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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李대통령 대일 메시지에 “이게 정상적 외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08/22 08:13
  • 수정일
    2025/08/22 08:1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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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동아일보 “김건희 문어발 국정개입 의혹” 경향신문 “국회, 김건희 특검팀 수사기간·인력 늘려야”

세계일보 “검찰청 폐지법 추석 전 처리, 뭐가 그리 급한가” 한겨레 “개혁 동력 충분히 마련돼”

기자명장슬기 기자

  • 입력 2025.08.22 07:21

  • 수정 2025.08.22 07:31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한국 국민으로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전 정권의 합의”라면서도 “국가로서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오는 23일 이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용외교’ 노선을 다시 한번 밝힌 것이다. 22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게 정상적 외교”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이 국회에 인력 확충을 요청했다. 김건희씨의 새로운 비리 의혹이 드러나면서 현재 인력으로 수사를 마무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동아일보는 김건희씨 통화 기록이 확보되면서 김씨가 국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설을 냈고,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김건희 특검의 인력과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과 여당 신임 지도부가 검찰 해체를 전제로 한 검찰개혁을 추석 전까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기로 했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도록 입법을 추진하겟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선 “문재인 취임 직후 합의 깨 한일관계 파탄”

이 대통령이 과거사 합의에 대해 인정하겠다며 “일본은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정상적 외교”라고 긍정 평가했다. 이 신문은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관계와 대비했다.

▲ 22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중대한 흠결이 확인됐다’며 국가 간 합의를 사실상 깨버렸다”며 “그때부터 한일 관계는 파탄났다. 민주당 인사들은 ‘토착 왜구’ ‘죽창가’라며 반일(反日) 몰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비난했다”며 “위안부·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단 한발짝도 진전되지 않았고 양국 국민 감정만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제3자 변제’안을 내놓았을 때 민주당이 ‘굴종외교’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서도 이 신문은 “민주당이 집권하면 문 전 대통령처럼 또 약속을 깨고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며 “이 대통령이 한일,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며 ‘국가 간 약속 준수’를 직접 밝힌 것은 다행스럽고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제도 사설 <文 반일에서 벗어나는 李, 미래 위해 올바른 방향>에서 “성남시장 땐 위안부 합의를 ‘원천 무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굴욕외교’라고 맹비난한 이 대통령”, “민주당 대표 시절엔 한미일 군사 훈련을 두고 ‘자위대 군홧발’까지 거론하며 거칠게 비판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한경은 오는 23일 한일 정상회담을 먼저한 뒤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것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아야 ‘각자도생’의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며 “미중 패권 다툼과 북한·러시아가 밀착하는 지정학적 위기로 한일 양국이 경제·안보 협력을 고도화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선동적 반일(反日)’로는 아무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국익만 손상된다는 걸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목격했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했다. 사설 <이 대통령 ‘국가 간 약속’ 존중 뜻, 일본 ‘물 반 컵’ 화답하길>에서 “미중 경쟁에 따른 국제 질서 전환기 속에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차이를 넘어 위기에 공동 대응하고, 기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은 양국 모두의 국익에도 부합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과거를 딛고 미래로 함께 향하는 진정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넘치는 김건희 의혹, 김건희 특검 연장해야

동아일보는 사설 <金 통화기록서 드러난 ‘문어발’ 국정 개입…대체 어디까지>에서 김씨가 지난 2023년 7월 김승희 당시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에서 장상윤 교육부 차관과 8분 넘게 통화한 것, ‘한남동 7인방’으로 불리던 대통령실 참모들과 자주 통화한 것(2023년 8월 한달에만 국정홍보비서관과 11차례, 연설기록비서관과 10차례,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과 9차례 통화) 등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은 ‘김건희 라인’은 없다고 부인했지만 김 여사 통화 기록으로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건희씨가 정권의 리스크 대응에 직접 나선 정황도 있었다. 2023년 김행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대통령 부인과 친분으로 논란이 됐을 때 인사청문회 전 김행 후보자에게 2차례 전화를 건 사실도 최근에 드러났고, 대통령 관저 이전에 풍수 전문가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땐 풍수 전문가 백재권씨와 2023년 7~9월 13차례 통화했다.

동아일보는 “특검은 김 여사가 ‘그림자 권력’으로 활동하며 국정을 농단한 혐의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서희건설 사위가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된 것도, 통일교 숙원 사업을 정부가 지원하려 한 점도 김 여사가 이들로부터 보석과 명품을 받았다는 사실 없인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과 같은 등급 비화폰을 받아 민정수석과 통화하고, 삼청동 안전 가옥에 서희건설 회장을 불러들인 것도 대통령과 권력 공동체란 인식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했다.

▲ 22일 경향신문 사설

이에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김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양파처럼 까도 까도 또 나오면서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며 “국회는 김건희 특검법 개정으로 수사 인력과 기간을 늘리고, 특검팀은 윤석열과 김씨는 물론이고 검찰·감사원·권익위까지 철저히 수사해 관련자를 모두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 추석 전까지 수사·기소 분리 입법 추진

세계일보는 여권의 검찰청 폐지 입법이 급하다고 지적했다. 사설 <與 “검찰청 폐지법 추석 전 처리”, 뭐가 그리 급한가>에서 “검찰 개혁 방법을 놓고 여권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중수청을 어디에 둘지,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여부 등을 놓고 온도 차가 노출되고 있다”며 “일부는 민생 사건에서 경찰·중수청이 잘못된 판단으로 사건 수사를 종결해 사건 당사자가 억울할 수 있으니, 공소청에 보완적 수사 권한을 남겨 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강경파들은 ‘보완 수사 자체가 검찰에 직접 수사권을 주는 것이고, 보완 수사 요구권은 검찰의 수사 지휘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권한 자체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반대한다”고 전했다.

▲ 22일 세계일보 사설

그러면서 “이렇듯 내부 조율도 안 끝났는데 검찰청부터 해체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졸속 정책을 자인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국민의 공감대 없이 무리하게 밀어 붙이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며 “당정은 구체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마련해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차분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사설 <李 “졸속 안 되게 하라” 3일 만에 검찰청 폐지 날 잡아>에서 “중대한 변혁인 만큼 졸속이 되지 않도록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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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겨레는 사설 <“추석 전 수사-기소 분리”, 후속 입법도 적기에 매듭을>에서 “하지만 정교한 준비가 개혁 지연의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며 “검찰개혁 요구는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에서 극에 달한 검찰의 패악은 특검 수사를 통해 더욱 또렷이 확인되고 있다”며 “개혁의 방향과 동력이 충분히 마련돼 있는 셈”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이제 와서 정교함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정부·여당이 검찰개혁 준비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며 “이제부터는 완성도와 속도를 모두 갖춰야 하는 검찰개혁의 핵심 국면이다. 정부·여당의 개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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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준형 의원 “미국 ‘전략적 유연성’ 요구, 절대 받으면 안 돼”

“한미동맹을 북한 아닌 중국 견제용으로 바꾸면서 국방비 더 달라고? 앞뒤 안 맞아”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8.19 ⓒ민중의소리


오는 25일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될지 주목된다. 국제안보 환경의 변화에 맞춰 '동맹 현대화'를 추진하는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 억제에만 한정하지 않고 동북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카드로도 활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리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외교전문가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대한민국 정부의 대만 유사시 불개입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선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절대 받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미국이 북한이 아닌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도록 주한미군의 역할을 바꾸려고 하면서 동시에 국방비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미동맹을 활용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미국한테 모든 걸 의지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에서 동맹 현대화까지 

Q.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한반도를 넘어 대만해협 등 동북아 전반으로 넓히자는 이른바 '동맹 현대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요?

A. 핵심은 전략적 유연성이고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입니다. 이게 시작된 건 2002년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그 당시 주한미군은 붙박이 군대들이었어요. 지금은 주한미군 4500명 정도가 9개월에 한 번씩 순환 근무를 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도 아니고 완전히 붙박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미 소련은 붕괴됐고 북한의 남침밍 가능성은 떨어졌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선 주한미군이 아까웠던 거예요. 그리고 그때부터 중국의 부상이 얘기가 됐으니 주한미군을 좀 더 폭넓게,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거예요. 그때 군사 전략가들은 이제 한국이 북한의 남침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어요. 지금 나오는 얘기와 되게 비슷하죠. 그래서 오히려 미국 쪽에서 한국에 전작권(전시작전권)을 가져가라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한국이 잘 살게 됐으니 이제 국방에 더 돈을 들이라는 것이었어요. 분담 차원에서 나온 얘기예요.

그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걱정했던 건 아무리 여기서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발진하게 되면 우리가 전쟁에 원하지 않게 끌려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건 사실상 동맹의 가장 전형적인 걱정이에요. 방기냐, 연루냐거든요. 방기는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고, 연루는 상대방의 전쟁에 내가 끌려들어가는 것이에요. 옛날에 우리가 무조건 걱정했던 건 방기였어요. 그런데 우리가 잘 살게 되고 또 힘이 생기면서 이제는 미국의 전쟁에 연루가 되는 걸 걱정하게 된 거죠. 특히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로 그렇게 됐어요. 우리는 테러 위험 국가가 아닌데, 미국은 테러 위험이 크잖아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허락 없이 아무리 미군이라도 유연성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의 분쟁에 가더라도 한국의 동의를 구해야 된다는 게 옳다고 끝까지 믿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고위층과 미국은 어느 정도 이 부분에 대해서 밀실 합의를 하고 그게 각서의 형태로 남아 있어요. 당시 (정부 고위층에) 이종석(현 국가정보원장), 위성락(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조현(현 외교부 장관) 세 분이 모두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다가 미국이 조금 전략을 바꾸게 됩니다. 오바마 때부터인데 미국이 전 세계의 동맹을 네트워크화시켜요. 그러다보니 전작권에 대한 입장이 달라집니다. 미국이 한국의 전작권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전체를 네트워크화시키는 데 훨씬 쉽겠죠. 그래서 지금 나오는 얘기는 전작권도 안 주고, 전략적 유연성도 하겠다는 거예요. 원래 출발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한테 모든 걸 다 내놓으라고 하고 있는 거예요.

Q. 이재명 정부 들어 미국의 압박이 더 거세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전략적 필요성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여기에 선을 그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 당시에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청와대) 내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국민들한테 알려지면 안 된다, 차라리 암묵적으로 인정해줄게'라는 방법을 썼던 것 같아요.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한테도 정확한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끝까지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주지 않았다, 마지노선은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일단락됐고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고 해서 이 문제가 진행이 안 된 게 아니에요. 전략동맹이란 말을 계속 한 게 누구냐면 바이든과 박근혜입니다. '상호 운용성'이라는 말을 계속 하거든요. 그건 한국과 미군의 명령 지휘계통을 일체화시키는 거예요. 서로 운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게 급격히 발전했던 게 한 윤석열 정부 때입니다. 한미일의 상호 운용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캠프데이비드협정을 맺었어요. 윤석열은 미국 군부가 가장 원하는 것까지 어느 정도 해준 셈입니다. 그리고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일본 도쿄에 가서 한미일 안보협력 협의체(TSCF)를 비밀리에 가동했습니다. 미국 군부 입장에선 그동안 최고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었는데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서 이것이 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지금 '동맹 현대화'라는 말로 또 다른 모자를 쓰고 강하게 이재명 정부를 압박하는 거라고 해석합니다.

