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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진핑·김정은·푸틴이 함께 천안문(톈안먼) 망루에 선 사진은 신냉전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국내외 언론이 생중계 화면과 사진을 통해 세 정상의 열병식 동시 참석을 전하고 주목한 이유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시진핑·김정은·푸틴의 '망루 사진'
하지만 보다 핵심적인 질문은 '그 장면 이후,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이다. 즉, 장면 해석을 넘어 즉시 작동 가능한 상설 장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사진은 단지 사건을 보여주는 상징에 불과하며, 실제로 지속 가능한 평화는 정교하게 설계된 제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선명한 장면 뒤에서 설계, 제도적 장치, 실제 작동의 세 단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할 때, 기존의 대립은 점차 관리 가능한 접점으로 전환된다. 사진 해석에서 벗어나, 제도를 설립하고 실제로 운용하는 단계로 나아갈 때 비로소 (위험) 비용은 절감되고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세 정상의 동시 등장은 단순한 결속의 과시가 아니라, 각자가 직면한 현실적 제약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러시아는 전쟁과 제재 압력, 북한은 경제제재와 체제·경제 병목, 중국은 대외 리스크 관리와 블록 고착 비용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들의 전략적 운신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 나라가 처한 현실적 제약
▲지난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사진은 행진하는 인민해방군 병사들.연합뉴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군수·금융 분야에서 국제적 제재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어, 대체 시장 개척과 군수 협력 확대가 절실하다. 중국은 2차 제재, 즉 러시아에 군사적 또는 경제적으로 협력할 경우, 서방 국가로부터 추가적인 경제·금융 제재를 받을 수 있어, 러시아와 공개적으로 군사협력의 폭을 넓히가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전승절을 통해 영향력을 과시했지만,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자칫 '반미 블록' 구축으로 비칠 경우 공급망 재편, 기술통제 강화 등 역풍을 맞을 수 있어 '균형자' 이미지 유지가 어려워진다.
북한은 국제사회와 주요 국가들이 북핵에 대응해 지속적으로 경제·외교 등 전방위적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중국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늘려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외 의존 심화 등 구조적인 한계와 위험이 동시에 따른다.
'망루 동행'은 이러한 현실적 제약들로 인해 상징적 차원의 결속에 그쳤다. 3자 공식 회담도 없었고 메시지 조율도 이루어지지 않아 공조의 제도화로 가지 못했다. 결국 세 정상의 공동 등장은 결속을 보여주는 사진이면서 '함께 서되, 각자 계산'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장기적 측면에서 안보·경제 약속을 동시에 추진하기 어렵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따라서 북·중·러는 대외적 이벤트는 보여줄 수 있어도, 공개적인 상호방위 공약이나 광범위한 대러 제재 회피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데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함께 서지만 속내는 다른 동맹
▲2019년 4월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크렘린궁 홈페이지 제공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개도국, 제3세계를 통칭하는 용어로, 국제 사회에서 미국·유럽 등 서방 선진국과 구별되는 독자적 이해와 협력, 공동 전략을 추구하는 국가들을 의미. 중국은 자신을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외교 공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관리하면서도 제3국의 시선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선택적 결속' 노선인 셈이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경제 거래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식량과 자본재 부족, 내부 시장 불안정이라는 복합적 문제 탓에 단기간 내 체제 기반을 안정화하기는 어렵다.
러시아는 어떨까? 중국의 제약을 잘 알기에, 중국을 곤란하게 만들 수준의 공개 군사협력은 자제하면서도, 에너지·원자재·무기부품 거래 등 상징과 실익을 동시에 확보하는 '저비용-가시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세 정상 모두 미국과의 직접 충돌 위험을 관리해야 하기에, 강력한 신호는 보내지만 '레드라인'은 넘지 않는 '조정된 억지'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다. 즉, 이번 공동 등장은 동맹과 연대 강화를 암시하면서도, 제재, 경제, 이미지, 확전 관리라는 네 겹의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상징적 결속에 비해 구체적인 제도화는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제약 구조로 인해 외부 행위자, 즉 미국과 국제사회도 긴장 관리에 활용할 '접점'을 갖게 된다. 예컨대 위기관리를 위한 사전 통지, 24시간 직통 연락, 상설 정례협의, 소량 상응조치와 같은 최소 장치들은 실제 충돌과 시장 변동의 위험을 줄이는 관리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북·중·러 공동 등장은 결속의 '최소공배수'를 확인하면서도, 각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국제 여론에 따른 '최대공약수'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사진은 강했지만 제도는 신중했고, 바로 그 사이 틈새에서 위험 관리와 예방 외교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한편, 우원식 국회의장이 보여준 '국회외교'는 정부 차원의 공식 외교와는 별도로, 국회가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외교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 안전판'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위험관리와 예방외교를 위한 '안전장치'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80주년 중국 전승절 열병식 및 환영 리셉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연합뉴스
이번 방중에서 다양한 채널 개설과 시진핑에 대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참석 재요청 등과 같이 정부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가 비공식 조정 통로 역할을 했다. 국회외교가 '장면'을 넘어 '제도'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향후 예측 가능한 교류와 상설 장치를 제도화해 내구성과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상징과 구호를 넘어 위험관리와 예방외교의 실질적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사전통지 약속이다. 미사일 시험, 대규모 군사훈련, 민감한 발표 등 충격 이벤트의 의제와 시기, 범위를 48~72시간 전에 공유해, 우발적 충돌과 오판의 가능성을 줄이고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위기관리에 있어서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신뢰의 최소 단위다.
둘째, 24시간 직통 연락 개설이다. 국방·해양치안·보건 책임자 간 핫라인을 상시 유지해, 군사적 근접이나 충돌, 감염병 확산 위험을 신속하게 억제해야 한다. 이러한 회선은 각국의 억지력과 위기관리의 안전밸브로 작동한다.
셋째, 정부·민간 정례회의다. 장관, 의회, 전직 안보수장, 기업, 학계, 의료 전문가들이 모여 쟁점을 조율하고, 오해 해소와 일정 조정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합의문 작성보다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울-베이징-도쿄 순환 개최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넷째, 소량 상응조치(small-for-small) 연계다. 예컨대, 제한적 (북한의 미사일) 실험 유예 공지와 인도적 물자 통관 신속화 같은 소규모 상응 조치를 자동으로 연동시키는 방식이다. 비록 작고 단순한 교환이라도 즉시 검증 가능하기 때문에 신뢰를 높일 수 있다.
'큰 평화'를 만들기 위한 '작은 안전장치들'
비전통안보(단순 군사적 방어를 넘어, 국가와 시민의 생활·생존 전반을 보호하는 넓은 안전 체계)는 더 이상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에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평화와 안전의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의미다.
예컨대, 재난과 보건 영역에서 조기경보 시스템과 합동훈련을 정례화하면 피해가 줄고 복구 속도가 빨라진다. 공급망 역시 '디리스킹(De-risking)' 원칙, 즉 위험 분산과 데이터 공유를 통해 산업의 급정지를 막고, 희소물자의 변동성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외교안보체계는 강력한 억지력(위협 방지)을 유지하면서, 상대국의 과도한 공포나 불안이 오판이나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심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데이터 공개, 신속한 사실 확인의 제도화,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는 집단 심리의 과열을 막고 루머 등 잘못된 정보 확산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억지와 관여(대화와 교류)는 함께 작동해야 위험이 효과적으로 관리된다는 점에서 현대 외교와 안보의 필수적 안전망인 셈이다.
국회의장은 국제회의 등 주요 이슈에서 일정과 의제 조정의 관례를 정착시킬 수 있다. 여야가 공동 결의해 이처럼 예방외교 프로토콜을 상설화하면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교류 회로가 지속될 수 있다. 국회가 스위치를 켜고, 정부·지자체·기업·학계가 공동 운전할 때 효과도 크며, 그 경험이 축적될수록 '장면의 정치'는 '제도의 정치'로 대체된다.
위기 국면에서 발생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은,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정보 비대칭), 상황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울 때(시간 불확실성) 더 커진다. 사전통지, 직통연락, 상설협의, 소량상응이라는 네 가지 장치는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위험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 시장, 안보, 여론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
결국 시민이 체감하는 평화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촘촘한 안전장치 위에서 실현된다. 재난 대응, 공급망 안정, 억지와 소통의 균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될 때, '작은 안전'이 축적되어 '큰 평화'를 만든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의 외교적 역할이 주목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전승절에서 북·중·러 정상들이 함께 등장한 장면은 세 나라의 공고한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이지만,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파급력은 제한적이다. 구조는 효과적인 안전장치와 제도의 축적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장치들-사전 통지, 직통 연락, 상설 협의, 소량 상응-이 뒷받침될 때, 효율적으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
국회 외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왜 지금 '국회외교'가 중요한가? 첫째, 지속성 때문이다. 국회는 선거 주기나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상설위원회와 의회 간 네트워크를 통해 안정적으로 교신 통로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유연성 때문이다. 정부 당국 간 공식 채널로 다루기 어려운 사안도, 의회·전직 고위급·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여러 트랙을 통해 흡수하고 조정할 수 있다. 셋째, 가시성 때문이다.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정례 브리핑과 데이터 공개를 제도화해, 여론의 과열을 진정시킬 수 있다.
'작은 장치'는 어떻게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 위기 국면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는 주로 정보 비대칭과 시간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사전통지와 직통연락은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상설 협의는 일정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소량상응 장치는 신뢰가 점진적으로 순환하도록 돕는다. 네 가지 축이 결합되면 시장, 안보, 여론 측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동시에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이번에 세 정상이 동시에 노출되면서 정치적 메시지가 강조되었지만, 동시에 역내 위기관리를 위한 실질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국회외교는 이러한 안전장치를 현실화하는 주요 통로가 된다. 향후 상징적 장면 해석을 넘어서, 실질적인 제도 설계와 운용으로 전환해야 한다.
신냉전을 넘어서기 위해
결론적으로, 신냉전이란 시대적 운명이나 필연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북중러와 한미일 간의 대립 구도가 강화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관리 가능한 틈'을 읽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때, 국회외교는 이러한 틈을 제도화할 수 있는 주요 장치다. 사전통지, 24시간 직통 전화, 정례회의, 소규모 교환 등 안전장치의 회로를 실제로 작동시키면 불필요한 오해와 충돌을 줄이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특히 국회는 정권 교체나 외교 환경 변화에도 지속성을 담보하는 '민주적 안전판' 역할을 하며, 정부가 접근하기 어려운 비공식 대화의 공간도 제공한다.
여기에 지자체, 기업, 학계까지 결합한다면, 국회외교는 단순한 상징 효과를 넘어서 예방외교의 실질적 엔진이 된다. 신냉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 제도와 교류를 통해 긴장과 대립을 관리하고 평화의 공간을 설계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자 설계다.
▲김영근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본인 제공
필자 소개 :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층적 경제협력 구도와 일본의 경제적 리스크 관리", "세계무역구조의 변용과 지경학 : 글로벌화 vs. 지역주의" 외 다수의 논문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14차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등장한 단어를 그래픽으로 정리한 워드클라우드.
국무회의 발언 ‘전임자의 2.6배’
파초선·콘크리트 등 비유 즐겨
‘특별한 희생, 보상’ 반복해 강조
“국민주권정부의 새출발을 시작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6월4일 첫 고위공직자 인선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11일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이 대통령의 입도 국민과 민생·경제를 핵심 키워드로 움직였다. ‘일하는 대통령’을 자처한 만큼 쏟아낸 말의 양도 전임 대통령보다 많았다. 특히 “평화가 밥” “5200만 시간의 가치” 등 특유의 비유·직설 화법을 활용해 국정철학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일부터 8일까지 총 15차례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모두발언을 생략한 지난 8월11일 임시국무회의를 제외하고 이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회당 평균 1564자(공백 포함), 원고지 8장 분량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까지 총 7차례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회당 1169자 분량의 모두발언을 했다. 발언 총량은 이 대통령이 2만1896자로 8184자인 윤 전 대통령의 약 2.6배였다. 취임 100일을 기준으로 이 대통령의 SNS 게시글 수는 총 243개(엑스 95개·페이스북 84개·인스타그램 64개)로, 같은 기간 55개(페이스북 44개, 엑스 11개)를 올린 윤 전 대통령의 4배 이상이었다.
