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가 15일 오후 1시, 미 대사관 앞에서 '한미-한미일 연합군사훈련 중단 촉구 선언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경준 기자
15일부터 제주 남방 공해상과 평택, 일본 전역에서 동맹국 간 대규모 군사훈련이 동시에 펼쳐지자,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전쟁연습을 멈춰라!”고 외쳤다. 자주통일평화연대와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과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미일 다영역 군사훈련 프리덤 에지, 한미 핵·재래식 통합 도상연습(TTX) 아이언 메이스, 미·일 연합훈련 레졸루션 드래곤이 같은 기간 겹쳐 진행되는 것은 “사실상 핵전쟁을 가정한 전면적 대중국 전쟁 연습”이라고 비판했다.
이 세 훈련이 시기를 맞춰 동시 진행되는 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 흐름에 한국이 깊숙이 편입되는 구조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 프리덤 에지에 F-35 전투기와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투입된 전례, 아이언 메이스가 핵·재래식 통합 개념에 따라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를 포함한 훈련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주통일평화연대가 15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앞에서 '신냉전대결 격화시키는 한미일 다영역군사훈련 프리덤에지 중단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경준 기자
하원오 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는 “프리덤 에지는 미국이 밝힌 대로 중국을 겨냥한 훈련”이라며 “우리가 왜 미국의 이익을 위해 굳이 재정을 들여 군사력을 낭비해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한미 동맹은 겉으로는 협력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의 뜻대로 해야 하는 불평등의 극치”라며 “전쟁 연습, 선제공격의 종합판인 프리덤 에지 훈련을 중단하고 군사적 대결 긴장을 낮추는 것이 평화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자주통일평화연대는 “한미일 군사협력과 정례적인 군사 훈련은 한반도를 미국의 전쟁기지로 내어주는 길”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국익과 민생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면 프리덤 에지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주통일평화연대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을 비롯해 울산, 창원(진해 미군기지 앞), 진주, 대전, 대구, 제주, 충남, 전남, 경기 평택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프리덤 에지 훈련 중단을 촉구했다.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한미일 훈련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며 “한국은 주변국과 갈등 없이 공존하며 상호호혜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연희 평화너머 공동대표는 “365일 중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은 340여 일 진행됐다”며 “이재명 정부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은 수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러 훈련을 통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기자회견에서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 중단 선언 운동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선언 운동을 통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한국군이 끌려 들어가는 현실을 알리고, 주권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장기적 시민 행동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한미·한미일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신냉전의 그늘이 짙어지는 동북아에서 평화와 자주를 지켜야 한다는 절실한 경고다.
자주통일평화연대가 15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앞에서 '신냉전대결 격화시키는 한미일 다영역군사훈련 프리덤에지 중단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가 15일 오후 1시, 미 대사관 앞에서 '한미-한미일 연합군사훈련 중단 촉구 선언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경준 기자
2024년 9월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생산기지를 현지지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노동신문]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보유국 지위는 불가역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 15일 발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빈주재 북한상설대표부는 14일 발표한 공보문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 지위를 변경시키려는 임의의 시도도 철저히 반대 배격할 것이며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국제사회 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북한은 “최근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 관리이사회 회의를 계기로 우리의 핵보유를 ‘불법’으로 매도하면서 ‘비핵화’를 운운하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을 또다시 감행하였”으며, “30여년 전부터 우리와 공식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 밖에 존재하고 있는 핵보유국의 내정에 간섭할 아무런 법적 권한도, 도덕적 명분도 없다”며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콕 찍어 비난했다.
특히, 북한은 “우리의 핵보유는 미국의 계속되는 핵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주권과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고 힘의 균형을 보장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서 세계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데서 핵심적이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급진적인 핵무력 증강과 무분별한 핵전파 행위로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고 국제적인 핵전파방지제도의 근간을 허물고 있는 미국의 패권행위야말로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중대 위협으로 된다”며 자국과 미국 간의 핵보유를 차별화했다.
또한, 북한은 “만일 국제원자력기구가 국제적인 핵위협과 그로 인해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국제안전환경에 대해 진심으로 우려한다면 핵전력 증강에 누구보다 집념하면서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방지 의무를 난폭하게 위반하고 있는 미국의 악성행위에 대해서부터 문제시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라며, 국제원자력기구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 도수가 날로 극대화되고 미국주도의 핵동맹 대결책동이 보다 적극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처하여 자위적 핵억제력을 부단히 제고해 나가는 것은 조선반도와 지역에서 핵전쟁 발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 우리 국가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믿음직하게 담보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으로 된다”며 핵보유국 지위를 거듭 강조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빈 주재 북한 상설대표부의 공보문에 대해 “북한이 IAEA나 미국의 압박에 대해 ‘법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국제 사회에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전략을 강화했다”면서 “과거 북한은 핵을 ‘자위적 억제력’으로 강조했지만, 이제는 ‘책임적인 핵보유국’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 [노동신문]은 13일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의 절대적 권위는 강대한 조선의 존엄이고 위상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것과 관련 “영활한 외교지략과 정력적인 대외활동으로 조선을 축으로 하는 세계 정치구도를 새롭게 정립했다”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이 공식 법화되어 우리 국가의 전략적 지위가 세계에 명백히 각인되고 핵보유국의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15일 통일부 구병삼 대변인은 “북한의 거듭된 핵 보유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 일일이 평가하지 않겠다”며 “우리 정부는 한미 그리고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포함하여서 여러 계기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한 바 있다”고 대답했다.
‘조리 로봇(로봇팔)으로 학교급식노동자의 안전을 보호하겠습니다.’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떠들썩하게 홍보하는 내용 중 하나다. 튀김과 볶음, 국 등을 조리할 수 있는 조리 로봇을 급식실에 도입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2023년 서울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이달 부산교육청도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 각 교육청은 조리 로봇 도입을 두고 “폐질환 예방 등 조리 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고 “조리 종사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학교급식실 내부에 있는 폐암 유발 물질(조리흄)을 외부로 배출하는 게 핵심인데 조리 로봇은 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조리 로봇 도입으로 인해 업무 경감 효과는 있는지, 실제 조리흄 노출 빈도는 낮아지는지에 대한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반복적인 폐암 산재를 막기 위해 학교급식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지금과 같은 막연한 장밋빛 청사진이 아닌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종합 대책이다.
관계 기관 책임 미루기 속 늘어나는 폐암 산재 ‘범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이유
지난 2022년,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급식 운영 촉구 기자회견에서 폐암으로 산재사망한 학교급식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2022.06.15 ⓒ민중의소리
일반 기업에서 지난 5년간 14명이 업무상 재해로 숨졌다면 어땠을까. 책임자들이 고개를 숙여 사죄하고, 서둘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에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저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돌아오는 현실이다.
지난 7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처음으로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산재 대책을 두고 공개 토론을 벌이며 이같이 말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이 예상할 수 있는 일을 방어하지 않고 사고가 나는 건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다. 아주 심각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 죽어도 할 수 없다, 죽어도 어쩔 수 없지 이런 생각을 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담하다.” 이 지적은, 비단 사고성 재해만이 아니라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과 같은 업무상 질병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문제가 처음 공론화 된 게 2018년의 일이다. 이로부터 7년이 지난 2023년에야 교육부는 ‘학교급식실 조리 환경 개선 방안’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주된 내용은 ‘환기설비 개선 및 지원’이다. 당시만 해도 “2025년까지 6개 교육청이 개선 완료 예정이고 나머지 11개 교육청도 2027년까지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개선이 완료된 시도교육청은 단 한 곳도 없을뿐더러, 평균 개선율(41%)보다 지나치게 낮은 지역도 많아 2027년 내 개선을 확신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나 전국에서 두 번째로 학교급식실이 많은 서울 지역의 경우, 1,002곳의 개선 대상 학교 중 고작 117곳만 환기설비 개선이 이뤄졌다. 그사이 전국 곳곳에서 폐암 산재로 고통받는 학교급식노동자는 늘어나고 있고, 지난달에는 1명이 숨져 폐암 산재 사망자는 14명에 이르렀다.
환기설비 개선은 정부도, 노동조합도 공통으로 인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대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속출하는 폐암 산재를 해결할 수 없어 종합적인 대책도 뒷받침돼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환기설비 개선조차 기약 없이 늦어지는 데다가 교육청과 교육부, 고용노동부는 서로에 책임을 미루며 ‘제 할 일은 다 하고 있다’는 식의 도돌이표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단독] 14명 숨질 동안 ‘폐암 유발’ 학교급식실 개선은 ‘미적’…서울은 고작 12%)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곳도, 실효성 있는 종합 대책을 주도적으로 마련하는 곳도 없다 보니, 각 시도교육감의 ‘의지’에만 달린 문제로 방치돼 있다. 시도교육청마다 관련 대책이 모두 제각각인 상황에서 학교급식노동자는 자신이 일하는 지역에 따라 안전한 환경이 보장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범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야 정부 차원에서 환기시설 개선을 책임지고 추진할 수 있고, 이를 포함한 예방 대책과 사후 조치들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이재진 노동안전국장은 “각 시도교육청마다 똑같은 게 아무것도 없다. (폐암) 검진 주기도, 검진 비용 지원도 그렇다. 똑같이 산재 승인을 받고도 사후 조치에 대한 부분도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환기시설 개선도, 피해자 지원도 관련 내용들은 어느 정도 다 마련돼 있다. 그것들이 권고 수준에만 머물러 있거나 각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구체적으로는 폐암 유발 물질인 조리흄을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계 법령상 ‘유해인자’로 규정해야 한다고 학교급식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조리흄이 유해인자로 지정될 경우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체계적인 대책 마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정부는 현재 조리흄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며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이민정 노동안전국장은 “결국 조리흄이 법적으로 관리돼야 할 유해 물질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청별로 노동조합이 협상을 통해 하나씩 관련 대책을 만들어가는 상황”이라며 “(환기설비 개선 등) 교육부 대책은 의무가 아닌 권고일 뿐이다.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교육부나 교육청 모두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종합대책을 세우고 최우선적으로 했으면 이렇게까지 지연되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조리흄 노출 빈도를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인 ‘인력 충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특히 학교급식실의 경우 다른 공공기관(65.9명)에 비해 급식노동자 한 명이 책임져야 할 식수인원(114.5명)이 두 배에 달한다. 일상적인 산재 위험과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학교급식노동자 신규 채용은 전국적으로 미달되고, 결원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를 해결할 적극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에 출석한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한 그간의 정부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1인당 식수인원’에 대해 묻자, 이 전 장관은 “정확한 숫자는 제가…(알지 못한다)”라며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장관이 생각하는 적정 식수인원을 묻는 말에도 “20~30명”이라고 답하며, 학교급식실 현실과 동떨어진 답변을 내놨다.