Q. '동맹 현대화'라는 말을 두고 한국과 미국의 해석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A. 전략적 유연성도 듣기에 매우 긍정적이지 않나요? 노무현 정부 때 일단락됐다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까지 올 때 전략적 유연성이란 말을 쓰지 않고 포괄적 전략동맹이란 말을 씁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때 하나 더 붙여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라고 해요. 이것도 언뜻 들으면 엄청 긍정적이죠. 한국이 이제는 위상이 높아져서 미국과 함께 세계 전략을 같이 한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전작권도 한국에 없고 한미가 여전히 기울어진 상황에서 이 말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우리가 동원되는 길을 열어주는 겁니다. 거기에 당연히 대만이 포함되겠고요. 동원되는 것은 결코 전략적이지 않죠.

미국은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한국도 세계 전략을 이용하고 싶은 겁니다. 이번에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말과 함께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말이 쓰입니다. 거기에 미래라는 말이 덧붙고요. 이것도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들려요. 미국에선 우리가 이제부터 한국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얘기하지 않겠죠. 이런 방식으로 계속 밀어붙일 거고 지금도 매우 공세적입니다. 명시적으로 한국이 어느 편을 택할 것인가 요구받고 있는 거예요.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8.19 ⓒ민중의소리

트럼프와 군부의 입장차에서 보이는 외교 빈틈 

Q. 미국에서도 트럼프와 군부는 입장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A. 트럼프와 군부는 좀 차이가 있어요. 근본적으로 세계관이 좀 달라요. 트럼프는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명분, 가치, 역사, 관계 다 필요 없어요. 우크라이나를 그냥 러시아 뜻대로 맡기잖아요. 더 나아가 유럽에 니네가 알아서 하라면서 유럽에까지 지금 손을 떼려고 하고 있잖아요. 소위 '아틀란틱 동맹'이라고 하는데, 영미 동맹, 유럽 동맹, 나토 동맹을 다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저는 트럼프가 아시아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군부는 달라요. 군부는 바이든 때나 오바마 때나 그때부터 줄곧 전략적 유연성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해요. 미국의 힘은 빠지고 있고 중국은 부상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중국을 제압하거나 봉쇄하지 않으면 미국이 중국한테 먹힌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다 투입하더라도 사생결단으로 중국을 봉쇄하고 견제해야 한다고 보는 게 바로 군부예요. 최근에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거리의 폭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중국을 견제하기에 미국이 너무 멀다, 결국 한국과 일본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트럼프는 한국에 돈으로 때우라는 거고 저쪽(군부)에서는 몸으로 때우라는 거거든요. 그 사이에 중첩되는 부분이 주한미군 감축 얘기예요.

Q.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어느 수준으로 다뤄질까요?

A. 정부 반응을 보니, 한국을 끌어내서 중국을 어떻게 하겠다는 정도의 합의까지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냥 두리뭉술하게 동맹 현대화에 합의했다는 수준일 거 같긴 합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7월 31일 회담에서 한미동맹의 현대화에 뜻을 같이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안 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젠다가 3개예요. 첫 번째는 관세 문제, 두 번째는 동맹 현대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둘을 패키지로 협상하겠다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처음에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패키지로 협상하는 것을 거절하고 따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관세는 지난번에 일단락됐으니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선 더 구체화될 거라고 보지는 않아요. 트럼프가 자랑하고 싶어서 잘 됐다고 재확인할 가능성은 있어요. 이거는 두고 두고 미국 쪽에서 압박 카드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동맹 현대화는 지금 시기에 모든 것을 결정할 건 아니고 아마 폭넓게 한국이 동맹 현대화에 합의했다 정도로 합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트럼프가 관심 있는 방위비 분담금이나 국방비 얘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고요. 마지막 세번째가 북한 문제일 것입니다.

Q. 한미동맹의 현대화 논의는 한국군도 함께 분쟁지역에 투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A. 최근에 이런 일들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문제가 됐습니다. 우리 조국혁신당과 비슷한데, '레이와'라는 중도 좌파 신생당이 일본에 있어요. 여기에 평화 운동가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평화학의 대가로 불리는 이세자키 겐지 도교외국어대 명예교수가 있는데, 최근 참의원이 되어 첫 국회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이런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지난 6월에 미국에서 F-35 스텔스기가 본토에서 출발해 왕복 37시간 비행을 해서 이란을 폭격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카타르에 미군기지가 있는데 거기에 F-35가 다 있다는 거예요. 카타르는 미국의 주둔을 인정했는데, 미군이 그걸 빼서 이란을 때리는 게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그런데 카타르가 그걸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군이 카타르 기지를 이용해 이란을 폭격하면 이란은 반드시 우리를 보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실제로 카타르는 거절했음에도 카타르에서 몇 발의 미사일이 날아갑니다. 이에 대해 이세자키 의원이 이시바 총리에게 미군이 아무리 일본의 땅에 있어도, 일본에 주권에 의해서 제한돼야 한다고 문제 제기를 한 거예요. 저 역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똑같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8.19 ⓒ민중의소리

미국이 흔드는 한미동맹, 보수세력 입장에선 모순 

Q. 이러한 논의는 그간 한미동맹의 근간인 북한, 그리고 북핵의 위협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결국 한미동맹은 중국 봉쇄에 집중하고, 북한 위협은 한국이 알아서 방어하라는 것인데, 이를 보수세력이 용인하는 것도 자가당착 아닐까요?

A. 어제 굉장히 재밌는 광경이 있었어요. 제가 국회에서 조현 장관한테 전략적 유연성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아니면 미국한테 우리 전략을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허허실실 하는 것이냐고 반문할 정도로 심각성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심각성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대만의 유사시에 우리가 젊은이들을 투입해서 개입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조현 장관이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어떤 유사시인지, 누가 현상유지를 급격하게 바꾸려고 했는지 알고난 다음에 판단해야 하는 것 같다고 답변하더라요. 그래서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똑같은 질문을 (윤석열 정부의)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한테 한 적이 있거든요. 조태열 전 장관은 당연히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은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고,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도 다른 인터뷰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다시 말해서 주한미군의 유연성은 보수 인사들도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도 제 편을 들었어요. 조현 장관의 답변에 본인도 이해가 안 간다고요. 너무 상식적인 일이거든요.

Q. 이번 한미정상회담 가서 그런 요구가 나왔을 경우에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A.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선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절대 받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지금까지 (어떤 정상회담에서도) 공동 성명을 발표하지 않고 있어요. 트위터에 이것저것 그냥 던지잖아요. 그건 그의 작전인 것 같아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뒤에 가서 해석이 다 달라진다는 거예요. 트럼프는 그런 협정문에 자기가 묶이지 않겠다는 것이고 언제든지 미국의 힘을 사용해서 자기들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도 역으로 똑같이 이용하면 돼요. 미국이 구체적인 요구를 할 때까지 우리도 안 묶이면 됩니다. 관세 협상할 때도 그랬습니다. 트럼프는 한국에 3500억 불을 내 앞에 현찰로 가져다 두라고 하고, 자기가 투자처도 선택하고, 나중에 20% 이익이 남으면 내가 10% 줄게, 이런 식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서 뭐라고 했습니까? 미국이 계획을 내면 투자처를 보고 보전성으로 돈을 주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런식으로 해석해버리면 됩니다.

전략적 유연성 역시 과거에 내부에서 합의해 준 각서가 있을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계속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해 왔잖아요. 거기서 출발하면 됩니다. 우리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공개적으로 얘기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미국은 공식적으로 아무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게 우리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허락 없이 주한미군도 빼서 쓸 수 없다고요.

Q. 일각에선 한국군은 빼고 주한미군만 유연하게 하는 방법도 제시되더라고요.

A. 카타르 사례처럼 그렇게 하면 결국 우리는 달려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미국도 중국이 대만을 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꼭 대만 유사시를 대비해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한테는 전쟁이 안 나니까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여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한테 그런 토대를 마련해 놓아서 언제든지, 대만이 아니라 심지어 멕시코에서 전쟁이 나도 우리가 갈 수 있도록 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방식으로 되는 것들은 사실 다 잘라내야 하죠.

Q. 오히려 이번 기회에 한미동맹의 근간을 우리 국익에 맞게 바꿀 수는 없을까요?

A. 지금 트럼프나 군부에서 다 우리를 협박하는 카드 중 가장 큰 게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입니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우리(미국)가 한국을 지켜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소위 말하는 '인계철선'(引繼鐵線)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땅에 있는 미군은 굉장히 낙후된 미군입니다. 북한을 견제해 옛날부터 보병 위주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공군도 거리가 짧은 F-16 중심이에요. F-35처럼 장거리용이 아닙니다. 미국 입장에선 이걸 장거리로 바꿔야 중국도 때리고 할 수 있는 거죠. 우크라이나 전쟁도 다 드론으로 하고, 본토에서 미사일을 쏘는 마당에 여기에 있는 무기들이 실제로 얼마나 작동하겠습니까. 우리는 재래식무기는 북한보다 월등하고, 부족한 건 핵우산밖에 없어요. 북한과 일대일로 붙어도 우리는 재래식무기에서 지지 않아요. 그런데 북한이 지금 상황에서 한국과 전쟁할 마음이 있을까요? 그런 것들을 감안하면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카드를 지나치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면 미국이 오히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우리는 그런 것까지도 각오하는 게 좋다라고 생각합니다.

Q.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비나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을 요구할 전망인데, 이는 한미동맹의 전환 또는 확장 요구와 상치됩니다. 한미동맹이 중국 봉쇄에 역할한다면 오히려 미군이 비용을 내야 하지 않을까요?

A. 맞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거죠. 트럼프의 생각과 군부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 틈을 이용해야 합니다. 만약 너네들이 전략적 유연성을 생각해 이곳을 키우겠다면 너희가 오히려 기지 사용료를 더 내야 한다고 해야 해요. 우리가 돈을 줄 게 아니죠. 그런데 트럼프가 이걸 받을 리가 없거든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서 이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가 중요시하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분담금인데 지금의 SMA(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구조로는 더 줄 수도 없어요. 이미 작년에 국회를 다 통과한 것이고 미국도 행정명령으로 일단락된 거거든요. 만약 트럼프가 만약 거기에 묶이지 않고 계속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럼 SMA부터 다 바꾸자고 하면 됩니다. 지금처럼 미국한테 돈을 다 주는 게 아니라 미국이 쓸 돈을 예산서로 가져오게 하는 거죠. 그러면서 시간을 끌 수 있습니다. 트럼프 1기 때도 시간을 끌어서 결국 안 하고 바이든으로 넘어왔거든요.