다루는 주제도 민생·경제, 노동, 안보, 공직기강 등 다양했다. 경향신문이 국가학술정보분석서비스를 활용해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전수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국민’(57회)으로 나타났다. ‘사람’ ‘경제’가 각각 25·21회로 뒤를 이었다. 취임 후 근절을 강조해온 산업재해와 관련한 ‘사망’ 언급은 16건, 공급자 중심 행정 탈피를 지시하며 예로 든 ‘민원’ 언급은 15회였다. 이외에도 ‘권력’ ‘최선’ ‘책임’(각 14회), ‘현장’ ‘국회’(각 13회), ‘하청’ ‘안보’(각 12회), ‘민생’ ‘안정’ ‘재정’(각 10회), ‘평화’(9회) 등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 특유의 비유·직설 화법은 국정운영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어렵거나 논쟁적인 주제를 사물 등 특정 대상에 비유해 단순화한 뒤 공감을 끌어내는 식이다. 특히 비유 대상으로 즐겨 찾는 보조 관념은 ‘밥’이었다. 그는 6월4일 취임사에서 “안전이 밥이고, 평화가 경제”라고 말했고, 같은 달 24일 국무회의와 2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가 밥”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지난 7월13일 세계정치학회 개막식 연설문에선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공직사회를 ‘로봇 태권브이(V)’(취임 30일 기자회견)에 비유하며 선출 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직자의 영향력은 ‘중국 고전 <서유기> 속 파초선(부채)’(6월24일 국무회의, 7월15일 5급 신임 사무관 특강)에 빗댔다. 통합 인사 지론에 대해선 “시멘트, 자갈, 모래, 물을 섞어야 콘크리트가 된다”(취임 30일 기자회견)며 콘크리트 제조 공정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외교 무대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한·일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한·미 정상회담) 등 이해하기 쉬운 비유적 표현이 사용됐다. 지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업무 지시를 하며 “사람 목숨 지키는 특공대라 생각하고 (산업재해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직설 화법의 예다.
이 대통령은 같은 표현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반복해 사용하며 강조하는 특징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5200만 시간의 가치’다. 공직자 한 명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5200만 국민의 삶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공직사회의 책임감을 강조할 때마다 등장했다.
취임 닷새 뒤인 지난 6월9일 2차 비상경제점검 TF 회의에서 “우리가 쓰는 한 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라고 처음 언급했다. 이후 6월23일 첫 수석보좌관회의, 7월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 마무리 발언, 7월11일 ‘대통령과 외식합니다’ 행사, 7월15일 5급 신임 사무관 특강 등 총 5차례 같은 표현을 반복했다.
“특별한 희생엔 특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 역시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집약한 문장으로 각종 기념사와 회의, 간담회에 쓰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를 비롯해 6·25기념사, 부산 타운홀미팅 등 총 7차례에 걸쳐 “특별한 희생, 특별한 보상”을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회동한 가운데, 새 정부 출범 후 선출된 여야 대표와의 첫 회동을 9일 주요 일간지가 일제히 1면으로 다뤘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장동혁 대표가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80분간 오찬회동을 하고 국정·정치 현안을 논의했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오찬 후 30분간 비공개 단독회동도 가졌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을 통해 들리는 국민 목소리도 많이 듣겠다”고 말했고 여야 대표도 정치 복원을 위한 소통 확대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해당 소식을 전한 주요 일간지들의 1면 기사 제목을 살펴보면 경향신문은 <여야 만난 이 대통령 “국가 이익엔 한목소리를”>, 국민일보는 <손맞잡은 대통령·여야 민생협의체 구성 합의>, 동아일보 <李-여야 대표 첫 회동 “민생경제협의체 구성”>, 서울신문 <여야 손잡았다…민생경제협의체 합의>, 세계일보 <여야 ‘민생경제협의체’ 합의…협치 시동>, 중앙일보 <대통령 앞 손잡은 여야 대표>, 한겨레 <이 대통령-여야 대표 회동 민생경제협의체 구성 합의>, 한국일보 <민생경제협의체 합의, ‘협치’ 물꼬는 텄다> 등이었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제목을 <손은 모았지만 뜻은 못 모았다>로 뽑고 “내란·김건희·해병대 특검을 연장하는 3대 특검법 개정을 비롯해 내란특별법, 정부조직법 등 주요 현안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모인 것은 지난 6월22일 이후로는 78일 만이다. 국민의힘이 요구한 단독 회동을 수용하는 등 이 대통령이 여야 사이의 중재자 역할에 나선 모양새”라면서 “하지만 내년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을 사실상 ‘내란 세력’으로 몰아가는 민주당 기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9일 1면.
중앙일보 사설 “‘악수 쇼’로 끝나선 안 돼” 조선일보는 관련 사설 없어
이날 주요 일간지들의 사설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회동 내용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다음은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과 관련한 주요 일간지의 사설 제목이다. 조선일보는 대통령과 여야 회동에 대해 사설을 쓰지 않았다.
경향신문 <이 대통령·여야 ‘민생경제협의체’ 합의, 정치 복원 시작이길>
국민일보 <대통령·여야 대표 회동, 협치 실천해 대결 정치 끝내길>
동아일보 <李-여야 대표 민생협의체 합의… 항상 그랬듯이 실천이 관건>
서울신문 <머리 맞댄 李·여야 대표, 그 약속 절반이라도 꼭 지켜 주길>
세계일보 <李 대통령·張 대표 첫 단독회담, 협치 마중물 기대>
중앙일보 <모처럼 반가운 여야 회동, ‘악수 쇼’로 끝나선 안 돼>
한겨레 <손잡은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 ‘정치복원’ 지켜나가길>
한국일보 <첫발 뗀 정치 복원, 상호 존중이 국정 성과 지름길>
주요 일간지들은 이날 회동을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겨레는 “이날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첫 만남은 내용과 형식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은 장 대표가 제안한 것을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적극 수용한 것이라고 한다”며 “여야는 조만간 실무협의를 벌이는데, 청년실업, 물가, 부동산 정책 등이 논의 대상이라고 한다. 민생 앞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적극 대화하기 바란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여야정이 ‘상호 존중’을 출발점으로 삼아 합리적인 조정과 결론에 이를 수 있을 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회동이 그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9일 한겨레 사설.
경향신문은 “정 대표는 12·3 비상계엄 세력에 대한 철저한 무관용 단죄를, 장 대표는 내란 특검 연장안·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며 입장차를 분명히 했다”면서도 “이날 회동 같은 소통의 장이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다. 더 이상 정치가 작동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여야 모두 신뢰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라 전했다.
세계일보도 “강성으로 평가되는 여야 대표가 처음으로 악수한 것도 상징적 의미가 작지 않다”면서도 “여당의 전향적 양보가 필요하다.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두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 등도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회동의 협치 약속이 말의 성찬에 머물지 않게 된다”고 전했다.
신문들은 이번 회동이 ‘말잔치’나 ‘정치수사’, ‘악수쇼’로 끝나선 안된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과 여야는 이전에도 협치를 약속했었고, 이름이 조금 다를 뿐 ‘협의체’구성에도 합의한 적이 있다. 문제는 그렇게 말을 해놓고 행동은 달라지지 않은 탓에 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대립의 평행선이 그어졌다”며 “어제 회동도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당장 오늘부터라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회동에선 웃으며 헤어진 뒤 얼마 안 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극한 대립하는 악순환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전했다. 서울신문도 사설에서 “어제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약속이 정치 수사로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절반만이라도 실천해 협치의 성과를 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9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문제는 모범 답안을 알면서도 우리의 정치 현실에선 매번 오답이 반복된다는 점”이라며 “여야 대표가 점잖게 주고받은 발언 속에도 당장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이 숨어 있었다. ‘더 센 특검 법안’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이 대표적”이라 전했다. 이어 “이번 회동이 단순한 ‘악수 쇼’로 끝나지 않고 여야가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정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미국, 투자받으려면 비자 확대 등 제도부터 마련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이민 당국의 한국인 300여명 구금 사태와 관련해 한국인 고숙련 노동자의 합법적 미 입국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한국인 구금 사태와 관련해 7일(현지시간) “이 나라에 배터리에 대해 아는 인력이 없다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 일부 인력을 (미국에) 불러들이고 미국 인력이 배터리·컴퓨터 제조나 조선 등 복잡한 작업을 배우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며 “전체 상황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사안이 주요 일간지의 1면으로 채워졌다. 경향신문 <“합법 입국 열테니 미국인 훈련·고용”>, 국민일보 <트럼프 “韓 기업이 美인력 훈련”…기업들 “가르치면 떠나”>, 동아일보 <트럼프, 쇠사슬 체포해놓고 “인재 합법적으로 데려와야”>, 서울신문 <트럼프 “한국 기업 불러들여 미국인 훈련”…비자 문제 개선 시사>, 세계일보 <트럼프 “韓 배터리·선박 인력 불러 미국인 훈련해야”>, 조선일보 <‘재입국 허용’ 숙제 안고…외교장관 미국행>, 중앙일보 <“배터리 인력 불러 미국인 교육” 트럼프, 한국인 비자 개선 시사>, 한겨레 <미 구금 노동자, 이르면 10일 귀국길>, 한국일보 <트럼프 “韓기술자 불러 美인력 훈련”비자 개선 시사> 등이 관련 1면 기사 제목이다.
▲9일 한국일보 사설.
구금 사태와 관련해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가 사설을 내놨다. 사설들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개선 의지가 보이는 것은 다행이나, 이번 사태로 비자 쿼터 확보 등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향신문은 <트럼프 ‘구금 사태’ 해결 시사, 한국인 비자 확대 제도화해야>라는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도 미국 내 취업·근로 비자를 충분히 발급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며 “체포·구금 다음날 ‘그들은 불법체류자’라며 이민당국 단속을 옹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 의지를 보인 것은 다행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대미 투자사업을 위해 단기 파견에 필요한 특별한 비자 카테고리 신설 등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활동 폭을 최대로 넓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은 이날 사설 <비자 줄 테니 기술 달라는 美… 정부 대응 역량 갈수록 절실>에서 “한국 대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면서도 숙련 인력 파견에 필요한 비자 발급을 가로막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명백한 모순”이라며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 등에서 실질적인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이날 사설 <트럼프 전향적 발언, 비자 애로 해소 계기로 삼아야>에서 “이번 단속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외교부의 무능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 <미국, 투자받으려면 비자 확대 등 제도부터 마련하라>에서 “미국은 동맹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으려면 먼저 제도적 여건부터 제대로 갖추기 바란다”라며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미국이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 발생한 것”, “미국은 자국의 요구로 투자를 진행하는 한국 기업 노동자들의 체류 지위를 보장하는 등 확실한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 <미국인 고용해 훈련시키라는 트럼프의 일방주의>에서 “미국은 현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한국 기업들에 대한 비자 쿼터부터 확대하는 게 급선무라는 걸 깨닫기 바란다”라며 “우리 정부도 이번엔 비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한미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국민 불안감이 크다. 정부는 어느 때보다 긴밀하고 입체적 접촉을 통해서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펴야 한다”고 전했다.
김건희 전 코바나 대표에게 1억 원이 넘는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상민 전 검사가 검사 시절 업자들에게 향응과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8일 SBS 보도에 따르면 김건희특검(민중기 특별검사)는 김상민 전 부장검사를 이번주에 소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검팀은 김 전 검사가 검사 시절 업자들에게 향응과 접대를 받았단 의혹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이 지난 5일 김 전 검사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사용한 차량 리스비 수천만 원을 대납한 혐의를 받는 금융계 인사를 불러, 김 전 검사에게 제공된 향응과 접대에 대해 알고 있는지 등을 추궁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김 전 검사는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를 구입해 김건희 전 대표의 오빠 김모 씨에게 건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김 전 대표는 김 전 검사를 창원 의창에 공천하겠다며 당시 창원 의창 지역 현역 국회의원인 김영선 전 의원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검사 공천은 불발됐지만, 이후 김 전 검사는 국정원장 법률특보직으로 가게 된다.
한편 특검팀은 김 전 검사가 사들인 이우환 화백의 그림 가격을 1억4000만 원으로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그림은 2022년 6월 한 한국인이 대만에서 경매를 통해 3000만 원으로 낙찰받아 한국에 들여왔고,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1억 원 이상으로 가격이 뛰었다. 김 전 검사는 2023년 1월, 이 그림을 약 1억4000만 원에 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그림이 진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감정한 결과,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뛴 것이 '위작'을 유통과정에서 '진품'으로 둔갑하는 수법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김 전 검사가 그림을 구매했을 당시에는 '한국미술품감정센터'가 진품 감정서를 발급한 바 있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은 진품, 가품 여부를 떠나 김 전 검사가 1억4000만 원을 주고 산 고급품을 김건희 전 대표에게 건넸다는 점이다.
