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9월 29일 인천 중구 인천관광공사에서 유정복 인천시장으로부터 인천항 내항 재개발 사업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2025.09.29. ⓒ뉴시스
지난 9월 29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인천시를 방문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시의 주요 현안사업 등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지역 민심을 다진 것이다. 인천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공항이 있는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을 때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상징적인 곳이다. 그런 만큼 관광 산업이 중요하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인천시를 방문해 찾은 곳도 바로 인천관광공사였다.
이곳에서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유정복 인천시장으로부터 인천항 내항 재개발 사업에 관한 설명을 듣고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유 시장은 지역 활성화를 기대하며 관광객 유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유 시장은 국민의힘 소속으로,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유력 후보가 될 전망이다. 윤석열 탄핵 여파로 내년 지방선거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국민의힘 입장에선 인천시 사수를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에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다름 아닌 국민의힘 인사들이다. 이날 유 시장의 사업 설명이 끝나자, 박종진 국민의힘 인천시당 위원장이 장 대표를 붙잡았다. 그러면서 입에서 내뱉은 건 타국에 대한 혐오 발언이었다. "아주 심각합니다. (중국인) 무비자 문제가 심각합니다. 월미도고 뭐고 중국이 전부 다 장악해버렸어요. 이게 장기화되면...홍콩이 그래서 멸망한 거예요."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 그의 발언은 뜬금없는 것을 넘어 절망스러웠다.
심지어 국민의힘 지도부도 호응했다. 장 대표는 "그런데 왜 아까 그 말씀을 안 하셨냐. 그 말씀 하라고 마이크 드렸는데"라고 맞장구를 치며 큰 소리로 웃었다. 더 적극적으로 혐오 발언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날은 이른바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 정책'이 시작된 날이었다. 정부는 지난 9월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중국 단체관광객 대상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연일 안보 우려와 불법 체류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 시절부터 검토된 정책인데, 정권 교체 이후 국민의힘이 돌연 '반중', '혐중' 프레임을 들고 현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박 위원장의 이날 발언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국민의힘이 간과한 것이 있다.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걸겠다는 유 시장 앞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 들어오는 것에 반대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 단체 관광의 시작은 내수활성화, 경제회복에 많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관광객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얻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 시장은 박 위원장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만약 그가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다면, '이대로 가다간 지방선거 망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한술 더 떠 국민의힘은 중국인의 의료·선거·부동산 '3대 쇼핑'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길고 긴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나온 국민의힘의 대표 정책이었다. 김은혜 국민의힘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민주당이 지방선거 때 중국어로 선거운동을 하는 이유가 뭘까. 외국 국적이라도 영주권을 얻고 3년이 지나면 우리나라에 거주 안 해도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뒤 3년이 지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등록대장에 올라와 있는 만 18살 이상 외국인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지방의회의원 선거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중국은 인접국가이기 때문에 투표권을 가진 외국인 중 중국의 비중은 높은 편이다. 이를 빌미로 중국을 겨냥해 혐오를 부추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통상적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그 법이 그대로 통과될 리 만무하다.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이대로 국민의힘이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면 어떻게 될까. 지난해 서울 구로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 역시 중국어로 적힌 현수막을 내걸거나, 중국 출신 주민에게 중국어로 투표를 독려한 바 있다. 그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을 보면, 중국 출신 주민을 만나자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를 했고 주민을 향해 "짜요(힘내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렇게 다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스스로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꼴이다.
13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하는 윤봉희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직무대리. [사진 갈무리-국회방송 유튜브]
“국방부는 이번에 북한이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북중러 연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재래식 전력 현대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3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에 나선 윤봉희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직무대리가 이같이 밝혔다.
지난달 3일 ‘중국 전승절 80돌 열병식’ 때 북중러 정상이 집결한 데 이어 지난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80돌 열병식’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한 자리에 집결한 바 있다.
또한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80돌 열병식 계기에 북한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등 핵·미사일 전력과 ‘천마-20’형 신형 탱크, 무인기 발사차량, 신형 자주포 등 현대화된 재래식 전력도 선보였다.
국방력 분야에서 북한의 동향 관련, 윤봉희 직무대리가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현대전 수행을 위한 재래식 전력 확보를 통해 내년 1월 예정인 9차 당 대회 이전에 성과를 달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평가한 이유다.
그는 “북한은 대외적으로 혈맹관계 수준으로 격상된 북·러 협력을 공고히 하면서, 중국과의 관계회복을 통한 대외적 입지 상승과 경제적 수혜를 도모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론」 기조 하에 대남 물리적 단절조치를 지속하고 있으나, 우리의 긴장완화 노력에 일부 호응도 식별되고 있다”고 알렸다.
나아가 “미국은 국익을 최우선하는 가운데 대중 전략적 우위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동맹 및 우방국 참여를 촉구하고 안보 분담 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은 증가하는 북핵 미사일 위협과 안보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방위력 증강과 동맹국, 우방국과의 협력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중국은 시진핑 3기 체제 아래 내부결속과 경제회복에 주력하는 가운데, 정치·군사·외교력을 통한 존재감을 부각하면서 대미 전략적 압박을 시도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서 전쟁 지속 능력과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 등 관련국들과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고 봤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내란 이후부터 6·3 대선 직전까지 기관장 53명, 상임이사 28명, 비상임이사 23명 등 총 104명이 이른바 '낙하산'으로 임명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은 13일 국정감사에서 자체 분석한 기관장 관련 자료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탄핵 이후에도 보은성 알박기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시기별로 탄핵 선고 이전 65명, 탄핵 선고 이후 39명이 공공기관 기관장 등에 추가 임명됐다. 특히 기관장 30명은 한국교육방송공사,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코레일테크, 한국석유관리원 등 주요 공공기관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탄핵 선고 후 대통령이 없는 대행체제에서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주택관리공단,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등 23개 기관장이 새로 임명됐다.
정 의원은 "그러나 정작 제주항공참사 등으로 공항 안전의 중요성이 부각 되었는데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임명하지 않았다"며 "다시 말해, 알짜이면서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알박기를 강행한 것으로, 국민안전을 위해 필요한 기관장은 임명하지 않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특히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역시 편향된 인사 구성을 통해 알박기 인사의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작년 국감 당시 공운위 민간위원 9명 중 6명이 윤석열 정부·국민의힘 관련 인사였고, 올해 9월 기준으로도 7명 중 5명이 여전히 여권 관련 인사로 확인됐다.
정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낙하산·보은 인사로 공공기관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훼손시킨 데 이어, 비상계엄 이후에도 '알박기 인사'를 강행해 국민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논의는 빈약한 편이다. 기업과 경제연구소와 경제신문은 항상 기업 지원과 규제 완화라는 답을 제시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런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경제뉴스N시선'의 안진이 the삶 대표가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3~4개월 동안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음은 9월 24일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와 대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1. 통계상으로는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은 낮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시민이 체감하는 일자리 상황은 정반대라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들다고들 합니다. 최근 일자리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일할 만한 일자리'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의 150% 정도 되는 일자리를 할 만한 일자리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청년층이 가장 심각하고, 고령층은 고용률이 높다고 하지만 일주일에 1시간만 취업해도 취업자니까 사실은 불완전한 일자리에 있는 겁니다. 불완전하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시간만큼 일해서 충분한 수입을 올릴 수 없다는 뜻이죠. 또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편입니다. 여성의 참가율이 결혼하고 임신하고 육아하는 기간에 굉장히 낮아지고 그 후에 금방 회복이 안 되는 U자형 구조, 후진국형 구조예요. 선진국형이 되려면 북유럽 국가들처럼 남녀가 거의 똑같아져야 합니다.
더 넓게 보면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에 비해 제조업과 건설업 비중이 큰 편이거든요. 이 두 산업이 중·고 임금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요.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이쪽이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인데, 이 두 산업의 비중이 계속 축소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사회서비스 같은 다른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항상 최저임금에 묶여 있으니까 모든 연령층에 할 만한 일자리를 제공할 여력이 계속 떨어져요. 이제 우리 고용 문제의 총체적인 그림입니다.
2.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가 어떤지,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동시장에서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37% 정도입니다.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절반이 안 되는 일자리고요. 여기에 더해서 '가짜 3.3'이라 불리는, 자영업자로 위장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가 많게 잡으면 800만 명까지도 잡혀요. 이분들은 비임금 근로자로 분류되지요.
그러니까 임금 근로자 내 37%의 비정규직과 불안정한 비임금 근로자를 합쳐보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임금도 낮고 고용안정성도 낮아요. 이런 구조를 '이중구조'로 표현하기도 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로도 표현하는데, 정확한 용어로는 '분단(분절) 노동시장'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자본의 의도적인 전략이 숨겨져 있지요. 직접고용하는 기간제나 계약직을 넘어 하청과 외주화를 대폭 늘렸어요. 외주화의 다른 형태가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만들어 버리는 건데, 이 가짜 3.3 노동자들은 사실 임금 노동자와 비슷하게 종속적인 위치에 있어요. 경제적으로도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있고, 지휘·명령을 받는다는 측면에서도 종속되어 있죠. 인적 종속성과 조직적 종속성이 다 있는데도 임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게 됩니다.
이렇게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비임금 근로자들은 정확하게 통계가 안 잡힐 정도로 숨겨져 있어요. 노동력을 활용하려면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책임성마저도 회피하는 전략을 쓴 겁니다. 그래서 노동시장이 질적으로도 심각하고 양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되었죠.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안진이
3. 어떻게 보면 노동시장이 2중 구조가 아니라 3중, 4중… 굉장히 복잡한 구조인 것 같습니다. 이 비임금 노동자들이 가장 취약한 위치일 텐데, 최근에는 법제도를 통한 해결책도 제시되고 있는 것 같아요.
예. 처음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문제로 떠올랐는데, 여기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문제로 갔다가 사용자 책임까지도 외면하는 방식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거죠. 4차 산업혁명이니 플랫폼 경제니 하면서 외양은 화려하게 치장하지만 사실은 임금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책임성마저도 배제하는 방식입니다.
노란봉투법은 이분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한 건 아니고,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원청과 교섭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간접고용인 하청 노동자들 입장에서 보면 하청 사용자는 아무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원청 사용자는 만날 수도 없으니, 임금을 한 푼이라도 올리려면 원청 본사 로비를 점거한다든가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건 다 불법으로 치부하죠. 노란봉투법이 제정되어 이제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는데, 실제로 교섭이 이뤄질지는 아직 장담 못 하는 상태입니다. 사실은 국제 기준으로 보면 산업 민주주의의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한 입법인데, 기업과 사용자 단체들은 그것조차도 용납 못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과도한 불만이죠.
또 비임금 노동자로 분류된 사업소득자지만 사실은 종속적인 임금 노동자와 동일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입니다. 산재·고용보험을 조금씩 적용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고, 보험료를 고스란히 자기가 부담해야 하니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의 사각지대에 있게 됩니다. 이분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일터 권리보장 기본법) 같은 법을 제정해서 조금씩 조금씩 보호를 확장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정면 돌파는 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분들을 노조법상, 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게 핵심입니다.