또 하나는 국방비입니다. 국방비는 얼마 전에 나토와 협상했던 겁니다. 국방비는 계산법이 엄격합니다. 나토의 경우 3.5%는 직접 비용, 1.5%는 인프라입니다. 1.5% 인프라를 5%까지,그것도 향후 10년간 하겠다는 게 지금 나토의 약속이거든요. 우리는 거의 다 직접비입니다. 2.8% 정도 돼요. 거기에다가 미국의 주둔 분담금도 집어넣으면 3% 넘어갑니다. 그러면 사실상 0.5% 정도만 우리가 10년 간 더 늘리면 됩니다. 그리고 이것도 시간 끌 수 있는 부분이고요. 그다음에 간접비를 집어넣으면 됩니다. 지난번에 나토에서 제일 말을 안 들었던 게 이탈리아입니다. 나중에 트럼프는 모든 나라가 5%에 동의했다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이탈리아를 다 봐줬어요. 이탈리아는 시칠리아에서 본토를 연결시키는 다리 건설 비용까지 국방비로 산정을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면 국방비는 오히려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Q. 국민의힘이 미국에서 국방비를 가지고 압박하는 데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보수세력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A. 보수 진영도 참 머리 아플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네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한 미국이 배신을 때리고 있으니까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요? 보수 진영은 늘 진보정부에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서 한미동맹이 흔들린다고 했는데, 지금은 한미동맹 흔들기가 미국 쪽에서 하고 있는 거에요. 트럼프는 동맹의 역사나 관계, 깊이, 가치 이런 것들은 전혀 안 따지고 거래 관계에서의 이익만 따지니까요. 어쩌면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해 있던 우리가 종속적인 관계를 탈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됩니다. 우리는 미국 없이도 잘 살 수 있고, 스스로 설 수 있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고, 스스로 지킬 수 있다, 저는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미동맹을 활용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미국한테 모든 걸 의지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8.19 ⓒ민중의소리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 방안

Q.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 문제도 논의될 전망입니다. 우리 정부는 '단계적 비핵화'를 추진하며 대화 재개를 모색한다는 계획인데, 현재 남북관계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고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A. 그동안 북방정책을 내세운 노태우 정권을 제외하고 보수 정권이 남북관계를 주로 많이 망쳐놓았습니다.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을 일종의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문재인 정부 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게 그렇죠. 저는 이재명 정부도 그런 꿈이 있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할 텐데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잖아요. 그래서 일단 단계적으로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서로 고조시켰던 긴장을 다시 완화를 하고 9.19 군사합의를 회복시키고 확성기 철거하고 풍선 안 보내고 이런 것들을 넓혀 나가면 어느 시기에 가서는 북한도 (대화에) 나오지 않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협정을 맺고 실천하는 방법이었다면 이제는 실행할 수 있는 걸 해놓고 여건이 성숙이 되면 그때 정상회담을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과 관련해 어떤 의제가 다뤄질까요?

A. 한반도에 관해서는 트럼프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트럼프가 평화 강박증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가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자기야말로 정말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취임사 마지막에 '피스 메이커'(peace maker, 평화중재자)라는 말을 씁니다. 트럼프 2기의 가장 큰 목적은 '피스 메이커'입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지금까지 4개의 평화조약을 완성시켰어요. 지금 잘 안 되고 있는 게 우크라이나와 가자이고, 남은 후보지가 남과 북이에요. 여기에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로서는 일단 2018년 당시 트럼프의 평화 노력을 치하해야 할 것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 '피스 메이커' 역할도 띄워주는 게 필요해요. 미국이 만약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가 반대할 일은 없습니다. 지나치게 '패싱'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패싱 이야기하는데 그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북미가 일단 풀고 우리가 어느 순간에 합류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Q.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을 계기로 북미 정상의 만남이 조만간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A. 북한이 그렇게 쉽게 안 나올 것 같습니다. 지금 양 극단의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한쪽에서 트럼프가 APEC에 올 때 평양이나 판문점에서 북미가 만날 수 있다는 장미빛을 얘기하는데 저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2018년에 뒤통수를 엄청나게 맞았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재명 정부도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하고요. 트럼프가 북한을 공식적으로 핵 국가로 인정하는 정도의 양보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아마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론 북한에서 나오는 담화문 같은 내용이 날카롭잖아요. 그래서 아예 대화가 안 될 거라고 극단적으로 전망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북한이 이전과 달리 일단 반응을 시작했거든요. 윤석열 정부 때는 미국정책연구소장 등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성명서를 냈는데 지금은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이건 나쁜 신호가 아니에요. 북한은 2018년 쫓기던 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뒷배에 러시아도 있고요. 그렇게 보면 북한은 원하는 조건이 어느 정도 맞춰지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접촉이 시도되고 북한도 조건을 걸기 시작했다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Q.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만약 실용외교 속에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일단 그 용어 자체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윤석열 정부가 말은 가치 외교라고 했지만 실제로 이념 외교를 한 거잖아요. 그래서 한미일과 북중러로 나눠 신냉전의 획일적인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 투자하고도 손해보고, 러시아, 중국, 북한과의 관계도 다 파탄 났습니다. 미중 패권 사이에서 우리만 괴로운 상태인 거예요.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로 가자고 하는 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전쟁이 흑백이라면 외교는 회색이다. 전쟁은 적과 아군이 확실하게 구분하니 흑백이라고 한다면, 외교는 전쟁 중에도 적과도 협상하듯이 아군하고도 이익을 두고 치열하게 다퉈야해서 회색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실용 외교는 회색 외교를 수용하는 거니까, 국익을 위해서 방법론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실용 자체가 목적은 아니잖아요. 목적은 평화라든지 우리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거라든지 그런 게 있어요. 저는 이념도 가치도 우리 국익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문화와 한류를 얘기하듯이 말입니다. 또 필요한 건 다변화입니다. 윤석열 3년의 외교는 미국과 일본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외교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좀 회복할 필요가 있어요. 글로벌 사우스라고 하는 국가들과도 협력을 늘려놔야 하고요. 또 윤석열식으로 한미일 관계만 보는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오히려 공존해서 미국의 파도를 넘는 데 협력하는 부분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정도의 국격과 국력이면 외교를 그렇게 협소하게 운영하면 안 되죠. 다변화로 가야 합니다. 외교는 옵션이 많을 수록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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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출동 소방관 끝내…각계 애도 물결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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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유가족들 "가눌 수 없는 절망과 애통함 느껴"

"구조자들의 트라우마 방치한 지난 정부 책임 커"

이재명 대통령 "마음 미어져…사회적 연대 절실"

"상처 치유하도록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서겠다"

김민석 총리 "참사로 고통 겪는 분들 깊은 위로"

민주 "이태원 특별법 개정안 조속한 통과에 최선"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헌화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5.6.12. 연합뉴스

지난 2022년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한 이후 우울증을 앓다가 실종됐던 소방관이 끝내 숨진 채 발견되자 각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당사자인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남다른 애통함을 표시하며 트라우마를 방치했던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다시금 지적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20일 추모 논평을 내고 "10·29 이태원 참사에 출동했던 30대 소방관이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가눌 수 없는 절망과 애통함을 느낀다. 무사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의 간절함을 한마음처럼 느끼며 돌아가신 소방관분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면서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소방관분의 명복을 빌며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에게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어 "오늘의 비극은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헌신했던 소방관, 경찰관을 포함한 모든 구조자들이 져야 했던 심리적, 정서적 트라우마를 방치하고 치유와 회복을 도외시했던 지난 정부의 책임이 크다"며 "이제라도 생존 피해자, 지역 상인과 주민 등을 포함해 구조자들과 목격자들을 폭넓게 지원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회복하도록 돕는 데에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끝나지 않은 참사의 고통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유명을 달리하신 소방관분의 평안한 영면을 빈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상상조차 어려운 고통과 싸우며 이제껏 버텨온 젊은 청년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진다"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국가적, 집단적 트라우마를 온전히 마주하고 치유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과 심리 지원 체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를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치부해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채 방치되어 왔다"고 토로했다.

또 "사회적 무관심이 계속된다면 트라우마는 더 깊어지고 장기화되어 공동체 전체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공동의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며, 힘을 모아 회복에 나서야 한다. 연대와 화합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라면서 "재난, 대형 사고 등으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와 유가족뿐만 아니라 구조대원과 관계자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이 후유증이 사회 전반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있게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상 규명도 철저히 해나가겠다.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성찰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법적 안전망을 강화할 것을 약속드린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 깊은 슬픔 속에 계신 유가족분들께도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페이스북을 통해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계신 많은 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천일째를 맞은 2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모습. 2025.7.24.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태원참사특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들의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헌신하신 고인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남겨진 유가족과 동료들께도 깊은 위로가 함께하길 바란다"면서 "이제라도 생존 피해자와 지역 상인, 주민은 물론 구조자와 목격자들까지 폭넓게 지원하며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을 돕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남겨진 고통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세심히 살피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위는 지난 14일 이해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개정안>에 국가가 피해자 등의 종합적인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해 '이태원 트라우마 센터'를 설치하고, 치유 휴직 신청 기간을 법 시행 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아울러 참사의 진상을 끝까지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과 철저한 재발 방지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 되는 사회,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특위에는 남인순·김교흥·박주민·이해식·김남근·이학영·진선미·권칠승·민병덕·윤건영·임호선·천준호·한준호·강선우·이수진·백승아·임미애·차지호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앞서 경찰에 따르면 20일 낮 12시 30분쯤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인근 교각 아래서 모 소방서 소속 A(30) 씨가 숨져 있는 것을 경찰관이 발견했다. A 씨는 지난 10일 오전 2시 30분쯤 남인천요금소를 빠져나와 갓길에 차를 세우고 휴대전화를 버린 뒤 실종됐다. 그가 발견된 장소는 이로부터 직선거리로 8~9㎞가량 떨어진 곳이다.

A 씨 시신은 누워있는 상태였으며,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타살 혐의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A 씨의 시신을 수습한 뒤 유족 협의를 거쳐 부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또 A 씨가 사망에 이른 동기를 포함한 전체적인 경위에 관해 조사할 계획이다.

A 씨는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 지원을 나간 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받아왔으며, 실종 직전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참사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사망하신 분들을 검은색 구역에서 놓는데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며 "부모님은 제가 그 현장을 갔던 것만으로도 힘들어하시는데 희생자들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까. '이게 진짜가 아니었으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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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운동이 새로운 주기를 열기 위해 해야 할 일

[장석준 칼럼] 노동운동·정치개혁운동·이념-문화운동과 함께해야

작년 총선은 진보정당운동의 한 주기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견지하는 정당들은 하나도 원내에 진출하지 못했고, 비례위성정당 형태로 더불어민주당과 거의 한 몸이 된 정당들만 의석을 차지했다. 이로써 진보정당운동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12.3 친위쿠데타에 맞서는 시민 항쟁과 조기 대선을 거치며 다시 새로운 상황이 열렸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의 선거연합인 '민주노동당' 이름으로 출마한 권영국 후보가 의미 있는 바람을 일으켰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지지자들의 후속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주기가 열릴 수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이런 때일수록 지난 사반세기 동안 진보정당운동이 걸어온 길을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되돌아보고 새 세대를 위한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 이미 여러 곳에서 이런 성찰과 토론이 전개되고 있겠지만, 나름대로 진보정당의 지난 여정에 함께 해온 한 노병(老兵)으로서 여기에 몇 마디를 보태려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또 다른 세 가지 중요한 운동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이 여전히 중요하다

 

어떤 정당이든 난관에 봉착하거나 파국을 맞는다면 그 일차적 원인은 당 자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정치적 순간에 내린 문제 있는 결정이나 선거 대응에서 나타난 한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2000년대 민주노동당이나 2010~2020년대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들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인의 '일부'일 뿐이다. 정당은 늘 더 큰 시민사회의 한 부분으로 존립하고 작동하기에 정당이 자신의 모태인 시민사회와 벌이는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상호작용 역시 시야에 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측면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당을 둘러싼 논의에서 흔히 간과되곤 한다. 정당의 공식 의결기구가 심의, 결정하는 일상사업 계획이나 선거대응 전략으로는 제대로 건드리거나 담아내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공식 계획에 바탕을 둔 평가에서도 항상 흐릿한 배경 정도로만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데 진보정당운동의 궤적을 돌아볼수록 이 측면이야말로 장기적 발전이나 쇠퇴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주의, 노동계급운동의 토대가 한 차례 일소됐던 한국 사회이기에 이런 풍토에서 진보정당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려면 시민사회 전체의 상당한 변화가 함께 추진돼야만 한다. 시민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존재하고 진보정당이 이런 흐름과 한 몸이 되어야만 현실정치 영역에 대응하는 진보정당의 기초 체력도 확보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에게는 정당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는 세 가지 운동이 참으로 중요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첫 번째는 노동운동이다. 노동운동의 발전이 좌파정당의 성공에 얼마나 결정적인 요소인지를 놓고 굳이 긴 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이를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가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들은 노동조합의 지지 없이 진보정치가 존립하거나 성장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노동운동은 민주노동당이 등장한 이후 20여 년 동안 좀처럼 외환위기 이전 같은 활기를 되찾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이제까지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가장 비극적인 대목이다. 그렇다고 한국 노동운동이 20세기 말 이후 일본 노동운동처럼 완전히 생기를 잃은 것은 아니다. 느리게나마 초기업단위 노동조합들이 성장했고, 주기적으로 반복된 시민 항쟁에서 늘 민주노총이 기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약진이 곧바로 좌파정당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는 다른 나라 이야기들(19세기 ~20세기 초 서유럽, 20세기 말 브라질)이 한국과는 별 인연이 없다는 점만은 분명히 드러났다.