▲김건희 전 코바나 대표가 자신의 배우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진 지난 3일 대선 당시 서울 서초구 표소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은 '내가 검사 27년을 했어'라는 말로 검사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이는 되레 검찰 권력의 쓸모없음을 설파한 꼴이 됐다. 권성동 의원은 검찰 인맥을 활용해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해외 원정 도박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검찰이 범죄조직처럼 작동한다는 인식을 낱낱이 드러냈다.
또한 김정민·남경민 검찰 수사관은 검찰개혁 입법 청문회에서 관봉권 띠지 유실 문제와 관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하며 국민을 우롱했다. 이는 검찰 수사관 마저도 '검찰 뒷배'만 믿고 국회를 우습게 여기는 오만한 태도의 전형으로 비쳤다.
검찰청 해체를 주장할 이유는 이미 천 가지, 만 가지가 쌓여 있다. 그러나 여론은 늘 쉽게 흔들리고, 개혁의 명분은 쉽게 흐려지곤 한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과 권성동, 그리고 검찰 수사관들이 보여준 행태는 오히려 검찰청 해체의 명분에 관뚜껑을 덮고 못을 박아버린 꼴이다. 검찰청 해체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검찰 스스로가 개혁과 해체의 정당성을 자초했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7일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300명 구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석방 교섭을 마무리했다. 구금된 300명은 전세기를 통해 한국으로 귀국할 전망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맹국 국민을 체포하면서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언론의 비판이 이어진다. 조선일보는 “동맹의 의미가 무엇인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중앙일보는 “한미동맹 신뢰를 해쳤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체포된 한국인 300명이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한다. 한국 정부가 미국 이민당국과 구금자 석방 교섭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 투자 중인 한국 기업에 비상 상황이 찾아왔다. 미국 정부가 투자를 요구해 현지 투자에 나섰지만 정작 비자는 발급하지 않아 이 같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8일 주요 일간지 1면 갈무리. 클릭 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 “미국 정부 투자? 정권 바뀌어도 유효한 지 의문”
주요 언론은 8일 1면 기사를 통해 이 소식을 전했다. 아래는 주요 일간지 1면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투자 유치 뒤 ‘뒤통수’… 한·미 동맹 시험대>
국민일보 <미국 구금 우리 근로자 데려온다>
이상한 과학의 나라 ACE
동아일보 <美 구금 한국인, 전세기로 데려온다>
서울신문 <‘美구금’ 한국인 300명 전세기로 데려온다>
세계일보 <“美 구금자 석방 합의… 곧 전세기 출발”>
조선일보 <‘쇠사슬 체포’ 300명 美서 쫓겨난다>
중앙일보 <미 구금 한국인 300명 풀려난다>
한겨레 <미 구금 한국인 ‘자진 출국’ 형식 귀국한다>
한국일보 <석방 타결에도… 美투자 기업 ‘트럼프 리스크’>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는 이번 구금으로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올랐으며,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구금 장기화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한·미 관계에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며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해외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비자·이민 단속을 강화하는 트럼프 정부의 모순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했다. 한국일보 역시 “한미 정상회담으로 양 정상 간 신뢰관계를 구축했지만, 언제든 트럼프 리스크가 재연될 수 있음을 재확인한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미국 정부의 소극적인 비자 발급도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비자 발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업인들이 ESTA(전자여행허가제)를 발급받아 임시로 일한 것이 원인이 됐다. 이에 동아일보는 이번 사건에 대한 한미 비자동맹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이 호주 등 국가에는 비자를 적극 발급해주고 있지만, 한국인 비자 발급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8일 동아일보 4면 기사 갈무리. 클릭 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4면 <550만 달러 쓰고도 비자쿼터 못 늘려… 대통령실 “개선 추진”> 보도에서 “국내 일각에선 대미 투자에 내실을 기하려면 미국과의 ‘비자 동맹’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며 “기업들이 적기에 비자를 받기 어렵거나 운에 기대야 하다 보니, 산업 현장에서는 공사 기한 등을 맞추기 위해 ESTA를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이용해 왔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ESTA를 통해 미국에 입국한 직원들이 한국으로 귀국하고 있다면서 “현지 생산 시설 가동 시점은 계획보다 늦어질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일관된 사설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사설 <한미, 韓 근로자 체포 재발 방지책 시급히 마련해야>를 내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 경제에 기여하려는 한국에 대한 신의를 무너트린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며 “미국이 말하는 ‘동맹’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미국 정부가 제시하는 투자 혜택은 정권이 바뀌어도 유효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8일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중앙일보는 <경제 동맹 현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 사설에서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불법 취업 단속이지만, 사실상 ‘동맹이라도 예외가 없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동맹국을 상대로 한 보여주기식 단속은 한·미 동맹의 신뢰를 해치는 행위다. 더구나 외국 기업의 투자 의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자신도 손해”라고 했다.
▲8일 한국일보 사설 갈무리
한국일보는 한미 양국이 이번 기회를 토대로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공장 지어주던 한국인 구금, 동맹 훼손 없게 비자 문제 해결해야> 사설을 내고 “정부와 기업은 천문학적 대미 투자 이행을 위해 고도로 숙련된 한국 인력의 합법적 파견이 가능하도록 취업비자 확대를 거듭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며 “한미 양국의 상호 이익은 물론 동맹 간 신뢰마저 훼손되지 않도록 차제에 비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검찰청 폐지에 한겨레 “자업자득” 중앙 “행안부 권력 집중 우려”
이재명 정부가 지난 7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가진 뒤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했다. 검찰청은 창설 78년 만인 내년 9월 폐지되고, 검찰청의 수사·기소 기능을 맡을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이 신설된다. 기획재정부는 재정경제부로 이름을 바꿔 세제·경제·금융·국고 정책을 담당하고 예산·재정 기능은 총리실 산하 기획예산처가 전담한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개편된다.
▲8일 한겨레 사설 갈무리
검찰청 폐지와 관련, 한겨레는 검찰청의 자업자득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무소불위’ 검찰 역사 속으로, 자업자득이다> 사설에서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국민의 신임을 잃게 된 대가”라며 “그동안 검찰은 권력형 비리와 기업범죄 등에 대한 수사를 통해 일부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 정부에서 보장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악용해 스스로 정치권력을 넘보는 집단이 됐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 <검찰청 폐지·기재부 분리, 후속 보완책도 만전 기하길>에서 “검찰의 수사·기소를 분리해 ‘정치 검찰’의 적폐를 끊겠다는 의지가 실렸다. 윤석열의 검찰국가 폐단을 보며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국정과제가 됐다”며 검찰청 폐지를 긍정 평가했다.
▲8일 중앙일보 사설 갈무리
반면 보수 성향 일간지는 검찰청 폐지가 섣부른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오히려 행정안전부로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가 생겼다고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중수청이 행안부 산하에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사설 <검찰 권력 분산한다면서 행안부로 권력 집중시키나>를 통해 “검사 출신 대통령의 전횡을 겪은 직후이니 검찰의 힘을 빼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청 해체의 결과가 더 무서운 권력기관의 탄생으로 귀결된다면 잘못된 개혁”이라며 “경찰청·국가수사본부에 이어 중수청까지 행안부 산하가 되면 막강해진 경찰을 거느리고 검찰의 권한까지 대폭 흡수한 거대 권력 부처가 탄생한다”고 했다.
▲8일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조선일보는 사설 <“先처리 後보완” 속도전 하듯 강행된 정부 조직 개편>을 내고 정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속도전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중차대한 문제가 충분한 토론과 숙의 절차 없이 처리 시한을 못 박은 채 속도전으로 처리되고 있다. 검찰 개혁만 해도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는 전문적 지식과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보완은 나중에 하겠다는 것인데 졸속 우려가 현실로 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으로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자동 면직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확대 개편은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내보내려는 차원이란 주장까지 나온다”고 했다.
▲8일 조선일보 4면 갈무리
조선일보는 4면 <與 “방통위 해체법도 25일 처리”… 野 “이진숙 추방법”> 보도에서 “여당이 ‘방통위 해체’ 카드를 꺼낸 배경엔 이 위원장과의 누적된 갈등이 있다”며 “여당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를 바꾸는 방송 3법을 지난달 본회의에서 일방 통과시켰고 개정된 법에 따라 3개월 이내에 공영방송 이사진을 새로 구성하려고 했지만, 이사진 선임 의결권이 있는 방통위가 이진숙 위원장 1인 체제로 돼 있어 속도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 “언론 징벌적 손배제? 권력 비판 말라는 것”
더불어민주당의 언론개혁 속도전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세계일보 5면에 실린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언론개혁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소위 말하는 3대 개혁이 있는데, 가장 앞에 있는 검찰개혁이 잘 되면 나머지는 속도 조절을 하며 신중하게 하되, 12월을 넘기지는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국일보는 사설 <악의 없어도 언론에 징벌적 손배, 권력 비판 말라는 건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악의나 고의성이 없어도 중과실이 인정되면 언론에 실제 손해액의 몇 배를 책임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도입하기로 했다. 배상 규모 상한조차 없다”며 “언론의 권력 비판 보도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 자명한 법안을 대안 없이 밀어붙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8일 한국일보 사설 갈무리
한국일보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보도, 천공·건진법사의 국정개입 의혹 보도 등은 초기 허위 보도라는 공격을 받았다. 심지어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한 언론사는 전용기 탑승이 배제된 채 경찰 수사를 받았다”며 “당시 징벌적 배상이 있었다면 의혹 보도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민주당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은 말기 바란다”고 밝혔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캠퍼스에서 지난 4일 개최된 ‘동방경제포럼’의 한 세션에서 ‘북극과 극동의 통합 개발을 위한 책임 있는 파트너십’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북극항로(NSR)는 항로의 거리적 이점으로 매력적이지만, 그 가치가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선박의 운항일정 신뢰성(schedule reliability)이다.”
이재명 정부가 북극항로 개척 사업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한국에서도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북극항로’ 의제가 ‘동방경제포럼’에서도 다뤄졌다. 지난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캠퍼스에서 개최된 ‘동방경제포럼’의 한 세션에서 ‘북극과 극동의 통합 개발을 위한 책임 있는 파트너십’ 주제발표가 채택된 것이다
이날 포럼에 한국측 발표자로 참석한 최수범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은 북극항로와 관련 이같이 ‘신뢰성’을 강조했다.
한국측 발표자로 참석한 최수범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최 사무총장은 “만약 북극항로가 범북극 운송 회랑(Trans-Arctic Transport Corridor, TATC)의 핵심 구성 요소로서 확실한 운영 창구를 공표하고, 더 나아가 이를 꾸준히 지켜낼 수 있다면, 선주는 계획을 세우고, 보험사는 가격을 책정하며, 항만은 운영에 참여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지도는 관심을 끌지만, 신뢰할 수 있는 선박운항 일정표는 화물을 끌어온다”는 것이다.
최 사무총장은 그 신뢰성의 요소로, △운영성과(operational performance), △보증 체계(assurance frameworks), △데이터와 인적 자원(data and people) 등 세 가지를 들었다.
특히, 최 사무총장은 이 세 가지 진행과정에서 “북극 원주민 공동체와의 의미 있는 협력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즉, “협의, 지역 고용, 환경 모니터링을 초기부터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사무총장은 “북극에서 통하는 것은, 어디서든 통한다”면서, 향후 실천 가능한 조치들 중의 하나로 한–러 공동 작업반(working group)의 역할을 제안했다. “선주, 항만, 선급협회, 보험사,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러시아–한국 NSR 공동 작업반’을 분기별로 개최해 운영 문제 해결, 기준 업데이트, 결과 모니터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최 사무총장은 “모든 협력은 국제법과 관련 제재를 준수해야 한다”면서 “초기 프로젝트는 허용된 화물, 안전성 강화, 환경 기초선 수립 및 모니터링 시스템(예: 블랙 카본 배출, 수중 소음)을 우선해야 하며, 교육과 훈련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최 사무총장은 “만약 우리가 예측 가능성, 안전성, 지속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면, 북극항로(NSR)는 지도 위의 유망한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뢰할 수 있는 운항 일정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러한 안전장치 속에서, 한국은 북극에서 실질적이고, 개방적이며, 책임 있는 방식으로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최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의 대표가 아니라, 북극해운학자이자 산업전문가로서 개인 자격으로 말씀드린다”면서도 “한국은 북극과 극동을 바라보는 데 있어 세 가지 핵심 관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예측 가능성, 안전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다”고 명확히 밝히기도 했다.