4. 청년층 고용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어졌고 취업했다가 비경제활동 인구로 빠지는 경우도 많은데, 청년층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요인이 무엇일까요?
쉬었음 인구로 빠진 청년이 50만을 넘었다고 '눈높이가 높다'느니 '비어 있는 일자리가 있는데 왜 안 가느냐'느니 하는데, 사실은 구직 활동을 해도 할 만한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여건이 안 좋은 일자리를 전전하고 시간 보내는 게 훨씬 낭비라고 생각하는 거죠.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전망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고요. 할 만한 일자리에 종사해야 그런 미래를 설계할 수 있잖아요. 현재 생존이 가능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또 미래 설계도 가능한 수준의 일자리가 적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에요. 시장과 기업에 맡겨 놓는 방식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죠.
IMF 사태 이후에 커다란 청년 고용 대책이 7번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매번 훈련, 인턴… 여기서 벗어나질 못해요. 일자리로 들어가는 문 자체를 넓혀줘야 되는데 그건 안 되니 훈련과 인턴을 전전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죠. 또 하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면서 청년 고용을 유도하는 방식인데,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서 한 발짝 나간 제도가 청년수당이나 내일채움공제처럼 당사자인 청년에게 직접 수당을 지급하는 겁니다.
제가 전부터 강조했던 정책은 90년대 유럽에서 채택했던 로제타 플랜이라는 청년 고용대책입니다. 훈련이나 인턴, 기업 지원은 똑같이 있지만 의무고용제가 있어요. 기업에 지원금만 주는 게 아니라 청년 고용 할당량을 못 채우면 지원금의 3배 정도 되는 벌과금을 징수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의 강력한 의무고용제를 100인 이상 기업에 다 적용하고, 기업 규모에 따라 청년을 3% 또는 5%까지 고용하도록 차등을 뒀어요.
만약 한국에서 이렇게 기업에 벌과금을 부과하기 힘들다면, 청년 고용공시제를 잘 만들어서 기업의 사회책임성 지표 중 하나로 공표하게 하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유인책만 써서는 안 되고 견인책이 있어야 해요. 지금까지 하던 패턴으로는 청년 고용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기가 힘들다고 봅니다.
5. 지금 청년층만 힘든 것이 아니고, 중장년과 고령층도 일자리 문제로 정말 힘들어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4050 중장년이 임금 수준도 가장 높은 연령대인데 건설업이나 제조업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요. 그래서 중장년도 위험 신호가 가끔 나타나죠. 불경기가 오래 가면 주된 일자리에 종사하는 중장년층 고용에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리고 고령층은 고용률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령층 고용률이 굉장히 높은 편인데, 사실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너무 많아요. 80% 정도가 불안정 일자리에 종사합니다. 그래서 노후 소득빈곤 문제가 심각해요.
지금의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고 숙련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지만, 지금 새로 고령층이 되는 분들은 굉장히 숙련도가 높고 학력과 경험도 많아요. 그분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안 만들어지기 때문에, 역량에 비해 낮은 일자리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보니 연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소득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우리가 경제 규모나 인구 규모에 비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없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령층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정년 연장입니다. 2013년에 58세에서 60세로 정년을 연장했어요. 그랬더니 주된 일자리, 즉 자기가 가장 오래 근무했고 생계에 가장 도움이 됐던 일자리에 종사하는 기간이 늘어났어요. 대기업과 공공부문만이 아니고 중소기업에도 그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사실 중소기업은 인력난 때문에 자발적으로 정년을 늘리기도 하죠. 법정 정년연장이야말로 주된 일자리에 종사하는 기간을 늘리는 핵심적인 장치입니다.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아버리면서 정년 연장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지잖아요. 지금도 63세로 되어 있는데 법적 정년은 60세입니다. 이 불일치는 노후 소득 빈곤을 제도로 공식화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2033년까지 정년도 65세로 연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처럼 기업에게 선택권을 줘서 임금을 깎아서 재고용하도록 하는 방식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러면 노후 소득 빈곤 문제를 해결 못 해요.
▲9월 30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2025 관광 일자리 페스타'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6. 일자리와 관련된 역대 정권의 정책 중에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기억에 남는 거라기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일자리 200만 개'처럼 수치가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이명박 정부는 더 나아가서 30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인턴 자리를 잔뜩 만들어서 인턴 공화국이었죠. 인턴만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인턴 일부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유력자들이 로비를 시작해서 자기 자녀를 인턴으로 보내고 정규직 전환 TO에 집어넣은 거죠. 그래서 지금은 채용 예정형 인턴이 등장했잖아요. 어차피 정규직으로 뽑아야 할 인원을 수습 기간만 늘리는 경우도 많아요. 인턴을 많이 뽑고 정규직 전환은 일부밖에 안 되는데 과연 이걸 좋은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박근혜 정부는 '반듯한 시간제'라는 용어를 썼어요. 고용률 70%라는 목표를 잡고 여성을 겨냥한 정책을 내놓은 거죠. 반듯한 시간제란 일하는 시간은 절반인데 정규직으로 뽑는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규직하고 똑같은 시간 일하면서 임금은 절반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나라잖아요. 그런 데서 시간만 절반으로 줄인 일자리가 통하겠느냐는 이야기를 제가 했죠. 공공부문에서 시간선택제 공무원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무원 임금이 높지 않은데 그 절반을 받으니 생계 해결이 안 되죠. 그러니까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근로시간을 자꾸 늘려줘서 아마 주당 35시간까지 늘렸을 거예요. 실패한 정책이 된 거죠.
7. 유럽에서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시간제로 많이 일하는데, 그럼 그건 임금이 낮지 않아서 가능한 건가요?
그럴 수 있죠. 일정한 임금 수준이 되느냐가 문제인데, 한국에서 시간제라는 건 생계 보조형 노동밖에 안 됩니다. 시간제로 일해도 어느 정도 생활은 가능한 수준의 임금이 되는 나라에서는 시간제로 일하면서 만족하는 사람이 많죠. 네덜란드가 사실 시간제 천국인데, 시간제가 60% 가까이 되고 여성이 대부분이에요. 사실은 성차별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거죠. 왜 그런가 했더니 네덜란드가 낙농 국가로 남성이 가장인 모형에 가까웠고 오래 전부터 여성 노동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네덜란드의 사회보장제도는 완벽하다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은 네덜란드 사람들도 불만이 있어요. 그 사람들도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을 하는 경우가 절반이에요. 그러니까 온전한 일자리를 못 찾아서 시간제를 선택하는 거죠. 그렇게 보호 체계가 잘 갖춰진 나라도 비자발적 시간제 비중이 50%인데 우리나라에서 통계 내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했다는 비율이 50%를 넘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거는 질문을 잘못한 거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죠.
8. 대통령이 재벌을 만나서 일자리 늘려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을 매번 봤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혜택을 주면서 일자리 창출을 부탁했고요.
정권 초기에 매번 그런 일이 벌어졌죠. 문재인 정부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도 그랬고 지금 이재명 정부가 또 그러고 있는데, 그렇게 기업들의 선의에 기대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정부가 재벌 기업들에 강도 높게 요구했던 적도 있는데, (재벌들은) 겉으로만 일자리 늘리는 척하고 실제로는 똑같았어요.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끌어내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선의에 호소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죠.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만드는 거라는 발상이 필요해요. 트럼프 집권 이후 약간 주춤하고는 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을 의미하는 ESG가 세계적인 흐름이잖아요. 그런 사회 책임성 지표와 일자리 문제를 연동시켜 매년 공표하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단순히 청년 신규채용만 따지는 게 아니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도 가점을 주는 식으로 고용의 질과 양에 대한 평가를 같이 하자는 거죠. 여성, 청년, 고령자, 질 나쁜 일자리의 전환을 두루두루 평가하는 겁니다. 만약 정년 연장을 해서 고령자를 채용했는데 청년 신규채용을 줄였다? 그럼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고용공시제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 '소속외 근로자'로만 표현되어 있어서 너무 단순하긴 해요. 문재인 정부 때 임금 직무 공시제까지 만들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는 않고 있어요. 여기에 착안해서 일자리의 양과 질 개선의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면 되는데, 지금 안 하고 있어요.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해요.
9. 지금 있는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요. 이재명 정부 공약에도 공공부문에서 정부가 모범 사용자 역할을 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선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자리 창출도 필요하고, 유지도 해야 하고, 전환도 필요하죠.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려고 이상한 숫자만 내세우는 것보다 질 좋은 일자리로의 전환이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질 좋은 일자리로의 전환에서 초점은 최저임금의 150% 정도를 지급하면서 고용 안정성이 어느 정도는 확보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일자리를 만들기에 제일 좋은 분야가 사회 공공 서비스입니다. 사회서비스 영역은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데 최저임금 일자리만 생겨나고 있잖아요.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서비스의 일자리를 안정적인 공공부문 일자리로 바꾸는 정책이 필요해요. 이 분야는 계속 수요가 늘어나니까요.
공공부문 사회서비스를 처음 구축할 때 돈을 적게 들이려고 민간 위탁 방식을 주로 선택했어요. 새로 늘어나는 수요도 다 민간위탁으로 넘기고요. 병원이나 돌봄 영역의 90% 이상이 민간위탁이니, 지금 이쪽을 공공 서비스로 전환하려고 해도 업자들의 저항이 심하고 지역 유착관계도 있어서 쉽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신규 수요라도 공공부문이 감당하면서 적극적으로 서비스 질도 높이고 질 좋은 일자리도 늘리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공공요양원에 가보면 시설이 좋고 환자들을 돈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운영도 훨씬 낫습니다. 지금 민간위탁 요양원은 대부분 돌아가시기 전에 생존만 시켜주는 수준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면 공공부문이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공적 돌봄 시설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의료 영역도 심각하니 공공병원을 늘려야 해요. 그러자면 돈이 들죠. 정부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하면 바로 재정적자 같은 반론이 나오는데, 재정으로 감당 가능한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필요는 있겠지만 일자리 측면에서는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지금은 너무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10. 이재명 대통령이 고용의 유연성 또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자주 언급하는데, 이 '유연성'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도 각기 다른 것 같고 앞으로 의견 충돌도 예상됩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고용 측면의 규제 완화를 강조할 때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유연성이라고 하면 좋은 말 같잖아요. 신자유주의의 모티브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단어가 IMF 이후에 한국에도 들어와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던 겁니다.
미국과 영국의 노동시장이 유연하고, 그래서 경직적인 유럽 대륙 국가들보다 노동시장 지표가 좋고 실업률이 낮다고 했거든요. 실제로 유럽의 실업률은 높죠. 적극적인 보호 장치가 있기 때문에 개인들이 실업자임을 적극적으로 선언해서 높은 겁니다. 우리는 가려져 있어요. 내가 실업자라고 선언해 봤자 효과가 별로 없으니까 실업자라는 걸 숨기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실업률이 낮게 나와요. 미국의 실업률이 낮다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옥에 갇힌 사람들만 합쳐도 수치가 달라진다는 소리도 나왔죠. 결코 경직된 노동시장이 성적표가 나쁜 게 아니고 유연한 노동시장의 성적표가 좋은 게 아닙니다.