 

이제는 진부한 상식이 됐지만, 그 원인은 너무나 일찍 노동계급이 서로 처지가 확연히 다른 계층들로 나뉘어졌다는 데 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존 비정규직보다 더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이 급증했다. 이미 협상력을 확보한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와 점점 더 늘어나는 불안정 노동자 사이의 이러한 분단에 대해 진보정당들은 나름대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당 내 논쟁에서는 항상 이 문제가 주된 쟁점이 됐고, '비정규직 정당' 같은 표현이나 발상이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제시된 접근법은 모두 문제가 드러나거나 한계에 부딪혔다. 우선 거의 1, 2년마다 돌아오는 전국 선거에 대응하기 바쁜 정당이 사업계획에서 밝히는 '노동운동 혁신, 부흥'은 공염불이나 허장성세에 그치기 쉬웠다. 정당에게 요구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노동조합운동만의 생리와 리듬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돌출하는 '비정규직 정당' 같은 지향이나 논의는 노동 현장과는 괴리된 채 허공을 맴돌았다. 노동운동 내부의 상처를 실질적으로 치유하기보다는 분열을 지겹게 재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기의 진보정당운동이 넘어서지 못한 한계선이었다. 한데 지금은 노동운동을 둘러싸고 전혀 새로운 구도가 대두하고 있다. 지난 칼럼(☞바로가기 : 보수파, 자유파는 있는데 사회파는 어디에?)에서 정리한 대로, 부동산시장을 중심에 둔 오래 된 불로소득 동맹과 주식시장을 중심에 둔 새로운 불로소득 동맹이 한국 사회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며 서로 대치하는 중이다. 이는 과거보다 '더 나빠진' 구도이지만, 노동운동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노동운동의 가장 중대한 임무는 이 답답한 이항대립 구도를 뒤흔드는 제3항이 되는 것이다. 자산시장 투자자라는 것과는 다른 정체성으로 연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쟁론, 교섭, 합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가는 제3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여기에서 첫 번째 과제는 물론, 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을 발판 삼아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의 새 국면을 여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노동조합들의 '남은' 역량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돌봄결핍 등에 대한 사회적 교섭 통로를 뚫어야 한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양대 불로소득 동맹과 구별되는 '사회파'의 형성에 나설 때, 비로소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주기를 뒷받침할 탄탄한 힘이 마련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운동이 아닌 '정치'개혁운동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정치개혁운동이다. 사실 진보정당들은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제도 개혁, 그 중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선구적이면서 열정적인 주창자였다.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들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선전한 덕분에 시민사회 내 상당 부분이 동참한 선거제도 개혁운동이 등장할 수도 있었다. 뜻밖에도 그 결과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누더기와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괴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노력이 과연 '정치'개혁운동이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 진보정당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기는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6공화국 정치 질서 전체를 바꾸려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이루는 요소는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만이 아니다. 소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정당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대통령 중심제, 지역정당 등을 금지하는 규제 중심 정당법,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방자치 등등이 함께 얽혀 있다. 진보정당운동은 이 질서 자체에 도전하지 못했고, 이런 도전에 나서는 시민사회 내 정치개혁운동도 없었다.

 

오히려 진보정당들은 제6공화국 정치에 '적응'하려 했다. 정당 정치를 강조하면서도, 대통령 선거 예비주자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존 정당 구조와 정치 문법을 따라 했다. 5.16 군부쿠데타 세력이 도입한 정치제도들을 상수로 놓고 그에 맞춰 '진보'정치를 펼쳤다. 기존 정당들에 비해서는 지방자치를 중요시했다지만 진보정당 역시 지역에서 거둔 성과를 중앙정치에 진출할 발판쯤으로 여겼다. 그러면서 단지 국회의원 선거제도만 개혁 대상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니 선거제도 개혁운동이 정치개혁운동이 아니라 진보정당 지분 늘리기, 이익 챙기기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시기의 진보정당운동은 이렇게 기존 정치와 동일한 무대에서, 동일한 논리에 따라 경쟁해서는 '필패'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대 정당,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제6공화국 정치 질서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도록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선거 기계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이 처음 등장한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더 발전하여 도무지 빈틈을 찾기 힘들 지경이고, 내부 균열이나 반란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는 미국의 양당 정치보다 더 촘촘하고 경직돼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대통령 선거 예비주자 중심의 정치, 국회의원 활동에 특화된 정치를 그대로 따라 해서는 경쟁은커녕 생존도 쉽지 않다.

 

이제는 진실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선택지는 둘 밖에 없다. 양대 정당 중 어느 하나의 일부가 되든가, 아니면 독자 정당과 정치개혁운동을 병행하든가. 즉, 여전히 독자 진보정당을 추구한다면, 과거의 선거제도 개혁운동보다 훨씬 더 광범한 시야로 더욱 진지하고 집요하게 제6공화국 정치제도 전반을 바꿔나가는 운동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진보정당은 정치개혁운동이 추구하는 '정치'를 미리 보여주고 앞서서 열어나가는 새로운 정치 관행과 문화를 통해 지지를 모아가야 한다.

 

문제는 지난 시기의 진보정당운동과 이로부터 영향 받은 시민사회 내 정치개혁운동이 선거법 개정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대체할 새 정치 질서에 관한 논의와 합의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대통령 중심제에 문제가 있다면, 그 대안은 의회제(내각제)인가? 비례위성정당이라는 암초를 만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계속 대안으로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비례대표제를 고민할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바람직한 새로운 균형은 무엇인가? 이 모든 물음을 놓고 답이 천차만별이고, 중구난방이다.

 

앞으로 나는 기회 닿을 때마다 이 지면을 통해 이런 쟁점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려 한다. 하지만 토론이 무르익기 전에라도,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주기를 열려는 이들이 해야 할 임무가 있다. 그것은 정치개혁운동의 불씨를 계속 살려나간다는 커다란 목표 아래, 시민사회의 상당 부분이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최소 합의 내용을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국정 제1과제로 '개헌'을 잡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 절차를 통해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큰 폭으로' 뜯어고칠 수야 없겠지만, 앞으로 장기간 그런 일을 계속 해나갈 시민사회 내 흐름을 형성할 기회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운동-정치개혁운동의 병행 발전을 고민하는 이들이, 주어진 개헌 일정에 맞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개정안을 기민하게 제안해야만 한다.

 

제3의 운동, 이념-문화운동?

 

세 번째 운동은 노동운동, 정치개혁운동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이름 붙이기가 좀 애매하다. 보수파, 자유파와 구별되는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따라서 극좌 정파들이 신성시하는 '사회주의'보다는 훨씬 느슨한 의미)를 알리고 동의를 넓히려 한다는 점에서는 '이념운동'이라 하겠지만, 너무 고색창연하게 들린다. 흔히 '문화'라 분류되는 영역이나 층위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는 '문화운동'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딱 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일단 '이념-문화운동'이라 하자.

 

사실 양대 정당 주위에도 그들 나름의 이념-문화운동이 있다. 양대 정당이 빈 틈 없는 선거기계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정치를 독점할 수는 없다. 잘 알려진 친민주당 성향이나 극우 성향 유투브 채널을 떠올려보자. 양대 정당의 헤게모니는, 이들이 일상에서 그토록 왕성하게 활동하는 덕분에 그야말로 '힘겹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렇게 이념-문화운동과 결합된 정당 활동을 창시하고 발전시켜온 것은 본래 사회주의, 노동계급 세력이었다.

 

그런데 2025년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유투브에서 친국민의힘 극우파-보수파나 친민주당 자유파와 뚜렷이 구별되는 목소리를 전하는 채널을 찾아보기 힘들다. 좌파가 최신 미디어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새로운 미디어 공간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좌파가 강세를 보였던 무대, 가령 출판 영역에서도 이제는 극우파-보수파와 자유파가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양분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 진보정당의 선거 득표율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다.

 

하지만 극우파-보수파, 자유파만으로는 복합위기 시대에 필요한 정치를 만들어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면, 늦었더라도 이념-문화운동에 다시 도전해야만 한다. 다만, 이 영역은 노동운동, 정치개혁운동보다도 훨씬 더 정당의 직접적 관할권 바깥에 있다. 당 강령에 추상적인 급진적 문구를 더 넣거나 당의 공식 미디어 사업 예산을 늘리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전혀 아니다. 그야말로 진보정당운동 주위를 겹겹이 에워싼 '의병'들이 맡아야 할 과업이다.

 

이 짧은 글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다. 부족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말문을 연 것은 하루라도 더 빨리 독자 진보정당들 안팎에서 집단적인 고민과 실험이 시작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선은, 시민사회 안에서 노동운동, 정치개혁운동, 이념-문화운동이 마련하는 여유로운 공간이 없다면 독자 진보정당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이 보다 명철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후보를 비롯한 사회대전환 선거대책위원들이 지난 6월 4일 서울 구로구 민주노동당 당사에서 열린 21대 대선 결과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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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특화단지는 미국에 바치는 조공이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08/21 10:16
  • 수정일
    2025/08/21 10: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자명

  •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 원장
  •  
  •  승인 2025.08.21 09:03
  •  
  •  댓글 0
 
 

'한미 간 조선산업의 협력 증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7.31 이언주 의원이 대표발의하였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한미 조선업 협력을 위해 미국에 신규 조선소 건설과 인력양성, 공급망 재구축 등을 제시하였고,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지원법을 제정하여 조선업 특화단지 설치와 기금을 조성하여 이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은 마스가 프로젝트를 내주는 대가로 다른 영역을 방어하려고 할 것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이 법이 우선하며, 한미 조선산업협력 사업 지원에 관하여 한미 조약·협정 등이 있는 경우는 그 규정에 따름

2. 정부, 공공기관 및 군함 등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한미 조선동맹강화 협의체 운영

4. 정부가 미국과 조약·협정에 따라, 미국 군함의 건조·유지·보수를 위한 특화단지 지정

-정부가 국유재산을 미국과 입주기업에 무상으로 대부하고, 기반시설 설치 비용 전액 부담
-특화단지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르며, 운영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은 한미 조약·협정에 따름

5. 정부가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하여 한미 군함 등 조선산업 협력 증진기금 설치

-정부 출연 또는 융자 ·정부가 아닌 자의 출연금 ·다른 기금과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장기차입금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의 예수금 ·기금의 운용수익금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수입금 ·기금에서 이익이 생기면 전액 적립하고, 손실이 발생하면 정부가 보전함

6. 기금의 용도

-한미 간 군함 등 조선산업에 관한 우호협력관계 증진 사업
-한국의 미국 군함 건조·유지·보수 등에 관한 수주사업
-특화단지 조성
-한미 간 군함 등 조선산업 전문 인력 및 기술 교류 지원

한미 조선협력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불평등한 합의로,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은 한국 조선 기업들이 큰 기회를 잡았다고 선전한다. 나아가 미국에 바치는 조공인 조선 특화단지를 한미 방위협력으로 포장하여 한국의 일방적인 지원을 정당화하고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1) 조선업 특화단지에서 미국 군함을 건조·보수한다면, 특화단지 설치와 운영 비용은 한국이 100% 부담할 게 아니라 미국이 내는 것이 맞다.

