당과 결속을 통해 돌파하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한동훈 대표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이 나온 뒤 한 대표와 당정 관계에 대한 정 실장의 생각에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지난달 30일 열기로 했던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을 대통령실이 연기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비서실장은 민심 전해야”
윤 대통령과 정 실장이 총선 이후 받고 있는 성적표는 20%대 초중반의 국정지지율입니다. 무엇보다 ‘옳은 일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한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한 윤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정 실장의 운신 폭도 넓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입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 불리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22일 방송인터뷰에서 정 실장 임명에 대해 “정진석 의원은 바른말을 하시는 분이니 (대통령이 정 의원에게) 함부로 못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그의 생각이 궁금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박 의원은 정 실장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하지 않겠다며 대신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전했습니다. “비서실장은 민심을 잘 전해야 합니다. 예스맨은 필요 없는 거죠.”
북한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오는 10월 7일 '적대적 두국가관계'를 반영한 헌법 개정을 다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회의를 소집한다고 결정했다. [사진-노동신문]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된 남북관계 규정을 반영한 헌법 개정 일정을 확정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전날 발표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을 인용해 오는 10월 7일 평양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회의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15일 발표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공시에 따르면, 회의안건은 △사회주의헌법수정보충과 관련한 문제 △경공업법, 대외경제법 심의채택과 관련한 문제 △품질감독법 집행검열감독정형과 관련한 문제 등이며, 대의원등록은 10월 6일에 한다.
이에 따라 10월 7일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회의에서는 '사회주의헌법 수정보충'과 관련한 주요내용들이 다뤄질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영역 문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 반영 △인민들의 정치사상생활과 정신문화생활영역에서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등 주요 내용들이 심의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된 남북관계 규정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난해 연말 9차 당전원회의에서 밝힌 '대남부문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할데 대한 로선'의 구체적 내용을를 '다음 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사항으로 심의할 것을 주문한 내용이다.
2019년 3월 10일 선출된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임기(5년)가 얼마 남지 않았고, 선거일 60일 전에 공시하도록 되어 있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일정(북 사회주의헌법 제90조, 제 92조, 각급 인민회의대의원선거법 제11조 등) 등 사정을 감안하면 지난 4~5월경 개최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결국 10월 7일 소집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최고인민회의)...불가피한 사정으로 선거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선거를 할 때까지 그 임기를 연장한다"는 규정이 있어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15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2차전원회의에서는 참석자 전원찬성으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회의 소집' 결정을 채택하고,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의에서 심의된 뒤 상정된 △사회주의물자교류법 △공공건물관리법을 제정하고 △도로교통법과 대외경제중재법 수정보충안을 채택했으며, △평양-남포지구 국토건설총계획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10일 오전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을 만나기 전 구양리를 돌아보았다. 노랗게 익어가는 논밭 너머 마을창고 위에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2호가 보였다. 2024.09.10. ⓒ민중의소리
늦추거나 되돌리거나 ②-1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너지전환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없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갈등은 발생합니다. 땅주인과 외부사업자의 주도로 태양광이 농촌에 깔리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임차농이 반발합니다.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게 아닙니다. 농민과 주민이 태양광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을이 공동으로 추진한 햇빛발전 수익을 마을 전체와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마을 공동의 사업 규모를 키우면 농촌기본소득도 가능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곳 5·6호 햇빛발전소만 해도 680kW(킬로와트)에요. 1MW(메가와트)라고 하면, 태양광이 많을 것 같지만 얼마 안 되죠? 시골에서는 이렇게 면적을 크게 쓰지 않고도 마을주민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제 생각 같아서는 앞으로 3MW~5MW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 진짜 ‘농촌기본소득’이 되는 거죠. 5MW면 한 달에 5천만원씩 나오잖아요. 그러면 50가구에 월 100만원씩 줄 수 있고, 젊은 사람들도 들어와서 살만하지 않을까요?” -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농촌기본소득 100만원에 농업을 할 수 있다면, 저도 끌리네요.” - 30대 기자
지난 10일 오전 ‘구양리’에서 운영하는 햇빛발전소를 최 전 비서관과 둘러보며 나눈 대화다.
이날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를 찾았다. 전국 최초의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을 보기 위해서다. 보통 농촌 태양광이라고 하면, 소수의 땅주인이나 외부사업자가 주도한 사업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곳은 다르다. 이곳은 마을주민이 공동으로 태양광 사업을 추진해 그 수익을 마을복지에 사용한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로부터 이곳의 다양한 복지 시스템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날 오전에 최 전 비서관이 한 말이 떠올랐다. 최 전 비서관이 꺼낸 ‘농촌기본소득 100만원’ 얘기는 단순히 희망사항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구양리 같은 마을에서 독립적으로 실현하고 있을지도 모를 정책이었다. 구양리를 “고급 실버타운”이라고 소개한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진행자의 표현도 과장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병원에 모시고 가”
교통약자 위한 ‘구양리 행복버스’
“함께 먹어야 즐겁지”
계속 생각나는 무료 마을식당
2024.09.10. ⓒ민중의소리
아직 여름인데도 쌀알이 꽤 실했다. 밥알이 원래 저렇게 컸나 싶을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쌀 맛이 좋고 기름져서 임금에게 바쳤다고 하는데, 정말인 듯싶었다. 마을 서쪽으로는 양화천이 흐르고, 나머지 삼면은 울창한 숲과 언덕이 둘러싸고 있으며, 토양이 비옥한 이 마을 이름은 ‘구양리’다. 보금산 주봉 고양이바위의 아홉 가지 무지갯빛이 마을에 비친 뒤 마을이 크게 형성됐다고 하여, 구양리(九陽里)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구양리’의 ‘양’(陽)은 ‘햇볕 양’ 자다. 앞에 ‘구(九)’는 숫자 9를 의미한다. 마을 공유지와 창고 지붕 등에 이미 6개의 햇빛발전을 마을 공동의 자산으로 설치했으니, 3개만 더 설치하면 정말 ‘아홉 개의 햇빛 마을’ 구양리가 된다. 노랗게 익어가는 논밭 너머로 햇빛발전소를 모자처럼 쓴 마을창고, 마을 공동농기계 주차장 등이 있는.
물론, 햇빛발전소는 구양리가 아니어도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이 소중한 이유는 단순히 햇빛발전소가 있어서가 아니다. 작은 결실이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마을공동체가 햇빛발전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수익을 전부 마을주민복지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10일 구양리 마을사무소 앞에 세워진 구양리 행복버스. 이 마을공용버스는 수계기금으로 마련해, 현재 햇빛발전에서 나오는 수익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4.09.10. ⓒ민중의소리
구양리는 대중교통이 잘 다니지 않아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이에, 마을은 수계기금과 햇빛발전의 수익으로 교통약자를 위한 ‘구양리 행복버스’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장날이면 여럿이 모여서 행복버스 타고 시장에도 갔다 오고, 어르신들 무슨 일 있거나 아프면 구급차 대신 병원에도 간다”고 말했다. 이현 마을사무장은 “아직 딱 정해지진 않았지만, 어르신들 병원 가시는 거 힘드니까 아침 9시쯤에 모시고 간다. 또 오후에 몇 분이 뭘 사러 같이 움직일 때도 같이 다녀온다”며 “앞으로 좀 더 안정적이게 되면, 어르신들 모시고 영화도 보러 가고 날 잡아서 예방접종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구양리는 마을사무실 바로 앞 경노당에서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있는데, 햇빛발전 수익으로 이를 마을 전체주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할 계획이다.