1년 넘게 계류 중인 학교급식법 개정안,
노동계·시민사회, ‘제2의’ 대국민 운동 돌입
작업복을 입은 학교급식조리사들이 지난 7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급식 노동자 건강과 안전 확보를 위한 학교급식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07.02 ⓒ민중의소리
국회가 입법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학교급식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현행 학교급식법은 ‘학교급식의 질 향상과 학생들의 식생활 개선’만을 목표로 하는데, 여기에 학교급식실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도 담아내는 것이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학교급식도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학교급식노동자의 건강 보장을 위한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을 핵심적으로 담았다. 또한, 교육감 산하 학교급식위원회에서 1인당 식수인원과 학교급식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에 대한 사안을 논의하도록 했으며, 학교급식노동자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자에 대해 징계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조항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22대 국회가 개원한 직후 발의됐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 보고서를 보면, 윤석열 정권의 교육부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안전과 건강 등에 관한 사항은 산안법 등 관계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어서”, “다른 노동관계 법령과의 이견 발생으로 혼선이 야기될 수 있어서”, “식수인원을 획일적으로 정하는 건 현실성이 결여될 수 있어서”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 정혜경 의원은 15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학교급식노동자들의 문제를 보면, 책임을 져야 하는 교육부는 노동부에 떠넘기고, 노동부는 교육부에 떠넘기는 전형적인 상황”이라며 “폐암 산재 문제가 드러난 건 오래됐지만, 이렇게 ‘핑퐁’하면서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고, 그동안 학교급식실은 다른 곳보다 5배 정도 산재율이 높은 상황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정 의원은 “교육부와 노동부 사이, 또 교육부와 교육청(등 여러 곳이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산재 근절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 진심이라면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하반기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고민정 의원도 지난 7월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아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고 의원의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학교급식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며, 교육부 장관에게는 학교급식노동자 등의 의견을 들어 3년마다 학교급식에 관한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나아가 교육부 장관이 1인당 식수인원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 및 조사를 시행토록 했으며, 그 결과를 공표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도 학교급식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 당장 오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전한 노동, 행복한 급식’ 100만 청원 운동 돌입을 선포하고, 학교급식법 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쓰러지는 현실에서는 무상급식도 지속될 수 없기에 ‘제2의 무상급식 운동’과 같은 대국민 운동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국가 시스템의 설계는 입법부 권한이고,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며 내란재판부 추진에 힘을 실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전국 각급 법원장들은 지난 12일 임시회의를 열고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냈다. 국민의힘이 사법부에 힘을 실으며 여권 견제에 나선 가운데 대다수 언론에서도 여권의 내란재판부 추진을 비판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4일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구속된 손현보 목사를 가리켜 “손 목사 탄압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두고 “손 목사 구속을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극우 개신교 세력과 연대하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장 대표의 이러한 행보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지난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를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나온다.
▲ 15일자 한겨레 만평
내란재판부 설치 “초거대권력 우려” vs “사법부 자업자득”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4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법적 근거를 갖고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면 어떻겠냐는 게 지금 국회 논의”라며 “별도 법원을 설치하자는 것도 아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 내란전담부를 설치하자는 것인데 이것이 무슨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가 전례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정책위의장은 “서울중앙지법은 2017년 지식재산전문재판부를 설치하고 2019년 부장판사 3인으로 구성된 경력대등부로 전환해 지식재산 관련 사건이 전담 재판부에서 처리되도록 한 전례가 있다”고 했다.
관련해 국민의힘은 이날 사법부를 압박하는 이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향해 “인식이 북한과 중국 수준”이라고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법부 상황이 여기까지 온 건 사법부 스스로 권력 앞에 누웠기 때문”이라며 “결국 멈춰 선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을 신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15일 사설 <법원 배제한 사법개혁, 어떻게 ‘재판 독립’ 가능하겠나>에서 여권을 비판했다. 이 신문은 “법안 내용도 내용이지만 전례없는 일방적 과속 행보에 대한 우려 또한 크다”며 “역대로 국회가 키를 쥔 사법개혁 관련 논의에서 사법부가 아예 배제된 사례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부를 배제한 채 여당이 단독으로 사법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어떻게 ‘사법 독립’을 말할 수 있나”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이 대통령의 인식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라며 “이러니 입법·행정에 이어 사법부까지 장악하는 초거대 권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이어 “이제라도 사법부를 참여시키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밟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동아일보도 사설 <“내란공범” “자업자득”…與 사법부 압박 지나치다>에서 “사법부에 대한 여권의 과도한 공세는 삼권분립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 국민의힘 비판에 대해 ‘삼권분립을 부정한다’고 공격했던 민주당”이라며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역시 법원에 대한 압박의 성격을 넘어 위헌 논란의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 15일자 경향신문 사설
반면 경향신문은 사법부 비판에 힘을 실었다. 사설 <조희대 사법부, 사법 불신 맹성하고 사법개혁 논의 임해야>에서 “사법개혁 논의가 과거와 달리 사법부가 배제된 채 이뤄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신뢰를 잃은 사법부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며 “내란 사건을 심리 중인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과 ‘조희대 대법원’의 대선 개입 시도 논란이 국민적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이리 크고, 사법부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면 법원장들은 먼저 자성부터 하고 입장을 밝히는 게 도리였다고 본다”며 “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병행하지 않는 사법 독립은 ‘법의 지배’가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법복귀족들의 지배, 곧 ‘사법부의 지배’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게 다수 국민의 시각이고 그것이 작금의 사법개혁을 추동하는 주된 문제의식이라는 걸 법원장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힘, 극우 개신교 손잡기
국민의힘 지도부가 손현보 목사가 담임 목사로 있는 세계로교회 예배에 참석해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 극우세력과 손을 잡는 행보를 보이자 비판이 나왔다. 한겨레는 사설 <국민의힘 극우 연대 기웃, 보수의 미래가 안 보인다>에서 “이런 움직임은 보수의 미래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며 “더 늦기 전에 돌이키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극우로는 보수를 다시 일으킬 수 없고 오히려 보수의 가치를 소멸시킬 뿐”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균형 감각은 보수의 자기 혁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5일자 경향신문 기사
보수 언론에서는 여야 지도부를 함께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여야 지도부 눈엔 강성 지지층만 보이나>에서 내란재판부를 추진하는 여당 지도부와 손현보 목사를 두둔하는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 신문은 “여야 강경 대치는 불과 1주일 전 이 대통령이 마련한 지도부 회동에서 악수하던 장면과 극명하게 대비된다”며 “양쪽 모두 내년 지방선거 등 정치적 유불리만 계산한 결과다. 상식을 지닌 국민은 안중에 없고 강성 지지층만 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련해 조선일보는 정치면 <개딸의, 개딸에 의한, 개딸을 위한 민주당>이란 기사에서 민주당원 500만명 중 1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개딸(개혁의딸, 강성 지지층을 가리키는 말)이 노사모나 문빠보다 당 장악력이 강해졌다며 “지지자들이 정치인 위에 군림하는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조선일보에 “강성 지지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몸통을 흔드는 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히 문 전 대통령은 ‘노무현 후계자’라는 정통성이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유산까지 없으니 그 양상이 더 심하다”고 했다.
▲ 15일자 조선일보 기사
여당 추진 ‘방미통위’법의 아쉬운 점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규제기구 개혁법안을 보면, 그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있던 유료방송과 채널사용 사업자 인허가 권한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로 가져왔다. 또한 기존 방송통신심의위는 이름을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로 바꾸고 위원장의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 <‘방미통위법’안, 막바지 수정 필요한 것들>에서 “법안을 보면 ‘방송미디어와 통신’에 관한 규제 등을 하는 곳이라고 돼 있지만 방송미디어가 무엇인지 정의조차 없다”며 “방송법의 방송과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가? 기존 방통위법에 나타난 ‘방송’이란 말에 방송미디어를 대체해 새 법안을 만든 것으로 보아 방송미디어는 방송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굳이 ‘미디어’를 붙인 긴 이름으로 모두가 불편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미디어통신위원회’를 제안했다.
위원장 임기를 대통령과 일치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강 교수는 “이 위원회는 이견 검토를 위해 중요 업무를 합의제로 하지만 그 외 모든 업무는 위원장이 일반 장관처럼 홀로 결정하는 독임제”라며 “정부 서비스가 대통령과 동떨어져 수행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진숙 현 위원장처럼 정부 기관장이 행정부 수반에 등을 지고 자기 정치를 하는 극단적인 일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방미통신심의위 위원장을 현재와 달리 공무원 신분으로 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강 교수는 “내용심의 기구를 정부 기구화하는 전도된 방향”이라며 “이렇게 한다고 지난 윤석열 정권 류희림 위원장 같은 사람을 막을 수도 없다”고 했다. 이어 “다수 야당이 인사청문회에서 반대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라며 “현재의 정파적 선임 방식을 고치는 게 먼저”라고 주장했다.
몽테뉴는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철학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학자라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얻은 사소한 경험에도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 사유의 바탕으로, 그는 일반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인간의 이상행동이 정신질환이거나 트라우마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말한 최초의 학자였다. 주술과 미신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중세 유럽과 프랑스에서 이러한 몽테뉴의 가설이 인간을 이해하는 단초의 시작이 되었다. 자신이 만든 모든 단체나 장소에 몽테뉴라는 이름을 넣어 활동하는 활동가가 있다. 그가 바로 '몽테뉴해외입양연대'의 배진시 대표이다. 그는 프랑스와 벨기에 등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해외입양인들을 돕고 있다.
제 19회 세계 실종아동의날 기념식장 앞에서 손 현수막을 들고 있는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
배진시 대표와 필자는 입양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만났다. 필자가 생후 80일 된 둘째 아들을 입양한 후, 2009년부터 공개입양 가족 단체인 한국입양홍보회 인천대표와 운영위원을 맡아 관련운동에 참여하던 중이었다. 말하자면, 직장생활을 하며 시민운동을 병행하고 있었던 참이다. 한편 배진시 대표는 그 무렵 프랑스 유학 뒤 귀국하여 프랑스 입양 한인들을 위한 통번역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유학중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던 시절 만났던 한인입양인과의 인연으로 귀국한 이후에도 관련 활동을 이어나갔다. 나와 비슷한 활동을 하면서 어쩌면 한두 번쯤은 마주쳤을 법도 하지만 서로가 인사를 나눌 기회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와 내가 만난 건 단 두 차례, 최근 들어서였다.
하지만 만남의 횟수로 의식이나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유튜브 채널 <몽샘책방>의 운영자로서 나의 신작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작가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났고, 시민언론 민들레에 이 기사를 쓰기 위한 인터뷰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한번은 서울시청 인근에서, 또 한 번은 불광동이었다. 그러나 첫 만남부터 그리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그와 내가 고민하고 활동하는 지점의 교집합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아원 출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톡방에 함께 머물며 그들의 아픔을 지원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를 불광동에서 만났던 이유는 그가 운영하는 해외입양인 쉼터 겸 몽테뉴 도서관이 불광동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외입양인들이 자신의 부모찾기(뿌리찾기)를 위해 한국을 방문할 경우 모든 경비를 자비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숙박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이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그는 불광동에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숙소를 자비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생부를 찾으러 온 프랑스 한인입양인 비르지니씨와 그의 딸.
1973년생 비르지니 씨가 프랑스로 입양 보내진 것은 5세 무렵이었다. 혼전 임신으로 아이를 낳은 그녀의 생부는 군 입대를 해야만 했다. 잠시 생모가 돌보았지만 미혼모의 몸으로 키우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생부의 집에 맡겨진 후로는 아버지의 여자형제들이 그녀를 돌봤다. 그러나 생부의 장래를 걱정했던 가족들은 그녀를 프랑스로 입양 보내고 말았다. 당시엔 대개의 서양인들이 그러하듯 그녀의 양모 또한 동양과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내가 너를 입양해서 가난한 나라에서 구해줬으니 고마워해라” 그녀의 양모가 비르지니 씨에게 한 말이었다. 이에 질세라 그녀도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당신의 딸이 되어주었으니 당신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라는 말로 응수했다. 이 대화는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물론 그 가정에 입양된 다른 동생에 비해 무뚝뚝한 비르지니 씨와는 성격상 큰 차이를 보인 것이 한 이유이기도 했다. 양부모는 애교 많은 동생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비르지니 씨가 배진시 대표에게 연락을 취해온 것은 2025년 5월경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생모를 만난 후 생부를 찾는데 도와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생부의 옛 가족사진을 찾아냈고 친척을 통해 충청도에서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생부는 이미 재혼을 한 상태였고 생부의 배우자가 그들의 만남을 거부했다. 겨우 설득 끝에, 지나가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고 감사의 사진 한 장 남긴 척하며 생부와의 소중한 재회에 성공했다. 그러나 재회현장에서는 그 흔한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만남을 허락하는 대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는 생부 배우자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은 사진 한 장만 부둥켜안은 채 헤어졌지만 이후 비르지니 씨를 그토록 괴롭혔던 조울증이 치료된 기적이 일어났다.