또 하나, 유연안정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잖아요.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한다. 네덜란드와 덴마크가 유연안정성 모델이라고 하는데, 두 나라가 같지 않아요. 네덜란드는 노동시장 안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하는 모델입니다. 시간제가 많지만, 보호장치를 같이 가동시키는 거죠. 덴마크 모델은 달라요. 안정성은 복지제도에서 구축되는 거고 노동시장은 유연하다고 하지만 집단적 정리해고는 굉장히 강력하게 제재합니다. 개별적 해고는 자유롭지만 유럽의 풍토에서 자의적으로 사람을 막 자르지는 않지요.
덴마크 모델에서 '안정성'에 해당하는 복지제도를 보면, 실업급여가 2년 동안 지급되고 그 이후에도 사회부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유연성을 가미한 게 뭔지 아세요? 1년 이상 실업 상태인 사람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구직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붙인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메커니즘은 안정성이 하나도 없잖아요. 복지제도의 기반이 약한데 이런 나라에서 노동시장 유연성까지 높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대통령과 정치권이) 무슨 맥락으로 유연안정성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지, 고민은 있는지 의문입니다.
정말로 한국형 유연안정성을 구축하고 싶다면 질 좋은 일자리를 대규모로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추진해야겠죠. 옮겨갈 곳이 있어야 하잖아요. 유럽은 수평 이동할 곳이 많은 편이지만 우리는 수평 이동할 곳이 없잖아요. 해고는 살인이라고 표현되는 나라인데. 만약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수평 이동할 곳이 많을 정도로 일자리가 평준화되어 있고 도처에 있다면 (노동시장이) 유연해져도 견딜 수 있겠죠.
우리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다는 것도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비정규직이 많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고 또 새롭게 비임금 종속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는 나라에서 도대체 뭐가 경직돼 있다는 건지. 조직화된 노동자가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집중된 것은 맞습니다. 그걸 해결하고 싶으면 기업별 노조 체계를 깨고 포괄적 협약이 산업 전반에 적용되도록 바꿔야죠. 조직화된 노동자를 공격할 게 아니라 교섭의 적용 범위를 넓혀서 미조직 노동자도 보호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지금처럼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다고만 이야기하는 건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 노동마저 약화시키고 싶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우리 노동시장은 결코 경직적이지 않다, 흐물흐물할 정도로 너무 유연해서 문제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9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를 하며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진이 더삶 대표
안진이 the삶 대표는 '더 나은 일과 삶'을 위해 플랫폼 기업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노동 현장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the삶 공식 뉴스레터(33레터) 구독 링크 https://the3together.ghost.io/#/portal/signup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납치돼 고문·살해된 사건을 수사한 현지 검찰이 중국인 3명을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국제범죄 조직에 의한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이 급증하는 가운데, 13일 주요 신문에서는 현지에서 한국인을 보호하고 범죄를 수사하기엔 인적·물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범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인력·조직을 강화하고, 현지 정부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캄보디아 국영통신사 AKP에 따르면 10일(현지 시간) 캄포트지방검찰청은 살인과 사기 혐의로 중국 국적 남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산 인근에서 한국인 대학생 A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북 예천 출신 대학생 A씨는 지난 7월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떠난 뒤 8월8일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산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경찰은 1차 검안에서 A씨 사망 원인을 ‘심장마비(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로 기재했다.
▲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
동아일보는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홍보에 낚여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에 감금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30대 남성을 인터뷰했다. 동아일보 기사 <“月 1000만원 알바에 낚여…‘개밭’에 갇혀 노예처럼 일했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동남아 여행 도중 여행 경비가 바닥난 그는 ‘캄보디아에서 월 7000달러(약 1000만 원) 이상 고수익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는 텔레그램 글을 접했고, 이에 지원하며 3개월 간의 ‘노예 감금 생활’이 시작됐다.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도착하게된 그는 여권과 휴대폰을 뺏기고 ‘로맨스 스캠’ 업무에 동원됐다. 콜라 한 잔이 5000원일 정도로 물가가 비싸 빚만 늘어나는 구조였고, 숙식비도 모두 빚으로 계산됐다.
경찰은 지난 12일 캄보디아 수사당국과 현지에서 공동 부검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1면에서 이 소식을 다뤘다. 경찰은 캄보디아 경찰에 상주 인력을 파견해 한국인 대상 범죄를 전담하도록 하는 ‘코리안 데스크’ 설치를 추진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그러나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 거점으로 자리잡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한국인을 보호하고 범죄를 수사하기엔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 기사 <국제 범죄 거점 된 캄보디아…한국 경찰관 3명뿐 ‘대응 막막’>에 따르면, 현재 캄보디아에는 한국 경찰관 3명(주재관 1명·협력관 2명)이 근무 중이다. 경향신문은 “경찰청은 2023년 외국인을 전담하는 외사계를 정보과 등으로 통폐합했는데 국제수사를 전담한 국제범죄수사대도 마약수사대 산하의 국제범죄수사계로 축소시켰다”며 “경찰청에 국제협력·공조를 전담하는 국제협력관실이 있지만 수사를 전담하는 인력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와 구인 사이트 등이 해외 범죄 조직의 ‘구인 창구’로 악용되고 있지만 제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조선일보는 기사 <‘월 2000만원’ 내걸고 유인…“범죄인 줄 알면서 가담하기도”>에서 유명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최소 월 2000만원 보장, 빚에 쫓기는 인생 한 번에 바꿔드립니다’ 공고 관련 문의를 시도했다. ‘송 실장’이란 이름의 텔레그램 유저는 먼저 ‘여권 사본을 보내라’, ‘안전하니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말했지만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이런 광고에 대한 제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한 사이트는 ‘검증되지 않은 업체이니 주의하라’는 경고 문구를 붙여놓았지만 관련 게시글 삭제나 접근 차단 조치를 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정부, 지금이라도 외교 역량 총동원해 국민 안전 보장해야”
중앙일보는 관련 사설을 내고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두 나라 경찰의 실질적인 공조 체계 구축이 시급한 실정인데 그동안 우리 경찰의 대응은 아쉬운 점이 많다. 이달 말 양자 회담에서 한국 경찰을 캄보디아로 파견해 현지 경찰과 공조하는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한다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며 이번 사건 전부터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선 국제 범죄 조직에 의한 한국인 납치 사건이 성행했지만 외교 당국이 안일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정부는 캄보디아 당국의 비협조를 탓하기보다 지금이라도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우리 국민의 안전 보장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 중앙일보 사설 갈무리.
한겨레 역시 관련 사설에서 “우리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가족들의 호소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없었다면 경찰과 외교부는 여전히 캄보디아 정부 탓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교부와 국외 주재 대사관 및 영사관의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민원 처리에 대한 성토가 잇따르는 현실을 관계 당국은 무겁게 받아들이고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아울러 “이번 사건이 발생한 캄보디아만이 아니라 필리핀, 타이, 미얀마 등에서 치안이 취약한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각종 범죄 조직이 활개치고 있다. 인터넷과 전화 등 통신의 발달로 범죄 유형이 다양해지고 범행이 손쉬워진 탓”이라며 “우리 정부와 사회의 인식과 대응이 안이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향신문 “조희대 대법원장, 국감에서 대선 개입의혹 직접 밝혀야”
이재명 정부의 첫 국회 국정감사가 13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국감에서는 여권이 정조준하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야권이 벼르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출석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3일 대법원 등을 상대로 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앉혀 파기환송 경위를 따져 묻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법원이 대선을 33일 앞두고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이유를 따져 묻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 때의 사법부의 태도 등도 문제 삼고 있다.
▲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
한겨레는 사설을 내고 조 대법원장이 국감에 출석해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조 대법원장의 국감 출석을 요구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며 “위헌·위법한 12·3 비상계엄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법원장은 왜 침묵했는지, ‘이재명 선거법 사건’ 상고심 판결을 이례적 속도전으로 강행한 이유는 무엇이고 절차는 제대로 지켰는지,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은 정당했는지, 지 부장판사 비위 의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사법부 수장의 공식적인 답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헌법 수호 의무를 진 사법부가 내란 사태에 침묵한 이유는 사법부의 수장이 답해야 할 문제”라며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을 주도한 재판장이기도 하다. 사법부의 인사·행정권을 한 손에 쥔 ‘제왕적 대법원장’으로서 벼랑 끝에 몰린 사법부 신뢰를 회복시킬 무한한 책임 또한 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응답자가 절반에 육박하는 이유를 조 대법원장과 사법부는 성찰해야 한다”며 “국민 앞에서 국민의 의구심에 답할 의무를 끝내 팽개친다면 그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조 대법원장과 사법부의 몫이 될 것”이라고 했다.
▲ 한겨레 사설 갈무리.
경향신문 역시 조 대법원장이 국감에서 대선 개입의혹을 직접 밝혀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 문제는 조 대법원장이 직접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그건 나락으로 떨어진 사법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전원합의체의 합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왜 재판을 이례적으로 서둘렀는지는 답변할 수 있다고 본다. 조 대법원장은 국감에 출석해 의혹을 직접 해명하고, 민주당도 아직 재판 절차가 남아 있는 이 판결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식의 질의는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미·중 무역갈등 고조…한겨레 “경제 체력 길러 헤쳐 나가야”
미·중 무역 갈등이 양국 정상회담을 약 2주 앞둔 시점에서 재점화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 통제를 대폭 강화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에 맞서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1면 기사 <美中, 경주 담판 앞두고 막판 기싸움>에서 “서로에 대한 양국의 압박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기싸움’으로 해석되지만, 물밑 조율에 실패해 ‘전면전’으로 비화할 경우 세계 경제에 큰 격량이 예상된다”며 “경주 APEC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아예 개최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이어진 기사 <美 급소 때린 시진핑, 즉각 보복 나선 트럼프…강 대 강 충돌 격화>에서는 미·중이 완전히 판을 깰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양측에 경제적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청년 실업과 국내 소비 부진 등의 내부 문제가 심각한 만큼 미·중 관계의 추가 악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고 했다. 또 미국도 중국이 희토류 통제를 실제로 하면 자동차 공장이 가동 중단될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발등의 불인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국익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을 내고 “우리 기업들이 희토류 수출 통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중국과의 대화 채널도 강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미국,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집중도를 낮추는 한편,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제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내수시장을 확대해 지나치게 높은 무역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가야 할 길이다. 험난한 관세전쟁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체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에서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겠지만, 한국 기업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경향신문은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중국과 소통을 강화하고, 희토류 공급처 다변화와 국내 생산 기반 구축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는 금융시장 점검을 강화하고, 고환율이 고물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민생을 챙겨야 한다. 통상당국이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것은 물론”이라고 했다.