구양리는 마을회관에서 마을공용 무료식당을 운영한다. 현재 1일 1회 점심을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햇빛발전 수익 등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사진은 10일 기자가 마을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접시에 음식을 떠 놓고 식탁으로 가져가기 전에 찍은 것이다. 2024.09.10. ⓒ민중의소리
마침 이날 인터뷰 중 마을식당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필 기회가 있었다. 마을 분들이 점심 먹는 모습을 사진자료로 남기기 위해 식당에 갔더니, 어르신들이 손짓하며 “얼른 밥 먹고 가라”면서 접시를 내줬다. 커다란 접시에 준비된 음식을 스스로 떠먹는 뷔페식이었다. 덕분에 달콤·매콤한 오징어초무침, 오독오독 씹히는 미역줄기무침, 빨간 콩나물볶음, 감칠맛이 일품인 볶음김치, 시원·시큼한 미역냉국으로 점심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온실가스 없는 햇빛발전처럼, 건강식의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에 앉아 여러 주제로 대화도 하고 농담도 하며 점심을 먹다가, 70대 어르신에게 ‘여기서 밥을 먹으면 어떤 게 좋으신지’ 물었다. 어르신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함께 먹으니까 즐겁지.” 이곳은 홀로 사는 어르신이 많은 농촌마을에 꼭 필요한 복지시설이었다. 마을식당은 현재 더 많은 주민이 더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다. 마을 햇빛발전 덕분에 마을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으로 본 실현가능한 꿈
‘농촌기본소득 100만원’
“지역·농촌 살릴 유일한 대안”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지도 ⓒ민중의소리
72kW급의 4호 햇빛발전은 구양리 건강관리실 앞 주차장에 설치됐다. 주차장에 설치된 햇빛발전은 농기계나 차량의 그늘막으로도 사용된다. 또 그 옆에 76kW급의 1호 햇빛발전은 마을 창고 지붕에 설치됐다. ⓒ민중의소리
현재 구양리 67가구 마을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은 ▲ 마을정미소 뒤편 마을창고 지붕에 2호(36kW) ▲ 구양리 건강관리실 앞 주차장에 4호(72kW) ▲ 마을 풋살구장 옆 창고에 1호(76kW) ▲ 공터로 변한 옛 마을축구장에 3호(131kW) ▲ 마을 안쪽 농지 옆 일반부지 두 곳에 5호(204kW)와 6호(480kW) 등 총 6개다. 마을주민이 함께 저리융자 대출로 마을 부지·시설에 햇빛발전을 설치하고, 수익을 마을복지의 형태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얼마 안 되는 수익일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으로 매달 3천만원이 넘는 매출이 발생하고 있으며, 원금과 이자를 내고도 순수익은 꽤 남는다. 이현 마을사무장은 “한달에 못 해도 (순수익이) 한 1천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장마로 한 달 내내 비가 내렸던 8월에도 매출은 2천만원 상당이었다. 최 전 비서관이 말한 “농촌기본소득 100만원”은 절대 허황된 꿈이 아닌 것이다.
농촌마을에서 햇빛발전 수익으로 나눠주는 기본소득과 마을 또는 국가 소유의 땅을 빌려 안정적으로 농사에 집중할 수 있다면, 기본적인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청년들이 굳이 도시에서만 아등바등 살아야 할 이유도 적어진다. 그렇다면 농촌·지역 소멸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에너지전환의 실마리도 풀릴 수 있다. 최 전 비서관은 구양리 사례를 “만병통치약”에 비유하며 “지역과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 아닐까”라고 말했다.
마을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햇빛발전 설계
10일, 기자는 점심에 마을의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2024.09.10. ⓒ민중의소리
이날 오전, 구양리 마을 입구 근처 그늘에서 쉬고 있는 주민들과 마을이 운영하는 햇빛발전소 얘기를 하다가 물었다. “햇빛발전소 어떠세요?” 그러자, 한 주민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우리야 좋죠. 우리에게 혜택이 오니까. (갈등 생기지 않게 일을) 하는 사람이 힘들지.”
문재인 정부 말 농촌에서 논란이 됐던 태양광사업을 생각하면, 이곳 구양리 주민의 반응은 낯설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된 에너지전환 정책에는 일부 철두철미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문제없는 농지를 ‘염해’가 있는 땅으로 판정해 태양광이 뒤덮이거나, 그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농민이 밀려나면서 농촌이 시끌시끌했다. 진보적인 농민단체조차 태양광 정책에 반대하고 나섰다. 농지에서 햇빛발전을 하려는 주최가 외부인, 땅주인, 기업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농민들이 경작할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구양리에서 만난 김대선 전 이장도, 심지어 구양리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전주영 새마을지도자도 처음 태양광을 농촌에서 접했을 때는 부정적이었다.
“그때는 태양광을 몰랐으니까” - 김 전 이장 “모르기도 했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경작하던) 논이 확 줄어버린 건데” - 전 지도자, “맞아, 논도 줄고”- 김 전 이장
구양리 근처에 들어온 외부사업자의 햇빛발전소 ⓒ민중의소리
실제, 외부에 사는 땅주인이 버섯재배를 겸하는 햇빛발전소를 지으면서 김 전 이장이 경작하던 농지가 줄었다. 최재관 전 비서관은 당시 해당 농지에서 함께 모내기를 하다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가 태양광 이런 걸 해야 한다고 하니까, 다들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거 들어와 봐야 농민들 땅만 빼앗기지, 뭐 좋은 게 있느냐면서…” 그래서 최 전 비서관이 생각한 게 땅주인이나 외부인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닌, 농민과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이었다. “해외 사례를 찾아봐도, 유럽도 농민의 반대가 심하더라고요. 근데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곳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이익을 어떻게 나누느냐’라고 생각했죠.”
최 전 비서관은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구상을 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시하는 등 실현하기 위해 힘썼다. “당시 지역위원장하면서 당 탄소중립위에서 활동했는데, 농촌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을공동체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 사업을 제안했어요. ... 그때는 문재인 정부 시절이니까. 곧 산업통상자원부와 당정협의를 통해 ‘햇빛두레’라는 사업이 만들어졌죠. 구양리가 이 공모에 응모해서 된 거예요.” - 최 전 비서관
그렇게 정의로운 에너지전환과 농촌의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는 틀이 만들어졌다.
“최 전 비서관이 구상을 하고, 의논을 했어요. 실제로 보니까,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인데 마냥 규제를 풀어서 추진하면, 또 돈 있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와서 수익을 가져가겠더라고요. 농민 대부분 소작농이잖아요. 그러면 농민은 피해자로 구경꾼으로 전락해 다 (농촌에서) 밀려날 상황이고요. 그래서 그렇게 가는 것보다는 반대로 농민이 빨리 햇빛발전의 주인이 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고, 마을 공동의 자산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 전주영 새마을지도자
정부 지원금 ‘0원’으로
여러 난관을 넘고 구현된 ‘햇빛두레’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간판 ⓒ민중의소리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상반기까지 10개 마을을 선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본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업의 핵심 중 하나는 ‘장기·저리 융자 지원’이었다. 재정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금리가 낮은 대출을 받아 햇빛발전소를 세우고 운영하며 얻은 안정적인 수익으로 차차 갚아갈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보통 이 같은 지원사업이라고 하면 정부의 보조금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억측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다만, 이 사업공모에 신청한 농촌마을은 7개뿐이었다. 그리고 5개 마을은 갖가지 이유로 사업이 무산됐다. 마을공동체 형태의 햇빛발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결국 남은 곳은 여주에 있는 구양리와 대신3리 두 곳뿐이었다.
구양리가 지금의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모델을 실현하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햇빛발전소 1호와 4호 사이에 있는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간판에는 사업자인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협동조합’(이장 지종성, 새마을지도자 전주영)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 ‘구양리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사례는 두 편의 기사로 나눠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1편에서는 구양리를 직접 둘러보고 마을 주민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토대로 이곳 햇빛발전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 다룹니다. 2편에서는 전주영 새마을지도자와 구양리 마을주민들이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사업을 추진하면서 만난 어려움과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소개합니다. 또 이를 통해 갈등 없는 농촌 햇빛발전 사업은 어떻게 가능한지 최재관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의 의견을 담고자 합니다.
올해 추석 명절만큼 가족끼리 이야기 나눌 거리가 많은 적이 또 있었나 싶다. 하나같이 비관적이고 우울한 주제일지언정 오랜만에 만나 서먹하고 데면데면한 분위기를 깨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않고 터져 나와 읽기조차 바쁘다.
뭐니 뭐니 해도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가 맨 앞자리일 테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개의치 않는 행보가 연일 화제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부인이 있었던가.
한 지인은 가족과 친지들에게 김건희 여사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다고 했다. 이번 명절 연휴엔 서로 김건희의 김자도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단다. 가족들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웃어 보였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도 꺼내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황당한 규칙까지 정했단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내외분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현실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다.
국군의 날 임시 공휴일 지정... 바빠진 교육부
▲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2023.9.26
느닷없는 국군의 날 공휴일 지정 이야기도 이번 추석 차례상에 오를 듯하다. 우리 국군장병의 사기를 높이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명분을 댔다. 그러나 워낙 갑작스럽게 추진된 대책이어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어차피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대기업 직원들만 쉬게 될 거라는 푸념이 쏟아지고 있다. 국군장병의 훈련을 하루 빼주면 사기가 올라간다는 인식도 황당하지만, 주말과 이어진 연휴도 아니고 주중 하루를 쉴 뿐인데 소비 진작을 호언하는 정부의 발표가 놀라울 따름이다. 임시 공휴일을 지정하면 온 국민이 좋아할 거라는 '1차원적 사고'다.
임시 공휴일이라는 대통령의 '깜짝 선물'에 교육부는 본의 아니게 바빠졌다. 대개 10월 초는 학교마다 중간고사를 치르는 시기여서다. 국군의 날인 10월 1일 당일에 시험 일정이 잡힌 학교에서는 앞으로 당기거나 뒤로 미뤄야 하는 등 혼선이 불가피하다. 시험을 대비하는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비난이 쏟아지는 건 당연지사다.