2) 한국이 영토와 국공유 재산을 미국에 무상 대여하고 특화단지 운용을 한미 협정으로 정하여, 미군기지와 같은 치외법권 지대가 형성될 수 있다.

 

3) 정부는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출연·출자 등으로 기금을 설치하는데, 국민세금이 투입된다. 그러나 여기서 나온 수익은 전액 기금에 적립하고, 손실은 정부가 보전한다. 이는 자본을 낸 한국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수익은 전액 적립하여 아무것도 내지 않은 미국의 조선업 지원에만 쓰게 된다.

4) 한국이 영토·자본·인력·기술을 제공하여 특화단지를 설치하고, 미국에 군함/반제품 공급, 인력양성, 기술 이전 등을 하는데 한국에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미국법에 따르면 외국에서 미국 군함을 건조·수리할 수 없으므로, 현재는 반제품(블록)을 공급하고 군함이 아닌 지원선만 수리할 수 있다. 이는 보통 하청기지에서 하는 일이다. 이런 조건에서 입주기업이 미국으로부터 정상적인 수주 금액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미국 법을 수정하여 한국 특화단지에서 미국 군함을 건조·수리할 수 있고 한국 기업들이 많은 수익을 낸다고 해도, 특화단지는 미국에 종속된 지대로 하청기지 처지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5) 특화단지는, 원전 1기 수출 시 50년 간이나 기술사용료와 용역구매 등으로 1조원 이상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제공하기로 한 노예계약의 재판이 될 수 있다. 원전은 미국이 초기 기술을 제공했다는 근거라도 있지만, 조선업은 한국이 기술을 제공하는데 왜 미국에 종속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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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관세협상’에 전문가들 “한미회담서 흔들림 없는 외교전략 세워야”

20일 오전 국회서 ‘한미정상회담에 바란다’ 토론회 개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바란다 토론회’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제공

 

한미정상회담을 닷새 앞두고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한국 경제·안보 전반에 걸친 우려와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미 관세 협상이 사실상 ‘약탈적 통상 압박’이라고 본 학자와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협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국민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외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이용선·김현정 의원과 조국혁신당 김준영·신장식 의원, 진보당 윤종오·정혜경 의원, 트럼프위협 저지공동행동은 2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미정상회담에 바란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첫 발제자로 나선 나원준 경북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을 “사실상 한국 경제와 민생 전반을 위협하는 약탈적 합의”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대미투자 4,500억 달러와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업들이 추가로 투자할 금액에 대해 “사실상 미국의 국부펀드가 한국 돈으로 운영되는 셈”이라며 펀드의 부조리를 비판했다.

앞서 한국은 한미 관세협상에서 총 4,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3,500억달러)와 에너지 구매(1,000억달러)를 약속한 바 있다. 나 교수는 “한국이 출자하고 미국이 기금 수익의 90%를 챙겨가는 구조가 어떻게 자본주의 논리로 정당화될 수 있느냐”며 “이번 한미 통상 협상 결과는 미국이 한국을 봉건적인 공납의 노리로 수탈하고 한국의 새 정부가 그와 같은 수탈을 수용한 것이라고 평가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스가(MASAGA) 조선협력 패키지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나 교수는 “존스법상 군함·내항 운송선의 ‘미국 내 건조·운항·정비’ 의무가 핵심 병목”이라며 “한국은 기술·블록(반제품) 제공, 미국 내 조립·무기체계 탑재로 부가가치가 미국에 귀속될 구조”라고 말했다.

마스가는 한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 발표된 한미간 조선 협력 프로젝트다. 에너지 구매를 제외한 총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중 1.500억달러가 할당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석운 트럼프위협저지 공동행동 공동대표도 “최근 진해의 케이조선과 같이 미국 군사기지에 활용될 위험까지 있어 대응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짚었다.

장창준 한신대 평화통일정책연구센터장은 현재 미국이 요구하는 동맹현대화는 동맹국을 미국 국방전략에 편입시키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윤석열 시기 캠프 데이비드 합의로 진행되던 점이 있었다고 거론 장 센터장은 “당장 무효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러시아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주한미군 역할을 조정하고, 국방비를 증액하는 등 ‘동맹 현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와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미 간 협력을 강화하는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장 센터장은 ▲SMA 재증액·국방비 증액(예: GDP 5.0%) 요구 불수용 ▲SOFA(주한미군지위협정)의 '주둔경비는 미측 부담' 원칙 확인 ▲대중전초기지화 반대 ▲전작권 조기환수 등을 추진해야한다고 강변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바란다 토론회’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제공

이어진 발표에서는 구체적 대응 방안이 제안됐다. 우선 백일 전 울산과학대 교수는 미국의 관세 부과는 한미 FTA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동맹현대화를 이유로 주한미군을 뺀다면 불리한 것은 우리가 아니다고도 했다.

백 전 교수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을 거론하며 압박하겠지만 이는 협상용 블러핑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전시작전권 환수 등 안보 주권을 되찾는 협상 카드로 삼아야 한다.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고 이재명 정부에 주문했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은 농축산물 개방 압박을 경계했다. 앞선 한미관세 협상에서 한국은 쌀·쇠고기 추가 개방은 막아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미국은 여전히 검역 완화나 GMO 감자, 과일류 수입 확대를 압박할 것”이라며 식량주권 위협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는 단순 통상 사안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 환경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더불어 현재 미국은 전세계적인 농업 적자국이지만, 유일하게 한국을 대상으로 흑자를 보는 국가인 점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발표에 나선 전수진 종합법률사무소 이정 미국변호사는 온플법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디지털 무역과 데이터 주권 문제를 지적하며 “정밀지도 등 핵심 디지털 자산을 미국에 양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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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의 주인으로서, 전쟁포로인 나의 본국송환을 요구한다"

96살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통일대교까지 거동, 온몸으로 송환의지 밝혀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5.08.20 16:24
  •  
  •  수정 2025.08.21 09:03
  •  
  •  댓글 0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96살)이 20일 오전 판문점으로 향하는 통일대교 초소까지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가 송환의지를 재차 밝혔다.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96살)이 20일 오전 판문점으로 향하는 통일대교 초소까지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가 송환의지를 재차 밝혔다.

72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포로의 신분인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96살)이 20일 오전 판문점으로 향하는 통일대교 초소까지 자신의 걸음으로 걸어가 송환의지를 재차 밝혔다.

안학섭 선생은 이날 오전 임진강역에서 동행한 40여 명의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관계자들과 함께 1차 결의대회에 참가해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권리인 전쟁포로로서의 본국 송환을 요구한다. 내 조국은 지척에 있는 조선이다. 노병 안학섭은 이제 조국에서 귀대보고를 마치고 눈을 감고 싶다"고 말했다.

2000년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송환 당시 왜 북으로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북에서 내려온 것도, 북으로 가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 투쟁으로 점철된 나의 삶은 나에게 허락된 하나뿐인 생명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전쟁포로 안학섭 판문점송환 일정에 대한 중대발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대로 "이제 죽을 때가 됐는데, 죽어서까지 식민지 땅에 묻히고 싶지 않다"는 심경을 다시 밝힌 것.

송환추진단은 성명에서 "2000년 북으로의 송환을 마다한 이유는 남녘 조국에 제국주의 침략군대 미군이 주둔해서 였다. '내가 안방을 내주고 그냥 간다는 것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남았다'고 한 안선생의 말씀은  정치적 생명이 있는 사람의 양심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강역 앞 1차결의대회에서 안학섭 선생이 직접 써 온 발언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진강역 앞 1차결의대회에서 안학섭 선생이 직접 써 온 발언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날 정부의 비전향장기수 송환 적극 검토 의사가 확인된 이후 판문점으로 향하는 고령의 비전향장기수의 행보에 많은 국내외 보도진들이 관심을 보였다.

안 선생은 임진강역 대회 이후 마정교차로를 거쳐 통일대교까지 1시간동안 진행된 행진 대열의 선두에서 차량에 탑승하여 함께 이동했다.

통일대교 앞에서 행진이 멈추고, 안 선생은 송환추진단 공동단장인 이적 민통선평화교회 담임목사와 한명희 전 민중민주당 대표의 부축을 받아 군 관할 초소까지 200여 미터를 걸어가 송환의사를 밝힌 뒤 다시 기다리던 송환추진단에게 돌아와 대기하던 앰뷸런스를 타고 후송됐다.

초소에서 송환추진단에게 돌아오는 길에 안 선생은 품에서 꺼내든 '공화국기'를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자신은 '조선공민'이라는 뜻을 펼쳐 보였다. 

안학섭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안학섭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안 선생은 정규군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무시하고 이적 간첩죄를 뒤집어 씌워 무기징역을 선고한 과정에서 목격한 당시의 부패한 사회상, 전향공작 과정에서 당했던 수모와 고문, 치욕과 고통을 언급하며 "도망칠 생각을 안해봤다면 거짓말이고 자살할 생각을 안해봤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라고 치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분단과 전쟁의 역사는 다시는 반복되서는 안된다. 역사의 희생양은 안학섭 하나로 족하다. 평화와 통일의 새 역사를 만들자. 나의 발걸음이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환추진단은 이날 성명을 발표해 '안학섭 선생은 현존 세계 최장기 비전향장기수이며, 지금까지도 전쟁포로'라며, 1949년 체결된 제네바 3협약의 3조와 109조, 108조(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 및 본국으로의 자동송환 원칙), 그리고 정전협정 제3조(정전협정 발효 후 60일 이내 전쟁포로의 직접 송환) 등에 따라 그의 송환을 촉구했다.

북으로 간다! 길비켜라!. 통일대교에서 군 초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안학섭 선생과 송환추진단 일행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통일대교 앞에서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이 전쟁포로 안학섭노병 즉각 송환을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통일대교 앞에서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이 전쟁포로 안학섭노병 즉각 송환을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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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재판부, 尹 불참 너무 쉽게 허용…여름휴정기 쉬는 등 속도도 느려"

 참여연대·민변 '내란 재판 현주소와 제언'…"한덕수·박성재·추경호 집중 수사 필요" 주장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5회 연속 불참한 가운데, 재판부가 너무 쉽게 궐석 재판을 허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 1회만 재판을 진행하고 여름휴정기에는 쉬는 등 재판 진행 속도가 과도하게 느리다는 비판도 함께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는 19일 서울 서초 민변 사무실에서 '12.3 내란 재판의 현주소와 제언'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손익찬 변호사(민변 '12.3 내란 진상규명·재발방지 태스크포스' 팀장)는 "특검이 여러차례 피고인의 강제구인을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강제구인이 어려울 것'이라는 서울구치소 보고서를 근거로 강제구인을 하지 않고 궐석재판을 진행했다"며 "피고인 윤석열의 궐석재판을 너무 쉽게 허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는 지난 11일 재판에서 "피고인의 출석 거부에 따라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겠다. 대신 불출석해서 얻게 될 불이익은 피고인이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고, 이어진 18일 재판도 궐석재판으로 진행했다.