[이충재의 인사이트] 13일 대법원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 않을 듯...이재명 초고속 전원합의체 과정 설명하라는 국민 요구 거부
25.10.13 06:19ㅣ최종 업데이트 25.10.13 07:51
▲조희대 대법원장이 5월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주요 대법관, 지귀연 부장판사 등이 13일 대법원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조희대 사법부'가 치외법권이냐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조 대법원장의 경우 지난 두 차례의 국회 청문회에 모두 출석하지 않은 데 이어 정기국회 국감에도 불출석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국감에 출석하더라도 증인석에 앉거나 선서를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법원 안팎에서 나옵니다. 기관장으로서 국감 참석이 아닌 일반증인으로 채택한 데 대한 불만의 표출로 해석되지만, 입법부 권한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법원장의 국감 증인 채택은 오랜 논란이지만 조 대법원장처럼 증인으로 채택됐다고 해서 아예 참석을 거부하는 것은 비상식적입니다. 대법원 국감 시 대법원장이 나와 인사말을 한 뒤 의원들의 양해를 얻어 이석하는 게 관례인데, 이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통상 증인으로 나오면 '위증하면 처벌받는다'는 설명과 함께 증인 선서 요구를 받는데, 이를 거부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됩니다. 조 대법원장으로선 증인 선서 거부 장면이 생중계되는 상황을 피하려고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는 쪽을 택하는 셈입니다.
조 대법원장이 증인으로 채택된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초고속 선고 과정에 대한 합당한 설명입니다. 다수 국민은 대법원의 전광석화와 같은 파기환송을 사법부의 대선 개입 시도로 보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권한을 남용해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면 중대한 위헌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조 대법원장은 여태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감 불출석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법부의 수장이 직접 설명을 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난 두 번의 청문회에서 그랬듯 조 대법원장의 불참 명분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은 청문 대상이 아니라는 건데, 교묘하게 법조항을 해석해 국회 출석 요구를 비껴가려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은 이미 대법원 판결이 끝나서 고등법원에 내려보낸 상태입니다. 청문회에서 짚으려는 내용도 전례 없는 속도전 판결이 나온 경위와 과정 등 절차적 문제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 중인 사건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대법원장도 국정조사 대상 된다는 국회법 무시
현행법을 따르더라도 재판 중인 사건도 사안 성격에 따라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국회법 해설'에는 "국회가 독자적인 진실규명, 정치적 책임 추궁, 의정자료 수집 등의 목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국정감사 및 조사를 진행한다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정감사 및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돼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적법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조 대법원장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조 대법원장의 증인 출석 거부는 국회가 뚜렷한 강제수단을 갖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이 출석하지 않으면 법사위가 대법원장을 상대로 초유의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명령장 전달에 실패하거나, 전달되더라도 증인이 임의로 거부할 수 있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동행명령이 불발되면 법사위는 조 대법원장을 국회 증언감정법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있지만, 실제 수사로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증인 출석 거부만으로 대법원장을 탄핵 심판대에 올려놓기는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결국 조 대법원장을 증인대에 불러세울 수 있는 건 국민의 여론밖에는 없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 다음으로 신뢰도가 낮은 기관이 법원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사법부가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고 국민의 사법부로 거듭날 기회를 놓친다면 여론의 압박은 거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독립 보호막 뒤에 숨어 입을 닫는 식으로는 임계점에 이른 사법불신만 더욱 커질 뿐이라는 걸 조 대법원장은 직시해야 합니다.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던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이 다시 격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에 '100% 관세 추가'로 경고하고, 이에 중국도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올해 초에 벌어졌던 '관세 전쟁'이 다시 재점화될 가능성도 나온다.
12일 중국 상무부는 문답 형식의 입장문을 통해 "미국이 고율 관세를 남발하며 협박하는 것은 올바른 관계 방식이 아니"라며 "우리는 (관세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단호히 조치를 취해 정당한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중국에 대한 '100% 관세 추가' 등 강력한 무역 보복을 경고한 데 대해 중국 측도 맞대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중 간 강대강 공방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나서면서 불거졌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9일 자국산 희토류와 희토류 관련 기술을 이용한 해외기업 생산 제품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하는 등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또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관련 공정 반도체의 제조 장비, 테스트 장비, 소재 생산 등에 사용되는 희토류에 대해서는 개별 심사를 받게 했다.
특히 중국은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는 희토류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수출을 금지했다. 희토류는 첨단무기에 핵심 소재인 만큼 미국의 방산기업들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6월 런던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약속했던 희토류 수출규제 완화를 다시 되돌리는 조치다. 올해 초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에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대응한 당시에도 미국의 방산 업계들이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이에 미국은 100% 추가 관세 등 강력한 무역 보복을 경고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자신이 운영하는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국이 적대적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오는 11월 1일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해 기존 관세에 더해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중국에 대해 반도체 설계 등에 사용되는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을 제재했는데 이 같은 조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조치에 대해 "중국의 태도는 매우 공격적이며, 이번 조치는 미국을 겨냥한 적대 행위"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도 취소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예정됐던 시 주석과의 회담에 대해 "만날 이유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도 '상응 조치'를 언급하고 나서면서 강대강 대응을 이어갔다. 중국 상무부는 "오랫동안 미국은 국가 안보 개념을 남용하고, 수출 통제를 무기화해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장비와 칩 등 다양한 제품에 대해 일방적인 장기 조치를 취했다"며 무역협상 이후에도 미국의 반도체 등에 대한 제재가 계속됐다고 불만을 표했다.
중국 장시성 간현의 희토류 광산(자료사진) ⓒ뉴시스
관세율 100% 넘는 미중 '관세전쟁' 재점화 가능성...협상 전으로 돌아가나
만일 미국이 100%의 추가 관세를 중국에 부과한다면 올해 초 미중 간 벌어졌던 관세 전쟁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나 2월 2기 임기 초반부터 중국에 대해 펜타닐 원료 공급을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도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서로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 전쟁을 벌였다. 이후 지난 5월 스위스에서 진행된 양국 간 협상에서 서로 일정기간 동안 관세를 115%p(포인트) 낮추기로 하면서 관세전쟁은 휴전된 상태다. 그러나 미국이 100%의 관세를 추가하고, 중국이 이에 대응해 보복관세를 조치한다면 미중 간 통상 갈등은 5월 스위스 합의 이전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양국 간 갈등이 재점화되면서 오는 31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의 만남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중국의 미국산 대두 구매 중단으로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강대강 '치킨게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미국산 대두의 최대 구매처였던 중국은 올해 미국산 대두 구매를 중단하고 대신 아르헨티나에서 대두를 구입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무역 정책이 미국 대두 농가에 대한 피해로 나타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아르헨티나 정부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오히려 아르헨티나를 지원하고 나서자 미국 농가 사이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더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미국 첨단 무기 산업에 직접 타격이 될 수 있는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조치까지 나오면서 중국의 압박이 더 거세진 상황이다. 중국과의 강대강 무역 대치가 계속될 수록 트럼프 행정부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아예 닫지는 않았다. 그는 중국에 대한 100% 추가 관세를 경고했던 지난 10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미중 정상회담 관련 질문에 "우리가 그것(정상회담)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곳(APEC)에 갈 것"이라며 "나는 아마 우리가 회담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100% 관세 추가 등 무역 보복 시점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11월 1일로 제시하고 있는 점도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중국 상무부도 "미국 측에 조속히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양국 정상의 중요한 통화 합의를 지침으로 삼아 어렵게 얻은 협상 성과를 잘 유지하며, 중미 경제무역 협상 메커니즘의 역할을 계속 발휘할 것을 촉구한다"며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양국 간 대화 가능성은 여전히 열린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독자적으로 엄정 수사하라"고 특별 지시했다. 수사팀도 보강하도록 했다. 2023년 발생한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사건 당시 인천지검장은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었기 때문에 심 전 총장을 비롯한 윤석열 정권 검찰·경찰·관세청·대통령실 고위 인사들의 사건 개입 실체가 이번 이 대통령 직접 지시를 계기로 전모를 드러낼지 시민들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실은 12일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검경 합동수사팀의 수사와 관련해 더욱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며 "이 대통령은 백해룡 경정을 검경 합동수사팀에 파견하는 등 수사팀을 보강하고, 수사 책임자인 임은정 서울동부지검 검사장은 필요시 수사 검사를 추가해 각종 의혹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밝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독자적으로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세관 마약 수사 외압이란 2023년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의 필로폰 밀반입 범죄에 대한민국 관세청 세관 공무원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추적하던 서울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2과장의 수사팀이 당시 윤석열 대통령 치하의 경찰 윗선 및 검찰과 대통령실 등으로부터 집요한 압력을 받아 중도에 사실상 수사가 좌절됐다는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이다. 1년에 걸쳐 마약 수사를 주도하며 역대급 실적을 낸 백 경정은 도리어 '공보 규칙 위반'을 이유로 지난해 7월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되고 수사에서 배제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2과장이 10일 오전 대회의실에서 말레이시아 마약 밀매 조직이 제조해 국내 밀반입한 필로폰 74kg을 유통한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3개국 국제연합 마약 밀매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힌 뒤 증거물을 보이고 있다. 필로폰을 제조한 말레이시아 조직이 나무 도마에 홈을 판 뒤 약을 숨기는 식으로 국내에 몰래 들여오면, 한국 조직이 밀반입해 운반 및 보관을 하고 중국 조직은 유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3.10.10. 연합뉴스
백해룡 수사팀이 압수했던 필로폰 74㎏(시가 약 2200억 원)은 246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 규모였다. 이토록 막대한 양이 어떻게 공항 검색대를 무사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데, 해당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은 이 마약을 몸에 부착해 접착테이프로 칭칭 감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여왔다며 "인천세관 직원들이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에스코트를 해줘서 검역과 세관을 그냥 통과했다. 입국장을 나와선 심지어 택시도 태워줬다"고 진술했다.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규모 마약 적발을 크게 칭찬했지만 백해룡 수사팀이 세관 직원들의 연루 의혹을 파헤치자 여기저기서 외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속 상관인 김찬수 영등포경찰서장은 "이 사건을 용산(대통령실)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면서 언론 브리핑을 미루라고 지시했고, 일면식도 없는 데다 수사 지휘 라인도 아닌 조병노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까지 "세관 얘기 안 나오게 해달라.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외압성 전화를 걸어왔다고 백 경정은 폭로했다. 조병노 경무관은 김건희 측근인 이종호 전 블랙펄 인베스트 대표가 '치안감 승진 로비' 대상으로 언급해 더욱 의혹을 샀던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세관 수사에 협조했던 서울남부지검 마약 담당 검사들은 일제히 인사 조치됐고, 이후 백해룡 수사팀이 피의자 신분인 세관 직원들의 계좌와 휴대전화, 공항 CCTV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남부지검 측은 번번이 반려했다. 나중에 영장이 발부됐을 때는 피의자들이 이미 휴대전화를 수차례 초기화하거나 교체했고 CCTV 영상도 보존기간이 지나 삭제된 뒤였다. 검찰이 경찰 수사를 방해하며 증거 인멸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게다가 당시 심우정 검사장이 이끌던 인천지검은 인천공항을 통해 마약을 밀수한 같은 말레이시아 조직을 사전에 적발하고도 공범들을 출국 금지하지 않고 추가 수사도 안 하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행적을 보였다.
임은정 신임 서울동부지검장이 4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으로 첫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7.4. 연합뉴스
숱한 의혹에도 윤석열 정부 내내 수사를 뭉갰던 검찰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에야 마지못한 듯 합동수사팀을 발족시켰다. 대검찰청은 6·3 대선 직후인 지난 6월 10일 검찰과 경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외혹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합동수사팀을 출범시키고 팀장은 윤국권 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이 맡았다고 밝혔다. 20여 명 규모의 수사팀을 서울동부지검에 꾸리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대검 마약·조직범죄부가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는 점도 공지했다.