시험 기간을 비롯한 모든 학사일정은 교육과정을 반영해 학년 초에 수립된다. 당일의 일정을 예측할 수 있어야 수업에 차질을 빚지 않게 된다. 수업 등의 교과 활동과 다양한 비교과 활동은 예측 가능성과 연계성이 생명이다. 하물며, 사실상 대학 입시의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 일정이 갑작스럽게 변동된다는 건 치명적일 수 있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일선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국군의 날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시험 일정과 체험학습 계획이 변경된 경우를 파악하겠다는 거다. 이미 언론에 대서특필된 마당에 그 수가 많다고 한들 임시 공휴일 지정을 취소할 수도 없을 테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학교마다의 학사일정을 사전에 전수조사한 뒤 임시 공휴일 지정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 실질적 효과와 기회비용 등을 철저히 따지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뒤 발표하는 게 순리다. 지난 2년 반 동안 익히 봐왔듯이, 일단 저질러놓고 수습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건 현 정부의 전가의 보도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건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료들이다. 대통령의 즉흥적인 결정에 대해 사전에 학교 교육의 파행이 불가피하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어야 옳다. 이제야 공문을 내려 전수조사하겠다는 행태는 사후약방문과 다를 바 없다.
국군의 날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되레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진 모양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휴일이 늘었다고 흔쾌해하는 사람이 없다. 학교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가 생겼다며 볼멘소리하고, 당장 맞벌이 가정에서는 자녀를 하루 맡길 곳을 찾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당일 가두 행진을 준비해야 하는 국군장병들도 썩 내켜 할 것 같지 않다.
국군의 날이 10월 1일인 이유
▲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대군인 취·창업 박람회를 방문한 뒤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를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마당에, 국군의 날 임시 공휴일 지정을 화두로 가족들끼리 다른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갑자기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국군의 날이 10월 1일이었다는 걸 온 국민이 알게 됐다. 요즘 아이들 중엔 국군의 날이 언제인지는커녕 그런 기념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국군의 날은 지난 1991년 쉬는 날이 너무 많아 경제성장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한글날과 함께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공휴일이 아니면 기념일의 취지가 잊히는 건 인지상정이다. 지난 2012년 공휴일로 재지정된 한글날이 10월 9일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심지어 왜 10월 9일로 정해졌는지 그 이유까지 술술 읊어댈 정도다.
국군의 날이 왜 10월 1일로 정해졌는지 아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의 법정 기념일 중에 지정 이유가 가장 황당할뿐더러 아예 취지와 상반된 날로 여기고 있다. 10월 1일은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이 감행되고 서울을 수복한 후, 북진하며 육군 제1군단이 38도선을 넘은 날이다.
당시 제1군단을 이끈 인물은 악질 친일파로 손꼽히는 김백일이었다. 그는 만주에서 항일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의 중대장으로서 일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자다. 해방 후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개명할 만큼 파렴치했던 그는 6.25 전쟁의 공적으로 순식간에 친일반민족행위자에서 애국자로 돌변했다. 육군사관학교 교정엔 그의 동상까지 세워졌다.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적절치 않다는 건, 악질 친일파가 연루됐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6.25 전쟁 중 38도선 돌파가 대한민국 국군을 대표할 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지 되물을 때도 됐다. 그것은 우리 국군의 위상을 넘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국군의 날 지정은 우리 국군의 뿌리 찾기의 일환이어야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온 국민이 애송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첫 구절이다. 1948년 제헌 헌법 제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점일획도 손대지 못한 추상과 같은 선언이다. 우리 정부의 법통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다면, 우리 국군의 뿌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설한 한국광복군에 두어야 옳다. 곧, 국군의 날을 한국광복군의 창설일로 삼는 건 당연하고도 마땅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추석은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날과 겹친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머물던 중국 충칭에서 창설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김구가 총사령으로 지청천, 참모장으로 이범석을 임명하며 개최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번 명절 연휴 때 가족들끼리 국군의 날의 유래와 한국광복군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국광복군 창설일과 겹친 올해 추석,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국군의 날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준 셈이어서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푸릇한 채소와 소‧돼지를 키우는 농촌 마을, 바닷배 띄우는 어촌 마을, 공장이 즐비한 산업 단지, 철 부딪히는 소리 요란한 조선소와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깻잎을 따고 광어를 키운다. 우리가 사는 집, 우리가 타는 자동차와 배 모두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기피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그들의 이름은 '이주노동자'다.
한번 상상해보자. 우리가 기피하던 곳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 경기 파주 한 비닐하우스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 사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도 한때는 이주노동자였다
우리는 오해한다. 우리가 그들을 '받아준'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리가 그들을 '불러온' 것이었다. 한국인 기피 사업장에 불러올 이주노동자 인력 규모를 올해 16만5000명으로 늘린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 정부였다. 그런데도 한국의 사장님들은 여전히 '일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며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월 중소제조업체 1200곳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3만5000명의 이주노동자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할 일을 남이 하면 고마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인간 이하 취급하기 일쑤다. 농장에서 가축의 분뇨를 치우다 질식사한 이주노동자,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다 손가락이 잘린 이주노동자, 임금 몇 개월 치를 떼먹힌 이주노동자 이야기가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타는 것 대부분에 그들의 설움이 녹아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은 게 하나 있다. 그들의 지금이 우리의 과거였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타지에서 설움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 영웅'으로 칭송받는 파독 광부들은 과거 기온이 35도에 달하는 지하 1000미터(m) 깊이 갱도에서 사람 무게만 한 작업 도구를 다루며 피땀을 흘렸다. 파독 간호사들은 시체를 닦는 일을 맡거나, 고되기로 유명한 호스피스 병동에 배정되곤 했다. 그런데도 보통 독일인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당했다. 책 <파독광부생애사>에 따르면, 파독 광부 이문삼 씨는 독일인에게서 "둠(dumm; 바보), 너는 코리아로 가야 돼"라는 말을 들은 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베갯잇을 적셨다고 회상했다. 정승식 씨는 외국인으로서 주택을 임대하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 책에는 병원에서 근무 중 의사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는 타박을 들어 울며 기숙사로 돌아간 은숙 씨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목숨도 지키지 못했다.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광부가 27명,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가 19명이었다. 죽음마저 감수해야 할 열악한 작업 환경을 견디다 못한 한국인 노동자들은 작업장 이동을 요구하고, 부당한 임금 체불에 맞서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 2013년 5월 서울 서초에 문을 연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 파독 노동자들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의 삶은 위태롭다
국내총생산(GDP) 100달러 시절에서 3만 달러 시대로 너무 급하게 훌쩍 지나온 탓일까. 파독 노동자들이 만리타향에서 겪은 아픔은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 듯하다. 파독 한국인 노동자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는 마치 대물림하듯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에게 옮아갔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에 대한 많은 통계와 조사가 이를 보여준다.
먼저 임금체불. 고용노동부의 올해 1~7월 통계를 보면,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은 699억3900만 원으로 전체 임금체불액의 5.7%였다. 이주노동자가 국내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등록자를 기준으로 약 3%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에 비해 2배가량 임금체불 피해를 더 많이 겪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산업재해. 노동부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이주노동자 산재사고 사망자는 85명으로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의 10.5%였다. 이 역시 이주노동자가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해 계산하면, 한국인에 비해 이주노동자가 3배가량 더 많이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주노동자가 본국에 돌아가 잠복기가 지난 뒤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리고 언어 장벽, 고립된 처지 등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이나 산재 대응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의 산재 수치는 이마저도 과소추계된 것일 수 있다.
차별과 갑질, 성희롱은 그들에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조사를 보면, 이주민 10명 중 7명이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차별 사유로는 '한국어 능력'(62.3%), '한국인이 아니어서'(56.8%), '출신 국가'(56.8%) 등이 꼽혔다.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의 2019년 조사를 보면, 여성 이주노동자 10.7%는 '성폭행·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했는데, 그 중 '성폭행' 응답이 47.4%였다.