해외입양인 2세들에게 부모들의 상처는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다.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입양인 2세.
프랑스에서 의사로 일하는 어느 입양인은 한국에서 생부모를 만나 10여 년간 만남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연락을 끊기도 했다. 그 입양인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입양보낸 한국의 부모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며,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입양인, 특히 해외입양인이 갖고 있는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특히 입양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작을수록 한국을 향한 복수심이나 증오심은 더욱 단단하며, 한국에서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더욱 집착하기도 한다. 다만, 실제로 찾을 수 있는 경우는 전체 신청자의 1% 남짓에 불과하다.
처음 배진시 대표는 별도의 단체를 만들지 않고 기존 단체의 활동 지원을 생각하며 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체 운영자들은 그를 불편해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해외)입양인 지원활동이 나중엔 후원금을 받기 위한 보여주기식 사업으로 전락해 있다는 진실과 마주했고 기존 단체들과의 거리를 두며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나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단법인 형태로 운영하며 후원금을 받기 위해 사업을 부풀리거나 동일한 사업을 변조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그는 임의단체로만 운영하며 순전히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비용으로 단체를 꾸려간다. 초심의 진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채택한 방식이었다. 몽테뉴해외입양연대는 후원금을 일체 받지 않으며 참여하는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봉사에 임한다. 부모를 찾는 프랑스 입양인들의 통번역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부모를 찾고자 하는 해외입양인들을 직접 지원하기도 한다.
유럽의 문화와 사고방식 그리고 한국의 문화와 사고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에서 부모 친척을 찾아서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정체성에서 시작된다. 나는 누구인지, 왜 입양을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당시 부모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을 알아가면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탐험이자 자기치유이며 그런 방식으로 정신적 상처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를 대하는 한국의 문화는 많이 다르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부모 친척들은 자신의 삶이 현실적으로 침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과거도 부정하며 만남을 거부한다. 유전자 검사를 위한 소송 직전에서야 인정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어느 공공기관장은 면전까지 찾아온 자신의 딸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녀를 입양 보냈던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한다. 그나마 서류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입양아동의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아동권리보장원에 입양서류의 흔적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한편, 서류가 존재해도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유로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에 대단히 비협조적이다.
개인정보를 이유로 입양인의 생부 찾기에 미온적인 아동권리보장원(NCRC) 앞에서 기자회견중인 해외입양인과 배진시 대표.
80년대 후반까지 이른바 3저(低) 시대로 경제는 호황이었으며,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생자 수는 감소하고 있었지만 해외입양은 더욱 늘었다. 1971년 신생아 수는 102만 여명이었으나 그해 해외입양은 2천 명대였던 반면, 1985년 65만여 명인 신생아에 비해 해외입양은 8837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는 당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해외입양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책도 크게 작용했다. 경기장과 도로 그리고 선수촌 등 편의시설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한 궁여지책과 함께 해외 입양은 ‘아동 수출’로 여겨지며 본격적으로 산업화된 것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남한은 북한으로부터 ‘아기를 팔아 돈을 번다’는 비판을 계속 받았다. 이에 정부는 해외 입양 쿼터제를 도입해서 단계별로 해외 입양을 줄여나가고 1985년에는 전면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며 이 계획은 폐기되고 오히려 해외입양을 적극 장려하여 정부와 입양기관 모두 '아동수출' 활성화에 혈안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아동을 대량으로 ‘수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 범죄적 수법도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탁아동으로 고아원 입소한 아동들을 부모 없는 고아로 만들어 입양 보내는 등 서류를 조직적으로 위조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소아성애자들에게도 아이를 입양 보냈고, 입양된 아동들 중에는 국내에서 납치된 아동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죽은 아동의 신분으로 바꿔치기를 한 경우도 존재했으니 이는 경찰, 정부기관이 입양기관의 위조문서에 도장을 찍고 승인하는 등 협조 내지는 방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입양기관은 공식적으로 비영리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의 형태로 해외에서 수백만 달러를 받아내며 승승장구 했다.
1990년대 까지 우리나라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프랑스를 꼽는다. 프랑스는 기본적인 의식주와 교육문제가 정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복지국가이다. 사교육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지출되는 일상생활비가 그곳에서는 큰 돈 들이지 않고 해결된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나라이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적인 사상이 정신세계에 체득되어 있다. 가난한 나라의 아동을 입양하는 일을 ‘시혜’를 넘어 ‘구원’으로까지 생각하는 일종의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런 바탕 위에 입양이라는 일이 이루어진다. 입양부모의 입장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위한 베풂의 방식을 생각한다. 그러나 해외입양인의 관점에서 입양은 또 다른 생존의 영역이다.
프랑스에서 동양인은 동물원 원숭이 취급 받는 게 일상이다. 입양 초기부터 얼굴색 다른 이방인이 프랑스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는 지역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입양인들의 트라우마는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해외입양들의 자살률은 현지인의 3 ~ 4배에 달하며 약물중독이나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생모와의 통역을 위해 만난 리디와 남자친구 그리고 배진시 대표.
저출생을 걱정하는 대한민국은 지난해에도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이 58명이나 된다며, 배진시 대표는 "지금이라도 해외입양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아 수용시설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아원에 지원할 돈으로 원가정 보호에 힘쓴다면 미혼모에 대한 편견도, 시설에서 고통 받는 고아아닌 고아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조소연 교수는, “아동 1인당 고아시설에 지원되는 비용은 연간 360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또한 “이는 기초생활비와 시설유지비 인건비 등을 합한 금액으로 여기에 각종 추가비용 이를테면, 아동의 심리치료비, 교육비 등을 더하면 그 금액은 연간 5천만 원을 상회한다. 위탁가정의 경우 연간 1천만 원 내외로 지원되고 있으며 원가정(미혼모 가정 등)보호에는 연간 250만 원 정도만이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다”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이는 정부가 오히려 고아산업을 육성 지원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국가가 직접 지원하면 복지라고 할 수 있지만 고아원 운영처럼 민간에 위탁된 복지는 결국 산업화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아동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문화강국이며 K-민주주의의 상징인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 암울한 아동복지의 현주소이다.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을 나서며 한 시민단체가 준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얼굴 배너를 바라보고 있다. (공동취재) 2025.09.12. ⓒ뉴시스
미국 정부의 과도한 요구로 한미 무역 합의의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관세를 낮추려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8조원)를 내는 대신 한국의 수출 기업을 지원하는 게 낫다는 미국 경제학자의 주장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 경제학자인 딘 베이커는 연구센터 홈페이지에 미국의 비합리적인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을 지난 11일(현지시간) 연구센터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베이커는 “이러한 투자 약속의 성격이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트럼프가 설명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면 한국과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은 지난 7월 말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서 상호 관세와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등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투자 방식과 수익 배분 등에 대한 후속 협의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내밀며 합의문 서명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앞서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 서명한 일본은 미국에 5,500억 달러(약 76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 자금의 사용처는 미국 대통령이 직접 지명할 수 있도록 한 데다가 미국 대통령이 지정한 뒤 45일 이내에 지정된 계좌에 즉시 사용 가능한 달러화로 입금해야 한다. 또한 투자금이 회수되기 전까지 투자 수익을 양국이 50%씩 나누지만, 회수 이후에는 미국이 전체 수익의 90%를 가져가기로 했다.
한국과의 후속 협상에서도 일본의 합의가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 미국 상무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일본이 어떻게 했는지 봤을 것이고, 융통성은 더는 없다”며 “한국은 무역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이커는 미국이 15%로 낮춘 상호 관세가 25%로 증가하면 대미 수출은 125억 달러가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125억 달러 규모의 수출을 지키기 위해 3,500억 달러를 지불하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라는 게 베이커의 지적이다.
베이커는 “이런 협상안을 수용하는 나라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차라리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금액의 20분의 1만 사용해 수출 감소로 피해를 보는 기업과 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국가 경제에 훨씬 이롭다”고 강조했다.
또한 베이커는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합의를 지킬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언제든지 합의는 무효라며 언제든 추가로 더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지난해 12월4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누구보다 먼저 계엄 해제에 앞장섰다”며 불법계엄 관련 의혹 전반을 수사하는 내란 특검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특검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한 국민의힘 기조에 발맞추는 행보로 풀이된다.
내란 특검이 참고인 조사에 두 차례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전 대표에 대한 ‘기소 전 증인신문’을 법원에 청구한 지난 10일부터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당대표로서 누구보다 먼저 여러 의원, 당협위원장, 당직자들과 함께 위헌 위법한 계엄 저지에 앞장섰다”며 자신에 대한 조사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한 전 대표는 “자세한 경위에 관해 지난 2월에 발간한 책, 여러 언론 인터뷰, 다큐멘터리 문답 등으로 제가 알고 있는 전부를 이미 상세히 밝혔다”며 “이미 밝힌 그 이상의 내용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12일 “오늘 특검이 누구보다 앞장서 계엄을 저지했던 저를 강제구인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며 “할 테면 하라”고 했다.
한 전 대표는 “뜬금없이 특검과 편먹고 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민주당에 묻는다”며 화살을 민주당으로 돌렸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해 민주당 지도부일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을 사전에 거론한 것을 두고 지난 13일 “구체적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는 14일에도 “민주당이 근거 있는 확신을 갖게 된 어떤 구체적인 계엄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국민들께 공개하라”며 “민주당이 확보한 확신의 근거가 공개됐다면 계엄은 실행되지 못했을 것인데 민주당은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러지 않았는지 국민들께 말해야 한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특검을 향해 “계엄에 대해 제게는 더 들을 얘기가 없지만,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들어야 할 얘기가 많다”고 민주당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한 전 대표가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계엄 해제 정족수가 찼음에도 왜 바로 (해제) 표결 진행을 안 했나”고 문제를 제기하자 우 의장이 이날 페이스북에 반박하고 한 전 대표가 재반박하는 공방도 있었다.
이러한 한 전 대표 입장은 특검 수사에 대해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하는 국민의힘 태도와 비슷하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파(찬탄파)인 한 전 대표가 탄핵 반대파(반탄파) 위주의 지도부가 들어선 국민의힘과 특검 수사 국면에서 발을 맞추며 대여 투쟁에 우선 초점을 맞추는 양상으로 평가된다. 불법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가 불법계엄 진상을 규명하려는 특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데에도 유사한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부르며 정당 해산을 거론하는 민주당이 특검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조사에 응할 경우, 자신에게 덧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이 강화돼 향후 재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친한동훈계 조경태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특검의 참고인 조사에 응했다가 배신자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특검이 불법계엄 선포 당시 추경호 원내대표(현 국민의힘 의원)의 계엄 해제 표결 방해 혐의에 대해 최근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당이 단일대오로 맞선 분위기도 고려됐을 수 있다.