이날 미하일 쿠즈네초프 동부국가계획센터(FANU) 이사가 진행한 포럼에는 발표자로 예브게니 암브로소프 PJSC "NOVATEK" 관리위원회 부회장, 블라디슬라프 마슬렌니코프 러시아연방 외무부 유럽문제국 국장, 일다르 네베로프 국가신탁 "아르크티쿠골" 총책임자, 알렉산더 포시바이 러시아연방 교통부 차관 등이 나섰다.
이날 포럼에는 포항시 항만과 성원들이 참가해 발제자들과 참석자들에게 포항시의 북극항로 개척 의지를 전달하는 홍보를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재명 정부가 북극항로 개척 사업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각 해안지역에서 이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계기로 북극항로 개척의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며 북극항로 개척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으며, 경북, 울산, 전남, 강원 등 바다를 낀 지자체들도 북극항로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날 포럼에는 포항시 천만석 항만과장과 전상희 항만정책팀장이 참가해 포럼 후 발제자들에게 여러 질문과 함께 포항시의 북극항로 개척 의지를 전달하는 홍보를 펼쳐 이채를 띄었다.
동방경제포럼이 열린 극동연방대학교 건물 내부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동방경제포럼이 열린 극동연방대학 건물.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동방경제포럼 개최를 알리는 홍보물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한편, 9월 3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10차 동방경제포럼 (Eastern Economic Forum, EEF)은 슬로건이 ‘극동-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이며,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손사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 곰보자빈 잔단샤타르 몽골 총리,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등 70개국 이상 대표단과 베트남, 인도, 중국, 라오스, 말레이시아, 태국을 중심으로 해외 기업 대표단이 참석했으며, 포럼의 비즈니스 프로그램은 100개 이상의 행사로 구성됐다.
푸틴 대통령은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중국 톈진(天津)에서 열린 ‘2025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와 9월 2일부터 4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5일 동방경제포럼에 합류해 본회의(Plenary Session)에서 연설했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과 서왕진 원내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내 성 비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2025.9.7. 연합뉴스
윤석열과 극우 세력의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원내 제3당으로서 민주진보 진영의 한 축을 담당해온 조국혁신당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검찰독재정권을 앞장서 깨뜨리는 '쇄빙선'에서, 이제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극우 본당' 국민의힘을 깨부수는 '망치선'(조국 전 대표의 표현) 역할을 하리라 다짐하던 혁신당이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면모를 일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과 최고위원 전원은 최근 강미정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 이후 일파만파로 확산된 당내 성 비위 파문에 책임을 지고 7일 총사퇴했다. 이에 따라 혁신당은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 개최 전까지 최고의결기구 지위를 갖는 당무위원회를 조만간 소집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전망이다. 비대위원장에는 8·15 특별사면 뒤 복당해 혁신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조국 전 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당내 일각에서는 사면된 지 얼마 안 된 조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설 경우 정치적 리스크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심각하게 동요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중심을 잡고 현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적임자는 현실적으로 당의 최대주주이자 구심점인 조 전 대표뿐이라는 점에서 '조기 등판'의 부담을 감수하고 무한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 전 대표는 당초 오는 11월 열릴 예정이던 정기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면 당의 사령탑으로 두 달 정도 빨리 복귀하는 셈이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내 성 비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 총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2025.9.7. 연합뉴스
김선민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국회 본관에서 황명필·이해민·차규근 최고위원 등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죄송하고 참담하다. 저의 대응 미숙으로 동지들을 잃었다. 피해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당 안팎에서 벌어진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저는 오늘 대표 권한대행직에서 물러남으로써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조국혁신당은 신생 정당이다. 대응 조직과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우왕좌왕 시간을 지체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권한대행으로서 '절차와 원칙'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법적인 절차를 뛰어넘어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지 못했다. 더 과감한 조치를 했어야 하지만, 못했다"고 토로했다.
또 "이 일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신 당원 동지들, 저희를 성원해 주신 국민께도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 관용 없는 처벌과 온전한 피해 회복을 위해 이제 저와 최고위원 전원은 물러난다"며 "당에 무거운 짐을 넘겨 죄송하다. 현 상황을 수습해 국민과 당원 동지들의 마음을 다시 모으시리라 믿는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황명필 최고위원은 기자회견 뒤 취재진과 만나 "원내대표는 원내에서 선출하는 분이니까 (사퇴하지 않고) 선출된 저와 지명직 최고위원이 다 같이 (사퇴한다)"며 "비대위 구성은 당무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일정은 원내대표가 소집해야 하니까 오래 걸릴 일은 아니고 빠르게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도부 총사퇴에 조 전 대표와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는 "그런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예방하고 있다. 2025.9.4 [공동취재] 연합뉴스
기자회견 뒤 김 권한대행을 제외한 혁신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원장 인선을 포함한 비대위 구성 문제를 놓고 1시간 30분가량 격론을 벌였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8일 의총을 다시 열어 논의하기로 했다. 비대위원장을 조국 전 대표가 맡을지, 혁신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외부 원로 인사가 맡을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백선희 원내대변인은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를 구성하는 데 있어 원칙과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의원들의 일차적 논의가 있었다. 피해자·당원·국민으로부터의 신뢰 회복과 혁신이 중요한 원칙"이라며 "비대위는 당헌·당규에 따라 당무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고 원내대표가 소집하는데 최대한 빨리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대위원장 인선에 관해서는 "어떤 분을 모실지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논의할 것"이라며 "특정인 여부는 내일 (의총 후)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조국혁신당 황현선 사무총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성 비위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2025.9.7. 연합뉴스
앞서 황현선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당의 운영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으로서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과 조국 원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우리 당을 믿고 지지해준 당원 동지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린 점은 사무총장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일로,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면서 "성비위 사건을 비롯해 당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에 대해 저 또한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으며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아울러 "저의 부족함으로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당 내홍의 한복판에 서게 된 조국 원장에게도, 그리고 조국 원장에 기대를 가졌던 많은 지지자 분들에게도 사과드린다"며 "당 지도부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조사 과정과 조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성비위 사건의 로펌 선정 및 괴롭힘 사건의 외부 노무 법인의 재조사, 외부 인사를 중심으로 한 위원회 구성 등 피해자들의 요청 수용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당헌·당규, 절차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 공당에서 운영 절차와 규정을 지키는 것이 피해자와 당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상처를 깊이 헤아리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며 "당이 부족하고 서툴렀던 것이지, 은폐와 회피가 아니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치검찰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 조국의 사면복권은 사무총장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저에게 큰 임무였다. 다행히 우리 곁으로 돌아왔지만 온전하게 그를 맞이하고자 했던 저의 목표는 미진했다"며 "계속되는 고통을 버티고 또 버티는 조국 원장에게 겨눈 화살을 저에게 돌려달라. 창당을 위해 함께 한 결심, 국민을 살리는 검찰개혁을 위해 온 몸을 던지고 내란 세력 척결과 국민주권정부로의 정권교체 및 성공을 위해 위험, 비난, 비판을 함께 견뎌온 시간들이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으로 굳건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조국혁신당 강미정 대변인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성비위 의혹과 관련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9.4. 연합뉴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이규원 사무부총장도 이날 오전 김 권한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5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성희롱은 범죄는 아니다'라는 언급을 했다는 이유로 중앙당 윤리위원회에 제소됐던 그는 6일 페이스북을 통해 "방송에서의 일부 발언으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며 "당원으로서 윤리위 조사에 성실하고 책임 있게 임하겠다. 당분간 방송 등 대외활동은 자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국혁신당 소속은 아니지만 역시 2차 가해 발언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민주당 윤리감찰단 조사를 받던 최강욱 교육연수원장도 이날 보직에서 사임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 지금 제가 맡기에는 너무 중요하고 무거운 자리라 생각해 왔다"며 "이유 불문, 저로 인해 많은 부담과 상처를 느끼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한다. 거듭 송구할 뿐이다. 자숙하고 성찰하겠다"고 전했다. 정청래 대표는 그의 후임으로 3선 김영진 의원을 지명했다.
한편 혁신당 성 비위 사건에 대한 고소를 접수한 경찰은 5개월째 수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계는 지난 4월 강미정 대변인의 고소장을 접수하고 신체적 접촉 및 성희롱성 발언을 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로 피의자 A 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했지만 양쪽의 진술을 제외하고는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한 데다 당시 노래방에 동석했던 목격자들 진술까지 엇갈려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언론에 "성 비위 의혹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조만간 사실관계를 밝히겠다"면서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예고하고 있다.
2024년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 무산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국가보다 정당을 중시하는 길을 선택한 최악의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친윤계 윤상현 의원은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는 말로 표결 불참에 따른 정치적 영향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오마이뉴스>는 12.7탄핵 보이콧에 가담한 105인의 면면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편집자말]
2024년 12월 7일 오후 9시, '윤영석 의원님 봐주세요'라는 정중한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경남 양산 지역을 기반으로 둔 맘카페에 올라온 글이었다.
"양산으로 이사 온 지 8년 차 주부"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는 "이사 온 첫 해 종합운동장 어린이날 기념 행사 자리에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인사하는 의원님 인상이 너무나 좋게 남아있다"라며 칭찬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어진 건 당부였다.
▲2024년 12월 7일, 윤석열 탄핵안이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기 전 자리에 앉아있는 윤영석 의원의 모습.KBS 국회 생중계 장면 갈무리
"양산시민을 대신하는 윤영석 의원님, 양산시민이 당부드립니다. 지금 한 정당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닙니다. 정당을 배신하라는 게 아닙니다. 부디 윤 대통령이 탄핵 될 수 있도록 양산시민의 목소리를 한 표로 보여주십시오."
그 날 밤은, 윤영석(경남 양산 갑, 4선)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105명의 의원들이 윤석열 탄핵안을 '보이콧' 하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날이었다. 해당 글에 달린 30여 개의 댓글 중 하나. "주먹 들고 문재인 죽어(여) 할 때부터 자격 없다 싶었다"(룰루**)였다.
윤석열 탄핵안에 대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윤 의원을 향해, 2024년 4월 7일의 사건을 소환하며 국회의원 자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재인 죽여" 발언 처음엔 부인하더니 같은 날 "국민의 목소리" 주장
2024년 4월 7일 오후 1시 경, 4.10 총선에 출마한 국민의힘 윤영석 후보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지나던 중이었다. 윤 후보가 유세차량에 올라 녹음된 연설을 내보내던 중 한 유튜버와 마주쳤다. 윤 후보는 주먹을 쥐고 어깨 위로 손을 올린 채 "문재인 죽여"를 외쳤다. 해당 장면은 고스란히 영상으로 남았다(관련 기사 : 윤영석 "문재인 죽여" 발언 파문).
▲국민의힘 윤영석 총선후보(양산갑)가 2024년 4월 7일 오후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을 돌며 유세했다.유튜브 캡쳐
사건 발생 하루 뒤인 8일 오전, <오마이뉴스>는 윤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8일 오후, 윤 후보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 발언은 국민의 목소리로 들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께 직접 들으라고 했던 발언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이어서 "문 전 대통령은 결코 성역이 아니"라고도 했다. 윤 후보가 발언했던 그 곳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와 380m 떨어진 곳이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는 윤 후보의 해명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라는 궤변은 그만하라"고 했다. 이 대표는 같은 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믿기 힘든 극언에 등골이 서늘했다.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폭력과 테러를 부추기는 집권여당 후보라니 대체 민주주의를 어디까지 퇴행시킬 작정인가"라고 물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윤 후보는 5만 3560표를 얻어 당선됐다.
윤석열 탄핵안 '보이콧' 후 소환된 사진... "90도 폴더, 저는 진짜 믿었거든요"
다시, 12월 7일 밤. 맘카페 또 다른 회원은 한 장의 사진을 가져왔다. 8개월 전인 4월 9일, 윤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며 유권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맘카페 회원 '쩡**'는 "양산 시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바친다며? 투표 독려해 놓고 당신은 투표권을 포기했다 이거지?"라 적었다. 같은 사진을 공유한 또 다른 회원(신**) 역시 "이때 90도 폴더 눈 질끈 감고... 저 행위는 뭡니까? 저는 진짜 믿었거든요. 장을 지져야겠습니다"라고 성토했다.
