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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기득권층의 어깃장...이재명, 루즈벨트의 뚝심이 필요하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1/31 08:55
  • 수정일
    2026/01/31 08: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으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국인투자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그들(부유한 기득권층)의 증오를 환영합니다."

진보적 개혁에 반대하는 적대세력의 증오에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환영한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의 이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정치가의 어록에서 이 구절만큼 자주 인용되는 것은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들'이라고 지칭한 사람은 금융계와 독점기업을 주름잡고 있는 기득권층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은 그들을 '조직된 돈'(Organized money)라고 불렀지요. 마피아(Mafia) 같은 조직범죄를 가리키는 Organized crime이란 말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진보적 개혁정책은 그의 첫 임기 내내 기득권층의 집요한 방해에 시달렸습니다. 재선에 도전하고 있던 그는 이 연설에서 "그들은 나에 대한 증오로 일치단결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증오를 환영합니다(They are unanimous in their hate for me; and I welcome their hatred)"라는 말로 기득권층에 선전포고를 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개혁이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에 큰 이득을 가져다 주는 선의의 개혁이라 할지라도, 어느 누구에게는 반드시 손해를 가져다주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그 개혁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계층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 개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게 마련입니다.

주택 투자, 다른 투자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이유

루즈벨트 대통령은 다행히 진보적 개혁정책에 어깃장을 놓는 기득권층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미국정치에서 화려한 진보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그가 열어 놓은 진보의 전성시대는 1980년의 '레이건 혁명'(Reagan revolution)에 의해 그 끝을 보게 되었지만, 그 기간 동안 미국 사회의 평등성에는 커다란 진전이 있었습니다.

만약 루즈벨트 대통령이 기득권층의 증오에 겁먹어 적당히 타협하고 말았다면 진보의 전성시대는 열리지 못했을 겁니다. 미국 사회는 계속 불평등화의 길을 걸어 현대판 카스트(Modern-day caste) 사회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불굴의 의지로 개혁을 추구하지 않으면 개혁이 성공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정책에 대한 취임 전후의 발언을 향해 문제의 절박성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도 안이한 자세라고 비판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나는 "집을 투자나 투기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라는 발언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시장이 이 발언을 주택에 대한 투기를 막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을 때 얼마나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지요.

주택에 대한 투자를 다른 대상에 대한 투자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컨대 주식에 대한 투자가 주식 가격을 끌어올리는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걱정을 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주식 가격이 올라가면 경제에는 플러스가 될 테니까 오히려 환영해야 할 결과이기도 하고요.

또한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 혹은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로 이것들의 가격이 뛰어 오른다 해서 걱정거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격 폭등으로 인해 누군가는 큰 돈을 벌겠지만, 이로 인해 서민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 같은 끔찍한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택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투자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주택에 대한 투자는 경우가 다릅니다. 주택에 투자가 몰려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 서민들의 삶이 무너지는 끔찍한 결과가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의 투자 대상 중 주택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택 투기 문제 해결 나선 이 대통령에게 박수를

▲정부, 주택 공급 대책 발표정부는 29일 9·7 공급대책의 후속 조치인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공개했다.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 도심의 공공부지와 유휴부지를 적극 활용해 총 6만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과천시 과천역 인근 아파트의 모습. ⓒ 연합뉴스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의 근저에 어처구니없이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른 주택 가격이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오직 숨만 쉬면서 몇 십 년을 저축해야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겨우 하나 마련할 수 있는 현실에서 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주택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억제해 주택가격을 안정시켜야 할 이유는 자명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택가격의 폭등이 거품 붕괴로 이어져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게 될 것을 걱정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택가격 폭등이 집 없는 서민들에게 가져다줄 절망감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어처구니없이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른 주택가격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세금을 중과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부동산 투기억제책의 본질은 투자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투자에서 오는 수익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 수익률을 낮추는 유일한 방법은 세금 중과밖에 없고요.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세금 중과를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세금 내기를 싫어한다 해도 어떤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세금을 거둬야만 합니다. 가난한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게 만들려면 자신이 살지도 않는 집을 몇 채씩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득불 세금을 중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똘똘한 한 채"로 막대한 투자차익을 노리는 사람에게도 세금을 중과해야 하고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5월에 종료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보면 이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다주택자가 주택을 팔지 않고 버티는 것에 대비해 보유세 중과까지 고려하겠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세금을 중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종전의 발언을 번복할 의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스스로의 발언을 뒤집었다고 비난을 퍼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태도입니다(영어로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Better late than never"라고 말합니다). 나는 뒤늦게나마 주택 투기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팔 걷고 나선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용범 정책실장 발언, 굴복의 신호 되지 않기를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정부가 주택 투기 억제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자마자 기득권층의 십자포화가 맹렬하게 불을 뿜으리라는 사실입니다. 당장 눈 앞에서 몇 억 혹은 몇 십 억 원의 불로소득이 날아가 버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뒷짐을 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야당, 보수언론, 그리고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정부의 정책에 어깃장을 놓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적대세력의 증오를 오히려 환영한다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뚝심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불퇴전(不退轉)의 용기로 기득권층의 집단이기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양도세 중과 유예 중단 시점을 몇 달 늦추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김용범 정책실장의 최근 발언이 기득권층의 십자포화에 굴복하겠다는 신호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택#내집마련#이재명정부#공급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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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스카서 만난 한·일 국방, ‘수색구조훈련’ 재개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6.01.31 02:40
  •  
  •  수정 2026.01.31 04:48
  •  
  •  댓글 0
 
 
30일 요코스카 기지에서 만난 한.일 국방장관. [사진-국방부]
30일 요코스카 기지에서 만난 한.일 국방장관. [사진-국방부]

30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에서 만난 한·일 국방장관들이 “대한민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간 인도주의적 목적의 수색구조훈련(SAREX)을 실시하기로”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안규백 국방장관과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대신은 국군과 일본 자위대 간 인적·부대교류를 활성화의 일환으로 실시된 육군 3사관학교와 일본 육상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 간 교류, 공군 블랙이글스의 일본 항공자위대 나하 기지로의 첫 기착 및 블루임펄스와의 교류를 환영하면서 이같이 합의했다.   

한일 수색구조훈련은 1999년 시작되어 격년제로 실시되다 2018년 일본 초계기가 한국 구축함에 근접 위협 비행한 사건을 거치며 중단됐다. 지난해 11월 훈련 재개 예정이었으나, 한국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에 대한 중간급유지원을 일본 측이 거부하면서 보류되기도 했다. 

이날 두 장관은 엄중해지는 안보환경 속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한 양국 간 협력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한일·한미일 공조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한일 국방교류협력”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두 장관의 상호 방문 및 국방장관회담을 연례화하기로 했으며, AI·무인체계·우주 등 첨단과학기술 분야 협력 모색을 위한 국방당국 간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두 장관이 만난 곳도 주목된다. 

요코스카 기지는 미국 7함대가 주둔하는 곳으로, 유엔사의 일본 내 후방기지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함께 찾은 바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시위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14일 공개된 제57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성명은 “양 장관은 북한 등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유지하기 위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의 중요성에 공감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성명은 “양 장관은 프리덤 에지 훈련 및 다른 군사 교류들을 통해 3국의 대응능력과 태세가 강화되었다고 평가하였다”면서 “양 장관은 고위급 정책협의, 3자훈련, 정보공유, 국방교류협력 등을 통한 3국 모두의 지속적인 성과를 평가하고, 한미일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 개최한 신년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새해 방중 결과를 설명하면서 “지금 협의 중인 황해에서의 수색구조 합동훈련도 저는 해야 한다”면서 “(한·중 간의)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도 신뢰 제고도 가능하게 됐다”고 자평한 바 있다.

일본과의 수색구조훈련을 재개하면서 중국에도 같은 종류의 훈련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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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강국' 염원한 백범은 '효창운동장 철거'를 납득할까?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애국선열 추모와 스포츠 유산 공존이 진짜 문화 강국의 길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기사입력 2026.01.30. 08:49:16

내 올해 계획 중 하나는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다. 1982년에 개장한 잠실야구장이 올 시즌을 끝으로 사라지고 재건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성지(聖地)이자 학창 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원래의 잠실야구장에서 경기를 보는 건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다. 하지만 이미 2년 전부터 입장권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진 잠실야구장 직관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야구 올드 팬들이 많다면 난 잠실야구장 직관에 실패할 것이다.

느닷없이 잠실야구장 얘기를 꺼낸 건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잇달아 효창운동장 철거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국가보훈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효창공원 안에 위치한 효창운동장 철거와 공원화 검토를 지시한 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재차 국립공원화 방안을 강구하라고 보훈부에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김구 선생부터 많이 모셔져 있는데, 가끔씩 가보면 너무 음침하다"며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등이 안치된 효창공원 전체를 항일독립투사들의 성지로 새롭게 단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이제 효창운동장은 철거 기로에 섰다.

▲ 효창운동장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왜 효창공원에 축구장이 건립됐을까?

물론 효창운동장이 효창공원에 세워진 배경에는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1956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1960년 대회 개최권을 확보했지만 대회를 개최할 만한 국제규모의 축구장이 없어 부득이 하게 경기장을 새로 지어야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이 국유지였던 효창공원 안에 축구장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효창운동장 건립 계획은 초기부터 거센 반대에 휘말렸다. 이 계획에는 이승만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백범 김구를 비롯한 순국선열들의 묘소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축구장을 세우려면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묘소를 이장해야 한다는 당국의 계획이 발표되자 순국선열들의 유족들은 물론 언론과 국회까지 이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기장 건립이 시작됐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잦은 설계 변경으로 무리한 공사 진행이 이어졌다. 대회가 개막하기 전까지 관람석 주위의 마무리 공사가 채 끝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한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아시안컵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구름 관중이 몰린 한국과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불상사가 발생했다. '공짜 티켓' 때문에 효창운동장 관중 수용 규모보다 두 배나 많은 팬들이 몰려든 데다, 난간도 설치되지 않았던 부실공사까지 겹쳐 관중들이 넘어지고 2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한마디로 1960년 아시안컵 대회는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혼란스러운 상황의 축소판이었던 셈이다.

▲ 1960년 10월 효창시립운동장 개장식 ⓒ서울기록원

효창운동장이 품고 있는 한국 축구 역사

하지만 효창운동장에서 이룬 아시안컵 2연패는 광복 이후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는 계기가 됐다.

1961년 유고슬라비아와의 월드컵 예선전 경기가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이 경기는 광복 이후 한국 대표팀이 공산권 국가와 가진 최초의 경기로 기록돼 있다. 효창운동장은 크고 작은 선거에서 정치인들의 유세 장소로도 자주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1971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신민당 후보도 효창운동장에서 유세를 했다.

이후 효창운동장은 한국 고교 축구선수들의 땀과 꿈이 서린 무대로 스포츠 역사를 썼다. 주요 전국고교축구대회가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졌고, 미래의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유망주들도 이곳에서 성장했다. 학창 시절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던 팬들 역시 효창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응원전을 펼쳤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1983년 인조잔디가 깔리기 전까지 흙바닥에 먼지가 심하게 날렸고 접근성도 당시 고교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야구장에 비해 열악했지만, 누가 뭐래도 효창운동장은 한국 축구의 산실이자 요람이었다.

한국 축구가 세계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신화도 효창운동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했던 박종환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멕시코로 떠나기 전 효창운동장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했다. 멕시코 고원 지대에서 펼쳐질 경기에 대비한 이 특별 훈련은 멕시코 4강 신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 모두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 이전에도 효창운동장 철거는 자주 논의됐었다. 백범 김구 서거 50주년이던 1999년에는 효창운동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백범기념관을 건립하는 계획이 수립됐었다. 서울시의회는 효창운동장 철거를 뼈대로 하는 효창원 성역화 및 백범기념관 건립촉구 건의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1년에 1000여 건의 아마추어 경기가 열리는 효창운동장 철거에 반대의사를 냈다. "불과 1년 전에 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인조잔디를 새로 깔고 나서 운동장 전체를 철거하겠다는 건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은 대한축구협회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결국 효창운동장 철거 계획은 백지화됐고 백범기념관은 효창공원 테니스장 자리에 건립됐다.

효창운동장 철거 문제는 2005년에 또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는 효창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녹색 광장과 백범 광장 등을 조성하려고 했다. 국가보훈처는 당시 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만들어 이 공간을 애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의 장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독립운동가 묘역이라는 효창공원의 성격과 맞지 않는, 대한노인회중앙회, 노인복지관, 반공위령탑, 배드민턴장과 체력단련장 등의 이전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계획도 체육계와 효창공원 인근 주민 등의 반대에 부딪쳐 좌초됐다.

2019년에 서울시와 국가보훈처는 '효창 독립 100년 공원 구상안'을 내놓았다. 이 계획은 효창운동장을 존속시키는 대신 독립운동가 묘역을 가로막고 있는 경기장 스탠드와 조명탑 등 일부 시설만 없애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서울시민과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 모두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 1983년 10월 효창구장시설공사 ⓒ서울기록원

스포츠 유산으로 남아야 할 효창운동장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진 뒤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건물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만 존재할 뿐, 내부 동선이 복잡하고 새로운 콘텐츠가 부족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관객 유입 효과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이다. 자연스레 주변 상권도 침체되고 있다. 만약 동대문운동장이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효창공원에 위치하고 있는 효창운동장도 이 같은 관점에서 공존의 모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추모 공간에 더 많은 시민들을 찾게 하려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는 벤치, 인근 주민들이 조깅을 할 수 있는 길, 동호인들이 공을 차는 축구장이 함께 있다고 한들, 추모의 의미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축구도 하고 가족들과 나들이도 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할 수 있는 '복합 공간' 말이다.

효창운동장 부근에는 이봉창 의사 동상이 폭탄을 던지는 모습으로 서있다. 축구장 바로 옆에 의거하는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마다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은 이미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승만의 불순한 의도로 건립된 경기장이라기보다,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하는 경기장이라는 느낌이다.