온라인상에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혐오가 넘쳐난다. 심지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리셀참사피해가족협의회·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법원이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구속했을 때 낸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참사 발생 후 66일을 살아내는 동안 받아온 차별, 혐오, 배제의 말과 시선, 감정의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아주 작은 보상"이라고 했다. 아리셀 참사 유족들이 참사 발생 뒤 겪은 일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2019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열린 '12.15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문화제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에서 한 방글라데시 여성이 전통 무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 없는 한국은 위태롭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차별과 갑질, 성희롱을 그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만약 버티지 못하고 그들이 한국을 등진다면, 우리가 기피해왔던 그 자리에 있던 그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과연 한국 사회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매일 식탁에 오르던 깻잎, 맛 좋은 광어와 장어를 우리는 지금처럼 손쉽게 먹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비싸다고 난리인 새 아파트와 새 자동차를 우리는 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을까. 지금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세상이 우리가 꿈꾸던 미래인가.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이 나라가 이주노동자 없이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그들도 결국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그러니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프레시안>은 어느새 우리 안의 '또다른 우리'가 된 그들,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서툰 언어로 한국살이의 설움을 토해냈다. '인력'이기에 앞서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인력이기에 앞서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의 개선점을 살펴보고, 나아가 이주노동자들이 그들이 아닌 우리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평화로운 공존법을 "인력 아닌 인간입니다" 연재를 통해 모색해보려 한다.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지난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결과가 발표됐다. 주가조작에 돈을 댄 전주(銓注) 중 한 명인 손 모씨에게 유죄판결(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내려진 것이 핵심이다. 왜 이게 핵심이냐면 영부인 김건희 여사도 바로 이런 전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손 씨가 유죄라면 당연히 김건희도 유죄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검찰은 김건희를 기소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제 이를 회피할 명분도 거의 사라졌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무엇이냐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건이 세 개 정도 꼬여 있고 그 과정도 좀 복잡하다. 이런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글보다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그래서 독자분들에게 양해를 부탁드리자면 이번 칼럼에서는 이 사건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다음주 월요일(23일) 유튜브 방송 ‘이완배의 경제의 속살’에서 이 사건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시도해보겠다. 이 와중에 죄송스럽지만 깨알 같은(!) 홍보를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갑자기 존댓말). 제가 지난주부터 민중의소리 채널을 통해 ‘경제의 속살’ 방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늘(16일) 2회차‘이낙연의 잘못된 선택이 남긴 것들(링크)’이 업로드 됐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주가조작과 솜방망이 처벌
지난달 말 나는 ‘김건희는 언젠가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대가를(링크)’이라는 칼럼을 통해 김건희가 반드시 받아들 청구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명품가방 수수, 양평 고속도로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이 그가 언젠가 반드시 받아야 할 주요 청구서들이다.
그리고 나는 당시 칼럼에서 셋 중 하나라도 미리 받는 게 김건희 신상에 훨씬 좋을 것이라고 충고한 바 있다. 제 세 장의 청구서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김건희가 절대 감당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세 장의 청구서 중 한 장을 미리 지불할 기회가 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항소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전주로서 김건희가 저지른 범죄’를 정리할 절호의 찬스다. 물론 내가 말하는 이 찬스란 김건희가 무죄로 빠져나갈 찬스가 아니라 유죄 판결로 범죄의 대가를 치를 찬스다.
“그게 무슨 찬스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이건 정말 찬스다. 그의 얼굴 속에 있는 것이 우리가 아는 뇌의 일종이라면, 그리고 그의 목 위에 달린 것의 기능이 무게중심 잡는 데 쓰는 게 아니라면 그는 지금 검찰이 자신을 기소해달라고 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는 게 김건희에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항소심 결과를 보라. 전주 손 씨가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다. 전과자가 되겠지만 감옥살이는 하지 않는다. 김건희가 재판을 받는다면 비슷한 형량이 예상되는데, 이게 그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왜냐하면 솜방망이 판결에 대해 국민은 분노하겠지만 법조계 관행을 볼 때 이 정도 형량은 시비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주가조작 범죄에 대해 그 동안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에스모라는 회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당시 대표 김 모씨가 라임펀드의 자금을 끌어들여 자기 회사 주가를 조작했다. 이때 김 씨가 얻은 이익이 무려 577억 원이었다는 게 수사 결과였다. 그런데 김 씨의 형량이 얼마였을까? 지난해 7월 대법원 확정 판결 결과 그가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5년에 벌금 3억 원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백 선물을 받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모습. ⓒ서울의소리 유튜브 화면
김 씨는 그냥 돈만 댄 전주가 아니다. 무려 회사 대표였다. 그런 그가 직접 나서 허위공시를 발표해 주가를 띄웠다. 환매 중단 사태로 한국 금융역사에 기념비적인 악명을 남긴 라임 펀드를 주가조작에 이용했다. 여기에 횡령, 배임 혐의까지 겹쳤다. 그런데 받은 형이 징역 5년, 벌금 3억 원이다.
더 웃긴 건 2심 판결에서 판사가 김 씨가 한 짓을 “매우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명시했다는 점이다. 그래, 매우 중대한 범죄 행위다. 내가 봐도 그렇다. 그런데 왜 2심 재판부는 고작 징역 5년에 벌금 3억 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했단 말인가?
나중에 재판 받으면 후회할 것이다
그게 법조계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나라는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이 정~말 관대한 나라다. 주가조작으로 기소된 사람 중 절반은 집행유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가조작범의 집행유예 비율은 2020년 40.6%, 2021년 61.5%나 됐다.
최근 3년 동안 대법원에서 자본시장법 주가조작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모두 35명이었다. 그런데 그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고작 5명이었고 나머지는 다 집행유예였다. 가장 많은 벌금액은 고작 20억 원이었다.
미국은 우리와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2012년 미국 헤지펀드 SAC캐피탈이 주가조작에 뛰어들어 약 3,000억 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일이 있었다. 이때 미국 법원이 징수한 벌금은 부당이익의 6배가 넘는 1조 9,000억 원이었다. 주가조작을 주도한 펀드매니저에게는 징역 45년형이 선고됐다.
주가조작 같은 금융사기의 피해자는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런 범죄를 거의 집단학살에 준하는 시각으로 본다. 폰지 사기라는 금융사기 기법을 역사책에 남긴 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은 2009년 무려 150년 형을 선고받고 2021년 감옥에서 죽었다. 2008년 보험 사기로 재판을 받은 노먼 슈미트가 받은 형량은 징역 330년이었고 이 인간 역시 지난해에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느냐? 김건희는 지금 기소돼 재판을 받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지금 기소가 된다면 유죄 판결은 받아도 실형을 받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게 한국의 분위기다.
그런데 지금 남편을 졸라 기소를 피했다고 치자. 특검이 실시되건(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에는 그의 주가조작 혐의도 당연히 들어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서 검찰이 다시 기소를 추진하건, 그때에도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것 같은가?
현행법상 주가조작으로 인한 피해액이 50억 원을 넘어가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재판부가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행은 관행일 뿐 법이 아니다. 여론에 따라 관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증권가에서는 주가조작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특검에 의해, 혹은 차기 정권 검찰에 의해 김건희 주가조작이 사실로 밝혀졌다? 여론이 가만히 있겠나?
“김건희를 구속하라!”라는 목소리를 넘어서서 “지금까지 한국 검찰과 법원은 왜 이렇게 주가조작에 관대했느냐?”라는 폭발적인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때 특검 혹은 검찰과 법원이 “관행상 주가조작은 처벌을 그렇게 강하게 안 했어요”라고 핑계를 대며 솜방망이 처벌을 할 수 있겠나? 웃기는 이야기다. 되레 그런 관행을 완전히 뒤엎고 미국처럼 엄격히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국을 뒤덮을 것이다.
그래서 기소가 되려면 지금 되는 게 김건희에게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기소가 되고 유죄 판결을 받으면 아무리 형량이 낮아도 공정을 앞세운 윤석열 정권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애초에 윤석열은 공정하지도 않았고, 그런 이미지는 지금 쥐뿔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기반이 무너진다는 말은 무너질 기반이 있을 때에나 하는 이야기다.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에게 기반은 개뿔! 그게 기반이면 우리집 고양이는 드래곤이다. 아무튼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청구서 세 장 중 주가조작 청구서라도 지금 지불해 놓는 게 좋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겠지? 그럼 맘대로 하시던가. 나중에 아주 크게 후회할 거다.
▲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폐회식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일 파리 패럴림픽이 끝나면서 7월 26일 시작된 파리 올림픽 이후 모든 대회가 종료되었다. 7월 초 국내 언론들은 환경올림픽을 표방한 파리 올림픽에서 선수촌 아파트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선수들을 걱정하고 파리올림픽 조직위를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쾌적한 선수 숙소를 위해 에어컨이 필수라 여기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었다. 에어컨 미설치 문제는 참가국 대표단 회의에서 여러차례 다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한발 물러난 조직위는 원하는 선수단에 한해 에어컨 설치를 허용했고 7500개 숙소 가운데 2500개 숙소에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2/3에 해당하는 나머지 선수단 숙소에는 아무런 냉방 시설이 없었는데 선수들이 무더위에 시달렸을까?
파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지열에너지 건물로 여름에 에어컨이나 겨울에 히터가 따로 필요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2020년 1월부터 3년 6개월에 걸쳐 건설된 지열에너지 발전소와 연결되어 선수촌 내 모든 공간은 80미터 지하에서 끌어올린 물이 바깥 기온보다 6도가량 낮은 상태로 실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파리의 7월 평균 최고 기온이 26.5도이고 각 숙소에 선풍기가 설치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에어컨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조직위가 판단한 것이다.
일부 선수단의 에어컨 반입 결정에 대해 40개 에너지전환단체 연합인 '에너지전환 네트워크(CLER)의 다니엘 드브뢰일 대변인은 "지열에너지에 대한 정보와 신뢰가 부족했던 탓"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결정은 선수촌 내에 에어컨이 방출하는 열기를 통한 열섬 현상을 초래하여 다른 입주자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면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평했다.