참고인 신분이라도 조사를 받고자 특검에 출석하는 모습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도 보인다. 검찰 특수통 출신인 한 전 대표는 2016~2017년 국정농단 특검에서 활동하는 등 특검 수사 생리를 잘 안다. 그는 자신을 겨냥한 특검 수사를 “정치적 선동과 무능”으로 규정하며 “언론을 이용한 압박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목조주택과 흙집 등 건축물의 다양성이 극히 적은 나라다.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 건축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도 고층 아파트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살아가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주거 환경은 얼마나 안전할까?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을 혼합해 만들어진다. 모래와 자갈은 천연물질이니 크게 문제 될 것 없다. 문제는 시멘트다.
중국산 시멘트와 비교해보니
지난 4월, 한국 시멘트와 중국의 시멘트를 비교해 보았다. 국내에서는 중국산 시멘트를 구할 수 없었다.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우편으로 몇 종류의 중국 시멘트를 구입했다.
먼저 중국산과 한국산 시멘트를 그릇에 각각 담았다. 시멘트 가루 색이 달랐다. 중국산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회색이다. 그런데 한국산은 누런색이다.
▲회색빛의 중국산 시멘트와 누런빛의 한국산 시멘트최병성
물을 부었다. 색 차이가 더 심해졌다.
▲시멘트 가루에 물을 부었더니 색 차이가 더 선명해졌다.최병성
건조된 콘크리트의 색 역시 차이는 여전했다. 색만이 아니었다. 건조된 국산 시멘트 옆면은 시간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는 이상한 얼룩무늬가 생겼다.
▲건조 후에도 콘크리트의 색 차이는 여전했다.최병성
색 차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건조된 콘크리트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중국산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는 냄새가 없다. 한국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모래와 자갈 없이 오직 시멘트로만 실험용 공시체를 만들었다. 건조 후 중국산과 한국산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 색 차이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실험용 공시체를 제작했다. 역시 콘크리트의 색 차이가 나타났다.최병성
밀폐용 체임버에 한국산으로 만든 공시체를 넣고 문을 닫았다. 3일 뒤 체임버 문을 열었다.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평생 처음 맡아보는 악취였다. 며칠 동안 코에서 악취가 떠나지 않을 만큼 끔찍했다.
새집에 들어가면 왜 심한 악취가 나고 눈과 귀가 따가웠을까? 그 원인이 화학물질로 만든 콘크리트 혼화제만이 아니라, 시멘트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다음은 중국산 시멘트로 만든 공시체를 체임버에 넣었다. 3일 동안 밀폐 후 체임버 문을 열었다. 한국산 공시체의 끔찍한 악취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놀라웠다. 악취가 전혀 없었다. 믿기지 않아 챔버 속으로 코를 들이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돌 내음만 살포시 느껴졌다.
▲체임버 안에 잘 건조된 공시체를 넣고 3일 뒤 문을 열자 한국산은 악취가 진동했지만, 중국산은 악취가 전혀 없었다.최병성
비싼 체임버가 없어도 한국산 시멘트의 악취 실험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한국산 시멘트는 동네 철물점마다 판매한다. 오가는 길에 공사 현장에서 두 컵 정도의 시멘트를 얻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비싼 체임버 대신 1만 원짜리 스테인리스 반찬통이면 콘크리트 악취 실험에 충분하다. 시멘트에 물을 부어 밥공기 크기의 작은 콘크리트로 만든다. 며칠 동안 잘 건조시킨 후, 스테인리스 밀폐 용기에 콘크리트를 넣는다. 2~3일 지난 후, 통에 코를 가까이 대고 뚜껑을 살짝 연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적인 악취를 맡을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주거 공간의 위험성을 알게 될 것이다.
▲스테인리스 밀폐 반찬통에 잘 건조한 콘크리트를 넣고 2~3일 뒤 뚜겅을 열고 악취를 맡아보라.최병성
시멘트의 인체 유해 중금속 분석 결과
중국산과 한국산 시멘트의 성분 차이는 어떨까? 환경부 공인 연구소인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한국산 1종류와 중국산 2종류의 시멘트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지난 6월 최종보고서를 받았다.
크롬(크로뮴)은 한국산과 중국산에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크롬을 제외하곤 납, 니켈, 구리, 비소 등의 유해 물질 차이가 컸다. 중국도 시멘트 제조에 철광석 대신 철슬래그 등의 비가연성 산업폐기물을 일부 사용하지만, 대한민국 시멘트 공장들처럼 엄청난 양의 산업폐기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멘트 성분 분석 결과, 한국시멘트와 중국시멘트의 유해물질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최병성
특히 불소의 차이가 컸다. 국산 시멘트의 불소 함유량은 1418mg/kg인데, 중국산은 588mg/kg과 337mg/kg에 불과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시멘트 제조에 쓰레기를 넣었기 때문이다. 각종 폐기물에 있는 불소 성분이 시멘트에 잔류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4년 12월 12일 토양환경보전법이 개정되어 불소의 토양오염 우려기준이 완화되었다. 주거지, 학교용지 등의 1주거지의 불소 기준이 400mg/kg에서 800mg/kg으로 완화되었고, 2지역은 400mg/kg에서 1300mg/kg, 3지역은 800mg/kg에서 2000mg/kg으로 크게 완화되었다.
토양환경보전법 제4조의2에 따르면, '토양오염우려 기준'이란, '사람의 건강·재산이나 동물·식물의 생육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토양오염의 기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환경부가 토양오염기준 중 불소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국민의 건강보다 오염된 토양 개발을 원하는 기업의 손을 들어 준 것이나 다름 없다.환경부. 토양환경보전법
우리는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 안에 살아간다. 그런데 시멘트에 함유된 불소가 1418mg/kg이라면 과연 국민 건강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며, 이 시멘트가 주거용 건축재로 타당한 것일까? 환경부의 해명이 필요하다. 시멘트에 쓰레기 사용을 허가하고 제대로 된 기준을 만들지 않은 환경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환경부의 갑작스러운 불소 기준 완화에 대해 많은 시민단체의 우려와 반대가 있었다. 불소가 다량 함유된 오염 토지 개발로 이익을 얻기 원하는 기업 등 건설업계의 요청에 의한 잘못된 법 개정이라는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는 법 개정을 강행하여 불소 토양오염 우려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중국 시멘트 공장을 가보니
한국산과 중국산 시멘트에 '색'과 '악취'와 '유해 성분 함량'에 큰 차이가 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시멘트 공장들은 시멘트 제조에 폐타이어, 폐합성수지, 폐플라스틱, 폐유 등의 온갖 가연성 폐기물을 비롯해, 비가연성 폐기물인 소각재, 하수슬러지, 오니, 심지어 인체 유해 화학물질 범벅인 반도체 공장의 슬러지 등도 재활용의 이름으로 시멘트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쌍용시멘트 영월공장에 폐타이어를 시멘트 소성로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시멘트 공장에선 이런 풍경을 보지 못했다.최병성
중국의 시멘트 공장들도 시멘트 제조에 쓰레기를 사용하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마침내 중국 청도의 한 시멘트 공장과 연결이 되었다. 자신들은 시멘트 제조에 쓰레기를 넣지 않는다고 답을 했다. 내게 공장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물었다. 지난 6월 말, 중국으로 날아갔다.
▲중국 시멘트 공장들도 쓰레기를 사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중국으로 날아갔다.최병성
마침내 중국 시멘트 공장에 들어섰다. 중국과 한국 시멘트 공장과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시멘트 공장 인근 마을 근처만 가도 시멘트 공장에서 내뿜는 역겨운 악취를 느끼게 된다. 시멘트 분진이 목에 이물감을 줘 불편하게 한다. 한국의 시멘트 공장 주변 마을 주택 지붕에도 시멘트 분진들로 가득하다. 비닐하우스에도 시멘트 가루가 달라붙어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런데 중국은 시멘트 공장 안에 들어왔음에도 악취가 없었다. 숨 쉬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중국 시멘트 공장을 돌아다니는데 악취는 물론 시멘트 가루가 쌓인 것도 볼 수 없었다.최병성
중국은 시멘트 공장 안에도 시멘트 가루가 보이지 않았다. 공장 안 입간판을 손가락으로 비벼보았다. 손가락에 시멘트 분진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시멘트 공장 마당의 입간판에 손가락을 비벼 보았으나 분진이 묻어 나오지 않았다.최병성
오래전 국내 한 시멘트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부공장장이 '설탕공장에 설탕가루 날리고, 시멘트 공장에 시멘트 가루 날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도 대한민국의 시멘트 공장들은 여전히 시멘트 분진을 뿜어내고 있다.
▲시멘트 분진을 당연하게 여기던 한국 시멘트 공장들은 오늘도 공장 곳곳에서 시멘트 분진을 마치 연기처럼 뿜어내고 있다.최병성
그러나 중국의 시멘트 공장들은 시멘트 분진 배출이 당연하지 않았다. 그 어디에도 시멘트 분진이 없었다. 공장을 돌아보는데, 길 따라 늘어선 태양광 가로등이 눈에 들어왔다. 분진이 없다는 의미다.
▲중국 시멘트 공장 안에 태양광 가로등이다.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한국 시멘트 공장과 너무 차이가 난다.최병성
중국의 시멘트 공장을 다녀온 직후인 지난 8월 초, 단양군에 있는 한일시멘트 공장 인근 마을을 찾아갔다. 태양광 전기 생산 여부를 물었다. 주민들은 분진에 덮여 전기가 생산되지 않아 아예 떼어버렸다고 답했다.
▲한국의 시멘트 공장의 분진으로 뒤덮인 태양광. 이렇게 청소해줘야 한다.최병성
중국 시멘트 공장에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다
시멘트 분진보다 내게 더 중요한 게 있다. 내가 중국까지 날아 온 이유다. 한국처럼 폐타이어, 폐합성수지 등의 쓰레기를 시멘트에 넣느냐고 물었다. 자신들은 쓰레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정말일까?
한국의 시멘트 공장엔 줄지어 들어가는 쓰레기 반입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공장 안에 하역을 대기하는 대형 쓰레기 차량들을 볼 수 있다. 거대한 창고 안에는 폐합성수지 등을 잘게 파쇄한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한국 시멘트 공장 창고 앞에 줄지어 대기 중인 대형 트럭들최병성
▲잘게 파쇄한 폐합성수지 등의 쓰레기를 가득 실어와 하역을 대기 중인 대형트럭들.최병성
▲시멘트 공장의 대형 창고마다 잘게 파쇄하여 반입한 쓰레기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쓰레기를 하역 중인 트럭이 보인다.독자 제공
중국의 시멘트 공장에도 한국과 동일한 원형 건물이 있었다. 나를 안내하던 공장 관계자가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여기까지라며 저 창고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시멘트 공장 안의 원형 창고. 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최병성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뒤에서 함께 따라 오던 좀 더 높은 분께 사정을 했다. '내가 바로 이것 때문에 중국까지 온 것'이라고. 다행히 허락을 받았다.