한국은 이제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문화 강국이 된 한국에서 독립운동가 묘소의 성역화를 위해 지난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효창운동장이라는 스포츠 유산을 철거하는 게 타당한지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럼에도 굳이 효창운동장을 철거하면, 한국에서 스포츠 유산은 문화유산으로 대접받을 수 없는, 홀대의 유력한 근거가 될 것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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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폭했는데, 난 못 했어요”…26살 북한군이 말했다

입력 2026.01.30 07:00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북한군 참전 1년’ 우크라이나는 지금?

김영미 PD가 경향신문에 전한 취재기

이토록 무참한…러-우전쟁 4년의 ‘참상’

다큐앤드뉴스코리아 제공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4년 말. 우크라이나군은 격전지 쿠르스크에서 적군의 시신을 수색하던 중 한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편지에는 한글로 ‘그리운 조국’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말로만 떠돌던 북한군 파병설을 증명하는 부정할 수 없는 물증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이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이 흘렀습니다. 전력을 강화한 러시아는 공세를 높였고, 북한군은 첨단 전쟁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고통은 더 길고 짙어졌습니다. 오늘은 북한군 참전 1년을 맞아 우크라이나를 찾은 김영미 국제분쟁전문 PD가 경향신문에 보내 온 생생한 취재기를 전해드립니다. 김 PD가 북한군 포로 2명을 인터뷰한 기록도 함께 담았습니다.

“북한군, 생포하려니 자폭하더라”

북한군이 투입된 쿠르스크는 러시아의 농업지대로,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과 원전이 위치한 요충지입니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8월 최정예부대를 앞세워 쿠르스크를 점령했습니다. 허를 찔린 러시아는 북한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한쪽이 침공을 받으면 다른 쪽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돕는다’는 조약을 맺고 있었거든요. 2024년 10월 러시아에 도착한 북한군 1만3000명은 훈련을 받고 같은 해 12월 쿠르스크에 배치됐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70여년이 넘도록 대규모 교전을 치러본 적 없는 북한군은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군은 드론전에 적응했습니다. 러시아는 북한군에 전자전 장비와 드론 사용법을 가르쳤고, 나중에는 북한군이 직접 드론을 운용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을 질리게 만든 건 북한군의 ‘독기’ 또는 ‘광기’였습니다. 부상당한 북한군은 우크라이나군이 접근하면 수류탄 핀을 뽑아 자폭하기 일쑤였습니다. 생포되자 스스로 팔을 물어뜯어 숨진 이도 있었습니다. ‘포로가 되느니 자살하라’고 철저하게 세뇌당했기 때문입니다.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북한군을 앞세워 러시아는 2024년 4월 쿠르스크를 탈환했습니다.

‘미사일 오나’ 앱으로 확인하는 일상

북한은 러시아에 단거리 탄도미사일(KN-23)도 무더기로 제공했습니다. 명중률이 떨어지던 북한 미사일은 러시아 기술자들의 보완을 거쳐 더 정밀하고 강력해졌습니다. 북한군이 현대전에 익숙해지고 있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계자는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100만 대군을 훈련시키는 교관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은 용맹하고, 잘 훈련됐으며,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적을 갖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큐앤드뉴스코리아 제공

북한군의 강화된 전력은 우크라이나 민간인까지 위협했습니다. 평범한 주택가에 북한제 미사일이 쏟아지고 있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시민 나탈리아(81세)는 “부엌에서 죽을 끓여 남편에게 건네려는 순간 미사일 파편들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며 “집 전체가 통째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미사일 때문에 공포에 떱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공습경보가 울리자 시민들은 바로 휴대전화를 열었습니다. 앱을 통해 미사일이 어느 지역으로 날아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사는 곳으로 미사일이 오고 있다면 물과 휴대전화를 챙겨 대피소로 이동한 뒤, 공습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버티는 게 우크라이나의 일상입니다.

“나는…자폭 못 했어요”

지구 반대편에서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김영미 PD는 우크라이나군에 잡힌 북한군 포로 2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최근 MBC <PD 수첩>에도 나왔던 그 인터뷰입니다.

북한 체제의 세뇌는 강력했습니다. 포로 김모씨(26)는 “다른 사람은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다 자폭했는데, 나는 수류탄이 떨어져 자폭을 못 했다”며 “살아 있는 게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기만전술에 걸려 생포된 백모씨(24)도 “명색이 조선군인데 적군의 포로가 돼 살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세뇌만큼이나 무서운 건 전쟁터의 참상이었습니다. 김씨는 “그렇게 피비린내 나는 살벌한 전투는 처음 목격했다”며 “온전한 시체가 없다. 온몸이 찢어지고 절단된다”고 했습니다. 백씨도 “제 나이 또래들, 말 한마디 못 하고 머리에 드론 폭탄을 맞아 그 자리에서 다 전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북한군은 정말 죽음에 초월했느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같은 사람인데 죽고픈 사람이 어디 있고 목숨을 그렇게 쉽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다큐앤드뉴스코리아 제공

26살과 24살,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은 이들은 고향의 부모님을 떠올립니다. 백씨는 “군에 동원되러 갈 때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서 손잡고 본, 눈물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성악가를 꿈꾸던 김씨는 인터뷰 중 북한 노래 ‘어머니가 제일 좋아’를 불렀습니다. “다 자라도 찾는 어머니. 백발 돼도 찾는 어머니. 엄마 없이 나는 못 살아. 어머니가 제일로 좋아….”

이들은 한국 송환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포로가 되면 역적이나 마찬가지”라며 “북한에 돌아가면 가족, 친척, 친구 등이 다 멸족당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김영미 PD가 준비한 장아찌와 김밥을 먹으며, 포로가 된 뒤 처음으로 웃었습니다. 김 PD와 헤어질 때는 “엄마 같아서 보내기 싫다”며 눈물을 참았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군의 미사일 발사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낸 CNN 보도를 비판하며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디어가 전쟁의 강렬한 이미지를 유포하면서 참혹한 진실을 가리고, 전쟁을 영화나 ‘비디오 게임’처럼 보이게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많은 기사도 최신 드론이나 국제정세 등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평범한 시민들과, 전쟁에 끌려온 젊은이들의 화려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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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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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에서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것이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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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1.30 09:50

  • 수정 2026.01.30 10:19

  • 댓글 0

신파시즘 활개치는 미국서 '빛의 혁명' 가능할까

피살된 르네 굿과 프레티가 저항 구심점

미네소타 거리를 피로 물들인 트럼프 돌격대

시민 총파업 대성공 이후 전국적 파업 호소

흔들리는 트럼프와 숨겨진 발톱: 반란법 위험

신파시즘 뿌리를 뽑기 위한 과제와 행동지침

"난 정말 당신에게 화난 게 아니에요, 친구." 르네 굿(Renee Good)이 차창 너머로 자신을 위협하는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에게 남긴 이 말은, 살의로 가득 찬 공권력 앞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비극적인 다정함이었다. 그녀는 폭력적인 이주민 단속 현장을 목격하고 항의했을 뿐이며, 위협을 느껴 차를 돌려 나가려던 순간 금속 탄환에 생을 마감했다.

"그녀를 건드리지 마! 괜찮으세요?" ICE 요원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던 한 여성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의 마지막 말은 10발의 총성과 함께 영원히 끊어졌다. 그는 불의를 보고 약자를 도우려던 선량한 시민이었지만, 요원들에게 그는 보호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이었다.

트럼프 정권은 즉각 이들을 '차량을 무기로 이용'하고 '무기와 탄약을 소지한' 위험한 '국내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다. 희생자를 악마화함으로써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려 한 것이다. 진실은 시민들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찍은 영상 속에서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는 모두 평화적인 방식으로 항의 중이었다.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 - 출처: 트위터(X)

하지만 그들은 마치 공개 처형당하듯이 죽었다. 미국의 진보적 법학자 아지즈 허크(Aziz Huq)가 지적했듯, 이는 단순한 과잉 진압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적들을 처단하고 있다는 심리적 보상을 주기 위한 장식적 폭력"의 결과였다. 더구나 이 두 명의 죽음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네소타의 거리는 이제 '자유의 땅'이 아닌 '점령지'의 풍경을 띠고 있다. ICE는 심지어 2살, 5살 아이들까지 체포하여 가족과 격리하고 있으며,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얼굴에 대놓고 최루액을 분사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트럼프의 '신나치 돌격대'로 기능하며 공동체의 안전망을 파괴하고 있다.

이제 미네소타 주민들은 모두가 미등록 이민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항상 시민권 서류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서류가 없다는 것은 언제든 ICE에 의해 '납치'되어 창고 같은 구금 시설로 끌려가 가족과 생이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곳에서는 며칠간 씻지도 못하고 굶주림과 폭력에 노출된다. 이는 미국 사회 전체를 공포로 길들이려는 신파시즘적인 통치술이다.

트럼프 정권은 제대로 된 검증이나 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을 ICE 요원으로 채용하여 현장에 투입하고 대량 단속의 실적만 강요하며 무조건적인 면책특권을 약속했다. 즉,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의 죽음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트럼프 정권의 정책 방향과 목적이 낳은 결과다. 폭력과 일탈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괴물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것은 공포가 아니라 저항을 낳았다. 미네소타 주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지난 1월 23일, 미네소타는 멈춰섰다. '진실과 자유의 날'로 명명된 이날, 서비스노조(SEIU), 통신노조, 운수노조, 교사연맹 등 90여 개 단체가 힘을 합쳐 시민 총파업을 단행했다. 영하 29도 최악의 강추위에도 10만 명이 등교, 출근, 쇼핑도 거부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하며 'ICE 아웃!'을 외쳤다.

시민들은 ICE에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던 지역 기업들을 압박하여 협조를 중단하게 만들었고, 위험에 처한 이민자와 이웃들을 도왔고, 국가 기구가 시민 없이 존재할 수 없음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이 성공은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미네소타의 행동은 확대되어야 하며, 전국적 총파업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실제로 1월 30일 전국적 총파업이 예고되고 있다.

 

1.30 전국 총파업을 호소하는 광고

저항의 물결은 트럼프 정권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이민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응답이 과반을 훌쩍 넘었고, 그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로 추락했다. 소극적으로 관망하던 민주당 지도부와 주류 정치인들도 연방정부 셧다운을 감수하더라도 ICE 예산을 막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오바마 부부와 클린턴 역시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비난하며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균열은 공화당 내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미네소타 주지사 경선 후보였던 크리스 마델은 "차마 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공화당 후보로 나선다고 말할 수 없다"며 후보직을 사퇴했다. 트럼프 신파시즘의 중심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 정권은 미네소타에서 ICE 감축과 단속 완화, 주 경찰과의 수사 협조, 악명 높던 국경순찰대장의 타 지역 발령 등을 이야기하며 물러서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기 위한 '숨 고르기'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던 윤석열 역시 2024년 총선 패배 이후 주춤하며 물러서는 듯한 연극을 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결국 연말에 비상계엄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자아 비대와 과대망상의 정신 나간 망나니 같은 지도자들은 결코 쉽게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진짜 계획은 미네소타에서 폭력적 충돌을 유발하여 해당 지역을 '80년 광주'처럼 고립시키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빌미로 '반란법(Insurrection Act)'을 발동하여 계엄 상태를 조성하고, 중간선거를 무산시키거나 영구적 독재로 나아가려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MAGA의 전략가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반란법을 발동하고 군대를 투입해서 이민자를 더 대량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노골적으로 선동해 왔다.

트럼프는 현재 핵심 책임자인 국토안보부 장관 크리스티 노엄(Kristi Noem)을 유임시키겠다고 다짐하며, 국경순찰대장을 뒤로 물리는 대신 훨씬 교활하면서 잔인한 '국경 차르' 톰 호먼(Tom Homan)을 미네소타 전선으로 보내고 있다. 이는 잠시 상대의 방심을 부추기면서 더 큰 공세를 준비하는 파시스트 특유의 양동작전이다.

 

트럼프 지지자에게 피습을 당한 뒤에도 연설을 계속하는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 - 관련 방송 갈무리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여전히 조심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민주당의 주류 기득권 정치인들보다 더 나서서, 선명한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들은 민주당의 가장 좌파적 부분인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가장 분명한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정부에 의해 거리에서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찢겨지고 우리의 권리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저항합시다! 침묵은 곧 동조입니다. 우리는 이를 막을 수 있고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르네 굿을 백주대낮에 살해했습니다. 3주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알렉스 프레티에게 10발의 총을 쏴 살해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이 차에서, 집에서, 삶에서 강제로 끌려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ICE를 폐지해야 합니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민 저항을 호소하는 장면은 한국에서 12.3 '내란의 새벽'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시민들을 국회 앞 결집을 호소하던 긴박한 순간도 떠오르게 한다. 이제는 인종, 젠더, 세대, 부문, 정파를 넘어서 모든 양심적인 미국 시민이 '반트럼프, 반파시즘 전선'을 형성해야 할 때다. 그 투쟁의 요구와 과제들도 분명해 보인다.

공권력의 투명성 확보: 미네소타를 시작으로 모든 지역에서 ICE 요원들의 마스크 착용을 전면 금지하고, 신원 노출을 의무화해야 한다. 익명성 뒤에 숨은 폭력은 그 자체로 불법이다. 무엇보다 어떤 짓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면책특권을 폐기해야 한다. 이것은 ICE의 전면 철수와 기구 폐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가장 반동적인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탄핵: 국가 폭력을 기획하고 실행한 크리스티 노엄(국토안보부 장관), 스티븐 밀러(안보보좌관), 카시 파텔(FBI 국장), 피트 헤그세스(국방장관) 등에 대한 탄핵을 하나씩 추진하고 성공시켜야 한다. 이들이 공직에 머무는 한 민주주의나 인권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이것은 트럼프 탄핵으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기도 하다.