 

손 변호사는 이에 대해 "궐석재판 여부는 매번 결정돼야 한다. 따라서 매번 재판에 앞서 강제구인 시도가 있어야 하고 불출석 사유 조사도 매번 있어야 한다"며 "사건의 중대성에 비춰봤을 때 서울구치소의 보고서만 받아보고 결정할 일이 아니라 수명법관(재판부가 조사 등 행위를 하도록 명한 법관)에 의한 조사 등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손 변호사는 '피고인 강제구인은 인권침해'라는 지적에는 구인 가능성의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궐석재판이 허용되는 것은 안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다"며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반론했다.

 

내란 재판이 과도하게 지체되고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손 변호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조지호 전 경찰청장 사건도 함께 심리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진행이 지나치게 느리다"며 "재판부가 윤석열 사건만 전담하는 등 방안을 통해 최소 주 3회 이상 심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손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재판이 2017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9개월여 간 통상 주 3회씩 총 105차례 진행된 반면, 윤 전 대통령 내란 재판은 지난 4월부터 4개월여 간 통상 주 1회 진행돼 현재까지 14차례 진행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정농단 재판이 여름휴정기에도 여덟 번 열린 반면, 내란 재판은 여름휴정기에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점도 두 재판 진행의 차이점으로 꼽혔다.

 

손 변호사는 또 "국가적 법익의 침해가 문제되는 내란 재판에 관해서는 국민도 알 권리가 있다"며 내란 재판 영상중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피의자 신분으로 내란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토론회에서는 그간 내란 재판의 진행 경과와 전망, 내란특검의 집중수사가 필요한 사안에 대한 제언도 있었다.

 

김태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윤 전 대통령 내란 재판 진행에 대해 "세 가지 핵심적인 사실관계 중 '계엄군과 경찰의 국회 침탈 및 봉쇄'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검증이 이뤄졌고, 7월부터는 '계엄군의 선관위 점령' 관련 사실관계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며 "관련 증인 신문이 마무리되면 이후 '경찰과 방첩사의 주요 정치인 체포 작전' 관련 검증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재판에 출석한 증인은 모두 군인인데, 대부분의 증인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이 윤석열과 직접 통화하면서 국회의사당 침탈과 선관위 침탈에 관한 지시를 한 사실을 증언했다"고 짚었다.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내란특검이 향후 집중수사해야 할 사안으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계엄 심의 국무회의 관련 행적과 역할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계엄 관련 지시사항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당시 여당 지도부의 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 등을 제시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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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비전향장기수 6명 송환 적극 검토 의견

기자명

  •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5.08.19 11:58
  •  
  •  수정 2025.08.20 07:23
  •  
  •  댓글 1
 
지난 12일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 추진위원회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의 추석전 송환을 축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2일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 추진위원회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의 추석전 송환을 축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한과의 대화채널 복원을 목표로 하는 통일부의 '남북관계 정상화·안정화' 조치가 연일 언급되고 있다.

전날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과의 대화 재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이라고 답하며, 이른바 '참수작전'을 의미하는 한미연합 특수작전훈련 '티크 나이프'(Teak Knife)를 특정해 중단해야 한다고 언급한데 이어 19일 통일부 당국자가 기자들과 만나 북한인권보고서 비공개 전환, 6명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의사를 밝혔다.

이 당국자는 "정부는 안학섭씨를 포함하여 비전향장기수 문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중에 있다"고 하면서 "다만 8월 20일 송환 요청과 관련해서는 시간이 촉박하고 북한과의 협의, 관계기관과 협력 등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지만 이 문제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통일부에 전달된 송환요청 대상자는 안학섭씨를 포함해 총 6명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추진위원회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한 송환 대상자는 김영식(1934.7. 92살), 박수분(1930.1. 96살), 안학섭(1930.4. 96살), 양원진(1929.9. 97살), 양희철(1935.9. 91살), 이광근(1945.10. 81살) 등 6명의 비전향장기수.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며 평양시민'이라며 송환을 요구하는 김련희씨가 거론됐다. 

송환 희망자 중에는 일부 전향장기수도 있으나 이들은 자신들의 전향이 당시 행형당국에 의해 폭압적으로 강요당한 것이라며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1953년 4월 전쟁포로로 체포되어 1995년 8.15 광복절 특사로 나올때까지 42년 4개월의 수감생활을 한 안학섭씨의 경우 오는 20일 임진각 통일대교에서 판문점까지 직접 이동해 북으로 가겠다며, 통일부에 유엔사 및 북측과 협의를 진행할 것을 요구한 상태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생존 비전향장기수는 모두 대한민국 국적이 있고 과거에 전향한 분도 있다.  본인들은 강제전향이라고 했고, 국가기관이 인정한 바도 있는 등 굉장히 다양한 형태가 있다. 정부가 일괄적으로 그분들을 관리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현재로서는 (송환희망자가) 6명인데, 추가로 더 나올 수 있다고 예상은 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 숫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련희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비전향장기수와 경우가 다르고, 탈북자 일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별도 검토는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송환 여부는 결국 북의 수용의지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북측이 협의에 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더욱이 납북·국군포로 등에 대한 반대급부가 조건부로 제기될 경우 실제 송환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 당국자는 또 앞으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현재로서는 올해 보고서를 비공개, 내부용으로만 만들고 따로 공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인권과 관련해서는 통일부 내부 자료로 실태조사를 계속 해왔으며, 생산·관리된 자료는 법률에 따라 법무부에 이관 보존해 왔으나 윤석열정부에서 2023년과 2024년 두차례에 걸쳐 이를 '북한인권보고서'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이날 설명의 요지는 "공개 비난 위주의 공세적·대결적 북한인권정책이 북한주민의 실질적 인권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고 본다"는 것.

이 당국자는 "인권문제는 자유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북한인권법에서도 실질적 인권 개선을 위한 인도적 지원과 같은 사회권 영역과 함께 균형있게 다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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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트럼프가 들이밀 6대 청구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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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경준 기자
  •  
  •  승인 2025.08.19 17:37
  •  
  •  댓글 0
 
 

오는 25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할지, 아니면 자주적 목소리를 낼지가 시험대에 오른다. 윤석열 정부가 보여온 ‘추종 외교’와는 다른 길을 이재명 정부가 보여줄 수 있을지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밀 것으로 예상되는 ‘5대 청구서’에 대해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① 동맹 현대화, 주한미군 역할 재편

첫 번째 청구서는 ‘동맹 현대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주한미군의 규모와 성격을 재검토하고, 한국군을 대중국 전쟁에 더 깊숙이 참여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의 역외 진출뿐 아니라 한국의 역할과 부담 확대까지 포함한다. 사실상 대중국 전쟁에서 주한미군의 참전과 한국의 개입을 염두에 둔 구상이다.

지난 8일 제너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동맹을 현대화하면 미국군이 다른 역할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 예시로 지난 4월 주한미군 패트리 미사일이 중동으로 전개된 것을 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이 한국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분쟁에 간접적으로라도 개입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익중심' 외교는커녕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굴종외교를 의미한다. 더군다나 주한미군의 참전은 평택, 군산 등 주한미군 기지가 중국의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② 국방예산, 증액 요구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두 번째 청구서는 국방예산 증액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한미 합의 초안을 입수해 미국이 한국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8%로 증액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피트 헤그셋 미 국방장관은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국방비를 늘릴 것을 요구했다. 한국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8%로 62조 원이다. 국방비가 두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 14일 “모든 아시아 동맹국은 집단방어의 부담을 질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국방 지출 면에서 계속 롤모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국방비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국방비 증액 요구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안보 전략을 미국의 요구에 맞추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국방비를 맞추는 순간, 한국은 안보 전략을 스스로 설계하기보다 미국이 그려놓은 틀에 맞춰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이는 곧 한국의 안보가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한국이 미국을 위한 '전시 국가'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③ 방위비 분담금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때도 “한국은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인식을 앞세워 사상 최대 규모의 분담금 인상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에서, 한국을 겨냥한 일방적 ‘청구서’가 예고되고 있다.

이번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와 연계해 분담금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달 8일, 트럼프는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대한민국은 충분히 부유하고 역량 있는 국가로서, 자신들의 군사 안보를 위한 비용을 더 책임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후보 시절에도 “우리가 다시 집권하면 한국은 우리에게 연간 100억 달러까지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④ 한일 관계, 삼각동맹 압박

 

트럼프 대통령이 내밀 네 번째 청구서는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삼각동맹 가속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동북아 안보의 핵심은 한미일 협력‘이라는 기조를 강조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곧바로 한일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배경에도 이런 압력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한미 관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전진 기지로 삼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한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면 미국의 군사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의 전환이라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미일 동맹의 본질은 미국의 군사 전략에 한국을 종속시키는 구조다. 이는 곧 한반도를 미·중, 미·러 갈등의 전초기지로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이 자주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전쟁이 가속화될 수 있다.

⑤ 관세 협상, 도장 찍을까?

이번 정상회담의 민감한 의제 중 하나는 단연 관세 협상이다. 기본 합의안을 도출하며 일단은 진전을 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수입품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 내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초 합의안'일 뿐, 세부 조항은 여전히 협상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 관세라는 압박 카드를 여전히 쥐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지정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50%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갖추지 않은 외국산 반도체에 대해서 10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을 정조준한 조치다. 한국의 철강·자동차·반도체는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관세 인상은 곧 수출 물량 축소와 기업 매출 타격, 나아가 일자리 위축으로 직결된다.

또한 3,500억 달러라는 대규모 투자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의미다. 미국 현지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한국 내 생산기지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불가피하다.

⑥ 알래스카, 에너지·자원 투자 강탈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할 여섯 번째 청구서는 알래스카 투자다. 에너지 안보를 핵심 과제로 내세워 한국이 알래스카의 가스와 광물 개발에 대규모로 참여할 것을 압박할 예정이다.

알래스카 투자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한 기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규모 탐사·인프라 건설에는 수십조 원이 필요하며, 운송·가공비용까지 고려하면 경제성이 불투명하다. 이미 엑손모빌과 콘코필립스 철수한 바 있다. 미국이 ‘투자 파트너’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한국이 리스크와 비용을 떠안는 구조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자주 없는 동맹은 ‘굴종’

이재명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동맹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의 일방적인 청구서에 굴복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한국은 종속을 벗어날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의 자주적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결단이 요구된다.

 한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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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까지 노조법 개정 발목 잡는 재계, 민주노총 ‘원안 사수’ 총력전

노조법 2·3조 개정안, 24일 표결 처리할 듯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비롯한 경제6단체 대표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조법 개정안 수정 촉구 기자회견에 들어서는 가운데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재계와 국민의힘이 막판 발목잡기에 나서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원안 사수를 내걸고 총력전에 돌입했다.

민주노총은 노조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목전에 둔 이번 주 내내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개정안 원안의 즉각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18일에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대거 결합한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운동본부)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불법행위로 이윤을 획득해 왔던 경영계가 이제는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통해 올바르게 기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경제계의 몰염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지 말라. 국회는 경제계의 억지 주장에 흔들리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노조법 개정안은 국회 공청회와 법안 심사 등 이미 여러 차례 사회적 논의를 거쳐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서 두 차례 통과된 바 있다. 더욱이 현재 환경노동위원회 대안으로 정리된 개정안은 그간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담아낸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후퇴는 안 된다는 게 민주노총의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경영계는 노조법 개정이 가시화되자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 간의 협의 없이 법안 처리가 강행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법 개정에 대한 토론을 거부해 온 건 오히려 경영계였다. 그간 노동계는 노조법 개정안을 반대해 온 경총 등을 향해 공개 토론을 제안해 왔지만, 경영계는 이에 응하지 않고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왜곡 선동만 이어왔다.