그러나 대검은 두 달여 뒤인 8월 21일 "합동수사팀을 서울동부지검에서 직접 지휘하도록 소속을 변경했다"고 돌연 방침을 바꿨다. 대검 측은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고 수사 과정의 공정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담보하고자 고검 검사급 인사 이동에 맞춰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그 배경엔 친윤 검찰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대검보다 새롭게 동부지검장으로 발탁한 임은정 검사장에게 수사의 전권을 주려는 대통령실 의중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백해룡 경정은 당초 대검이 지휘하는 합동수사팀에 대해 "검찰은 수사 대상이지 수사 주체가 될 수 없다"면서 "협조할 생각이 없다"는 완고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동병상련으로 교감해온 같은 '내부 고발자'이자 '검찰의 장의사'를 자처하는 임은정 검사장이 확실하게 지휘봉을 잡았고 본인도 공식 파견 형식으로 참여하게 된 만큼 앞으로 합동수사팀에서 핵심적인 실무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백 경정은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인천지검장 시절 '마약 게이트'를 덮은 주범"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대통령이 직접 힘을 실어준 '임은정+백해룡' 콤비가 어떤 팀플레이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리더로서 세계적 권위를 누려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민주주의의 시계는 멈춰섰습니다. 헌법과 선거제도는 200년 전 마차 시대의 틀을 고집하며, 시대 변화 앞에서 스스로를 성역화했습니다. 건국의 주역들은 왕정과 귀족정, 독재의 폭주로부터 공화국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 취지는 ‘민주주의의 지속’이었지만, 그 장치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진화’를 봉쇄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후대의 정치 세력들이 헌법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점입니다. 결국 헌법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아니라 권력 유지의 방패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헌법 제5조(Article V)는 개정을 위해 의회의 3분의 2와 50개 연방 주의회 4분의 3, 즉 38개 주의 동의를 요구합니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그 결과 헌법은 지난 200여 년간 단 한 번도 근본적 개정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시대의 변화는 헌법 밖에서 일어났고, 헌법은 변화에 눈을 감은 채 경직된 껍데기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헌법 해석권을 독점한 연방대법원은 스스로를 ‘헌법의 해석자’로 신격화하며, 선거법 개정 등 정치 개혁을 ‘헌법 위반’이라는 이름으로 무력화시켰습니다. 헌법의 경직성과 사법의 성역화가 결합되면서 미국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개혁 가능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게리맨더링 - 제도적 틈을 이용한 정치공학
이 경직된 헌정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를 왜곡한 대표적 제도가 바로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입니다. 1812년 매사추세츠의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 1744–1814)는 자신이 속한 민주공화당(현 미국 민주당의 전신, Democratic-Republican Party)의 승리를 위해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조정했습니다. 새로 그려진 선거구의 지도가 도롱뇽(salamander)을 닮았다고 하여, 그의 이름 ‘게리(Gerry)’와 ‘맨더링(mandering)’이 결합된 단어가 탄생했습니다. 그는 선거에서 승리했고, 다음 해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재임 1809–1817)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이후 이러한 선거구 획정(조작) 방식은 ‘합법적 부정선거’의 전형으로 미국 정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 제도적 왜곡의 결과, 동일한 득표율이라도 의석 수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2016년 위스콘신 주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은 53%의 득표율로 36%의 의석만 확보한 반면, 공화당은 47%의 득표로 63%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법적 테두리 안의 ‘합법적 불평등’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러한 게리맨더링이 구조화된 근본 원인은 이를 제지해야 할 법원이 방관하거나, 심지어는 합리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선거구 재획정이 10년마다 주 의회에서 이루어지며, 연방대법원 판사는 종신직입니다. 한국처럼 헌법기구로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법관 임기 제한도 없습니다. 이 제도적 경직성이 정치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토양이 된 것입니다.
2025년 10월 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근교 브로드뷰에 있는 불법이민자 구금시설 근처에서 군대 투입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열리고 있다. (Photo by SCOTT OLSON / GETTY IMAGES NORTH AMERICA / Getty Images via AFP) 2025.10.10. 연합뉴스
개혁의 시도, 사법부의 방관, 그리고 일부 성과
미국에서 이러한 민의의 왜곡과 표의 등가성이 무시되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주에서는 게리맨더링 개혁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실험이 있었습니다.
애리조나주(2000년, Proposition 106): 주민 발의를 통해 독립선거구획정위원회를 설치했고,
캘리포니아주(2008·2010년, Proposition 11·20): 입법부의 권한을 시민위원회로 이관했습니다.
미시간주(2018년, Proposal 2): 주 헌법 개정을 통해 무작위 시민위원회를 도입했고,
미주리주(2018년, Clean Missouri Initiative): 투명성과 공청회 절차를 강화했습니다.
이 가운데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는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대다수 개혁은 정치권 개입과 법원의 소극적 태도로 무력화되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선거구의 왜곡 여부를 판단할 헌법적 기준이 없다”며 개입을 회피해 왔습니다. 결국 〈루초 대 커먼 코즈(Rucho v. Common Cause, 588 U.S. [2019])〉 판결에서 대법원은 게리맨더링을 ‘정치적 사안(political question)’으로 규정하며 사법심사 대상에서 배제했습니다.
이후 대법원은 2020년 이후 보수 우위(6대 3 체제)로 재편되며, 공화당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게리맨더링의 문제에 더욱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불개입 원칙을 반복했습니다.
미국 헌법센터(The National Constitution Center)는 2022년 1월 25일자 칼럼 〈자신만만하고 공세적인 보수 세력(The Confident and Aggressive Conservative Majority)〉에서 “보수파가 다수인 대법원은 이제 스스로를 헌법의 중립적 수호자가 아니라, 적극적 정책 결정 주체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헌법센터는 이어 “최근 판결들이 민주적 합의나 입법의 영역으로 남겨야 할 사안에까지 사법부가 개입함으로써, 대법원이 헌법적 균형자에서 정치적 중재자로 변모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The National Constitution Center Blog, 2022.1.25)
한편 브레넌 센터(Brennan Center for Justice, NYU School of Law)는 2019년 보고서 〈극단적인 선거구 지도(Extreme Maps)〉와 2024년 보고서 〈게리맨더링이 2024년 미국 하원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How Gerrymandering Tilts the 2024 Race for the House)〉에서, 게리맨더링으로 인해 공화당이 전국적으로 약 16~17석의 구조적 우위를 확보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브레넌센터의 보고서 Extreme Maps(2019) 및 How Gerrymandering Tilts the 2024 Race for the House(2024)를 근거로 정리한 것임.
2025년 현재 미국 하원은 총 435석 중 공화당 221석, 민주당 214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근소한 격차는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 제도적 편향의 산물입니다. 전국 득표율이 동일하더라도 공화당이 평균 16~17석의 ‘내장된 의석 보너스’를 확보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공화당의 게리맨더링에서 시작한 ‘레드맵(REDMAP: 지도상에서 공화당을 의미하는 붉은색이 차지하는 정도를 뜻하는 표현이자 공화당의 선거 전략)’은 단순한 지역 전략이 아니라 지도 위의 권력 구조 재편이자 정치공학적 성공 사례가 되었습니다.
레드맵(REDMAP) ― “지도를 바꾸면, 패배해도 이길 수 있다”
2008년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II, 1961~)의 당선으로 정권을 잃은 공화당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면, 패배해도 이길 수 있다.”
이 문구는 2010년 공화당 전국위원회 산하 공화당 주의회지도부위원회(RSLC)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세운 전략의 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레드맵(REDMAP)의 설계자는 크리스 얀코우스키(Chris Jankowski, 1968~), 데이터 설계는 토머스 호펠러(Thomas Hofeller, 1945–2018)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인구조사와 SNS 데이터를 결합해 방대한 유권자 지도를 정밀 분석하고, 민주당 유권자를 ‘패킹(packing)’과 ‘크래킹(cracking)’ 방식으로 재배치함으로써 표를 바꾸지 않고 의석을 바꾸는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여기서 ‘패킹(packing)’이란 특정 정당(주로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을 한 선거구에 과도하게 몰아넣어 그 표를 ‘낭비표(wasted votes)’로 만드는 전략이며, ‘크래킹(cracking)’은 반대로 상대 정당 유권자들을 여러 선거구로 인위적으로 분산시켜 세력을 희석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두 가지 조작 기술의 결합으로 공화당은 실제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전략은 완벽히 성공했습니다(앞의 표 참고). 2010년 이전 공화당이 장악한 주는 24개였지만, 2012년에는 31개로 늘었고 2020년에도 약 60%의 주에서 재획정 권한을 유지했습니다. 브레넌 센터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은 레드맵 덕분에 2012~2020년 동안 하원에서 평균 15~18석의 추가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는 국민의 표가 아니라 지도 위에서 벌어진 쿠데타였습니다.
MAGA와 REDMAP ― “지도 위에서 자라난 트럼프주의”
게리맨더링은 중도파를 몰락시키고 극단주의를 재생산했습니다. 경선만 통과하면 당선이 보장되는 ‘안전구역(safe district)’이 생겼고, 공화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그 경선을 장악한 것은 극우 성향의 열성 지지층이었습니다. 한국의 대구·경북 지역에서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과 유사한 형국이 미국 정치에 고착화된 것입니다.
이 구조 속에서 트럼프주의(MAGA)는 단순한 정치운동이 아니라 제도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 2020년 이후 공화당 하원의 약 40%가 MAGA 성향 의원으로 채워졌습니다. 게리맨더링은 사회의 균열을 제도화했고, 소수자·도시·진보 시민의 표는 무력화되었습니다. 이는 MAGA의 구호 ― “진짜 미국 대 그 나머지(Real America vs. the Others)” ― 를 정치구조로 고착시킨 셈입니다.
미국 사법부의 신성화와 한국 사법부의 교조주의
미국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D. Brandeis, 1856–1941)는 “법에 대한 존중을 원한다면, 먼저 법이 존중받을 만해야 한다(If we desire respect for the law, we must first make the law respectable.)”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의 저서 《남의 돈 - 그리고 은행가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Other People’s Money and How the Bankers Use It, 1914) 서문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브랜다이스는 이 책에서 ‘금융 신탁(Financial Trust)’과 월가의 독점 구조, 그리고 은행과 산업자본의 결탁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법이 도덕성과 정당성을 잃으면 국민의 신뢰 또한 무너진다고 경고했습니다. 훗날 그는 미국 연방대법관이 되어 공익 중심의 법철학을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히려 그 정신과 반대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법복 귀족주의(Judicial Aristocracy)’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교조적 태도는 한국 사법부에도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한국의 조희대 대법원은 ‘삼권분립’을 헌법의 신성불가침한 절대 조항처럼 오독하며, 국회의 사법개혁 입법, 대법관 증원, 대법원장 국회 출석 요구 등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헌법 어디에도 ‘삼권분립’이라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상호 견제만이 강조되어 있을 뿐입니다.