커튼을 열고 들어갔다. 어두운 창고에 보이는 것은 석탄이 전부였다. 창고 어디에도 한국처럼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형 창고 안엔 석탄만 있을 뿐, 어디에도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최병성
완성된 시멘트 제품이 나오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석회석에 온갖 쓰레기를 혼합해 1400도의 소성로에서 태우면 클링커라는 검은색의 돌덩이가 만들어진다. 이 클링커를 분쇄하면 시멘트 가루가 된다. 여기에 시멘트 가루가 쉽게 굳지 않도록 응결지연제를 첨가한다. 시중에 판매되기 전에 굳어버리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응결지연제로 발전소 등에서 나온 탈황석고나 자동차와 항공기에서 나온 폐부동액과 대형건물의 폐냉매 등이 사용된다. 폐부동액과 폐냉매가 인체에 유해함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래전 쌍용시멘트 영월공장 인근 하천이 녹색이 된 사건이 있었다. 응결지연제로 사용하기 위한 폐부동액이 하천으로 유출된 것이다.
▲2007년, 쌍용시멘트 영월공장에서 응결지연제로 사용하는 폐부동액이 유출되어 인근 하천을 오염시키는 사건이 있었다.최병성
중국 관계자에게 응결지연제로 무엇을 사용하는지 물었다. 탈황석고와 레몬슬러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과일 레몬을 짜내고 난 슬러지가 시멘트 응결지연제로 사용된다고? 믿기지 않았다.
응결지연제 창고로 갔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올렸다. 내 눈앞에 하얀 물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레몬 슬러지였다. 손으로 떠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향긋한 내음이 났다.
▲중국시멘트 공장이 응결지연제로 사용하는 레몬슬러지최병성
▲레몬슬러지를 떠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향긋한 내음이 났다.최병성
레몬 슬러지 사용 용도를 찾아보았다. 레몬 슬러지에 시트르산 등의 유기 화합물이 풍부해 시멘트 수화작용을 억제하여 응결지연제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레몬슬러지는 퇴비, 동물사료, 천연세정제, 발효제 등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한국은 인체 유해한 폐부동액과 폐냉매가, 중국은 먹어도 되는 레몬슬러지가 시멘트 응결지연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음은 중국 시멘트 공장 견학 중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이다. 안내를 따라 불쑥 들어간 건물에 커다란 물체가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클링커를 분쇄하여 시멘트 가루로 만드는 마지막 단계인 밀실이었다. 그런데 밀실에서도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안전모 착용은 강조했지만, 마스크는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시멘트 공장이지만 그 어디에도 시멘트 가루가 날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링커 덩어리를 분쇄하여 시멘트 가루를 만드는 최종 단계인 밀실. 밀이 돌아가고 있는데 시멘트 분진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최병성
▲ 시멘트 분진없는 중국 시멘트 공장의 밀실 모습. 중국시멘트 공장에 클링커를 분쇄하는 밀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밀실에 시멘트 가루가 없다. ⓒ 최병성
지금 미세한 시멘트 가루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밀실 안 어디에도 시멘트 가루가 없었다. 한국은 오늘도 시멘트 공장 곳곳에 시멘트 가루가 눈처럼 펄펄 날리는데 말이다.
▲지난 8월 쌍용시멘트 영월공장에 분진이 날리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시멘트 가루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최병성
중국 시멘트 공장 곳곳에 대기 오염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측정 결과가 놀라웠다.
▲중국 시멘트 공장에 분진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기오염 측정기. 결과가 놀라웠다.최병성
한국은 시멘트 제조 모든 공정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반면, 중국은 땅이 넓어 시멘트 소성 공장은 내륙에 있고, 소성 공장에서 만들어진 클링커를 분쇄해 시멘트가루로 만드는 공장은 해안가 항구에 분리되어 운영된다. 결국 두 개의 공장을 돌아보고 온 것과 같은데, 두 곳 다 청결함은 동일했다.
두 공장을 안내해 준 중국 시멘트 공장 고위 임원에게 "시멘트 공장이 이렇게 청결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놀라웠다. 1년에 3번 중앙 정부에서 조사를 나오는데, 단 한 번이라도 기준을 초과하면 공장 폐쇄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국의 다른 시멘트 공장들도 쓰레기를 사용하지 않는지 물었다. "자기 공장 계열사가 50여 개인데 국영기업인 경우 모두 같은 상황이며, 일부 사기업의 경우 폐기물을 좀 더 사용하지만 관리 상태는 다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중국 관계자의 '공장 폐쇄'라는 대답이 믿기지 않았지만, 한국의 시멘트 공장들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22년 7월 17일 노웅래 전 의원은 '한국의 시멘트 공장들이 지난 2021년 오염물질 배출 기준 초과 건수가 1700여 건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라며 환경부 자료를 공개했다.
▲1700건이 넘는 오염물질 배출에도 행정처분은 단 한 건도 없었다.노웅래
시멘트 공장을 위한 환경부의 특혜가 오늘 시멘트 공장의 환경오염을 부추기고,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꼴이 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 환경부의 변화를 촉구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각급 법원장들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9.12. 연합뉴스
사법부가 전국법원장회의를 통해 "사법 독립 보장"에만 목청을 높이고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나 조희대 대법원의 대선 개입 등 내란 공범에 가까운 일련의 작태를 벌인 데 대해서는 재발 방지책은커녕 일말의 반성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집권여당은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자초한 것임을 다시금 환기시키며 "사법개혁을 끝까지 거부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13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국법원장회의는 사법부의 역사적 과오와 현재까지 내란 재판이 장악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사법부 스스로가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백 원내대변인은 "사법개혁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정한 사법을 실현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다. 만약 사법부가 사법개혁을 거부하거나 이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국민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법부는 왜 사법개혁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는지, 왜 개혁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과거 군부독재 시절 민주 인사를 탄압하는 반인권적·반헌법적 판결이 내려졌고, 민생범죄에는 가혹하면서도 기득권 권력형 범죄에는 관대한 판결을 일삼았다. 불법 계엄 상황에서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사법부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다"면서 "또한 내란 수괴를 석방하고 내란 재판을 앞두고 휴가를 떠났으며, 한덕수를 비롯해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을 반복적으로 기각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특히 대법원이 대선 후보 교체를 시도했다는 노골적인 대선 개입 의혹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고 사법부 적폐를 열거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법부는 국민의 명령인 사법개혁에 단호히 나서야 하며, 윤석열·김건희의 국정농단과 내란 재판을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사회적 합의와 개혁 입법을 통해 시대적 과제인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반드시 완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시상에 앞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2025.9.12. 연합뉴스
정청래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조 대법원장을 직접 거명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 대표는 <조희대 "재판 독립 확고히 보장돼야…내란재판부 위헌 여부 검토">라는 TV조선 보도 제목을 언급한 뒤 "대선 때 대선 후보도 바꿀 수 있다는 오만이 재판 독립인가?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시동 걸고 자초한 거 아닌가?"라며 "다 자업자득이다.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이라고 일갈했다.
대법원이 터무니없는 졸속 심리 끝에 6·3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던 지난 5월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던 사태를 지적한 것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던 당시 '사법 쿠데타'를 조 대법원장이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정 대표는 또 <장동혁 "정청래, 조희대 겁박하고 나서…위험천만">이라는 SBS 보도 제목을 거론한 뒤 "노상원 수첩만큼 위험천만할까? 국민을 겁박하고 죽이려 했던 자들이 누구인지 국민은 다 안다"면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부터 하라. 패륜적 망언을 한 송언석도 사과하고"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사법부 말살 시도' 운운한 데 대해서도 "사법부 말살은 윤석열이 하는 짓 아닌가? 내란수괴 피고인 윤석열이나 재판 똑바로 받으라고 전하라"며 "내란세력은 반성과 사과가 없다"고 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4.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전국법원장회의 결과를 개탄하며 사법개혁의 당위성을 재확인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법개혁은 시대적 과제이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사법개혁의 열차는 국민과 함께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사장 출신으로 국회 법사위 소속인 이성윤 의원은 "조희대 '전국법원장회의', 사법개혁에 사법 참여 강조! 정치검찰 '전국검사장회의' 보는 듯하다"며 "헌법은 '사법왕국'이 아닌 '국민주권'을 원한다"고 했다.
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조희대, 지귀연은 '내란 공범'에 해당한다. 조희대, 지귀연을 그대로 두고 사법부 독립 운운하는 것은 깡패 짓을 하고도 벌 받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조 대법원장의 '사법정치'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 사법 불신을 풀어낼 실마리이며,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해법이 없다면 그 해법은 외부로부터 추진되지 않을 수 없다는 요지의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글을 들어 "한인섭 교수 주장에 틀린 말이 없다. 사법부는 주권자 시민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고 단언했다.
강득구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자마자 일정을 앞당겨 사상 초유의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윤석열을 지키기 위해 구속 기간을 시간 단위로 쪼개야 한다는 황당한 판결을 내린 지귀연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자들이 사법부 독립을 말한다.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다. 나아가 "사법부가 진정 독립을 원한다면 먼저 대선 개입과 정치적 판결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면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퇴하고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 의원은 "어제 전국법원장회의가 열렸다. 윤석열 정권 시절 내란과 국정농단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못하던 분들이 정작 자신들의 권한이 줄어들까 봐 집단행동을 하는 모습으로 비친다"며 "그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있는 권력은 없다. 내란특별재판부는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성역이 아니다. 과거 법기술자들이 정치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훼손했던 흑역사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고 전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5.9.12. 연합뉴스
앞서 대법관인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전국 각급 법원장들은 12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열고 여당의 사법개혁 추진과 관련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회의는 오후 2시에 시작해 약 7시간 반 만인 오후 9시 25분쯤 종료됐다.
이번 회의는 지난 1일 천대엽 처장이 법원장들에게 민주당 사법개혁안에 관한 소속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법원장들은 민주당 사법개혁 특위가 추석 전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의제에 대해 각급 판사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를 진행했다.
법원장들은 회의 뒤 보도자료를 내고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중대한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이므로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입장을 함께 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고법원 구성과 법관인사제도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 요소"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므로 그 개선 논의에 사법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대다수 판사는 '충분한 숙고 없이 진행된다' '사실심 기능 약화가 우려된다' '상고제도의 바람직한 개편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등의 이유로 단기간 내 대폭 증원에 우려와 함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를 통한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에도 대다수 판사는 우려와 함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법관평가제도 개선 논의에 대해서도 대다수 판사가 사법권 독립 침해 우려나 위헌성 소지를 들어 발의된 법안에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공식 안건은 아니었지만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를 두고도 논의가 진행됐다. 이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고 한다. '우려' '신중' 등의 우회적인 표현을 썼으나 사법개혁 주요 의제 대부분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장회의는 사법행정 기구를 이끄는 법원행정처장이 주재하기 때문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에 열린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사법부는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의 헌법 가치를 중심에 두고 과거 주요 사법제도 개선이 이뤄졌을 때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전례를 바탕으로 국회에 사법부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사법개혁에 사법부 의사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법원장들에게 미리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
전홍기혜 기자 | 기사입력 2025.09.13. 18:59:50 최종수정 2025.09.13. 18:59:51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전후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모스 탄이나 고든 창 등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인플루언서인 로라 루머나 트럼프의 오랜 책사이자 팟캐스트 '워룸'을 운영하는 스티브 배넌 등이 트럼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극우 인사들이죠.