▲2024년 12월 7일 경남 양산 지역 맘카페 올라온 윤영석 의원 SNS 사진. 8개월 전 윤 후보 시절 선거운동하는 모습이 담겨있다.경산 맘카페 갈무리
이들은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본인에게 투표해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양산 시민을 대신하는 국회의원으로서 투표해야 할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다니요. 똑똑히 기억하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ppqq*****)
"기억하겠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잊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이번엔 아닙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일을, 며칠 전 윤석열이 한 일을." (뚜오*****)
다음은 헌법 수호 의무가 있는 윤영석 의원의 12·3 계엄 이후 주요 정치적 선택이다.
2024년
12월 4일 : 12.3 비상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12월 7일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했다.
12월 10일 : 12·3 비상계엄사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12월 26일 :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2025년
1월 15일 :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당시 한남동 관저 앞 집결에 참가했다.
2월 17일 : 헌법재판소 항의 방문에 참가하지 않았다.
3월 1일 : 극우세력의 3.1절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3월 12일 : 탄핵심판 각하 촉구 탄원서에 이름 올렸다.
6월 5일 :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외환 특검 표결에 불참했다.
7월 14일 : 윤상현 의원이 주최한 리셋코리아 발대식(전한길 연설)에 불참했다.
윤 의원은 자신의 SNS에 비상계엄이나 내란 자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윤석열이 탄핵된 날인 4월 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비극 앞에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을 뿐이다. 다음 날에는 바로 대통령 선거 준비 모드에 돌입했다. 윤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2016년 탄핵과 2017년 대선, 그 때 우리는 분열했고 그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했다"라며 "이재명과 민주당? 절대 안 된다. 그런 나라는 용납할 수 없다, 하나가 되면 반드시 이긴다"라고 강조했다.
[프로필] 경남 양산 출신 행정가, 4번 연속 출마해 4번 당선
1964년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태어났다. 양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부산으로 가 동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듀크대학교 공공정책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으로 일하며 주로 서울시청에서 근무했다. 2012년 19대 국회에서 경남 양산시 지역구에 출마한 이래로 4번 연달아 당선돼 현재 4선이다.
2016년 재선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비서실장에 임명되며 대표적 '친박'으로 꼽혔다. 2019년 5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선거법 및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것에 반발해 집단 삭발을 강행했고, 윤 의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삭발 후 윤영석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이 2019년 5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에 항의하는 삭발을 하고 있다.남소연
12.3 계엄 이후 정치적 선택에 대해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단 굵은 글씨 표기)
6월 5일, 박수민 의원(서울 강남을)은 "대통령이 동원한 계엄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며 같은 당 의원들의 릴레이 반성을 제안했다. 6월 6일, 최형두 의원(경남 창원시마산합포구)은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엄청난 오산과 오판을 결심하는 동안 여당 의원으로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사과했다.
8월 12일,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고 했던 윤상현 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을)은 "12.3 비상계엄은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사과하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각자가 고해성사하며 서로 또 용서하고 국민으로부터 대용서를 받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고위당정협의회를 진행한 뒤, 이 같은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윤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정부조직개편은 국민이 원하는 핵심 국정과제를 이행하고 새 정부 국정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한 첫 단계"라며 "정부 부처 기능을 효율화하고 기후위기, AI대전환 등 복합 문제를 다룰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시절 공약인 기재부 분리, 검찰청 폐지가 포함됐다.
기획재정부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된다. 국무총리 소속의 기획예산처가 예산 기능을 가지고 떼어내 균형적 예산편성·재정기획을 전담한다. 경제부총리가 총괄하는 재정경제부는 경제정책과 세제, 국고 관리 기능을 맡는다. 기재부가 담당하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재정경제부 소속으로 바뀐다.
국내 금융정책 기능은 재정경제부가 맡게 된다. 이와 함께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 기능을 맡는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해 재정경제부 산하에 둔다. 기존 금융감독원은 특수법인에서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 금감원 산하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 공공기관으로 신설한다.
검찰청은 77년 만에 폐지된다. 공소제기·유지 기능은 법무부 소속 '공소청'으로, 수사 기능은 행안부 소속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분리된다.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 '범정부 검찰개혁 추진단'을 설치해 세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는 환경·에너지 정책을 전담할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했다. 기존 환경부와 산업부의 에너지 기능 일부를 합쳐 탄소중립·기후위기 대응을 총괄하게 된다. 기후대응기금과 녹색기후기금 관리도 맡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폐지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한다. 해당 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방송진흥 정책 기능을 이관해 권한을 더 강화한다. 기존 방통위와 과기부로 이원화돼 있던 방송 정책을 일원화하겠다는 취지다. 위원 정수는 7인으로 늘려 공영성을 강화하고, 민관협의회를 통해 미래 미디어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AI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해 과학기술부총리를 신설하고, 과기부 장관이 겸임하도록 했다. 과기부 내에 AI 전담부서가 설치되고, 대통령 소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도 개편된다.
교육부 장관이 겸임했던 기존 사회부총리는 폐지한다. 윤 장관은 "넓은 정책 범위 및 낮은 실효성을 고려해 폐지한다"고 설명했다.
또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한다. 각종 산업재해 예방·대응 등 산업안전보건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밖에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 전담차관 신설 △통계청의 국가데이터처 승격 △여성가족부의 성평등가족부 확대 개편 △특허청의 지식재산처 승격 등이 추진된다.
이번 개편으로 중앙행정기관은 기존 48개(19부 3처 20청 6위원회)에서 50개(19부 6처 19청 6위원회)로 변화된다.
윤 장관은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국가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고 정부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원칙 아래 정부 조직을 무조건적으로 늘리기보다는 일을 잘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하는 데 집중했다"며 "이번 개편은 정부조직법 등 법률 개정안이 공포되는 시점부터 즉시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 임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마음이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지 않았을까? 세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팍스아메리카나의 대통령과 그 속국과 자주국 사이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포지션으로 살 수밖에 없는 나라 대통령의 운명을 잘 보여주고 있다.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 혹은 혁명 같다. 우리는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없고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북미전쟁을 부추기는 미국 내 네오콘과 국내의 매판 극우세력들은 이재명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처럼 되기를 염원하는 듯했다. 내란에 실패하고도 반성은커녕 피에 굶주린 승냥이들 마냥 이재명이 실패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 세력은 차고 넘친다. 국내 극우와 공작세력 등은 아예 미국의 일부 극우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세력과 짜고 회담을 망가뜨린 후, 반이재명 투쟁을 벌이려 작업했다. 국힘당 대표에 당선된 장동혁 당대표의 첫 발언이 “이재명 대통령을 끌어내리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였다. 이 말은 적대성의 표현을 넘어 마가와 손잡았다는 극우 국제연대의 서사로 들린다. 트럼프가 이재명을 아웃시켜 주리라 믿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2025.8.26. 연합뉴스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의 글로벌 중견국가 대통령 이재명의 영향력 정치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첫 백악관 회담에서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보여주었다. 강압과 협박이 아닌, 관계와 신뢰, 그리고 유머와 인간미로 시작되는 외교로 트럼프의 글로벌 깡패 방식의 외교에 맞섰다. 세계는 더 이상 힘과 폭력의 정치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힘없는 자들의 힘(power of the powerless)인 영향력의 정치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불확실성과 폭력의 시대를 넘어설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신뢰와 상생의 언어이다. 이재명의 외교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라는 국가위상의 뒷받침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미․중․러․유럽연합과 같이 글로벌 중추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중견국가이자 동북아와 유라시아의 중추국가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국가 위상에 걸맞게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동북아와 유라시아의 정치경제 부문에서 공동설계자의 역할을 함께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 위치와 그에 걸맞는 역량을 가지고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 임했으리라.
최근 트럼프-이재명 정상회담을 보면서 영향력의 정치와 중견국가로서의 대한민국 국격을 실감하면서도 130년 전 동학혁명의 데자뷰가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예민함인가? 그때와 지금은 정도 차이는 있으나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당시 동학혁명의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의 정신과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130여 년 전 동학농민혁명이 드높이 내걸었던 반봉건, 반외세, 인내천(人乃天)의 기치는 ‘기득권 카르텔 청산, 자주적 복지국가 건설, 직접민주주의 시민정치(국민주권정치) 실현’이라는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 옛날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일본과 청나라를 대신해 오늘은 미국이 외세 노릇을 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에게 양날의 칼이다. 우리의 든든한 안보경제 동맹자로서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과 5위권의 군사대국으로 성장하게 한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다른 한편으로 주한 미군으로 이 땅을 점령한 이후 한국을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역할지우고 한미 워킹그룹을 통하여 국정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협박을 일삼는 조폭 두목형님과 같은 역할 또한 만만치 않게 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서 역할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왕년의 새우가 아니라 남북 간 평화를 통한 동북아시아와 유라시아의 공동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학혁명 주도세력이 서명한 '사발 통문' 위키백과
130년 전 선진국형 정치모델인 ‘교정청과 집강소 체제’를 창조했던 동학혁명
동학농민혁명(1894년)이 일어난 지 어언 130년이 지났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 ‘외세인 일본과 서양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척양척왜를 기치로 봉기했던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우금치 전투에서 장엄한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는 세계사에 길이 남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이 아래로부터의 동학혁명은 폐정개혁을 통한 봉건제 타도와 정치민주화, 경제민주화, 외세척결 등 온전한 국가건설을 위해 30만~50만 명이 피를 흘렸다. 프랑스 대혁명보다 더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한민족 5천년사의 최대 사건이었다. 그러한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로, 촛불혁명 이후에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동학농민혁명군은 130년 전에 내세웠던 놀라운 진보성과 담대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동학혁명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을 볼 때, 노비문서 소각을 통한 신분제 폐지는 놀랍다. 탐관오리 엄징과 양반무리 징계, 관리 채용 과정의 지벌 타파 등은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여 고위직 관료의 부패와 부정을 엄단하라는 오늘날의 국민적 요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횡포한 부호 무리 엄징, 토지균분과 분작 등은 재벌그룹 오너들의 초법적 갑질과 일탈을 엄벌하고 경제민주화를 향해 거보를 내딛으라는 시대적 열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둘째로, 동학농민혁명은 좌절되었지만 대한민국과 아시아의 운명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반봉건 민주화, 반외세 자주화를 앞세운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독립운동을 거쳐 4.19혁명, 5.18 광주항쟁, 6.10 민주항쟁, 그리고 오늘의 촛불민주주의 빛의 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동학혁명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은 창성하고 망각하는 민족은 멸망하는 것이 흥망성쇠의 이치다.
셋째로,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 민치(民治)와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 통치(統治)의 협치(協治) 체제라는 선진국형 정치모델을, 이미 130년 전에 교정청(校正廳)과 집강소(執綱所) 체제 형태로 출범시킨 선진성과 진보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1894년 갑오년에 동학군과 조선정부는 국민협약과도 같은 전주화약을 맺고 중앙정부에는 오늘날 상설 국민주권위원회 같은 교정청을 신설하고, 전라도 지방 53곳에 오늘날 주민자치정부(민정자치기관)와 같은 집강소를 설치해 제정관료 통치와 국민직접 민치의 협치 체제를 합의하고 잠정 운영한 바 있다.
애석하게도 일본의 침탈과 우금치 전쟁의 실패로 좌절되었다. 역사의 가설을 동원하면, 갑오년의 이 협치 체제가 성공했더라면 ‘서구적 근대’에 짓밟히지 않고 이를 넘어선 ‘개벽적 근대’가 꽃을 피웠을는지도 모른다. 고대 한민족의 찬란한 고조선의 화백민주주의와 이군일민(二君一民) 협치 체제의 20세기적 현현(顯現) 말이다.
오늘날 K-민주주의는 넥스트 샤먼 문명의 맹아로 전 세계를 강타하는 K-POP에 이어 촛불민주주의 빛의 혁명으로 상징되고 있다. 이제 K-민주주의는 상징에서 구체성의 현실로 내려와 ‘상설 국민주권위원회’와 ‘읍면동 마을자치정부’의 제도화를 통하여 21세기형 교정청-집강소 체제를 창출하고 안착시켜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안고 있다.