한국 사법부는 미국식 사법엘리트주의를 수입하면서 ‘사법권의 독립’을 ‘사법권의 성역화’로 곡해한 구조적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조희대의 사법부가 내란 재판에 소극적인 것도, 지귀연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윤석열을 석방한 것도,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상고심에서 파기환송한 것도, 내란 재판의 비공개를 고수하는 것도 모두 스스로의 보수성(내란동조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미국 사법부와 한국 사법부의 차이를 찾는다면, 미국 사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군을 투입하려 한 명령을 법적으로 기각하며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고 있는 반면, 한국의 조희대 사법부는 극우 집회조차 모순된 판결로 허용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는커녕, 사법개혁의 명분만 쌓는 극단적 ‘자기분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법부가 스스로 자신의 권위와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특정 정치세력의 대변인으로 자처할 때, 국민과 시민이 선택할 길은 명료합니다. 이제 개혁의 시간표와 내용, 그리고 강도만이 남았습니다.
한국 민주공화정의 방파제- 혐오와 극단주의를 제어하는 제도 설계
오늘날 민주공화정의 위기는 단지 정치제도나 검찰을 비롯한 사법제도의 개혁만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 위협은 극우·혐오·반공 포퓰리즘의 결합이 시민사회를 잠식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MAGA가 게리맨더링의 제도적 보호막 속에서 자라났듯, 한국에서도 사법·검찰·언론의 권력 네트워크가 ‘법의 이름으로 정치’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지도 위의 민주주의’가 ‘제도 위의 독재’로 변질될지도 모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곧추세워야 합니다.
첫째, 극단적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세력에 대한 법적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둘째, 민주헌정을 위협하는 선동과 허위정보를 감시·제재할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미 논의되어 온 ‘혐오방지법’과 ‘차별금지법’ 제정은 단순한 인권 입법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방어하기 위한 법적 방파제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독일의 연방헌법수호청(BfV, 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처럼 헌법 파괴 행위를 감시·조사하는 ‘한국형 헌법수호청(가칭)’ 설립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이 기관은 특정 정파가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고 국회가 감시하며 정부가 집행을 보조하는 삼자 견제 구조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극단주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혐오와 차별, 반헌법적 정치 행위를 감시하는 국가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매일 새로 써 내려가는 사회적 계약입니다. 법은 인간의 약속이며, 그 약속이 시대정신과 시민의 뜻에 맞게 갱신될 때 공화국은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약속을 다시 써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펜은 시민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 참고문헌 >
Brennan Center for Justice.(2019). Extreme Maps: How Gerrymandering Rigged American Democracy.New York University School of Law.
영국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EIC). 1599년 영국 런던 상인들이 설립한 무역회사로, 인도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독점 무역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당시 해외 무역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는데 토머스 스마이스라는 사람이 런던시의 부유한 상인들을 소집해 자금을 모았다. 오늘날 주식회사의 시초인 셈이다.
투자자들은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이익을 공유하는 동시에, 투자 위험을 분산할 수 있었고, 주식회사는 전문 경영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한 동인도회사는 말이 기업이지, 사실상 제국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인도양과 태평양 전역에 대한 무역 독점권, 관세 면제는 물론이고 영토를 통치하고 군대를 일으킬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됐다.
더구나 영국 의회의 상당수 의원들은 이 회사의 주주였다. 동인도회사는 저명한 의원과 장관들에게 연간 1200만 파운드를 쏟아부으며 자사 주식을 이용해 의원을 매수한 것이다.
의원들이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회사의 변호사이자 로비스트로 탈바꿈한 의원들은 눈에 띄지 않게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만들거나 개정했다. 말이 좋아 공공-민간 파트너십이지 권력-기업간 유착이었다.
그렇게 무소불위 권력을 지닌 동인도회사는 영국의 식민지 확장과 제국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존재하게 한 기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국과 인도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윌리엄 달림플은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생각의힘 펴냄)에서 그런 동인도회사가 세계 무역과 제조업을 지배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동시대 또 다른 강대국인 오스만제국의 4배가 넘는 인구를 가졌던 나라인 무굴제국을 어떻게 점령했는지, 그 결과가 어떤 파국을 만들었는지를 자세히 풀어낸다.
▲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 ⓒ생각의힘
동인도회사는 어떻게 무굴제국을 착취했는가
1765년 8월 젊은 무굴 황제를 제압한 동인도회사는 곧바로 세금징수와 통치 권한을 넘겨받은 뒤 자신들이 운영하는 정부까지 세운다. 그리고 사병을 동원해 세금을 징수했다. 일개 주식회사가 제국의 권력으로 변모한 셈이다.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무굴제국을 운영하면서 지킨 원칙은 단 하나였다. 오로지 주주에게만 책임을 졌고, 주주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러한 동인도회사가 무굴제국을 운영하니 무굴제국 시민들의 세금은 끝없이 늘어만 갔다. 자연히 경제는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일례로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벵골은 1768년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1770년 2월에는 평소 쌀 수확량이 70%가량 줄었다. 자연히 기아가 확산되고 사람들은 벌판의 풀과 잎사귀로 연명했다. 부모가 자식을 팔아야 사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동인도회사는 이들에게 세금을 동일한 수준으로 거둬들였을 뿐 아니라 일부의 경우는 세금을 10%나 올리기도 했다.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세금은 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동인도회사는 연간 예산에서 군대와 요새 시설을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회사가 비축한 쌀은 군대의 세포이(인도 용병)에게만 지급됐다. 무굴시대에 가장 풍요롭고 인구가 많다던 벵골이 가장 열악한 지역으로 전락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익 추구가 본질인 주식회사가 무굴제국을 지배하다보니 이런 비극적인 일들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동인도회사도 결국은 해체수순을 밟게 됐다. 지나친 착취와 수탈에 참다못한 인도인들이 반란(세포이 항쟁)을 일으켰고 영국 정부는 그 책임을 물어 동인도회사의 독점적인 권한을 축소했다.
결국 동인도회사는 빅토리아 여왕 통치 시기인 1874년 해체됐고, 인도는 영국 정부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식민지가 되었다.
동인도회사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섬뜩한 경고
저자는 국가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진 동인도회사가 또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경고한다. 물론 아마존, 월마트, 구글 등 오늘날의 세계 최대 기업들이 군사력까지 가진, 의회와 한 몸을 이룬 동인도회사에 비할 바가 아니란 건 저자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우려점은 존재한다.
"(중략) 기업들이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며 군사화된 동인도회사의 영토 야욕에 비하면 양반이다. 하지만 역사가 뭔가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국가 권력과 기업 권력 간에 펼쳐지는 긴밀한 춤사위 속에서 기업 권력은 규제될 수도 있지만 수중의 모든 자원을 이용해 기업은 거기에 저항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기업과정부센터의 전직 이사인 아이라 잭슨이 최근 지적했듯이 기업과 기업 지도자는 오늘날 정치와 정치인을 대처하여 우리 시스템의 새로운 대제사장과 과두 지배층이 되었다. 기업은 여전히 은밀하게 인류 상당 부분의 삶을 지배한다."
저자는 현재의 많은 기업이 자신들의 목적, 즉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국가 권력을 왜곡하는데 성공한 동인도회사를 따르려는 시도를 해왔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거품으로 발생한 세계적 금융위기는 규제받지 않는 기업이 국가 경제를 끌어 내릴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경고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지금의 기업들, 즉 규제받지 않는 기업들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동인도회사의 비극이 과거가 아닌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천만다행으로 오늘날 동인도회사에 꼭 들어맞는 것은 없다. 수익 측면에서 세계 최대 기업인 월마트의 자산에는 핵잠수함 함대가 없으며 페이스북이나 셸컴퍼니도 보병 연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동인도회사는 오늘날 다수의 주식회사들의 궁극적인 모델이자 원형이었다. 오늘날 가장 강력한 거대 주식회사들은 자체 군대가 필요하지 않다. 정부에 의존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긴급 구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인도회사는 오늘날 기업 권력의 오남용 가능성 그리고 주주들의 이익이 국익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음험한 수단에 관한 역사상 가장 섬뜩한 경고로 남아있다. 캠페인 기부와 상업적 로비 활동, 다국적 금융 시스템과 세계 시장, 기업 영향력과 새로운 감시자본주의의 예측 데이터 수집 활동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는 지구적 권력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창립된 지 420년 지난 지금, 동인도회사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현재적이다."
허환주 기자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검 강압수사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10.10 ⓒ뉴스1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검 강압수사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10.10 ⓒ뉴스1
장외투쟁을 접고 민생과 대안을 강조하며 노선 선회를 표방했던 국민의힘이 하루 만에 제자리로 회귀하고 있다. 양평 공무원 사망을 계기로 특검과 이재명 정부를 규탄하는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추석연휴를 마치며 민생과 정책대안을 강조하며 기존 노선을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동혁 대표는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이 국민의힘을 향해서 민생 법안을 발목 잡고 있다고 공격했는데, 여당에 제안한다”며 “민생하자, 제발 민생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최대 경제 현안인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민생지원소비쿠폰 지급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다면서 “국가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재정 준칙을 도입하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장 대표는 “제1 야당답게 이재명 정권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견제하겠다. 107명 국회의원 전원이 민생 싸움꾼이 되어 치열하게 싸우고 충실한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와 서울의 장외집회 등 격렬한 정권 규탄 모드는 당내 개혁이나 외연 확장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지지율도 열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내년 6월 지방선거도 부정적인 전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생, 원내에서의 견제, 정책대안 등을 내세우며, 장외집회 대신 국정감사와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낸 셈이다.
다음 날인 10일, 추석연휴 뒤 첫 업무일을 맞아 국민의힘은 경제와 민생 관련 지도부 일정을 배치하며 장 대표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국정감사 종합상황실 현판 제막식, 반도체·AI 첨단산업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및 전체회의, 주식 및 디지털자산 밸류업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및 제1차 전체회의, 지방선거총괄기획단 임명장 수여식 및 제1차 전체회의, ‘민심을 듣다 민생을 담다’ 국민의힘 전국 시도당 위원장 간담회 등이 당 주요 일정이었다.
그러나 10일 김건희 일가 업체에 대한 개발부담금 면제 특혜로 수사를 받던 양평군 공무원이 사망하자 국민의힘의 입장을 돌변했다. 특검의 강압수사로 공무원 정모 씨가 사망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특검과 이재명 정부에 총공세를 퍼부었다. 장 대표의 기자간담회와 정모 씨가 남겼다는 메모 공개, 송언석 원내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의혹을 키웠다. 당 대변인들도 11일까지 이틀째 논평을 이어가며 강압 수사 논란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팀은 10일 오후 사망한 정 씨의 수사 상황을 자세히 공개하며 강압수사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특검팀은 “건물 외부 CCTV로도 강압수사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사건의 피의자인 김선교 의원이 입수해 국민의힘이 공개한 것으로 알려진 메모가 어떤 경위로 작성돼 국민의힘 측에 입수됐는지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해당 메모에는 원문 외에 가필한 부분도 나타나 있다.