반란법 발동에 대한 경고와 대응 태세: 트럼프가 반란법을 발동할 가능성을 계속 경고하고, 만약 그런 군사 계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경우에 의회와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전국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오바마, 클린턴 전 대통령도 시민 저항을 호소하고 있다 - 관련 방송 갈무리

이 모든 것은 한국의 12.3 쿠데타와 '빛의 혁명'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과 교훈들이다. 한국 시민들이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를 단 몇 시간 만에 무력화하고, 나아가 윤석열을 탄핵하고 구속할 수 있었던 경험은 미국 시민들에게도 강력한 영감이 될 것이다. 조직된 시민의 힘만이 총칼을 앞세운 독재의 등장을 막아낼 수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막장극을 펼치고 있는 트럼프의 존재는 인류 문명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금 전 세계적 극우 네트워크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국 시민들의 투쟁은 한국의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고, 미국에서 트럼프를 몰아내는 것은 전 지구적 극우 반동의 흐름을 끊어내는 세계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미국의 저항을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친절했던 르네 굿의 다정함이며, 위기에 처한 이를 구하려 했던 알렉스 프레티의 용기다. 그들의 비참한 죽음과 그들을 모욕하는 권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수많은 미국의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내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 속에는 노예 해방과 인종차별 철폐,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수많은 영혼이 숨 쉬고 있다.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는 그 위대한 연대기의 가장 최근 페이지에 올라간 이름들이다. 미국에서도 과거가 현재를, 그리고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 같은 '죽은 자'들이 남은 '산 자'들을 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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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6만호 승부수...중요한 게 하나 남았다

▲정부, 주택 공급 대책 발표정부가 29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주택 공급 촉진 관계장관회의를 연 뒤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당초 6천호에서 1만호로 4천호 공급이 늘어날 예정인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부지. ⓒ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서울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시장참여자들이 주택공급을 염원하는 서울 도심 등에 소재한 국공유지 등을 끌어모아 6만호 남짓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번 공급대책을 보면 입지와 물량과 속도 등의 면에서 후한 점수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구축시장에서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무주택자들 중 상당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에 나오는 신규 분양물량을 기다리며 대기매수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꽤 높다. 주택가격이라는 것이 후속매수세가 붙어야 상승한다는 전제를 감안할 때 이는 서울 아파트 시장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입지에, 빠른 속도로, 많은 물량을 공급해 서울 아파트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부동산 불로소득공화국'을 혁파하고, 지방주도 성장대전환을 추동하며, 자본시장 등 생산적 투자처로의 머니무브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급방식이 필요하다.

서울 아파트 시장 안정에 나선 이재명 정부

29일, 이재명 정부가 '9.7주택공급확대방안'의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도심부터 택지까지 수도권 이곳저곳에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135만호 이상 착공하겠다는 것이 '9.7주택공급확대방안'의 골자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서울 아파트 시장은 별다른 미동 없이 상승세를 지속 중이다. 정부가 해당 공급확대방안 앞뒤로 초고강도 대출 규제 대책들까지 내놓았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놀랍기까지 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력한 세제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정부가 추가공급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건 명약관화했다. 그리고 그 추가공급대책이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발표됐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서울과 경기권의 핵심 요지에 있는 국공유지 등을 최대한 활용해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주택공급을 신속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서울 26곳에 3만 2000호, 경기도 18곳에 2만8000호, 인천 2곳에 100호를 공급하겠다고 천명했다. 대략 6만호 가량이 공급되는 셈인데 특히 서울 같은 경우는 과거 보금자리주택 물량의 84%에 해당할 정도로 많다. 지난 10년간 서울 아파트 연평균 준공물량(입주물량)이 대략 3만 8000호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3만 2000호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 체감이 될 것이다.

대책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국유지에 2만 8100호를, 공유지에 3400호를, 공공기관 부지에 2만 1900호를, 기타에 6300호를 각각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입지 또한 매우 우수하다. 서울 같은 경우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캠프킴, 태릉CC 등에 주택이 공급되고, 경기도는 과천 경마장 일대 등 노른자위 땅에 주택이 공급된다. 서울과 경기도에 산재한 노후청사 등도 복합개발을 통해 주택으로 공급되는데 모두 알짜배기 위치다.

입지와 물량만이 아니라 속도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빠른 사업장은 2027년부터 착공하고, 만약 늦어지더라도 2030년에는 착공하기로 계획됐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안에는 삽을 떠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기존의 분양방식 답습하면 정말 곤란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월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공급촉진 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재정경제부

단순히 요동치는 서울 아파트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이 나온 것이라면 정책목표를 대략 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누차 강조한 부동산 불로소득공화국 탈출, 지방주도 성장으로의 대전환, 자본시장 등 생산적 투자로의 자금 대이동 등의 원대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디테일이 더 필요하다.

기존과 같이 일반분양과 공공임대를 섞는 방식으로는 급한 불을 끄는 미봉에 머물기 쉽다. 예컨대 이미 서울은 정상적인 소득으로 신규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5일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155.2로, 전 분기(153.4)보다 1.8p 뛰었다. 소득의 약 40%를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쓴 셈이다. 서울 지역 지수는 2024년 4분기 157.9에서 지난해 1분기 155.7, 2분기 153.4 등으로 점차 하락하다가 3분기 들어 다시 상승했다. 서울 이외에 지수가 100을 넘는 지역은 없었다.

분기마다 산출되는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위소득 가구가 중위가격 주택을 표준대출로 구입한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의 정도를 보여준다. 총부채상환비율(DTI) 25.7%에 더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7.9%의 20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 조건을 표준 대출로 가정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서울에 사는 30대 무주택 가구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 30대 가구주 4명 중 집주인은 1명 뿐으로, 주택 소유율은 역대 최저였다. 서울 집값 폭등 등이 주된 원인이다. 지난해 서울 30대 주택 소유가구는 18만 3456가구로 전년보다 7893가구 감소해 역대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무주택 가구가 주택 소유가구보다 2.9배로 많아 그 격차가 역대 가장 큰 수준으로 벌어졌다.

요컨대 기존처럼 일반분양을 메인으로 하고 공공임대를 일부 넣는 방식으로 알짜배기 국공유지에 주택을 공급한다면 달아오른 시장을 일시 냉각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표방하는 다층의 대전환은 난망이다.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방식 전면 도입한다면

▲정부, 주택 공급 대책 발표정부는 29일 9·7 공급대책의 후속 조치인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공개했다.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 도심의 공공부지와 유휴부지를 적극 활용해 총 6만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과천시 과천역 인근 아파트의 모습. ⓒ 연합뉴스

그렇다면 일반분양 방식 이외의 대안이 있는가? 있다.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방식의 주택공급이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는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공급 유형이다. 건물을 분양받는 사람은 전용 25.7제곱미터 아파트를 대략 3억~4억 원 남짓에 매수한 후, 매년 공공에 시장 가치 상당액의 토지임대료를 납부하며 평생 자가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다. 물론 건물에 대한 재산권 행사는 전적으로 보장된다. 기존의 토지 및 건물 일체형 공급이 투기 유발형 공급인 반면, 토지임대부 방식은 시장안정형 공급이다.

직주근접에 각종 인프라와 편의 시설이 밀집한 곳에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대규모로 공급된다면 필경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지 부담가능한 저렴주택을 청년 등을 포함한 무주택자들에게 대규모로 공급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만약 이재명 정부가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에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대거 공급한다면 이는 정부 주도 주택공급정책의 획기적 변화를 함의한다. 그전까지는 정부가 주도하는 주택공급이 부동산 불로소득을 나누어 갖는 방식이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불로소득공화국 탈출을 위한 첫걸음으로 부동산불로소득의 근본인 토지를 공공이 소유하고 주택만 분양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임대부 주택분양방식은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소유자들이 주택구입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가처분 소득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피하게 만든다. 그전처럼 토지와 건물 일체형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원리금 상환에 소비마저 줄여야 하지만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아파트에 짓눌리는 대신 가처분 소득으로 주식 등 생산적 투자를 할 수 있다.

토지임대부 주택분양방식은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살 길로 제시한 '지방주도 성장으로의 대전환'과도 궤를 같이한다. 서울 등의 요지에 기존과 같은 분양주택들이 대거 공급된다면 서울일극화는 더 극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재명 대통령이 기존 주택공급 방식과 과감히 결별하는 결단을 할 수 있을지다. 이 대통령이 천명한 부동산 불로소득공화국 탈출, 지방주도 성장으로의 대전환, 생산적 투자로의 자금 대이동 등의 혁명적 대전환을 위해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등의 금싸라기 땅에 반드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해야 한다. 서울 등의 요지에 있는 국공유지들을 탈탈 털어서 만든 주택공급계획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망실하면 다음에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모쪼록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환에 걸맞은 결단을 내려주길 소망한다.

#주택공급대책#용산국제업무지구#6만호#이재명#토지임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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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DMZ 관련법 정전협정과 상충없다...유엔사와 사전협의 절차 밟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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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1.29 12:41
  •  
  •  댓글 0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 첫날인 지난해 7월 25일 판문점을 찾아 남북 연락채널 복원 의사를 밝혔다. [사진 제공 - 통일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 첫날인 지난해 7월 25일 판문점을 찾아 남북 연락채널 복원 의사를 밝혔다. [사진 제공 - 통일부]

통일부가 최근  비무장지대(DMZ) 관련 법안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는데 대해 "유엔군사령부와 사전협의 절차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정전협정과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2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며, 이러한 입장에서 국회에서 논의중인 DMZ 관련 법 제정 논의에 협조해 나갈 계획"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유엔사가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DMZ 출입 권한을 통일부로 일부 이양하려는 국회 입법안에 대해 "대한민국이 DMZ 출입 승인 권한을 갖는 것은 정전협정에 정면 충돌하는 것으로 유엔군사령관 권한을 과도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데 대한 입장 표명이다.

유엔사는 정전협정 조항을 언급하며 "DMZ에서 사건이 발생해 적대 행위로 이어진다면 그 책임을 추궁받을 사람은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유엔군사령관"이라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입법 추진중인 '비무장지대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 및 지원에 관한 법률'(DMZ 특별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재강, 한정애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DMZ 관련법의 핵심을 '비군사적·평화적 목적의 DMZ 출입 승인 권한을 한국 정부가 행사하도록 하는 것'으로 파악한 것.

2018년 평양공동선언을 통해서도 비무장지대의 화지대화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된 바 있으나 현행 법제가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비전과 체계적인 지원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5년마다 비무장지대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을 지원하는 종합계획 수립과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 △통일부 내 비무장지대평화이용위원회와 통일부장관 소속 비무장지대평화이용기획단 설치 △관계 시도지사와 협의 결정하는 비무장지대 평화이용지구 지정 △국민참여사업 개발 시행을 담고 있는 법안의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날 정동영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유엔사가 얘기한 건 유엔사의 입장인 것이고 국회가 법을 제정하는 것은 입법부의 고유 입법 권한"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DMZ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유엔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유엔사의 입장은 DMZ 관련 법안과 '평화의 길' 운영에 관한 것인데 새로운 건 아니다"라며, "통일부는 법안 제정 관련해 국회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평화의 길' 운영과 관련해서는 유엔사와 계속 관련 협의를 해 나간다는 계획"이라고 정리했다.

또 책임론과 연계해 유엔사 관할권을 강조한 주장에 대해서는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유엔사가 책임진다는 개념인 것 같은데, 그건 존중하지만 만약 우리 국민이 다쳤다면 그것이 오롯이 유엔사 책임일 뿐인지는 의문"이라며 이견을 제시했다.

한편, DMZ 관련 법은 3개 법안이 발의되어 현재 외통위에 계류되어 있으며, 아직 본격적인 논의는 되지 않고 있다.

3개 법안을 하나로 취합해 논의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출입과 관련해 유엔사와의 사전협의 절차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화의 길' 운영과 관련해서는 현재 실무 수준에서 유엔사와 소통하고 있으며, 관계 기관인 문체부·행안부·경기도 등에서도 원하고 있는 만큼 의견을 수렴해 조만간 유엔사와 본격 협의해 나갈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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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공 외교와 주권의 실종,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기자명 데스크
  •  
  •  승인 2026.01.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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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저물어가는 제국, 웃통 벗고 덤비는 깡패
주권 없는 선진국은 화려한 식민지다
비참함을 느끼지 못하는 비참함
애국과 매국의 갈림길

ⓒ 뉴시스
ⓒ 뉴시스

트럼프의 SNS 한 줄에 나라 전체가 대혼란에 휩싸였다. 관세 15%를 25%로 올리겠다는 경고 앞에 ‘정치’를 한다는 자들은 앞다투어 미국을 향해 엎드릴 준비를 마쳤다. 정부는 서둘러 입법을 읍소하고 여당은 ‘신속 처리’를 약속한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매국(賣國)의 경매장’ 같다. 누가 더 비굴하게 나라 곳간을 열어젖히느냐를 두고 벌이는 참담한 충성 경쟁을 보고 있다.

저물어가는 제국, 웃통 벗고 덤비는 깡패

우리가 마주한 미국은 더 이상 힘세고 여유 있는 패권국이 아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 웃통까지 벗어 제치고 달려드는 무도한 깡패이자, 급격히 저물어가는 황혼의 제국이다. 깡패가 몽둥이를 휘두르는 이유는 힘이 넘쳐서가 아니라, 가진 것이 바닥나 불안하기 때문이다.

동화 속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속여 어머니의 떡과 팔다리를 뺏었듯, 미국의 관세 협박은 쇠락하는 제국의 수명을 연장하려 우리 국부를 훔쳐 가기 위한 끝없는 올가미다.

오늘 관세 협박에 겁을 먹고 요구를 들어주면, 내일은 더 가혹한 제물을 요구할 것이다. 종속된 구조에서는 평생 호랑이에게 떡을 바치며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굶주린 호랑이에게 제 살점을 떼어주며 산 고개를 넘으려는 자살행위는 결국 파멸로 치닫는 예속의 굴레다.