파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올림픽이 끝난 후 지역 주민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 활용된다. 선수촌 아파트를 위해 지어진 지열에너지 발전소는 선수촌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 냉난방을 공급하게 된다. 시공사인 엔지 솔루션(Engie Solutions)은 지열 발전소 건설과 네트워크 공사에 2900만 유로(약 428억 원)가 소요되었고 별도의 냉난방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시스템으로 연간 5만 60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파리의 지열 에너지
▲ 프랑스 최초의 지열에너지 건물 '라디오 프랑스' ⓒ 위키미디어 공용
파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가 지열 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을 해결한 최초의 시도는 아니다. 1973~74년 석유 파동 당시 파리 동쪽 외곽 지역인 발드마른(Val de Marne)에서 지하 온수가 발견되면서 프랑스 지열 에너지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발드마른은 지자체 차원에서 수십 개의 지열발전소를 건설하고 난방 네트워크를 설치해 현재 세계에서 지열 발전소가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원자력이 등장하면서 지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일부 기업은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그르넬환경협정과 2009년 지열발전기금 창립이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에너지 자원 감소와 기후 변화라는 지구적 과제가 지열에너지를 다시 주목받게 하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 최초의 지열 에너지 건물은 파리 16구에 위치한 라디오 프랑스(La Maison de la Radio France)다. 석유 파동이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지기 10년이나 전인 1963년,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앙리 베르나르의 결정에 따라 라디오 프랑스는 설립 초부터 재생에너지 냉난방 시스템을 갖췄다.
여러 공영 방송사와 음악 공연장, 상설 오케스트라 등이 입주한 10만m²의 거대한 공간은 지하 600m에서 끌어올린 물을 통해 쾌적한 실내 온도를 유지해 왔다. 겨울에는 스튜디오 활동에서 발생하는 열을 회수해 시스템을 백업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냉방을 위해 찬물을 순환시켜 왔다. 60여 년 동안 이 건물을 덥히고 식혀온 물은 센강으로 방류되어 바다로 흘러가며 지속적으로 순환되는 효과적 재생에너지임을 입증해 왔다.
항공 여행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지만, 파리의 두 공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온 대표적 기관이기도 하다. 파리의 오를리 공항은 2010년부터 자체적인 지력 발전소를 갖추고 1800미터 지하의 물을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해 왔다.
현재 오를리 공항에서 사용되는 냉·난방에너지의 50%를 공급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0을 목표로 한다. 오를리 공항은 1996년부터 빗물을 모아 매년 올림픽 수영장 1.5개에 해당하는 물을 절약하고, 기내에서 사용하지 않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등 에너지 재생과 관련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파리 북부에 있는 샤를 드골 공항도 2026년 지열을 통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 공사를 하고 있다. 이 공사가 끝나면 샤를 드골 공항은 냉난방 수요의 32%를 지열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파리 뤽상부르그 공원 옆에 자리한 상원도 2017년부터 지열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해 냉난방의 70%를 지열에 의존하고 있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도 이 대열에 합류해 2024년 가을부터 기존의 화석 연료 대신 냉난방의 87%를 지열 에너지로부터 공급받게 된다.
▲ 프랑스 일드 프랑스 지역의 지열에너지 보급 현황을 보면 30만 이상의 가구가 지열에너지로 난방을 하고 있다. 발드마른 지역엔 18개의 발전소가 있어 가장 지열에너지 보급율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 프랑스지열에너지협회
프랑스의 수도권인 일드 프랑스(Ile de France)는 프랑스 지열 에너지 생산량의 82%를 차지하는 선도적인 지역이다. 약 50개의 네트워크를 통해 현재 약 100만 명(일드프랑스 인구의 8%)의 주민들에게 지열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일드 프랑스 지자체는 2016년부터 지열 에너지 확대를 위해 1억 5000만 유로(약 2212억 원)를 투자해 왔고 장기적으로 생산량을 두배로 늘리고자 한다.
파리-일드프랑스 지역 에너지 소비량의 69%가 교통수단이 아닌 주택과 건물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지역의 탈탄소화를 위한 주요 과제는 주택·건물에서의 에너지 전환인 셈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지열 에너지로 난방 시스템을 교체하려는 가정에 최대 1만 1000유로(약 1622만 원)를 지원하면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적극 장려하고 있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 년 내내 생산되고 순환... 완벽히 재생 가능 에너지
▲ 2023년 12월 22일(현지시간) 파리 올림픽 선수촌에 전력을 공급할 프랑스 생드니의 지열 에너지 발전소 안으로 작업자가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미국, 뉴질랜드, 멕시코, 러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케냐 등 전 세계 20여 개 나라가 지열 에너지를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이슬란드와 필리핀이 가장 선도적인 국가로 꼽힌다. 나라 전체가 화산섬인 아이슬란드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고 난방의 90%를 지열로 공급한다. 화산 활동으로 발생하는 풍부한 지열에너지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전력의 28%를 지열 발전으로 생산하는 최대 소비국으로 꼽히기도 한다. 화산 지형이라는 특징을 가진 나라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특별한 지형적 이점을 갖지 않은 나라들도 안전하고 풍부한 재생에너지인 지열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열 에너지는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고 경관을 해치지도 않으며 지면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는다. 또한 지하에 있는 유한한 자원을 채취해 고갈시키지도 않는다. 지하수가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 년 내내 생산되고 순환되기 때문에 완벽히 재생 가능한 에너지다. 도심에 열섬 현상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여름엔 실내를 냉각시키고 겨울엔 실내를 덥힌다.
라디오 프랑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가동되는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원자력처럼 처리 난감한 쓰레기를 배출하지도 않는다. 현시점에서 지적되는 기술적 제약은 시추공을 서로 가까운 곳에 뚫을 수는 없다는 점 정도다. 물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 올려야만 한다. 지열 발전소를 짓고 네트워크를 건설하려는 지자체의 경우 초기 비용이 상당히 소요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미래를 위한 후회 없는 투자가 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지열 에너지가 약속할 수 있는 냉방의 수준은 바깥 기온보다 최대 6~8도까지 실내 기온을 내려주는 데 머물러 있다. 이는 현재까지 도달한 기술의 한계일 수도 있고 프랑스인들이 판단하는 적정선일 수도 있다. 여름에 실내 기온을 더 낮게 맞춰놓고 살아온 우리에게 이 정도의 냉방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여름 기온이 프랑스보다 높고 습도도 상당한 수준인 우리나라가 직면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하지만 에어컨의 가장 사악한 단점인 '안을 식히기 위해 밖을 덥히는 일'은 피할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기록적으로 더워지는 여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언젠가는 내 방안을 식히기 위해 지구를 더 뜨겁게 달구는 모순을 중단하는 길에 들어서야 하지 않을까.
경찰과 소방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지난 8월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난 차량을 감식 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정부가 전기차 화재 대책을 내놨지만, 국민적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대책을 재탕한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 검증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채야 한다는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직무 유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 6일 전기차 화재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1일 인천 청라 화재로 확산된 전기차 포비아 사태를 일단락 짓는 성격이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벤츠 EQE 차량에서 시작된 대규모 화재로 800대 이상의 차량이 전소되거나 그을렸고, 입주민들은 단전과 단수로 임시거주시설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이번 대책에는 배터리 관리 강화 방안이 담겼다. 전기차 배터리 사전 인증 제도의 시행 시기를 당초 내년 2월에서 올해 10월로 앞당기는 내용이 핵심 대책으로 제시됐다. 해당 제도가 시행되면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을 인증한 전기차만 출고가 가능하다.
현재 한국은 정부가 자동차 부품 안전성을 사전에 검증하지 않고, 완성차 업체가 자체적으로 검사하는 자기인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자동차가 출시된 이후 국토부가 차량과 부품을 구매해 안전기준 적합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자동차를 판매하기 전에 정부가 안전기준 적합 여부를 확인하는 사전 인증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19년 코나 EV를 비롯해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자, 배터리에 대해서는 사전 인증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은 기존에 예정된 배터리 사전 인증 제도의 시행 시기만 조정하는 수준에 그쳐, 보다 실효적인 제도 개선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최영석 원주한라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객원교수는 “당초 예정된 팩 단위 사전 인증 제도를 재탕하면서 생색내는 것에 불과하다”며 “의미 있는 정책적 변화는 없다”고 지적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합동브리핑실에서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9.06. ⓒ뉴시스
팩 단위 물리 시험은 한계…핵심은 셀 검증
사전 인증 실효성의 핵심은 검증 대상과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배터리 사전 인증 제도의 시험 대상이 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총체를 이르는 단위가 팩이다. 팩은 수백 개의 셀로 구성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이 팩에 대해 진동·열충격·과충전·침수·충격 등 항목을 시험한다. 물리적인 내구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팩 단위 사전 인증으로는 배터리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위 단위인 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배터리 화재는 외부 충격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셀 자체의 제조 불량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코나 EV 화재는 셀 내부의 단락(합선)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정부는 셀 단위 사전 인증을 통해, 셀 전압의 적정성과 정상 작동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셀 업체로부터 자료 확보도 가능하다. 셀이 어떻게 설계됐는지, 셀 업체의 자체 검수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 정보를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다. 팩 단위 사전 인증 체계에서는 정부가 셀 안전성을 검증하지 못할뿐더러, 셀 업체에 자료를 요구할 권한도 없다.