이미 스위스는 이러한 체제를 마을연방 민주공화국이라는 형태로 상당한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본다. 촛불민주주의 빛의 혁명을 체현하는 K-민주주의는 스위스를 넘어서는 정치인류학적 DNA를 가지고 있기에, 한국인은 더 잘해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동학농민혁명 이미지화. 플랫폼.C
2025년 체제 구축을 위해 ‘상설 국민주권위원회’를 구성하자
2025년은 1894년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30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지 120년 되는 해이자, 1945년 해방으로 광복을 맞은 지 80년 되는 해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대전환의 시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5년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전환점인 2025년 체제를 만드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설렘을 주고 있다.
2025년 체제란 한반도에서 지긋지긋한 냉전의 겨울을 날려버리고 한반도의 영구평화를 활짝 여는 체제일 것이고, 민생경제가 활기차고 부유하며 진짜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체제이리라! 이러한 2025년 체제는 제7공화국 건설로부터 본격화될 것이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제7공화국의 상(象)은 직접민주주의 3법(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에 기초한 국민주권 ‘시민정치’와 풀뿌리민주주의 ‘주민자치’ 그리고 주민원탁회의와 시민의회와 같은 ‘공론정치’를 기반으로 한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 민치’와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 통치’의 협치 체제이다.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문맹률이 95% 이상이고 불록체인이나 인터넷 망도 없던 시대에 생겨난 제도이고 그 실현 수단으로 정당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문해력 98%, 대학 입학률 83%, 대졸 유권자 비율 30%(아일랜드 1위, 한국 2위)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고학력 국가이며 초고속 디지털통신망 국가이다. 이러한 조건만 보면 대의제 기반의 정당은 필요 없이 곧바로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 연방국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 시민정치 주체 형성 및 제도 안착의 관점에서 보면, 그 준비정도가 낮다. 그러기에 과도기적으로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 민치와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 통치가 융합한 협치 공화체제를 상당 정도 운영해야 할 것이며, 그 첫 시작이 제7공화국 건설이어야 할 것이다.
‘상설 국민주권위원회’ 창설은 명칭을 달리하여 여러 사람과 단체에서 주창되고 있다. 이원영 한국국토미래연구소장은 시민언론 민들레 칼럼 “행정-입법-사법부에 ‘국민참여부’라는 밥상”(2025년 7월 29일)에서, 제4부로서의 국민참여부(국민주권부) 창설을 제안 주창하고 있다. 기존 3부는 원래 상호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해 공화주의를 실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은 기득권의 서식처로 변질되고 상호 견제는커녕 소위 스카이 학벌 중심으로 지배 카르텔이 공고하다. 기존 3부의 대리운전만으로는 국민주권을 담을 수 없으므로, 나라의 주인답게 국민주권을 직접 행사하며 이들을 향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4부로서의 국민참여부(국민주권부) 창설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국민참여부를 당장 시행하자면 헌법을 고치지 않아도 되며, 일반 입법으로 대통령은 헌법 제1조의 더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국민참여부서를 둔다는 취지의 일반 입법을 하면 된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민주권’ 정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단체로서는 직접민주주의 연대(상임대표 연성수)가 중앙의 ‘상설 국민주권위원회’와 시군구 단위의 ‘국민주권센터’ 창설을 주창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연대’는 2025년 6월 18일 “국민주권위원회 신설을 환영하며 국민주권위원회를 국민주권 제도화를 위한 상설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한다!”라는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이 성명서의 내용은 기존의 국정기획위원회 내에서 한시적으로 운영하던 국민주권위원회를 상설적인 국가조직으로 제도화하라는 것이다.
개헌개혁행동마당(상임대표 송운학)외 55개 단체는 2025년 9월1일 ‘상해 통합임정 출범 106년 교훈과 집권100일 이재명 정부 1호 국정과제 평가 및 국민발안 개헌 운동 추진 제안문’에서, 국민주권위원회의 제도화를 위한 법적 담보로서 (가칭)국민주권행사 보장 기본법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
국민주권의 완성은 민원성 의견을 접수하는 청원제도를 넘어서 입법을 통한 제도화로부터 비롯된다. 국민주권을 제도화하기 위해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국민감사제 등을 법적으로 완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설령 완비된다고 해도 빠른 시일 안에 이를 국민들이 익숙하게 이용하면서 국정에 일상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러므로 국가인권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와 같이 국민주권위원회를 독립행정기관으로 설치하여 국민주권을 제도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이 국민주권 활동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국민주권위원회 산하에 ‘(가칭)국민주권센터’를 시군구 단위로 개설하여 이를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권자는 대한민국의 주인이므로 국민의 공복인 공직자를 향도, 견인,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권력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국가의 주인으로서 앞장서서 헤쳐 나가는 것이 주권자의 실천의무다.
동학농민군의 깃발 구호 '척왜양창의'. 서양과 왜(일본)를 물리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는 의미. 위키백과
상설 국민주권위원회의 존재 이유, '민치'와 '통치'의 '협치' 공화체제 건설
상설 국민주권위원회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 보국안민을 하기 위함이다.
첫째는 보국(輔國)이다. 외세로부터 나라의 주권이 휘둘리지 않고 자주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의 입김과 갑질, 횡포를 헤쳐 나가며 민족의 미래를 구축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주권 침해와 시어머니 갑질이 일상적으로 빈발하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도 그 대처가 쉽지 않을 것이다. 5년 임기제의 대리 권력인 그들에게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운명을 통째로 내맡길 수는 없다. 미국의 주권 침해는 주권자 국민만이 대응 가능하다. 국민의 뜻을 효과적으로 수렴하고 그 뜻을 직접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방안이 ‘상설 국민주권위원회’와 ‘국민투표제도’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에 관하여 외국의 무도한 압력에 처해지면 국민투표제도를 통해 전국민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국민들은 국내외 정치꾼 간의 어떤 독단적 협상, 협정, 조약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안민(安民)이다. 국민이 온갖 저열한 가짜뉴스와 포퓰리즘 팬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의 집단지성과 공론이 바르게 안출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국민주권정부가 개혁과 번영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하여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국정을 민치와 통치가 각각 50%씩 분담하는 협치 공화체제로 운영해야 할 때가 왔다. 그래야 50% 이하에서 맴도는 국민들의 정치효능감이 75% 이상으로 높아지며 국민들의 마음이 편안해진다. 민치와 통치의 협치 공화체제란 민치 권력이 국정의 50%를 맡고, 통치 권력이 국정의 50%를 감당하는 명실상부한 상호견제 체제를 의미한다. 여기서 민치 권력이 국정의 50%를 맡는다는 의미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국민발안 국민입법 방식으로 킹핀(Kingpin)과도 같은 중요한 핵심 입법을 만들어 대의정치인과 관료를 통제하고, 나머지 자잘한 것부터 꽤 중요한 법률까지 수없이 많고도 많은 법률은 국민의 공복인 대의정치인과 관료들이 감당케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국민이 국정의 50%를 직접 감당하기 위해서는, 국민주권위원회(국민주권센터)의 상설 운영이 필요한 것이다. 상설 국민주권위원회는 국민이 주인으로서 권리를 직접 행사하는 제4부로서, 한편으로는 견고한 지배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기존의 3부(입법, 행정, 사법부)를 감시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향도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①입법부에 대한 공화주의적 견제의 역할로서 국민주권 시민정치, 주민자치, 공론정치의 제도화와 이를 위한 예산과 운영 지원이다. 구체적으로 직접민주주의 3법(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의 헌법 개정, 주민자치권 헌법 명시와 주민자치기본법 제정, 주민원탁회와 시민의회법 제정이 요청된다.
②사법부에 대한 공화주의적 견제의 역할로서 시민법정과 재심법원 설치, 그리고 대법원장 선거제 등에 대한 제도적 예산과 운영 지원이다.
③행정부에 대한 공화주의적 견제의 역할로서 행정부의 시대착오적 행태와 기득권 카르텔(고시제도 폐지 등), 예산 낭비와 부정부패 감시에 대한 제도적 예산과 운영 지원이다.
광복 80주년인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광복 80주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 행사장이 인파로 붐비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민중의 자주적 주체건설 노선과 진보의 협업 노선
상설 국민주권위원회와 국민주권센터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첫째로, 구걸하듯 청원하지 말고 요구하고 쟁취하는 주체건설 노선의 정립이 필요하다.
우선 민(民)의 자주자립 조직으로 시민권력을 구축하며, 이재명 정부와 줄탁동시(啐啄同時)형 협치와 협업을 요구하며 쟁취해가야 한다. 1894년 당시 동학군은 조선 중앙정부의 교정청과 지방군현의 집강소 체제를 구축하며 촌락마다 자치조직인 접(接)을 건설하였다. 우금치 전투에서 당시 일본군의 선진적 총기기술의 위력에 무지했던 동학군 20만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오늘 한국의 촛불민주주의 사회정치혁명은 키보드(손가락)와 풀뿌리 대중조직 네트워크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촛불민주주의 빛의 혁명은 AI첨단문명 기기로 조직된 100만 1000만의 손가락 응원봉 혁명군(손봉혁명군)으로 진화발전하면서 그 전도를 개척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급부상한 영국의 혁신좌파정당 유어 파티(Your Party)는 이미 이걸 잘 보여주고 있다. 유어 파티는 극우 파시즘 정당의 부상을 막고 영국 정치판을 뒤집는 정치혁신을 위해 탄생한 온라인 기반 직접민주주의형 정치 결사체이다. 이 정당은 AI정책메시지를 통한 지역네트워크 조직과 온라인 정당체제를 가지고 전광석화 방식으로 정치혁신을 이루어감으로써, AI시대 직접민주주의 정치의 전형을 앞서 보여주고 있다.
2025년 8월 3일자 한겨레21은 ‘창당 발표 일주일 만에 60만 당원 가입…영국 좌파 신당, 극우 막을 희망될까’ 기사에서 “지지율 1위 독점 중인 영국개혁당… 영국 정치판 뒤집기 나선 신당 유어 파티”에 대해서 알리고 있다.
무릇 정치사회적 행동이 강력하려면, 온-오프라인이 기동전과 진지전의 하이브리드 행동으로 함께 춤을 추어야한다. 21세기 한국의 네오 교정청-집강소 체제가 필요하다. 상설 중앙 국민주권위원회와 시군구단위 국민주권센터 그리고 읍면동단위 주민총회/주민자치정부의 유기적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풀뿌리 대중들의 토대인 리통반/읍면동 풀뿌리 대중조직을 건설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구체화하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통합돌봄/인공지능 데이터 등을 매개로 한 10만여 개의 협동조합, 독서토론회, 원탁회의 등을 조직하고, 3500개 읍면동에 주민자치회(주민자치정부)를 건설하는 조직적 실천이 필요하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듯이,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 시기에 우후죽순 방식과 점(點)-선(線)-면(面) 확산전략으로 나아가면 빠른 기간 안에 가능할 것이다.
둘째로, 이재명정부-시민사회-풀뿌리 대중조직 그리고 지식진보-광장진보-풀뿌리현장 실천진보 삼자 간의 협치와 협업 노선의 정립이 필요하다.
오늘의 역사를 위해 역사의 가설을 동원해 보자. 고종이 탁월한 민본주의 개혁군주였고 대원군이 자신의 권력복귀를 넘어서 선견지명 있는 경세가로서 동학혁명세력과 3자 개혁동맹을 추진했더라면? 아마도 비운의 한국현대사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구적 근대’를 넘어서는 차원이 다른 ‘개벽적 근대문명국가’로 등장했을 것이다. 역사의 대전환기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이와 같은 역사의 가설이야말로 이재명정부-시민사회-풀뿌리 대중조직 3자 간의 협치 및 협업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알려주고 있다.
동시에 시민사회의 3층위 구조(지식진보-광장진보-풀뿌리 현장진보)간의 협업과 어깨동무 과정이 절실하다. 2025년 8월 27일(수)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 ‘풀뿌리경제 공동체발전 삼중혁신전략 제2차 위크숍’에서 허영구 마을공화국 지구연방스튜디오 대표는 시민사회 3층위 구조 간의 협업 방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①지식진보는 제도 설계, 정책 입안, 법제화 지원, 담론 생산을 맡습니다. ②광장진보는 대중적 캠페인, 집단행동, 사회적 여론화 역할을 담당합니다. ③풀뿌리 현장실천 진보인 골목/마을/지역공동체는 실제 주민참여와 실행력을 확보합니다. 즉, 지식진보가 ‘지도’를 그리고, 광장진보가 ‘함성을 모으고 길을 열며,’ 골목/마을공동체가‘ 발로 걷고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정부 시늉만 하다가 실패한 정부가 되었다. 진실로 바라건데,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여 무늬만 국민주권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명실상부한 국민주권정부로서 성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촛불민주주의 빛의 혁명을 수행하는 민관 협치기관인 ‘상설 중앙 국민주권위원회와 시군구단위 국민주권센터’를 곧바로 창설해야 한다. 민치 세력과 통치 세력이 어깨동무하여 ‘제7공화국’을 열고, ‘2025년 체제’구축의 대역사를 창조하는 잰걸음을 놓을 때이다.