하지만 한국과 미국 극우세력의 교류는 앞으로 위험한 징후입니다. 트럼프는 오히려 이념이 없습니다. 정치적 실익에 따라 입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러나 스티브 배넌, J.D. 밴스 등 트럼프 정부 안팎의 극우 인사들은 미국만 본인들의 원하는 사회로 '리셋'을 하겠다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유럽 극우들과 연계를 통한 소위 ‘극우의 인터내셔널’ 시대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힘의 숭배 및 타자에 대한 매우 배타적이고 혐오에 기초한 극우 문명론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에 한국이란 나라가 갑자기 들어온 셈입니다. 이들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죠."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한미관계를 흔드는 한미 극우세력
미 이민당국이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450명을 구금한 사태의 발단도 미 극우 정치인이 때문이었다. '여자 트럼프'라고 불리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조지아주 하원의원처럼 뜨고 싶었던 공화당 하원의원 출마 예정자 토리 브래넘은 자신이 이민당국에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25일 한미정상회담을 불과 3시간 앞두고 트럼프가 소셜 미디어에 "한국에서 정치적 숙청이 일어나고 있다"고 올린 글도 극우 정치인과 활동가들 때문이었다.
한미 극우세력의 활발한 교류는 양국 행사에 등장하는 연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5일과 6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빌드업코리아' 행사에 트럼프와 직접 소통하는 인물로 알려진 찰리 커크 터닝포인트USA 대표 등이 참석했다. 9월 13일 미국에서 열리는 트루스포럼에는 모스 탄, 고든 창, 전한길 등이 참여한다고 한다.
(이 인터뷰가 끝난 뒤인 현지시간으로 10일 오후 찰리 커크는 유타주 유타밸리 대학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청중과 문답하던 중 총격을 받아 숨졌다.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은 행사장에서 약 180미터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고성능 총기를 활용해 커크를 살해했으며,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이다. 트럼프는 "용의자가 사형 선고를 받기를 바란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편집자)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등 저서를 통해 국내에서 누구보다 트럼프와 미 극우 정치 흐름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글을 써온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초국가적 극우세력의 공조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안 교수는 10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조지아주 현대차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에 대해 "트럼프 정부의 모순된 두 개의 욕망이 충돌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내 투자 확대를 통한 제조업 부흥과 '마가' 지지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민자 단속·추방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정책 목표다. 이번 사태 발생 후 트럼프 정부 내에서 나오는 입장도 계속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는 7일 "합법적인 입국 통로를 열겠다"고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 국경차르(국경안보총괄책임자)인 톰 호먼은 같은 날 언론 인터뷰에서 현대차 공장에서 이뤄진 것과 같은 대규모 이민 단속을 확대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구금됐던 노동자 330명(한국인 316명, 외국인 14명)은 12일 오후 무사히 귀국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현재 언론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금 사태로 최소 2∼3개월 공사가 지연될 것이라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은 모두 한국 복귀를 원하는데 "그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모색해야 하는데 (업무에 맞는) 대부분 사람들이 미국에 있지 않다"고 곤혹스러운 상황을 설명했다.
▲이민단속으로 체포됐던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애틀란타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의 최대 관심은 내년 11월 중간선거 승리
문제는 트럼프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내년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이기 때문에 결국 트럼프는 '마가'의 정치적 요구에 우선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트럼프의 모든 관심은 내년 중간선거에 가 있습니다. 원래 미국 정치 체제는 한국의 기존 제왕적 대통령제와 달리 의회 중심의 대통령제입니다. 정치에서 '돈주머니'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예산 결정권이 의회에 있기 때문에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지면 트럼프는 지금보다 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텍사스주에서 무지막지한 게리멘더링(선거구를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을 통해 공화당이 5석을 더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군병력 투입을, 그것도 민주당 지지 성향인 도시들에 하고 있는 것도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행태다. 트럼프는 7일 영화 '지옥의 묵시록' 포스터를 패러디한 사진을 올리면서 불법 이민자와 범죄자 단속을 위해 시카고에 군병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고, 앞서 로스앤젤러스, 워싱턴DC에도 군을 투입했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상계엄'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트럼프는 비상대권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부시 행정부에서 9.11 테러 사건을 악용해서 '단일 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이라는 비자유주의적인 법학 이론을 동원했습니다. 헌법이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명시했으니,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도 안되죠. 견제와 균형을 강조하는 기존 미국 자유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적 이론을 활용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 버클리대 존 유 교수도 트럼프에 대해선 너무 나갔다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지금 트럼프는 단일 행정부론을 더 극단으로 밀어붙여 과거 극우 이론가인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이론에 가깝습니다."
트럼프가 내년 중간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전망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안 교수는 "미국 민주당도 트럼프 못지 않게 내년 중간선거에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에 매우 치열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 교수는 민주당이 선거 승리를 위해선 오바마 대통령을 만든 램 이매뉴얼과 같은 뛰어난 전략가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민주당이 힘을 잃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도전자 브랜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도전자 이미지는 누가 갖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인 트럼프가 갖고 있죠. 올해 11월 있을 뉴욕시장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33세 정치 신인인 조란 맘다니가 결정된 것도 파격적인 공약으로 시민들의 삶터를 재건하는 담대한 비전 및 기존 정치의 틀을 깨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안 교수는 저명한 정치사회학자 프레드 블록의 <삶터를 책임지는 사회>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미국 민주당이 AI와 기후 비상 사태 등 대전환 시기에 직면해서 시민적 통제의 관점에 기초한 기술의 공적 활용과 함께 번영의 새로운 자유주의 비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기존 산업사회의 관성을 넘어서는 의료, 주택, 불안정 노동, 재난 등 우리의 삶 전반에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관점과 정치적 용기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미국 민주당이 '주류 엘리트' 이미지에서 벗어나 '도전자 브랜드'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삶터 사회"나 AI와 기후의 삶과의 연결 관계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트럼프와 같은 극우 정치인들의 득세를 막고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J.D. 밴스, 스티븐 밀러...트럼프 2기 행정부의 위험 인물
안 교수는 트럼프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고리 권력' 중 눈 여겨 봐야할 인사로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을 꼽았다. 특히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강훈식 비서실장의 협상 파트너로 "숙청" 발언의 오해를 푸는 데 도움을 준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에 대해 "트럼프의 화를 돋구지 않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트럼프의 신뢰가 크다는 얘기다. 그 점에서 안교수는 강실장의 적절한 개입과 활약을 높이 평가한다.
트럼프 덕분에 40세의 젊은 나이에 부통령이 된 J.D. 밴스 부통령이 트럼프의 후계자가 될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마피아적 사고 방식을 갖고 있지만 이데올로기는 갖고 있지는 않은" 트럼프에 비해 밴스는 다르다는 것. 안 교수는 밴스 부통령이 지난 2월 유럽에 가서 "극우정당을 배제하는 관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연설이 유럽에 큰 충격을 줬다고 말한다. 밴스는 "현재 유럽의 가치가 미국이 방어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유럽 정치가 검열과 선거 취소, 정치적 올바름에 물들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밴스는 페이팔 창업자이자 벤처 투자가인 피터 틸 등 '페이팔 마피아'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관료제를 비판하면서 현재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사실상 거부하고, 정부 규제를 거부하면서 기술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려는 이들의 비전은 기존 네오콘과 같이 레오 스트라우스 철학자 등 극단적 보수 사상에 기초합니다. 스트라우스는 고대 전통 사회에 매혹된 퇴행적 사유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거로의 퇴행은 미래로의 기술주의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급진적 미래로의 기술주의에 대해 무지한 과거 네오콘에 비해 페이팔 마피아들은 훨씬 더 통찰이 탁월하고 그만큼 상당히 위험합니다. 비유하자면 21세기 버전의 스트라우스, 헌팅턴, 토플러가 결합된 디스토피아적 미래 비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을 넘어 유럽까지 자신들이 원하는 변화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밴스가 유럽에 가서 한 연설이 바로 이를 보여주는 것이죠. 자신이 현재 유럽식 민주주의보다 파시즘적 극우정당이 더 가깝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팔란티어, 파운더스 펀드 등 자신이 설립한 기업들을 통해 정보와 금융에 영향을 끼치고, 밴스 등 공화당 인사를 통해 정치까지 쥐락펴락하는 피터 틸에 대해 <뉴요커>는 "실리콘밸리의 가장 위험한 사상가이자, 가장 냉소적인 실천가"라고 평가했다. 미국 헌법에 따른 '연임' 규정 때문에 '3선'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트럼프의 후계자가 밴스가 될 경우, 미국은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밴스 부통령. ⓒAP=연합뉴스
안 교수는 트럼프 정부 내 또 다른 위험 인물로 이번 현대차 사태 배후라고도 할 수 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꼽았다. 트럼프 이민정책 설계자로 불리는 밀러는 1기 백악관에서도 '선임 정책 고문'을 맡아 이민 정책을 총괄했고, 2기 백악관에 부비서실장으로 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입성했다. 밀러는 지난 5월 ICE에 '하루 3000명 불법 이민자 체포'를 지시했고, 이런 무리한 요구가 현대차 사태를 야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1차 관문' 통과한 이재명 앞에 놓은 과제는...
'어른들의 축'(존 켈리, 제임스 매티스, 허버트 맥매스터)이라고 불리며 정치 경험이 부족하고 충동적인 트럼프를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인사들이 존재했던 1기 때와는 달리 '마가'적인 정치 신념에 투철한 '충성파'들로만 채운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예상보다 더 '매운 맛'이다.
트럼프가 돌아오자 반대편 '스트롱맨'들도 뭉쳤다. 지난 9월 3일 중국 전승일에 중국(시진핑), 러시아(푸틴 ), 북한(김정은)이 한 자리에 모인 장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안 교수는 "향후 몇년간 국제 질서는 정글"에 가깝다며 이제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에 앞에 놓은 외교적 과제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다행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와 첫 정상회담에서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잘했다는 사실입니다. 정상들간의 친밀감, 호감 형성의 중요성이 정상외교에 미치는 영향이 간과되는 측면이 있는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언론에서 정상들 간에 골프를 쳤다더라, 별장에 초대를 받았더라 등을 다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자이자 평생 현장에서 배운 감각으로 트럼프에 잘 대응했다고 봅니다. 트럼프는 동물적 감각이 있거든요. '숙청' 발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수세적인 모습을 보였더라면 이를 더 즐기며 한국을 흔들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명록 작성 때 쓴 만년필을 선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이번 방미 중 '탈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선언하면서 '안미경미(안보와 경제 모두 미국)'를 시사했는데,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을 자극하지 않을 수 있나가 중요한 과제다.
"냉정하게 말하면 미래 산업인 인공지능, 우주, 양자 등에서 아직은 미국이 중국에 훨씬 앞서나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곧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전망을 하는 견해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지금 비록 공격받고 있지만 미국 고등교육 전반과 실리콘밸리의 수십년간 형성과 그 힘을 깊이 이해한다면 중국의 미국 패권 대체론은 순진한 생각임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런 면에서 경제와 안보도 미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을 수 있죠. 현실이 바뀌면 새로운 테제를 만들어야죠. 그 과정에 중국, 러시아 과도하게 긴장할 말을 배제하고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외교에 바탕해 이재명의 가치와 미국의 자유주의가 결합된 독트린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게 국제관계에서의 공화주의적 사상의 복원과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공화주의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공존공영의 정신입니다. 제국주의 경험이 없고 오히려 식민지였던 한국은 국제적으로 매우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공화주의를 이야기하면 제3세계 상당수 국가가 믿지 않겠지만 한국이 이를 이야기하면 다릅니다. 한국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어느 나라에 가도 동변상련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고, 공존, 연대, 공화의 정신에 기초한 의료, 통상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창의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안 교수는 인터뷰 다음 날(11일) 미국으로 출국해 약 3개월간 스탠포드 대학 방문 교수로 머무를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 정치학이 전공이 그가 동부(워싱턴DC)가 아닌 서부(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이유는 오늘날 기술주의와 장기비상 시대에서 기존 민주주의론의 한계를 넘는 새로운 비전을 연구하기 위해서이다.