주권 없는 선진국은 화려한 식민지다

정부와 여당은 입만 열면 선진국 타령이다. 주식 시장 지표와 GDP 수치를 들이밀며 자찬에 열을 올린다. 묻고 싶다. 주권을 잃은 나라가 주식 좀 오른다고 선진국인가? 저물어가는 제국 통치자의 말 한마디에 국가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입법부마저 깡패의 압박에 ‘조공 법안’을 상정하는 나라를 누가 주권 국가라 부르겠는가.

미국은 무역 흑자를 줄이라며 ‘원화 가치 강제 절상(환율 하락)’을 압박하고, 정부는 이에 맞춰 환율 주권을 포기하며 국민의 지갑을 털고 있다. 여기에 3,500억 달러라는 조공 액수를 맞추려 국민의 노후 생명줄인 국민연금까지 미국 자산을 사들이는 방패막이로 내던졌다. 알맹이인 주권은 다 내주고 껍데기뿐인 지표에 매달리는 꼴은 목줄에 묶인 노예가 비단옷을 걸친 꼴이다. 참된 선진국은 부의 양이 아니라 제 나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주성에서 결정된다.

 

비참함을 느끼지 못하는 비참함

더욱 통열한 사실은, 이 굴욕적인 현실을 마주하고도 마땅히 느껴야 할 수치심조차 마비되었다는 점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이를 ‘실용’이라 부르고 ‘현실론’이라 포장한다.

진정한 비극은 매를 맞는 것이 아니라, 매를 맞으면서도 그것이 아픈 줄 모르고 도리어 때리는 자의 기분을 살피는 노예 근성에 있다. 120여 년 전, 나라를 팔아넘겼던 이완용은 “대한제국은 약소국이고 일본은 강대국이므로 일본과 손을 잡는 것이 조선의 숨통을 트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정치권이 걸어가는 길은 그때 그 매국노의 길과 무엇이 다른가.

애국과 매국의 갈림길

정치권에 묻는다. 미국을 추종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면, 당신들은 더 이상 국민을 대변할 자격이 없다. 이번 관세협상 비준은 단순히 경제적 손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주권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애국과 매국의 갈림길’이다.

우리 국민은 누가 이 조공 바치기에 찬성표를 던졌는지 누가 침묵했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 이제 대중이 깨어나야 한다. 굴종을 대가로 얻는 평화와 번영은 가짜다. 스스로를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자에게 돌아올 것은 오직 끝없는 수탈과 멸시뿐임을 우리는 직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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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발견된 빛나는 돌 하나로 살해와 가난, 방화가 마을을 덮쳤다

[자원의 저주, 모잠비크] ④ 모잠비크 루비 광산 비극, 자원 추출은 어떻게 전쟁터를 만드는가

손가영 기자 | 기사입력 2026.01.29. 06:38:41 최종수정 2026.01.29. 06:39:32

카부델가두엔 왜 분쟁이 발발했나? 카부델가두 현장을 오래 조사해 왔던 연구원, 주민 권리 활동가, 기자 등 9명에게 물었다. 식민주의, 부패, 민족, 종교, 빈곤 등 다양한 요인 중에서도 빠짐없이 강조된 단어가 있었다. '자원'이다. 한 연구원은 "자원이 저주가 돼 돌아왔다"며 "루비 광산을 먼저 검색해 보라"고 권했다. 가스 개발 현장과 닮은, 루비 광산에서 벌어진 갈등을 먼저 싣는다. 편집자

(자원의 저주, 모잠비크 연재 바로가기 ☞ : 클릭)

카부델가두는 모잠비크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다. 석탄, 금, 흑연, 루비, 철광석, 티타늄, 목재, 천연가스 등 다양한 자원이 몰려 있다. 동시에 가장 가난하다. 2020년 기준, 77%의 가구가 하루 40메티칼(약 960원) 이하로 생활하고, 주민 3분의 2가 하루 세 끼 식사를 다 하지 못한다. 만 5~17세 아동의 절반 이상이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45%가 만성 영양실조 상태다.

루비는 카부델가두의 주요 광물 중 하나다. 특히 남부 몬테푸에즈(Montepuez)구에 광산이 몰려 있다. 루비는 1캐럿(0.2g)당 적게는 약 45만 원(300달러), 많게는 1억 4000만 원(1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한다. 이런 루비 광산이 개발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주 빈곤율은 반대로 더 악화했다. 자원이 가장 풍족한 지역이지만, 그곳 주민은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

"2009년 어느 날, 이 땅에서 빛나는 돌 하나가 발견됐다. 서구 세계에서 이건 사치, 매력, 부를 의미하지만, 내 동포들에겐 그 반대다. 죽음, 가난, 살인이다."

모잠비크의 탐사보도기자 에스타치오 발로이(Estacio Valoi)의 말이다. 10년 넘게 카부델가두 내 자원 채굴 현장을 취재해 온 그는 2015년 루비 광산 영세 광부들의 억울한 죽음을 보도해 문제를 세계적으로 알렸다. 그로부터 모잠비크의 "피로 물든 루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잠비크 몬테푸에즈 광산의 루비 원석. ⓒ젬필즈

▲카부델가두주 지도. 빨간색 점이 몬테푸에즈 지구에 있는 나만훔비르 루비 광산 위치다. ⓒ프레시안(손가영)

그 땅엔 무슨 일이 벌어졌나

2015년 어느 날, 발로이 씨는 이름 없는 무덤들 앞에 섰다. 그해 4월 몬테푸에즈 나만훔비르(Namanhumbir) 광산에서 사망한 두 명의 청년 영세 광부였다. 한 명은 고작 만 18세였다. 동료 광부들은 "정부 경찰 소속 FIR(신속개입부대)가 총을 쐈다"고 유족에게 밝혔다.

영세 광부들이 광산을 지키는 경찰, 민간 보안요원으로부터 총을 맞거나 구타당한다는 목격담은 개발 초기부터 마을에 돌았다. 발로이 씨는 다리에 총상 구멍이 남아 있는 영세 광부들, 사촌이 갱도에 파묻혀 죽어버린 '생매장' 목격자를 만났다. 압둘이란 영세 광부는 "3~4m 파 내려 간 구덩이에서 광부 셋이 함께 일하다가 나와 한 동료가 루비를 숨기러 잠시 나왔다가 돌아가는 사이, 불도저가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을 봤다"며 "2015년 8월이었다. 같이 일하던 내 사촌은 구덩이 안에 있었다"고 밝혔다.

영세 광부들은 '불법 광부'라 불린다. 2011년경 한 기업에 독점 채굴권이 부여되면서 불법화됐다. 그런데 광부들은 이 시스템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다. 원석, 목재 등 자원을 캐고 파는 일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왔고, 가난한 가구의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 2009년경 루비 광산을 처음 발견한 이도 이 지역 농부였다. 루비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탄자니아, 소말리아, 콩고 등 주변 나라의 이민자들도 들어왔고 영세 광부는 많이 늘어났다. 이를 중심으로 거래상, 식당, 숙소, 운송 등의 상권도 형성됐다.

그런데 루비가 발견된 지 6개월여 후, 음위리티(Mwiriti)라는 회사가 나타나 정부로부터 이 지역 탐사권을 받았고, 2년 후엔 2036년까지 25년 간의 독점 채굴권을 부여받았다. 면적은 340㎢에 달했다. 음위리티는 자본력, 기술력을 가진 영국 회사 젬필즈(Gemfields)와 각각 지분 25%, 75%로 'Montepuez Ruby Mining(MRM)'이란 회사를 설립해 루비 채굴을 시작했다. 음위리티 이사회 의장은 모잠비크 초대 대통령의 아들이다. 회사의 전무 이사는 과거 프렐리모(현재 집권당) 게릴라 사령관의 아들이었다. 즉, 집권당 유력 인사들이 개입된 회사다.

영세 광부들은 채굴을 멈추지 않았다. MRM 측은 이들의 불법 채굴을 막기 위해 민간 보안 업체 요원을 두는 등 경비 태세를 강화했고, 경찰과 특수부대 FIR 등도 광산을 보호하면서 가혹행위와 살상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2015년 12월 알자지라가 에스타치오 발로이 기자와 함께 취재해 방영한 '모잠비크 보석 전쟁(Mozambique's Gem Wars)' 영상 중 영세 광부 사망자 무덤. ⓒ알자지라

▲2017년 7월 한 모잠비크 언론인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루비광산 영세 광부들의 고문 피해 영상 갈무리. ⓒLázaro Mabunda 페이스북

'나카타나스(Nakatanas)'는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마체테를 든 남자들'이란 뜻으로, 총과 몽둥이, 마체테를 든 남성들을 칭했다. 마체테는 정글도 같은 큰 칼이다. 광부들은 "사복을 입고 MRM 구역에서 활동하며 몽둥이와 마체테를 휘두르며 돌진해 광부를 때린다"면서 "백인을 위해 일한다"고 묘사했다.

2017년 7월, 이들이 광부들을 고문하고 구타하는 영상이 SNS상에 폭로되며 도마 위에 올랐다. 어린 광부들이 나무에 묶여 울면서 몸을 이리저리 피하며 맨몸에 매를 맞는 모습, 총으로 위협하는 남성들 앞에서 단체로 고문받는 모습 등은 아직 X, 페이스북 등에 영상으로 남아 있다. 발로이 씨는 "고문을 당해 왼팔이 심하게 부러져 지금도 힘을 못 쓴다"거나 "무릎 관절을 가격해 일을 못 하게 만들었다"고 증언하는 광부들을 만났다.

MRM의 모회사 젬필즈는 당시 "MRM이나 그 계약자 중 누구라도 '나카타나스'라고 불리는 비공식 보안 부대를 후원한다는 주장은 거짓일 뿐 아니라, 터무니없고 모욕적"이라며 "젬필즈는 어떠한 폭력 행위도 승인하거나 용인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발로이 씨는 이들이 MRM 소유 사택에서 지내거나, 광산 지역에서 청소 등의 일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12월 1일 프레시안과 만난 에스타치오 발로이 기자. ⓒ프레시안(손가영)

모든 걸 빼앗긴다

"주민은 원래 그 마을에서 살았고, 대부분이 농사를 합니다. 집이나 농사에 쓰려고 건축용 목재나 대나무 등을 구하러 산에 갔을 뿐인데, 구역을 침입했다는 이유로 불법 광부로 몰려 구타당하고 살해되고 감옥에 갇힙니다. 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도둑이 됩니다. 어떻게 자기 땅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을 도둑이라 할 수 있습니까?"

발로이 씨는 광산 구역은 "군사화가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대로 이 숲에 의존해 살았던 이도, 루비 광산을 발견한 이도 주민인데 이젠 모두 불법 광업의 용의자가 돼 불안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또한 생계 수단을 더 빼앗겨 가난도 심화했다고 했다.

강제 이주와 부족한 보상은 또 다른 문제다. 광산 개발 지역엔 주민들이 대대로 살아온 7개 마을이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2017년경까지 강제 이주와 통행금지, 경찰의 고문, 방화 등의 피해를 겪었다고 증언했다. '광산 지역을 정리하기 위해 FIR 요원들이 마을의 300채 집을 태우고 주민을 구타했다'거나 '동의도 없이 중장비를 동원해 집을 부수러 왔다',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당하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이동도 못하며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등의 주장이었다.

주민 273명은 2018년, 영국 법률 회사를 통해 젬필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영국 법원에 제기했다. 이들은 광산 경비 인력들의 구타, 살해, 방화, 성폭행과 MRM 측의 불법 토지 점유 등의 혐의를 주장했다. 이는 2019년 1월 젬필즈의 배상 합의로 마무리됐다. 젬필즈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으나 총 83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젬필즈는 모잠비크 루비 경매에서 1억 210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이후 한 마을만 강제 이주 대상이 됐고, 재정착 마을에 대한 투자와 구체적인 계획도 약속됐다. 2020년 12월 105가구가 재정착 마을에 이주했다. 젬필즈는 "전력과 상수도, 초등학교, 시장, 교회, 모스크, 공공건물, 각 가구에 할당된 농지,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원까지 갖추고 있다"며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직업훈련센터도 성공적으로 설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로이 씨는 "기업이 탐사 영역을 확장할 때마다 주민들이 이주지로 옮겨야 하는데, 이주 단지는 가족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며 "가족이 9명인 가장에게 방 3개짜리 집을 주는 식인데, 사람들이 어디서 잘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일부 마을에서도 '농업, 수렵, 댐 인근 어업 등을 못 하게 됐는데 이에 반해 보상이 부족하다'거나 '밭의 면적과 수에 상관없이 일괄 금액을 받았다'는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영세 광부가 채굴 현장에 들어가는 모습. 이들은 곡괭이 등을 이용해 구덩이를 직접 판다. ⓒ알자지라

▲루비 광산 인근에서 영세 광부들이 원석을 채굴하는 모습. ⓒ알자지라

루비는 비싸게, 주민은 가난하게

광산 개발이 본격화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나만훔비르 광산에서 몇 명이 죽었고, 얼마나 다쳤는진 아무도 모른다. 공식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구타와 사망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2024~2025년 발로이 씨가 확인한 사례는 사망 5건, 부상 3건으로 총 10명의 주민이 죽거나 다쳤다. 6건이 총격 사건이다.

영세 광부의 노동 환경은 위험천만하다. 땅을 파고 갱도를 만드는 과정 모두 곡괭이 등만 이용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기계나 보호장치는 대부분 없다. 장갑, 마스크조차 거의 없다. 보통 6~12미터 깊이 구덩이를 파 내려간 후, 광맥을 살피기 위해 수평으로 갱도를 만든다. 터널 폭은 매우 좁고, 붕괴와 산사태가 빈번하다. 광부가 사태 속에 갇혀도 이들을 구조할 장비는 없다. 더구나 불법광산 지역은 생산성이 낮은 지역이 많다. 현장에선 "승산 없는 도박"이자 "영혼을 파괴하는 작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영세 광부가 되는 이유는 "다른 일자리를 결코 구할 수 없어서"다. 일부 영세 광부들은 총격, 구타 등에 대한 공포심에 인근 석류석(Garnet) 광산으로 옮겨 갔다. 이곳은 광산 지역보다 광물이 훨씬 적고, 루비만큼 가치 있는 원석은 더 드물다. 그러다 다시 광산 지역에 들어가 적발되면 최고 5년까지 징역살이를 한다. 광부는 대부분 청년 남성 가장이다. 가족의 가난은 심화된다.