더욱이 ‘원청이 하청노조와 교섭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잇따라 나오는 상황에서도,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를 묵살하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남발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경식 경총 회장이 이끄는 CJ그룹의 CJ대한통운이다. CJ대한통운의 경우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온 데 이어 법원의 1, 2심 판결까지 나온 상황이지만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운동본부는 18일 노조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을 찾은 손경식 회장을 향해 “노조법 개정 반대 운운하기 전에 원래 있는 법부터 지키라”며 “CJ택배노동자와의 단체교섭 거부는 불법”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원안 즉각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속노조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즉각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보당


19일에도 금속노조와 민주일반연맹, 청년단체들이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후퇴 없는 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외쳤다.

20일에는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운수노조, 21일에는 건설산업연맹이 국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연다. 22일에는 민주노총과 운동본부, 진보당이 국회 본청 계단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연 뒤 같은 날 저녁 국회 정문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원안 통과 끝장 투쟁 문화제를 진행한다.

한편, 당초 국회 본회의는 21~24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지만, 여야는 협의를 거쳐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는 22일을 제외하고 21일과 23~25일 본회의를 열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비롯한 쟁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인데, 국민의힘은 이들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한 상태다.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노조법 2·3조의 경우 23일 본회의에 상정돼, 24일 처리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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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 돈다발 증거 분실' 파문 확산... "매우 엄중" 법무장관 감찰 지시

검찰이 지난해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자택에서 압수한 5천만원 신권 '뭉칫돈'의 출처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전씨의 자택에서 나온 한국은행이 적힌 비닐로 포장된 돈뭉치. ⓒ 연합뉴스 = 독자 제공

서울남부지검이 건진법사 전성배씨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의 띠지를 분실한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며 감찰을 지시했고, 대검찰청 감찰부가 즉시 감찰에 돌입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증거인멸"이라며 특검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19일 오후 3시 법무부는 정성호 법무부장관의 감찰 지시 사실을 알렸다. 법무부는 "정 장관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서울남부지검의 건진법사 관봉권 추적 단서 유실 및 부실 대응 문제'와 관련하여, 이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므로 진상파악과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감찰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 장관이 대검에 감찰을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 직후 노만석 대검찰청 차장검사(검찰총장 직무대행)는 대검 검찰부(감찰부장 김성동)에 진상 파악을 지시했다. 대검은 "대검 감찰부는 즉시 감찰3과장(김윤용)을 팀장으로 하는 조사팀을 구성하여 서울남부지검으로 보내 감찰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후 6시 15분경 정 장관은 이와 관련해 SNS에 직접 글을 올렸다. 그는 "금융사건 수사 전문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이 중요 증거를 이렇게 허무하게 '분실'하는 것도 모자라, 사기 저하를 우려해 감찰조차 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누구에게는 서슬퍼런 칼날이 되고, 누구에게는 성긴 그물이 되는 수사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라고 적었다. 이어 "감찰 과정에서 작은 의혹이라도 발견된다면 대검은 신속한 후속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건진법사 전씨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한국은행 관봉권 등 현금 1억6500만 원을 찾았다. 개인에게 지급되지 않은 관봉권은 5만 원권 100장 단위마다 띠지로 묶여 있고, 관봉권 10개 묶음은 스티커가 붙은 비닐로 포장됐다. 관봉권 띠지와 스티커에는 현금을 검수한 날짜·시간, 담당자 코드 등이 적혀있어 통상 출처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데 이후 서울남부지검이 그 띠지와 스티커 등을 분실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직원이 현금을 세는 과정에서 띠지와 스티커 등을 잃어버렸다는 게 남부지검 측의 설명이다. 결국 핵심 단서를 분실함에 따라 자금 출처 규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남부지검 내부에서 띠지와 스티커 분실 사실을 확인된 건 지난 4월이었지만, 이후 감찰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출신인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SNS를 통해 "현금 '띠지'나 관봉권 '스티커'는 현금 출처를 추적하는 매우 중요한 증거다. '분실했다'는 건 수사 상식에도 맞지 않다"면서 "김건희 특검에서 과연 고의로 분실한 것인지 아닌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이러니, 검찰이 스스로 해체를 재촉한다는 소리 듣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도 논평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실수로 볼 수 없으며, 수사를 진행한 검찰의 조직적 증거인멸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면서 "수사 담당자들이 권력자와 관련된 사건의 증거를 조직적, 의도적으로 폐기한 것은 아닌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을 향해 "이번 '증거인멸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건진법사 전성배씨는 지난 2022년 통일교 쪽으로부터 받은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과 청탁 내용을 김건희씨에게 전달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김건희 특검은 이날 법원에 전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성배씨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김건희 특검(민중기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교단 현안 청탁과 함께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백 등을 받은 뒤 김건희씨에게 전달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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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첫 주미대사에 강경화 전 장관 내정

 이재명 정부 첫 주미대사에 강경화 전 장관 내정

 

 

이재명 정부 첫 주미대사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내정됐다.

 

18일 SBS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경화 전 장관을 주미대사로 내정하고 미국 정부에 주미대사 임명을 위한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접수국의 사전 동의)을 요청할 계획임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인사 조치다.

신임 대사 아그레망에는 통상 4~6주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이다. 비(非)외무고시 출신으로 헌정사상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의 이력을 지녔다. 외교부 연구원을 거쳐 주UN 대한민국 대표부 공사,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 UN 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 등을 지냈다. 현재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다.

 

닷새 앞으로 다가온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주일대사도 내정됐다. 이재명 정부 첫 주일대사로는 이혁 전 주베트남대사가 내정됐다.

 

이혁 전 대사는 주일대사관 공사, 동북아1과장, 아시아태평양국장 등을 지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조만간 주미·주일대사 인선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주미대사로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주일대사로는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18일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조만간 미·일·중·러 4강 대사를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가운데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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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의 아내이자 동지, 우리 할머니의 '글꼴'이 나왔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할머니가 독립운동가라고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나를 안아주고 업어주고 늘 따뜻하게 감싸 주기만 한 할머니였다. 억세고 강건하고 단호해야 할 수 있을 것 같은 독립운동가와 우리 할머니는 연결 지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할머니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반평생을 독립운동가로 살아온 분이다. 할아버지 우당 이회영과 가족 모두가 함께 '투쟁'한 활동을 오래 전에 책으로 냈다. 할아버지 여섯 형제 분들이 모두 가솔을 이끌고 서간도로 이주한 것부터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전개한 항일운동의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아사 하거나 고문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할아버지들, 이루 말로 다하기 어려운 비극적 가족사까지 그 책에는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것이 <서간도 시종기(이은숙 저)>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다.

최근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하나 생겼다. 할머니의 서체가 완성된 것이다. 그것은 육필원고의 글씨체를 정형화해서 만들었다. 서체의 이름은 '광복 이은숙' 글꼴이라고 붙여졌다. 할머니의 글씨는 강건한 중심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여분을 품고 있었다. 글맵시는 자유스러우면서도 깨지지 않는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할머니의 저서에 만만치 않은(?) 기여를 했다. 원고를 묶은 원본 책의 제목을 붓글씨로 내가 쓴 것이다. 제목 중에는 '할머니 자서전'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것이 나의 참여를 만방에 알리는 실마리이다. 흔쾌하게 마음먹고 쓴 것도 아닌데 할머니의 저서 덕에, 나는 책과 함께 영원히 익명의 손자로 등장하게 됐다.

할머니는 초겨울 방문을 열고 엄동설한의 그 기억을 모았다

광복 이은숙 글씨체 소개 ⓒ 광복8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서체를 하염없이 보면서 할머니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내 어릴 적 보아 온, 책을 쓰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마당 쪽 방문을 열어 놓고 글을 쓰셨다. 햇빛을 옆으로 받으며 앉아서, 무릎을 세워 책상 삼아 글을 쓰셨다. 무릎 위에 놓는 단단한 책받침은 아버지의 작품이었다. 할머니의 자세에 맞게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아버지가 직접 재단하고 만들어 드렸다.

할머니는 마치 붓글씨를 쓰듯이 펜의 중간 위를 잡고 글을 아래로 써 내려갔다. 펜 끝에 힘이 많이 들어갈 수 없는 옛 필법이었다. 그렇게 쓰면 글씨 또한 커지기 때문에 펜도, 원고지도 특수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한지류의 적당하게 부드러운 종이를 찾았다.

큰 한지를 크기에 맞춰 가지런하게 잘라 저술 용지로 묶어 드렸다. 펜은 굵은 사인펜을 사서 끝이 부드러워지도록 이겼다. 붓펜이 따로 없던 시절이어서 아버지가 이런 방법을 고안했다. 끝이 풀린 굵은 사인펜은 할머니의 손과 팔에 무리가 안 가게 했고 잉크도 적절하게 풀려 나왔다. 왜 할머니의 사인펜은 새것도 항상 헌 것처럼 끝이 이겨져 있는지 그때는 궁금했다.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던 시기에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여서 그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할머니가 무엇인가 쓰고 계셨고 그러기 위해서 늘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기억을 한다.

초겨울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 때에도 할머니는 방문을 열어 둔 채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마당을 내다보며 글을 썼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막내 손자와 가끔 눈이 마주치면 예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느 때처럼 나의 놀이에 눈길을 계속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 옛날 엄동설한의 기억 속으로 생각을 모아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잎을 거의 떨군 화단의 겨울나무들을 보는 할머니의 눈길은 그보다 훨씬 멀리, 닿지 않는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얼마를 그러다가 천천히 눈길을 되돌려 다시 사인펜의 윗부분을 잡고 붓글씨를 쓰듯 몇 줄을 술술 써 내려가곤 하셨다.

추위와 기아는 이제 옛 얘기가 됐을지 몰라도 그 겨울들에 묻혀 있는 고난의 시간을 어찌 따뜻한 온기에서 맞이할 수 있을까? 가늠할 길 없는 할머니의 눈길이 그렇게 수없이 겨울을 오가며 할머니의 과거는 뭉툭한 글씨로 하나씩 종이 위에 옮겨졌다.

할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종종 갑자를 꼽았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네 손가락의 마디를 하나씩 짚어 가며 중얼거리곤 했다. 기억을 불러오다가 다시 고쳐 되뇌고를 반복했다. 어떤 경우에는 연이어 갑자를 꼽고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기억의 정확한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또 몇 줄을 써 내려갔다.

간혹 손가락 마디를 계속 짚다가 마치 찾고자 한 것을 찾지 못한 것처럼 손을 탁탁 털고 원고용지를 접은 후 일어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한 줄도 더해지지 않았다. 나중에 그것이 시기를 기억하기 위해 갑자를 꼽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린 손자의 눈에 그것은 정말 희한한 행동이었다. 언젠가 할머니께 여쭈어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 손에 뭐가 있어?"

할머니는 웃으며 갸름한 손바닥을 보여 주셨다. 거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잔주름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주름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연을 그 당시에는 헤아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실망한 표정의 막내 손자를 안고 상기된 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다.