"트럼프보다 더 무자비하고 기술주의 비전으로 무장한 '급진 우파'가 차기 미국 정부의 '얼굴'이 되지 않으며 이들이 주도하는 극우 인터내셔널을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전 세계 민주주의자들이 함께 모여 고민하고 넓게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전홍기혜 기자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이날 촛불행동은 저녁 6시에 주한 미국 대사관 근처 대로에서 ‘내란청산 국민주권실현 157차 촛불대행진’을 주최했다.
본대회 사회를 맡은 김지선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는 미국이 우리 국민을 감금하고 아무런 사과도 없는 점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의 3대 특검법 개정안 야합 시도를 언급하며 “오로지 주권자 국민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싸워야” 한다며 “내란 청산 국민주권 실현의 한길로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시민들이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우리국민 체포감금 미국을 규탄한다!”, “조셉 윤 미국 대사대리 즉각 추방하라!”, “주권모욕 경제침탈 700조 투자 철회하라!”, “안하무인 주권모욕 트럼프는 지구를 떠나라!” 등의 구호를 우렁차게 외쳤다.
권오민 강북촛불행동 대표는 격문을 낭독하며 미국을 향해 “한미동맹 강화만이 한미 양국에 번영과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고무 찬양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돌아온 것은 강제 구금과 쇠사슬! 미국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리타향에서 땀 흘리던 우리 국민은 불시에 불법체류자가 되었다”라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와 미국은 들어라! 대한민국 진짜 주인, 주권자 국민은 깡패 국가 미국의 쇠사슬 동맹을 완전히 끊어버릴 결심이다. 선량한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 주권을 모욕하는 미국을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라며 “트럼프는 당장 무릎 꿇고 사죄하라!”, “트럼프와 미국은 주권자 대한국민, 그 존엄 앞에 무릎을 꿇어라!”라고 외쳤다. (아래 격문 전문)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미국은) 한미동맹 발전 운운하면서 수탈을 더욱 노골화하고 대한민국 군대를 제국주의 패권 유지를 위해 전 세계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함께 투쟁”할 것을 강조하며 “광장에 10만의 시민이 모이고 촛불이 모여서 6개월을 투쟁하면 미국을 꺾을 수 있지 않겠는가! 능히 승리할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김수진 남양주촛불행동 공동대표는 “미국에 아부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에게 미국에 공장 지으라고 압박하고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은 건 윤석열이다. 이런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국힘당”이라며 “미국에는 슬슬 기고 정부만 탓하는 국힘당은 해산하라! 노예근성 매국 집단 국힘당은 해산하라!”라고 외쳤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정진우 목사는 “(윤석열 정권에서) 패악질에 앞장섰던 이들 중에 유독 통일교니 신천지니 하는 이단 사이비들, 거기에 손현보니 전광훈이니 하는 극우 기독교 아류들, 사이비 무속인들이 많았다”, “분단과 독재 아래서 그들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능력이 아니라 패권국 미국의 뒷배” 덕이었다고 일갈했다.
이날 미국의 침공 위협을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이사벨 디 카를로 께로 주한 대사 대리도 발언했다.
카를로 대사 대리는 “미국 정부는 최근 전함 8척, 핵잠수함 1척, 그리고 군사 물품을 카리브해, 특히 베네수엘라 북쪽 해안에 증파했다. 이는 국제 관계에서 위협을 가하거나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분명하게 금지하는 유엔 헌장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미국의 행태는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국가에 대한 전례 없는 군사적 위협이며 이는 강제적인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무려 1,000건이 넘는 경제 제재로 베네수엘라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왔다”, “이제는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워 베네수엘라를 몰아붙이고 있다”라며 “하지만 마약 소비와 자금 세탁이 정작 만연한 곳은 바로 아메리카 북부, 미국이라는 것을 전 세계가 알고 있다. 따라서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려면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매년 발행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서는 마약의 원료인 코카잎이 재배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마약 밀매 카르텔의 우두머리”라는 미국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밖에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정치권에 국힘당과 타협하지 말고 국민의 명령에 따라 빠르게 정치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야 한다, 손익찬 변호사는 윤석열 내란세력에 동조한 사법부 기득권세력을 배제한 내란특별재판부를 시급히 설치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대형 현수막에 담긴 트럼프 대통령 얼굴 사진을 찢은 시민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카를로 대사 대리와 베네수엘라 대사관 관계자도 행진에 함께했다.
시민들은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 멈춰서 “협상압박 인질극 미국을 규탄한다!”, “안하무인 주권모욕 트럼프는 무릎 꿇고 사죄하라”, “한국 국민 모욕하는 조셉 윤 대사 대리 추방하라!”, “내정간섭 국제깡패 트럼프는 지구를 떠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 손으로 선택한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가 역사적인 시험대에 섰다. 오는 9월 15일, 제주도 남동쪽 바다에서 '프리덤 에지'라는 이름의 한미일 핵전쟁연습이 시작된다. 해상·공중은 물론 전자·정보전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다. 이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국민주권을 짓밟는 행위다. 이재명 정부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첫째, 이 훈련은 2023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기시다-바이든’이 억지로 쥐어짠 연합군사훈련이다. 훈련 참여는 전 정부의 종속적 전쟁동맹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미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이재명 정부의 약속이 빈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둘째,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정당화하는 끔찍한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2022년 안보전략에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명시했고, 토마호크 미사일 400기 도입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력 증강을 서두르고 있다. 한미일 연합훈련은 바로 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군국주의 노선을 정상화·합법화하는 최고의 무대다. 훈련 참가는 이재명 정부가 이를 인정하는 꼴이다.
셋째, 이 훈련은 한반도 방어가 아닌 대만해협 등지에서의 공격적 군사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 국방부와 주요 언론들은 이 훈련이 대만해협 분쟁 시 한미일 3국의 공동 대응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이는 한국을 원치 않는 전쟁에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덫이다.
넷째,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가 출범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등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한미일 전쟁연습 참여 한 번이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 된다. 2018년 훈련 중단이 불러온 평화의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평화는 무기가 아니라 신뢰의 축적에서 시작된다.
다섯째, 경제적 피해는 이미 입증되었다. 사드 배치 때 중국으로부터 받은 보복조치로 인한 피해는 최소 7.5조 원에 이른다. 이번 훈련이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한국 경제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국익우선, 실용외교’ 노선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국민의 뜻을 따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끌 것인가, 아니면 윤석열 정부의 실패한 전쟁노선을 계속해 갈 것인가. '프리덤 에지' 참여는 명백한 후자다.
이재명 정부는 즉시 한미일 연합훈련 참여를 거부하라. 대화와 평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갈 용기를 보여주라. 이것이 국민주권 정부가 취해야 할 당연한 행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때이다.
곧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검찰청'을 두고 검사들 사이에 말들이 많다. 허나 말은 있돼 울림은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공개되자 검사들이 내부망에 연이어 글을 올린다.
예를 들면 서울 북부지검 장진영 형사3부장은 "임은정 검사님이 가장 기뻐하실 듯해 앞으로 임 검사장님에 대해서는 '지공장님'이라고 불러 드리고자 한다"고 했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이 신설되니,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장'인 임은정 검사장은 '서울 동부지방공소청장'이 될 것이라며 '지공장'이라 조롱한 것이다. 장진영 부장은 "저의 검사직을 걸고 1대1 공개토론을 제안드린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법안들이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에 더 부합하는지"를 문제삼았다. 검찰청 폐지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장진영 부장검사는 윤석열의 내란 사태 이후인 지난 2월 14일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하는 국민이 40%이상"이라면서 선거관리위원회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장진영 부장검사 말대로라면 '검찰청 폐지'에 찬성하고 공감하는 국민이 55.9%니까, 검찰청을 폐지하는 게 맞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6월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 장진영 부장검사는 "부정선거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검증 대상"이라고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본인이 몸담고 있는 '검찰청' 역시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 개혁 대상이다.
차호동 대전지검 서산지청 형사부장은 수사권과 공소권 분리를 두고 "정치권 말대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 뭐하러 나서서 제 책임이 아닌 일을 책임지겠다고 하느냐"며 "저는 책임이 아닌 수사에 대해 유죄를 확신하고 공소 유지를 할 자신이 없다. 당연히 국가의 범죄대응 능력은 떨어지겠지만 그렇게 문제 있다고 말을 해도 법으로 만드신다는 데 뭘 어떻게 하느냐"라고 주장했다.
차호동 부장검사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기소할 수도 없는 수사를 해 왔던 경찰은 영혼 없이 무책임하게 수사해왔고, 기소된 사건을 판결하는 판사들은 자기들이 기소하지도 않은 사건의 유무죄를 '영혼 없이' 판단해왔다는 말인가? 궤변에는 궤변으로 답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수사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공소를 유지해 온 검사들은 무엇인가. 독재 정권 시절에 시국 조작 사건을 검사 갈아치워가며 기소했던 잘난 '검사동일체' 원칙은 어디에 내다 버렸나?
민주적 통제의 핵심은 '권한 분산'이다. 하지만 지금 검사들이 '검찰청 폐지'에 반발하는 논리는 '수사권+기소권 패키지'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검사들의 주장이 모두 다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이들의 최대 실수는, 검찰권 남용의 악습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명품 가방 수수 장면을 전국민이 봤는데, '법의 불비'를 이유로 무혐의 처리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결론이 특검 수사 몇달만에 '무혐의'에서 '기소'로 180도 뒤집혔을 때, 그 정의로운 검사들은 어느 게시판에 무슨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내란 현행범 윤석열이 국회와 선관위에 총든 군인을 보내 민간인들과 대처하는 끔찍한 상황에 대해서, 그 내란 수괴 윤석열 구속 일수 산정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산정한 법원의 석방 결정에 항고를 포기한 상황에 대해서, 정의로운 검사들의 입과 손가락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현직 검사라는 자가 '부정선거 여론이 40%니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준의 유튜버와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런 검사를 시민들이 믿고 검찰권을 맡겨야 할 이유가 과연 있는가? 윤석열 정부에서 검사 출신들이 1억 짜리 그림과, 장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매관매직' 의혹에 연루됐다. '검찰 정권'이 들어서니 천지가 개벽했다 생각했는지, 일말의 수치심마저 내팽개고 권력을 찾아 내달린 꼴이다. 영화에서 빠삐용은 "나는 살인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판사는 말한다. "당신을 기소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로." 빠삐용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난 유죄요." 그 빠삐용은 지금 검사들의 모습이다.
'정치 수사'가 검찰청 폐지의 원인이 됐다며 억울해하는데, 별로 동의하지 못한다. 검찰청 폐지의 결정적 장면은 '노무현 수사'도 아니고 '이재명 수사'도 아닌 '김학의 사건'이라고 본다.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은 교정할 기회를 걷어차고, 모순과 치부를 스스로 누설하며, 적반하장으로 정의를 헝클어 놓았다.