주민들이 느끼는 빈곤과 배제가 심해지는 과정에서, 모잠비크 정부는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불법 광부 대규모 추방 작전을 벌였다. 6000명가량의 광부가 체포됐다. 이 중 외국인으로 분류된 70%가량이 추방됐고, 나머지는 교도소에 갇혔다. 루비 채굴을 둘러싸고 형성된 비공식 경제 규모는 최대 1만 명으로 추정됐다. 이들의 소득 수준도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7개월 후, 카부델가두 한 해안 마을에서 반군의 반란 사태가 시작됐다. 무장 세력은 경찰서들을 습격했고, 죄수를 석방했다.

반군의 대부분은 청년들이었다.

MRM은 루비 경매를 시작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2억 달러(1조 7310억 8400만 원)의 누적 경매 매출을 올렸다. 경매 한 회당 666억 원 정도다. 2024년 6월 경매를 보면, 총 9만 7112캐럿을 6870만 달러(990억 원)에 팔았다. 모잠비크는 전 세계 루비 공급량의 50% 정도를 차지한다고 알려졌다.

MRM은 사회적 책임에 대해 "루비 매출의 최소 1%를 지역의 사회·환경 프로젝트에 사용한다는 약속을 이행 중"이라며 "총수입의 25퍼센트 이상이 정부에 생산세와 로열티로 지급되고 있다"고 언론에 밝혀 왔다. 지역 행정당국은 광산 생산세를 거둬 학교 및 병원 건설, 농업 프로젝트 자금 지원, 물 공급원 등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수의 출처와 세출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여전히 주민들의 의심을 사고 있다.

발로이 씨는 "주민들이 직접 루비를 채굴하고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될 때까지 문제(분쟁)는 해결되기 어렵다"며 "이것이 상황을 완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루비를 발견한 건 기업이 아니라 바로 그 주민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구급차 몇 대나 소규모 양계장 지원 같은 활동을 할 게 아니라, 주민을 교육하고 이것이 일자리로도 이어지는 교육과 고용 등의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엘도라도라 불린 광산 지역을 "엘 도브라도(El Dobrado)"라 비꼬아 부른다. 신화 속 황금 도시 엘도라도(El Dorado)에 b자만 더해 만든 '접히고 휘어진 땅'이란 단어다. 골드러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전쟁터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손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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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가 성역인가…1심 겨우 1년 8개월 선고

김성진 기자

mindle1987@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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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 입력 2026.01.28 17:10

  • 수정 2026.01.28 18:33

  • 댓글 4

사법시스템 농락에도 면죄부 준 재판부

형벌에 차별 없다면서 도이치모터스 완전 무죄

대법원도 도이치 전주에 유죄 내렸는데 …

"미필적으로 인식했지만 공동정범은 아니야"

"공소시효도 만료…시효 남은 건도 증거 없어"

"명태균 여론조사도 이익 얻었다 보기 어렵다"

윤석열 통화까지 나왔는데 "공천 약속 아니다"

통일교 청탁 샤넬백·그라프 목걸이 인정했지만

샤넬백도 2개 중 1개만 인정…"해괴한 판결"

김건희 특검 '완패'에 "그간 뭘했나"…지적도

특검 "상식으로 도저히 수긍 못해" 항소 예정

권성동 2년· 통일교 윤영호 전 본부장 1년2개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태균 공천개입,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의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건희 씨가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 출석, 변호인과 대화하고 있다. 2025.12.3. 연합뉴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무상 여론조사 수수, 통일교 명품 목걸이·가방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52) 씨에 대해 1심 법원이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특검이 구형한 징역 15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법원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선 시세조종세력과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소시효가 만료됐으며 범죄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명태균 무상 여론조사 수수에 대해선 여론조사를 의뢰·지시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을 받은 것도 아니라며 무죄를 각각 선고했다. 김 씨가 통일교 교단 청탁을 받고 샤넬백과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수수한 혐의만 일부 유죄로 인정했다.

대통령 위에 군림하며 일명 '브이제로'(V0)라고 불린 김 씨는 주가조작과 관련자 모두가 법정 앞에 섰을 때 유일하게 예외였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배우자였던 김 씨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고 심지어 영부인이 된 뒤에는 각종 특혜성 조사까지 받으면서 사법 시스템을 사실상 농락했지만, 법원은 면죄부를 줬다.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어떠한 단죄도 이뤄지지 않은 점은 향후에도 비슷한 범죄를 사회적으로 묵인할 여지를 줬다.

형벌에 차별없다면서 도이치모터스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28일 오후 자본시장법 위반(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정치자금법 위반(명태균 무상여론조사 수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통일교 명품 목걸이·가방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게 징역 1년 8개월, 추징금 1281만 5000원을 선고했다. 앞서 특검이 결심 공판에서 구형한 징역 15년, 벌금 20억 원, 추징금 9억 4864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옛말에 형무등급(刑無等級·형벌에 등급은 없다) 그리고 추물이불양(趣物而不兩·사물을 대할 때 둘로 나누어 차별하지 아니한다)이라는 말이 있다. 법에 적용에는 적용을 받는 사람이 권력자이든 아니면 권력을 잃은 자이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한다"며 "불분명할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와 같은 법의 일반 원칙도 피고인이 권력자라 하여 혹은 권력을 잃은 자라 하여 다르게 나누어 적용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 시세조종세력과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소시효가 만료됐으며 범죄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내렸다. 앞서 지난해 4월 대법원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전주(錢主·돈줄)'인 손아무개 씨에 대해 유죄(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를 인정한 것보다 훨씬 관대한 판단이었다.

 

통일교 금품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건희 씨가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있다. 2026.1.28. 연합뉴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재판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 ①2010년 10월 22일경부터 2011년 1월 13일경까지 김건희의 대신증권계좌 주식 18만 주와 20억 원이 입금된 미래에셋대우 계좌가 이용된 것 ②2011년 3월 30일 2만 3000주를 하나투자증권계좌로 매수한 것 ③2012년 7월 25일경부터 2012년 8월 9일경까지 1만 9635주를 하나투자증권 계좌로 매수한 것 등 크게 3가지로 공소사실을 나눴다.

재판부는 ①2010년 10월 22일경부터 2011년 1월 13일경까지 김건희의 대신증권계좌 주식 18만 주와 20억 원이 입금된 미래에셋대우 계좌가 이용된 것과 관련 "피고인(김건희)은 미필적으로나마 자신의 자금이나 주식이 시세조종 행위에 동원될 수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했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면서 김 씨가 주가조작 행위를 인식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주가조작 세력과의 공모 여부에 대해선 "시세조종 세력과 공동정범으로서 범행을 실행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인다"면서 "시세조종 세력 중 누구도 피고인에게 시세조종에 관해 직접 알려준 바가 있다고 진술하는 사람이 없어서 피고인이 시세조종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에 관한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통정매매라고 보기 위해선 그것을 통해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한 외관을 형성해야 하고 행위자에게 그러한 목적 등이 있어야 한다"며 "피고인은 도이치모터스 주식 18만 주를 블랙펄인베스트에 넘겨주려는 목적으로 매도행위를 한 것으로 보일 뿐,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잘못 알게 하거나 그 밖에 타인에게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할 목적까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아울러 "블랙펄인베스트에서 시세조종에 협력할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상대방을 섭외하는 등의 업무를 한 것에 대한 블록딜 수수료 4200만 원가량을 피고인으로부터 받은 것은, 피고인이 블랙펄와 공모 관계에 있는 내부자가 아니라 공모 관계 밖에 존재하는 외부자, 즉 거래 상대방으로 취급됐기 때문으로, 이는 공모 관계에 있지 아니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 밖에도 재판부는 블랙펄인베스트가 수익금 정산을 할 때, 주가조작에 이용한 다른 계좌에서 나온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김 씨의 계좌에서만 차익 계산을 한 것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로 들었다.

 

김건희 씨의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 사건의 선고 공판이 열린 28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2026.1.28. 연합뉴스

재판부는 공소시효와 관련해서도 ①2010년 10월 22일경부터 2011년 1월 13일경까지 김건희의 대신증권계좌 주식 18만 주와 20억 원이 입금된 미래에셋대우 계좌가 이용된 것 ②2011년 3월 30일 2만 3000주를 하나투자증권계좌로 매수한 것 등에 대해선 "각 2021년 1월 13일 및 2021년 3월 30일에 10년의 공소시효가 도과됐다"며, 나머지 ③2012년 7월 25일경부터 2012년 8월 9일경까지 1만 9635주를 하나투자증권 계좌로 매수한 것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범죄 증명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명태균 무상 여론조사도 "대가성 없어" 무죄

재판부는 김 씨가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로부터 58회에 걸쳐 2억 7000여만 원 상당의 여론조사를 공짜로 받아본 후, 그해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명 씨와 친분이 있는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공천을 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명태균이 무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피고인 부부에게 제공했고 그 대가로 피고인 부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김영선이 국회의원 선거 공천을 받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기는 한다"면서도 "명태균이 피고인 부부에게 전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던 미래한국연구소의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실시하던 여론조사 결과를 피고인 부부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에게 배포한 것으로 보일 뿐이어서, 이를 두고 피고인 부부가 여론조사 비용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피고인과 미래한국연구소 또는 그 의뢰를 받아 여론조사를 하는 기관인 피엔알(PNR) 사이에 여론조사 관련해 계약서 등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피고인 부부는 명태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배포받는 상대방들 중 하나였을 뿐 여론조사 결과가 전속적으로 귀속되는 주체였다고 평가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명태균이 피고인 부부에게 선거 관련한 상담 및 조언을 했다고 여론조사 비용 상당액의 이익을 피고인 부부가 얻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여론조사 비용과 관련해서도 "(명태균은) 국민의힘으로부터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지방자치단체 관련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여론조사 비용의 상당한 금원을 지급받아 이를 여론조사 비용에 충당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 씨에게 비용 청구를 위해 작성한 엑셀파일에 대해서도 "엑셀 파일은 명태균이 자신이 비용을 들여 여론조사를 하고 정치 판세를 분석하면서 선거에 도움을 주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피고인에게 여론조사 비용을 청구하려 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영선 전 의원 공천에 대해서도 윤석열과 명태균의 통화 등에서 공천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여론조사의 대가로 김영선에 대한 공천을 약속받은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실제 김영선에 대한 공천은 국민의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위원들 사이의 토론을 거쳐 투표에 의하여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라고 판단했다.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미래한국연구소의 불법 여론조사 의혹 등 사건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가 지난 8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방검찰청(창원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자신의 차량에 오르고 있다. 2024.11.8. 연합뉴스

샤넬백 2개 중 1개만 인정하는 기괴함

재판부는 2022년 4~8월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통일교 전직 고위 간부에게 샤넬백 2개와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8000만 원 상당의 명품을 받고 통일교 청탁을 들어준 데 대해선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샤넬백 수수에 대해선 "피고인은 7월 5일 가방을 교부받을 당시 통일교의 청탁 내용이 정부 차원의 경제적인 지원과 관련돼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샤넬 가방 등을 교부받은 것은 알선의 명목으로 수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라프 목걸이에 대해선 김 씨 측에서 부인하지만 "전성배(건진법사)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면서 "청탁에 대한 알선의 대가 및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못박았다.

다만 김 씨가 수수한 샤넬백 2개 중 1개만 청탁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2022년 4월 7일경 802만 원 샤넬 가방 등 수수 관련해 그 수수 사실은 피고인이 인정하고 있고 이를 보강하는 증거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 직전인 2022년 3월 30일경 피고인이 윤영호(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에게 대선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취지로, 윤영호는 피고인에게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는 취지로 전화 통화를 했으나, 이는 의례적인 표현이고 그 대화 내용 중 청탁이라고 볼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유죄 양형 판단과 관련, "영부인은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라며 "그에 걸맞은 처신이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높은 청렴성과 연결성이 요구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솔선수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국민에 대해 반면교사가 되어서는 아니 될 일"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권력에 대한 금권의 접근은 다반사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위가 높을수록 이를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피고인은 자신의 지위를 영리추구의 수단으로 오용했다"면서 "청탁이 결부된 고가의 사치품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을 치장하는 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말처럼 굳이 값비싼 물건을 두르지 않고도 검소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위와 같은 금품의 수수를 피고인이 먼저 요구한 바는 없다"면서 "뒤늦게나마 가방 등을 공여받은 자신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에 대해 일부 자책하며 반성하고 있고,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다. 이러한 점들은 유리한 양형사유로 고려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하며 압수된 그라프 목걸이 1개를 몰수한다고 했다. 몰수가 불가능한 천수삼 농축차와 샤넬백 등에 대해선 1281만 5000원을 추징한다고 했다.

이날 김 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현정사에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실형을 선고받는 첫 사례로 남게 됐다.

그러나 구형에 크데 미치지 못하면서 정치권에선 곧바로 "해괴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법개혁에 대한 요구도 함께 나왔다.

 

'건진법사 청탁 의혹'의 핵심 인물인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30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2025.7.30.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브이 제로'라 불리며 국정을 좌우한 김건희 씨의 위상이 훼손될까 걱정될 정도의 형량"이라며 "내란으로 민주주의를 흔들고 사익으로 국정을 망친 죗값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하나의 명품 가방은 알선 명목 수수가 아니고, 또 다른 명품 가방은 알선 명목 수수라는 해괴한 판례를 역사에 남기게 됐다"며 "정의로운 심판을 위한 특검의 즉각 항소가 있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판결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봐주기의 결과"라며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은 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성준 의원도 "김건희는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성역이라도 되는냐"며 "법원의 현실 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개혁을 서둘러 완수해야겠다"고 했다.