사전 인증을 팩 단위에서 셀 단위로 세분화하는 건 정부의 전기차 안전성 관리 범위를 완성차 업체에서 배터리 업체로 확대한다는 의미가 있다.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업체에서 셀을 납품받아 팩을 만들고 전기차에 탑재한다. 사전 인증 대상을 팩으로 국한하면, 셀 업체에 대한 정부 관리가 제한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정부가 셀 단위 사전 인증을 하게 되면 테스트 방법과 기준 등 관련 표준이 정립될 것”이라면서 “모든 셀을 하나하나 시험하는 게 아니라 특정 셀에 대한 테스트를 거치는 것이기에 장비를 도입하면 무리 없이 인증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영석 교수는 “사전 인증은 정부가 직접 시험하는 것뿐 아니라 업체로부터 자료를 받아 검증하는 작업도 포괄한다”며 “정부가 셀 설계와 공정, 업체 자체 검수 작업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에 검증 맡기고, 안전성은 소비자가 판단하라?…“정부 직무 유기”
주요국은 정부가 팩뿐 아니라 셀 단위로 배터리 안전성을 관리한다. 미국은 자기인증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나, 한국과 달리 정부가 셀 업체를 포함한 부품사를 직접 조사할 수 있다. 중국이 시행하고 있는 사전 인증 제도는 셀 단위 시험을 포함한다. 유럽도 사전 인증 체계 안에서 셀 업체 자료를 받아 검증하고 있다.
팩 단위가 아닌 셀 단위 사전 인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도 팩 단위를 고집했다.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 관리 역할을 회피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호근 교수는 “정부가 관리해야 할 안전성 검증을 민간 업체에 맡겨 버리는 건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며 “전기차 화재에 있어서 원인 혹은 확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배터리 셀에 대한 관리를 정부가 못한다는 건 난센스”라고 말했다.
최영석 교수는 “셀 단위 사전 인증을 도입하면 주무 부처인 국토부와 산업부 책임이 강화되고, 업체 입장에서도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사항이 늘어나는 부담이 생기다 보니 적극적으로 추진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부는 셀 안전성 관리 책임을 외면한 채, 기초적인 수준의 셀 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내놨다. 현재는 배터리 용량과 전압, 최고 출력을 공개하게 돼 있는데, 여기에 셀 제조사를 의무 공개 대상에 추가했다.
인천 청라 화재 시발점이 된 벤츠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가 당초 CATL로 알려졌으나 정부 조사 결과 파라시스 에너지였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혼란이 야기된 바 있다.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제조사를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건 알권리 보장 측면에서 합당하나, 전기차 화재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배터리 제조사는 안전성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척도로서 역할은 하지 못한다. 소비자가 배터리 제조사를 안다고 해서 전기차 화재 가능성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배터리 제조사 공개는 필요한 조치지만, 전기차 화재 예방 차원에서의 대책이라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가 결국 여야의정 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그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정부·대통령실과의 의견 충돌까지 불사하면서 주장해온 '추석 전 협의체 개문발차'는 실패로 돌아갔다.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이 결국 '2025년 증원'이라는 원점에서부터 엇갈리면서, 당내 입지가 불안정하다는 평가 속에서 한 대표가 야심차게 꺼내든 의정갈등의 '중재자' 역할도 오리무중에 빠졌다.
의협을 포함한 8개 의사단체는 13일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현시점에 협의체 참여는 시기상조"라며 추석 전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불참 의사를 확실히 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25년 의대정원 증원 철회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 등 의료계의 기존 요구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추석 전 협의체 구성을 목표로 '의제 제한' 여부 등을 두고 돌고 돌던 논의가 결국 원점으로 복귀한 셈이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12일 의료대란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2025년 정원 재논의를 포함한 모든 의제가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강조했고, 의료계가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의 실언 논란을 향해서도 "그런 발언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당의 대표로서 그런 것이 있었던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의료계를 달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반면 당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우리 의료체계는 어렵지만 아직 굳건하게 작동하고 있다"며 지금의 의료대란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기존의 정부 입장을 반복했다. 한 총리는 " "개혁을 미루면 머지않아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쉽다", "정부·여당은 겸허하되 심지 굳게 나아갈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대표와 한 총리는 당일 당정협 비공개 회의 과정에서도 25년 증원안에 대한 협의체 재논의 여부, 현재 의료대란 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 등을 두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일 논평을 통해 "'의료계가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해석에 대한 문제"라고 봉합을 시도했지만, 양자 간의 입장 차이는 비공개 회의가 아닌 모두발언에서부터 극명하게 엇갈려 새로운 '당정갈등'이라는 평가를 낳았다.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 이전부터 '2026년 의대 정원 유예'라는 중재안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운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여당 연찬회 불참도 그로 인한 것이었다. 한 대표는 "해결을 위한 협의와 중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적극적으로 본인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지만, 그 중재의 실효적인 결과는 나오지 못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역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등 위원들이 추석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 같은 중재 시도와 실패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당 대표 취임 직후에는 제3자 채상병 특검법으로, 총선 국면 비대위원장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 영부인의 '명품백 의혹' 사과에 대한 이견과 이종섭·황상무 사태 등으로 윤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당 안팎에 본인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왔다. 4월 총선의 막판 유세 국면에서 그의 단골 멘트는 "제가 눈치보지 않고 나서서 (정부의) 부족함을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대표의 첫 번째 '중재' 대상이었던 대통령 영부인의 사과는 결국 없었다. 이는 오히려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동훈-김건희 문자 묵살 논란'으로 이어져, 상대 후보들에게 한 대표에 대한 공격 빌미를 주기도 했다. 당시 당 대표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영부인의 사과가 있었다면 총선 참패는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며 한 대표의 정치력을 문제삼기도 했다. '중재'를 명분으로 대통령과 선을 그으며 정치세력화에 나선 한 대표에게, 그 중재의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처음으로 당내에서 제기된 순간이었다.
총선 당시 이종섭·황상무 사태에서부터 이어진 '채상병 특검법 제3자 추천안 괸련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한 대표가 공약으로 내세운 제3자 특검안은 친윤계 지도부인 추경호 원내대표와의 대립, 그것도 원내 구도상으로 열세에 가꾸운 대립 양상으로 이어졌다. 원내 다수파의 '선 수사 후 특검' 당론은 공고했다.
한 대표가 이 때도 "제 입장은 변한 게 없다"는 발언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장동혁·박정훈 의원 등 친한계 인사들마저 제3자 특검을 '공수처 수사 발표 뒤로 미루겠다'며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 관련기사 : 한동훈표 특검 '오리무중'…친한계 "공수처 수사 이후")
민주당 측에서 이를 공격 카드로 손에 쥐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민주당의 두 번째 채상병 특검법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쳐 최종 폐기된 8월, 민주당에선 한 대표를 겨냥 "조건 붙이고 단서 달고 하는 건 결국 하지 말자는 얘기"(이재명 민주당 대표), "열흘 안에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라"(박찬대 원내대표)는 등의 공격을 쏟아냈다.
현재는 대법원장 추천 권한, 제보공작 의혹 수사 등 한 대표의 주장을 일부 반영한 민주당의 세 번째 특검법까지 발의된 상태다. 한 대표 측은 민주당이 명시한 비토권을 명분으로 '무늬만 제3자 특검', '수박 특검'이라는 방어논리를 갖추고 있지만, 제3자 특검법을 공약하며 '특검 정국의 주도권을 뒤집겠다'는 취지로 주장했던 전대 당시 한 대표의 발언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은 다소 궁색한 면이 있다.
앞서 법사위에선 야당으로부터 "제3자 추천 특검법 이 발언은 전당대회용이었다", "10명을 못 찾아가지고 법안 발의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좀 딱한 생각도 든다"(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는 조롱 섞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당내에서도 채상병 특검법 논의를 위한 한 대표의 중진 오찬 등을 두고 '식사 정치의 효용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을 고려하면 뼈 아픈 지적이다. '뒤집겠다' 공언했던 주도권은 당내에서도 당외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덕수 국무총리. ⓒ연합뉴스
이 같은 상황에서 한 대표가 다시금 빼든 '중재' 카드, 즉 여야의정 협의체는 그래서 그 내용적인 가치판단을 떠나 앞으로 한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좌우할 시금석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은 여전히 반복적이다. '정원 재논의', '장차관 경질' 등 의료계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완강하다. 한 대표는 추경호 원내대표는 물론, 이른바 '정점식 사태' 끝에 정책위의장에 임명돼 친한계로 분류됐던 김상훈 의장과도 엇박자를 내며 중재자의 위치에 천착한다.(☞ 관련기사 : 한동훈 "2025년 의대정원도 대화 가능"…여권 내 이견 양상)
의료계의 불참 선언으로 추석 전 개문발차까지 물거품이 되며 '중재자 한동훈'은 다시 코너로 몰린 양상이다. 추 원내대표는 의협의 불참 선언 당일인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의협의 '증원 백지화', '장차관 경질' 등 요구에 대해 "저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걸 자꾸 얘기하면서 대화 자체를 경시하기 보다는 (협의체에) 오셔 가지고 같이 답을 찾자"고 다시 한 번 날을 세웠다.