13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놓고 여야의 대립이 팽팽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민생과 정책대안을 강조했던 국민의힘이 ‘도루묵’처럼 정권 규탄으로 회귀할 경우, 외연 확장은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이승만에게는 김일성보다는 진보당 조봉암이 더 큰 위협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나타났듯이 김일성과의 대결은 그의 권력을 위협하는 한편 크게 강화시켰다. 반면, 1952년 및 1956년 대선에서 나타난 것처럼 조봉암과의 대결은 그의 권력을 크게 위협했다. 1956년 대선에서 조봉암은 극렬한 부정선거 속에서도 30.01%나 득표했다.
조봉암은 이승만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여 놓았다. 그는 1956년 대선에서 자기 당 부통령 후보인 박기출을 선거 엿새 전에 사퇴시킴으로써 자유당 이기붕(44.0%)이 민주당 장면(46.4%)에게 부통령 자리를 내주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승만은 민주당 부통령과 불편한 동거를 해야 했다.
그런 조봉암을 이승만은 그냥 두지 않았다. 조봉암을 김일성과 연결시키고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뒤집어씌웠다. 정상적인 정치적 대결로는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조봉암은 '자체 발광'으로는 빨갱이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사상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을 빨갱이와 엮는 방법을 구사했다. 이를 위해 활용한 것이 제4대 총선(1958.5.2.)을 앞둔 1957년 하반기에 불거진 '박정호 간첩사건'이다.
그해 11월 7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57세인 박정호는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단체 지하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됐던 항일투사다. 그는 해방 뒤에는 북조선노동당 경리부장 등을 지내다가 한국전쟁 직전에 남하해 무역업을 했다. 진보당을 포함한 혁신세력을 포섭해 평화통일운동을 촉진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고 이승만 정권은 발표했다. 평화통일운동이 역모죄로 간주되던 이승만 집권기의 해괴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장면이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박정호 사건을 조봉암과 엮을 타이밍을 모색했다. 이 점은 그해 11월 14일의 서울시경-서울지검 합동 긴급회의에서도 나타났다.
박정호를 비롯한 7명이 재판에 넘겨지고 장건상 등 6명이 검찰로 송치된 이날, 긴급회의 참가자들은 또 다른 11명을 구속하는 문제를 논의한 뒤 진보당 지도부인 조봉암과 서상일에 관한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이날 회의에서는 조봉암·서상일 양씨에 관한 문제는 일단 제외한 것이라 한다"라며 회의장 분위기를 전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조봉암과 박정호를 엮을 단서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조봉암 연루설을 흘렸다. 그러다가 1958년 1월 12일 진보당 간부 6명이 체포되고, 13일 조봉암이 체포됐다.
서울지검 정보부의 지휘하에 체포작전이 개시되기 전날인 11일이었다. 이틀 뒤 <조선일보>에 따르면, 정보부의 조인구 검사는 '박정호의 평화통일공작은 진보당의 당세 확대로 귀결되는 것'이라며 진보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기자단 앞에서 역설했다. 이런 공언까지 해놓고 조봉암을 구속했지만, 박정호와의 공범 관계를 끝내 입증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권의 협박 받은 양이섭의 허위 진술
박정호의 붉은빛을 조봉암에게 묻히려 했던 시도는 실패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은 새로운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것이 양이섭(양명산) 간첩 사건이다.
양이섭은 일제강점기 때 신의주에서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했다. 우편물 속에 든 거금을 훔친 그는 상하이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해방 뒤에는 육군첩보부대(HID) 공작요원이 되어 남북교역에 종사했다.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과 친분이 있었던 양이섭을 윽박질러, 조봉암은 물론이고 남한 첩보요원인 양이섭마저 북한 간첩으로 만들고자 했다. 빨갛지도 않은 양이섭을 붉게 물들인 뒤 조봉암도 한데 엮고자 했던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2007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는 "육군 특무부대는 그해 2.8. HID 공작요원으로 남북교역을 하던 양이섭(51)을 연행하여 여관 등에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북한의 지령 및 자금을 조봉암에게 전달하였다는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고 기술한다. 조봉암 체포 5일 전에 양이섭에 대한 협박이 있었던 것이다.
양이섭은 1956년 대선을 전후에 조봉암에게 정치자금과 생활자금을 제공했다. 정권의 협박을 받은 양이섭은 그 돈이 김일성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
1982년 9월 7일 자 <중앙일보> '중앙청 <53> 진보당 8'에 따르면, 법정에 선 양이섭은 자신이 조봉암에게 5백만 환을 전달하자 조봉암이 북에 보낼 감사 편지를 자신에게 준 일이 있다고 진술했다. "돈을 보내주어 감사한데 5백만 환만 더 보내달라는 편지"였다는 게 그의 진술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그동안 열두 차례 남북을 내왕하면서 미화 2만 3천 달러, 한화 2천만 환 그리고 인삼·녹용 등 북한에서 가져온 물품을 북괴의 지령에 의해 전달했다. 이 돈은 조봉암으로 하여금 미군철수운동 및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하는 신문사를 경영케 하기 위한 것이다."
조봉암 재판이 진행될 때인 1958년 11월에 서울 시내에서 쌀 1가마니는 1만 2500환 미만이었다(11월 7일 자 <동아일보>). 양이섭이 말한 금액은 상당한 거액이었다. 그런 돈이 북에서 나와 자신을 거쳐 조봉암에게 들어갔다는 것이 양이섭의 주장이었다.
조봉암은 한화 3백만 환과 미화 620달러를 받은 일은 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자신은 양이섭의 돈을 받았을 뿐이지 북한의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법적 심판 받은 이승만 정권의 악행
▲1959년 8월 1일 자 <조선일보> 기사 "조봉암 사형을 집행"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심 법원은 이승만 정권의 기대와 달리 조봉암과 양이섭에게 징역 5년이라는 예상 이하의 형량을 선고했다. 그런 뒤 양이섭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2심에서 양심선언을 했다. 그해 9월 5일 자 <조선일보>는 전날의 항소심 첫 공판을 이렇게 보도했다.
"진보당 공소심(控訴審) 첫 공판에서 사실심의를 받기 시작한 양명산 피고는 '진보당위원장인 조봉암 피고가 북한괴뢰집단의 정치자금을 얻어 쓰고 그 지령에 움직였다는 범죄사실은 모조리 터무니없는 특무대 조작이었다'고 1심 때의 진술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특무대에서 강압적인 방법으로 조서를 날조한 것'이라고 진술하여 판사·검사는 물론 피고 그 변호인들 방청객들을 놀라게 했다."
양이섭의 진술은 조봉암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였으나 양심선언에 의해 무너졌다. 위 보도에서처럼 판사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재판은 여전히 조봉암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2심과 3심은 사형을 선고했다. 유력 대권주자 조봉암을 죽이기 위한 희대의 판결들이었다. 1959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7월 31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 사건이 조작됐다는 점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해 빨갱이 소리를 듣고 법복을 벗은 유병진 판사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죽산 조봉암 평전>에 인용된 태윤기의 <권력과 재판>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뒷날 유씨는 이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태윤기 변호사를 만나서 '나도 조봉암 씨가 당시 이 대통령의 정적이라는 점을 심사숙고 고민한 끝에 5년이라는 형을 언도한 것이며, 실은 집행유예 정도가 알맞은 판결이라고 생각되었다."
비슷한 발언은 조봉암 용공몰이에 가담했던 조인구 검사의 입에서도 나왔다. <죽산 조봉암 평전>에 따르면, 1960년 6월 10일 자 <법정신문> 인터뷰에 유병진의 이런 말이 보도됐다.
"일전에 서울형무소에서 진보당 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조인구 씨를 만났을 때 조씨는 나에게 '그때 좋은 판결을 하여 주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조씨 역시 그 기소가 무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였다."
조인구는 1심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그런 그가 '고작' 징역 5년을 선고한 유병진의 판결을 "좋은 판결"로 칭송했다. 1960년 상반기를 휩쓴 4·19혁명이 이런 양심적 발언들을 가능케 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을 빨갱이로 몰기 위해 간첩사건 둘을 그 앞에 대령했다. 이 시도는 성공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실패했다. 사법부를 동원한 조봉암 살해는 민심을 크게 이반시켰고, 이는 조봉암 사망 8개월 뒤인 1960년 3월부터 4·19혁명이 일어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이승만 정권의 악행은 결국 법적 심판을 받았다. 조봉암이 한을 품고 죽은 지 52년이 흐른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조봉암 사건 재심에서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을 무죄로 인정했다. 조봉암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중에 발견된 총기를 근거로 기소된 불법무기 소지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선고를 유예했다.
윤석열 정권 4년 남짓 시간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사건을 말하라면, 주저없이 '바이든-날리면' 사태를 꼽을 것이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의 '존재의 지평선' 너머를 보여준 것으로 기념비적이라 할 만 하다. 대선과 집권을 거치면서 은폐돼 왔던 어떤 것이 모종의 계기를 맞아 '팝업'처럼 튀어나와 전국민을 놀래킨 것이다. 이를테면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드러난 윤석열의 태도는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이나, 이태원 참사, 한일 외교, 우크라이나 전쟁, 김태우 사면 출마 등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모순과 부조리의 원형(元型)과도 같은 것이다.
윤석열의 입에서 나온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바뀌는 순간, 집권당은 부화뇌동을 시작했다. 권성동은 "MBC는 대통령 발언을 왜곡하여 국민을 속였다. 대국민 보이스피싱"이라고 주장했고, 외교부는 MBC에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소송에 나섰다. '언론 기술자' 류희림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JTBC에 주의 결정을 내렸고 KBS는 아예 '사과문'을 제출했다. YTN은 민간에 팔린 후 신임 사장이 취임해 직접 방송에 출연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친위 쿠데타'에 앞서 윤석열 일당이 벌인 '언어 쿠데타'는 백주 대낮에 무슨 이솝 우화에나 나올법한 해프닝으로 사람들의 감각을 뒤틀고 흔들어댔다. 이 정권의 기괴함이 탈은폐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언론사가 '바이든'으로 보도했지만, 윤석열은 MBC를 콕 찍었다. 그러면서 엽기적인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출근길 도어스태핑을 갑자기 중단하더니 MBC를 대통령 순방 전용기 탑승 명단에서 배제했다. 윤석열 정부의 시스템이 공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사적 보복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방증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방송 쪽을 손 좀 봐야겠구나'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몫의 최민희를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 거부하면서 '방통위 전쟁'을 일으켰다.
▲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되며 취재진에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날리면'의 '나비효과'를 떠올린 이유는 최근 이진숙 씨의 행보를 보면서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구강 시스템 에러를 옹호하는 대열 중에는 이진숙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친정을 향해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 대신 "원점 타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MBC를 응징해 주셨으면 한다. 시청을 거부하고 광고를 주지 않는 등 방법은 많다"고 나섰다. 그는 "대통령실의 단호한 조치는 지난번 MBC가 언론 역사에 기록될 오보+조작 방송을 했을 때 취해졌어야 한다. 그때 MBC는 명확히 들리는 단어와 불명확한 단어가 섞여 있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고 이에 자막을 달아 '특종'이랍시고 난리법석을 피웠다"고 비난했다. MBC 언론인 출신이라는 사람 둘(김은혜와 이진숙)이 '바이든-날리면'이라는 현대판 우화의 한복판에 있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이진숙은 정치권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방송통신미디어위원회(방미통위)로 확대 개편하는 법안에 대해 "제 생각에 오직 이진숙이란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주장했고 "돌이켜보면 민주당은 이진숙이란 사람이 방통위에 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했다"고도 주장했는데, 절반만 맞는 말이다. 애초 이진숙이라는 인물 자체가 윤석열의 '방송 장악'을 위한 이동관의 대체제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대체제도 아니고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에 이은 '후후순위' 대체제였다.