특검은 선고 직후 "법리적으로는 물론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서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며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부가 "범죄증명이 없다"거나 "증거가 부족하다"며 특검에 '완패' 판정을 한 데 대해 수사가 미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김건희 특검의 경우, 파견 검사들이 검찰개혁에 반발해 집단 항명하는 등 내부가 소란스러웠던 만큼,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정에서 입증이 안 됐다, 그간 뭘한 건지"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 사건 1차 공판에 출석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2025.11.3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한편 김 씨의 선고에 이어 이날 오후 3시에는 김 씨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을 조직적으로 후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선고 공판이 진행됐다. 재판부는 윤 전 본부장에게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특검이 구형한 징역 4년의 절반도 되지 않은 수준이었다.

오후 4시부터는 윤 전 본부장에게서 통일교 현안 청탁과 함께 정치자금 1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선고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징역 2년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했다. 앞서 특검은 권 의원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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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부부 눈물의 조문…유시민 “이해찬다운 이별”

  • 김미란 기자

  • 업데이트 2026.01.28 11:19

  • 댓글 0

유족이 건넨 위로의 말.. “尹정권에서 이별했다면 눈 못 감았을 것”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故 이해찬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빈소를 찾아 눈물로 고인을 추모하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27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영정 앞에 헌화한 뒤 무릎을 꿇고 분향했다. 이어 대통령 부부는 영정을 향해 묵념했으며, 김혜경 여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김혜경 여사는 이 수석부의장의 배우자인 김정옥 여사를 끌어안고 다시 한 번 눈물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으시겠습니까”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날 빈소를 지킨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는 SNS를 통해 “이해찬 총리님 빈소를 지키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며 이 대통령 부부와 유시민 작가, 유족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전했다.

한 대표에 따르면, 김혜경 여사가 자꾸 눈물을 보이자, 내내 눈물을 참지 못하던 유시민 작가가 미소 지으며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국민을 위해 공무 수행을 하다 해외에서 떠난 것이야말로 이해찬다운 이별입니다.”

또한 내내 담담함을 유지하던 이해찬 부의장의 배우자인 김정옥 여사도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에서 이별했다면, 그이는 결코 눈을 감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께 감사하며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빈소를 찾아 유족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한창민 대표는 이 같은 내용을 전하며 “이것이 민주주의의 진전에 함께해 온 사람들의 진실한 마음이자 위로의 대화”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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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준다고 해도 소용없어"... 미군이 '언니'들에게 저지른 만행

2022년 9월 29일, 대한민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8년간의 배상 소송에서 122명의 미군 '위안부'가 승소했다. 2025년 9월 5일, 117명의 미군 '위안부'들은 미군을 대상으로 한 소송을 하겠다고 나섰다. 일본군 '위안부'에 이어 미군 '위안부'는 새로운 한국여성사를 쓰고 있다. 그렇다. 미군 '위안부'들은 국가폭력이 드리운 긴 그림자와 가부장제 성문화의 깊은 낙인, 사회 불평등과 차별의 벽을 뚫고 여성해방과 인간존엄성을 향한 선언을 하고 있다.

2025년 9월 8일 서울 서초구 민변에서 열린 '기지촌 미군 위안부 주한미군 대상 손해보상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새움터 공동작업장에는 매일 '언니'[1]들이 모인다.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서로의 안부와 세상 돌아가는 소식, 그리고 지난해 9월 시작된 소송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예전의 기지촌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시절은 몸이 먼저 기억하는 고통이어서 한 마디만 꺼내도 마음이 무너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가를 훔치고, 숨을 고르고, 끝내 눈물이 떨어진다.

"나는 하도 울어서 눈물이 말랐어." 그렇게 말하던 언니도 또다시 운다. "백억을 준다고 해도 소용없어. 그냥 열여섯 그때로 돌려놓으라고 그래." 그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덧붙인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단 한 번이라도 부모님이랑 함께 살아보고 싶어." 언니들이 꺼내는 기억은 결코 개인의 불행으로만 이야기될 수 없다. 폭력이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일상이 되도록 방치되고 때로는 '관리'되었던 구조의 흔적이다.

기지촌은 한국 땅이었지만 오랫동안 한국의 법과 인권이 미치지 못한 미국의 땅이었다. 총을 든 미군 헌병이 매일 클럽과 기지촌 골목을 순찰했고, 미군 부대의 통제와 관리에 놓여 있었다. 기지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일부 강력 범죄 이외에는 한국 사회에서 거론되지도 않았고,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그러나 잊힌다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그때의 폭력이 남긴 상처를 안고,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미군 '위안부'들이 존재한다.

미군은 처벌받지 않았다

수많은 여성과 아동, 장애인들이 미군 성매매를 목적으로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었다. 미군 '위안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찾아간 직업소개소와 서울역과 길거리에서 잠잘 곳과 일할 곳을 소개해 준다며 친절을 베풀던 사람들에 의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기지촌으로 끌려갔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납치되어 기지촌으로 끌려온 미군 '위안부'들도 있다.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된 '위안부'들은 포주에 의해 성경험이 없다, 또는 숫처녀라는 것을 내세워 미군들과 흥정하는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그 과정에서 강제로 술이나 약물을 먹은 '위안부'들은 저항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 보는 미군에게 강간을 당해야 했다. 인신매매된 순간부터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빚에 묶였고, 매일 포주의 감금과 감시, 경제적 착취, 폭력과 위협 속에 미군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인신매매된 다음날) 포주가 저에게 술을 먹이더니 알약을 몇 개 줬습니다. 이 약이 뭐냐고 했더니 술 먹고 속 안 아픈 약이니까 먹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 의심없이 그 알약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포주에게 끌려 클럽으로 나갔고, 그날 ․․․ 미군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약과 술에 취해 있었던 저는 그날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출처: 송연옥, 김귀옥 외, 식민주의, 전쟁, 군 '위안부' <김현선, 한국의 미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들의 집단 손해배상소송> 277p에서 발췌, 2017, 도서출판 선인>)

심지어 미군 '위안부'들은 포주와 미군에 의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는 미군 훈련장과 미군 부대 막사까지 들어가 미군을 상대해야 했다. 일부 미군 부대에서는 직접 자치회나 포주에게 연락해 '위안부'들을 모집하였고, 그렇게 모집된 '위안부'들은 미군 부대로 들어가 여러 명의 미군을 상대해야 했다. '위안부'들은 미군이 직접 운전하는 트럭과 지프차에 태워져 이동하기도 했다.

미군의 지속적인 성착취 과정에서 미군 '위안부'들이 겪었던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감금과 폭행, 협박은 반복되었고, 성병과 각종 질병, 원하지 않은 임신과 강제 낙태 같은 피해가 뒤따랐다. 결혼을 약속해 놓고 버리거나 방임하는 일도 있었다. 동료가 끔찍한 폭력과 학대를 당하다 결국 목숨을 잃는 것도 목격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미군 부대에 신고를 해도 무시되었다. 바로 눈앞에서 폭행당한 여성을 보고도 헌병들은 미군을 체포하지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위안부'들의 구조요청도 묵살하였다. 미군들이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부'들은 미군의 보복이 두려워 결국 신고조차 하지 못하였다.

"미군에게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붓고 피가 났었어요. 그래도 도망치는 미군을 잡으려고 부대 정문까지 쫓아갔는데 미군 부대 안으로 쏙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부대 정문에 있는 헌병에게 들어가는 저 미군 좀 잡아달라고 소리쳤는데 대꾸도 안 하는 거예요.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결국 못 잡았지."

<출처: 기지촌 피해 생존자, 2026년 1월 26일 구술>

미국과 주한미군의 책임을 묻는 싸움

'한미합동(위원회)회의록' 등 관련 기록에 따르면, 미군 부대는 기지촌에서 인신매매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과 미성년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신매매 피해자인 미군 '위안부'들을 구조하거나 보호하는 조치는 하지 않았다. 또한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성구매하는 미군의 행동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의 유흥과 병력관리를 위해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하고 조장했다. 한술 더 떠 미군 위안부들에 대한 성병관리를 강화하고 통제하며 관리했다. 한 마디로 위안부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었다.

1971년 11월 24일 열린 제68차 SOFA합동위원회 회의에서 군민관계임시분과위원회가 보고한 자료 중에는 ‘건강과 위생 위원회’에서 군민관계임시분과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와 건의서가 첨부돼 있다. ‘건강과 위생 위원회’가 건의한 내용은 첫째, 한국과 미군당국은 성병 보균자들에 대한 치료를 강화하고 성병 보균자가 완치될 때까지 공중에서 격리할 것, 둘째, 한국 민간과 미군당국의 성병의 원인과 효과, 제거에 대한 협력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강화할 것 등이다. <출처: 외교사료관, 제68차 SOFA 한,미국 합동위원회, 1971> ⓒ 외교사료관

관리 대상이 된 미군 '위안부'는 성병 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미군들에 의해 부대 병원으로 강제 연행되었고, 부작용 테스트도 없이 강제로 주사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미군 헌병들에게 끌려가 낙검자수용소에서 며칠씩 감금당하며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많은 '위안부'들은 미군들이 페니실린 주사제와 약품을 낙검자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것을 목격하였다. 페니실린 부작용으로 쓰러진 동료들을 지켜봐야 했던 '위안부'들에게 수용소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미군 부대는 성병 통제를 위해 대규모로 '위안부'들을 검거하고, 강제로 페니실린 접종을 하였다. 이는 흡사 군사작전과도 같았다. 일부 생존자는 당시 미군에게 끌려가 길거리에서 강제로 페니실린을 맞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군은 타국의 여성들을 체포하고 강제 치료할 아무런 법적 근거도 권한도 없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친 미군 부대의 불법행위와 미군의 성적학대는 미군 '위안부'들의 삶을 파괴하였다. 그러한 폭력은 '위안부'들이 전 생애에 걸쳐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 살아가게 하고 있다. 미군 범죄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은 채 살아가야 하고 기지촌에서 겪은 신체적 학대로 중증질환과 만성 질환,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많은 '위안부'들이 정신적 장애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공황장애, 중증도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등을 호소하고 있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후유증은 '위안부'들을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고립시켰고, 그 고립은 '위안부'들을 평생 빈곤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미성년 시기에 인신매매되어 성적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의 삶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어린 몸에 남은 상해는 평생을 따라다니며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지금도 불안과 심리적 고통으로 남아 있다.

지난 2025년 9월 5일에 117명의 미군 '위안부'들이 주한미군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2022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미군 '위안부' 문제가 모두 밝혀졌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반쪽자리의 진실이다. 실질적으로 기지촌을 관리했던 것은 주한미군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미군 '위안부'들이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되었음에도 지금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이번 소송은 바로 그 '반쪽의 진실' - 미국과 주한미군의 책임을 묻는 싸움이다. 미군 '위안부'들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더 늦기 전에 미국과 주한미군은 침묵을 멈추고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와 배상,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1] 새움터에서 미군 위안부를 부르는 호칭이다. 누군가를 돕고 돕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동등한 삶의 주체로 존중하겠다는 약속의 호칭이다.

#미군#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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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아동'에 약도 전달 못해"…세상이 잊은 참상, '의료 붕괴' 모잠비크 북부

[자원의 저주, 모잠비크] ③ 떠나지 못하는 긴급 구호 활동가들 "언론은 외면, 현장은 절박"

손가영 기자 | 기사입력 2026.01.28. 06:18:33

카부델가두의 긴급 구호 활동가들은 모잠비크 분쟁의 규모와 심각성에 비해 국제 사회와 언론의 관심이 지나치게 적다고 입을 모은다. 분쟁과 가스전 개발의 관계를 살펴보기 전, 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지역 사회를 긴급 지원한 활동가들을 만났다. 편집자

(자원의 저주, 모잠비크 연재 바로가기 ☞ : 클릭)

카부델가두주는 분쟁 동안 의료 붕괴 상황까지 치달았다. 분쟁이 격화했던 2021~2022년, 지역의 모든 의료 시설이 파괴되고, 보건의료 인력도 피난을 떠나 1년 넘게 돌아오지 않았던 텅 빈 지역들이 있었다. 2023년 기반 시설이 재건되기 시작했지만 속도는 더디다. "아직 주 전체 의료 시설의 60% 정도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국경없는의사회 모잠비크 의료책임자 데닐송 보르제스 로우자다(Denilson Borges Louzada)의 진단이다.

카부델가두는 모잠비크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다. 8만2000여 명이 사는 팔마 지구엔 의사가 2명 밖에 없다. 의료 장비가 없는 보건지소 하나가 1만9000명 주민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 국경없는의사회는 모잠비크 보건부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의료 지원 조직으로 2019년부터 카부델가두에서 활동해왔다. 분쟁 동안의 의료 붕괴 위기 지역에선 유일한 의료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동안 긴급 지원 활동가들이 목격한 카부델가두의 위기는 어떤 모습이었고, 현장엔 무엇이 필요할까. <프레시안>은 지난 11월 25일 수도 마푸토시, 12월 1~3일 카부델가두주 주도 펨바시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유엔난민기구(UNHCR), CUAMM(Doctors with Africa CUAMM) 등을 방문해 현장의 심각성을 전해 들었다.