그는 당일 오전 친한계 정광재 대변인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언급한 '의원총회를 통한 2026년 유예안 공식화'에 대해서도 "중차대한 문제를 무슨 정치인 한두명이 앉아서 흥정하듯이 정할 수가 없다", "합리적인 접근방식이 아니다"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한동훈 비대위 출신의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당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료단체들의 불참 선언에 대해 "여러 단체들이 한번에 통일된 성명을 낸 건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했지만, 결국 추석 전 '중재'는 무산되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는 점에서 한 대표는 이미 옹색한 상황에 놓였다.
야당에서는 의료단체 불참선언 이전부터 한 대표를 겨냥해 "중재하는 이미지만 생각하시나. 집권당 대표라면 말따로 행동따라 하면 되겠나", "지금 당장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찾아가서 국민 안전에 아랑곳 않는 고집을 꺾도록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다"(한민수 대변인)는 압박 공세가 나온 바 있다. 꽃놀이패가 열린 셈이다. 한 대표 또한 야당을 겨냥 "조건을 걸지 말고 일단 여야의정 협의체의 출발에 동참해주시길 바란다"고 쏘아붙였지만, 결국 공격의 주도권 자체가 야당 측에 넘어갔다는 점은 이미 '특검 국면'과 유사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재자 한동훈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추석 연휴 시작 전인 13일 한 대표의 마지막 언론 백브리핑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여야의정 협의체와 관련 돌파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 대표는 "저희는 계속 설득을 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구체성이 결여된 해당 답변이 지난 4월 정부의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다"던 한 대표의 유세 발언과 겹쳐보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당시에도 중재를 외치던 한 대표는 4월 11일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한 바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예섭 기자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어렵게 얻은 시간이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권 명예회장은 인터뷰 도중,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말이 나오더라도 갈라지거나 쇳소리가 났다. 몸이 허약해졌고 침샘에서 침이 분비되지 않아서다. 2-3분마다 수시로 물로 목을 축여야 했다.
그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아니 여전히 이 시대의 아이콘이다. 한국사회에서 ‘민족’, ‘통일’, ‘양심수’, ‘인권’, ‘국가보안법’ 등과 관련된 온갖 모순들이 중첩적으로 쏟아져 나온 시대, 그는 그 모든 모순들과 현장에서 맞서 싸웠다. 그리고 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었다. 어쩌면 그의 고단한 투쟁을 상징하는 영광스러운 훈장일지도 모른다. 2017년부터 시작된 투병생활로 심신이 쇠하고 팔다리가 앙상해졌으나 두 눈은 예리했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의 장기인 정세 파악도 여전히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북측 대남 노선의 근본적 전환에 대해서는 “윤석열 정부의 반북동족대결 때문”이라고 규정했으며, 2차 송환과 관련해서는 “송환 희망자가 마지막 1명 남을 때까지 송환운동을 해야 한다”고 소원했으며, 그리고 통일운동 단체들의 명칭 변경에 대해서는 “시대 상황에 따라서 명칭이 달라질 수 있다”고 유연하게 밝혔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8.15통일독트린’에 대해서는 “자유를 가장해 흡수통일을 얘기하면 안 된다”고 일축했으며, 북측의 쓰레기 봉투 투하와 관련해서는 “남측에서 쓰레기 같은 놈들이 삐라를 뿌리니까 북측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양심수후원회의 ‘명예회장’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평생 명예회장’으로 남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권 명예회장과의 인터뷰는 9월 10일(화), 그가 거주하는 수유리 소재 빌라 자택에서 진행됐다. / 편집자 주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그는 인터뷰 내내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북의 대남 노선 변화, 윤석열 정부의 반북동족대결 때문”
□ 이계환 기자 : 병중임에도 인터뷰를 허락해줘서 고맙습니다. 2017년 6월에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으니 7년을 넘고 있습니다. 투병생활은 어떻습니까?
■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 보다시피 눈에 띄게 며칠 동안 이렇게 쏙 빠져버렸어요. 그리고 암 치료는 이제 끝났어요. 치료를 다 해서 끝난 게 아니라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중단을 선언해서 이제 더는 치료할 수가 없게 된 거죠. 이제 환자로서 앞으로 더 나아지라고 바라는 게 아니고 정말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 그래도 직접 뵈니까 낯빛은 괜찮으신 것 같은데 살이 너무 빠지셨네요. 양팔과 양쪽 다리도 근육이 다 빠진 것 같아 빈약한데 움직이시는 게 좀 아무래도 힘드실 것 같아요. 특히 올여름 무척 더웠지 않았습니까?
■ 추석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더워요. 이 좁은 방안이 너무 더워서 병과도 싸우고 또 더위와도 싸웠어요. 지금 암이 간으로 전이됐거든요. 척추로 전이된 것도 같고 또 뇌로도 전이 되고... 그러니까 어디로 전이 되서 무슨 작용을 하는지 몰라도 살집이 하루아침에 그냥 싹 빠져버렸어요.
□ 며칠 지났지만 9월 2일 기억나시죠? 2000년 9월 2일에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6.15공동선언에 따라 북송된 날입니다. 당시 선생님은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을 실현시킨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데요. 소회가 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 그렇죠. 내가 비록 지금 환자석에 있긴 하지만 매년 9월 2일이 되면 참 역사적인 날로 기억하고 그날을 기념하고 또 2차 송환을 촉구하는 대회도 열고 그랬었죠. 그러다 언제부턴가 촉구대회를 못하게 됐어요. 그러나 최근까지도 늘 그날을 잊지 않고 낙성대에 계신 장기수 선생님들하고는 그날을 기억하는 모임을 가져왔지요.
□ 지금 낙성대 만남의 집에는 2차 송환 희망자들이 계시죠? 2차 송환 희망자는 모두 몇 명인가요?
■ 2차 송환 희망자는 처음에 36명이었다가 지금 낙성대에 계신 양원진, 김영식, 양희철, 박희성 선생 네 분하고 부산에 박수분 선생 그리고 광주에 이광근 선생 등 6명만 남았죠.
□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북측 당대회 전원회의 하고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남북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니고 서로 적대적인 두 개 국가관계”라고 언명했습니다. 아울러, ‘민족’, ‘통일’, ‘화해’ 등을 삭제하겠다고 했습니다. 대남 노선의 근본적인 전환이라 볼 수 있지요. 9개월이 지난 지금도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측의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북쪽에서 그 정도까지 그렇게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죠. 지금 남북이 소통 못 한 지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이후부터니까 거의 6년이 됐어요. 그 사이에 북측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무도 몰라요. 북측이 어떤 변화 속에서 또 그 변화를 토대로 해서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걸 우리가 모릅니다. 즉 북측에서 ‘남북관계는 동족이 아닌 두 개 국가’라는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오게 됐는지 이런 것도 사실은 모릅니다. 우연히 나온 것은 아니겠지요.
사실 남북관계라는 것이 손 딱 끊고 타국이라고 하면 그냥 타국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민족이나 자주, 평화, 독립, 통일 이런 것은 ‘아니다’라고 문서로 해 놓는다 하더라도 달라지거나 바꿔질 수 없어요. 민족이 수천 년 내려왔는데 문서로 정할 수 없지요. 한마디로 말해 같은 민족이 남과 북에서 살고 있고 또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 통일을 이루려는 염원을 안고 살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없어질 수 있나요?
북측에서 그렇게 나온 결정적인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반북동족대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거는 일단 다른 것보다 윤석열 정부를 봐야 해요. 윤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져요. 그런데 윤 정부는 끊임없이 반민족이고 반통일이었지요. 우리가 민족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윤 정부를 퇴진시켜야 돼요. 그게 지금 남쪽 우리 민중들과 민족민주세력에게는 아주 시급한 과제이지요.
“2차 송환 희망자가 1명 남을 때까지 송환운동 해야지요”
인터뷰는 권오헌 명예회장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 좀 예민하긴 한데 북측이 ‘민족’과 ‘통일’ 등을 삭제한다면 통일사업을 위해 공작원으로 남파해 구속된 장기수들의 위치가 좀 애매해지지 않나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장기수들이 통일을 위해 내려오신 분들인데 그럼 그분들이 북쪽으로 송환되어야 할 이유가 많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그런 얘기들이 나오거든요.