좋은 냄새를 뜻하는 낱말 '향(香, Incense)'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 인류 문명사를 봤을 때 향은 단순히 '향기로운 물질'이라는 보통의 개념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와 역할을 확장시키며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거듭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 먼 옛날부터 향은 인간의 정신 세계와 영성(靈性)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향의 역사
인류는 언제, 어디서부터 향을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고대 인도일까, 이집트일까, 아니면 중국일까. 여러 설들이 있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만으로는 정확히 어느 곳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다만 기원전 4000년경 고대 인도에서 향을 피우는 도구인 향로가 발견되었다. 이를 근거로 그 시기와 장소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 향은 사람의 신체나 음식 또는 실내 공간의 나쁜 냄새를 없애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점차 신앙적 도구로 종교 의례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구약 성경에는 향과 향로에 대한 많은 기록이 나온다. 크리스트교에서는 향을 귀하고 좋은 것으로 여기고 신령스러운 의미로 사용해 왔다.
지금도 크리스트교 가운데 천주교, 동방정교회 등은 여전히 특별한 미사나 종교의식에서 향을 사용한다. 향로에 넣어서 태운 향은 예배의 공간을 정화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인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에는 산티아고 데 콤프스텔라 성당이 있다. 이곳은 예수의 12 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인 대(大)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가톨릭 3대 성지 중 한 곳이다.
이 성당에는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거대한 향로가 있다. 이 향로는 높이 1.5m 무게 53kg으로 청동으로 만든 다음 은으로 도금을 했다.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 기원은 중세 시대라고 한다.
미사가 시작되면 대성당 중앙돔에 매달린 도르래를 이용해 '티라볼레이로'라고 불리는 8명의 성직자들이 밧줄을 당겨 향로를 들어 올린다. 그런 다음 20m의 높이에서 시속 68km 속도로 좌우로 움직이며 성당 안을 향으로 가득 채워 순례자들의 영혼을 정화한다. 이 분향 의식은 콤프스텔라 대성당의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의례 중 하나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이슬람 경전 '쿠란'(Quran)'에도 향과 향로를 사용한 기록이 많이 있으며, 향이 신성한 의식이나 예배에 사용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경전에서 향은 신에게 드리는 헌신이나 예배의 한 형태로 묘사되고 있으며 천국을 오가는 매개체로 여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에도 연꽃 형태의 향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비천상이 조각돼 있다 ⓒ 임영열
유교에서도 분향은 중요한 의례 행위로 여러 의미가 있다. 제사나 차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는 조상에 대한 경의와 공경을 나타낸다. 또한 의식이 행해지는 공간을 정화하고 신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어느 종교에서나 향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특히 불교에서의 향은 모든 의례에 빠질 수 없는 공물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여섯 가지 공양물 즉 '육법공양(六法供養)'이 있는데 이는 향(香), 등(燈), 차(茶), 꽃(花), 과일(果), 쌀(米)을 말한다. 이중 향은 불단의 중심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공양물이다.
우리의 향 문화도 불교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인도에서 창시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래되면서 향도 함께 전해졌다. 4세기에 조성된 고구려 고분 안학 3호분 벽화 '부인도'에 향로를 들고 있는 여인이 묘사돼 있고 불교 색채가 강한 쌍영총 벽화에도 향이 타오르는 향로를 머리에 인 시녀가 승려와 여인들을 인도하는 '공양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에밀레종에도 연꽃 형태의 향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비천상이 조각돼 있다. 이처럼 불교가 전래된 이후 범종과 사리기(舍利器) 등 많은 불교 공예품이 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향을 피웠던 향로(香爐)는 조형과 장식이 뛰어나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24년 말 우리나라에는 361점의 국보가 있다. 그중에 향로가 6점이 있다. 백제에서 만든 것이 1점이고 나머지 5점은 고려시대의 것들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향로 중에서 국보로 지정되어 시대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 두 점을 감상해 보자.
아비 잃은 아들의 한이 담긴 '백제금동대향로'
▲1993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국가유산청
1993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읍 능산리에서는 추운 날씨와는 달리 고고학계를 뜨겁게 달군 세기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부여읍 능산리는 사비 시기 백제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7기의 왕릉과 귀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어 국가 사적지로 지정된 곳이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는 백제 후기 역사의 중요한 사적지로 매년 관람객들이 늘어났다. 이에 부여군청에서는 주차장 확장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현장은 고분군과 나성 사이에 있는 논이었다. 1차 매장 문화재 조사 결과 건물 터와 불탄 흔적, 금속 조각들이 나왔지만 특별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지표 조사는 별 소득이 없었고 공사는 그대로 진행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못내 아쉬웠던 발굴단은 한 번만 더 파 보자며 군청을 설득했다. 그렇게 발굴 작업은 계속됐다. 그러던 1993년 12월 12일 발굴 현장. 기와 조각과 물로 가득 찬 물웅덩이에 엎드려 고인 물을 퍼내가며 힘들게 작업을 하던 연구원의 눈에 뭔가 반짝거리는 게 발견되었다.
▲1993년 12월. 발굴당시 백제금동대향로의 모습 ⓒ 국립부여박물관
발굴단장이었던 신광섭 국립부여박물관장은 직감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보안 유지를 위해 인부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밤늦게 박물관 학예실장과 연구원들이 직접 불을 밝히고 언 손을 녹여가며 발굴 작업을 계속했다. 물웅덩이에서 기와 조각을 하나씩 걷어내자 진흙 속에서 뚜껑과 몸체가 분리된 뭔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견 당시 연구원들은 유물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박물관으로 옮겨와 진흙을 떼어내고 보존 처리를 끝낸 다음 세상에 드러난 유물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높이 64cm 무게 11.8kg의 완벽한 형태의 대형 향로였다. 청동에 금을 얇게 입힌 금동향로는 거의 온전한 상태였다.
향로는 크게 받침대와 몸통, 손잡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대는 한 마리 용이 고개를 들고 연꽃이 새겨진 몸통을 수직으로 떠 받치고 있다. 연잎 하나하나에 불사조와 물고기 등 각종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5인의 악사가 피리, 소금, 비파, 북, 거문고를 연주하며 호랑이 사슴등 동물들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제금동향로 받침대. 용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연꽃이 새겨진 몸통을 수직으로 떠 받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 국가유산청
산꼭대기에서 봉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편 채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산 아래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골짜기에 12개의 향 구멍이 뚫려 있다. 흡기와 배기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향연이 피어오르도록 하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향로가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박산향로는 이처럼 화려하고 입체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향로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향로가 발견되고 추가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 왕실의 절터였음이 밝혀졌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불상과 광배가 출토되었고 결정적 단서가 되는 '석조사리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백제 제27대 창왕(昌王·위덕왕)이 567년에 아버지 성왕(재위 523∼554)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절을 세우고 향로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위덕왕은 아버지 성왕을 그토록 추모했을까. 서기 554년 지금의 충북 옥천 관산성에서 신라와 백제 간 대전투가 있었다. 최전방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아들 창이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백제 성왕은 급히 아들을 구하려 가던 중 매복하고 있던 신라군에게 잡혀 비참하게 목숨을 잃고 만다.
▲손잡이 부분.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산아래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 국가유산청
▲향로의 뚜껑. 23개의 산들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5인의 악사가 피리, 소금, 비파, 북, 거문고를 연주하며 각종 동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국가유산청
자식을 구하려다 최후를 맞은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시신마저 온전하게 수습하지 못한 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평생을 슬픔과 회한과 죄책감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들은 왕위를 버리고 승려가 되려 했을까.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들 위덕왕은 능산리에 절을 짓고 부왕의 꿈이 담긴 최고의 향로를 만들어 향을 사르며 아버지의 명복을 빌었다.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운 향로를 바라보며 왜 눈시울을 적시는지 그 연유를 알 것 같다. 1500여 년 전, 전쟁 중에 아비를 잃은 '아들의 한과 염원'을 담아 하늘로 올라간 '천상의 향'은 흩어지고 없지만 향을 피웠던 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애달픈 사부곡을 부르고 있다.
신의 손을 가진 인간의 작품... '청자 투각 칠보문 향로'
▲국보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12세기 고려청자의 전성기 때 만들어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 시대에는 각종 불교 의례가 성행하였고 이에 따라 왕실과 귀족들은 다양한 형태의 향로를 사용했다. 한 곳에 세워 놓고 사용하는 거향로(居香爐)를 비롯해 걸어두는 현향로(懸香爐)와 손잡이가 달린 이동식 병향로(柄香爐)가 유행했다.
또한 고려의 하이테크 산업이었던 청자 산업의 발달과 함께 청자 향로가 등장했다. 특히 왕실에서는 동물이나 사물의 형태를 본떠서 만든 상형청자 향로를 많이 사용했다. 현재 청자 향로 3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 청자 투각 칠보무늬 뚜껑 향로는 고려청자의 정수라 할 만큼 아름답고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고려청자의 최전성기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향로는 높이 15.3cm 지름 11.5cm로 아담한 사이즈다. 당시 고려청자에 사용된 음각·양각·투각·상감·첩화·상형 등 모든 장식 기법을 총동원되어 만든 것으로 고려청자의 절정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뚜껑(좌)과 꽃잎을 첩화하여 만든 몸통(우) ⓒ 국립중앙박물관
▲향로의 뚜껑 ⓒ 국립중앙박물관
이 향로 역시 뚜껑과 몸체 그리고 판형 받침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이 피어오르는 둥그런 공 모양의 뚜껑에는 기하학적인 칠보(七寶) 무늬를 투각하였고 무늬가 교차하는 지점마다 하얀 백토를 상감하여 포인트를 주었다. 칠보는 불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보물을 가리킨다.
몸체는 틀에서 찍어낸 꽃잎들을 첩화 기법을 사용하여 하나하나 붙여 활짝 핀 연꽃 모양으로 표현했다. 꽃잎은 가느다란 잎맥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섬세함과 사실감을 더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향로의 하이라이트는 받침대에 있다.
넓적한 모양의 받침대를 작고 앙증맞은 세 마리 토끼가 떠받치고 있다. 귀여운 토끼의 눈에 철화로 검은 점을 찍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금방이라도 토끼가 깡총 하고 뛰어나올 것만 같다.
1000여 년 전,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만든 도공은 아마도 신의 손을 가진 인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이 아름다운 비취빛 향로의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받침대를 떠받치고 있는 토끼. 금방이라도 깡충하고 뛰어나올 것처럼 매우 사실적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메거진 <대동문화> 150호(2025년 9, 10월)에도 실립니다
곽재훈 기자 | 기사입력 2025.09.07. 12:10:11 최종수정 2025.09.07. 12:12:21
미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에서 이민자 단속을 벌여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450명을 구금한 사태에 대해, 외신은 이 사태가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두 가지 정책목표인 △미국 내 투자 확대를 통한 제조업 부흥과 △이민자 단속·추방 사이의 모순된 관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보도에서 단속작전이 이뤄진 공장 건설 현장은 "한국의 막대한 투자"로 지어지고 있었다며 "연방 이민당국이 공장을 습격하면서 비전이 불확실해졌다"고 논평했다.
NYT는 "트럼프 정부 내에서, 이 체포작전은 대통령이 압박하고 있는 '미 제조업 확장'이 그의 공격적 이민 단속과 충돌하며 이해관계 상충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태미 오버비 전 암참 수석부회장은 NYT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 '친구'로부터 "우리는 (미) 정부로부터 '우리의 돈은 원한다. 그러나 우리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혼란스런 메시지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 사건은 아시아 전역의 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chilling impact)"고 말했다.