당시엔 누가 그 자리에 앉든 압도적 의석을 가진 야당(민주당)의 탄핵이 예고돼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진숙은 '넘버 쓰리'로서 기꺼이 '카미카제'가 되는 길을 택했다. 윤석열에게 이진숙은 '전시 소모품'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이 내란으로 감옥에 간 지금, 이진숙이 모종의 정치적 기회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기자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실패해 왔던 스스로를 '정권의 표적'으로 갑자기 부풀리면서 '셀프'로 체급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이진숙은 '방송장악' 논란이 일던 박근혜 정부에서 MBC 임원으로 승진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2014년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희대의 오보를 낸 보도국을 책임졌던 보도본부장으로 더 기억된다. 이진숙은 2019년 자유한국당에 입당했지만, 그가 가진 '꿈의 크기'에 비해 당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진숙은 2020년 총선과 2022년 지방선거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예비후보(대구시장 후보)로 등록했으나 공천도 못 받았다. 정치의 꿈을 포기하지 않던 이진숙은 2021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캠프 언론특보로 들어 갔지만, 일주일만에 해촉되며 초라한 입지를 재확인했다.
당시 이진숙과 함께 보수 우파 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서 활동한 KBS 피디 출신인 최철호나, MBC 기자 출신 권재홍, 방송과 전혀 관계 없는 민영삼 같은 인물이 방송 유관기관으로 줄줄이 영전하고 김장겸 전 MBC 사장 같은 인물이 국민의힘 공천을 받을 때도 이진숙은 사실 '찬밥' 신세였다. '1소모품'인 이동관과, '2소모품'인 김홍일이 탄핵을 피하려 사퇴한 자리에 들어선 '넘버 쓰리' 이진숙의 미션은 '2인체제'라는 기형적 형태를 유지시키는 일이었다. 이진숙은 '윤석열 정부의 일원'이라는 느낌보다는 '3번째 소모품'의 느낌이 컸다. 이동관, 김홍일과 달리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탄핵 전 사퇴'를 하지 않았던 건, 추정컨대 이미 윤석열이 '내란'으로 사태를 일거에 해소하려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찬밥' 이진숙이 갑자기 '보수의 여전사'로 떠오른 상황을 설명기란 어렵지 않다. 그가 능력을 발휘된 게 아니고, 정치적 지형이 변한 것(윤석열 탄핵과 극우의 득세)때문이다. 철지난 '반공주의'와 '색깔론'으로 무장한 이진숙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이진숙이 '윤어게인'을 등에 업고 '윤석열의 비밀 병기'로 우뚝 서고 있는 모양새다. '이진숙의 대학 후배'인 전한길은 "이진숙이 대구시장에 나오면 양보하겠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체포된 자리에서 수갑을 들어올리며 "이재명이 시켰냐, 정청래가 시켰냐"고 기염을 토한 이진숙은 자신이 정치적 운명을 적극 개척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진숙의 이 착각이 국민의힘에 아주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진숙이 내년 지방선거의 주요 인물로 떠오르면 국민의힘은 또 다시 '윤어게인'의 프레임으로 걸어들어간다. 민주당이 좋아할만한 구도다.
정치권에 입문한지 6년 간 권력의 언저리를 떠돌다가 '전시 소모품' 수준의 장관 자리를 차지한 그 '근성'은 인정할만 하다. '바이든 날리면'으로 시작된 윤석열의 '대MBC전쟁'의 부스러기와 같은 인물이 '탄압받는 여전사' 이미지를 입고 중앙무대에 올라선 것도 평가해 줄만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가 대구시장이 되든, 대구 지역에서 공천을 받든, 국민의힘은 '이진숙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벌써 일부 극우 커뮤니티에선 '이진숙 대망론', '이진숙 대통령' 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의 입에서 시작된 '바이든-날리면'의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마침 이진숙과 같은 MBC 출신인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도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있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정정한 장본인이다. 내년 지방선거 판이 열리면, 이 두 MBC '기자 출신'들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KBS 화면 갈무리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3대특검 종합대응특위의 전현희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명태균 게이트 연루 의혹 등 불법 혐의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10.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명태균 게이트 연루 의혹을 규명해야 할 검찰 수사가 늦춰지고 있다며 "김건희 특검팀이 검찰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3대 특검대응 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태균 게이트에 김건희 씨와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연루된 것은 김건희 특검이 수사해야 할 핵심 사안"이라며 "그 중에서도 주요 의혹 대상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수사가 검찰에서 진행됐는데 지금은 수사를 중간에 멈춘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검찰은 왜 이 수사를 중간에 멈춰서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있는 거냐"고 지적하며 김건희 특검팀이 해당 수사를 이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특위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가 오 시장 관련 여론조사를 13차례 했고 그 중 여러 건은 불법 여론조작 조사였다고 강조했다. 또한 오 시장의 최측근 후원자로 알려진 김한정 씨가 여론조사 비용을 3300만원을 불법적으로 대납한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들며 "국민 앞에 그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특위는 오 시장이 명 씨와의 관계에 대해 "한 두번 만난 것이 기억난다"고 하거나, 최측근 후원자였던 김 씨에 대해 "이분이 이렇게 사고를 치셨구나"라고 발언하면서 책임을 회피한 데 대해서도 "전형적인 꼬리자르기 형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떳떳하다면 측근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국민적 의혹에 답하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3대특검 종합대응특위의 전현희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명태균 게이트 연루 의혹 등 불법 혐의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10. 연합뉴스
특위는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사건 전담수사팀이 지난 5월 오 시장을 소환 조사했는데 5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 사건을 뭉개고 있다"며 "오세훈 시장 관련 수많은 불법 의혹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동작 그만' 상태에 돌입한 검찰의 뭉개기와 수사 지연에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특검은 오 시장에 대해 제기된 모든 의혹을 검찰로부터 이첩받아 철저히 수사하고 그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할 것"이라며 "김건희 특검은 즉각 특검법이 부여한 책무에 따라 오세훈 시장 사건을 직접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김건희 특검법 제2조 11항은 '김건희, 명태균, 건진법사 등이 2021년 재보궐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에서 불법·허위 여론조사를 한 의혹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태균 공천개입,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의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건희 씨(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아내)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대통령의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냉부해)' 출연 논란을 다룬 언론 보도량이 윤석열 정권 당시 '명태균-김건희 공천 개입 논란'이나 '대통령실 해병대 수사 외압 논란' 당시 보도량의 2~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의 냉부해 출연 논란은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촬영 시점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주 의원과 국민의힘 등은 9월 26일 밤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재난 대응보다 홍보를 위한 예능 출연이 적절하냐고 비판했고, 대통령실은 9월 28일 사전 촬영을 진행하기 전 재난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대응 지시가 먼저 이뤄졌음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현재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를 활용해, 이 대통령의 냉부해 출연 논란과 윤석열 정권 당시 대표적인 세 가지 논란에 대해 각각 열흘간의 언론사 기사 수를 비교 분석했다. 빅카인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서비스로 전국일간지, 방송사, 경제일간지, 인터넷신문 등 총 104개사가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윤 정권 당시 논란 세 가지는 ①전직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의 공천개입 등 명태균 게이트(2024년 9월 5~14일) ② 김건희씨 디올백 수수(2023년 11월 27~12월 6일) ③ 대통령실의 해병대 수사 외압 (2023년 8월 10~19일)등이다. 해당 내용은 특검에서 수사가 진행되는 중대 권력 비리 사안으로, 각각의 기준은 단독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때를 시작점으로 열흘을 잡았다.
분석 결과, 이재명 대통령 예능 출연 논란을 다룬 기사(입력 검색어 : 냉장고를부탁해, 냉부해, 예능, 이재명)는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모두 992건으로, 하루 평균 100건에 육박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김건희씨의 공천 개입 의혹이 제기된 명태균 게이트 당시 보도량(입력 검색어: 명태균, 김건희, 윤석열, 대통령, 공천 개입)이 489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대통령실의 해병대 수사외압 당시 보도량(입력 검색어 : 해병대, 채상병, 채해병, 대통령실)은 276건이었는데, 이 대통령의 예능 출연 논란 기사량은 이보다 3.6배 가량 많았다.
▲6일 방영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해).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추석 연휴 특집으로 출연했다. ⓒ JTBC 유튜브 갈무리
김씨의 디올백 수수 논란을 다룬 보도(입력 검색어: 명품백, 디올백, 김건희)는 106건에 불과했다.
즉 이 대통령 예능 출연 논란을 다룬 보도량이 윤석열 정권 당시 권력 비리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한 보도량을 모두 앞지른 셈이다.
대통령실의 해병대 수사 외압과 김건희씨 디올백 수수, 김건희씨 공천개입 의혹 등은 현재 특검 수사가 이뤄지거나 수사 대상이 되는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출연 논란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사안임에도 기사 보도량은 차이가 컸다.
이 대통령 예능 출연 논란, 14개 언론사가 사설로 다뤄
이 대통령 예능출연 논란을 적극적으로 다룬 언론사는 <머니투데이>와 <세계일보>로, 10일간 보도량이 각각 46건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23건)와 <동아일보>(21건), <중앙일보>(15건)도 하루 평균 1건 이상 보도했다. 이들 언론은 대통령의 예능 출연을 비판하는 야당 인사들의 발언을 중심으로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논란을 사설로 언급한 언론사는 <세계일보>와 <서울신문> 등 14개 언론사에 달한다. <조선일보>의 경우, 8일 '대통령의 예능 출연'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국정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예능 출연도 빛날 수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에 비해 김건희 공천개입 의혹 당시 <머니투데이>는 18건, <세계일보>는 15건 보도했고, <조선일보>는 9건, <중앙일보>는 7건 보도했다. 당시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등 4개 언론사만이 해당 의혹을 언급한 사설을 실었다.
윤석열 정권 당시 대통령실의 해병대 수사 외압 논란에 대한 보도량은 더욱 적었다. 대통령실 해병대 수사 개입 의혹과 관련해 <머니투데이> 보도는 7건에 그쳤고, <조선일보>는 9건, <중앙일보>도 8건에 불과했다. <세계일보>(20건)와 <동아일보>(14건)는 그나마 보도량이 10건 이상이었지만, 이재명 대통령 예능 출연 논란 보도량보다 적었다. 당시 <한국일보>와 <한겨레>, <조선일보> 등이 해병대 수사 개입 의혹을 사설로 다뤘는데, 당시 사설 기사 건수는 이재명 대통령 예능 출연 논란 사설 건수와 똑같은 14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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