첫번째 장면은 경찰이 2013년 7월 18일 언론에 공개된 "동영상 속 인물은 김학의"라고 발표하고 특수강간죄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하자, 검찰은 2013년 11월 그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후에 재수사에서 밝혀졌듯, 이 사건은 단순 성범죄 사건이 아니었다. 여성을 물건처럼 '제공'한 인물(윤중천)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건에 연루된 고위 공무원의 경우 성접대는 곧바로 뇌물 혐의로 이어진다. 하지만 검찰은 김학의에 대한 압수수색도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다. 두번째, 2014년 "동영상 속 인물이 나"라는 여성이 나타나 김학의를 준강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2015년에 또 무혐의 처리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 4월 대검 진상조사위가 꾸려지면서, 김학의를 재수사하지만 김학의는 인천 공항을 통해 출국을 시도하다 붙잡힌다. 세번째 결정적 장면은 여기에서 정점을 찍었다. 김학의를 출국금지한 검찰과 법무부 간부를 되레 검찰이 기소한 것이다. 이들은 최근에야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 어수선한 틈을 타 김학의의 공소시효는 대부분 지나가버렸고, 구치소에서 걸어나온 그는 멀쩡하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검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성윤)"이라 불릴만 하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은 김학의 사건의 확장판이다. 윤석열이 만약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뒤집으려고만 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석열은 적반하장으로 마음에 들지 않은 수사를 한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항명 수괴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다. 검사 출신 윤석열의 목적은 '진상 규명'이 아니었다. 검사직을 평생 수행해 온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자에 대한 응징을 시도한 거였다. 그에겐 '공적 마인드'가 아니라 '특권 마인드'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지금 검사들의 태도가 그렇다. 행정 체계 개편이라는 공적 개혁에 반발하면서, '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자기고백은, 그들에게 '공적 마인드'라는 게 있었는지, 그것이 그간 어떤 형태로 존재했었는지, 근본적인 의심을 하게 만든다.
검사들은 지금 형사 사법 체계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한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주장은 왜 시민들에게 '특권에 찌든 검사들'의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지, 그들의 주장이 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휘발되고 마는 것인지, 왜 시민들이 검사들의 '아우성'에 철저히 냉담한지, 그 이유를 그들은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 78년만에 사라질 검찰청, 마지막 챕터는 김학의 사건이 될 것이고, 그 마지막 페이지에는 김건희 이름과 윤석열 이름이 올라갈 것이다.
지금 검사님들은, 변호사가 되시면 된다. 개혁은 더딘 법인지라, 공소청은 향후 10년 안에 안착될 것이다. 그 사이에 정의로운 법조인은 계속 양성되고 있을 것이다. 검사님들의 그 자리는, 당신이 있어도 되는 자리지만, 반드시 당신이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는 자리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강원 강릉)의 '베프(베스트 프렌드, 가까운 친구)'로 지목된 '황OO'씨(황 회장)는 목소리를 높였다. <오마이뉴스>는 '경기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조경식 전 KH그룹 부회장이 권성동 의원에게 48억 원을 줬다는데, 이를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나는 그 사람(황아무개)이 아니다" "나한테 왜 물어보느냐"라고 언성을 높이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황OO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된 건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연 '검찰개혁 입법청문회'부터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조경식 전 KH그룹 부회장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심문에서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을 압박해 허위진술을 강요했고, 그 결과 대북송금 사건이 조작기소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 과정에서 조 전 부회장은 '2024년 7월 권 의원과 접촉했는데 대북송금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 도피 중인 배상윤 KH그룹 회장 사건 수사 무마 조건으로 48억 원을 줬다'는 내용의 증언을 했다. 이 자리에는 황OO씨가 있었고, 권 의원과 조 전 부회장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법안소위가 연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경식 전 KH그룹 부회장. 이날 그는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이재명·이화영 엮으라 지시받았다"고 폭로했다. ⓒ 유성호
조경식 : 권 박사님의 베프가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에 황OO이라고요. 그 친구는 회사 친구고요. 그 친구의 소개로 만나서 일을 부탁드리면서, 저희 KH 부회장이 아시겠지만 적색수배자로 지금 캄보디아에 도망가 있습니다. 귀국하는, 구명을 위해서 뵙게 됐고 거기에 대해서 금전은 원래는 20억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그랬던 건데 황OO이가 중간에 끼어들면서, 롯데호텔에, 저 사진이 롯데호텔 로비입니다.
(황OO씨가 찍어줬다는 2024년 7월 권성동 의원-조경식 전 부회장 사진 공개)
정리하면 배 회장의 수사 무마를 조건으로 현금을 전달했는데, 이 사이에 황OO씨가 끼면서 20억 원에서 48억 원으로 액수가 커졌다는 것. 조 전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배 회장이 자진 입국해 들어오면서 이재명(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과 이화영 이름을 거론한 언론 인터뷰를 하면 형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도 더했다.
"내가 황OO이 아니라니까 왜 이러냐, 당신이 뭔데 취재하냐"
▲조경식 전 KH그룹 부회장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배성윤 KH그룹 회장 수사 무마 조건을 목적으로 48억 원을 줬다'고 주장한 가운데, 조 전 부회장과 권 의원 사이 매개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황OO씨. 취재진이 관련 질문을 하자 그는 "나는 황OO이 아니다, 김성동이다"라고 답했다. ⓒ 김지현
<오마이뉴스>는 '권 박사의 베프'라고 불리는 황OO씨를 수소문했다. 영월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황OO씨는 영월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맞다"라면서 "지역에서 많이 알려진 인물이고, 평소 권성동 의원과의 친분을 자랑한다고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영월에서 '황 회장'으로 불렸다.
12일 <오마이뉴스>는 황씨의 사무실을 수소문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황OO씨가 맞는지'부터 묻자 그는 "나는 황OO이 아니고 김성동이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경식이 권성동에게 48억을 줬다는 현장에 있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질문하자 그는 재차 "아니라니까 왜 그러냐"라면서 자리를 피했다.
기자가 따라 붙으며 '권성동' 이름을 언급하자 멈춰선 그는 "아니라니까 왜 이래요. 이 양반아. 엉뚱한 사람을 잡고 날 왜 이렇게 못 살게 굴어"라고 화를 냈다. '황OO씨 아니냐'고 재차 묻자 그는 "아니라니까 내가 김성동이지 황OO이냐"라고 외친 뒤 택시를 타고 떠났다. 이후 영월의 한 카페에서 황OO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내가 황OO이 아니라는데, 당신이 뭔데 나를 취재하냐. 계속 이러면 고발하겠다. 어떻게 여기까지 알고 왔느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과거 언론보도 사진과 현장 촬영 영상을 대조한 결과 그는 황아무개씨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에 영월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와 주변 인물에게 교차 확인한 결과 해당 인물은 황아무개씨라는 답변을 받았다.
조경식 전 부회장의 증언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주장' 단계에 머물러 있다. 48억 원이라는 돈이 건네진 것이 사실인지, 조 전 부회장은 48억 원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자금 전달이 사실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전달했는지, 조경식 전 부회장과 권성동 의원의 매개 역할을 한 황아무개씨가 알고 있는 사실은 무엇인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 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대북송금 사건에 이재명 대통령과 이화영 전 부지사를 무리하게 끼워 넣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황OO씨도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라고 자신이 아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될 일이다.
민주당은 대북송금 사건 조작기소 의혹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대응특위는 지난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검찰의 즉각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조경식의 증언대로 거액의 돈과 야당 정치인에게 누명을 씌우는 대가로 정치권과 검찰이 결탁해 사건을 조작했다면 이것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대의 조작기소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KH그룹은 조경식 전 부회장에 대해 "당사 임원이 아니다"라면서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해선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 조 전 부회장의 증언은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한 셈이다.
"'그 사람들'이 지나갈 땐 장사가 안되지. 외국인들이 딱 길 저기 안쪽으로 피해있는데 뭘..."
11일 명동 거리에서 10년이 넘게 노점상을 운영했다는 한 자영업자는 명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중 시위'에 대해 묻자 쓴 웃음을 지었다.
최근 서울 명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 단체의 '혐중시위'가 외국인 관광객과 국가 이미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의 유입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명동 일대가 활력을 찾아가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닐까 자영업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주한중국대사관이 위치한 명동 일대에서는 올해 초부터 중국을 비판하는 혐중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극우단체들은 최근까지 오성홍기를 찢거나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점점 과격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명동 한복판을 행진하며 확성기를 통해 자극적인 음악과 혐오 구호를 외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명동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혐중시위 행진을 두고 "최근에는 명동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는다"면서도 "그전에는 깃발 들고, 외국인들에게 소리 지르고, 중국을 욕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13년 동안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운영해온 한 자영업자는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 시끄러워서 짜증나고 불편하다. 너무 자주 (시위를) 한다. 소음이 너무 커서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외국인 관광객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외국인한테 창피한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실제로 명동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시위 현장을 만나고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중국 SNS인 웨이보에서 한 중국 네티즌은 "명동에서 쇼핑을 하다가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하는 소리를 듣고 무슨 퍼레이드를 하는 건지 보려고 나갔는데 '차이나 아웃'을 외치고 있더라"라면서 "바로 눈을 돌려 모른 척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같은 혐오 시위가 점차 회복세를 보이는 관광 산업에 자칫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5년 1~4월 동안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총 558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동기 대비 1.8% 증가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중국인 관광객은 157만명으로, 전체의 약 28%를 차지했다. 국적별 방문객 중 가장 큰 비중이다. 이달말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 정책이 시행되고, K-pop 등 한국 문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하반기에는 더 큰 증가세가 예상된다.
보수정치세력 위해 만들어진 '혐오'...국민 감정과 달라
극우단체들의 혐중 시위는 지난 탄핵 심판 과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근거 없는 '중국 선거 개입 음모론'을 내세우면서 본격화됐다. 특히 김민전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등 보수정치인들이 나서서 혐중 감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극우단체들의 혐중 감정은 보수세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혐오 감정인 셈이다.
중국의 '대북공정' 등으로 인한 나쁜 이미지가 저변에 깔려 있는 탓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한국인의 대중 인식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월 발표한 '대중인식조사'에 따르면 중국이 남북통일과 안보·경제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하락했다. 전국 남녀, 1,000명에게 중국이 한국의 안보에 주는 영향을 물은 결과, 중국이 위협이 된다는 대답은 60%로 나타났다. 지난 2023년(76%)과 비교하면 16%p(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남북통일, 경제에 위협이 된다는 대답도 각각 12%p, 20%p 떨어졌다.
반면 중국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은 33%로, 2023년 16%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또한 2023년에 비해 10%p 늘어났다. 극우단체의 혐중 시위가 한국 사회의 대중감정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중구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교수모임 및 친윤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반대하고 있다. 2025.02.27. ⓒ뉴시스
이 대통령 "혐중시위 '깽판'"...경찰, 강력제한 조치
최근 정부는 명동 일대 혐중 시위에 대해 강도 높은 제한 조치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혐중 시위를 문제로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해당 시위를 두고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깽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금은 관광객을 늘려야 하는데 특정 국가 관광객을 모욕하는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남대문경찰서는 시위 주최 측에 ‘마찰 유발 행위 금지’ 등의 제한 통고를 검토 중이며, 욕설·폭행 등으로 외교 사절이나 관광객과 마찰을 유발할 경우 현장 해산 또는 추후 집회 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복 위반 시에는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명동의 자영업자들도 행동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11일 오전 명동관광특구협의회가 "명동 일대 이면도로에서 시위를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남대문경찰서에 제출했다.
협의회는 폭력적인 혐중 시위가 공공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우려가 있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정한 금지 조항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명동복지회와 명동상인회 등과 함께 업무방해 등 민·형사상 대응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문을 접수한 경찰은 이를 참고해 주최 측을 상대로 '마찰 유발 행위 금지' 등의 제한 통고를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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