▲2025년 11~12월 남풀라주에 반군의 무력 공격이 증가하면서 새로 발생한 피난민들이 남풀라주 에라티 지역에 모여 있다. ⓒUNHCR

▲12월 3일 프레시안과 만난 국경없는의사회 모잠비크 의료책임자 데닐송 보르제스 로우자다 활동가. ⓒ프레시안(손가영)

보건의료 다방면 붕괴

12월 3일 오전 방문한 국경없는의사회 펨바 사무소는 출장 준비로 한창 분주했다. 지난 11월부터 폭력사태가 연이어 발생한 남풀라주 지역 세 곳에 이동 진료소를 설치하려고 활동가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풀라엔 11월에만 1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지 상황을 확인한 로우자다 활동가는 피난민들이 극심한 영양실조와 탈수, 중증 피부질환, 설사 등의 증세를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피난민은 음식도, 물도 거의 먹지 못한다. 물을 구해도 오염된 물을 마시기 일쑤며, 장기간 걸어서 도망쳐왔기에 대다수가 질병에 걸리거나 극심한 탈수 상태로 발견된다"며 "아이들의 말라리아 감염과 영양실조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피난민들은 피난처에 도착한 뒤에도 굶주림에 계속 시달린다. 생계난에 허덕이며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 없다. 그는 이들의 하루 평균 음식 섭취량은 약 500kcal다. 통상 성인 평균 섭취량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며 "실향민의 60%가 아이들이다.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말라리아와 설사증세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가장 위험한 질병은 말라리아다. 치사율이 높다. 그는 "이곳의 말라리아는 '열대열 말라리아'(말라리아 중 가장 치명적인 종류)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기 쉽다"며 "임산부와 아이들이 특히 취약한데, 중증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들을 적지 않게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카부델가두에서 진료한 환자를 대상으로 통계를 내 본 결과, 환자의 60%가 말라리아 환자였고, 설사 환자는 30%가량이었으며 영양실조는 34%정도로 파악됐다. 로우자다 활동가는 "현지의 열악한 의료 접근성 때문에 이 통계가 전체를 반영할 순 없다"고 덧붙이며, "영양실조는 우리가 조사한 비율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나탈리 기엘렌(Natalie Gielen) 국경없는의사회 모잠비크 지부 대표. ⓒ프레시안(손가영)

"성폭력 피해 아동에 약품 전달도 못해…"

"현재 카부델가두주 마코미아구는 7개 보건센터 중 오직 한 곳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키상가구도 7개 보건센터 중 하나만 문을 열었고,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는 8곳 중 3곳이 가동 중입니다."

지난 11월 25일 수도 마푸토시에서 만난 나탈리 기엘렌(Natalie Gielen) 국경없는의사회 모잠비크 지부 대표는 "의료 붕괴 위기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카부델가두주 4개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해왔는데, 지난 9월 불가피하게 1개 지역에서 인력을 임시 철수했다.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구에서 무장 단체의 폭력 사태가 격화되며 활동가들의 안전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엘렌 대표는 "그곳에 남은 주민들은 (보건의료적으로) 방치된 상태여서 정말 걱정된다"며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 수천, 수만 명의 방치된 사람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분쟁과 관련해선 보통 피난민에 집중을 하지만, 피난조차 떠날 수 없어 남는 사람도 많다"며 "카부델가두의 주민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자원 공급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육로 이동이 제한되고, 도로와 차량 등도 파괴되면서 물류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 이는 "치료할 수 있는 환자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위기"를 초래했다. 기엘렌 대표는 모잠비크 최북단의 팔마(Palma)를 떠올렸다. 분쟁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지역이다. 그는 "한번은 팔마의 성폭력 피해 아동 둘에게 즉각 감염 예방 처치 약물을 공급해야 했음에도, 전달하지 못했다"며 "있는 약도 제때, 필요한 곳에 못 쓰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12월 3일 프레시안과 만난 이사도라 조니(Isadora Zoni) 유엔난민기구 보고관. ⓒ프레시안(손가영)

▲카부델가두 분쟁에 따른 국내 피난민 규모 추이. IOM이 2020년 7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시점 별로 분석한 DTM 보고서에 근거했다. ⓒ프레시안(손가영)

130만 명 피난, 분쟁 남부 확산

2017년 10월 분쟁이 본격화된 이래 현재까지 최소 130만여 명이 피난으로 강제 이주됐다. 카부델가두 인구 280만여 명의 약 46.4%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해 3월 기준 70만여 명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60만여 명은 여전히 돌아가지 못한 채 피난 중이라고 추정했다.

"안전한 지역이 줄고 있는 게 현재 가장 큰 우려입니다. 카부델가두를 넘어서 갈등이 확산하고 있어요. 가령 남풀라는 북부 카부델가두 주민이 피난갔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곳이 공격을 받고, 남풀라 주민이 카부델가두로 되레 도망칩니다. 확실히 새로운 양상입니다."

이사도라 조니(Isadora Zoni) 유엔난민기구 보고관은 "올해 7월 이후에만 3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며 "2023년 많은 주민들이 귀환했는데, 2024년부터 다시 피난민 수가 대폭 늘고 있다"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인도적 비상 사태가 끝나는 건 아직 멀게만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반복해서 피난을 떠나고 있다. 그는 "최근 발생한 피난민의 80%가량이 세 번 이상 피난을 겪은 이들이었다"며 "현장에선 '이젠 지쳤어요.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는 말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피난민도 상황이 어렵긴 매한가지다. 조니 보고관은 "이들의 집은 불탔고, 마을은 거의 다 파괴됐다. 가령 6만여 명이 살았던 모심보아 다 프라이아엔 최근까지 시민등록소(동사무소), 은행, 주유소 등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며 "일상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갖춰지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2월 2일 카부델가두 펨바시 한 안전가옥에서 열린 여성폭력 피해 생존자 모임 풍경. ⓒ프레시안(손가영)

▲CUAMM 활동가 엘리사 템베. ⓒ프레시안(손가영)

급증하는 여성 폭력

12월 2일 오전 유엔난민기구가 운영하는 한 비공개 안전가옥에선 여성 20여명이 모여 가정폭력, 조혼 등의 문제를 두고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CUAMM과 유엔난민기구가 지원하는 여성폭력(젠더 기반 폭력) 피해생존자 모임이다.

분쟁 동안 여성들이 반군에 납치돼 강제로 결혼을 당하거나 강간당한 사건들은 언론보도로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군인이나 경찰의 강간 사건도 보고된다. 실향민 마을에서는 물품 지원을 대가로 여성에게 성매매를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해 왔다. 피난민 여성들은 구호품을 배부받는 동안 물건을 가로채려던 남성들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베르티나(28·가명)는 5명의 자녀를 3년 넘게 홀로 키우고 있었다. 3년 전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먼 지역에서 다시 다른 여성과 결혼해버렸다. 2년 전 태어난 막내는 장애가 있었고 병원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다. 어떻게든 돈을 구해도 병원비로 다 써버려 다섯 자녀를 제대로 먹이고 입힐 돈이 부족했다. 가까스로 남편을 찾았으나, 양육비를 요구해도 '돈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지금이 너무 절망적"이라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폭력 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CUAMM 활동가 엘리사 템베(Elisa Tembe)는 이를 경제적 학대(가족 유기)라고 봤다. "분쟁 전에도 있던 문제였으나, 분쟁 후엔 그 수가 정말 크게 늘었다"고 했다. 이뿐 아니라 성폭력, 납치, 조혼, 강제 노동, 가정폭력 등도 분쟁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했다. 템베 활동가는 "가장들이 생업을 잃은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가족에게 폭력으로 전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 폭력 문제는 급증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지 못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며 "피해생존자들은 이렇게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힘을 받고, 우리는 사건을 지원하고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관심에 지쳐… '모잠비크라서' 외면할까

기엘렌 대표는 카부델가두주의 HIV 감염 확산 문제를 끝으로 강조했다. 2024년 기준 카부델가두의 HIV 유병률(15~49세)은 13.8%다. 전 세계 평균 유병률이 0.7%이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도 1% 미만으로 추정되는 점에 비춰 매우 높은 수치다.

"오늘날 어떤 아이도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나게 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HIV를 진단하고 아이들을 보호할 수단을 이미 알고,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HIV, 결핵 등 감염병 대응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주요 임무입니다. 우리는 카부델가두에서 HIV 감염을 효과적으로 통제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쟁 발발 후, 우린 뒷걸음질 치고 있습니다."

기엘렌 대표는 "분쟁으로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HIV를 갖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도로 늘고 있다"며 "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정말 슬프다. 이래선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참상에 비해 국제 사회의 관심은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그는 느꼈다. 여전히 한 해 3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피난민이 되고, 한 사람이 세 번, 네 번씩 피난길에 오르고 있으나, 국제 사회의 해외 원조 규모는 3년 전부터 대폭 줄었다. 모잠비크 정부마저 지난해 보건의료 예산을 10% 더 삭감했다.

기엘렌 대표는 "특히 언론에서 카부델가두는 많이 다뤄지지 않는데, '모잠비크'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아마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수단 등 전 세계적으로 많은 곳에서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은 더 많은 인력과 약품, 보건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보건의료에 대한 지원을 잊지 않길 간곡히 국제사회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조니 보고관 또한 "세상이 모잠비크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어간다는 생각이 든다"며 "2017년부터 시작된 위기지만, 안타깝게도 최악의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말로 생명을 구하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카부 델가두 분쟁으로 인해 팔마(Palma)로 피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국내실향민의 모습. ⓒIgor Barbero/MSF

※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손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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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정치' 끝장낼 차별금지법, 국회 통과시키려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1/28 09:53
  • 수정일
    2026/01/28 09: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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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정당

  • 입력 2026.01.28 06:50

  • 수정 2026.01.28 09:36

  • 댓글 0

혐오정치의 구조적 잔재와 이재명 정부의 과제

좌절된 역사의 복기, 종북몰이에서 혐오정치로

기득권 카르텔 이해관계와 정당화 이데올로기

승리 위한 전략 전술적 과제들과 실천적 고민

모든 시민 존엄 지키는 최소한의 생존 방어선

진보개혁 세력의 폭넓은 반차별 전선 구축으로

더 이상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의 정치를 향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진보당 손솔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손 의원 페이스북

윤석열의 12.3 쿠데타 시도와 그에 따른 탄핵 및 구속, 그리고 이어진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한국 사회에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암흑 같았던 겨울이 가고 새로운 공화국의 기틀을 세워야 할 시점에, 최근 진보당 손솔 의원이 주도하여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법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인권과 평등의 토대를 다시 단단하게 재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우리는 지난 윤석열 정권 아래서 혐오가 어떻게 국가 통치의 핵심 기제로 작동했는지 목격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선언 아래 여성가족부 폐지가 추진되었고, 장애인과 이주민, 무슬림 등 소수자들은 국가의 '적'으로 규정되어 공격받았다. 기존에 존재하던 학생인권조례나 지역인권조례들이 곳곳에서 사라지거나 개악될 위기에 처했다.

집권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외국인(중국인) 혐오 선동을 했고, 보수 진영을 대표해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한 후보는 "반동성애"를 주장하며 지지를 모았다. 보수 언론들은 '불법 체류자와 외국인 범죄가 증가했다'며 불안감을 유포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러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가장 반대하는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때부터 '다수자 역차별의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했고, 국민의힘의 김기현 전 대표는 차별금지법이 "성경적 원리의 근본을 침해"한다며 반대했다. 국민의힘은 극우 개신교 단체들과 함께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와 이슬람 등을 특권층으로 격상시킨다"는 주장을 펴며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극우의 혐중 선동으로 무고한 중국인과 중국동포들이 고통받고 있다 - MBC 뉴스 화면 갈무리

비록 윤석열 정권과 쿠데타 주모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퍼뜨린 혐오의 씨앗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한때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거나 지지한다던 정치인들(김한길, 이상민, 금태섭, 류호정 등)이 국민의힘이나 그 아류 정당으로 흡수됐던 것도 뼈아픈 기억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을 정치적 스펙으로 이용하고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런 기회주의 정치인들은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더욱 강화하기만 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혐오의 유산'을 청산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지닌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언급한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무리하게 밀어붙일 사항은 아니다"라는 발언은 인권과 평등을 염원하는 이들에게 우려를 안겨준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희망고문'의 시즌2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중대한 개혁을 뒤로 미루는 전형적인 논리가 새로운 정부에서도 반복된다면, 쿠데타를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적지 않은 시민들의 기대와 열망은 다시 사그라들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목소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애써온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노무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약속하고 정부 입법을 추진했던 것을 그 출발점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득권 우파와 보수 종교계, 경제 단체들의 반발 속에서 좌절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연장선에서 2013년에 당시 민주당이던 김한길 의원이 스스로 발의를 철회한 것을 보통 단절의 기점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결정적인 기점은 2012년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의 차별금지법 발의였다. 김재연 의원은 혐오 세력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무릎 꿇지 않았고 법안을 철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광기 어린 '종북몰이'와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속에서 2016년에 차별금지법은 자동 폐기됐고, 이후 관련 논의는 사회적 금기가 되고 말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단식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 책임집행위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한 바 있다. 2022.5.26. 연합뉴스

당시 통합진보당을 향했던 '종북 혐오'는 오늘날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을 향한 혐오와 그 궤를 같이한다. 기득권 우파 세력은 타자와 소수자를 '적'으로 규정하여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혐오의 기술은 종북몰이의 핵심 무기인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적 장치와 결합하여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여왔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함께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이겨내기 위한 역사적 과제에서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상의 감옥을 허무는 길과 구분되기 어렵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두 법안의 제정과 폐지를 연결하려는 문제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로막는 세력의 정점에도 극우 개신교와 기득권 보수 정치 세력의 카르텔이 존재한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특히 핵심에 있는 극우 개신교 세력은 2년 전에 대규모 집회까지 열며 반대에 앞장섰다.

당시에 구약 전문가 김근주 교수는 극우 개신교의 이런 행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성소수자들을 마음껏 비난하지 못할까 봐' 주일 예배까지 빼먹으면서 200만 명을 모은다? 정말 끔찍하다 싶어요. 미친 짓, 미친 짓의 한자어인 '광란', 거기에 접두사를 하나 더 붙여서 '대광란' 말고는 도대체 이걸 무슨 말로 수식할 수 있나 싶어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에 있다. 극우 개신교 쪽의 목소리 큰 사람들을 따라가 보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한 사람들과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강남의 대형 교회들은 단순한 신앙의 공동체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파워 엘리트들의 허브이며 사교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차별금지법은 교육, 고용, 재화 공급의 현장에서 학력, 성별, 종교, 인종에 따른 차별적 이익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위협적 장치다. 즉, 차별과 혐오를 통해 돈벌이를 하고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에게 이 법은 눈엣가시이다. 반공주의와 연결해 복음과 구원을 강조하며 성장해 온 한국 개신교의 위기도 그 배경에 있다.