■ 일부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는 있지요. 북측이 ‘통일’을 삭제하니 통일사업을 한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이 어렵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인데, 이는 논리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지요. 비전향 장기수는 통일사업을 위해 남파됐지요. 이미 그 의미를 인정받았기에 6.15선언 합의에 따라 송환됐어요. 지금 2차 송환 희망자들도 그때와 똑같아요. 달라진 게 없어요. 시기만 좀 지났지 현실은 같습니다. 2차 송환 희망자가 모두 연로하신데 마지막 1명이 남을 때까지 고향에 갈 수 있도록 송환운동을 해야지요.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북측의 대남 노선 전환 이후 남측의 통일운동 단체들도 당황해하고 난감해합니다. 문자 그대로 통일운동 단체들인데 통일운동을 중지하거나 포기해야 할까요?
■ 우리 조국은 분단돼 있습니다. 분단된 조국은 재통일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독립운동을 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요. 어떠한 조건이라 해도 분단된 나라이기에 통일을 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인데 분단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어떻게 그걸 인정합니까?
북측에서 대남 입장을 바꾸면서 6.15북측위원회나, 범민련 북측본부 등의 기구를 해체했다고 했는데 얼마나 곤혹스럽고 참으로 피눈물 나고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대남 입장 변화에 맞춰 적당하게 조치들 잘하고 또 실질 내용에 있어서는 반미와 자주 등을 해야겠지요.
□ 말씀하신 대로 북측의 변화에 맞춰 남측 통일운동 단체들도 명칭 변경을 했습니다. 6.15남측위원회가 ‘자주통일평화연대’로, 범민련 남측위원회가 ‘(가)자주연합’으로, 해외에서는 25년이나 된 ‘통일학연구소’도 ‘정세연구소’로 각각 개칭했습니다.
■ 시대 상황에 따라서 명칭이 달라질 수 있지요. 표현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우리가 갈라진 조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통일운동을 안 할 수가 없지요. 통일운동을 하는데 명칭 같은 것은 시대적 변화에 따 수정할 수 있겠지요.
이제 남북관계의 연대조직이나 민족단체들은 다 해체하거나 변경했지요. 연대단체가 아닌 단체는 그냥 그대로 하면 되겠고요. 변경한 단체들이 다시 윤석열 정부의 동족대결에 맞서 퇴진투쟁하고 또 반미 자주운동을 계속하면 돼요. 하나도 변한 건 없어요.
□ 지난 6월에 김정은 총비서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를 두고 북-러 동맹조약 또는 준동맹조약이라는 평가도 있거든요. 그런데 일부에서 북측은 자주국가인데 굳이 외세와의 동맹이 필요하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주와 동맹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 나도 그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 그러셨군요.
■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가 무너질 때 북측도 그 끝을 알 수 없었지요. 하지만 북측은 유일하게 자주권을 확보한 자립국가였지요.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누구한테 동냥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자립 경제를 이어가면서 살아왔지요. 그 어려운 시기를 넘겼는데 이번엔 미국과 유엔이 경제제재를 하고 있어요. 지금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빙자해서 아주 부당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라는 게 있죠. 이건 아주 부당한 짓입니다. 이것은 그냥 살인죄입니다.
그렇게 물샐 틈 없이 봉쇄하고 틀어막으면 거기에 어떻게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겠어요. 그래도 거기에서도 5개년 경제계획을 하고 차례차례 자립화 하는 길로 나아가고 큰물피해가 있으면 차례차례 수천 채씩 집을 마련해주고 하는데, 이게 다른 나라에서 가능하겠어요? 북측은 그렇게 일관되게 자주국가로서 살아왔지요.
러시아도 만만치 않아요. 러시아는 ‘대슬라브 민족’라는 큰 애국주의가 있어요. 그전에 나폴레옹한테 당하고 또 히틀러한테도 당했지만 다 물리쳤거든요. 러시아가 그런 대슬라브라는 민족의 굳건한 국가로서 독립을 유지해 왔다는 그런 자긍심을 갖고 있는 거죠.
북측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자주권을 지키면서 자주 노선을 지켜온 유일한 나라이지요. 게다가 핵무력을 갖췄기에 어떤 침략세력도 북측을 어떻게 못하지요. 미국만 핵공갈을 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북측이 온 세계에 그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왜 굳이 러시아와 군사관계를 맺느냐? 하는 생각을 가졌지요.
그때 생각은 그랬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까 달라졌어요. 나토 가입국이 30개 나라가 넘고 오커스에 한국과 일본도 다 들어가거든요. 그렇게 되면 북측도 러시아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확장되는 나토나 오커스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측과 러시아도 동맹관계를 맺은 거라고 봐야겠지요.
□ 지난 815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소위 ‘8.15통일독트린’을 발표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 요지는 남측이 북측에 대해 자유의 바람을 넣어주자는 말이죠. 즉 ‘자유의 북진’을 통한 ‘자유통일’을 주장합니다.
■ 윤 대통령이 올해 통일정책과 관련해 몇 번 얘기했지요. 북한 이탈주민 무슨 데 가서도 통일정책에 대해 얘기했지요. 윤 대통령이 통일정책 운운하는 데 이게 논리도 아니지만 사실상 흡수통일하겠다는 것이죠. ‘자유’를 말할 자격도 없지만 나아가 ‘흡수통일’을 할 능력도 없어요. 그런데 자유를 가장해 흡수통일을 얘기하면 안 되죠.
그리고 통일이라는 것은 한 지도자만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구성원 전체의 총의가 따라야 되는 것이죠. 우리가 비록 분단돼서 지금 80년이 되고 있지만 이렇게 영구히 사는 것을 받아들일 어떤 사람도 없어요. 우리는 반드시 남과 북이 화해해서 통일하고 자주국가로 살아가야 합니다.
□ 최근 남북 사이에 남측의 대북 삐라 살포, 북측의 대남 ‘쓰레기 봉투’ 투하, 그리고 남측의 대북 확성기 재개 등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지금 남북이 단절됐지만 어떻게 보면 쓰레기 봉투 갖고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유일하게 남북이 주고받고 있지요. 그리고 ‘쓰레기 봉투’는 남측에서 쓰레기 같은 놈들이 삐라를 뿌리니까 북측에서 쓰레기 봉투를 투하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남측이 대북 삐라 살포를 중지하면 북측도 쓰레기 봉투 투하를 중지할 거예요. 그러면 대화가 이뤄질 수도 있지요. 그런데 남측이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확성기를 튼다면 그건 당장 꺼야 돼요. 그냥 두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나는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라는 말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권오헌 명예회장의 자택 방에 걸려있는 백두산 천지 그림과 초상화.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 지금 미국 대선이 한창입니다.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중 누가 될 것 같고, 또 누가 되는 게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 내가 누구를 더 선호하는가 하는 문제는 섣부르게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내가 이렇게 지금 아프긴 해도 밤에 한 2시간 정도 낮에도 한 20~30분 정도 인터넷을 보는데 해리스 후보가 이긴다고 계속 나오다가 요새 며칠 전부터 1% 정도씩 지금 떨어지고 있다고 나와요. 전반적으로 해리스가 앞서고 있다고는 하지만 트럼프를 그렇게 쉽게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 언론이 얘기하듯이 해리스 쪽으로 그렇게 일방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네요. 그런데 해리스가 북측에 대해 뭐라 얘기 하면 북측은 반응을 안 하는데 트럼프가 ‘핵을 가진 북한과도 잘 지냈다’,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었다”라고 브로맨스를 과시하자 북측에서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북측이 트럼프를 선호하지 않나 하는 대목이거든요.
■ 설사 트럼프가 된다고 해도 북측이 하노이 때처럼 안 당할 겁니다. 첫 정상회담 때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괜찮았어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등이 들어있었지요. 북미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면 적대관계가 해소되니까 핵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하노이에 가서 안됐지요.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이뤄진다면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 출발할 거예요.
□ 선생님께서는 양심수후원회 회장을 계속 맡아오셨고 지금은 명예회장이시죠. 회장이나 명예회장도 평범하게 보면 회원이니까, 그렇다면 선생님은 한마디로 말하면 ‘영원한 양심수후원회 회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원한 양심수후원회 회원’으로 양심수후원회에 해주고 싶은 말씀은?
■ 나는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라는 말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 이름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록 내가 많은 일을 못 해도 명예회장으로서 할 일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래서 2022년까지는 사무실에 나갔지요. 그런데 작년 1월 10일 척추 수술한 다음부터는 이렇게 완전히 눕게 되니까 외부에도 못 나가고 사무실에도 못 갔죠.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양심수후원회가 늘 해왔지만 “국가보안법도 없고 양심수도 없는 자주통일 세상을 이룩하자”는 말을 거듭 해주고 싶어요. 그게 양심수후원회의 정체성이자 존재이유이니까요. 나는 양심수후원회의 명예회장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평생 명예회장’으로 지내고 싶어요.
□ 아주 소박한 바람입니다. 투병 중이신데도 이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내줘서 고맙습니다. 건강이 유지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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