NYT는 한미 간 통상협상과 이어진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의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하며 "미국에 그렇게 (공장을) 한꺼번에 많이 짓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건설 노동자가 필요"하지만 "이런 노동 수요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남부 국경으로부터 유입되는 이민 흐름을 차단했고, 최근 몇 달간 국토안보부는 현장 단속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NYT는 "비즈니스 리더들과 한미관계 건문가들은 이번 작전이 신뢰 훼손과 분노 조장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한국계 마크 김 전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이 "기록적 금액을 투자한 공장을 급습하는 것은 외국인 투자를 대하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영국 BBC 방송도 전날 기사에서 "이번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의 2가지 최우선 과제, 즉 미국 국내 제조업 육성과 불법 이민 단속 사이에 긴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또한 미국의 핵심 동맹국과의 관계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논평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미 양국은 8월 정상회담을 했고 한국은 대미 투자 확대를 약속했지만, 경제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7일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외국 기업 노동자에게 비자를 충분히 발급하지 않아 현지에서 바로 고용할 수 있는 숙련 노동자가 별로 없다는 '딜레마'가 지적되고 있다"고 전하며, 미국은 애초에 제조업 노동력이 부족한 편이어서 외국 기업이 새로운 공장을 지으면 인력 쟁탈전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닛케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단속 강화는 미국 경제활동에 이미 영향을 주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불법 이민이 폭넓은 산업을 지탱해 온 측면도 있다"고 했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연합뉴스
조은석 특별검사팀 직원들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앞에서 압수수색영장을 꺼내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의원총회 농성을 하고 있다. ⓒ뉴시스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곧 평화라 믿기 쉽다. 그러나 오늘날 전쟁은 총보다 사이버·법·언론·사회·문화에 대한 공격이 먼저다. 전선은 국경선이 아니라 국민의 의식, 사회 공동체를 향한다. 한 사회의 의지를 마모시키는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되고 종전선언도 없이 끝난다. 정상적이지 않은 현상이 반복되고, 뒤늦게 우리의 일상과 제도가 심각하게 손상된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 한국은 이 새로운 전장의 실체를 뼈아프게 체감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뒤틀려졌는지 깨달았다. 다행히 광장의 힘으로 윤석열을 탄핵하면서 위험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어섰다. 그러나 내란·외환을 가능하게 한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25년의 한국 정치 풍경은 극우 준동이 제도와 거리를 동시에 흔드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귀연 재판부가 보여주는 윤석열 내란 재판의 지연전술은 그 상징적 사례다. 4월 14일 시작된 1심에서 특검이 신청한 110여 명의 증인 가운데 법정에 선 이는 고작 19명에 불과하다. 한 달에 2~4번 열리는 느슨한 재판은 내년 1월 구속 만료와 맞물려 윤석열을 풀어주기 위한 시간 끌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장동혁을 당대표로 선출하며 스스로 극우화의 길을 택했다. 장동혁은 취임 연설에서 “모든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겠다”고 선언했고, 자신의 승리를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 낸 성과”라고 규정하며 극우 유튜브의 영향력을 인정했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1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가정적 주장"이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지난 3일에는 특검의 압수수색에 농성으로 대응했다. 국민의힘은 내란 수사를 '야당 말살, 정치 보복'이라고 규정하고 특검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온라인과 거리에서도 극우의 준동은 계속된다. 전한길을 비롯한 극우 유튜버들은 여전히 ‘탄핵 음모론’과 ‘내란 무죄론’을 퍼뜨리며 여론을 교란한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를 받아쓰고 재생산하면서, 당의 정치적 프레임이 극우 선전선동과 결합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동시에 태극기 집회 세력은 ‘대선 무효’, ‘윤 어게인’을 외치며 거리로 다시 집결하고 있다.
결국 2025년의 한국 사회는 법정과 의회, 언론과 온라인, 그리고 거리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하이브리드 전쟁에 직면해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본질은 ‘승리’가 아니라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이어가는데 있다. 국민이 서로를 불신하고 제도를 의심하게 만들면, 몇 발의 총포성만으로도 국가는 무너질 수 있다. 지금 한국 정치의 풍경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결과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2014년 마이단 사태를 짚어야 한다. 당시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극우 시위는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극우 민병대 신나치 세력인 아조프 부대가 급부상했다. 이들은 내무부 산하 국가방위군에 공식 편입되고 규모도 확대됐다.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친러 지역 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탄압이 뒤따랐다. 러시아의 든든한 우방이었던 우크라이나가 불과 몇 년 만에 적이 되었다.
중동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미사일과 드론이 오가며 민간인의 희생은 쌓여간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국면 이후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여전히 총성은 울리고 있지만, 평화와 전쟁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이것이야말로 하이브리드 전쟁의 특징이다.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고, 피해는 은폐되며, 전쟁은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런 변태적인 상황의 밑바탕에는 하이브리드 전쟁이 있다. 전쟁의 방식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전쟁 개념으로만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맥락을 놓치게 된다. 총성이 울리지 않으면 평화 상태라고 오인하게 하는 것, 정상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해도 무감각해지는 것이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작점이다.
미국이 하이브리드 전략을 선택한 것은 전략적 진화가 아니다. 오히려 군사 패권의 상대적 약화가 그 배경이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세계를 통제하던 시대가 저물면서, 미국은 사이버전·경제제재·여론전과 같은 비정규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미국의 생존전략이자 동시에 한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패권의 불안정은 세계 곳곳에서 극우 정치의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분열과 혐오를 자산으로 삼는 극우 세력은 하이브리드 전쟁의 토양에서 힘을 얻는다. 우크라이나의 아조프 부대가 그러했고, 유럽 각국의 극우 정당들이 그러하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란 사태를 옹호하는 정치 지도부, 사법부, 언론을 동원한 통치와 극우 유튜브 채널에 의존하는 정당의 행태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한 형태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로 넘길 수 없다.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전략적 대응은 요원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하이브리드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고 맥락을 짚어내는 일이다. 그래야만 올바른 과녁을 겨눌 수 있다. 분열과 혼란을 넘어 평화와 자주, 민주주의를 지켜낼 힘을 모을 수 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전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하이브리드 전쟁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기재부 “경제동맹 확보 위해 CPTPP 가입 검토”
FTA보다 더 강한 자유무역...‘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조건될지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9.03.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미국 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재검토에 나섰다.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무역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CPTPP 가입에 따른 경제적 실효성이 낮고 오히려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으로 국내 산업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중 의존도 높은 한국 수출...CPTPP 가입으로 다변화 모색
5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미 관세 협상 후속 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CPTPP 가입을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 3일 경제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사 입장국 간 경제동맹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한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에 편중돼 있는 한국의 수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CPTPP가 제시된 것이다. 2024년 기준 대미 수출 비중은 약 18.7%, 대중 수입 비중은 19.5%다. 특정 수출국에 집중된 만큼 수출 품목도 자동차·반도체·기계류 등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소수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일부 품목에만 집중될 수록 통상 리스크가 커진다. 관세뿐 아니라 미중 간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의 공급망 안정성과 미래 산업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CPTPP가 한국의 무역 다변화 전략에 있어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CPTPP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영국 등이 가입돼 있다. 자원과 시장을 갖춘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와 새로운 수출 시장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부는 가입 검토를 재개한 것이다. 여기에 모두 미국 관세에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연대해 공동대응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섞여 있다.
사실 한국 정부는 이미 CPTPP 가입을 오래전부터 검토해 왔지만 아직까지 결론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1년 CPTPP 가입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2022년 4월에는 'CPTPP 가입 추진 계획'을 의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과의 외교 갈등, 농어민 단체의 강한 반발 등에 부딪혀 가입 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CPTPP 가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정부 내부 검토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가입국 대부분과 FTA 맺은 한국, CPTPP 실효성 의문
국제 통상의 양축인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경제협력체라는 점에서 CPTPP는 수출 다변화를 꾀하는 한국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 CPTPP는 한국 수출 다변화에 큰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CPTPP 가입국 대부분이 이미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회원국인 호주, 캐나다, 베트남,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등 10개국은 이미 한국과 FTA를 맺고 있다. 이에 CPTPP 가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관세 인하나 시장 접근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중복 협정으로 인한 '무역 전환 효과'가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중이 배제된 경제협력체이지만, 미중 패권 전쟁에서 무관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CPTPP는 본래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주도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과거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무역 질서를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전략 아래 TPP를 추진했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탈퇴했다. 이후 협정은 지금의 CPTPP로 재편됐다.
미국이라는 핵심 축이 빠졌지만, CPTPP는 여전히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중국은 CPTPP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가입 신청까지 제출했으나, 일본이 적극 반대하면서 중국 견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환태평양 국가가 아닌 영국이 최근 CPTPP에 가입하고, EU(유럽연합)도 가입에 관심을 보이면서 CPTPP는 서방세력의 경제협력체로 기울고 있다. 미국이 빠졌지만, CPTPP는 여전히 미국의 환태평양 전략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기존 FTA보다 높은 자유무역 기준…국내 산업 부담
더구나 CPTPP는 한국이 기존에 체결한 FTA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과 규범 준수를 요구한다. 단순한 관세 철폐를 넘어, 투자·서비스·지식재산권·노동·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국내 산업·투자와 관련한 법을 개정해야 했던 한미FTA처럼 CPTPP도 국내 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PTPP는 회원국 간 상품 무역에 대해 평균 96.3%의 관세 철폐율을 요구한다. 이는 한국이 체결한 FTA의 평균 관세 철폐율 79.1%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농축수산물 분야에서 민감한 품목에 대한 보호 장치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은 개별국가와의 FTA에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해 협상에서 제외하는 등 보호장치를 두고 있지만, CPTPP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CPTPP는 검역절차를 비관세장벽으로보고 완화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은 FTA를 통해 대부분의 농산물을 개방했지만, 검역을 이유로 외국산 농산물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 CPTPP에서는 이 같은 조치들이 원천봉쇄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CPTPP 회원국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농업 강국의 값싼 농산물과 수산물이 대거 국내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CPTPP는 디지털 무역과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특히 위한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현재 수요가 높은 K-콘텐츠 산업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국내 산업이 새로운 규제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CPTPP는 공공조달 시장의 개방과 외국 기업의 참여 확대를 요구한다. 이는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특히 의료·교육·법률 등 일부 민감 서비스 분야에 대한 외국 자본의 진입 가능성도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비교적 경쟁력이 높은 한국의 제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의 수출 제한 사태를 생각하면 한국의 소부장 시장이 일본에 장악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현지 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공동언론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2025.08.23. ⓒ뉴시스
사실상 일본과의 FTA...'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가입' 조건화 우려
가장 큰 문제는 일본과의 관계다. CPTPP는 미국이 빠지면서 사실상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CPTPP 가입은 곧 일본과 높은 수준의 FTA를 맺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일본은 한국의 CPTPP 가입을 두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건 바 있다. 일본산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과거사 문제다. 과거 정부에서도 CPTPP 가입과 관련해 가장 큰 반대를 받은 부분이다. 만일 CPTPP 규범에 따라 일본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요구 등을 수용해야 할 경우 반대 여론이 재점화될 수 있다.
여기에 CPTPP는 만장일치로 가입을 승인하고 있어 다른 회원국의 요구사항도 들어줘야 한다. 각국 FTA에서 한국 정부가 막아놨던 보호장치들이 해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광장세력' 반대 재점화될 듯...더 강한 신자유주의가 해법일까?
정부의 CPTPP 가입 재검토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이끌었던 '광장 세력'의 큰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CPTPP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계부터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4일 논평을 내고 "기존 FTA에서 관세를 철폐하지 않았던 품목들은 쌀, 고추, 마늘, 양파 등 대부분 우리 국민의 주요 먹거리이자 농민들의 주요생산품목"이라며 "이마저 개방한다면 우리 농업과 생산기반은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CPTPP 가입은 자동차 몇 대, 휴대전화 몇 개 팔아보겠다고 우리의 생산기반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식량주권 없이는 세계화시대에 당당한 자립국가가 될 수 없다'는 남태령 시민의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입 검토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CPTPP 가입 재검토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기존 자유무역 질서는 흔들리는 가운데 대안으로 제기된다. 자유무역질서가 흔들리고 있으니 더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체제로 가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고 지적한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CPTPP의 문제 핵심은 국민국가의 권한을 시장 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를 피하고 싶으면 CPTPP를 해선 안 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권력이 국가 권력을 침해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미국의 제조업 몰락 등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반대 기조로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가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더 강한 자유무역체제는 또 다른 트럼프를 낳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다.
나 교수는 "우리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통상 정책을 하려면 각 나라의 정책적 자율성이 지켜지고, 보편적인 규범이 통하는 비지니스가 돼야 한다"면서 "관리되고 규범이 있는 자유무역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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