갈수록 사회적 신뢰와 신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세습하는 교회, 성폭력한 목사, 비리와 부패에 대한 자정이었지만 개신교 우파가 찾은 것은 무슬림,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이라는 희생양이었다. 결국 이들이 유포하는 종교적 논리는 기득권을 포장하고 지지자들을 묶어세우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민변의 환영 성명

이것이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80%가 찬성하는데도 보수적인 기득권 카르텔 세력이 차별금지법에 한사코 반대하며 그것의 제정을 막아서는 이유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눈치 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기득권 보수 카르텔의 목소리가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차별금지법 발의를 넘어서, 제정을 위한 지혜롭고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을 고민해야 한다. 벌써 8번 넘게 발의했다 실패한 차별금지법은 더 이상 발의로는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어쨌든 발의했다'라고 자족하려는 게 아니라면 단순한 도덕적 당위의 선언이나 강조를 넘어서 정교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첫째, 전략과 전술에서 항상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적극 반대하는 기득권 우파 정당들이 상대적 소수이거나 분열해 있는 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개혁 정당들이 과반을 훌쩍 넘어선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달라진 상황과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둘째, 프레임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차별금지법 역시 마찬가지다. 혐오 세력은 이 법을 '소수자에게 특혜를 주는 법' 혹은 '다수를 역차별하는 법'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 우리는 이를 돌파하여 모든 시민이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라는 점을 여론의 상식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을 때 여성, 노동자, 청년, 대다수 시민의 삶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아지는지, 그리고 이 법이 결국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보수적 족벌 언론들의 무관심과 적대감을 뚫고 SNS와 유튜브 등 대안 미디어들까지 최대한 활용하며 '혐오 뉴스'를 '평등 담론'으로 압도해야 한다.

셋째, 반대 세력의 핵심인 국민의힘과 극우 개신교 진영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철저히 고립시켜야 한다. 이들이 유포하는 가짜 뉴스를 팩트체크로 무력화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혐오 선동이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법적·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차별금지법을 막아섰는지 기억하고 고발해야 한다.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국가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 무지개 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공동 주최한 '혐오 앞에 중립 운운 안창호 국가인권위 규탄 및 공개 질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5.4.30. 연합뉴스

넷째, 진보 정당들이 그 중심에 있는 차별금지법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강화하며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서 원내외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진보개혁 정치 세력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던 정의당과 지금 22대 국회에서 그것을 이어받고 있는 진보당의 협력도 중요하다.

두 진보정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 속에서 어떤 걸림돌에 부닥쳤고, 우리 편에서는 어떤 시행착오와 부족함이 있었는지 서로의 경험과 그 과정에서 얻는 교훈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이후 이어진 서로 간의 불신과 반목으로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뼈아픈 과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섯째,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계속 국민의힘과 혐오 세력의 눈치를 보고 타협하려 하는 민주당을 압박하고 견인해야 한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지지와 동참이 없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단지 민주당을 비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현명하고 효과적인 전술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똑같다고 한다면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가 아닐 뿐 아니라,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세력을 늘리는 것에서도 효과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 민주당 내부를 봐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찬성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노골적 반대자에게는 단호한 비판을 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하려는 의원들에게는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특히 '당원 중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의 특성에 주목하며, 500만 민주당 당원과 더 많은 지지자들의 압력으로 차별금지법을 민주당의 핵심 과제로 만들도록 아래로부터의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민주당 정부에서도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 추미애 법사위원장 등은 차별금지법에 우호적인 입장을 드러낸 바가 있고, 조원철 법제처장은 혐오 발언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는데 이런 것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 왔던 국가인권위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빨리 몰아내야 한다.

여섯째, 차별금지법 발의 이후에 혐오 세력에게 공격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의원들을 방어하고 응원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 많은 의원이 불이익과 보복의 두려움 없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소신 있게 입법에 앞장서는 의원들에게는 압도적인 지지와 후원을 집중하여 그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진보당 손솔 의원은 최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작전회의'를 열었다. 사진=손 의원 페이스북

일곱째, 과거에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제정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 힘이 됐는지 경험과 교훈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나 정확한 정세 판단과 기회의 포착, 강력한 프레임의 전환, 우호적인 여론의 조성, 민주 진보 개혁 진영의 폭넓은 연대,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거대한 아래로부터의 힘이 중요했다.

'사회적 합의'와 '나중에'를 말하며 기다리는 사이에, 차별과 혐오의 칼날에 상처 입은 소중한 이들이 너무 많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 문제는 사회적 합의의 부재가 아니라 '혐오할 자유'를 외치는 세력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닭장 속의 여우에게 활개 칠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닭에게는 죽음의 공포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혐오의 공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에 발의된 손솔 의원의 법안을 중심으로, 모든 힘을 집중하여 연대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혐오 세력을 타격하고, 동요하는 세력을 압박하며, 지지 세력을 총결집하는 지혜로운 투쟁이 필요하다. 노동, 여성, 환경, 이주민, 장애인 등 각계각층의 시민사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강력한 '반차별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검찰개혁이나 사법개혁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식으로 대립시킬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이 혐오 정치를 끝내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이 길의 끝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희망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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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뒤통수’에 조선일보 “정부, 美 동향 뭘 아나”

[아침신문 솎아보기] 트럼프 ‘뒤통수’ 의도에 정보통신망법과 쿠팡 언급되는 배경은

국민의힘, 김종혁 탈당 권유에 조선일보 “1970년대 정당 돼가는 국힘”

기자명정민경 기자

  • 입력 2026.01.28 07:34

  • 수정 2026.01.28 08:23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사진=flic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SNS 트루스소셜에서 “자동차, 목재, 의약품을 대상으로 한국산에 부과하는 관세와 기타 모든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며 “한국 입법부가 미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28일 주요 일간지의 1면과 사설에서 일제히 다뤄졌다.

언론은 트럼프의 행동을 두고 1면 기사 제목으로 ‘독촉장’, ‘관세 폭탄’, ‘관세 뒤통수’, ‘어깃장’ 같은 표현을 썼다. 또한 트럼프의 의도로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조속한 대미 투자를 받아 성과를 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공통적으로 언급됐다. 미국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관세를 무역 합의 이전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힌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을 비판하는 제목이었으나 중앙일보는 미국에서 세 번의 경고를 했으나 정부와 국회가 묵살했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았다. 다음은 주요 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트럼프 “관세 인상”…대미투자 압박>

국민일보 <트럼프 “韓 관세 25% ‘빨리 돈 내라’” 독촉장>

동아일보 <합의 흔드는 트럼프 “한국 관세 25%로 인상”>

서울신문 <또 25% 관세 폭탄>

세계일보 <또 뒤집은 트럼프…“韓관세 25%로 인상”>

조선일보 <합의 석달 만에 ‘관세 뒤통수’>

중앙일보 <미 세 번의 경고장, 정부·국회가 묵살>

한겨레 <트럼프 “한국관세 25%로”…대미투자 실행 압박>

한국일보 <트럼프, 느닷없이 “韓관세 25%로” 어깃장>

▲28일자 조선일보 1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 나는 2025년 7월 30일 두 나라를 위한 위대한 합의를 했고 내가 2025년 10월 29일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조건을 재확인했다. 왜 한국 입법부는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느냐”며 관세 인상은 “한국 입법부가 우리의 역사적 무역 합의를 법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권한(prerogative)”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한미는 지난해 7, 10월 정상회담 후 11월14일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발표, 한국이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 대미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한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국가별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한다는 합의한 바 있다.

27일 청와대는 “미국 정부의 공식 통보나 세부 내용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재 방위산업 협력 강화 논의차 캐나다를 방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미국으로 보내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일보는 1면 기사에서 “한국이 관세 인하 반대급부로 미국에 약속한 대미 투자를 요즘 원화 약세 등을 이유로 미루지 못하도록 압박하려는 의도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조속한 대미 투자”라고 분석했다. 이어 “해당 합의에 따른 한국의 투자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인 것으로 보인다”며 입법 지연과 원화 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부담이 커진 한국 상황을 설명했다.

국민일보는 1면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정부는 결국 연간 200억 달러의 대미투자 집행을 독촉한 것으로 본다”라면서도 “한국을 먼저 본보기 삼은 것도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라 전했다. 이어 “한국의 디지털 규제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일부 있다”며 “미 의회와 행정부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 법안을 비판해 왔고, 지난 23일 J D 밴스 부통령은 김민석 국무총리를 만나 쿠팡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묻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 역시 1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관세 재부과 방침을 밝힌 것은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 전했다.

▲28일자 동아일보 1면.

대부분의 신문들이 트럼프의 돌발행동을 비판하는 것과 그 의도를 분석하는 제목을 뽑았지만 중앙일보는 <미 세 번의 경고장, 정부·국회가 묵살>이라 뽑았다. 이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트럼프는 입법부(legislature)만 세 번 거론하며 불만을 토로했다”며 “직접적으로는 대미 투자의 법적 근거가 되는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문제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이어 “여당은 이제야 부랴부랴 입법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3면으로 이어진 <쿠팡 제재·온플법 불만…2주전 날아온 미 서한, 경고였다>는 기사에서 “미국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온라인 플랫폼 법에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해왔다”, “정부와 국회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다루는 과정에 대한 미국의 불신도 관세 재부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라 전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 기사는 “결국 경고음이 여러 차례 울렸는데도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28일자 중앙일보 3면.

트럼프 ‘뒤통수’ 의도에 정보통신망법과 쿠팡 언급되는 배경은

이날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사설도 썼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입법을 미룬 국회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이 디지털 규제 법안에 우려를 담긴 서한을 보낸 것이 경고였는데 미국 동향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점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사설 <韓 입법 문제 삼은 트럼프의 ‘관세 어깃장’…빌미주지 말아야>에서 “하지만 우리 국회도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상임위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국민의힘 모두 적극적으로 입법에 나서지 않았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對美핫라인 자랑 직후 ‘관세 25%’ 폭탄, 미 동향 뭘 아나>에서 “최근 한·미 간 경제 문제에서 여러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국회가 처리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중대 우려’를 표명했다”며 “미 빅테크 기업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주 전에는 주한 미국 대사 대리를 통해 디지털 규제 법안에 대한 우려가 담긴 서한을 보냈다. 쿠팡 사태에도 예기치 않게 미국 조야에서 한국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이 문제도 어떻게 비화할 지 모른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 동향에 대해 정말 얼마나 알고 있나”며 비판했다.

▲28일자 조선일보 사설.

중앙일보 사설 <트럼프의 관세 압박, 원칙 지키며 치밀하게 대응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 관세 번복이 한·미 간 소통의 균열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 대응의 안일함을 보여준다는 점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편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트럼프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관세 재압박’ 황당한 트럼프, 정부·국회 냉정한 대응을>에서 “우선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의도와 배경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단지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대미투자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인지,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정보통신망법이나 온라인 플랫폼 규제,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조사 등에 대한 불만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확인하고, 상황에 맞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사설 <트럼프발 관세 압박 돌출, 대미 소통·후속 조치 만전을>은 “트럼프는 관세 재인상을 거론했지만 시기는 명시하지 않았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미 투자를 재촉하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관세를 또다시 위협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며 “정부는 양국 간 고위급 소통 채널을 가동해 트럼프의 본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국회도 대미투자특별법 논의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28일자 경향신문 사설.

국힘, 김종혁 탈당 권유에 조선 “1970년대 정당”, 경향신문 “정치적 자해”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지난 26일 한동훈 전 대표 측근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의 탈당 권유를 결정했다. 당무감사위가 윤리위에 권고한 ‘당원권 정지 2년’보다 높은 수위의 징계로, 김 전 최고위원은 10일 내 탈당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제명된다.

김 전 최고위원이 혐오·자극적 표현을 동원해 장동혁 대표와 당원들을 지속적으로 비난·비방했다는 게 징계 사유다. 윤리위는 김 전 최고위원이 장 대표 등을 비판하면서 “망상 바이러스” “장 대표가 영혼을 판 것” 등 표현을 한 걸 문제로 삼았다.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이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경향신문 사설 <국민의힘 윤리위, 김종혁 탈당 권유 논리 황당하다>는 “당대표를 비난했다고 이런 중징계를 내린 전례가 있나.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며 “내란 세력과 단절하기는커녕 극우 사당화의 길로 폭주하며 민심과 더욱 엇나가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정치적 자해가 없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끝없는 국힘의 자중지란, 국민 피로감만 높아진다>라는 사설을 내놨고 세계일보는 <당 대표 비판했다고 제명, 국힘 민주 정당 맞나>에서 “국민의힘이 대안 세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는커녕 내홍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반대파 솎아내기’가 아니라 무너진 보수 재건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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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당 대표 모독죄’ 징계, 1970년대 정당 돼가는 국힘> 사설에서는 “지금 국힘 지도부는 도가 지나친 정도를 넘어서 이상하다”라며 “윤리위는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부정선거론자와 ‘윤어게인’ 세력을 ‘망상 바이러스’라고 비판한 것도 문제 삼았다. 다수 국민은 부정선거론을 믿지 않고, ‘윤어게인’을 거부하는데 이 사실을 지적한 것이 어떻게 징계 대상이 되나. 납득할 수 없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도 <당 대표는 비판하면 안 된다는 국민의힘의 반헌법적 발상>에서 “단식을 끝내고 다시 외연 확장에 나서야 하는 장 대표에게 윤리위의 상식 이하의 결정문은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반하는 윤리위 결정을 하루 빨리 거둬들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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