<서간도 시종기>는 거의 전적으로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다행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경험을 회상하고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리가 있었다. 할머니의 생신이 되면 아침부터 과거의 동지들이 할머니를 찾아왔다.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할머니 무릎에 앉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며 가며 본 장면과 소리로만 기억이 남아 있다.

해마다 생신 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어르신들이 할머니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 혁명가들이어서 그런지 노인들임에도 대체로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쾌활했다.

국사 교과서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의 동지들

광복 이은숙 글꼴 ⓒ 광복8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우당장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종종 이런 말씀을 여러 분이 하셨다. 그리고 때로는 씁쓸하게 혀를 차기도 하고, 때로는 껄껄 웃기도 했다. 해마다 오던 동지들 중 여러 분은 나중에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교과서에 독립운동가로 소개된 것을 보고 비로소 그분들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할머니 책의 제목을 쓴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할머니 책의 표지 제목을 나에게 붓글씨로 쓰라고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서예 특별활동이 있었는데 우리 반의 담임 선생님이 그 지도 교사였다. 좋으나 싫으나 나는 서예 연습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예 숙제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연습할 때마다 아버지가 지켜보며 칭찬해 주셨다.

처음에는 가로 획과 세로 획만 수 천 번 이상 연습했다. 글자를 쓰게 된 것은 시간이 꽤 지난 그다음이었다. 획 하나하나는 그런대로 모양을 갖춰도 획들이 모인 글자를 균형 있게 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획은 살았지만 글자는 깨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 나아가 여러 글자가 모인 글을 하나의 화선지에 정연하게 쓰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아버지가 할머니 책의 제목을 쓰라고 했을 때는 이제 막 화선지 위에서 줄 맞추랴 크기 맞추랴, 여러 글자들을 놓고 씨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자신도 없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흔쾌하게 그것이 나의 일인양 생각하며 쓰겠다고 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아버지가 먼저 벼루에 먹을 갈아 놓고 화선지도 여러 장 미리 준비하셨다. 그날 수없이 많은 화선지를 버렸다. '서간도'가 그런대로 써지면 '시종기'가 비뚤어지고 다행히 '서간도 시종기'까지 괜찮았는데 '할머니 자서전'의 간격이 너무 떠서 볼 수가 없었다. 쓰고 또 써도 그다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그중에 가장 나은 것을 골라 책 표지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마음에 썩 들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잘 썼다고 했다. 나중에 할머니도 아주 좋아했다. 그것이 지금 표지에 붙어있는 <서간도 시종기 (할머니 자서전)>이다.

<서간도 시종기> 책표지 ⓒ 일조각

그 이후 나의 서예 실력은 더 나아져 이런저런 대회에 나가 제법 상도 받았다. 글씨를 잘 쓴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다시 쓰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할머니 책은 이미 나의 초등학교 5학년 글씨를 표지로 완성돼 있었다. 그것은 다시 봐도 그리 잘 쓴 글씨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할머니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할머니가 고사리 손 어린 손자를 안고 계신 것 같아서 엉성한 글맵시가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할머니의 삶을 담고 있는 서체는 준엄한 기품이 있지만 엄격한 틀을 강요하지 않는다. 중심이 흔들리는 듯 획이 날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음 획으로 이어지고 또 글자에서 글자로 가는 사이에 강건함과 유연성이 화합하며 균형을 잡는다. 할머니의 서체는 하나의 불균형을 염려하지 않는다. 끝내 전체와 어울리는 조화를 이루어 낸다. 할머니의 서체에는 각기 다른 양상이 충돌하며 연결되는, 다차원적 구성의 아름다움이 있다.

굴종을 강요하는 세월에 흔들림 없이 맞서고, 또 견디며 결국 소화화고, 이겨낸 할머니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고사리 손 어린 손자도 이제 손바닥에 잔주름이 잡히고 있는 환갑쟁이가 됐다. 세월을 그렇게 먹도록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할머니께 여쭙고 싶다.

"할머니 어떻게 그렇게 사실 수 있었어요?"

#독립운동#할머니#우당이회영#서간도시종기#광복이은숙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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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학살을 막지 못한 '침묵의 공모자'가 될 것인가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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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5.08.19 06:05

  • 수정 2025.08.19 07:05

  • 댓글 1

내가 알던 모든 이가 죽고 모든 곳이 사라졌다면

가자 완전 점령과 서안 합병을 선언한 네타냐후

변한 적이 없는 집단 학살과 인종청소라는 목적

서방 선진국과 초국적 자본이 공모한 전쟁범죄

중동 아랍 정권들에게로 향하는 분노와 배신감

분노와 공포가 무력감과 수치심으로 변하기 전에

일요일인 20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접경인 지킴 검문소를 통해 북부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구호 물자 트럭에 접근하려다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숨진 이들의 시신을 가자시티의 시파 병원으로 옮긴 뒤 오열하고 있다. 2025. 07. 20 [AP=연합뉴스]

"가자의 심각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당신이 자라면서 알게 된 모든 사람을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와 삼촌, 사촌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 … 이제 그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상상해 보라. … 당신은 매일 수 시간을 들여 음식을 찾거나 깨끗한 물을 구해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사이 그녀는 폭격으로 두 다리를 잃었고, 병원에서 마취제가 떨어졌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할 때 당신은 그녀의 손을 잡아야 했다. … 자라면서 놀던 장소, 생일을 축하하던 친구들의 집, 첫 데이트를 했던 장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끝없는 회색의 폐허가 됐다.

당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밀가루 한 봉지를 구걸하며 땀에 젖은 절박한 인파를 밀치며 지나가던 중 총소리를 듣고 땅에 쓰러진다."

미국의 진보 언론 <자코뱅>의 필자인 브란코 마르체틱(Branko Marcetic)은 지금 가자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살육, 굶주림, 질병으로 뒤덮인 집단 학살 속에서 230만 명이 살던 사회가 완전히 파괴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제노사이드는 이제 그야말로 종말적 단계를 향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지구의 완전 점령과 서안지구의 합병을 선언했다. 이미 가자지구의 80% 가까이를 군사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이제 나머지 3개 도시(가자 북부의 가자시티, 가자 중부의 데이르 알-발라와 누세이라트)까지 완전히 파괴하고 점령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서안지구에 정착촌 3천 채 이상을 추가 건설할 계획도 승인했다.

이스라엘 국회에서는 서안지구를 이스라엘 영토로 선언하는 결의안이 71 대 13으로 통과됐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네타냐후와 초강경 극우 시온주의자들은 ‘시나이반도에서 골란고원과 시리아 남부를 거쳐 유프라테스강까지’ 이어지는 대(大) 유대 국가 건설로 나아가려는 구상도 숨기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과 그 최대의 후원자인 트럼프 정권은 처음부터 '영구 휴전'과 '점령군의 철수'라는 하마스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인질'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휴전 협상'에 대한 모든 움직임은 그저 시간 끌기를 위한 사기극과 쇼에 불과했다. 인종청소를 완수하며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강탈하고 자원을 약탈하려는 그들의 목표는 변한 적이 없었다.

 

물론 가자와 서안의 고립 분산된 극히 일부 지역에 아무런 독립적 권한도 없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허용해줄 가능성은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한 국가가 아니라 가짜 국가에 불과하고, 아랍의 독재 정부들과 유럽연합 등에 체면치레하라고 던져줄 텅 빈 포장지일 뿐이다. 이스라엘 점령군은 이러한 진실을 가리기 위한 가자의 언론인 표적 암살을 더욱 강도 높게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까지 사망한 가자의 기자와 언론인 수는 240명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 남북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유고슬라비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생한 언론인 사상자 수를 전부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주식 시장이 세계 어느 곳보다 더 높은 수익 상승률을 보이면서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최첨단 군사 기술과 주변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성공을 보면서 국제 자본과 투자자들은 아낌없이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시장은 중동의 명확한 승자를 지목하고 있다"라고 이것을 평가했다. 결국,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발전한 서구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초국적 자본들이 공모한 집단 학살이다.

그 핵심에는 네타냐후와 함께 트럼프가 있다. 반제국주의 사상가 질베르 아슈카르는 이렇게 지적한다. "논평가들은 트럼프가 가자지구에서 진행 중인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열망이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총리에게 '평화'를 강요했다는 보도는, 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짓 소문일 뿐이다. … 실제로 트럼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할 계획을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세우도록 허용한 인물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을 전폭 지지하는 이유는 중동 패권에 대한 그들의 뚜렷한 이해관계의 일치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은 중국과 대결하기 위해 이제 중동에서 발을 빼고 싶어 한다'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 중동 석유와 에너지에 대한 의존이 결정적인 나라다. 미국은 중국과 대결을 위해서도 중동 패권을 놓칠 수가 없다.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한다'는 떠들썩한 논란과 달리 미국은 중동 지역의 군사기지나 군병력을 크게 감축한 바가 없다. 이것이 얼마 전 트럼프가 네타냐후와 함께 이란을 폭격한 이유이고,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이스라엘 합동 폭격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독일과 영국, 유럽연합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은 가자에서 매일 죽어가는 1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의 생명보다, 가자에 남아있다는 50여 명의 이스라엘 '인질'의 안전에 대한 노골적인 선택적 관심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과 기아 학살이 최정점에 달하면서 이들 나라의 정부마저도 최근에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겠다'라는 선언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앞서 언급했듯이 껍데기뿐인 가짜 국가를 뜻한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대한 유럽 정부들의 립서비스는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을 막아서기 위한 실질적 조치는 취하지 않으면서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새롭고 창의적인 수법'이라는 냉소적인 반응과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팔레스타인 민중이 가장 큰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중동과 아랍 정권들의 태도다.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말만 하면서 집단 학살을 막기 위한 어떤 실질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중동과 석유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해 온 아담 하니에(Adam Hanieh)는 그 이유를 이들 친미 독재 정권들과 미국의 동일한 이해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같은 국가들은 미국의 프로젝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 있지 않다. … 미국과 걸프 국가들 사이에는 극도로 긴밀한 협력 관계가 있으며, 이는 트럼프 하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의 미-러 협상을 주최하고 있다는 사실과 UAE가 향후 10년간 미국에 1조 4천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최근 발표에서 볼 수 있다. … 따라서 우리는 아랍 국가들이 트럼프가 제안하는 방식의 인종청소와 '정상화'에 근본적으로 반대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

 

베트남 전쟁부터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와 패권 전략을 분석해 온 생태사회주의자 조나선 닐은 미국, 유럽연합, 아랍의 정권들이 집단 학살을 막지 않는 더 중요한 이유를 지적한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원했다. …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우리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 인종차별적 살인, 난민 박해, 학살이 정상화된 세상. … 우리의 분노와 공포가 두려움, 무력감, 그리고 수치심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얼마 전 광복 80주년을 기념했듯이, 베트남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프랑스에 맞서서 식민지 해방을 이루었듯이, 팔레스타인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방될 날이 올 것이다. 조선일보는 며칠 전 '우리가 파병까지 해서 막으려 한 베트남 빨갱이 호찌민의 동상이 왜 서울에 있냐'고 호통치는 칼럼을 실었는데, 언젠가는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투사의 동상이 서울에 세워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먼 미래에 세워질 동상이나 기념비가 아니다. 지금 집단 학살을 지켜보고 침묵하고 나서 나중에 그것을 돌에 새기고 애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가 우리를 집단 학살을 막지 못한 침묵의 공모자로 기록하도록 놔둘 수 없다. 21세기에 최초로 벌어지는 주요 선진 국가들이 공모한 이 공공연하고 끔찍한 집단 학살을 멈추기 위해 지금 당장 더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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